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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성서와설교 > [구약성서를 통해 본 여성과 성폭력 06]
성서와설교 (2021년 12월호)

 

  전시(戰時) 성폭력과 나비들의 연대 (사사기 19-21장)
  

본문

 

들어가는 말

일평생에 걸쳐 겪어도 숨찬 걸 열세 살에 다 겪었지….1

세 친구와 사과밭에 놀러 가던 길에 공장에 가면 돈을 벌어 잘살 수 있다는 거짓부렁에 속아서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만주로 끌려갔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의 말이다. 하지만 공장 일을 하면서 돈을 벌 기대에 부풀었던 13세의 어린 소녀를 기다린 건 옷감이 아니라 군인이었다. 성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고 오후부터 밀려드는 군인들은 공포와 두려움의 존재였다. 폭력과 학대에 속수무책으로 하루하루를 가까스로 버텨냈고, 폭력으로, 질병으로, 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위안부’ 여성들의 시체를 묻어야 했다.2
수치와 두려움이란 굴레에 갇혀 영원히 묻혔을지도 모를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72년 오키나와에서 배봉기 씨가 처음으로 입을 열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배봉기 씨의 증언은 첫걸음의 의미는 있었지만, 혼자 힘으로는 위안부 문제를 폭로할 수 없음을 알게 해주는 사건으로 끝나버린다.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된 것은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1924-97)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생존자 중 최초로 기자회견을 통해 피해 사실을 폭로했던 증언,3 한국여성단체와 윤정옥 교수 같은 나비들의 연대활동,5 무려 1515차에 걸친 수요시위,5 그리고 2011년 헌법재판소의 ‘위안부’ 문제 관련 ‘외교부 부작위 위헌 결정’과 ‘위안부’ 운동의 국제연대 등을 통해서였다.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의 용기에 대하여 2000년에 열린 일본군 성노예 도쿄여성법정6은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생존자들의 용기, 정의를 향한 갈망, 그리고 연대는 이러한 범죄가 두 번 다시 간과되거나 용인되는 일이 없도록 보장하기 위한 세계적인 여성 인권 운동 및 젠더 폭력 반대 운동을 불러일으켰다. 여성에 대한 범죄가 최근 설립된 국제형사법정에서 기소되기 시작했고 국제형사재판소의 로마 규정에 성문화되었다는 점은 이들의 노력이 낳은 결과이며, 여성에 대한 폭력의 불처벌을 근절하기 위한 기초가 되었다.”7
전쟁이나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그 사회를 존속하고 공고화하기 위해 동원되기도 하고 희생을 요구받기도 한다. 남성들의 경우 징집되어 전쟁에 참여하며, 여성들은 가정과 지역에서 그 사회의 유지를 위해 각처에서의 삶을 지켜낸다. 필요한 경우 간호병이나 보조 인력으로 전쟁에 참여하기도 하고, 남성 인력의 보충으로 산업전선에서 일하기도 한다. 공동체의 위기 상황에서 성별에 상관없이 그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구성원들의 헌신과 희생은 필요하지만, 어떠한 조직이나 권력도 구성원들의 인권과 생존을 유린하는 성폭력을 조직적으로 감행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류의 전쟁 역사는 조직적인 성노예 동원과 전시 성폭력이라는 여성인권유린의 범죄를 자행해왔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의 사과와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는 위안부 여성들의 대변자가 되어야 할 국가는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를 요구하는 피해자들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했다.8
전시 성폭력 사건은 성서에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기브아에서 일어난 한 여성에 대한 윤간으로 시작하여(삿 19장), 야베스 길르앗에서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자를 400명이나 집단 생포해간 사건(삿 20장), 실로에서 종교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나왔다가 강제 결혼을 위해 납치당한 여자들의 이야기(삿 21장)로 이어진 사사기의 마지막 세 장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삿 21장)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삿 21:3)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지파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향해 외친 탄식이다. 부족 간의 동맹으로 형성된 공동체에서 한 부족의 혈통이 끊어지게 될 상황은 절체절명의 조직적 위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위기가 마치 하나님 탓인 양 탄원하는 이들은 무슨 자격으로 이런 기도를 드리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항의하는 그 위기는 바로 자신들이 자처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사기에 서술된 사건의 경과는 이러하다. 이스라엘 지파들은 베냐민 지파를 향해 전쟁을 선포하고 베냐민의 모든 성읍을 불태우고 가축과 사람을 다 죽였다. 그 와중에 베냐민 용사 600명이 살아남아 광야로 피신하였다.(삿 20:47-48) 내전에서 승리한 직후,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삿 21:1)고 맹세한다. 이들이 왜 이런 맹세를 했는지 성서 저자는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베냐민 지파가 없어질지도 모를 위기는 전쟁 그 자체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라, 내전이 끝난 다음 총회로 모여서 베냐민 지파에게 딸을 주지 않겠다고 한 맹세 때문임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이 맹세는 전쟁의 광기에 충동된 ‘바보들의 맹세’로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한 지파의 멸종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지파 지도자들은 다시 머리를 맞댄다. 조사해보니 미스바에서 맹세할 당시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이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그래서 총회는 큰 용사 만 이천 명을 그리로 보내며 “가서 야베스 길르앗 주민과 부녀와 어린아이를 칼날로 치라 너희가 행할 일은 모든 남자 및 남자와 잔 여자를 진멸하여 바칠 것이니라”(삿 21:10-11) 하고 말하였다. 병사들은 이 명령에 따라 야베스 길르앗 주민과 여자, 그리고 어린아이를 죽이고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자 400명을 생포해서 실로 진영으로 데리고 온다.(삿 21:12) 주의 깊은 독자라면 200명이 모자란다는 계산을 이미 하였을 것이다. 살아남은 베냐민 용사는 600명이었고, 야베스 길르앗에서 잡아온 여자는 400명이다. 그리하여 부족한 여자 200명을 채우기 위한 두 번째 궁여지책이 사사기 21장 20-22절에 나온다.

20 베냐민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포도원에 숨어 21 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춤을 추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하나를 붙들어 가지고 자기의 아내로 삼아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22 만일 그의 아버지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시비하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하건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지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의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하겠노라

이 계략에 따라 “베냐민 자손이 춤추는 여자들 중에서 자기들의 숫자대로 붙들어 아내로 삼아 자기 기업(נחלה, 나할라)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건축하고 거기에 거주하였다.”(삿 21:23) 우리말 성서에서 주로 ‘유산’이라고 번역된 단어 ‘나할라’는, 하벨의 정의에 의하면, “단순히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수용된 사회적 관습, 법적인 과정, 신의 인정 등에 의해서 합법화된 한 집단의 권리나 정당한 재산”9으로서 하나님이 가족(지파)에게 부여한 선물이다. 당대 이스라엘 지파 지도자들에게는 기업(나할라)을 보존하고 지키기 위한 목적이 전시 성폭력을 수단으로 취한 조치의 비윤리성을 묵과할 정도로 중요하다.10 조직의 와해 위기를 자처한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과실을 덮기 위해 여성을 희생의 제물로 삼고, 납치당한 여자의 아버지나 형제조차 이를 묵인하며 동조한다.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라고 외칠 당사자들은 이스라엘 지파 지도자들이 아니라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희생당한 여성들이다.

선택적 징계(삿 19-20장)

여성에 대한 끔찍한 전시 성폭력이 일어난 전쟁의 발단은 사사기 19장에 소개된 한 레위 남자의 아내에게 벌어진 윤간과 살인사건이다. 그 경과를 짧게 정리한다. 에브라임 산지에 거류하던 한 레위 남자가 자기 부인을 데리러 유다 베들레헴에 왔다가 에브라임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날이 저물어 기브아에 있는 에브라임 남자의 집에 유숙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기브아 남자들이 손님인 레위 남자를 성폭행하려고 하자, 주인 남자가 처녀인 자기 딸들과 레위 남자의 아내를 내어주겠다고 제안한다.(삿 19:23-24) 기브아 남자들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자, 레위 남자는 자기의 아내를 밖으로 내동댕이쳤고, 그 여자는 밤새 윤간을 당한다. 이 사건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계속해서 지명을 언급하는데, 그 이유는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부족동맹 시대에 지역이 중요하기 때문이며,11 여기서의 중심 주제는 지역 간의 갈등과 환대이다.
다른 한편, 기브아에서의 사건과 그 사건에 대한 이스라엘 총회의 대응은 여성에 대한 성폭력과 남성에 대한 성폭력에 대한 당대 사회의 온도 차를 보여준다. 우선 19장에서 레위 남자를 초대한 에브라임 노인은 기브아의 폭력배들이 남자 손님을 성폭행하려는 일은 ‘망령된 일’(네발라, נבלה)로 명명하였고, 그 망령된 일을 방지하기 위해 세 여성을 대신 내어줄 것을 제안한다. 본문은 ‘망령된 일’(네발라)이라는 용어를 남자에게만 적용하는데, 이는 남자에게 행해진 성폭행이 여성에게 행해진 성폭행보다 더 심각한 범죄로 다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온도 차는 이어지는 사사기 20장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에브라임 집에 도착한 레위 남자는 칼을 가지고 자기 아내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로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냈다. 그것을 본 모든 사람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고 놀란다.(삿 19:29-30) 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와서 그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하나님 앞에 모인다.(삿 20:1) 총회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레위 남자는 사건의 전말을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4 내가 내 첩과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5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내가 묵고 있던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아내를 욕보여 그를 죽게 한지라 6 내가 내 첩의 시체를 거두어 쪼개서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냈나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찜마, זםה)과 망령된 일(네발라,נבלה)을 행하였기 때문이라(삿 20:4-6)

이에 이스라엘 회중은 “그 무리가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된 일(하네발라, הנבלה)을 행한 대로 징계하게 하리라”(삿 20:10)고 화답하면서 베냐민과의 전쟁을 선포한다.12 레위 남자는 ‘음행’(찜마)과 ‘망령된 일’(네발라) 두 가지를 제소했지만, 총회는 징계의 항목으로 ‘망령된 일’만 채택한다. 망령된 일로 지목된 범죄는 남자에 대한 성폭행 미수사건이고, 징계 항목으로 지목되지 않은 범죄는 여성에 대한 윤간과 살인사건이다. 어느 범죄가 더 위중한가? 이스라엘 회중은 남자를 향한 성폭행 미수사건을 여성에 대한 윤간과 살인사건보다 더 중대한 범죄로 판단하였고, 선택적 징계를 행한다. 남성에 의한 남성의 성폭력은 남성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정도를 넘어서 혈통을 이어갈 가장으로서의 사회적 존재의 정체성을 무력화시키는 의미이다. 혈통을 이어갈 남성의 사회적 역할과 남자로서의 명예를 지키는 일은 여성에 대한 윤간이나 죽음보다 더 중요한, 조직이 지켜야 할 덕목이었다. 가족의 가치가 여성 인권보다 우선시되는 사회였다.

전시 성폭력과 나비들의 연대

지금까지 살펴본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와 사사기 19-21장의 전시 성폭력 이야기는 아프가니스탄, 동티모르, 미얀마 등 무력 갈등이 있는 곳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전시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단체인 ‘무력분쟁에서의 성폭력’(Sexual Violence in Armed Conflict, SVAC)은 홈페이지에서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당시 아시아와 유럽의 다양한 행위자가 자행한 성폭력에 관한 글을 약 500편 소개할 정도로 전시 성폭력은 빈번하게 자행되어 왔다.13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은 그들이 특별한 여성이기 때문에 선발된 것도 아니고, 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심판받은 것도 아니다. 종교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실로를 찾았던 여성들이나, 친구 셋과 사과밭을 가던 길에 공장에서 일하게 해주겠다는 말에 따라나선 길원옥 할머니처럼,14 그들은 소박한 일상에서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아 다시는 꾸고 싶지 않은 악몽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3,000여 년의 세월의 간극이 있음에도 성서의 전시 성폭력과 현대의 전시 성폭력이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는 두 이야기의 배경에 남성 중심의 성규범을 기초로 세워진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공통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15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일본의 공창제도를 전시 상황에서 군부에 적용한 것인데, 공창제도의 기본적인 설립 목적은 개별 가정의 가부장적 질서를 보호,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남성의 일탈적인 성 욕구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고 이를 공창제도를 통해 흡수함으로써 모든 결정권을 가진 아버지와 순종적이고 순결한 어머니로 구성된 개별 가정을 보호할 수 있으며, 그 결과 가정의 가부장적 질서가 구현된 가족제도를 존속시킬 수 있다는 논리 위에 세워진 제도라고 옹호한다. ‘위안부’ 제도 역시 공창제도의 연장선상에서 가부장제의 논리가 적용되는데, 이 제도는 전시 군인의 성적 욕구의 충족을 통해 군의 사기 진작과 성병 예방, 그리고 강간 사건의 방지 목적으로 확립되었다고 밝힌 점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16 사사기 19장에서 레위인이 자신의 아내를 기브아의 폭력배들에게 내던지는 것은 남성을 성적 욕구 충동자로 왜곡되게 인식할 여지를 제공하고 있으며, 남성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킴으로써 공동체의 안정을 지킬 수 있다는 잘못된 결론으로 나갈 위험이 있다. 또한 남성의 성적 욕구 충동을 잠재우기 위해서 한 여성의 희생도 불가피한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일본 천황제 국가가 파시즘 체제로 돌입하면서 제국주의 전쟁을 위해 공창제의 연장선상에서 식민지 여성을 하나의 군수품으로 전락시킨 군 ‘위안부’ 정책이나 야베스 길르앗과 실로에서의 전시 성폭력은 부계 혈통을 잇기 위해, 즉 지파 보존을 위해 여성 개인은 희생될 수 있다는 사고는 가부장적 집단 이데올로기를 드러낸다. 여성이 성욕 해소 혹은 혈통 계승의 재생산 도구로 전락하여 국가에 의한 성폭력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반론이 없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사사기의 성폭력 피해자들은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도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외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이 있기까지 공식적인 역사에서 침묵되었으며, 샌프란시스코 정전협정에서도 의제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구약성서의 다른 정경 본문에서 기브아의 죄는 언급되지만(호 5:8, 9:9, 10:9), 집단 성폭행을 당한 피해 여성들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피해자들의 관점에서 기억되고 회상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이나 국가의 거대 담론-성서의 경우에는 편집자의 목적-에 희생되어 대상화되거나 역사 서술을 위한 사료로 활용되는 데 그치고 있다.
교회는 여성비하, 성폭력의 대표적인 사례인 군 ‘위안부’와 성서의 전시 성폭력 이야기들에 대하여 대체로 침묵하거나 외면해왔다. 성폭력 사건이 보여주는 부정의와 피해 여성들의 고통에 대해 우리가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러한 일은 반복될 것이다. 나아가 가해자들의 왜곡된 기억과 주장은 과거의 범죄를 묵인하고 또 다른 폭력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고통과 공포의 기억은 ‘반성적 기억’으로 전환되어야 재발 방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기억은 지나간 것을 알아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현재를 해명하는 ‘매개물’이다.
반성적 기억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연대와 연결 행동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교회여성연합회의 일본인 매춘관광 반대 운동이 있었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일본인 매춘관광 문제의 역사적 뿌리로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재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는 기억의 투쟁의 결과이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은 역사를 변화시키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매년 11월 25일을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로 정하고 지키는 과정에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을 기억하고 연대해준, 공동체의 해방을 향한 공동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박봉정숙의 말처럼, “비정치적인 문제로 간주되어 왔던 고통을 드러내는 작업은 사회정의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인식론적 계기를 제공한다.”17 ‘위안부’ 피해자들을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한다는 등의 왜곡된 비난으로 정의기억연대의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세력 앞에서 성서와 현대 한국사에서의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을 드러내는 작업은 사회정의를 위한 기독교의 인식론적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진정한 평화는 정의로운 상태이다.18

주(註)
1 김숨,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일본군 ‘위안부’ 길원옥 증언집』(현대문학, 2018), 8.
2 한국 정부의 ‘위안부’ 피해신고 자료를 보면, ‘위안부’로 동원될 때 취업 사기에 의한 연행이 가장 많았고, 그다음은 폭력과 협박에 의한 연행인 것으로 나타난다. 정진성, 『일본군 성노예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실상과 그 해결을 위한 운동』(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66-67.
3 이후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졌고,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총 240명 중 현재 생존자는 13명이다.(https://bit.ly/3CMp3xA) 2017년 11월 24일 대한민국 국회는 본회의에서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 증언을 했던 8월 14일을 매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최근에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는 2021년 10월 25일 자 신문에서, 주목할 만하지만 간과한(overlooked) 인물의 부고 기사로 고 김학순 할머니의 부고를 실었다. 죽은 지 24년 만이다. “「뉴욕타임스」, ‘위안부 첫 공개 증언’ 김학순 할머니 부음 실어”, 「한겨레」, 2021년 10월 26일.
4 위안부 피해생존자들과 연대하며 활동해온 ‘정의기억연대’의 전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1990년 11월에 결성되었다.
5 수요시위는 정대협이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하였다.
6 도쿄여성법정은 2000년 12월 8일에 열렸으며 일본군 성노예제의 범죄성과 무력분쟁 하에서 일어난 성폭력 문제에 대한 관심을 국제적으로 진작시킨 민간 차원의 국제인권법정이다. 그러나 민간법정이어서 처벌 권한이나 배상 요구권을 가지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7 아키바야시 코즈에, “‘전시 성폭력’ 처벌을 위한 아시아 여성의 연대”, 2021 여성인권과 평화 국제 콘퍼런스(한국여성인권진흥원·일본군 ‘위안부’문제연구소 주최, 2021년 10월 13-14일, 백범 김구 기념관) 자료집, 139.(https://bit.ly/3GRB2fI)
8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윤병세·기시다 후미오) 회담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방안에 합의하고 합의사항의 이행을 전제로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한 사건도 있다.
9 노만 C. 하벨, 정진원 옮김, 『땅의 신학』(한국신학연구소, 2001), 5장.
10 ‘기업’을 뜻하는 히브리어 ‘나할라’는 사사기 20장에서 세 번(17, 23, 24절)이나 언급된다.
11 성서 저자는 이 노인과 지역 사람들의 출신을 바로 병행하여 진술하면서 그 차이를 노골적 으로 진술하고 있다. “저녁 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거류하는 자요 그 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더라.”(사 19:16)
12 네발라 앞에 정관사 ‘헤’(ה)가 있으므로, 이것은 19장의 기브아 폭력배들이 레위 남자를 향해 시도했던 성폭행을 가리킨다.
13 https://warandgender.net/bibliography
14 김숨, 앞의 책, 43-44.
15 이하의 논의는 이영미, “전쟁과 성폭력 피해여성들의 추방경험과 해방을 위한 기억 들: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과 사사기 19-21장의 성폭력 피해여성을 사례로”, 「캐논앤컬쳐」 9/2(2015): 95-126의 결론 부분을 기초로 재구성하였다.
16 정진성, “일본군 위안소 정책의 수립과 전개”,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진상조사연구위원회 편,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상』(역사비평사, 1997), 101-118; 김미영,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역사기록과 문학적 재현의 서술방식 비교 고찰”, 「우리말글」 45(2009): 223-225에서 재인용.
17 박봉정숙, “개회사”, 2021 여성인권과 평화 국제 콘퍼런스 자료집, 4.
18 1915년 헤이그 국제여성대회 의장이자 193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제인 애덤스(Jane Addams, 1860-1935)의 말이다.


이영미|연세대학교,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원에서 구약학을 공부하였다. 저서로 『이사야의 구원신학: 여성시온 은유를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 솔직히, 민중과 함께』 등이 있다. 현재 한신대학교 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1년 12월호(통권 7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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