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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설교 (2018년 10월호)

 

  기독교인의 의무이자 권리
  - 기도생활, 성서읽기, 전도생활

본문

 

기독교인의 3대 의무이자 권리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기도하는 생활, 성서 읽는 생활, 그리고 전도하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일이요, 성서를 읽는 일은 자신에 대한 일이요, 전도는 이웃에 대한 일이다. 이 세 가지는 신앙을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3대 요소로서 그중에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한다면 신앙은 온전히 성장할 수 없다.

기도하는 생활
흔히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정의한다. 사도 바울은 이를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라는 명제로 풀이하고 있다.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정의한다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기도는 ‘기도생활’을 넘어서서 ‘생활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생명을 걸고 정해진 기도시간을 지키면서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아니한 성서 속 다니엘처럼 우리도 새벽기도를 비롯하여 정해진 시간에 기도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1897년 11월 17일 자 「죠션크리스도인회보」(후에 「대한크리스도인회보」로 변경됨) ‘성심기도’라는 제하에 등장하는 영국의 소탄 여인처럼 생활기도는 더욱 중요하다.
한국교회 초기 여성 선교사인 노블 부인은 한국 초기 감리교인들의 생애와 신앙을 담아 『승리의 생활』이라는 책을 내었다. 이 책에는 스크랜턴 대부인의 수양딸로 이화학당 최초의 한국인 교사이자 전도부인인 이경숙이 쓴 글도 담겨 있다. 이경숙이 쓴 “예수는 내 생활의 보혜사”라는 글에는 생활기도에 대한 한국교회 버전이 담겨 있다.

내가 스크랜턴 대부인과 함께 용인을 순행할 때 일이다. 때는 추운 겨울날인데 나는 어떤 동네에 들어가 전도할 때에 솜옷을 입지 못하고 발을 벗은 여인이 구경하러 온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솜을 누빈 저고리와 치마를 벗어 준 일이 있다. 일 년 후에 그곳을 순행하러 갔다가 나는 그 여인을 반갑게 만나 보았다. 그 여인은 나에게서 의복을 얻어 입고 즉시 예수 믿기를 작정한 후 그 남편까지 전도하여 믿게 만들었는데 생활도 그 전보다 나아졌다. 스크랜턴 대부인이 그 여인에게 묻기를 기도를 얼마나 자주 드리느냐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쉴새 없이 드린다 하였다. 그 옆에 섰던 다른 여인이 그 말을 듣고 살림을 하고 살자면 자연 눈코 뜰 새가 없거늘 어찌 쉴 새 없이 기도할 수가 있을까? 나는 기도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틈을 얻지 못하여 못한다 하니 그 여인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기도하는 사람이 어찌 별다른 틈이 있다 하리오. 나는 무슨 일을 할 때든지 손으로 일하고 마음속으로 늘 기도한다. 가령 빨래를 할 때에는 이 죄인의 죄를 다 씻어 빨래빛과 같이 희게 되기를 기도하고 불땔 때에는 믿는 마음이 불과 같이 일어나게 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고 밭에 가서 김맬 때에는 나의 마음속에 죄의 뿌리를 풀 뽑는 것과 같이 뽑아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 기도할 마음만 있으면 시간을 따로 찾을 것이 없는 것이라.”라고 대답하였다. 그리하여 그 여인은 그곳 교회에 모범적 신자가 되었다. 몇 해 후에 세상을 떠났는데 내가 믿기는 그의 죄없음을 하나님이 아시고 그를 편히 쉬게 하기 위하여 일찍이 불러가신 것이다.



성서 읽는 생활
한국교회는 개신교 선교사들이 내한하기 이전에 이미 ‘한국인의 손’에 의해서 성서가 번역되고 반포된 독특한 선교 역사를 유산으로 지니고 있다. 초기 기독교인 중에는 성서를 탐독하고 상고(詳考)하는 가운데 개종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한국교회 ‘최초의 신학자’로 일컬어지는 탁사 최병헌도 1888년 존스 선교사의 어학 선생이 된 가운데 무려 5년에 걸친 성서 연구를 통해 1893년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으로 개종하였다. 그는 장성하여 양부 최직래의 양자로 입양되었기에 생가 가족이 따로 있었다. 그가 생가 가족에게 건넨 성서는 디모데처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변화의 힘’으로 작용하였다.

최병헌의 생가 가족은 충청북도 보은군 탁골이라는 마을에 거주하고 있었다. 형님인 최병익은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동생인 최병헌을 이삼 년에 한 번씩 서울로 올라와서 형제간에 반갑게 만났다. 최병헌은 형님이 서울에 올라온 기회에 전도를 하며 성경 몇 권을 드려 시골에 내려간 후에 성경 공부를 잘 하시라고 부탁하였다.
이에 형님은 동생의 부탁을 잊지 않고 집에서 여가 있는 대로 성경을 깊이 상고하는데, 이웃 마을 성저촌에 사는 조명하는 최병익과 평소 정분이 매우 있는 사이로 최병익 집을 번번이 드나들었다. 조명하는 지역에서 명망있고 영향력 있는 선비로 학문이 고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주인이 무슨 공부하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묻거늘 최병익이 아는대로 대강 설명하니 조명하가 기뻐하여 사민필지와 신약성경 한권을 빌려 가지고 돌아가서 주야로 속속들이 파고들어 깊게 연구하여 만약 어렵고 의심나는 곳이 있으면 인편을 얻어 서울 최병헌에게 편지하여 성경뜻을 물었다. 이처럼 성경을 탐독하는 생활 중에 성령의 부르심으로 구세주를 믿는 마음이 점점 독실하여졌다.
그런 가운데 진사시에 합격한 진사로 중추원의관인 제자 박창섭이 서울에 올라갈 때 성경을 공부하라고 당부하였다. 이처럼 성경을 공부한 결실로 친부인 최영래와 형님인 최병익, 그리고 조카 등 삼대가 함께 1899년 정동교회에 등록하여 학습인이 되었다. 또한 조명하도 보은에서 서울로 올라가서 제자인 박창섭과 함께 1899년 12월 17일에 정동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중 조명하는 교회 책을 많이 구하여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시골로 내려갔다.1


전도하는 생활
주님의 지상명령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이다. 이 같은 주님의 지상명령에 따라 열방을 향해 전도한 성서 속 가장 위대한 전도인은 ‘이방인의 사도’로 일컬어지는 사도 바울이다. 심지어 그는 죄수의 신분으로 아그립바 왕 앞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하였다.(행 26장)
‘은자의 나라’ 조선에 복음의 문이 열리던 시기인 1885년 11월, ‘주차조선총리교섭통상사의’라는 막강한 직책으로 조선에 부임한 청나라의 원세개(위안스카이)의 휘하에는 기독교인이 있어서 고종에게 한문으로 된 성서를 진상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조선 정부 대신들이 이 성서를 중간에서 압류하여 조선과 청 사이에 작은 외교적 마찰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 사건에서 보듯 고종 황제에게 성서를 진상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후 1906년 4월 25일에 언더우드, 에비슨, 밀러 선교사 등이 고종 황제를 알현하고 유성준이 번역한 『국한문신약전서』를 진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2 이미 1895년에 한 한국인 여인이 용기와 재치를 발휘하여 궁녀를 통해 고종에게 성서를 진상하여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진귀한 일이 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적 약자가 사회적 강자에게 담대히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현저히 낮은 조선시대에 한 여인이 고종 황제에게 복음의 빛을 비춘 ‘전도 이야기’는 1897년 9월 1일 자 「죠션크리스도인회보」에 “대군주께 성경을 드린 일”이라는 제하로 담겨 있다.

1895년 가을, 명성황후가 시해되기 직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명성황후가 서양 부인들을 초청하여 궐내에 잔치를 배설하였다. 이 잔치 자리에 정동 보구여관 병원에서 일하는 한국인 여인 교우 한 사람도 같이 입시하였다. 이 교우는 서양말이 통하여 명성황후도 매우 사랑하였다고 한다. 이 여인 교우에게는 서로 친한 궁녀도 있었다. 이 여인 교우는 금자 놓은 신약 한 권과 홍비단에 싼 찬미가 한 권을 친하게 지내던 궁녀에게 주며 고종 황제께 드리라 하였는데 이 궁녀가 공손히 고종 황제에게 드렸다. 이에 고종 황제가 기뻐하고 좌우에 있는 신하에게 주시며 공부하라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빛이 대궐에 비추임을 보았다

1 “내보,” 「대한크리스도인회보」, 1898년 6월 29일 자, 4-5면; “삼대가 입교함,” 「대한크리스도인회보」, 1899년 3월 1일 자, 1면; “선생과 제자,” 「대한크리스도인회보」 1899년 12월 20일 자, 1면.
2 이덕주,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개종이야기』(서울: 전망사, 1990), 111.


고성은 | 목원대학교와 호서대학교에서 교회사를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신홍식의 생애와 민족목회활동 연구』, 『철마 정경옥, 생애 연구』, 『동부연회 순교자열전』(공저) 등이 있다. 현재 충남 홍성에 있는 광리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으며, 목원대 외래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2018년 10월호(통권 7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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