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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성서와설교 > [성서와 설교] 분단 상황에서 성서읽기
성서와설교 (2019년 4월호)

 

  예수와 민족, 그리고 민족주의
  창 1:1-3:24

본문

 

역사적 사건의 명칭 문제

올해 3·1독립만세사건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헌법에 명시된 3·1운동의 명칭을 ‘3·1혁명’으로 바꾸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사실 이는 오래전에 정정되었어야 할 사안이다. 역사에서 사건의 명칭은 그 사건을 규정하는 중요한 길잡이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517년에 독일에서 시작된 루터의 기독교 개혁을 우리말로 종교개혁이라고 부르지만, 독일어나 영어권에서는 ‘Reformation’으로 명명한다. 대문자로 시작하는 ‘개혁’이다. 그런데 이를 일본 메이지유신 시대에 ‘종교개혁’으로 번역했고, 우리 또한 별다른 성찰 없이 이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종교’라는 용어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불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등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일반명사이다. 입장을 바꿔 불교계에서 일어난 한 사건을 가리켜 ‘종교개혁’이라고 부르면 기독교 진영에서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명칭을 결정하는 문제에서 그간 널리 통용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잘못된 이름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3·1운동’을 영어로 직역하면 ‘the March First Movement’가 된다. 이 단어를 처음 접하는 영어권 사람들은 이를 3월 1일에 일어난 일종의 집단(스포츠) 운동으로 이해하기 쉽다. 우리말 ‘운동’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그렇지만, ‘movement’라는 단어는 움직이는 행위를 뜻하는 생물학적인 단어이지 목숨을 내걸고 하는 투쟁과 저항의 정치적 단어가 결코 아니다. ‘3·1운동’, ‘동학운동’, ‘독립운동’과 같은 용어들은 일제가 우리의 독립저항 의식을 없애기 위해 붙인 일제의 잔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동학운동’을 ‘동학혁명’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듯이, ‘3·1운동’ 또한 고치면 금방 부르게 된다. ‘혁명’(革命)이라는 단어가 주는 과격성 때문에 꺼리기도 하지만, 일제의 압제를 벗어나는 일이 혁명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혁명인가? 우리는 3년 전 광화문에서 일어난 시민촛불사건을 ‘촛불(시민)혁명’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독립운동’이라는 용어 또한 ‘독립혁명’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
이번 글의 주제와 연관하여 생각하고 싶은 또 하나의 단어는 ‘민족주의’(nationalism)이다. 우리는 이 단어를 매우 긍정적인 의미에서 사용한다. 그런데 서양인들은 이 단어의 사용을 매우 꺼린다. 히틀러의 독일 민족주의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강자가 말하는 민족주의와 약자가 말하는 민족주의는 그 함의하는 바가 사뭇 다르다. 강자에게 이 단어는 약소민족을 침략하고 지배하는 것에 정당성을 주는 용어이지만, 약자에게 이 단어는 외세의 침략을 저지하고 항쟁하도록 하는 연대로서의 정당성을 제공한다. 지난 세기 우리는 외세의 침략과 식민지배 속에서 끊임없이 민족주의를 말해왔고, 더욱이 미·소의 냉전으로 인해 해방과 더불어 분단이 일어났으며, 결국은 3년간의 동족상잔으로 인해 남북은 지난 70여 년을 원수로 살아왔다.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민족’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남북 화해와 통일의 당위성을 말하고 있으며, 여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필자는 신학대학을 졸업한 20대 초에 비무장지대(DMZ) 철책에서
3년간 군복무를 하였다. 그리고 형제를 향해 총을 겨누어야 하는 분단의 모순을 극복하는 일이야말로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는 근본임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이런 고민을 해왔다. ‘예수에게 민족은 어떤 의미였을까?’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역사적 예수(the Historical Jesus)는 하느님의 아들이자 구원의 주(the Savior Jesus)인 그리스도로 고백된 이후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복음서에 기록된 신화적 요소를 제거하면 예수 또한 유대인의 한 사람으로 당시의 전통과 문화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성인이 되면서 로마제국의 폭력성을 거부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세계주의(cosmopolitanism) 의식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 또한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 없이는 집단이나 민족이 존재할 수 없듯이, 민족주의가 없는 세계주의 또한 없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최근 크로산(J. D. Crossan), 호슬리(R. Horsley), 보그(Marcus J. Borg)와 같은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은 예수 또한 한 인간으로서 당시의 유대인들과 같은 세계관을 갖고 있었음을 말하고 있으며, 이들의 새로운 관점은 복음서의 숨겨진 의미들을 밝히 드러내고 있다.

제1성서와 민족, 그리고 민족주의

국어사전에서 ‘민족’(民族)은 “일정한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공동생활을 하면서 언어와 문화상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 집단. 인종이나 국가 단위인 국민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정의된다. 따라서 민족주의(民族主義)는 ‘민족에 기반을 둔 국가의 형성을 지상목표로 하고, 이것을 창건(創建)·유지·확대하려고 하는 민족의 정신 상태나 정책 원리 또는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성서의 유대인들은 끊임없이 외세의 지배를 받아온 민족이다. 저들에게 민족주의는 외세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고 하나가 되게 하는 요소였다. 고대 사회는 제정일치(祭政一致) 시대로서 그 근본정신은 모세의 율법에 있었고, 그 장소는 법궤가 보존된 성전이었다. 사울 왕 시절에 법궤는 북왕국의 실로를 비롯한 여러 도시를 맴돌다가 다윗 시절에 예루살렘에 정착하기 시작했으며, 솔로몬 시절 성전 완공과 함께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솔로몬의 죽음 이후 왕국은 남북으로 갈라져 깊은 반목과 갈등을 겪었고, 결국 북왕국 이스라엘(에브라임)은 기원전 722년에 앗시리아 제국에 의해, 남왕국 유다는 기원전 586년에 바빌론 제국에 의해 각각 멸망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야훼 하느님은 바빌론 그발 강가에서 예언자 에스겔에게 나타나 왕국이 회복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때 단지 남왕국만의 회복이 아닌 남북 통일왕국의 회복을 말씀하신다. 무려 200년의 세월이 흘러갔음에도 하나 됨을 주장하고 있다. 유대 민족주의가 제1성서 안에서 야훼 신앙의 핵심적 가치였음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남미의 해방신학 그리고 흑인신학에 이어 민중신학은 억눌린 자의 입장에서 성서를 다시금 보기 시작했다. 이들 신학의 가장 큰 공헌은 출애굽이야말로 제1성서의 핵심 사건이며, 현재 민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히브리’라는 단어의 정확한 사용 용례를 밝혀낸 일이다. ‘히브리’는 근동지역에서 ‘하삐루’와 어근이 같은 단어로 노예, 떠돌이, 도적떼 등의 사회계급을 일컫는 용어였고, 모세오경에서 ‘히브리’는 ‘노예’ 출신 ‘떠돌이’를 의미하는 단어였다.(신 26:5, “제 선조는 떠돌며 사는 아람인이었습니다.”)
제1성서에서 ‘민족’을 뜻하는 히브리 단어는 ‘םע’(얌)이다. 이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번역되며, 이방 민족을 말할 때는 ‘יוג’(고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제2성서에서는 ‘λαὸς’(라오스)와 ‘ἒθνος’(에트노스)가 주로 사용되었는데, 전자는 유대인을, 후자는 이방인을 뜻하였다.[마가복음에서 강조된 단어 ‘ὄχλος’(오클로스)는 민중 혹은 군중들이다.] 성서는 노아의 세 아들을 통해 세계의 모든 민족이 시작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는 세계 민족이 하나의 형제임을 고백한 것이다. 그러나 바벨탑 범죄 사건을 통해 흩어져 반목하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또 다른 단어 ‘이스라엘’은 본래 야곱의 새 이름이었는데(창 32:28), 후에 이는 민족을 뜻하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 본래 성서에서는 사울 왕 시절 실로 성전과 함께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이 등장하기 시작했다.(삼상 11:15) 이외 지파 혹은 지역을 대변하는 ‘유대’, ‘에브라임’, ‘사마리아’ 등의 표현은 민족을 대신하는 단어로 혼용되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야곱에게서 출발하고 성전과 함께 시작하였다는 사실은 본래 이스라엘이 여러 민족 가운데 하나가 아닌 야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함으로 다른 민족을 야훼 하느님에게로 선도할 책임을 가진 선민임을 뜻하였다. 이는 예언자들이 매번 강조하는 하느님의 뜻이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다른 민족과 구별되었다는 의미에서 ‘거룩한 민족’으로 불리었다.
그러나 이 선도적 의미를 가진 ‘구별’로서의 ‘거룩의 정신’은 이후 성전이 권력의 중심이 되고 율법의 본래 정신이 하나의 법으로 굳어지면서 ‘우월’과 ‘차별’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후 이스라엘은 예수 당시 민족 우월주의를 넘어 민족 폐쇄주의로 굳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이사야 14장 2절은 단순히 이방의 압제로부터의 해방을 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스라엘을 사로잡고 억누르던 자들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제국의 피해를 받았던 민족이 이제는 약자를 억압하는 또 다른 제국이 되려 하고 있다. 여기에 민족주의가 갖는 위험성이 있다. 오늘날 국가 이스라엘이 2,000년 이상을 살아온 팔레스타인 민족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일은 야훼 하느님의 본래의 정신을 위배하는 것으로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다.

로마제국에 반기를 드는 복음서의 표현들

‘예수는 주님이시다’라는 교리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예수와 민족주의의 관계를 말할 수 없다. 반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이 질문은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갖는다. 왜냐하면 헬라어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아’의 번역어인데, 제1성서에서의 메시아는 본래 정치적 해방을 가져오는 사람으로 하느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을 뜻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명칭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게도 붙여졌다. 제1성서에서 이 단어는 다분히 민족주의적 틀 안에서 사용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서 저자들이 예수에게 이 칭호를 붙였을 때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할지라도 원래의 의미가 상당 부분 남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복음서를 살펴보기 전에 우리는 복음서가 기록되던 당시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먼저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당시는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독립항쟁(66-70년)이 일어난 직후로서 로마 정부의 감시가 극심한 시기였다. 로마는 더 이상의 저항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성전에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도록 완전히 파괴했으며 감시하는 군대를 이곳에 두었다. 따라서 초기 예수공동체는 유대교와 연관성이 있다는 의심을 받지 않도록 극도로 주의하였고,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가 정치적 게릴라들에게만 적용하던 십자가형을 받았지만 이를 비정치적으로 해석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복음서는 일관되게 로마 정부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는 반면 유대교와는 적대적인 모습을 보인다. 대표적인 예가 빌라도 총독의 경우이다. 사도신조의 고백과는 달리 네 복음서 모두 그에게 예수 죽음의 책임을 돌리지 않고 있다. 잔혹한 통치자라는 역사적 사실과는 달리 복음서 안에서 빌라도 총독은 예수에게 죄가 없다고 말하고 예수를 풀어주고자 애쓰는 선한 사람으로 묘사되며, 심지어는 진리 추구자로 묘사되기까지 한다.
이외 식민지 지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백부장은 유대인들의 친구로, 때로는 유대인들보다 더 좋은 신앙의 소유자로 묘사된다. 심지어 십자가 처형 당시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한 사람은 3년을 동고동락한 제자들이 아니라 처형 책임자인 백부장이었다. 누가의 경우 아예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로마제국의 총독 데오빌로(‘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에게 보내는 보고서 형태로 시작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복음서를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상식적으로 볼 때, 유대 지배자들과 적대 관계에 있었던 예수가 로마 정부에 호의적이었다는 가정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우리는 일제의 식민통치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듯이, 친일 앞잡이들은 미워하면서 그 배후에 있는 일제를 좋아할 수는 없다. 또한 일제 총독이 조선의 지도자들이 모두 반대하고 미워하는 한 인물을 옹호하고 그를 변호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복음서는 이러한 모순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서 곳곳에는 반로마적인 문구들이 숨어 있다.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이 이를 밝혀내고 있다. 대표적인 해석이 미국의 신약학자 윙크(Walter Wink)의 원수 사랑이다.1 마태의 예수 탄생 설화에서 동방박사(Magi)는 페르시아 제국의 후속 국가인 파르티아 제국에서 온 정부 관료를 상징한다. 이들의 등장으로 인해 헤롯과 예루살렘 성내가 술렁거렸다는 의미는 예수가 반헤롯, 나아가 반로마적인 색채를 띠고 있음을 전제한다. 또 마가복음 5장에서 무덤가에 있었던 귀신의 이름 ‘λεγεών’(레기온)은 로마의 대대급 군단을 일컫는 군사 용어이다. 예수의 제자 가운데는 유대 독립을 위해 폭력 사용도 마다하지 않는 젤롯파 출신의 시몬도 있었고, 이보다 더 폭력을 정당시하는 시카리파 출신의 유다도 있었다.2
세금에 관한 질문에 예수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리라고 대답하였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정교분리가 가능한 상황이 아니었으며, 가이사 또한 신의 위치에 올라선 숭배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이 구절을 정교분리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당시 유대인들의 신앙에 따르면 (창조주) 하느님의 것이 아닌 것은 세상에 하나도 없으니 예수의 발언은 실상 반(反)가이사를 말하는 것이었다.

예수와 민족주의

마귀 들린 딸을 고치러 온 가나안(시로페니키아) 여인을 향해 예수는 “나는 길 잃은 양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찾아 돌보라고 해서 왔다.”(마 15:24)라고 하며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막 7:26)라고 말했다. 예수의 민족 폐쇄주의적인 발언, 모욕적인 언사는 복음서 저자의 해석처럼 단지 그 여인의 믿음을 떠보기 위한 발언이었을까? 아니면 예수의 민족 정체성의 속내를 드러내는 발언이었을까? 복음서마다 약간의 해석은 다르지만, 유대인 예수가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해 부름받았다는 기조는 같다.
마태복음은 유대 민족주의에 가장 가까운 복음서이다. 1장에서부터 예수는 아브라함의 족보에 연계된다. 「기독교사상」 1월호 필자의 글에서 자세히 언급했듯이, 여기에는 혈통에 근거한 좁은 의미에서의 유대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이 숨어 있다. 마태는 유대 민족주의의 근간이 되는 모세의 율법에 기초하여 예수의 말씀을 다섯 개의 큰 틀로 정리한다. 물론 예수는 탈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모세의 율법을 새롭게 완성하는 분으로 설명된다. 그리하여 예수의 주 활동 무대인 갈릴리조차 이방 지역으로 간주된다.(마 4:15) 예수는 자주 ‘다윗의 자손’으로 불리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백성들은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환호한다. 십자가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가 붙기도 한다. 이에 대한 예수의 자기 이해는 알 수 없지만, 예수 자신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는 초현실로서의 탈지구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로마제국의) 폭력적 방식을 배제하는 평화의 발언이었을까?
사실 예수 연구자들이 주장하듯이 복음서를 통해 예수의 실제 역사를 구현해내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다만 그간 우리가 교육받은 서구 신학의 시각을 교정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현재 남한에서 통일에 대해 가장 걸림돌이 되는 세력은 교회이다. 북한을 사탄의 세력으로 보고 김정은 정권을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로 보고 있다. 북한은 유엔의 회원국으로 한 형제자매이지만, 그들과의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이는 한국전쟁이라는 쓰라린 경험과 공산주의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과거일 뿐이다. 현재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는 없다. 변형된 형태로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몇몇 국가가 있고, 북한 또한 사회주의를 표방한 지 오래되었고 세계와 함께하고자 하는 변화의 흐름 속에 있다. 1982년 북한 헌법은 종교를 인정하고 있다. 물론 포교는 매우 제한적이다.

우리 앞의 민족주의

지금 우리는 평화통일이라는 거대한 부름 앞에 서 있다. 이는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세계사적인 흐름이자 민족의 요구이다. 성서 안의 민족주의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민족은 외세로부터 끊임없이 침략을 받고 지배를 당해본 경험이 있는 약소민족들이다. 침략을 일삼아온 유럽 내의 여러 민족들은 성서의 민족주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관심도 없다. 그동안 서구 신학자들은 이런 부분과 관련한 질문들을 배제해왔다. 자신들이 가진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예수를 세계주의(cosmopolitanism) 관점에서만 보고자 했으며, 선교적 관점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기독교 왕국(Christendom)’으로 축소하여 해석해왔다.
세계 선교는 분명히 예수의 명령이자 우리의 과제이다. 그러나 민족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는 세계 선교는 가능하지도 않고 타당하지도 않다. 3·1혁명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남북통일의 관점에서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기독교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1 Walter Wink, The Powers That Be: Theology For a New Millennium(New York: Doubleday, 1998), 98 이하.
2 예수를 배반한 제자 유다는 흔히 ‘가룟 유다’라고 부른다. 여기서 ‘가룟’(Ἰσκαριώθ, 이스가리옷)은 케이롯 출신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고, 시카리(Sicarii) 과격독립항쟁파 출신임을 나타낸다고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성서에서 예수의 다른 제자들을 설명할 때 이름과 함께 출신 고향을 언급한 경우는 한 차례도 없기 때문에, ‘가룟’ 또한 그의 고향이 아닌 과거의 이력을 나타내는 단어로 보아야 한다. 한편 미국 성공회의 주교 스퐁은, 유다는 역사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집단이나 민족을 상징하는 기독교인들의 창작으로 본다. John Shelby Spong, Liberating the Gospels(San Francisco: HarperOne, 1997), 257-276.


조헌정 | 신약학(역사적 예수)을 전공하였다. 저서로 『양심을 습격한 사람들』 등이 있다. 예수살기 상임대표, 「현장언론 민플러스」 이사장, 평화통일연구소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9년 4월호(통권 7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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