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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설교 (2018년 6월호)

 

  선교의 대가를 치르는 교회
  요한복음 15:18-27

본문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23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25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요 15:18-27)

주제 설명
오랫동안 선교는 사람의 일이었다. 교회가 사람을 보내 기관을 세우고 사역을 하였다. 모든 계획과 진행이 교회 중심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보조적 도우미의 역할에 머물러 있었고, 모든 영광도 당연히 교회의 차지였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성공주의에 도취되거나 패배주의에 빠져 있었다. 선교를 사람의 일로 여긴 결과이다.
선교는 교회의 일이지만 하나님이 주도하신다. 하나님의 선교인 셈이다. 열매 맺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요 15:5) 이 말은 사람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뜻이 아니다. 주체가 분명해야 불필요한 오해나 실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선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교회가 보냄을 받는 것이다. 고별설교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장차 세상으로부터 사랑보다는 미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5:18) 선교에는 고난이 따라온다는 것을 미리 밝힌 것이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본문 이해
제자들은 세상에 보냄을 받았다. 그들이 가서 사역을 해야 할 곳은 세상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세상에서 사랑 대신 미움을 받게 된다.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된다고 놀라거나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제자는 세상에 속해 있지 않고 예수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다. 제자는 세상 가운데 예수로부터 택함을 받은 자들이다. 제자가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19절) 제자는 세상에 보내졌지만, 세상에 속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세상에 잘 순응하는 교회는 제자의 길에서 벗어났다는 표징일 수 있다.
제자들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을 보내신 예수를 배척하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죄이다. 죄는 순전히 예수에 대한 미움과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예수가 오지 않았다면 죄가 없었을 것이다. 예수가 세상에 오심으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들의 죄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24절) 이것이 세상이 예수를 이유 없이 미워하는 이유이다.(25절)
선교는 고난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제자는 당하는 고난으로 실망하기보다는 위로를 받게 된다. 고난이 참된 제자의 표징일 뿐만 아니라 장차 오실 성령이 고난당하는 제자를 통해 예수를 증거하기 때문이다.(26절) 장차 예수의 부재 속에서 출교를 당하고 순교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터인데(요 16:2), 그것은 세상이 아버지와 예수를 모르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세상은 어둠과 죽음 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 17:3) 세상은 여전히 영적 무지 속에 놓여 있다.
제자의 사명은 이런 세상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성령이 자신을 증언하실 것이라고 말씀한다. 예수에 대한 제자의 증거가 일차적인 것이 아니다. 성령의 증거가 제자의 증거에 선행한다.(26절) 세계적인 신약학자 카슨(D. A. Carson)의 말처럼 성령은 제자와 별개로 증거할 수 있지만, 제자는 성령과 별개로 증언하는 자들이 아니다.
성령이 증거할 때 제자는 증인이 된다. 주의할 점은 제자가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만약 제자가 증거하는 주체가 되면 성령은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게 된다.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의 말대로 교회사에서 ‘증거’(martyria)라는 단어가 일차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선포’(proclamation)가 아니라 ‘고난’이다. 제자가 나가서 아무리 복음을 전하여도 결국 예수를 알게 하는 것은 혈과 육이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제자가 세상에 나가 전하는 선포와 당하는 고난은 모두 증거의 도구라 할 수 있겠지만, 그 주체는 성령이 될 것이다. 거짓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진리에 충실함으로 인해 고난당하는 제자들을 통해 성령이 강력하게 주를 증거하게 된다. 제자들의 선포와 고난을 통해 성령이 사람들에게 증거함으로써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설교 착상
고별설교를 통해 예수는 제자들에게 장차 선교를 수행하게 될 세상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하였다. 세상은 하나님께 반역하고 예수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제자들도 미워하게 될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제자들이 선교를 위해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상황에서 방치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성령이 함께하시며 그 대가를 통하여 강력하게 주를 증거하게 될 것이다.
제자들이 선교 중에 세상으로부터 받게 되는 반대의 차원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바른 선교와 그를 위한 교회의 참된 모습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따라 제자의 길을 걷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첫째, 세상의 미움을 받는 교회이다. 교회다운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환영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배척을 받게 된다. 세상을 따르지 않고 예수를 따르기 때문이다.(19절)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세상을 많이 닮아 있다. 교회 안에 세상의 것들이 너무 많이 들어와 있다. 오히려 세상보다 더한 면도 많다. 세상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것들도 교회에서 버젓이 통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어떤 교회에서는 교회 표어를 ‘상식이 통하는 교회’로 정했다. 비상식이 상식으로 여겨지는 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들의 현실이다. 오늘날 교회는 예수의 말씀과는 반대로 세상을 너무 닮아 있다. 예수의 택함을 받아 세상의 미움을 받는 교회로의 회복이 필요하다.
둘째, 고난당하는 교회이다. 예수는 말씀(22절)과 이적(24절)을 통해 세상의 악을 드러내었다. 그는 세상의 빛이었다. 이 세상은 예수로 인하여 그 부끄러운 악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세상은 회개하고 주를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고난 가운데서 십자가에 못 박았다. 제자들은 세상의 빛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제자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곧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는 교회를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고난’의 길이 아닌 ‘성공과 번영’의 길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 교회들은 선교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 선교의 열매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셋째, 성령의 교회이다. 예수는 세상으로부터 고난을 당하게 될 제자들에게 성령이 함께하시리라는 약속을 통해 앞으로의 일에 대한 확신과 고난에 대한 위로를 주고자 하였다. 성령의 함께하심은 제자들이 가진 힘이다. 그러나 주체를 분별해야 한다. 성령이 제자로 하여금 증거하도록 돕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께서 친히 제자를 통해 증거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까지 여러 오해로 선교의 주체가 뒤바뀌었다. 교회는 자신들이 증거할 때 성령이라는 존재를 옆에서 돕는 분으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성령을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려 하였다. 이로 인해 선교는 크게 왜곡되어 교회는 승리주의와 패배주의적인 선교의 함정에 빠지게 되었다. 다시 말해 눈에 보이는 선교의 열매가 빈약하면 패배주의에 빠지게 되고, 반대로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면 승리주의의 개가를 부르는 결과로 나타났다. 증거는 성령이 하시는 일이다. 성령이 증거할 때 교회는 증인이 된다. 성령은 교회가 핍박과 반대에 직면하여 있을 때 참고 인내하도록 하실 뿐만 아니라, 핍박자들에게 역사하여 그들을 돌이키신다.
예수의 선교사역은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자신을 내어주신 골고다에서 절정을 맞았다. 철저한 패배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진정한 승리의 길이었다. 예수는 성공이 아닌 고난과 죽음을 통해 그의 사역을 이루어가셨다. 따라서 주의 길을 따른다는 것은 그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세상에 순응하여 성공주의 선교에 도취한 오늘날의 교회가 나아갈 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설교 자료
“그대는 아무런 상처가 없는가? 발이나 옆구리나 손에, 감추어진 상처 자국이 없는가? 그대가 땅에서 위대한 자라고 칭송받는 것이 들린다. 그들이 그대의 밝게 떠오르는 별을 환호하며 맞이하는 것이 들린다. 그대는 진정 아무런 상처 자국도 없는가? 창에 찔린 발만이 나를 따를 수 있을진대, 그대의 몸은 온전하다. 아무런 상처도, 아무런 자국도 없는 자가 얼마나 나를 따를 수 있단 말인가?”(에이미 카마이클)

김홍관 | 미국 United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석사(M.A.)와 박사(D.Miss.) 학위를 받았고, 목원대학교에서 선교학을 강의하였다. 현재 목원대학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2018년 7월호(통권 7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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