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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성서와설교 > [출애굽기에서 만난 하나님 07]
성서와설교 (2023년 10월호)

 

  재앙의 신학 4: 흑암의 재앙(출 10장)
  

본문

 

이번 호에서 다룰 내용은 출애굽기의 열 가지 재앙 중 아홉째 재앙인 ‘흑암의 재앙’이다. 이집트에 내려진 열 가지 재앙은 모든 장자가 죽음을 당하는 재앙으로 마무리되는데, 이 극단적이고 치명적인 재앙 바로 앞에 흑암의 재앙이 묘사된다. 흔히 첫째 재앙에서 마지막 재앙까지 순차적으로 진행되면서 재앙의 강도, 즉 이집트 백성이 당하는 피해와 고통의 정도가 점진적으로 심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아홉 번째로 등장하는 흑암의 재앙은 이런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간다. 왜냐하면 이 재앙을 통해서 이집트 백성이 실질적으로 겪었던 고통이나 피해를 성서 본문에서 찾아보기 힘들고, 독자들의 상식으로도 흑암이 주는 직접적인 피해를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흑암의 재앙은 어떤 점에서 이집트 백성들에게 재앙으로 체험되었던 것일까?
시편 105편에서는 출애굽기에 나오는 재앙들을 간략하게 언급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흑암의 재앙이 여러 재앙 중 가장 먼저 언급되고 있다. 이를 통해 출애굽기에 묘사된 재앙의 순서도 그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이런 측면에서 열 가지 재앙의 순서는 여러 전승 속에서 전해졌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순서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재앙 자체의 의미를 희석할 우려가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측면을 염두에 두면서, 흑암의 재앙의 ‘재앙성’(災殃性, disastrousness)에 초점을 맞춰 출애굽기 10장 21-29절 본문을 분석하려 한다. 동시에 ‘재앙성’을 논할 때 과거 이집트 백성에게 재앙으로 경험된 조건과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이 재앙으로 여기는 조건이 다를 수 있기에, 이 점에 대해서도 구별해서 정리하도록 할 것이다.

흑암이 내린 현상 이해

이집트에서 바로는 신으로 숭배되었으며, 태양신 라(Ra)의 가호 아래서 밝은 낮 동안 이집트 백성과 이방 족속들을 지배하는 자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 흑암의 재앙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낮뿐만이 아니라, 밤의 영역도 다스리시는 분으로, 그 권능을 보여주신다. 밝은 대낮에 갑자기 온 이집트를 흑암으로 덮어서 깜깜하게 하셨다. 당시 이집트 백성들은 바로가 낮을 지배하는 왕이라고 믿었지만, 이 재앙을 통해 결국 낮과 밤 모두를 실질적으로 지배하시는 분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한 분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재앙에서도 그렇듯이 흑암의 재앙 또한 자연 현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나일강 주변에는 ‘악마의 바람’이라고도 불리는 ‘캄신’(Khamsin)이라는 모래폭풍이 불곤 하는데, 많은 모래 먼지에 태양빛이 가려져서 2-3일 동안 어두워지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1 혹자는 이 ‘캄신’을 출애굽기에서 흑암의 재앙으로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본문 23절의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다”는 부분이 캄신의 속성과 적합하다는 의견도 있다. 캄신으로 인해서 지역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어두워지는 현상이 생기는데, 이집트의 한 지역은 어두워지고 다른 지역은 밝아지는 이중적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2 그렇지만 필자는 여기에서 이런 종류의 자연 현상적 설명을 다루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출애굽기의 재앙을 자연 현상으로 보려는 시도 자체는 기본적으로 재앙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 불필요한 고려이기 때문이다.
물론 캄신과 같은 모래폭풍이 햇빛을 가리면 대낮에 어두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이 허락한 때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반면에 출애굽기의 재앙들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때에 벌어진다는 점에서 이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재앙을 자연 현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출애굽기 본문 내용을 기초로 재앙의 ‘재앙성’을 파악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흑암의 재앙 예고

21절에는 대부분의 재앙 이야기에서 언급되는 재앙에 대한 예고가 기록되어 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을 보낼 것을 바로에게 요구하는 장면과 바로가 이를 거절하는 장면은 생략되었다. 그렇지만 앞서 기록된 재앙들에서도 생략된 적이 있으므로 특별히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반복되는 내용은 흔히 생략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앞 절인 20절에서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았다는 내용이 나오고 있는 터라 이런 생략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즉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주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별도의 설명 없이 흑암의 재앙에 대한 예고가 모세에게 주어진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출 10:21)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손을 내밀어 이집트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할 것을 요청하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빛이 없게 하라’는 일반적인 표현이 아니라, ‘흑암이 있게 하라’는 독특한 표현이 사용됐다는 것이다. 보통 흑암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빛이 없는 것’이라고 답하기 마련이지만, 사실 이런 정의(定意)는 흑암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은 것과 같으며, 일종의 부정(不定)적인 정의를 내린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빛이 없는 상태를 흑암이라고 정의해봤자 여전히 흑암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제공받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흑암이 있게 하라고 하신 것은 빛이 없는 상태의 흑암이 아닌, 전혀 다른 종류의 흑암을 전제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빛에 의해서 상대적으로 정의되는 흑암이 아니라, 어떤 실체로서의 흑암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그 자체로서 실체를 갖고 존재하는 흑암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 근거를 본문에서 함께 살펴보기로 하자.
21절 후반부에서는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는 말씀이 나온다. 어떻게 보면 흑암의 재앙이 기록된 본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좀 더 히브리어 본문에 가깝게 다시 번역하면, “그 흑암은 만져질 수 있는 것이다.”로 읽을 수 있다. 무슨 뜻인가? 흑암을 어떻게 만질 수 있다는 것인가? 이것은 “흑암이 있게 하라”는 명령과 불가분 관련이 있는데, 실체가 있는 흑암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존재감을 지닌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래야만 비로소 ‘만져질 수 있는 흑암’이라는 표현이 잘 와닿게 된다. 빛이 없는 상태로 정의되는 일반적인 흑암은 실체가 없으므로 이런 표현을 사용할 수 없지만, 실체가 있는 흑암은 그와는 달리 우리가 만질 수 있는 존재이다. 마치 방안에 커다란 검은 풍선을 불어서 가득 채워놓은 상태를 상상하면 도움이 된다. 이렇게 풍선으로 가득 찬 방에서는 그 실체를 느끼고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흑암’은 ‘호쉐크’(חשׁך)라는 히브리어를 번역한 것인데, 이는 당시 이집트 사람들에게 재난이 외적으로 나타나는 방법으로 이해되었다. 즉 ‘호쉐크’는 신들에게서 격리되는 상황을 표현하는 은유로서 그 자체로 이집트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3 오늘날 독자들의 기준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데, 대낮에 갑자기 어두워지는 이 현상은 현대 과학으로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한편 태양신 라(Ra)가 그 태양신의 화신인 바로 앞에서 흑암으로 가려지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하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된다.4 태양신을 포함하여 이집트 사람들이 믿는 모든 신들이 허상에 불과하며, 이집트를 다스리는 바로도 결국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만져질 수 있는 흑암’이라는 표현에서 사용된 동사는 ‘마샤스’(משׁשׁ)인데, 여기에서는 히필(hiphil, 사역동사의 의미를 가진 능동태) 형태가 사용되고 있다. 그 의미는 ‘느껴지다’(to be felt)이다. 몇몇 학자들은 마치 마소라본문(MT)에 이 단어가 기록되지 않은 것처럼 무시하고 번역에서 빼기도 하는데, 쿰란 사본에 이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5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서 마소라본문의 텍스트를 그대로 반영하여 해석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21절에서 말하는 흑암은 빛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그래서 만질 수 있는 흑암이다.

흑암의 재앙 내용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출 10:22)

모세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었고, 그러자 “캄캄한 흑암”이 사흘 동안 이집트 온 땅에 내리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재앙의 기간이 사흘로 명확하게 지정되는데, 이렇게 재앙의 지속 기간을 알려주는 이유는 독자들에게 이 재앙이 무한대로 계속되지 않았음을 알려주기 위해서이다.6 사흘이라는 기간이 설정되었기 때문에 바로가 재앙을 없애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은 불필요하다. 동시에 이 흑암의 재앙이 사흘 뒤에 어떻게 사라졌는지, 성서 본문은 침묵하고 있다. 필자는 3일간의 흑암으로도 충분히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줄 수 있었고, 이것을 통해서 여호와라는 신이 어떤 분인지를 이집트의 바로와 신하, 그리고 백성 모두가 알 수 있었다고 본다.
이어지는 23절에는 재앙의 내용이 보다 상세하게 묘사된다. 우선 사람들은 사흘 동안 서로 볼 수가 없었고, 그래서 각자의 처소에서 일어나는 사람도 없었다. 필자는 이 부분을 읽고 ‘이집트 사람들이 과연 등잔불을 켜봤을까?’ 하는 의문이 제일 먼저 들었다. 상식적으로 당연히 먼저 불부터 켜보지 않았을까? 불을 켰음에도 밝아지지 않는 상황에 당황하지 않았을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만져질 수 있는 흑암’은 실체가 있는 흑암이기에, 불을 켠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수많은 이집트 사람들이 불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를 바라볼 수도 없었고, 일어나 움직일 수도 없었던 것이다.
‘만질 수 있는 흑암’ 때문에 어떠한 일상생활도 영위할 수 없었던 이집트 백성과는 대조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다. 이집트에 내린 흑암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빛도 각각 실체가 있는 것이므로 이 두 단어는 ‘있다’를 뜻하는 동사 ‘하야’(היה)와 어울려 사용된다. 차이점은 재앙으로 고통을 받는 대상은 이집트 백성이며 이스라엘 백성은 ‘구별’되어서 이런 재앙으로 인해 고통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구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우리말 성서에서 “캄캄한 흑암”이라고 번역된 표현이다. ‘흑암’은 캄캄한 상태를 말하는 명사인데, 굳이 그 앞에 같은 의미의 형용사를 넣어 표현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같은 의미를 반복해서 사용함으로써 그 의미를 강조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7 영어 성서에는 “thick darkness”(KJV) 혹은 “dense darkness”(NRSV) 등으로 번역되었으며, 구약학자 존 더햄(John Durham)은 “eerie darkness”라고 번역했는데, “무시무시한 흑암”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8 따라서 흑암의 재앙에서 말하는 흑암은 단순히 어둡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어둠의 정도가 매우 심한 상태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바로의 제안과 모세의 응답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바로는 모세를 부른다. 바로는 모세가 요청한 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양과 소는 남겨 두고, 어린아이들만 함께 데리고 가야 한다고 말한다. 아마도 계속되는 재앙 때문에 이집트 백성이 먹을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또한 앞서 내렸던 ‘메뚜기의 재앙’ 때 어린아이들을 두고 가라고 했던 바로 자신의 말(출 10:10)에 대한 양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제안에 대해서 모세는 웬만하면 타협할 법도 한데,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의 가축 한 마리도 남겨둘 수 없다고 강경하게 말한다. 그 이유는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서 사흘 길을 가서 제사드릴 때, 어떤 가축을 드려야 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모세는, 이집트 백성의 굶주림은 이스라엘 백성이 책임져야 하는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이집트 사람들이 식량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주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바로가 듣지 않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모세는 바로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모세의 대답을 들은 바로의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다.
그 결과 여호와께서는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고, 결국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는다. 바로가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것 또한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바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모세에게 다시는 바로 자신의 얼굴을 보지 말라고 하면서 만일 다시 자신의 얼굴을 보는 날에는 모세가 죽을 것이라며 섬뜩하게 경고한다.(28절) 모세 또한 이에 맞서 다시는 바로의 얼굴을 보지 않겠다고 응수한다.(29절)

흑암의 재앙의 ‘재앙성’

갑자기 대낮에 어둠이 몰아닥치고, 그것이 무려 3일 동안이나 온 이집트 땅을 뒤덮게 된다면, 그 누가 공포를 느끼지 않으랴? 이 공포의 감정은 단순히 어두워서, 서로를 알아볼 수 없고 길을 찾을 수 없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보통의 기준에서 흑암의 재앙은 재앙으로서의 성격, 즉 ‘재앙성’이 없다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칠흑 같은 어둠이 계속되는 3일 동안 아무도 처소에서 일어나 움직이지 않았고, 적어도 이 기간 다치거나 죽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즉 직접적인 피해가 없었기에, ‘재앙성’이 없으며 사실상 재앙이 아니라고 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흑암의 재앙에는 보다 깊은 의미가 있다. 만약 ‘빛이 없는 것이 흑암이다’라는 부정적 정의를 계속 고집한다면, 이 흑암의 재앙의 경우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빛을 통해 흑암을 제거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일은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집트 사람들은 너도나도 집에 있는 등잔불을 밝혔겠지만, 여전히 전혀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만일 우리도 저녁이 되어 집 안이 어두워진 상황에서 불을 켰음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떨 것 같은가? 불은 분명히 켜져 있는데, 여전히 주위의 사물이나 사람을 볼 수 없으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누구나 어릴 적 친구들과 물놀이할 때 누가 더 오랫동안 물속에서 숨을 참는지 내기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때 정말 최선을 다해서 숨을 참고 있다가 드디어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숨을 쉬려고 할 때 정작 숨이 쉬어지지 않으면 어떨까? 두렵고 공포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마치 이런 경우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불을 켰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어서 어안이 벙벙한 이집트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들이 그때까지 알고 있었던 모든 지식과 상식이 무너지는 경험이다. 불을 켜도 없어지지 않는 흑암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이것이 바로 흑암의 재앙이 보여주는 ‘재앙성’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홉 번째로 내려진 흑암의 재앙은 그들이 알고 있던 모든 상식이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뼈저리게 일깨워주는 재앙이 된다. 동시에 그들이 신으로 숭배하는 태양신조차도 흑암 때문에 힘을 잃어버리고 마는 현상을 보면서, 이집트 백성들은 소위 ‘신들’이라는 것이 모두 헛되며, 우주 만물을 통치하고 주관하시는 유일한 신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와 함께 고센 땅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도 흑암의 재앙으로 인한 어려움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재앙을 목도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결정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궁극적으로 이 흑암의 재앙 이야기를 읽는 우리 모두도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함으로써, 그분의 은혜를 체험하고 선택된 백성으로서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흑암의 재앙 속에 담긴 ‘재앙성’이 우리 모두에게 주는 깨달음인 것이다.

주(註)
1 Cornelis Houtman, Exodus, vol.2 (Kampen: Kok Publishing House, 1996), 114.
2 Houtman, 위의 책, 121.
3 G. Johannes Botterweck, Helmer Ringgren, eds.,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Old Testament, vol.5 (Grand Rapids: Eerdmans, 1986), 246-247.
4 Houtman, 위의 책, 121.
5 William Propp, Exodus 1-18, AB 2 (New York: Doubleday, 1999), 291.
6 장석정, 『재앙의 신학』(대한기독교서회, 2012), 239.
7 장석정, 위의 책, 238.
8 John Durham, Exodus(Texas: Word Books, 1987), 141.


장석정|클레어몬트대학교에서 구약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출애굽기의 출애굽』, 『하나님의 땅』, 『재앙의 신학』 등이 있다.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3년 11월호(통권 7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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