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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성서와설교 > [성서와 설교] 조선과 대한민국 사이에 낀 성서 단어 04
성서와설교 (2020년 6월호)

 

  전권 위임 대리인 ‘사’(使): ‘천사’에서 ‘사역’까지
  

본문

 

어떤 일을 할 때, 혹은 어떤 일을 맡을 때에는 적절한 지위를 먼저 갖추는 게 순서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지위명을 보면 그 사람이 하는 일과 결정권의 범위 등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지위명은 함부로 쓰지 않는다. 시장이 유고 시 그 역할을 대신하는 사람은 시장 ‘대행’이라 하며, 마찬가지로 의장의 역할을 대신하는 사람에게도 의장이라 하지 않고 ‘임시’ 의장이라 한다. 그냥 기분 좋으라고 ‘대행’, ‘임시’라는 단어를 빼지 않는다. 권위의 종류, 범위, 의미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하는 사람 역시 그 직위명을 명확히 인식하여야 실수가 없다. 그래야 월권도 하지 않고, 직무유기도 하지 않고, 누구의 뜻을 살펴야 하는지도 잊지 않을 수 있다.
명분을 중요시한 조선시대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위계에 따라 모든 것을 명확히 구분하였다. 단지 직분명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그가 거처하는 건물명이나 죽은 후 묘소 명칭까지 모두 명확히 구분했다. 예컨대 왕의 묘에만 ‘능’(陵)이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나머지 왕족은 ‘원’(園)이라 칭하는 등 명확히 구분했다. 이런 원칙을 지켜 벼슬아치의 직무에 따른 명칭도 명확히 구분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맥락에서 ‘사’(使)를 살필 것이다. 성서를 처음 번역하던 시기에도 조선시대 ‘사’의 용례가 그대로 살아 엄격히 적용되었다. 즉 ‘사’라는 단어의 엄격한 용례에 따라 특정 의미를 담아 ‘사’라는 단어를 선택하여 성서를 번역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단어가 ‘천사’, ‘사도’ 등이었다. ‘사’라는 글자에 담긴 의미를 명확히 이해한 후 이 글자가 포함된 단어들을 다시 생각하면 묵상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보냄 받은 자, 사(使)
‘사’(使)는 ‘사람’을 뜻하는 ‘인’(人)과 ‘관리’를 뜻하는 ‘리’(吏)가 합하여 만들어진 글자이다. 글자가 이루어진 원리만으로도 윗사람[人]이 아랫 사람[吏]에게 일을 시킨다는 의미를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오늘날 이 글자의 의미를 자전에서는 ‘하여금’, ‘시키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윗사람으로부터 어떤 일을 하라고 권위를 위임받은 관리이기에 일을 시킬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아 ‘하여금’, ‘시키다’라는 의미로 새기게 된 것이다.
한자의 뜻으로만 보면 ‘령’(令), ‘교’(敎), ‘견’(遣)이라는 글자도 ‘사’와 마찬가지로 ‘시키다’라는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이 글자들은 각기 강조하는 바가 달라 구별하여 사용되었다. ‘령’은 ‘법령’과 같은 맥락이 있고, ‘교’는 왕의 ‘가르침’이라는 맥락이 강하며, 견은 ‘보내다’는 의미가 강하다. ‘사’의 경우 ‘역’(役), 즉 일을 시킨다는 의미를 강하게 지닌 글자이다. 19세기 어휘 용례 사전인 『조고자결』(操觚字訣) 권2에 이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온다.
‘사’는 본래 정부의 관료를 뜻하는 단어였다. 행정 단위인 목(牧), 도호부(都護府) 등 지방관청의 으뜸 벼슬을 사(使)라 했다. 중앙에서 지방에 파견하는 지방관에게 ‘사’를 붙여 부사, 목사, 도호부사 등으로 이름을 붙였고, 외국으로 보내는 사람에게 ‘사’를 붙여 사신이라 했다. 한마디로 ‘사’는 임금이 자신의 권위를 부여하여 어떤 일을 하라고 보낸 관료라는 의미이다. 그 의미를 하나하나 살펴 이 용어의 함의를 깊이 생각해보자.

1) ‘사’의 함의 1–보낸 자와 같은 권위를 갖는다
특정 관료에게 ‘사’를 붙일 때의 핵심 의미는 ‘권위’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보내는 사람이 자신의 권위를, 보냄을 받은 사람에게 부여하면, 보냄을 받은 사람의 권위는 보내는 사람의 권위와 동일한 것으로 인정된다. 그래서 보내는 사람이 직접 가서 결정한 것이 아니라도 보냄을 받은 사람이 결정하면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 ‘사’는 보낸 자와 같은 권위를 지닌다.
‘사’로 보냄을 받은 자의 권위는 자신을 보낸 자의 권위로 인정되기 때문에 그 권위를 제대로 사용해야 하며 그 권위에 걸맞은 품위를 유지해야 했다. 같은 원리로, 보냄을 받은 사람에게 한 행동과 대우는 보낸 사람에게 한 것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보냄을 받은 사람에게 무례하게 한 행동은 엄히 다스려졌다.
예를 들어보자. 조선시대 각 지방을 다스리는 지방관들, 요즘 사람이 통칭 ‘사또’라고 알고 있는 지방 관원들은 왕의 명령을 받들어 자기 지방을 지나는 사신들을 ‘사객’(使客)이라 불렀다. 국내 출장 중인 관원뿐 아니라 외국의 사신도 사객으로 불렀다. 지방관들은 그 사객을 왕을 대하듯 잘 받들어야 했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를 물었다. 영조 4년(1728년)에 왕의 명으로 호남 지방에서 치러진 시험을 감독하러 갔다가 돌아오던 윤상병을 그 지방의 불량배가 막아서며 욕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불량배는 그 자리에서 장(杖)으로 엄히 다스려졌다. 며칠 후에 그 불량배의 동생이 와서 자기 형이 그 형벌 때문에 죽었다고 관청에서 행패를 부렸다. 물론 그 역시 벌을 받았다.(『승정원일기』 영조 4년
3월 4일)
다음 날인 3월 5일 실록에는 이 사건에 관한 사헌부의 건의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공산현감 이경원(李慶遠)은 그 땅을 지키는 관원이 되어 이민(吏民)을 엄히 단속하지 못해 난민이 사객에게 함부로 욕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방백(方伯) 역시 잘 단속하지 못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결국 공산현감 이경원을 직에서 내쫓고, 상급 관리자인 충청도 감사에게도 죄를 물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평(持平) 윤상백(尹尙白)은 호남에 장시(掌試)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산(公山)에 도착해 난민(亂民)에게 혹독한 욕설을 들어 나라의 체통을 잃었으니, 체차(遞差)하기를 청합니다.” 윤상백이 당한 일을 두고 ‘나라가 체통을 잃은 일’이라 하고 있다. 왕정 국가에서 나라는 곧 왕이다. 사헌부의 의견대로 윤상백은 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한마디로 ‘사’는 자신을 보낸 자의 권위와 같은 권위를 지니기에 그의 품위는 보낸 자의 품위로 여겨진다. 그래서 ‘사’를 모독한 자는 나라, 즉 임금을 모독한 것으로 여겨져 당연히 치죄를 하였고, 동시에 모욕을 당한 ‘사’ 역시 품위 있게 행동하지 못하여 왕의 체통을 훼손시켰다고 하여 죄를 물었다. 사객이 그런 대우를 받게 한 것은 왕이 그런 대우를 받게 한 것과 같으므로 해당 지역 사또뿐 아니라 감사에게도 죄를 물은 것이다.

2) ‘사’의 함의 2–보낸 자가 시킨 일을 한다
‘사’는 윗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앞에서 설명했다. 즉 ‘사’는 왕으로부터 ‘특정한 임무’를 부여받아 ‘그 일’을 하러 가는 것이다. 어떤 일을 부여받았느냐에 따라 ‘사’ 앞에 수식어를 붙여 명칭을 조금씩 달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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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암행어사(暗行御史)가 있다. 암행어사는 당하(堂下) 관원 중 왕의 측근 한 명을 지방 군현에 비밀리에 파견해 복색을 위장하여 몰래 다니며 활동하게 한 왕의 특명 사신이다. ‘암행’이라는 표현에서 잘 드러나듯, 다른 어사와 달리 임명과 활동이 비밀리에 행해진다는 것이 특징이다. 감진어사(監賑御使)는 큰 흉년이 들거나 역병이 도는 등 나라에 재난이 발생했을 때, 그 실태를 조사하고 지방관들이 백성을 먹이고 구하는 진휼(賑恤) 활동을 잘하도록 감독하기 위해 왕이 파견한 사람이다. 감진어사는 구제 활동을 감찰하는 역할만 한다는 특징이 있으며, 공개적으로 활동하였다. 이 외에도 특정한 사실을 조사하는 임무로 파견된 사핵어사(査覈御使)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왕이 특별한 임무를 주고 ‘사’를 파견하면, ‘사’는 부여받은 그 임무만 수행한다.
‘사’에는 ‘빨리하다’, ‘빨리 조정으로 가다’라는 의미도 있다. 중국 자전 중 대표적인 책인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에서는, 『춘추좌씨전』 노나라 양왕(襄王) 30년 2월 계미일의 “관리가 조정으로 달려가 물으니”라는 뜻의 “吏走問諸朝”(리주문저조)가 본래는 “使走問諸朝”(사주문저조)였다고 언급하였다. 그리고 ‘리’(吏) 대신 ‘사’(使)라 쓰면서 ‘사’는 ‘속질’(速疾), 즉 ‘빨리’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사’는 왕의 특별 명령을 받은 사람이기에 맡겨진 일을 속히 하고, 또 그 내용을 명령권자에게 속히 보고하는 사람이다.

3) ‘사’의 함의 3–권위자가 신뢰한다는 표시이다
‘사’는 보내는 자의 권위로 활동하기 때문에, 아무나 보내지 않고 왕의 측근 곧 왕이 신뢰하는 사람을 보낸다. 그러므로 ‘어사’가 된다는 것은 왕의 신임, 왕의 고임을 받는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사’가 되는 것은 명예로운 것이다.
‘사’는 전권을 가지고 결정한다. 물어보고 기다려서 지시대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하는 일은 왕이 직접 하는 것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왕은 자신의 마음속 생각을 어사에게 명확히 알려주고 그를 보낸다. 다 말하지 못한 사항이 왕의 뜻대로 결정되기 위해서는 평소 왕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사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는 보낸 이의 의도와 생각을 항상 잘 파악하고 기억하면서 움직이려 한다. 그것이 자신을 신뢰해서 보낸 이에 대한 충성이라 여겼다.
‘사’가 왕의 신뢰를 받아 전권을 행사하는 대표적인 예가 암행어사의 ‘봉고파직’이다. 우리가 잘 아는 <춘향전>에서, 남원 부사로 부임한 변학도의 폭정을 파악하고 예상치 못한 때에 출두한 암행어사는 ‘봉고파직’(封庫罷職)을 단행한다. 여기에서 ‘봉고’(封庫)는 창고를 봉하여 잠그는 일이고, ‘파직’(罷職)은 직책에서 내쫓는다는 뜻이다. 해당 수령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어사가 해당 관가의 창고를 잠그면 모든 출납이 정지되고, 수령의 업무도 즉시 정지된다. 어사가 전결로 즉시 시행한다. ‘봉고파직’은 왕의 국정 방향을 잘 알고 왕의 권위를 부여받은 어사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어떤 일을 하라고 보냄 받은 ‘천사’, ‘사도’
성서에서 ‘사’가 사용된 대표적인 예로 ‘천사’와 ‘사도’를 들 수 있다. 먼저 ‘천사’에 관하여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보통 ‘천사’라고 하면 ‘흰 날개’가 달린 형상을 떠올린다. 하지만 천사를 ‘하늘을 날아다니는 존재’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특정한 일을 지시받아 그 일을 하는 존재로 인식해야 옳다. 구약이나 신약 곳곳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특정한 일’을 하게 하셨다.
창세기 19장에서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멸망하는 소돔 땅에서 롯을 이끌어 구하라 하셨고, 사무엘하 24장에서는 인구조사에 대한 벌로 천사를 보내 사흘간의 전염병으로 다윗과 그의 백성을 치게 하셨으며, 열왕기상 19장에서는 천사를 보내 로뎀나무 아래에서 엘리야를 먹이셨다. 누가복음 1장에서는 천사를 보내 제사장 사가랴에게 요한이라는 아들이 태어날 것을 알리셨고, 사도행전 10장에서는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 ‘베드로를 청하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天]이 보내서 ‘특정한 일’을 하게 한 것[使]이기에 ‘천사’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이다. 천사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정확히 그 일을 수행하고 갔다.
‘사도’라는 단어도 생각해보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도’(使徒)로 세워 여러 고을에 ‘보냈다.’ 그리고 보냄 받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라’는 임무를 주었다. 보낼 때 ‘주님의 권위와 권능’을 그들에게 입혀서 보냈다.

눅 6:12–13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마 10:1, 7–8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천사나 사도를 보낸다는 것은 단순히 심부름꾼을 보낸다는 뜻이 아니라 절대자가 직접 움직이는 것과 같다. 그 말씀대로 보냄을 받은 사도들은 각 지역에서 주님이 직접 가서 하는 것과 같은 권능을 행하였다. 보냄 받은 사도는 보내는 분의 권위를 부여받았기 때문에 사도에게 하는 것은 곧 보내신 주님께 하는 것과 똑같이 여겨졌다.

마 10:14-15, 40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오늘의 용어–‘특사’와 ‘사역’
‘사’는 조선시대의 용어가 오늘날까지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 예이다. ‘특사’라는 단어만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대통령의 복심(腹心), 즉 속마음을 아는 사람이 특사로 파견되어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하고, 주어진 일을 하고 온다. 이번 정부에서도 대통령 비서실장, 국무총리 등이 특사로 외국에 파견되었다. 아무 공직자나 보내는 것이 아니라, 보내는 사람의 뜻을 잘 아는 사람을 엄선해서 보낸다. 그래서 누가 특사로 임명되느냐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 종교적 맥락에서도 ‘사’가 많이 사용된다. 우선 ‘목사’(牧師)라는 단어는 한자어의 구성이 다르다. ‘특정한 일’을 위하여 한시적으로 ‘파견’한다는 의미와는 거리가 있으며, ‘가르침’을 담당한다는 특징 때문에 ‘사’(使)로 쓰지 않고 ‘사’(師)라고 쓴다.
교회와 신자들이 ‘사’(使)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례는 ‘사역’(使役)이다. “어디서 사역하고 있습니까?”, “어떤 사역을 맡고 있습니까?”, “사역지를 찾고 있습니다.”, “사역자입니다.” 등 교회와 관련된 일들을 보통 ‘사역’이라고 부른다.
앞서 설명했듯, ‘사’는 ‘특정한 일’을 하라고 ‘보냄 받은 사람’이다. 그러니 ‘사역을 하고 있다’라고 말하려면 정말 ‘하나님이 시키신 일’을 하고 있는지, 정말 ‘하나님이 보내신 곳’이 맞는지 여부를 잘 살펴야 한다. 교회와 관련한 일을 한다고 다 ‘사역’이 아니다. 또한 각 교회당이나 선교회가 다 ‘사역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여 간 곳, 자기 뜻대로 결정하여 하고 있는 일은 사역지도, 사역도 아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아닌 회사나 공장, 학교에도 사역자를 보내 특정 일을 하라고 명하실 수 있다.
정말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는 주위에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믿을 만한 사람, 보내는 이의 뜻을 잘 아는 사람을 ‘지정하여’ 보낸다고 하였다. 그러니 ‘사’로 보냄을 받는 것은 큰 명예이자 영광이다. 자신이 정말 사역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것보다 더 큰 영광이 없다. 누가 뭐라고 하든 ‘하나님이 지정하여 보낸 사람’이라는 생각 위에 섰을 때 늘 평안하고 담대할 수 있다.
‘보냄 받은’ 이이기 때문에 보내신 분의 마음을 항상 잘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사’가 아니다. 보냄 받은 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보내신 분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그래서 늘 보내신 분과의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하고 그분의 특정 명령을 되새겨야 한다.
‘사’는 보낸 이의 ‘권위’를 부여받으며, 그래서 보낸 이의 ‘품위’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고 하였다. 고린도후서 2장 15절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는 말을 이와 연결 지어 떠올릴 수도 있다.
‘사’는 ‘속질’(速疾), 즉 ‘빨리’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하였다. 권위자에게 특정한 명령을 지정받았으니 꾸물거릴 수도 없고, 다른 데 신경쓸 겨를도 없다. 빨리 달려가 그 일을 행하고 보고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자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고린도전서 4장 2절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라는 구절을 떠올리기를 권한다.


서신혜 | 고전문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후 신학(M.Div.)을 공부하였다. 저서로 『한국 전통의 돈의 문학사, 나눔의 문화사』 등이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 인문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0년 6월호(통권 7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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