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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설교 (2018년 10월호)

 

  땅으로부터의 권위
  빌립보서 2:1-11

본문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1-11)

주제 설명
우리는 권위와 권위주의를 혼동할 때가 있다. 이것은 깊은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만 큰 차이가 있다. 남을 가르치고 지도할 때는 권위가 필요하다. 이 권위는 자신이 원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권위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얻는 것이다. 권위는 지위가 높다고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바른 리더십과 인격을 가지고 있을 때 권위가 생긴다. 그러나 참된 권위를 얻지 못하고 자신의 지위나 힘을 근거로 하여 권위를 행사하게 될 때 이것을 권위주의라고 한다.
예수께서 사역하던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가르침에 놀라면서 말하기를 그의 가르침에는 서기관과 달리 권위가 있다고 하였다.(마 7:
29) 당시 서기관들은 높은 사회적 지위와 힘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예수는 목수의 아들로서 내세울 수 있는 지위나 힘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사역과 가르침에는 권위가 있었다. 이것이 참된 권위이다. 예수를 본보기로 하여 참된 권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울 필요가 있다.

본문 이해
빌립보교회가 당면한 문제 가운데 한 가지는 갈등으로 인한 성도의 분열이었다. 이 분열로 교회의 질서와 교제가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바울은 이런 빌립보교회를 향하여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을 것’(2절)을 권면하고 있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 같은 사랑, 같은 뜻으로 한마음이 되지 않고는 어떤 권면이나 교제, 긍휼이나 자비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권면, 교제, 긍휼, 자비는 교회의 공동체성을 공고히 하는 덕목인데도 주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교회는 먼저 주 안에서 온전한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 바울은 교회의 연합을 위한 겸손의 덕목과 이를 깨뜨리는 다툼과 허영의 악덕을 비교하여 보여주고 있다.
다툼이나 허영은 교회의 하나 됨을 헤치는 대표적인 악덕이다. 다툼은 신앙에서 벗어나 세상적인 원리에 의해서 싸우는 것이다. 자기 관점과 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싸우면 공동체의 하나 됨은 큰 상처를 입게 된다. 바울에 의하면 모든 다툼은 바로 이 허영에서 나온다. 허영은 자기 과시의 한 유형인데, 모든 일에 자기를 내세우면 교회의 연합은 어려워진다.
교회의 공동체성을 공고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겸손’(ταπεινός, 타페이노스)이다. 겸손은 “자기보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다.(3절) 바울은 겸손을 공동체의 하나 됨을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보았다. 참된 겸손은 자기 과시나 자기 유익보다는 남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참된 겸손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바울은 그 모델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아내고 있다. 주 안에서 한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겸손한 마음이 필요한데, 그 마음은 곧 예수의 마음이다. 예수의 마음은 예수의 탄생, 화육, 죽음, 부활의 사건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예수는 하나님과 동등하게 됨을 거부하고 자기를 낮춰 인간의 몸으로 나셨고 자기를 비워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였다. 예수는 완전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낮췄고, 자기를 비웠다.
예수는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취한다’(ἁρπαγμὸν, 하르파그몬)는 말은 도적질한다는 뜻으로 예수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의도까지 부인한 것이다. 예수는 할 수 없이 억지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아예 처음부터 그런 것에 대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예수의 자기 부인, 자기 비움, 자기 낮춤은 자신에게 충분한 자격이 있음에도 자신의 목적과 사명을 위하여 완전히 버리고 순종한 것이다.
예수의 하강은 완전하였다. 참된 겸손은 이러한 예수의 모습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이런 예수를 지극히 높여 주셨다. 모든 자들로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어 주로 고백하게 하였다. 예수의 상승 구도는 더욱 완벽하다. 예수는 참된 권위자이다. 이것이 없는 빌립보교회는 자기 자랑, 자기 과시, 자기 허영으로 인한 다툼때문에 공동체가 혼란과 분열에 빠졌던 것이다.

설교 착상
예수의 모습 속에서 온전한 겸손을 통한 참된 권위를 배울 수 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은근한 교만이 더욱 위험할 수 있다. 겉으로는 겸손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교만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 말이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권위의 상실에서 비롯된다. 교회 안에서는 성도끼리 경쟁에 빠져 힘을 잃고, 지역사회에서는 교회끼리 지나친 경쟁으로 힘을 잃어버렸다. 지나친 다툼과 헛된 허영에 빠진 결과이다. 참된 권위가 상실되었기 때문에 교회는 바로 서지 못하고, 세상을 향한 영향력 또한 잃어버리게 되었다.
참된 권위는 하늘로부터 오지 않고 땅으로부터 온다. 그러나 과거에는 권위가 하늘로부터 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왕이나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특별히 자신들을 뽑아 세우셨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권위를 절대화, 신격화, 그리고 우상화 하였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권위가 아니다. 지위는 주어졌지만, 권위는 주어지지 않은 경우이다. 권위는 지위와 상관없이 획득되지 않으면 안 된다. 특정한 자리에 임명될 수는 있지만 권위에는 임명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섬김의 권위, 종 됨의 권위,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권위를 얻으셨다. 예수는 하나님과 같은 분이지만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인간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복종함으로 우리의 구주로 높임을 받은 분이다. 예수의 권위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고 땅으로부터 주어졌다.
예수의 권위는 하나님과 같은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구주가 된 것이 아니다. 성서는 예수가 천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섬김의 본을 통하여 우리의 구주가 되셨다고 증거하고 있다. 예수의 권위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성서가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잘못된 권위주의에 빠져 있는 교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목사나 장로 직분 그 자체가 권위로 통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교회 안에서 직분이나 어떤 자리가 신앙적인 권위를 가져다줄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탈권위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 사회는 자기의 힘과 지위를 앞세워 권위를 부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는 섬김의 자세로 평생을 살았던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참된 권위가 무엇인지를 배워야 한다. 목회자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참된 권위가 있어야 교회 안에서 지도자가 될 수 있고 사회에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이러한 권위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비뚤어진 권위주의, 율법주의, 그리고 독선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참된 권위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땅으로부터 온다. 사람들로부터 얻어야 한다.

설교 자료
1980년대 초, 모 대학교 총장이 졸업식 연설을 위해 단상에 올라섰을 때 졸업생들이 일제히 일어나 뒤돌아 앉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그 대학 총장 자리는 교육적인 차원을 넘어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던 때라서 정권 안보 차원에서 대통령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던 사람들이 임명되었다. 그래서인지 총장 퇴임 후에는 한결같이 정부 요직으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정작 학생들로부터는 철저한 외면과 불신을 받았다. 그 총장은 높은 지위와 막강한 권력, 그리고 깊은 지식과 경륜을 갖추고 있었지만 권위는 없었다. 그는 권력과 지위는 얻었지만 권위는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불행한 지도자일 수밖에 없었다.
끌레르보 베르나르의 말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당신이 만약 제자의 임무를 다하고자 한다면,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왕의 지팡이가 아니라 한 자루의 괭이이다.”

김홍관 | 미국 United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석사(M.A.)와 박사(D.Miss.) 학위를 받았고, 목원대학교에서 선교학을 강의하였다. 현재 목원대학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2018년 10월호(통권 7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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