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성서와설교 > [바울의 칭의론을 통해 사유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 02]
성서와설교 (2022년 7월호)

 

  루터의 『그리스도인의 자유』: 부패한 교회법으로부터의 자유
  

본문

 

루터의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다시 시작하기

바울서신에서 ‘자유’는 중심적인 신학 개념 중 하나이다. 신약성서의 각 책과 사도교부들의 문헌을 통틀어 바울서신은 대략 15%의 비중을 차지하는 데 반해, 이 문헌들에 등장하는 ‘자유’ 관련 언급 중에서 바울이 사용한 비율은 60%에 달한다. 이처럼 단순한 통계적 수치만 보아도 자유가 바울에게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바울이 ‘자유의 사도’라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1 그러나 이처럼 바울에게서 중요했고 초대교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던 자유라는 주제는 이후 빠르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이는 바울서신에서 자유에 관한 논의는 주로 율법과 관련해서 등장하는데, 후대로 갈수록 교회에서 이방 그리스도인의 수가 압도적이 되었고, 로마의 국교가 된 이후에는 사실상 이방인의 교회가 되면서 할례에 대한 논의가 불필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바울의 ‘자유’가 다시 소환된 것은 그로부터 천여 년이 흘러 마르틴 루터가 교황청과의 첨예한 갈등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집필한 1520년에 이르러서이다. 『교황 레오 10세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루터가 교황에게 “귀하께서 이 책의 의미를 이해하신다면, 이 책은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간략한 형태로 포함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2라고 말한 데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주제가 루터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 있다. 이 논문에서 개신교의 핵심 교리라 할 수 있는 이신칭의 그리고 자유와 섬김의 관계가 정식화되었는데, 루터는 그 기틀을 세우는 데 거의 전적으로 바울에게 의존했다. 이후 칭의신학은 개신교의 성서해석사를 지배했고, 루터는 바울의 유일한 해석자로 여겨졌다. “루터는 강의할 때 마치 바울이 살아서 말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3라는 베츠(Hans D. Betz)의 말은 루터가 이후 바울서신의 해석사에 미친 엄청난 영향력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그것을 탄생시킨 역사적 상황과 관련시켜 볼 때 종교적 성격을 넘어 정치적 성격을 띤다. ‘율법’과 ‘자유’에 대해 말해야 했던 루터의 역사적 상황과 바울의 역사적 상황이 다르며, 루터의 의도와 바울의 의도가 다르다는 말이다. 이는 바울을 루터와 분리하여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뿐만 아니라 루터 신학의 정수를 담고 있는 이 책을 교리 문서가 아닌 정치적 문서로 볼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이제부터 『그리스도인의 자유』4에 담긴 루터의 자유론을 유럽 전체를 뒤흔든 종교개혁과 농민전쟁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봄으로써 그 정치적 의의와 한계를 밝히고, 이를 바울의 칭의론과 자유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나아가는 징검다리로 삼으려 한다.

『그리스도인의 자유』, 두 차원의 드라마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나타난 루터의 자유론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글이 쓰인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루터가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에 반박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자 교황청은 ‘엑수르게 도미네’(Exsurge Domine)라는 교서를 발표한다. 루터가 교서를 받은 지 60일 안에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으면 파문당할 것이며, 그 사이 교서가 발표된 모든 지역에서는 그의 책들을 불살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에 앞서 교황청으로부터 중재 임무를 받고 비텐베르크로 파견된 카를 밀티츠(Karl Mititz)는 양측 간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루터는 밀티츠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신이 교황을 공격한 적이 없음을 밝히는 서신을 교황에게 쓰고, 여기에 교황에게 바치는 비논쟁적인 짧은 글을 추가하여 이를 출판하기로 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루터는 글의 서두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두 개의 명제로 제시하고 이를 증명하는 방식으로 논리를 전개한다.

1. 그리스도인은 전적으로 자유로운 만물의 주(主)이며 아무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다.
2. 그리스도인은 전적으로 충실한 만물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되어 있다.


그런데 개신교인에게 영원불변의 진리로 보이는 자유와 예속의 이중 명제를 역사적 렌즈를 통해 관찰하면, 두 개의 층위가 나타난다. 표면적 층위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언제나 보편타당한 그리스도인의 자유 개념을 드러낸다면, 이면적 층위는 루터가 살아 숨 쉬던 16세기 중세 유럽이라는 시공간의 정치적 상황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표면적 층위: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와 섬김의 자유

루터는 인간론에 근거하여 자유와 예속의 두 명제를 증명하는 방식으로 자유론을 전개한다. 루터에 따르면 인간의 내면은 온통 죄와 악, 죽음과 저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는 육체적 본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는 인간이 죄와 악에 물든 존재라는 전제 위에서 행위-의의 무용성을 주장한 후, 인간이 죄의 노예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규명한다. 예를 들어, “탐내지 말라”라는 계명은 누구도 지킬 수 없다. 사람이 아무리 애를 써도 탐심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계명을 따르기 위해 탐심을 없애려고 할수록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절망할 뿐이다. “계명은 선한 것들을 가르치기는 하지만 이를 행할 힘은 주지 않는다.” 이것이 이신칭의, 즉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 신앙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그리스도 신앙만이 인간을 율법의 굴레에서 해방시킨다. 그러므로 루터에게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일차적으로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이 선사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영적 본성이 더 이상 육체적 본성에 지배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 즉 영적 자유를 의미하며 이것이 제1명제의 핵심이다.
이어서 루터는 제2명제를 논증한다. 그에 따르면, 그리스도 신앙을 통해 단번에 새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현세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의 육신을 제어해야 하고 사람들을 대해야 한다. 여기에서 행위가 시작되며, 여기에서 사람은 그저 한가롭게 지낼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믿음 대 행위라는 대립적 구도로 이해되는 것과는 달리 루터에게서도 행위, 즉 선하고 의로운 행위는 그리스도 신앙에 필요하며 또 중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전적으로 충실한 만물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되어 있다.”라는 제2명제가 성립한다.

이면적 층위: 부패한 교회법으로부터의 자유

앞서 살펴본 것처럼, 최근까지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주로 루터의 인간론에 대한 서술로 여겨졌고, 그러한 관점에서 해석되어 왔다. 루터가 그린 죄의식에 사로잡힌 인간은 초역사적인 인간의 원형으로서 서구인의 사고를 지배해 왔다. 그 결과, 루터는 한편으로 종교개혁의 아버지로 칭송받지만, 다른 한편으로 서구인에게 병적인 죄의식을 심고 기독교를 개인의 심리적 안정 추구의 수단으로 변질시킨 원흉으로 비판받는다. 그러나 사실 루터의 인간 이해는 그만의 고유한 인간론이 아니다. 그것은 기독교가 유럽에 완전히 전파된 이후, 회개의 중심이 단번에 이루어지는 세례에서 계속 반복되는 미사로 옮겨지고, 14세기에 흑사병이 유럽 전역에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중세 유럽인들 사이에 고양된 자기성찰의 열망 속에 형성된 보편적 정서를 반영한다.5 루터의 영적 자유 개념도 일반적인 중세적 관점, 그중에서도 프란치스코회의 관점과 연결된다.6 이러한 의미에서 루터의 인간론과 이에 근거한 자유 개념은 중세의 에토스를 따를 뿐 그렇게 새로운 사상이 아니다.
사실 루터가 제시한 제1명제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제2명제는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요약할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자유와 예속의 이중 명제는 예수가 말한 가장 으뜸가는 계명, 즉 “첫째는 이것이니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막 12:29-31)에 대한 해석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파격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루터는 왜 기독교적 사랑을 굳이 ‘자유’라는 개념, 그것도 새로울 것 없는 개념을 통해 재해석하려 했는가? 여기에는 루터의 숨은 의도가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주제를 통해 표면적 층위에서는 인간론적 차원에서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하지만, 이면적 층위에서는 정치적 차원에서 교황을 향해 교회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하고 있다.
루터 당시 중세교회는 “교황권적 군주제에 의해 설립되고 지배되는 하나의 단일한 보편적 커뮤니티”7로서 교황권의 지배 아래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을 총괄하려고 했다. 하나님이 교황에게 영적 영역을 다스리는 칼과 세속적 영역을 다스리는 칼을 모두 주셨다는 양검론(論)이 이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였다면, 교회법은 이를 합법화하는 제도적 장치였다. 12-13세기 교회법은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 영역에서도 교황을 최고의 입법가이자 행정가 그리고 사법가로 만드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교회와의 대치 국면이 고조된 상황에서 아무리 화해의 차원에서 쓴 글이라고는 하지만 루터가 교황에게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신학적 인간론에 대한 글을 썼다고 보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루터가 처음부터 교황청과 교회법을 겨냥하여 신중하게 고른 주제이자 제목이다. 루터는 기독교의 자유 개념에 대한 논의를 통해, 교황에게 절대권력을 부여하고 법적 보속행위의 일환으로 면죄부 판매를 허용하는 ‘부패한 교회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하고 있다.
우선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 개념을 통해 교회법이 제시한 교황의 자유 개념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등장하는 자유 개념은 당시 교회법학자들, 그중에서도 루터가 교황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는 프리에리아스(Sylvester Prierias)의 자유 개념을 전제로 할 때 좀 더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 프리에리아스에 따르면, 진정한 자유는 법적 권리를 뛰어넘어 자신에게 종속된 것들을 실제로 지배하는 주인만이 행사할 수 있다. 이러한 자유 개념은 결국 두 검을 모두 쥔 교황에게 현실 세계를 절대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루터가 ‘영적 지배’(imperium spirituale) 또는 ‘영적 권능’(potentia spirituale)으로서의 내적 자유를 강조한 것은 실제적·물리적 지배를 주장하는 교황의 외적 자유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루터의 자유와 예속의 이중 명제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서술임과 동시에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타인을 섬김으로써 역설적으로 영적 지배를 완성해야 할 교황이 정반대의 방향을 걷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이어서 루터는 이신칭의론을 통해 면죄부 판매를 정당화하는 교회법학자들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에 이른다.’는 공식은 일반적 차원에서는 후기 중세신학의 ‘행위로 말미암은 의’, 구체적 차원에서는 면죄부 구매를 통한 보속행위로 (죄사함을 받아) 의에 이른다는 교회의 공식에 맞선 대항 논리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루터가 프리에리아스로 대표되는 교황 친위대와 교회법 해석의 정당성을 둘러싸고 벌인 진검승부의 장이었다.
요컨대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와 교회법으로부터의 자유는 일종의 유비적 관계를 형성한다. 이 책은 표면적 층위에서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이면적 층위에서는 부패한 교회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서술하며 두 차원의 드라마를 연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초역사적인 신학적 인간론에 관한 비논쟁적 서술을 뛰어넘어 역사의 한복판에서 부패한 권력에 맞선 가장 논쟁적인 글이 된다.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가장 비정치적으로 보이는 칭의론이야말로 그 시대의 최고 정치권력자인 교황에 맞서는 루터의 무기였다는 사실이다.

루터의 자유론: 교회에 대한 저항과 농민에 대한 억압 사이에서

루터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라는 구호 안에 숨겨놓은 ‘부패한 교회법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메시지는 당시 쉽게 해독될 수 있는 암호였고, 따라서 전달만 됐더라면 “로마 교회의 수뇌부에게 이 책은 지극히 불쾌한 내용이었을 것이다.”8 다시 말해 “이 문서가 교황의 손에 들어갔다면 교황은 이단자의 터무니없는 파렴치한 행위만을 보았을 것이다.”9 그러나 이 책은 결국 교황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이에 관해 어떤 논쟁도 벌어지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비논쟁적인’ 신학논문만 덩그러니 남았으니 후대에 이르러 이면적 층위가 잊힌 건 당연하다.
엉뚱하게도 교회에 대한 저항 담론이었던 루터의 자유론이 혹독한 시험을 치른 것은 농민전쟁의 맥락에서였다. 농민들이 자신들의 저항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원리는 누가 보아도 루터에게 의존한 것이었다. 농민전쟁 발발 전까지 루터와 농민들의 관계는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루터는 농민에 대한 군주의 경제적 착취의 부당성에 공감했고, 농민들은 그의 만인사제설과 성서해석의 자유에서 해방감을 맛보았다. 농민들이 자신들만의 성서해석에 근거해 만인의 평등을 주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루터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자유라는 문제 앞에서 둘 사이의 신뢰 관계는 깨지고 만다. 루터의 영적 자유와 농민의 정치적 자유가 전면 충돌한 것이다.
교황의 외적 지배에 대한 저항 담론으로 등장한 루터의 자유론이 농민 억압의 수단이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루터의 영적 자유론에서 농민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은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의 항의가 전부였다. 농민은 재판관 앞에서 자신의 딱한 처지를 호소할 수는 있었지만 강제적 재산몰수가 집행될 때 무력저항은 금지되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본질은 외적 자유가 아닌 내적 자유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루터에게서 ‘비협조적 저항’의 원리를 끌어내는 학자들도 있지만, 세속군주의 칼을 전적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간디의 비폭력 사상과는 거리가 멀다.
루터의 자유론은 그의 로마서 13장에 대한 해석과 맞물리면서 결정적으로 정치적 보수성을 띠게 되었다. 루터의 인간론과 자유론, 그의 국가론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된다. 인간은 죄인이(자 의인이)고 사회질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따라서 악은 사회구조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깃들어 있다. 이러한 인식체계에서는 적극적인 사회정치적 윤리가 싹트기 어렵다. 개혁의 일차적 대상이 사회가 아니라 개인이 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루터가 주장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종교와 정치 영역 모두를 지배했던 교회 비판의 무기라는 점에서 정치적 저항성을 띠었지만, 농민 억압의 무기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정치적 보수성을 띠었다. 루터는 종교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점에서 새 시대의 아버지였지만, 계급 질서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그 시대의 아들이었다. 종교적 차원에서는 그리스도 신앙을 통해 누구나 내적 자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인이 평등했지만, 정치적 차원에서 루터에게 자유는 각 계급의 자유로 이해되었고 그러한 의미에서 통치의 자유는 어디까지나 지배자들에게만 허락된 것이었다. 결국 루터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으로서 종교개혁이라는 시대정신에 투신했지만, 지식인으로서의 자신과 언제 폭도로 변할지 모르는 무지한 농민을 구분함으로써 기존의 신분질서를 뛰어넘지 못했다. 농민은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시혜의 대상이었고 따라서 아래로부터의 개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바꾸어 말하자면 루터의 인식체계에서 개혁은 어디까지나 위로부터의 개혁이었고, 종교개혁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세속권력이었다. 하나님의 왕국과 세상의 왕국을 나누고, 하나님의 왕국에서 제거한 초법적 정치권력을 그대로 세상의 왕국에 이양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교회는 정치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다.10
오늘날 교회가 신자유주의의 폭력성과 근대 자유주의의 한계 앞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거슬러 올라가면 여기에 기인한다.

마르틴 루터 이후 바울에게 씌어진 오명과 신학적 과제

연재를 시작하면서 밝힌 것처럼, “하나님은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언제나 그 시대의 제국으로부터의 해방을 선포하는, 자유를 선사하는 신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기원후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되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정치 영역과 종교 영역이 분리되면서 복음의 정치적 의미는 축소되고 은폐되었다. 살펴본 것처럼 루터에게 죄는 개인의 내면에 깃든 것으로서 율법은 정치와 상관없는 유대인의 종교법으로 이해되었고, 그 결과, 죄, 죽음, 자랑, 나아가 (그로부터의) 자유와 같은 용어들이 개인의 도덕적 차원을 넘어 사회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이 차단되었다. 바울서신에 근거한 루터의 율법 비판이 그의 반유대주의적 성향과 맞물린 데 더해 로마서 13장을 이용해 세속권력에 대한 복종을 요구한 것은 바울에게 반유대주의와 친제국주의의 혐의를 씌우기에 충분했다.
따라서 바울의 자유 개념을 그 시대의 맥락, 즉 로마제국 치하라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 위에서 보려는 신학자들은 바울에게서 반유대주의자와 친제국주의자라는 오명을 벗겨내고 이신칭의가 다루는 범위를 개인의 내적 영역에서 사회정치적 영역까지 확대할 과제를 지게 된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의 대가로 불리는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에 이르기까지 루터가 쌓아 올린 바울에 대한 반동주의적 이미지와 칭의론은 깨지지 않았다.
다음 글에서는 불트만의 실존주의적 성서해석, 구체적으로는 바울 해석에서 루터의 신학이 어떻게 현대화되었으며 그 한계는 무엇인지 살펴봄으로써 바울의 자유 개념을 1세기 로마제국 치하의 정치적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독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하나씩 제거할 것이다.

주(註)
1 바울에 대한 ‘자유의 사도’라는 칭호는 롱에네커(Richard N. Longenecker)의 책 제목에서 차용한 것이다. Richard N. Longenecker, Paul, Apostle of Liberty: The Origin and Nature of Paul’s Christianity (Grand Rapids: Eerdmans, 2015).
2 마르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존 딜렌버거, 이형기 옮김, 『루터 저작선』(크리스천다이제스트, 1994), 94.
3 H. D. 벳츠, 한국신학연구소 번역실 옮김, 『(국제성서주석 제37권) 갈라디아서』(한국신학연구소, 1987), 44.
4 아래에 나오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인용문들은 존 딜렌버거의 『루터 저작선』에서 가져온 것이다.
5 Krister Stendahl, “The Apostle and the Introspective Conscience of the West,” The Harvard Theological Review, vol.56 no.3 (July, 1963): 203.
6 사아리넨(Risto Saarinen)에 따르면, ‘potentia spirituale’(영적 권능)와 ‘imperium spirituale’(영적 지배)와 같은 루터의 표현들은 자유를 영에, 결정론을 물질에 돌리는 일반적인 중세적 관점, 특히 프란치스코회의 관점과 연결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어떤 존재가 물질과 물리적 힘의 지배를 덜 받을수록 그 존재의 활동은 더 자유로워지고 덜 결정된다. 이러한 사고의 틀 안에서, 중세의 저술가들은 인간의 근원적 지배/지배권은 그가 자신의 의지에 대해 가진 내적 자유라고 생각한다. 지성과 의지의 영적 힘은 인간이 자유롭다고 불리기 위해서 potentia spirituale가 일차적으로 행사될 수 있고 행사되어야 할 힘이다. Risto Saarinen, “Liberty and Dominion: Luther, Prierias, Ringleben,” Neue Zeitschrift für Systematische Theologie, 40(1998): 179-180.
7 김주한, “마르틴 루터의 인간 이해”,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9권 1호(2000): 166.
8 파울 슈레켄바흐, 남정우 옮김, 『마르틴 루터』(예영커뮤니케이션, 2003), 69.
9 위의 책, 69-70.
10 루터는 세계를 하나님의 왕국과 세상의 왕국으로 나누고, 교회는 영적 영역인 하나님의 왕국의 일을, 세속권력은 외적 통치의 영역인 세상의 왕국의 일을 담당해야 한다고 보았다. 루터의 두 왕국론은 정교분리의 사상적 근거가 되었다.


장양미|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 기독교학과에서 신약성서신학을 전공하여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역서로 『풍성한 생명』(공역) 등이 있다.

 
 
 

2022년 9월호(통권 765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