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성서와설교 > [오리게네스와 함께 마태복음 읽기 01]
성서와설교 (2021년 1월호)

 

  "천국은 마치 ~과 같다"
  마태복음 13장 36-58절 해설

본문

 

“오리게네스와 함께 마태복음 읽기” 연재를 시작하며

2021년 새해부터 우리는 마태복음 말씀을 한 결, 한 결 더듬으며 거기에 담긴 풍성한 울림을 듣고자 한다. 원문 단어의 뜻과 문법도 살펴야겠고 문맥과 수사법도 살펴야겠지만, 특히 이 여정에서 우리와 함께할 길동무는 3세기 교부 오리게네스이다. 한국교회에서 흔하게 시도되는 일은 아니지만, 성서해석과 묵상에 교부 문헌의 도움을 받는 것은 교회의 오랜 전통이다. 마태복음 각 절에 대한 기본적인 주석적 관찰에서 출발하여 오리게네스의 묵상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통해 다음과 같은 유익을 기대한다.
첫째, 오리게네스의 명민함을 통한 지식이다. 그는 신약성서의 언어인 그리스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면서 그리스 철학과 문학, 문화에 통달했다. 번역 위주로 성서를 읽을 때 어휘나 문법의 측면에서 생길 수 있는 많은 오해가 오리게네스의 주석을 통해 풀릴 수 있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오리게네스 주석의 장점은 이른바 ‘성서로 성서를 푸는’ 해석법이다. 오리게네스는 신·구약성서의 수많은 구절을 촘촘하게 연결해주는 의미의 그물망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우리가 그것을 보고 음미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둘째, 오리게네스의 기발함을 통한 재미이다. 오리게네스는 우의적(寓意的, allegorical) 성서해석의 전문가이다. 우의적 해석은 오랫동안 경계와 비판의 대상이었다. 성서의 문자적·역사적 의미를 무시하고, 주관적 상상력에 기반한 해석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성서 자체에 우의적 해석이 들어 있을 뿐 아니라(예를 들어, 비유 해석), 초기 교회부터 지금까지 우의적 해석은 성서를 기반으로 한 교회의 사역과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오리게네스에 따르면 성서의 문자적 의미, 도덕적 의미, 영적 의미 중 첫 두 가지는 구절에 따라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모든 구절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에서 영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가 『원리론』에서 밝힌 성서해석 원리와 방법이 마태복음 주석 전반에도 적용되었는데, 그가 제시하는 문자적·도덕적 의미들이 대체로 무난하고 명확하다면, 영적 해석들은 기발하고 흥미로운 아이디어로 넘쳐난다.
셋째, 오리게네스의 경건함을 통한 은혜이다. 역사비평으로 시작해서 끝나고 마는 현대 성서학자들의 주석과 달리, 오리게네스의 주석에는 신앙적·목회적 관점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설교자이자 신학자로서 그의 영혼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확신과 기쁨, 소망과 겸손이 마태복음 주석의 페이지마다 진하게 묻어난다.
지면의 성격상 이 연재글에서 오리게네스의 주석 그 자체를 통째로 읽지는 못한다. 하지만 오리게네스가 나눈 단락 구분에 따라 마태복음 본문의 절을 나누어 살펴보면서 가급적 표현과 어휘를 그대로 사용해서 그의 주석적 감수성과 신학을 전달해보고자 한다. 본문 주석의 매 꼭지마다 첫 한두 문단은 일반적으로 마태복음 주석에서 서술된 문학적·신학적 요점을 제시하는 데 할애될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오리게네스의 주석 내용을 따라가면서 주요한 논점을 전달할 것이다.(이 연재글에서 사용된 성서구절은 개역개정판 본문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글의 문맥에 따라 최소한의 수정을 가했다.)

교부 오리게네스와 마태복음 주석

오리게네스(기원후 185?-254?)는 알렉산드리아의 기독교 가정에서 나서 자랐다. 그는 이미 십 대 후반에 신학자이자 교사로서 알렉산드리아교회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감독 데메트리우스의 임명을 받아 세례문답 교육을 담당하면서 많은 사람을 회심시켰고, 이 시기에 요한복음 주석 일부와 『원리론』을 저술했다. 232년 오리게네스는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팔레스타인 해변의 가이사랴로 가서 254년이나 255년쯤 숨을 거두기까지 그곳에서 설교하고, 가르치고, 저술활동을 했다.1
마태복음 주석은 그가 가이사랴에서 저술한 주석 중 하나인데 그의 나이 예순이 넘었을 때 썼다. 말년의 저술이니만큼 대사상가이며 주석가의 농익은 사고와 언어로 표현된 구원론, 교회론, 성서해석 방법의 면모가 곳곳에 드러나 있다. 본래 마태복음 전체에 대한 주석으로 총 25권으로 쓰였으나, 10권에서 17권까지만 그리스어 원문으로 전해진다. 이 여덟 권에는 마태복음 13장 36절부터 22장 33절에 대한 주석이 담겨 있다. 우리도 그 본문 내용을 따라 마태복음 본문을 살펴볼 것이다.2

마태복음 13장 36-43절: 가라지 비유 해설

가라지 비유의 해설은 비유를 말한 본문(13:24-30)에 바로 이어서 나오지 않는다. 해설 앞에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13:31-33), 그리고 비유를 사용하는 목적에 대한 마태의 짧은 서술(13:34-35)이 먼저 나온다. 이런 배치는 해설을 비유의 부속품이 아니라 그 나름의 주제의식과 기능을 지닌 독자적인 단위로 보이게 한다.
이 점은 두 가지 전환 요소를 통해 강화된다. 하나는 장소의 전환이다. 이제껏 예수는 바닷가에서 배에 올라 말씀하셨고, 무리는 해변에 둘러서서 들었다.(13:2) 네 비유의 말씀을 끝내고 예수는 “무리를 떠나서, 집으로 들어가셨다.”(13:36) 또 다른 전환 요소는 전달 방식이다. 지금까지 비유들은 일방적인 선포이거나 강의 형식이었다. 이 지점에서 제자들은 자신들이 궁금해하던 가라지 비유의 의미를 풀어달라고 요청하고, 예수는 그에 응답하신다. 제자들에게만 배타적으로 주어지는 해설 모티프는 무리로부터 격리된 ‘집’이라는 사적 공간에 들어옴으로써 자연스럽게 실현된다.
한편 이 단락에 담긴 신학적 주제는 심판의 확실성이다. 이 주제는 세 가지 현재적 함의를 담고 있다. 첫째,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 즉 천국의 아들들과 악한 자의 아들들이 있다. 둘째, 장차 천사들에 의해 명확히 갈리기 전까지 현재 세상에서 의인과 악인은 섞여 살아간다. 셋째, 따라서 악인들 때문에 마음이 상하거나, 분노하거나, 당장 악인들을 제거하려 하기보다는 의인에게 주어질 복을 소망하면서 신실하게 살아가야 한다.
오리게네스는 먼저 무리와 제자의 구분, 다시 말해서 제자의 특권에 대해 설명한다. 분명 무리에게 주어지지 않은 특별한 은혜가 제자들에게만 주어진다. 그것은 차별이나 편애가 아니다. 오리게네스에 따르면, 제자의 지위는 불변하거나 배타적이지 않다. 누구라도 진지하게 예수의 말씀을 듣고자 그분을 따르다가 그분의 거처를 묻고 그곳에서 함께 지낼 수 있다. 안드레와 또 다른 한 사람이 그런 방식으로 제자가 되었다.(요 1:37-40)
곧이어 오리게네스의 영적 해석이 유감없이 나타난다. 무엇이 혹은 누가 ‘좋은 씨’이고 ‘가라지’인가? ‘천국의 아들들’ 혹은 ‘악한 자의 아들들’이라는 예수의 해설 자체도 영적 해설이 필요하다. ‘좋은 씨’는 로고스에 의해 인간의 영혼에 심긴 ‘건전한 생각들’(ὑγιεῖςλόγοι)이다. 반대로 악한 자의 아들인 가라지는 ‘잘못된 가르침들’(τὰ μοχθηρὰ δόγματα)이다. 또한 심판의 결과 중 하나인 “의인들은 …해와 같이 빛나리라”(43절)에 대해서도 영적 해석이 제공된다. 빛이 영광을 표현하는 심상이라면 결국 의인들은 ‘해의 영광’을 공유하는 셈이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이 여러 등급의 영광에 대해 묘사한 것과 대비된다. 오리게네스는 종말의 상황이 두 단계로 전개될 것으로 이해한다. 첫 단계에서 신자들 사이에 차등적 영광이 나타나겠지만, 41-42절에 묘사된 대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을 때”, 모든 신자는 동일한 최고의 영광, 즉 해의 영광을 부여받을 것이다.
아울러 신자의 ‘빛남’은 오로지 종말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다. “너희 빛을 세상 사람들에게 비취게 하라.”라는 주의 말씀(마 5:16)을 고려한다면, 현재에도 신앙의 빛이 온 인류에게 비추어져야 하고, 종말이 오기 전 죽음을 맞이한 신자들도 빛날 것이며, 최종적으로 종말에 해와 같이 빛날 것이다.

마태복음 13장 44-46절: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와 진주의 비유

오리게네스가 관찰한 대로, 이 두 비유는 앞서 가라지 비유에 대한 해설이 이루어진 정황에서 주어지고 있다. 예수께서는 집에서 제자들을 앞에 두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이 두 비유는 천국 그 자체보다는 천국을 발견한 제자의 자세와 헌신을 나타낸다. 두 비유의 주제는 사실상 동일하다. 최고의 가치를 지닌 어떤 물건을 발견한다면 그것을 얻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 둘 사이에 의미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세부 사항들도 물론 있다. 보화를 발견한 사람의 기쁨, 그것을 다시 숨겨둔 행동은 진주 상인의 비유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점들이다. 보화를 우연히 발견한 사람과 달리 진주 상인은 좋은 진주를 ‘구했다.’ 보화는 그냥 보화이지만, 진주는 종류와 가치가 다양하기 때문에 ‘극히 값진 진주’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
오리게네스의 주석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지점도 바로 그러한 세부 사항들이다. 먼저 보화가 숨겨진 밭은 성서를 뜻한다. 말의 씨앗들, 곧 문자들이 뿌려진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서에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오리게네스는 이 심상을 고린도전서 2장 7절(“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 골로새서 2장 3절(“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과 엮어서 그리스도 혹은 그리스도의 지혜가 곧 밭에 감추인 보화라고 설명한다.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그것을 숨겨둔 행동은, 성서의 비밀스러운 의미를 발견한 사람이 대중에게 드러내기를 두려워해서 혼자 간직하는 상황을 뜻한다. 그는 자신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신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진주 상인의 비유를 해석하면서 오리게네스는 먼저 당시 알려진 세계 여러 지역의 다양한 진주 제조공법과 여러 종류와 품질의 진주들을 소개한다. 그중 극상품은 인도에서 나는 진주이다. 그것은 조개가 오랜 시간에 걸쳐 맑고 순수한 하늘의 이슬을 머금어서 만들어진다. 진주는 진리가 담긴 말씀을 상징한다. 조갯살이 진주를 품듯이 사람들은 하늘의 진리를 간직한 예언의 말씀을 품는다. 최고의 진주는 모든 율법과 선지자보다 뛰어난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가 발견되는 순간, 다른 모든 것이 쉽게 파악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탁하고 흐릿한 저질 진주는 이단적 가르침을 상징한다.

마태복음 13장 47-50절: 그물 비유와 해설

일곱 번째 비유는 비록 짧지만 비유(47-48절)와 해설(49-50절)이 곁들여진 완결된 형태의 비유이다. 주제로 보면 이 비유는 가라지 비유와 비슷하다.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와 ‘천사들’, ‘의인’, ‘악인’ 등과 같은 표현이 두 비유에 모두 나오고, 악인의 운명을 묘사한 50절은 통째로 42절과 똑같다. 심판의 확실성과 심판 때 일어날 의인과 악인의 분리, 그리고 ‘세상 끝’이라는 시점까지 심판이 유보되었다는 주제도 공통된다.
이 비유를 해설하면서 오리게네스는 그의 시대 많은 주석가들의 오해 하나를 풀어보려고 한다. 오해의 뿌리는 47절 끝에 있는 ‘각 게노스로부터 나온’(ἐκ παντὸς γένους)이라는 전치사구였다. 명사 ‘게노스’는 본래 씨앗이나 종자를 뜻하고, 이를 사람에게 적용하면 본성 혹은 본질이라는 뜻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주석가들은 이 전치사구를 ‘각자의 본성으로부터 발현된’이라고 이해하고 사람들이 각각 타고난 본성 때문에 의인 또는 악인이 된다고 생각했다. 오리게네스는 이런 해석이 죄와 구원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보았다. 의인과 악인의 판별 기준은 각자의 본성이 아니라 행위 혹은 전체적인 삶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설사 본성의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인생 전체의 도덕적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인이 악을 행하면 악인으로 변할 수 있고, 악인이 의를 행하면 의인으로 변할 수 있다.(겔 18:21-24) 따라서 선악의 스펙트럼에 놓인 다양한 행동 중 각자가 내린 선택의 결과에 의해 의인과 악인으로 판명날 것이다.
또한 이 전치사구는 ‘물고기’ 대신 ‘그물’을 수식할 수도 있다. 그물에 잡히는 상황을 성서 말씀으로 감동과 설복을 받아 신앙의 길에 들어선 신자들의 현실로 이해한다면, 어떤 사람은 복음서 말씀으로, 다른 사람은 서신서 말씀으로 은혜를 받게 되므로 각 종류의 그물 부분으로부터 잡힌 물고기에 빗대어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가득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 ‘플레로오’의 수동태는 마태복음에서 예언이 ‘성취되다’는 뜻으로도 여러 번 쓰였기 때문에, 오리게네스는 그물의 가득함이 그리스도에 의한 성서의 완전한 성취를 의미할 수도 있다고 본다.

마태복음 13장 51-52절: 천국의 서기관 비유

비유 강화는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천국 비유를 마무리하기에 적합한 결어로서 예수는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라고 묻고, 제자들은 “그러하오이다.”라고 대답한다.(51절)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예수는 ‘천국에서 훈련받은 서기관’이라는 특별한 표현을 사용하여 성서와 계시의 역동적인 작용을 묘사한다. 52절은 일곱 비유를 총괄하는 결론인가? 여덟 번째 비유인가? ‘천국은 마치 ~과 같다’라는 도입구가 없다는 점, 그리고 ‘천국에서 훈련받은 서기관’의 역할이 현재 시점의 공동체를 염두에 둔다는 점에서, 설사 52절이 비유라고 해도 천국 자체를 설명하는 비유는 아니다. 대신 천국 비유를 베푸는 사람의 태도와 자세를 논하기 때문에 ‘비유에 대한 비유’ 혹은 ‘메타-비유’라고 부를 수 있다.3
52절 한 문장 안에는 적어도 세 가지 주제가 중첩되어 있다. 첫째, 제자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이 모든 것’, 즉 천국 비유들과 그 비유들의 해석을 이해하는 사람이다.(51절) 둘째, 제자는 서기관처럼 성서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기능을 수행한다. 셋째, 온 가속(家屬)의 생활을 위해 집주인이 곳간에서 새것과 옛것을 내오듯이 천국을 위해서 제자로 교육받은 서기관은 공동체가 건강한 영적 생활을 영위하도록 예로부터 전해오는 말씀과 새롭게 제시된 말씀을 충실히 연구하고 가르쳐야 한다.
오리게네스의 해설은 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성서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이상적인 제자라면, 제자들을 ‘학문 없는 범인’이라고 묘사한 사도행전 4장 13절과 모순되지 않는가? 게다가 ‘서기관’은 예수의 다른 말씀들에서 위선의 대명사인 바리새인들과 동의어처럼 사용되었다. 그래서 오리게네스는 먼저 그 단어가 갖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설명한다. 그러고 나서 여기에 언급된 서기관은 그냥 서기관이 아닌, ‘천국에서 가르침을 받은’ 서기관임을 상기시킨다. 율법의 문자적 지식으로 훈련받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활성화된, 영적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바로 천국의 서기관이다. 서기관은 본래 소속되어 있던 유대교로부터 돌이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성서의 역사적 의미를 간직하면서도 문자적 의미에 매이지 않고 영적 의미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처럼 오리게네스도 ‘새것’은 복음서와 사도들의 글과 계시를 가리키고, ‘옛것’은 율법과 예언자들의 글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 둘은 나뉘어서는 안 된다. 서로 비교되고 병행됨으로써 각각의 의미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주인이신 예수께서 옛 말씀과 새 영으로써 천국의 서기관을 가르치셨고, 그렇게 해서 제자들은 “선생과 같이 되었다.”(마 10:25) 마찬가지로 바울도 그의 서신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돼라.”(고전 11:1)라고 권면했다. 신자는 먼저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을 닮아야 하고, 그다음에는 그리스도 그분을 닮아가야 한다.



주(註)

1 오리게네스의 생애에 대해 알 수 있는 1차 자료는 에우세비오스의 『교회사』와 오리게네스의 저서에 산발적으로 나오는 자전적 언급들이다. 오리게네스의 생애와 저술, 그리고 그의 사상에 대한 개관으로는 다음 자료를 참고하라. R. E. Heine, Origen: An Introduction to His Life and Thought (Eugene: Cascade Books, 2019).
2 이 글에서 사용한 그리스어 비평본은 클로스터만(E. Klostermann)과 에른스트(E. Ernst)가 편집한 Origenes Werke. Zehnter Band. Origenes Matthäuserklärung I. Die Griechisch Erhaltenen Tomoi (Leipzig: J. C. Hinrichs’sche Buchhandlung, 1935)이고, 영어 번역으로는 하이네(R. E. Heine)의 The Commentary of Origen on the Gospel of St Matthew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8)를 사용했다.
3 씨뿌리는 비유에도 ‘천국은 마치 ~과 같다’는 도입구가 없고, 씨가 네 종류의 밭에 뿌려져서 자라는 상황이 현실에서 천국 복음에 반응하는 여러 반응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52절처럼 메타-비유적 기능을 한다. 그렇다면 여섯 개의 천국 비유가 들어 있는 13장의 처음과 끝에 두 메타 비유를 배치해서 하나는 천국 비유를 받는 사람의 태도를, 다른 하나는 천국 비유를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사람의 태도를 다룬 것으로 보아, 일종의 인클루시오(inclusio) 구조로 파악할 수 있다.


조재천 | 예일대학교와 노트르담대학교에서 신약학을 공부하였다. 저서로 『그리스도인을 위한 통독 주석 시리즈-히브리서』가 있다. 현재 전주대학교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1년 2월호(통권 746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