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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성서와설교 > [조선과 대한민국 사이에 낀 성서 단어 05]
성서와설교 (2020년 7월호)

 

  희생(犧牲)되셨다가 아니라 희생‘이’ 되셨다
  

본문

 

‘희생’은 조선시대에 많이 쓰인 단어이고, 현재도 널리 쓰이고 있는 단어이다. 하지만 이 단어 역시 본래의 의미와 용례가 오늘날 온전히 전해지지 못한 채 일부만 전달된 단어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성서가 처음 번역될 당시에는 이 단어의 의미가 온전히 살아 있었다. 그래서 성서에도 그것의 의미가 명확하고 생생하게 담겼다.
요즘에는 희생을 ‘권리의 포기’ 혹은 ‘억압이나 핍박을 받음’ 정도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것은 ‘희생’이라는 단어에서 비유적으로 파생된 이차적 의미일 뿐이다. 또 ‘희생’과 ‘제물’을 동일시하며 후자로 전자를 대치하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하지만 제물이 아닌 희생은 특정한 의미가 강조된 단어이다. 성서에서 ‘희생’이라는 단어는, ‘보혈’, ‘속죄’와 연결되어 그리스도의 사역을 드러내는 핵심 단어이다. 그러므로 섣불리 없애거나 대치하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희생’은 ‘단색’의 가축
‘희생’은 한마디로 천지종묘(天地宗廟) 제사 때 제물로 바치는 살아 있는 짐승을 일컫는 말이다.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 『상서주소』(尙書注疏)를 인용해보겠다.

저절로 와서 취하는 것을 ‘양’(攘)이라 하고, 색깔이 순색인 것을 ‘희’(犧)라 하고, 몸체가 완전한 것을 ‘전’(牷)이라 하고, 소・양・돼지를 ‘생’(牲)이라 하고, 그릇에 담긴 것을 ‘용’(用)이라 한다. - 『尙書注疏』 권10, 「商書微子」 第十七의 [傳]: “自來而取曰攘, 色純曰犧, 體完曰牷, 牛羊豕曰牲, 器實曰用.”

먼저 ‘희’(犧)는 뜻을 나타내는 ‘소’[牛]와 음을 나타내는 ‘희’(羲)가 결합된 형성문자인데, 위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뜻 부분인 ‘소’는 털색을 규정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생’(牲)은 뜻 부분인 ‘소’[牛]와 음 부분인 ‘생’(生)으로 구성되는데, 위 대목에서 명확히 보이듯 소를 포함한 가축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결국 ‘희생’이란 제사 때 제물로 바치는 순전한 ‘단색’의 ‘가축’이라는 뜻이다.
가축은 누가 어떻게 키워서 바치는지, 또 흠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제사에서는 당연히 ‘가축’이 사용된다. 이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좀 더 눈여겨볼 것은 ‘단색’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동양권에서는 전통적으로 다섯 방위의 색인 오방색(五方色, 황청백주흑)을 ‘정색’(正色)이라 하고, 여기에 무엇이 섞인 색을 ‘간색’(間色)이라 한다. 같은 붉은 계통의 색이라도 주색(朱色)은 정색이고, 자색(紫色)은 주색에 다른 것을 섞은 간색이다. 동양권에서는 정색은 귀한 것으로 여기고, 간색은 천한 것으로 여겼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여색에 빠져 주어진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경우, 정실부인을 ‘정색’으로, 첩실을 ‘간색’으로 비유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순색은 귀한 것, 비슷한 계열이라도 무엇이 섞인 것은 천한 것으로 여겼다.
희생에서는 얼룩진 가축을 절대 쓰지 않는다. 공자가 ‘중궁’(仲弓)이라는 사람에 대해 평하면서, “얼룩소의 새끼가 색깔이 붉고 또 뿔이 바르게 났다면 사람들이 비록 제사에 희생으로 쓰지 않으려 하더라도 산천의 신(神)이 버려두겠느냐?”(『論語』 「雍也」: 子謂仲弓, 曰 “犁牛之子, 騂且角, 雖欲勿用, 山川其舍諸.”)라고 말한 대목이 있다. 개인의 능력이 확실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결국 세상에 쓰이게 된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희생에 쓰이는 짐승을 예로 들어 그 내용을 설명했다. ‘얼룩지지 않고’ 단색으로 ‘붉으니’ 희생으로 쓴다는 것이다. 이처럼 ‘순전한’ 가축만 희생이 될 수 있다.

제사의 한 도구가 아니라 본질인 ‘희생’
‘희생’은 제사에 쓰이는 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제사를 지낼 때 하는 한 행위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희생은 제사의 본질적 요소이고 주요한 의절이며 희생으로 결국 그 제사가 완결된다.
‘제’(祭)의 어원을 따져보면 제는 곧 ‘희생’과 같은 말로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자전(字典)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제(祭)는 사(祀)이다. 시와 인간의 손과 고기로 시행한다.”(祭, 祀也, 從示從又從肉)라고 하였다. 여기서 ‘시’(示)는 신격을 나타내고, ‘우’(又)는 사람의 손을, ‘육’(肉)은 고깃덩어리를 말한다. 즉 ‘제’는 인간이 고기를 손에 들고 신께 바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제사에는 신과 사람과 희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이 제자(制字) 원리 자체에 들어 있다. 그래서 동양권에서는 예부터 ‘제사’라 하면 ‘희생을 쓰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국왕이 친히 제사를 주관하는 경우, 길일을 정하고 목욕재계를 마친 왕은 직접 나가서 희생이 온전한지 살펴야 했다. 또 희생을 위해 단을 설치하는 장소나 방향도 명확히 규정되었으며, 언제 누가 어떤 동선을 따라 희생을 끌고 나가고 어떻게 희생을 살피고 칼을 들어 희생을 잡을지, 또 잡은 후 털과 피를 어떻게 처리하며, 어떻게 고기를 올리는지 그 순서와 방식까지가 모두 명확히 규정되었다. 다시 말해 희생은 단지 제사의 도구나 한 행위가 아니라 제사 자체의 본질이요 완성이다.

제사의 ‘격’(格)은 희생의 종류로 결정
제사의 격은 제사를 올리는 대상과 제사를 주관하는 제주(祭主)가 누구냐에 따라 나뉘었다. 각 제사는 그 제사의 중요도나 규모에 따라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 등으로 나누었다. 격이 높은 제사일수록 격이 높은 희생을 썼다. 다른 말로 희생의 종류와 수를 보면 그 제사의 격을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 국가 제사에 대해 규정해놓은 『국조오례의』를 보면, 왕이 직접 주관하는 제사와 대리인을 보내 드리는 제사 등에 희생을 어떻게 달리 쓰는지 등 모든 것이 적혀 있다. “사직단(社稷壇)에 친제(親祭)할 적에는 소 한 마리, 양 네 마리, 돼지 네 마리를 쓰고, 대리 행사[攝事]할 적에는 소 한 마리, 양 한 마리, 돼지 네 마리를 쓰며…”라고 하여, 격에 따른 희생의 종류와 규모가 상세히 규정되어 있다. 그러니 소, 양, 닭, 개, 돼지 등 여섯 종류의 가축 중 어느 가축이 희생이 되느냐를 보면 그 제사의 격을 알 수 있었다. 이 중에서 가장 격이 높은 것은 소였다. 그래서 희생이라는 단어의 뜻 부분을 ‘소’[牛]로 표시하기도 했을 것이다.

희생은 ‘피’를 지닌 ‘날’것
희생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죽은 고기’가 아니라 ‘피를 지닌 날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희생 제사를 다른 말로 ‘혈식’(血食)이라고도 쓴다. 희생에서 혈, 즉 피가 중요한 것은 그 생기로 신에게 접속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주자어류』에 “제사에 혈육(血肉)을 쓰는 것은 대개 그 생기(生氣)에 의지하기 위함이다.”라는 대목도 있고, 『사기(史記)』 「귀협전」(龜筴傳)에, “봄에 점칠 때에 계란 위에서 괘를 펼치는 것은 곧 생기를 거기에 접속하려는 것이다.”라는 설명이 있다. 「귀협전」에는, 옛날에 제사를 지낼 때는 신위나 초상화를 놓는 것이 아니라 아예 어린아이, 즉 시동(尸童)을 세웠는데, 그것 역시 산 사람의 생기로 귀신과 접속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생명의 근원인 피의 기운이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피를 지닌 날것’인 가축을 희생으로 쓴 것이다. 그러니 제사 때 ‘육고기’를 썼다고 말할 것이 아니다. ‘피를 지닌 살아 있는 짐승’을 쓴다고 말해야 한다.
종합해보면, 희생은 제사 때 제물로 바치는 살아 있는 가축으로, 얼룩지지 않은 ‘한 가지 색’의 순전한 가축이다. 제사라는 단어의 어원이 곧 희생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희생은 제사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제사는 희생을 준비하여 바치는 과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희생은 제사의 한 도구라기보다 제사의 본질이자 제사를 완성하는 것이다. 제사를 ‘혈식’(血食)이라고 부를 만큼 희생에서는 죽은 ‘고기’가 아니라 ‘피’를 지닌 살아 있는 ‘생명’이라는 사실이 핵심이다. 피의 생기가 신과 인간을 연결해준다고 믿었던 것이다.

희생의 원리로 보는 성서
‘희생’이라는 단어에 얽힌 한자 문화권에서의 의미와 희생의 원리를 이해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해하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그래서 유교적 제사 원리에 불과한 것같이 오해되는 ‘희생’이라는 단어가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하다.
그전에 잠깐 구별할 것이 있다. 한자 문화권은 물론이고 고대 근동 지방에서도 희생을 쓰는 제사를 드린 이유는 제사 올리는 이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간절한 정성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성서의 원리는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속죄의 원리’이기 때문에 희생의 ‘피’가 중요하다. 레위기 17장 11절의 말씀에서 명확히 드러나듯 성서에서 희생 제사는 희생의 피로 이루는 ‘속죄’의 의미였다.

레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희생을 쓰는 본질적인 이유는 전혀 다르지만, 희생의 조건이나 쓰는 방식 등에서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희생 제사의 원리와 성서의 원리가 같은 면이 많다. 그래서 희생의 원리를 잘 이해하는 사람일수록 피를 통한 속죄와 화목의 원리도 이해하기 쉽다.
기독교 복음의 위대함은 그 속죄와 화목의 사역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직접 하셨다는 사실에 있다. 그 대속의 은혜가 참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다. 예수께서 누구이시며, 그분께서 하신 대속 사역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에 ‘희생’만큼 유용한 단어가 없다.
앞에서, 희생은 색이 섞이지 않은 단색의 ‘순전한’ 짐승이어야 하고, ‘피’를 지닌 살아 있는 희생이 드려짐으로써 제사가 ‘완성’된다고 하였다. 성서 곳곳에서 메시아를 가리켜 ‘흠 없고 순전한’ 어린 양으로 설명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희생’이라는 단어 자체가 얼룩이 아닌 ‘순색’이라는 뜻을 지녔다.
희생으로 쓰이는 가축의 종류가 무엇이냐를 보면 제사의 격을 알 수 있다고도 하였다. 귀한 희생이 사용될수록 격이 높은 제사이다.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께서 직접 희생이 되셨다. 예수께서 희생이 되신 제사보다 더 격이 높은 제사가 어디 있는가. 그러니 예수께서 희생이 되어 드려진 제사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의 모든 죄까지 대속하시는 완전한 제사, 최고 격의 제사라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진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다음 성서 구절이 명확히 이해된다.

벧전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제물과 희생의 구분
신약성서에서는 예수가 한 일을 ‘희생’으로 설명하고 있다. 예수께서 희생이 되시어 죄인인 인간이 그 피로 죗값을 치렀고, 그래서 의인이라 불리게 된 인간은 완전하신 하나님과 화목하며 교제를 누리게 된 것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제사를 혈식이라 부를 만큼, 동양 문화권에서 사람들은 희생에서 피의 기운이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매개라고 여겼다. 이 두 원리는 충분히 서로 연결해서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예수의 보혈이 인간과 하나님을 연결하여 화목하게 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로마서 3장 25절의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는 대목이 명확히 이해될 수 있다.
이렇게 ‘피’의 원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제물’이라는 단어로 ‘희생’을 대치해버릴 수가 없다. 희생은 ‘피를 지닌’ 생명체라는 의미를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레위기에 보면 여러 제사의 방식과 절차 등을 설명하면서 제물로 소나 염소, 양, 비둘기 등의 살아 있는 동물을 사용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 고운 가루도 제물로 쓴다. 그러니 제물에 희생이 포함될 수는 있지만, ‘피’가 상징하는 의미를 명확히 아는 이들에게 제물과 희생은 같은 단어일 수가 없다. 예컨대 출애굽기 18장 12절, “번제물과 희생제물들을 하나님께 가져오매”라는 언급처럼, 성서 여러 곳에서 ‘희생’을 다른 제물과 나란히 언급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앞의 것으로 뒤의 것을 대치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레위기 등에서 각 제사에 따라 ‘피’를 어디에 어떻게 하라는 언급이 분명히 나누어지고 있는 것 역시 ‘희생’이 ‘피’의 의미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희생되신 것이 아니라 희생‘이’ 되셨다
희생이라는 단어가 요즈음에는 ‘권리의 포기’ 혹은 ‘핍박이나 억압이나 죽임을 당함’ 정도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네가 좀 희생하면 다른 여러 사람이 편안할 수 있다.”라거나, “그가 누군가에게 희생당했다.”라고 말한다. 이런 뜻은 제물로 사용되는 살아 있는 가축이라는 뜻의 ‘희생’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비유적 의미이다. 그 가축이 희생이 됨으로써 ‘제사를 드리는 이들’이 간절한 ‘소망을 이룰’ 수 있게 되고, 그 가축이 제사 집행자들에 의해 결국 피를 흘리며 ‘죽임을 당함’으로써 제사가 완성되는 원리에서 파생된 이차적 의미이다.
하지만 성서에서 말하는 ‘희생’은 그런 의미로 쓰이고 있지 않은데, 요즘 성도들이 그런 이차적 의미로 희생의 뜻을 파악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 경우 문제가 생긴다. 희생의 뜻을 ‘권리를 포기’했다거나 ‘죽임을 당했다’로 파악하고 접근하면, 예수를 ‘죽인 사람들’의 행위가 강조되고, 동시에 ‘죽은’ 예수가 중심이 되어버린다. 예수는 꾹 참고 힘쓰기를 포기하셔서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신 것이 아니다. 죄인을 대속하여 하나님과 화목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희생이 되어 완전한 속죄의 제사를 올리신 것이다. 흠 없이 ‘순전한’ 예수가 사랑으로 자발적으로 ‘대신’ 피 흘리는 ‘희생’이 되어주심으로 죄인이 ‘속죄’되어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화목’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성서의 주된 흐름이다. 성서 곳곳에서 이런 의미를 명백히 말해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희생되셨다’, ‘희생하셨다’라고 쓰면 잘못 쓰는 것이다. 이차적 의미로 쓴 것이요, 그러면 성서의 의미가 곡해된다. 희생은 제물로 사용되는 살아 있는 가축이기에, 명사이다. 명사(名詞)이니 조사(助詞)를 써서 희생‘이’ 되셨다라고 써야 본래 의미를 살린 표현이다. 그런데 ‘희생되셨다’라고 쓰면 앞서 말한 이차적 의미가 강조되어 ‘당했다’는 의미가 부각되니 복음의 핵심을 놓치게 된다. 그런 면에서 고린도전서 5장 7절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라는 대목 등은 오해의 여지가 있으므로 다시 살폈으면 좋겠다.


서신혜 | 고전문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후 신학(M.Div.)을 공부하였다. 저서로 『한국 전통의 돈의 문학사, 나눔의 문화사』 등이 있다. 한양대학교 인문대학 부교수이다.

 
 
 

2020년 7월호(통권 7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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