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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성서와설교 > [조선과 대한민국 사이에 낀 성서 단어 08]
성서와설교 (2020년 10월호)

 

  ‘자복’(自服)한 자가 받는 ‘사죄’(赦罪), 그리고 ‘사유’(赦宥)
  

본문

 

현대인이 잘 모르는 한자어의 개념을 설명하여 복음의 이해와 설교 사역을 돕겠다고 마음먹은 후 필자는 한글 성서가 아니라 국한문 성서를 읽고 있다. 개정한글판 국한문 성서를 중심으로 읽다가 요즘 사람들이 잘 모르겠다 싶은 한자어가 나오면 개정개정판 국한문 성서와 비교해 보는데, 그러면 틀림없이 그 단어는 현대인이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다른 단어로 바뀌어 있다. 그렇게 바뀐 단어의 규모가 상당하여, 개정 작업을 하신 분들이 얼마나 수고를 많이 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또 그렇게 많은 단어를 한글로 혹은 좀 더 쉬운 한자로 바꾸면서도 아직 남아 있는 한자어들은 현대인들에게 조금은 생소해도 개념상 중요한 함의가 있기 때문에 그런 단어들이야말로 잘 이해하고 잘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차원에서 이번 글에서 설명할 단어는 ‘자복’과 ‘사죄’라는 단어이다. ‘사유’ 또한 같은 맥락에서 쓰는 단어이므로 함께 다루어보자.

자복(自服)해야 공식적 죄인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 하였다. 사람이면 누구나 죽은 후에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은, 인간이 꼭 죽는다는 것만큼이나 확실하다. 이렇게 판결의 자리에 서는 것과 맥락을 같이하여 성서에는 법률용어가 자주 사용된다. 자복이나 사죄, 사유는 모두 그런 법률용어이다. 조선시대 법전에도 그렇고 현대의 법전에도 자복 같은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
‘자복’(自服)에서 ‘복’(服)은 의복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이나, 서술어로 ‘복종하다, 항복하다, 약을 먹다’ 등으로도 쓰인다. 어원학에서는 이 글자에 대해, ‘달 월’(月)이 부수이지만 사실 ‘배 주’(舟)가 부수이던 것이 후대에 잘못 옮겨져 나온 글자라고 설명한다. 왼쪽은 배, 오른쪽은 무릎 꿇은 죄인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전체적으로 죄인을 배에 태워 호송하는 모습을 나타냄으로써 복종시키다 혹은 항복하다는 뜻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자복’은 범죄 사실을 스스로 고백하고 복종하는 것을 말한다. 요즘 사람들은 ‘자복’보다는 ‘자백’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자백(自白)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자복이라 했다. 자백은 개항기 문서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근대에 새로 만들어진 번역어로 보인다. 조선시대 문서를 번역한 글에 ‘자백’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현대인들이 ‘자복’이라는 용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쓴 것이지, 원문에 그렇게 쓰여 있는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 어떤 혐의를 받는 사람이 관에 잡혀오면 반드시 자복을 받아야 그의 죄를 정하여 구속 등을 할 수 있었다. 자복을 받지 않고 형을 집행하면 불법이었다.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기 위한 법적 제도였던 것이다. 예를 들어 정조 초기에 나온 법전인 『대전통편』 형전(刑典) 살옥(殺獄)조에, 미치고 실성한 자가 살인한 경우[顚狂失性殺人]에 대한 규정이 있다. 더불어 귀머거리, 벙어리가 살인을 한 경우까지 같은 규정으로 적용하라고 나오는데, 이들은 “추문(推問)할 방법이 없어 자복(自服)을 받지 않고 곧바로 먼저 처단하는 것은 상법(常法)에 어긋나므로” 사형을 내리지 않고 감하여 유배를 보내도록 하라고 되어 있다. 누구나 자복을 하고 나서야 형을 확정하도록 하고, 근본적으로 자복하지 못할 사람이면 형을 낮추기까지 할 만큼 자복의 원리를 지키려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입과 말로 자신의 행위를 말하도록 하는 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보호 장치요 의무사항이기도 한 것이다.
혐의가 있는 사람을 잡아오면 추문[推問, ‘문초’(問招)나 ‘심문’(審問)이라는 용어와 같다.]을 하여 자복을 받는다. 그렇게 자복한 것을 기록하고, 기록 끝에 자복한 사람이 수기(手記), 즉 요즘말로 자필 사인을 한다. 대체로 ‘너무 오래 속이고 자백하지 않은 것이 미안하다.’는 뜻으로 ‘늦을 지’, ‘늦을 만’ 자를 써서 ‘지만’(遲晩)이라고 쓰기 때문에, 죄인이 자복할 때 쓰는 문서 자체를 ‘지만’(遲晩)이라고 하기도 한다. 수령이 죄인에게서 자복하는 공초(供招, 요즘 말로 기록 문서)를 받으면 이 지만공초를 관찰사에게 올린다. 관찰사는 이것을 확인하여 확실하면 그대로 처리하고, ‘~했을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써서 명확하지 않으면 ‘늦게 자복해서 미안하다.’는 글자에 걸맞게 확실하게 다시 쓰라고 돌려보내기까지 한다. 그렇게 하여 완성되면 이 기록은 공식 문서가 되어 법적 근거가 된다. 말이 좀 우습지만, 그렇게 하고 나서야 ‘공식적’으로 ‘죄인’이 된다.

자복의 대상
성서에도 ‘자복하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자복’은 구원의 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단어이다. 사람은 성령의 감화로 죄를 인식한다. 그때 그 사람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용서를 구한다. 그러면 주께서는 그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해주신다. 그렇게 구원받은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평생 주와 동행하게 된다.
‘자복’(自服)과 ‘회개’(悔改)를 같은 단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그렇지는 않다. 국어사전에서만 보더라도 회개는 “살아온 삶이 잘못되었음을 자각하여 죄인임을 반성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뜻을 세워 새로운 생활로 들어가는 일”을 말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구분하여 말하자면, 이 설명 중 앞부분 ‘살아온 삶이 잘못되었음을 자각하여 죄인임을 반성하는 것’이 자복이고, 뒷부분 ‘벗어나려고 뜻을 세워 새로운 삶으로 가는 것’이 회개이다. ‘고칠 개’(改) 자의 의미를 강조하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자복을 한 이후에 이를 철저히 고치는 회개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 이가 없도록, 자복과 회개는 같은 단어가 아니라 단계별 과정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겠다.
현대 법에도 ‘자복’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조선시대 법에 사용된 ‘자복’과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오늘날의 법에서는 ‘친고죄를 범한 자가 피해자에게 자발적으로 자기의 범죄 사실을 고백하는 것’을 자복이라 하고, 수사기관에서 범죄 사실을 진술하는 것을 ‘자백’이라고 한다. 친고죄는 모욕죄나 사자명예훼손죄 등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범죄이니, 현대 법률에서 ‘자복’은 특정 부분에서만 사용되는 단어라고 하겠다.
조선시대와 오늘날의 법에서 자복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달라졌지만, 오늘날의 한정적인 용례를 기억하면서 성서의 ‘자복’을 살펴보면 중요한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성서에는 ‘자복’이라는 단어가 여러 곳에 나오는데, 그 자복의 대상은 모두 하나님이다. 오늘날의 법에서는 ‘피해자’에게 범죄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 자복일진대, 하나님께 자복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는 의미이다. 모든 죄는 ‘하나님’께 짓는 것이라는 인식이 성서에 들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늘 인식하고 산다면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 때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 약하고 힘없고 병들고 갇힌 자라도 그에게 함부로 하는 죄가 모두 하나님께 짓는 죄라면 어떻게 그들을 대해야 할지 새롭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신자들의 생활 윤리는 일반인과 다른 것이다.

레 26:40 그들이 나를 거스른 잘못으로 자기의 죄악과 그들의 조상의 죄악을 자복하고
수 7:19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청하노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네가 행한 일을 내게 알게 하라
행 19: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죄인에게 내리는 은혜: 사(赦), 사죄(赦罪), 사유(赦宥)
죄인과 관련하여 복음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 ‘사하심’이다. ‘사죄’라는 단어로 설명해보자. 사죄라 하면 현대인은 사과하는 일을 떠올릴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사과하다 사’(謝) 자를 사용하여 ‘사죄’(謝罪)라 한다. 하지만 성서에서 말하는 사죄는 ‘사죄’(赦罪)라고 쓰는 단어이다. 전자가 잘못에 대해 상대편에게 용서를 비는 것이라면, 후자는 죄를 용서하여 놓아주는 것을 말한다.
‘사’(赦)는 ‘용서하다, 풀어주다, 탕감하다’는 뜻의 글자이다. 이 글자는 다른 글자와 결합하여 다양하게 사용된다. 예를 들어 죄(罪)와 합쳐서 ‘사죄’라 쓰고, 명령이라는 뜻의 ‘령’(令)과 결합하여 ‘사령’이라 쓰고, ‘너그럽다 혹은 용서하다’라는 뜻의 ‘유’(宥)와 결합하여 ‘사유’(赦宥)라고 쓴다. 현대에는 ‘벗어나다 혹은 면제하다’라는 뜻의 ‘면’(免)과 합쳐서 ‘사면’(赦免)이라고 써서, 대통령의 특별사면 등의 용례로 사용하고 있다.
‘사면’(赦免)은 자복과 같이 근대 개항기 이후에 새로 만들어진 번역어이며, 조선시대에는 ‘사유’(赦宥)라고 했다. 성서에도 ‘사하심’, ‘사죄’라는 표현과 함께 ‘사유’라는 표현이 나온다. 사죄는 ‘죄를 사하다’라는 술목 구조의 단어이고, 사유는 ‘용서하다’라는 뜻을 가진 두 글자를 나란히 반복해서 쓴 병렬 구조의 단어로, 두 단어의 의미는 같다.

대하 6:30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며 사유하시되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의 모든 행위대로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아심이니이다
미 7:18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사유’(赦宥)는 조선시대에 널리 사용된 통치제도로, 사람의 맺힌 마음을 위로함으로써 천재지변을 그치게 하거나 경사 때에 축하하기 위한 목적으로 널리 사용했다. 조선 초기부터 관례적으로 이 제도를 사용했다가 영조 이후부터 법제화되었다. 정조 초기 법전인 『대전통편』부터 이 제도가 ‘사령’(赦令)이라는 항목으로 자리 잡고 이에 대한 세부 법령이 규정되었다. 사유의 명령, 즉 ‘사령’은 오직 최고 통치권자인 임금 고유의 권한이며, 일단 사령이 내려지면 그 죄인은 형벌의 경중이나 복역 기간에 상관없이, 다른 단서조항 없이, 그날로 즉시 사함을 받는다. 그 세부 규정이 법전에 명시된 것이다. 조선시대에 시행된 이 사유제도의 존재와 운용 사례를 알고서 성서의 사하심, 사죄, 사유 등의 단어와 원리를 생각해보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최고 통치권자만 할 수 있는 사(赦)
사(赦)의 결과는 죄로부터, 죄로 인한 형벌로부터의 ‘해방’, ‘놓여짐’이다. 과거 천주교에서는 ‘사죄’를 ‘해죄’(解罪)라고 썼는데, ‘해’는 풀려난다는 뜻이니 죄로부터 ‘놓였다’, 죄가 인간을 ‘얽매는 것’이라는 의미를 강조한 표현이었다.
최고 권위자만 사죄를 선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편 130편 4절의 말씀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에서 ‘사유하심’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סָ לַה (살라흐)로, 이 단어는 출애굽기 34장 9절, 민수기 14장 19절 등 구약에서만 46회에 사용되었는데, 모두 오직 하나님과 연관하여 사용되었을 뿐, 사람들 간에 서로 용서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사죄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오는 것이다.
성서에서 ‘사’(赦)의 용례를 많이 볼 수 있는데, 특히 누가 사할 수 있는가에 집중할 때 각 구절은 큰 감동을 일으킨다. 여호와께서(레 6:7, 삼하 12:13, 시 32:5, 사 6:7–주의 천사), 그리고 예수께서(마 11:25, 눅 5:17-24, 히 10:18) 사하셨다. 예수는 참 재판장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께서는 일부러 죄를 사하는 권세를 보여주기도 하셨다.

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22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눅 5:20-24)

누가 사유를 받을 수 있는가, 또 누가 그럴 수 없는가
앞서 설명한 대로 사유의 명령이 내려지면, 그 죄인은 형벌의 경중이나 복역 기간에 상관 없이, 아무런 단서 없이, 그날로 즉시 사함을 받는다. 10년을 복역한 사람도, 막 유배형을 받아 유배지로 가고 있는 사람도 사유의 명령이 내려지면 즉시 다 똑같이 사유된다.
자복을 해야 공식적으로 죄인이 된다는 설명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형벌의 무겁고 가벼운 정도에 상관 없이 사유의 명령이 내려지면 그 즉시 모두가 사함을 받는다는 설명도 떠올려보자. 그리고 성서의 내용을 연결해 생각하면 여기에 은혜가 있다. 자복하며 죄인으로서 주 앞에 나아가 회개하여 용서받는 성서의 원리를 떠올리자. 자신의 입으로, 자기의 표현으로 자신이 지은 죄를 말하는 자가 용서와 구원의 큰 은혜를 입는다.

잠 28: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시 32: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사유의 명령이 내려져도 예외적으로 사유를 받지 못하는 자가 있다. 십악(十惡)에 해당되는 죄를 지었다면, 사령이 내려져도 사함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여기서 ‘십악’이란 중국 명나라의 기본 법전인 『대명률』에서 정한 열 가지 큰 죄를 말하는데, 조선에서도 『대명률』의 십악 부분을 그대로 적용시켰다. 모반(謀反), 모대역(謨大逆), 모반(謀叛), 악역(惡逆), 부도(不道), 대불경(大不敬), 불효(不孝), 불목(不睦), 불의(不義), 내란(內亂) 등이 십악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일을 꾀한 모반, 백성이 소속 관장을 죽이거나 군졸이 자기 상관을 죽인 경우 같은 불의, 근친상간한 경우인 내란 등의 죄는 십악에 해당되는 큰 죄라 하여 사유를 받지 못하였다.
성서에서도 사하심을 받지 못하는 죄에 대한 언급이 있다. 예수는 자신과 자신의 사역에 대해 ‘더러운 귀신 바알세불에 들렸다.’고 하며 의도적으로 자신을 대적한 서기관들을 두고 일명 ‘성령 훼방죄’에 대해 말씀하셨다. 주님을 받아들여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 자체가 된 기독교인이 성령을 의도적으로 모독하고 거부하는 일은 있을 수 없지만, 변심하거나 넘어져 세상을 향해 가지 않도록 주의할 때는 이런 말씀도 기억하면 좋겠다.

막 3: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자복과 사죄, 사유의 원리는 기독교인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모든 죄는 하나님 앞에 지은 것이니 세상에 살면서 누구를 대하든지, 어떤 일을 할 때든지 하나님을 떠올릴 것이고, 그분 앞에 늘 자복하며 죄인으로서 은혜를 구할 것이다. 자복해야 죄인이요, 죄인이 되어야 사유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사함의 원리를 기억하며 늘 깨어 있는 기독교인이 될 것도 늘 생각할 일이다.


서신혜 | 고전문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후 신학(M.Div.)을 공부하였다. 저서로 『한국 전통의 돈의 문학사, 나눔의 문화사』 등이 있다. 한양대학교 인문대학 부교수이다.

 
 
 

2020년 10월호(통권 7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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