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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성서와설교 > [성서와 설교] 한국교회사 속 예화를 찾아
성서와설교 (2019년 6월호)

 

  주일을 거룩히 지키라
  

본문

 

복 있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다. 구약시대 안식일은 하나님이 6일간 세상을 창조하시고 안식하신 날로 창조의 기념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시 말해 일곱째 날 곧 토요일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활동하던 신약시대의 안식일 역시 토요일이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안식 후 첫날’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은총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은총의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하고 기념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기독교인들은 토요일보다 일요일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이 같은 기독교 전통에 따라, 한국교회 기독교인들도 일요일을 안식일로 여기고 ‘주일’(주의 날, Lord’s day)로 호칭하며 이날을 구별하고 성별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성수주일(聖守主日)이라는 한국교회 전통을 만들어냈다. 그렇지만 현재 한국교회는 성수주일의 전통이 점차 무너져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한국교회 기독교인들이 성수주일을 전통적으로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하였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세속적인 일을 멈추는 날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표징으로 정해주신 것이 바로 안식일이다.(겔 20:10-12) 그 단적인 증거로 광야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내려주실 때에 엿새째 되는 날에만 평소의 갑절을 거두게 하시어 다음 날 먹을 양식을 미리 준비하게 하셨고, 일곱째 날에는 아예 일을 할 수 없도록 만나를 내리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서 안식일을 성별하신 것이다.(출 16장)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인 안식일에 관한 규정 역시 본질적으로 쉼이었다. 쉼은 신분이나 성별에 관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었으며, 심지어 짐승까지도 포함되었다.(출 20:10) 이러한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더럽히는 일은 사형에 처할 만큼 중대한 범죄였다.(출 31:14)
동일한 맥락에서 초기 한국교회에서도 교인들에게 세속적인 일을 금하는 전통을 세워나갔다. 구체적으로 주일에는 물건 매매 금지, 가무(家務)나 업무 금지, 사사로운 만남 금지, 여행 금지, 신문이나 잡지 탐독 금지 등을 명시하기도 하였다.1 이처럼 세속적인 어떤 일도 금지하는 한국교회 성수주일 전통이 국가와 가장 큰 충돌을 빚은 시기는 남북 분단이 고착화되어가던 해방공간이었다.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북한에서는 학생들에게 주일 등교를 강요하였으며, 이를 거부하는 학생들은 자퇴하기도 하고 퇴학을 당하기도 하였다. 더 나아가 북한 정권이 북조선 도/시/군 인민위원 선거를 주일인 1946년 11월 3일에 실시할 때, 장로교 5도 연합노회를 주축으로 한 북한교회는 주일 선거에 반대하여 정권과 큰 마찰을 빚기도 하였다. 남한에서도 주일인 1948년 5월 9일에 국회의원 총선거를 실시하려고 하자 한국교회는 거세게 저항하였으며, 그 결과 선거일은 1948년 5월 10일로 변경되었다.
이처럼 세속적인 일을 금하는 성수주일 전통이 강하게 자리잡은 한국교회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까지도 쉬도록 하여 철저한 쉼을 실천한 교인이 있었다. 평남 강서군 누차면 삼리에 있는 고창교회 김봉한 장로는 사람의 휴식을 중히 여겨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소도 쉬게 한 것이다. 김봉환 장로의 아들로 인천제삼장로교회를 시무하다가 은퇴한 김광식 목사는 이를 아름다운 신앙으로 회상하고 있다.2

우리 가정은 주일은 온 가족이 철저하게 주일을 지켜 예배를 드리는 것 외에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름 어느 주일에 하동(下洞)에 사는 김기담(金基談) 씨가 소를 빌리러 왔다. 오늘 주일이어서 장로님께서 교회에 가시니 소가 쉬므로 돈으로 갚거나 품으로 갚거나 하겠으니 소를 빌려달라고 하였다. 이때 부친이 주일에 사람이 쉬는 것처럼 소도 쉬어야 한다고 허락하지 않아 여러 차례 이야기하다가 그분이 서운해하며 돌아갔다.
성경 출애굽기 20장 10절에는 “제 칠일에는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인즉 너와 네 아들과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였다. 우리 가정은 아무리 바빠도 성수주일을 철저하게 지켰다. 그때 소가 듣지는 못해도 오늘은 주일이므로 주인 장로님 덕분에 나도 쉬는구나 참 고맙다 오늘 푹 쉬고 내일부터 엿새를 일하면 다음 주일에 또 쉬겠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주일에 소도 쉬게 하는 신앙은 아름다운 신앙이다. 나는 그때 비록 어렸으나 큰 감동을 받았으며 이러한 부모 밑에서 믿음으로 자라 감사하게 생각하며 평생 잊을 수 없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상고하며 그분께 경배하는 예배는 기독교인들만이 누리는 최고 특권이자 최대 의무이다. 누가복음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 예배에 참여하는 거룩한 습관을 실천하였다고 전해준다.(눅 4:16) 또한 사도행전에서는 바울 역시 안식일에 ‘자기 관례대로’ 회당 예배에 참석하는 거룩한 습관을 실천하였다고 말하고 있다.(행 17:2) 그런 가운데서 바울을 비롯한 기독교인들은 주일에 모임을 갖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행 20:7, 고전 16:1-2)
한국교회에서도 제4계명 속 안식일을 예배일로 칭할 만큼 예배의 중요성을 교인들에게 인식시켰다.3 그 결과, 초기 한국교회 교인들은 주일을 지키기 위해 혈투적인 신앙생활을 영위하였다. 예컨대 남양군 선재도에 거주하는 백준기 씨는 예배날이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 10리나 떨어진 영흥 내동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계속하였다.4 또한 공주교회에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40리 밖에서 오는 교인도 있었고, 심지어 80리 밖에서 오는 교인도 있었다.5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한국교회 교인들은 성수주일을 마치 생명처럼 귀중히 여겼다. 일례로, 애산 김진호 목사는 선구적인 민족・민중 목회를 실천한 전덕기 목사에 대하여 비록 기한서우(祁寒暑雨)가 유할지라도 예배나 기도에 단 한 차례도 결석함이 없었다고 전해주고 있다.6 이처럼 성수주일을 생명처럼 여기던 한국교회는 3・1운동으로 인해 극심한 인적・물적 피해를 입었고, 이와 더불어 예배를 드릴 수 없거나 정지당하는 영적인 피해도 입었다.
이러한 성수주일 전통은 해방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홍성제일교회 이강산 목사는 훗날 목회자가 된 윤중섭 권사가 어떻게 주일을 지켰는지 그 투철한 신앙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7

나는 갈산교회에서 7년을 시무하다가 홍성제일교회로 왔다. 교인이 70명이고, 교회는 사분 오열이 되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내가 부임한 후 얼마 안되어 하나님의 은혜로 수습되었다. 교회는 안정되고 조용해지고 신자들의 신앙은 점점 부흥되었다. 어느날 공주에서 전보가 오기를 공주의 세무서장이 홍성으로 전근하여 오는데 그는 공주교회 권사라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윤중섭이다. 그가 온 뒤에 그를 관찰해 보니 그의 심령밭은 옥토다. 주의 종 말에 절대 순종이며 5대 항목도 꼭 지키는 자이다. 그는 나의 설교를 들으면 2-3가지로 만들어서 다시 설교하기도 하는 지혜의 권사이며, 어떠한 일이 있어도 주일을 성수한다.
한번은 사세청장이 왔는데 주일이라서 부하 직원을 보내고 윤권사는 주일을 지켰다. 다음에 더 큰 시험이 왔다. 사세청장이 덕산 온천에 와서 내일은 일요일이니 만리포를 가자고 전화가 왔다. 홍성에서 내일 만나자는 것이다. 토요일 밤이 되자 윤 권사는 내일 청장이 오면 꼼짝없이 주일을 범하게 되어 곰곰이 생각하다 삽을 가지고 다리를 끊어 놓으면 못올 것 아니냐? 만약에 다리를 고치고 온다고 하여도 오후에 올 것이 아니냐? 그러나 이것도 법에 저촉되니 세무서장으로서 할 일이 아니었다. 이런궁리 저런궁리 끝에 시간은 흘러 밤이 되었다. 윤 권사는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시 생각하여도 도저히 헤어날 길은 없었다. 그는 그때에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기기로 하고 성경, 찬송가를 들고 교회로 갔다. 밤새도록 성경을 보고 기도와 찬송을 하면서 철야할 때 새벽에 소나기가 억수 같이 온다. 이제는 길이 막혔으니 청장은 못오고 주일은 평안히 지킬 수가 있는 것이다.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또한 밤새도록 염려만 한 불신앙을 회개도 했다. 그날따라 예배를 다섯 번 드렸다. 예배를 볼 때마다 그는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찬송과 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다.


선한 일을 행하는 날이다
안식일에 예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목도한 바리새인들이 그들에게 안식일 규정을 어겼다고 정죄할 때, 예수는 바리새인들에게 제자들이 죄가 없다고 두둔하셨다.(마 12:1-7) 그러면서 안식일의 주인은 인자라는 폭탄 선언을 하셨다.(마 12:8) 그리고 예수는 곧바로 회당에서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셨다.(마 12:9-21) 또한 예수는 안식일에 베데스다 연못에 누워 있던 38년 된 병자도 고쳐주셨다.(요 5:1-18) 이를 통해 안식일에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는 새로운 가르침을 주셨다.(마 12:12) 사도 바울 역시 안식 후 첫날, 즉 주일에 죽은 유두고를 살리는 선한 일을 하였다.(행 20:7-12)
한국교회 역사 속에서도 주일은 선한 일을 행하는 날이었다. 특히 한 영혼을 살리는 전도를 행하는 의미 있는 날이었다. 일례로, 신홍식 목사가 담임하던 공주읍교회는 1917년 1월 남녀 전도회를 조직하여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일 예배 후 공주 곳곳으로 나가 전도를 하였다.8
주일에 전도를 하며 주의 사랑을 실천하는 한국교회 전통은 해방 이후에도 이어졌다. 반공 포로 출신인 목민 고영근 목사는 일평생 민중・민족 목회를 실천한 목회자로 한국교회에 알려져 있다. 대전 백운성결교회를 담임하던 1960년대에 그는 교인들을 돌보는 교회 내 목회와 더불어 지역 주민을 위한 민중목회를 실천하였으며, 특히 주일에는 지역에 있는 부랑아동 보호소, 경찰서 유치장, 여자 교도소 등지를 찾아가 예배를 인도하는 선한 사역을 지속하였다. 또한 그 교회 교인들 역시 주일을 통해 전도활동을 하며 주의 사랑을 실천하기도 하였다.9

주일예배를 드리고 오후에는 각 기관별로 심방을 합니다. 청년회는 동쪽 마을, 학생회는 서쪽 마을, 남선교회는 북쪽 마을, 여선교회는 남쪽 마을, 동서남북으로 떼를 지어 심방하고 전도했습니다. 청년회에서는 마을의 가난한 학생에게 간단한 치료도 해주고 이발도 해주며 사랑하여 줌으로 주의 사랑을 나타내게 하였습니다. 여선교회에서는 지역사회 주부를 위한 교양강좌를 열어서 주부학교를 이루어 여성을 지도했습니다. 아름다워지는 법(여성과 교양), 건강해지는 비결(여성과 위생), 아기 기르는 법(여성과 육아), 음식 만드는 방법(여성과 영양), 행복해지는 비결(여성과 종교) 이러한 제목으로 여성을 위한 강좌를 열면 많은 여성들이 참석하고 하나 둘 자진하여 교회문을 두드리게 됩니다.


1 “주일 예배를 반드시 지킬 것,” 「그리스도회보」 1913년 6월 16일, 1.
2 김광식, 『내가 본 우리 가정 이야기』(도서출판 아진, 2017), 16-17.
3 “예배일을 지키는 것이 유익한 론”, 「대한 크리스도인회보」 1898년 2월 16일, 1.
4 “새교회의 형편”, 「그리스도회보」 1913년 12월 29일, 2.
5 R. A. Sharp, “Chung Cheng Do Circuit”, Official Minutes of the First Annual Session, Korea Mission Conference, Methodist Episcopal Church(1905), 55-56.
6 이덕주, 『상동청년 전덕기』(공옥출판사, 2016), 73.
7 이강산, 『빛아래 성역 50년』(춘남출판사, 1979), 210-211.
8 송경재, 『기독교대한감리회 공주제일교회 팔십년사』(기독교대한감리회 공주제일교회, 1985), 68.
9 고영근, 『죽음의 고비를 넘어서(제1권)』(한국목민선교회, 1989, 6판), 169-170.



고성은 | 목원대학교와 호서대학교에서 교회사를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신홍식의 생애와 민족목회활동 연구』, 『철마 정경옥, 생애 연구』, 『동부연회 순교자열전』(공저) 등이 있다. 현재 충남 홍성에 있는 광리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으며, 목원대 외래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2019년 11월호(통권 7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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