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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성서와설교 > [예수에게 길을 묻다 04]
성서와설교 (2020년 10월호)

 

  복음서의 시원, 큐(Q)
  

본문

 

요한이 잡힌 뒤, 예수께서는 갈릴리로 가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닥쳐왔다. 회개하라, 그리고 복음을 믿어라.”(막 1:14-15, 이하 필자 사역)
After John had been arrested, Jesus came to Galilee proclaiming the gospel of God. “This is the time of fulfillment. The kingdom of God is at hand. Repent, and believe in the gospel.”(Mk 1:14-15)


묵시적 종말 사상
예수의 메타노이아(회개)-바실레이아(하나님 나라) 운동은 당대 시대적 사조의 하나인 묵시적 종말사상과 연관성이 있다. 예수 시대를 전후하여, 유대 사회에서는 수많은 묵시 종말적 메시아 운동이 출몰하였다.
기원전 13세기 모세의 출애굽 사건을 통해 가나안에 정착하게 된 초기 이스라엘 야훼 지파연맹(Amphictyony)은 사사 시대를 거쳐 다윗-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주권국가를 형성하게 된다.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은 남북 왕조로 나뉘어 분단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게 망하고, 기원전 587년 남유다는 바빌론에게 망한다. 당시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예루살렘 거민 8만 명은 전쟁 포로로 끌려간다. 그들은 티그리스강 유역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며 노예생활을 하게 된다.(시 137편) 이로써 주권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은 역사에서 막을 내리게 된다.
기원전 538년 바빌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Cyrus)는 칙령을 내려 히브리 노예들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한다. 기원전 516년 귀환한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성전이 재건되고 제2성전 시대가 열린다. 이때부터 성인 유대인들에게는 십일조와 성전세 납부가 의무화된다.
기원전 167년 셀류커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는 예루살렘을 침공한다. 그는 유다인들을 대량 학살하고, 성전을 훼파하였다. 성전 기물들을 노략질하고, 그 자리에 제우스 신상을 건립하여 숭배토록 하였다. 이에 다니엘서를 비롯하여 수많은 묵시 문헌이 등장하여, 당시 사회역사적 핍박 상황을 묵시적 언어로 증언하였다. 그의 야훼종교 말살정책에 항거하여 마카베오 일가(一家)를 중심으로 유대 독립투쟁이 일어났고, 그 결과 하스몬 왕조가 수립되었다.
기원전 63년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의 침공으로 하스몬 왕조는 멸망하고, 유다는 로마의 속주가 된다. 유다의 민중은 이러한 역사적 부침을 경험하며 과중한 세금과 채무에 시달려야 했다. 로마, 헤롯 왕조, 성전 지배계층의 3중 착취 구조 속에서 그들은 가난, 채무, 질병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예수가 활동하던 1세기 갈릴리 민중의 삶도 이러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러한 암울한 역사의 때에 예언자들이 등장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위로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시는 종말의 때(카이로스)라는 묵시 종말적 시대의식이 널리 확산되었다. 사탄이 지배하는 고통의 시대는 물러가고, 하나님의 정의가 통치하는 새 시대가 동터오고 있다는 사회적 에토스(분위기)가 유대 민중 사이에서 무르익어 갔다.
예수보다 앞서 온 세례자 요한은 임박한 하나님 통치 앞에서 회개의 삶을 촉구했다. 특히 민중을 억압하는 기득권 계층을 향하여 통렬한 비판을 가했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길로 사회의 소수자들과 연대의 삶을 살 것을 촉구했다.(눅 3:7-9, 참조 마 12:33, 23:33) 당시 갈릴리 통치자였던 헤롯 안티파스는 요한을 민중 선동죄로 몰아 처형하였다.(요세푸스) 요한의 체포 소식을 듣고 예수는 갈릴리로 향한다.

요한이 잡힌 뒤, 예수께서는 갈릴리로 가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때(kairos)가 찼고, 하나님 나라(basileia)가 닥쳐왔다. 회개하(metanoeite), 그리고 복음(euangleion)을 믿어라.’(막 1:14-15)

예수의 첫 설교이다.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하신 설교의 총 요약이기도 하다. 이 말씀에서 카이로스, 하나님의 통치, 회개, 복음 등은 묵시 종말적 에토스를 담고 있는 개념들이다. 예수를 비롯하여 동시대의 갈릴리 민중은 그들이 마지막 때에 살고 있다는 묵시 종말적 시대정신 속에서 살아갔음을 알 수 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예수를 묵시적 종말운동가로 보았다.(『예수의 생애 연구사』) 예수는 우주적 대 파국과 세상의 종말이 살아생전에 실제로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살았지만, 그의 기대와는 달리 종말은 오지 않고 역사의 수레바퀴는 계속 돌아갔다. 예수는 실패한 묵시적 종말 운동가였다는 것이 슈바이처의 연구 결론이다.

예수의 후천개벽 운동
예수 시대의 묵시적 종말 사상은 동양의 후천개벽 사상과 통한다. 개벽(開闢)은 개천벽지(開天闢地)의 준말이다. ‘하늘을 열고 땅을 쪼갠다.’는 의미에서 묵시 종말적 시대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성서의 창세기에 해당하는 중국의 반고(盤古) 신화에서는 조물주 반고가 혼돈 속에서 천지를 처음 연 것을 개벽이라 칭한다. 개벽은 역사와 인류 문명의 질적인 변곡점을 말한다.
개벽에는 선천개벽과 후천개벽이 있다. 전자는 ‘무에서의 창조’(creatio ex nihilo) 사건이다. 하나님의 천지창조가 여기에 해당한다. 선천 시대의 종말과 함께 후천개벽 시대가 열린다. 놀라움과 산고(産苦) 중에 어둠이 지배하는 낡은 세상은 물러가고, 빛이 지배하는 새 세상이 시작된다. 수운, 김일부, 강증산, 소태산 등 조선 후기 봉건사회의 붕괴 과정에서 활동한 민중운동가들은 묵시 종말적 개벽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후천개벽 사상에는 고난과 억압의 현실 속에서의 민중의 자기 각성과 이를 돌파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모두가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받고,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홍익인간 이념과 하늘의 이치로 세상을 다스리는 이화세계(理化世界) 구현에 대한 꿈이 담겨 있는 것이다.
동학의 창시자 수운은 ‘다시 개벽’을 외쳤다. 19세기 조선 후기의 사회상은 어떠했는가? 삼정(三政)의 문란(전정, 군정, 환곡)으로 대표되는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 봉건 질서의 해체, 서세동점(西勢東漸)으로 인해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처한 시대였다. 이를 극복하려는 조선 민중의 열망이 동학운동으로 나타났다. 동학은 보국안민(輔國安民), 포덕천하(布德天下), 광제창생(廣濟蒼生)을 기치로 내세웠다.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아 민중을 편안하게 하고, 하늘 뜻을 지상에 펼치며, 고통 속에 있는 백성을 널리 구제하겠다는 의미이다.
동학의 기본사상은 시천주(侍天主)이다. 하나님을 모신 존재로서의 인간의 자기이해이다. 시천주, 곧 하나님을 모신 존재라는 자의식을 갖고, 생활 속에서 사람답게 시천주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은 내면에 현존하고 있는 신성(神性)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하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사는 것이다. 시천주의 생활화, 생활의 시천주화가 동학운동의 지향점이었다.
요한이 잡힌 후 갈릴리에 등장한 예수의 첫 설교는 무엇이었는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닥쳐왔다.” 사탄이 통치하는 ‘옛’ 에온(시대)은 종말이 임박했고, 하나님이 통치하는 ‘새’ 에온이 동터오고 있음을 알리는 희망의 소식을 선포했다. 후천개벽의 복음을 외친 것이다. 하나님을 모신 존재로서의 인간, 곧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지닌 인간 모두가 존엄성을 인정받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휴머니즘 세상을 여는 것이다.

역사비평학
초기 기독교 세계에서 복음은 편의상 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예수의 복음’과 ‘예수에 관한 복음’이 그것이다. 전자가 예수사건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다면, 후자는 케리그마에 근거하고 있다. 케리그마는 예수의 의미체(意味體)이다. 예수 죽음과 부활 신앙에 대한 제자들의 의미 부여이다. 공관복음서가 예수사건을 주 내용으로 담고 있다면, 요한복음과 서신들은 케리그마를 주 내용으로 담고 있다.
복음이 경계(boundary)를 넘어 시리아, 소아시아, 유럽으로 전파되기 시작하면서, 케리그마를 신봉하는 교회 집단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케리그마 전통을 계승한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예수 의미체’의 완성인 삼위일체 교리와 사도신조가 완성되었다.
바울에서 시작되어 현금(現今)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2,000년의 역사는 케리그마 복음의 변천사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불트만은 역사의 예수사건을 제치고 케리그마를 그리스도교 신학의 대상이요 근거로 설정하였다. 신학의 본질을 케리그마 사건에서 찾았다. 그에게 예수사건은 질문을 던져서는 안 되는 불가지(不可知)한 신학의 전제(premise)요 속성(attribute)에 불과할 뿐이었다.
근대 계몽주의 운동은 교회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선포된 신적 계시나 도그마로부터 인간 이성을 해방시킨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작되었다. 그들은 그동안 자명하게 받아들인 도그마에 대해 일단 의심을 품고 진리를 새로운 눈으로 탐구하였다.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라는 옛말이 있다. 큰 의심을 품고 사물을 대할수록 큰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는 말인데, 도그마로 덧입혀진 예수를 맹신하지 않고 큰 물음을 갖고 역사의 예수를 참구(參究)할 때, 큰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라이마루스(H. S. Reimarus, 1694-1768)는 큰 의심의 눈으로 성서를 보기 시작한 역사적 예수 탐구의 첫 인물이었다. 그는 복음서의 예수에서 도그마의 옷을 벗겨내고, 맨사람 예수를 찾고자 했다. 비판적 이성과 합리성의 눈으로 성서를 읽기 시작한 것이다. 레싱이 편집한 그의 유고집의 글 “예수와 제자들의 목표”(The Aims of Jesus and His Disciples)에서 라이마루스는 복음서의 예수에 대해 세 가지 물음을 던진다. 첫째, 예수는 묵시적 종말론자였는가? 둘째, 예수는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생각했는가? 셋째, 계시, 기적, 부활 등 초자연적 이야기들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것인가, 아니면 제자들의 집단주관적인 산물인가?

공관복음서 문제
성서는 계시의 책이다. 하지만 ‘역사로서의 계시’(revelation as history)를 수록하고 있다. 역사는 하나님의 계시가 펼쳐지는 현장이며,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뜻과 의지를 드러내신다. 이러한 판넨베르크(W. Pannenberg)의 역사관에 힘입어, 역사비평학은 성서가 하늘에서 떨어진 계시의 책이 아니라, 신도들의 신앙 강화를 목적으로 기록된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역사적 신앙의 산물임을 밝혀냈다.
역사비평적 성서해석에는 여러 방법론이 등장하였다. 서로 다른 사본들을 비교・분석하여 원문을 찾아가는 본문비평(text criticism), 문학적 특징들을 비교・연구하는 문학비평(literature criticism), 성서의 자료들을 비교・분석하는 자료비평(sources criticism), 성서 본문의 전승 경로를 추적하는 전승사비평(tradition criticism), 성서의 문학 스타일을 분석하는 양식비평(form criticism), 복음서 기록자의 편집 의도를 추적하는 편집비평(redaction criticism), 당시 사회적 맥락에서 본문을 해석하는 사회학적 비평(sociological criticism) 등이 역사비평학의 범주에 속한다.
초기 기독교는 케리그마 복음 하나만으로 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1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복음이 아시아와 유럽 지역으로 전파되어 여러 문화(영지주의, 헬레니즘, 스토아주의, 신비주의)와 접촉하면서, 케리그마 복음의 한계성이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중 하나가 역사성의 결여이다. 역사성이 결여된 케리그마 복음은 공허하다. 육으로 오신 예수를 부정할 때, 예수는 다만 영적이고 신화적인 존재로서 의미를 지닐 뿐이다. 이것은 영지주의의 가현설(假現說)과 관련이 있다.
영지주의 가현설에 대응하면서, 요한 공동체는 역사적 실존 인물인 예수를 ‘육(sarx)으로 오신 로고스(ho logos)’로 선포한 화육사상(incarnation)을 복음의 근본으로 삼았다.(요 1:14) 로고스와 육, 계시와 역사, 하나님과 인간, 신적 그리스도와 역사의 예수, 본질과 현상을 ‘따로’가 아닌 불이관계(不二關係)로 본 것이다.
초기 기독교 세계에서 생산된 복음서는 십수 권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정경(canon)에는 역사적 예수의 언행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는 네 개의 복음서가 있다. 이들은 역사적 예수 탐구를 위한 사료(史料)로서의 가치가 있다. 예수 이야기를 전개하는 순서에서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은 중복되거나 일치되는 부분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이를 공관(共觀)복음이라 부른다. 공관복음과 신앙의 결이 다른 요한복음은 ‘제4복음’이라 부른다.
공관복음서 문제 중에 마태우선설과 마가우선설이 있다. 마태우선설은 4세기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주장하여 근세까지 지속되었다. 마태우선설에 따르면 마태복음이 제일 먼저 기록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누가가 개별적으로 입수한 다른 자료들을 배합하여 누가복음을 작성했다고 한다. 마가복음은 맨 나중에 기록되었는데, 마가는 두 복음서 중에서 중요한 내용을 선별하고 발췌하여 복음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마가복음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요약본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중요한 예수말씀들(예를 들면 산상설교나 주기도문 등)이 마가복음에서 누락되었다는 점에서 마태우선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마태복음은 마가복음 자료의 93%를, 그리고 누가복음은 85% 이상을 참고하고 있다. 두 복음서는 마가가 전하고 있는 ‘예수 이야기의 기본 틀’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마가는 복음서 첫머리에서 복음서를 기록하게 된 동기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막 1:1)이라고 밝힌다. 바울 케리그마의 핵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역사적 내용인 맨사람 예수의 삶의 발자취를 밝히겠다는 선언이다. 그것은 갈릴리에서 민중과 동고동락하며 하나님 나라 복음 운동을 펼치다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기득권층에 의해서 수난당하고 십자가에 처형되었다는 스토리이다. 마태와 누가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의 길’이라는 예수 이야기 틀을 그대로 받아들여 복음서를 기록하고 있다.
이상을 종합해보면, 공관복음서에서 기초가 되고 있는 자료는 마가복음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마가우선설에 역사적 신빙성이 실린다 하겠다.

두 자료설
두 자료설은 마가복음 우선설을 전제한다. 마가복음의 예수 이야기를 기본 틀로 받아들여 마태와 누가가 그들의 복음서를 기록하였다면, 마가복음에서 찾아볼 수 없으면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중복해서 등장하는 260여 구절(pericope), 4,500여 개의 단어로 구성되어 있는 예수 말씀(sayings of Jesus) 자료의 출처는 과연 무엇일까?
이 예수말씀 자료를 ‘큐’(Q)라고 명명한다. 요하네스 바이스(J. Weiss)가 최초로 사용한 개념이다. 그는 독일어의 예수말씀 자료(Spruch-Quelle, Logien-Quelle)에서 ‘큐’라는 명칭을 따왔다. 큐는 성서학계에서 ‘큐 자료’(Q sources), ‘큐 문서’(Q documents) 또는 ‘큐 복음’(Q gospel) 등으로 다양하게 쓰이기도 한다.
마태와 누가는 서로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복음서를 기록해가는 과정에서 책상머리에 예수사건에 관한 두 개의 서로 다른 자료를 공유하고 있었다. 예수 이야기(Jesus narratives) 자료인 마가복음과 예수말씀 자료인 큐 복음이 그것이다. 그들은 마가와 큐 자료를 대본으로 삼고, 그들이 개별적으로 수집한 예수 이야기 자료들(S-Mt, S-Lk)을 중간중간에 삽입하면서 그들의 복음서를 작성했다. 마가와 큐 복음이 ‘작은 복음서들’(small gospels)이라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큰 복음서들’(big gospels)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큐 복음은 원본이 없다. 마가복음과는 달리 분실된 복음서(the lost gospel)이다. 어떻게 알 수 있나? 마태와 누가에만 공유되고 있는 예수말씀들을 비교・분석하여 큐를 재구성하게 된다.

큐(Q)
예수는 아람어(aramaic)를 사용했지만, 글을 남기지 않았다. 임박한 종말 사상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마 16:23) 예수 사후(死後), 시간이 흐르자 평소에 그를 믿고 따르던 제자 그룹(Jesus follower)은 예수의 언행을 기록하고 정리하여 후대에 전해주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예수 따르미들은 몇 차례에 걸쳐 함께 모인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예수의 말씀들을 회상해내고, 그 진정성을 확인한 다음 기록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거쳤던 것 같다. 아람어로 구전되던 예수말씀들, 틈틈이 기억을 되살려 파피루스에 기록해놓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예수 언행에 관한 아람어 파편(破片) 등 이러한 전승 자료들이 일정 시간이 흐른 후 그레코-로마 세계의 통속어인 코이네 그리스어(koine Greeks)로 번역되어 문서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네다섯 차례의 결집(結集)1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 사후 얼마 안 되어 예수말씀의 구전(oral tradition) 자료와 아람어 자료를 모으기 위한 첫 결집이 있었던 것 같고, 35년경의 두 번째 결집에서 코이네 그리스어로 번역된 예수의 지혜말씀 위주의 Q1 문서가 작성되었을 것이다. 40년경 세 번째 결집에서는 묵시 종말적 심판을 주제로 하는 예수말씀 위주로 Q2 문서가 작성되었을 것이다. 45년경 세 번째 결집을 통해 그리스도론적인 예수말씀들로 구성된 Q3 문서가 수집되었을 것이다. 50년경으로 추정되는 최종 결집을 통해서 큐 복음 전체가 완성되었을 것이다. 큐의 편집 단계설(Q1-Q4) 배후에는 육성에 가까운 진정성 있는 예수말씀들을 수집하고 보존하여 변형이나 손실을 막고 이를 후대에 전해주고자 하는 예수 따르미들의 선교적 동기가 깔려 있었을 것이다.
큐는 예수 따르미들의 여러 차례에 걸친 결집에 의해 문서화 과정을 거쳤음을 알 수 있다. 묵시 종말적 시대의식(카이로스), 하나님 나라, 인자의 도래와 심판, 사회의 지배계층에 대한 비판, 사회 소수자들에 대한 배려에서 볼 수 있듯이, 큐는 묵시적 개벽사상으로 일이관지(一以貫之)하고 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국제큐학회’(International Q Project, IQP)가 설립되었고, 20여 년에 걸쳐 여러 학자들이 공동작업을 한 결과 큐 본문 복원 작업이 완성되었다. 현재 IQP에서 출판된 Documenta Q 시리즈와 The Critical Edition of Q에 복원된 큐 본문이 실려 있다.
큐를 통해서 두 가지 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첫째, 큐는 케리그마나 도그마의 옷을 걸치지 않은 맨사람 예수를 만날 수 있도록 하였다. 역사적 예수로 나아가는 통로를 얻게 된 셈이다. 둘째, 초기 기독교 세계에는 다양한 신앙의 결을 지닌 공동체들이 공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로마교회가 내세우는 사도정통 케리그마 신앙이 그중 하나였음을 알게 되었다. 큐 교회 공동체 구성원들은 예수를 믿는 데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주체적으로 큐의 말씀을 따라 사는 데서 예수와의 동질성을 찾았던 것이다.
다음 회부터는 큐가 전하는 복음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고, 오늘날 기독교에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살펴볼 것이다.


1 ‘결집’(samgiti)은 붓다 입멸 후 스승의 가르침을 바르게 보존하기 위해 출가 제자들이 모여 이를 기억해내고 정리한 집회를 말한다. 붓다 말씀을 후세에 바르게 전승시키려는 의도로 결집을 행한 것이다.


김명수 | 성균관대학교와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였으며, 독일 함부르크대학에서 예수말씀복음 큐(Q)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Dr. theol.) 지은 책으로는 『큐복음서의 민중신학』, 『역사적 예수의 생애』 등이 있다. 경성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충주에 있는 노인요양시설 ‘예함의집’에서 치매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2020년 10월호(통권 7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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