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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성서와설교 > [예수에게 길을 묻다 06]
성서와설교 (2020년 12월호)

 

  제3의 구원신학
  

본문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눅 9:23-24Q, 이하 필자 사역)

If anyone wishes to come after me, he must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daily and follow me. For whoever wishes to save his life will lose it, but whoever loses his life for my sake will save it.(Lk 9:23-24)


예수의 신분 격상

예수는 기원후 30년경 갈릴리 민중을 선동한 죄로 로마의 식민지 권력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세금 납부를 거부하고, 스스로 유대인의 왕 메시아를 참칭(僭稱)하여 로마의 식민 질서를 어지럽힌 혐의였다.(눅 23:2)
생전(生前) 예수의 칭호는 ‘선생’(랍비, 디다스칼로스)이었다. 그런데 제자들 집단의 주관적인 부활 체험을 바탕으로 예수의 신분은 점차 격상되었다. 선생 예수는 메시아(그리스도), 인자,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독생자를 넘어 300년 후 니케아공의회에서 마침내 하나님과 동일본체(homoousios)를 지닌 성자 하나님으로 격상되었다.
313년 6월 로마의 두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리키니우스가 <밀라노칙령>(the Edict of Milan)을 공표하였다. 이를 계기로 3세기 동안 지속된 로마의 기독교 박해는 종식되었다. 이 칙령으로 인해 두 가지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먼저 제국 내에서 모든 종교에 대한 신앙과 예배의 자유가 허용되었고, 둘째로 제국이 몰수한 교회의 토지, 건물, 재산을 되돌려주었다.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황제의 지원을 받게 되자, 교세는 급속히 확장되었다. 이와 함께 예수의 신분 격상 운동은 본격화되었다.
310년 이집트의 북부 도시 알렉산드리아 교구의 주교 알렉산더와 장로 아리우스 사이에 ‘예수의 신분 격상’을 둘러싼 일대 교리논쟁이 벌어졌다. 주교 알렉산더는 성자 예수를 ‘창조된 일이 없고 영원하며 그 본질에서 성부와 다르지 않은 존재’로 보았다. 그런데 아리우스는 알렉산더의 삼위일체 주장을 비난했다. 그는 예수를 ‘무로부터 창조된’(creatio ex nihilo) 피조물 중 으뜸으로 보았다. 오리게네스의 종속론 입장에서 성자를 성부 하나님보다 열등하지만 인간보다 뛰어난 중간자(middle being)의 존재로 이해했다.
아리우스의 신학은 45년경 바울이 목회한 시리아의 안디옥학파 계보에 속한다. 이는 안디옥교회 감독이던 루시안, 사모사타의 바울을 거쳐 바울에게로 소급된다. 안디옥학파는 유일신 사상을 견지하였고, 구원의 동기를 그리스도의 신성이 아니라 도덕적 인간의 완성에서 찾았다. 안디옥학파는 삼위일체를 주장한 서방교회의 주류에서 밀려나 이단으로 단죄되었지만, 기독교 역사에서 예수의 온전한 인성(人性)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으며, 오늘날 역사비평적 성서해석학의 발달에 크게 공헌했다.
아리우스의 양자설(adoptionism)은 바울에게서 기인한다. “그 아들은 인간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나셨고,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사심으로 그 권능에 의거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확정되셨습니다. 그분이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롬 1:3-4) 예수께서 하나님 아들로 입양된 것은 부활사건 이후 성령의 능력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바울의 양자 그리스도론은 테오도투스, 사모사타의 바울을 거쳐 발전했다. 이러한 계보에 선 아리우스도 예수를 지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가장 완벽하게 실천한 피조물 중 으뜸가는 분으로 받아들였다. 알렉산더가 318년 장로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몰아 파문하자, 동방교회는 아리우스 논쟁으로 인해 분열되었다.
교회가 분열되자, 하나의 제국, 하나의 교회를 모토로 제국정치를 수행해온 콘스탄티누스는 이 문제를 좌시하지 않았다. 황제는 325년 5-7월까지 석 달 동안 니케아(현재 터키의 이즈니크)의 황제 별궁에서 기독교 전체를 아우르는 감독회의를 소집했다. 이 니케아공의회에는 모두 318명의 주교가 참석했고, 그중 서방교회 대표는 6명뿐이었다.
서방교회(카르타고, 로마)는 테르툴리아누스의 활약에 힘입어 성부와 성자의 동일본질에 대한 의견일치를 이룬 반면, 동방(알렉산드리아)은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 회의에서 황제의 입장은 분명했다. 바른 교리보다는 제국의 안정을 꾀하는 데 유리한 교리를 채택하고자 했다. 주요 의제는 첨예한 대립의 양상을 보인 파스카 논쟁(성만찬 날짜에 관한 논의)과 아리우스 논쟁이었다. 서방교회는 성만찬 예식을 부활절에 행한 반면, 동방교회는 유월절(니산월 14일)에 행했는데 이를 하나로 통합하여 동·서방교회의 일치를 꾀하려 했다.
이 공의회에서는 성자 예수를 성부와 동일본체를 지닌 분으로 규정했고, 니케아신조(the Nicene Creed)를 통해 삼위일체론의 기틀을 마련했다. 하지만 단일신론을 주장한 아리우스파는 니케아신조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 이단으로 몰린 그들은 아우구스타 트레베로룸으로 유배되었다.
381년 동방교회의 콘스탄티노플공의회와 서방교회의 아퀼레이아공의회에서 니케아신조의 삼위일체 교리는 재차 확인되었다. 아리우스파의 입장을 끝까지 고수하던 그리스 지역의 교회들은 하나의 공교회에서 떨어져 나가 동방정교회를 설립했다.

큐의 구원신학

구원을 얻는 방법에는 난행도(難行道)와 이행도(易行道), 곧 어려운 길이 있고 쉬운 길이 있다. 자력(自力)으로 예수를 따름으로써 구원을 얻으려는 방법이 난행도에 속한다면, 타력(他力)으로 예수를 믿음으로써 손쉽게 구원을 얻으려는 방법은 이행도에 속한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눅 9:23-24Q)

이 말씀은 제자도(弟子道)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예수의 뒤를 따르는 제자가 되기 위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자기를 버려야 한다고 한다. 이는 소아(小我, 에고) 중심의 욕심을 따르지 말고 대아(大我) 중심의 황금률과 양심을 따르라는 말과 통한다. 둘째는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라고 한다. 십자가형은 무엇인가? 로마인의 사형제도이다. 제자들이 당하게 될 온갖 박해와 시련을 암시하고 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예수와 같은 길을 걷는다는 의미이다. 예수를 본받아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를 갖는 것이 성서가 말하는 ‘제자가 되는 길’, 곧 제자도이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눅 14:26-27Q)

가족과 제자도, 사익(私益)과 공익(公益)이 충돌할 때, 어느 편을 택해야 하나? 일의 우선순위 문제이다. 『대학』에서는 만물엔 근본(根本)과 말단(末端)이 있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니, 우선순위를 알면 도에 가까워진다고 했다.(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也) 큐의 예수는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실천하는 일을 근본으로 삼고 세상살이를 말단으로 삼으라고 한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 6:33)
자기 십자가를 타인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스스로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를 따르는 데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큐에서는 바울 케리그마의 핵심인 예수가 내 죄를 대신해서 죽었다는 일종의 타율적인 대속사상을 찾아볼 수 없다. 자기 십자가를 예수에게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자력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것을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한다. 큐의 자율적(自律的) 구원관은 바울의 타율적(他律的) 구원관과 대조를 이룬다.
“그러므로 하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하라.”(마 5:48Q) 큐 신학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 완성이다. 하늘 아버지의 완전하심(teleios)을 본받아 인간 완성을 이루는 것이 구원이다. 어떻게 해야 인간 완성을 이룰 수 있나?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한다. 이는 타자가 나와 상의상관(相依相關)되어 있음을 깨닫고, 타자에게서 또 다른 내 모습을 보게 될 때 하늘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늘 아버지의 완전하심은 사람을 편애하지 않는 데서 드러난다.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 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 모두에게 골고루 햇빛과 비를 내려주시는 데서 드러난다.(마 5:45Q) 중국 수나라 양제 시대에 선종의 3대 조사인 승찬이 저술한 『신심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진리에 이르기는 어렵지 않다. 오직 매사에 버리고 취하는 일만 멈추면 된다.(至道無難 唯嫌揀擇) 다만 미워하고 사랑하는 분별심만 내려놓으면 진리는 밝게 드러난다.(但莫憎愛 洞然明白)” 이는 사람을 편애하지 말라는 큐 예수말씀의 훌륭한 주석이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이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사람이 적다.”(마 7:13-14Q) 생명과 구원으로 인도하는 문과 길은 넓지 않다. 모든 사람이 함께 갈 수 있는 큰 길이 아니다. 예수말씀의 뜻을 바르게 깨치고 하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소수만이 갈 수 있는 좁은 길이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해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들어간다.”(마 7:21Q) 큐의 예수는 칭명(稱名) 구원을 말하지 않는다. 예수를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늘 아버지의 뜻인 황금률과 양심을 구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큐의 구원신학은 분명하다. 자력 구원이요, 난행도이다. 예수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예수를 본받아 하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좁고 어려운 길을 갈 때, 구원과 생명이 주어진다. 이러한 큐의 난행도 구원신학은 도마복음과 유사하다.

도마복음의 구원신학

이것은 살아 계신 예수(the living Jesus)께서 말씀하시고, 디두모 유다 도마가 받아 적은 비밀의 말씀들(the secret sayings)입니다.(도마서언)

도마복음은 ‘살아 계신 예수’의 비밀스러운 말씀들을 받아 적은 것이다. 이는 붓다의 말씀을 직접 듣고 받아 적었다는 여시아문(如是我聞)과 통한다. 예수의 육성 메시지는 밀의적(esoteric)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현교(顯敎)와는 다르다. 오직 그 말씀들을 듣고 깨달을 준비가 되어 있는 소수의 무리에게 주어진 ‘비밀의 말씀’이다. “나는 내 비밀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내 비밀을 밝힙니다. 여러분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지 못하도록 하십시오.”(도마Log62) 비밀스러운 예수의 말씀을 전할 때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나? 아무에게나 함부로 전하지 말아야 한다. 엄격하게 그 비밀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을 엄선하여 전해야 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택하려고 하는데, 천 명 중에서 한 명, 만 명 중에서 두 명입니다. 그들이 모두 홀로 설 것입니다.”(도마Log23) 이 구절은 깨달음을 얻고 구원에 이르는 길이 얼마나 어렵고 소수만이 들어갈 수 있는 길인가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영적 깨달음에 기초한 도마복음 교회의 구원관은 예수말씀의 비밀을 깨달은 소수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난행도이다.

로마교회의 구원신학

기독교 최초의 에큐메니컬 공의회는 기원후 48년 예루살렘교회의 사도 모임이다. 예루살렘교회에서 베드로와 야고보를 위시한 사도들이 참석했고, 안디옥교회에서는 바울과 바나바가 참석했다.
예루살렘교회는 이방인의 입도(入道) 조건으로 할례와 율법 준수를 요구했다. 먼저 유대인이 되라고 했다. 하지만 바울은 소아시아 선교 여행을 하면서 할례와 율법 준수를 요구하는 것이 이방인 선교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했다. 공의회에서 바울은 이방인 선교에 한해서 유대교 관습을 면제해줄 것을 건의했고, 오랜 논란 끝에 베드로의 중재로 바울의 요구가 관철되었다. 할례와 율법 준수 의무를 면제해주는 대신, 이방인 교회들은 예루살렘교회의 가난한 신도들을 기억하고 선교헌금을 하기로 약속했다.(갈 2:10, 행 15장 참조)
이방인들을 향하여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은 무엇이었나? “주 예수를 믿으시오.(pisteuson epi ton kyrion ‘Iysoun)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행 16:31) “우리는 ‘율법의 일 없이’(ouk eks ergon nomou)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dia pisteos Iysou Xristou)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갈 2:16)
예수를 믿는 것이다. 다만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쉽고 간편하게 구원을 받는 방법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믿기만 하면 단박에 구원을 받는다는 바울의 이행도 복음은 구원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던 이방 세계의 하층 민중에게는 가뭄에 단비였을 것이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가 많은 사람도, 권력자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지혜가 많은 사람들 대신에 어리석은 사람들, 강자 대신에 사회의 소수자들, 부자들 대신에 가난한 자들을 선택하셔서 그들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고전 1:26-28)

바울이 세운 교회에는 주로 문맹자, 노예, 빈민, 비천한 가문 출신 등 사회의 소수자들이 몰려들었다. 이는 그가 전파한 이행도 복음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믿기만 하면 단박에 구원받게 된다는 바울의 이행도 구원신학은 하루 벌어 먹고살기에 바쁜 사람들의 마음을 사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바울의 이행도 복음 전통을 계승한 로마교회의 평신도들 역시 노예, 가난한 사람, 문맹자 등 하층 민중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에게 이행도 구원신학은 기독교가 로마 사회의 저변으로 확장되는 동기를 제공했을 것이다.

제3의 구원신학

바울이 설파한 구원관의 근본은 이신칭의(以信稱義, justification)이다. “사람이 의롭다 함을 얻는 길이 율법적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합니다.”(롬 3:28) 루터가 교회개혁의 깃발로 내세운 ‘솔라 피데’(sola fide)는 이행도 구원관의 결정판이다. 예전에 지하철 안에서 흔히 만났던 피켓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은 한국교회 이행도 구원신학의 타락한 모습이다.
반면에 큐와 도마교회는 앞에서 살펴본 대로 난행도 구원관을 제시했다. 자력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인내와 어려움이 뒤따라야 한다. ‘주여! 삼창’을 외치는 데서가 아니라, 삶의 한복판에서 하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좁고 어려운 길을 가는 데서 구원의 서광이 비친다. 예수를 믿기만 하는 다수(majority)가 아니라, 예수말씀의 뜻을 깨닫고 실천하는 ‘행동하는 양심’이 구원을 받게 된다.
유학과 서학을 아울러 공부한 정약용은 자기 수양과 자기 책임의 입장에서 기독교의 타력 신앙을 비판했다. 내 죄를 용서하기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대속 신앙은 자력갱생을 원칙으로 하는 인간의 자조주의(自助主義) 정신에 반한다고 본 것이다. 다산의 자조주의 신앙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데서 구원을 받게 된다는 큐의 자력 신앙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믿음과 앎은 새의 두 날개와 같다. 두 날개가 있어야 새는 높이 날 수 있다. 아는 만큼 믿게 되고, 믿는 만큼 알게 된다. 알지 못하면 믿을 수 없고, 믿지 못하면 알 수 없다. 믿음과 앎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예수는 살신성인의 삶을 살았다. 하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인간의 길임을 보여주었다.(마 26:39/눅 22:42, 참조 마 14:36) 하늘 아버지의 뜻은 황금률로 모아진다. “남이 해주기를 원하는 대로 남에게 해주는 것이다.”(마 7:12Q) 황금률이야말로 자신과 타인 모두를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길이다. 인과법이요, 우주의 로고스이다.
『논어』에 공자와 제자 사이의 대화가 나온다. “너는 내가 많은 것을 배워 박학다식한 줄 아느냐?” “네, 그렇습니다.” “아니다. 나는 한 가지 길만 탐구했다.” 공자가 평생 탐구했던 ‘일이관지’(一以貫之)는 무엇인가? ‘서’(恕)이다. 유학에서 인(仁), 곧 사람다움 다음으로 중요한 개념은 ‘서’일 것이다. 『논어』 23장 <위령공편>에서 자공이 스승에게 묻는다.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할 한 마디 말이 무엇인가요?” 공자가 ‘서’라고 답한다. 이어서 이를 ‘기소불욕 물시어인’(其所不欲 勿施於人)으로 풀었다. “내가 당해서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라는 뜻이다. ‘서’는 공자가 평생 일이관지한 말이다. 이는 큐 예수 황금률의 유학적 판본(板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이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맹자는 서의 근거로, 인간 본연의 마음인 측은지심을 말했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할 때, 누구나 깜짝 놀라 달려가서 구하는 것은 인간의 천부적인 심성의 발로라고 했다. 성리학에서는 이를 ‘충서’(忠恕)라는 개념 틀에서 해석했다. 충(忠)이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이라면, 마음의 중심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 서(恕)라고 보았다. 남과 마음을 같이하는 것이다.(如心)
공자는 황금률을 일이관지했다. 그리고 그는 그 외의 지식과 학문은 황금률의 주석(註釋)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같은 맥락에서 큐 예수도 황금률을 율법과 예언서의 대헌장이라고 선언했다.(마 7:12Q) 공자와 예수는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인류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로 황금률을 꼽았다. 사랑과 정의는 황금률의 양면이다. 공자가 황금률의 소극적인 면(정의)을 강조하고 있다면, 큐 예수는 적극적인 면(사랑)을 강조했다.
초기 기독교 세계에는 세 가지 구원신학이 있었다. 예수를 믿음으로 단박에 의롭게 된다는 바울의 구원신학, 큐의 구원신학, 영지주의의 구원신학이 그것이다.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해석한다.
한국에 복음이 처음 들어왔을 때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 여자들, 문맹자들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에게 전파되었다.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자본 중심의 경제성장정책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그 와중에 경제성장의 주역이면서 동시에 그 혜택에서 소외된 민중에게 예수만 믿으면 물질의 복과 구원이 보장된다는 이행도 구원신학은 한국교회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교회의 외형은 엄청나게 성장했으나, 그에 비해 교회의 내면이라 할 수 있는 구원신학은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단순한 논리가 전부이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교회가 처한 위기의 본질이다.
시대가 바뀌면, 구원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이제 한국교회는 이행도 구원신학을 벗어날 때가 되었다. ‘솔라 피데’의 구원신학을 넘어서 깨달음과 실천을 강조하는 큐와 도마교회의 난행도 구원신학으로 시선을 돌려야 할 때이다. 믿음, 이해, 실천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제3의 구원신학’의 창출이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한국교회에 주어진 과제이다.

김명수 | 성균관대학교와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였으며, 독일 함부르크대학에서 예수말씀복음 큐(Q)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Dr. theol.) 지은 책으로는 『큐복음서의 민중신학』, 『역사적 예수의 생애』 등이 있다. 경성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충주에 있는 노인요양시설 ‘예함의집’에서 치매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2020년 12월호(통권 7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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