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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성서와설교 > [성서와 설교] 미쉬나: 유대인과 함께 읽는 성서
성서와설교 (2019년 1월호)

 

  미쉬나 소개: 오해와 편견을 넘어
  

본문

 

<미쉬나> 연재를 시작하며
건국대학교 중동연구소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3년)을 받아 <미쉬나: 번역 및 주해>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바, 「기독교사상」의 지면을 빌려 총 8회에 걸쳐 한국 최초로 미쉬나를 소개한다. 기원 200년경에 집대성된 미쉬나는 히브리성서, 탈무드와 함께 유대교 3대 고전에 해당하는데, 총 6권(세데르)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쉬나 소개를 시작으로 각 연구원들은 매달 1회씩 각자 맡은 세데르 본문 중에서 일부를 발췌, 번역하여 소개하고, 그 뜻을 알기 쉽게 풀이하여 실생활에 적용 가능한 설명을 덧붙여 나갈 것이다. 신학자들에게는 유대인의 성서 해석을, 설교자들에게는 설교 자료를, 평신도에게는 유대 고전의 가르침의 진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한다. - 책임연구원 최창모(건국대 교수, 중동연구소 소장)

각자의 머릿속에 어떤 나라를 한 번 상상해 보자.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 당신은 딸기밭 주인이다. 여름철 딸기가 익어가고 농사는 풍년이다. 딸기를 추수할 무렵이 되어 지나가는 배고픈 누군가가 당신의 딸기밭에 들어와 손으로 마음껏 딸기를 따 먹을 수 있다. 딸기뿐 아니라 쌀과 보리도 마찬가지이다. 이 나라에서는 이것이 용납된다. 또한 이 나라는 금요일 해질 무렵부터 토요일 해질 무렵까지 버스 운행을 하지 않는다. 일주일에 하루는 쉬는 날이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나라에서는 당신의 월급 중 일부를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법을 제정하고 자동이체 신청을 받는다.
신자유주의에 익숙한 21세기의 눈으로 보면 다소 발칙한 상상일 수도 있지만, 사실 이러한 삶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한 상상의 나라는 바로 인류 역사의 베스트셀러인 성서에서 만들어가려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성서에서 그리는 그림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모습이 다른 이유는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치관이 달라지면 선택이 달라지고, 선택이 달라지면 삶이 달라진다. 미쉬나(The Mishnah)는 성서의 이러한 가치관을 삶에 적용하여 살려고 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미쉬나를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이 글은 우리가 흔히 할 수 있는 몇 가지 오해를 중심으로 미쉬나가 어떤 책인지 다루어보려고 한다.

오해 1–미쉬나/탈무드는 지혜문학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침(율법)을 주셨다. 이 가르침을 따라 살면 이스라엘 민족은 세상의 다른 민족들과 조금은 구별된 삶을 살게 된다. 또한 이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구체적인 가르침이 성서의 오경에 모여 있고, 이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 바로 미쉬나이다. 장르로 따지면 법전에 가깝다.
한국에는 미쉬나가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쉬나의 주석인 탈무드에 관한 책은 얼핏 보아도 150권이 넘는다. 어떻게 탈무드를 읽으면서 미쉬나를 모를 수가 있을까? 그 이유는 장르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실제 시중 서점에 가보면 탈무드는 ‘법전’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고 ‘지혜’ 섹션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탈무드의 일부 흥미 있는 이야기(아가다) 부분만 빼서 출판함으로써 탈무드가 지혜의 책으로 둔갑하게 된 것이다. 탈무드 관련 책이 베스트 셀러인 것은 좋지만, 문제는 그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쉬나의 주해서인 탈무드가 법전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보자.
아래는 국내에 판매되는 탈무드 관련 책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 중 못생긴 랍비에 관한 이야기이다.

매우 총명하지만, 얼굴 생김새가 추한 한 랍비가 로마 황제의 딸을 만났다. 황녀는 그의 생김새와 지혜로움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비꼬아서 말했다. “뛰어난 총명이 이런 못난 그릇에 들어 있다니!” 이에 랍비는 “왕궁 안에 술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황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랍비는 “무슨 그릇에 들어있습니까?”라고 거듭 물었다. 그녀는 “항아리나 술병에 들어 있죠.”라고 대답했다. 랍비는 놀란 체하며 “로마의 황녀님같이 훌륭하신 분이, 금이나 은그릇도 많이 있을 텐데 어쩌면 그런 보잘것없는 항아리를 쓰시다니!”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황녀는 싸구려 항아리에 있던 술을 금이나 은으로 된 그릇에 옮겨 담았다. 그러자 곧 술맛이 변했고, 맛이 없게 되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황제가 버럭 화를 내며 “누가 이런 어리석은 짓을 했느냐?”라고 물었다. 황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제가 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곧장 랍비가 있는 곳으로 가서 “당신은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을 권했습니까?”라고 말하며 화를 냈다. 랍비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단지, 대단히 귀중한 것이라 할지라도 싸구려 항아리에 넣어두는 쪽이 좋을 경우가 있다는 것을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아무리 선인이라도 입버릇이 나쁜 사람은 훌륭한 궁전 이웃에 있는 악취가 심하게 풍기는 가죽 공장과 같다.


랍비와 로마 황제, 황녀가 등장하는 위 이야기는 가볍고 흥미로운 주제로 출발하여 통찰력과 교훈을 전해준다. 귀한 것이라 할지라도 싸구려 항아리에 넣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마지막 문장에서 보듯 황녀의 입버릇을 지적하며 또 하나의 생각할 거리를 더하고 있다. 그렇다면 탈무드는 ‘귀한 것이라도 싸구려 항아리에 넣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쓰여진 것인가? 아니면 ‘입버릇에 대한 경고’가 주된 메시지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이러한 탈무드 이야기 모음집이 미쉬나/탈무드의 장르를 지혜문학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바빌로니아 탈무드 타아닛 7a에 나오는 이야기로, 미쉬나의 쎄데르 모에드(Moed)의 마쎄켓 타아닛(Taanit) 주석의 일부이다. ‘타아닛’은 금식이라는 뜻으로 금식에 관한 법들을 주로 다룬다. 타아닛에 추한 랍비 이야기가 나오는 논리적 흐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금식을 하게 되는 경우 중 하나는 비가 오지 않을 때인데, 타아닛에서는 비가 오지 않아 금식하는 것과 관련하여 여러 이슈를 논의한다. 예를 들면 언제부터 아미다(유대인이 매일 3번 드리는 기도)에 비 관련 기도를 넣어야 하는지, 언제 그 기도를 중단해도 괜찮은지, 비로 인해 금식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다양한 이슈를 다룬다. 이러한 여러 논의 중에 랍비들은 비의 위대함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는데, 라브 예후다는 심지어 비오는 날을 토라를 받던 날과 비교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어 토라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는데, 예를 들면 토라를 불에 비교하여 작은 나무가 큰 나무에 불을 옮겨 붙게 하는 것처럼 어린 학생이 나이 많은 현자를 가르칠 수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토라를 물에 비교하여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토라도 겸손한 사람에게서만 제대로 세워지게 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 토라를 물이나 술, 우유에 비교하기도 하는데 이때 토라와 술을 비교한 ‘추한 랍비 이야기’가 등장한다. 좋은 것일수록 좋은 그릇에 담아야 한다는 황녀의 의견은 틀렸고 생김새와 배움은 전혀 상관없다는 것이 주된 논지이다. 하지만 위 이야기는 토라와 술을 비교하는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등장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탈무드의 모든 이야기는 법적인 컨텍스트가 있기에 미쉬나/탈무드는 법전/법전 주석이다.

오해 1–미쉬나/탈무드는 지혜문학이다.
팩트체크 1–결론적으로 미쉬나와 탈무드는 지혜문학이 아니다. 미쉬나는 법전이고 탈무드는 미쉬나 법전의 주석서이다. 우리나라에 미쉬나를 소개하는 이번 작업을 통해 왜곡된 미쉬나/탈무드의 분류를 바로잡아야 할 때인 듯하다.



오해 2–미쉬나는 한 명의 저자에 의해 쓰여진 책이다

흔한 오해 중 두 번째는 미쉬나가 한 명의 저자에 의해 쓰여진 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쉬나는 ‘구전 토라(Oral Laws) 모음집’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구전 토라의 개념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지금의 오경인 ‘성문 토라’(Written Torah)만 받은 것이 아니라 성문 토라를 밝혀주는 구전 토라도 같이 받았다는 것이다. 모세가 자신이 받은 구전 토라를 전한 것을 시작으로 미쉬나가 쓰여진 3세기까지 계속해서 구전 토라가 전해지는데, 이를 ‘샬쉘렛 하-메쏘라’(Chain of Tradition, 전승의 사슬)라고 부른다.(미쉬나 아봇 1:1 이하) 구전 토라는 다음과 같은 전승 과정을 거쳤다.

모세 → 여호수아 → 장로들 → 예언자들 → 위대한 공의회 사람들 → 시몬 하짜딕 → 안티고누스 쏘코 → 쩨레다의 요세 벤 요에젤 → 예루살렘의 요세 벤 요하난 → 여호수아 벤 페라리야 → 니타이 → 예후다 벤 타바이 → 시므온 벤 샤타흐 → 세마이야와 아브탈리온 → 힐렐과 샴마이 → 라반 가말리엘 → 요하난 벤-자카이 → 라반 가말리엘 2세 → 라반 시몬 벤-가말리엘 → 랍비 예후다 하-나씨

구전 토라를 전해준 사람들 중에는 우리가 알 만한 사람들도 있다. 성서를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출애굽기, 민수기, 여호수아의 영웅 모세와 여호수아를 알 것이고, 유대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힐렐학파와 샴마이학파도 들어보았을 것이다. 샴마이학파는 보수적이고 엄격한 해석 경향을 보이는 데 반하여, 힐렐학파는 개방적, 진취적, 대중적 해석을 한다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탈무드 케투봇 16b-17a) 샴마이학파는 결혼식에 가서 신부가 못생겼을 때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해석하는 반면, 힐렐학파는 결혼식날 신부는 언제나 아름답다고 해석한다.(후대에 힐렐학파의 해석이 다수 해석이 된다.)
힐렐과 샴마이의 뒤를 이은 ‘라반 가말리엘 1세’도 잘 알려진 인물 중 하나이다. 그는 힐렐의 손자나 산헤드린의 수장으로서가 아니라 바울의 스승으로 기독교인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사도행전 5장에서 예수의 제자들이 산헤드린에 잡혔을 때 사형시키지 않고 놓아주도록 도와준 인물로도 유명하다.
이뿐 아니라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할 때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를 만나 담판을 짓고 야브네에서 벧 미드라쉬(Beth Midrash)를 시작한 ‘요하난 벤-자카이’의 이야기도 유대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대부분 접해본 이야기이다. 마지막으로 ‘라반 가말리엘 2세’는 신약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인물이다. 라반 가말리엘 2세 때 사무엘 하-카탄을 통해 비르카트 하-미님(기독교인을 저주하는 기도)을 아미다(유대인이 하루에 3번 드리는 기도문)에 넣도록 한 사람이 바로 라반 가말리엘 2세이다. 이는 요한복음의 회당 출교사건과 연관되어 해석된다.
어쨌든 미쉬나는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작품이 아니라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 논의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전승의 끝자리에 있는 ‘랍비 예후다 하-나씨’는 이렇게 구전으로 전해진 율법을 정리한 3세기 편집자이다.
유대인들은 성문 토라에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구전 토라를 합해야 온전한 토라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이 개념을 확장시키면 구전 토라 또한 성서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고, 결국 온전한 토라를 아는 사람은 랍비들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성서에 대한 해석학적 전제가 다르기에 서로 대화가 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듯하다.



오해 2-미쉬나는 한 명의 저자에 의해 쓰여진 책이다.
팩트체크 2-미쉬나는 한 저자가 쓴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수많은 랍비를 통해 구전으로 내려온 율법의 모음집이고, 한 명의 저자가 아니라 한 명의 편집자가 있다.



오해 3–미쉬나가 구전 율법이라면 왜 글로 쓰였나(미쉬나 편찬의 역사적 배경)

구전 율법인 미쉬나가 글로 쓰여진 시기는 1-2세기의 정황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기원후 66년에 시작된 ‘유대 대반란’(The Great Revolt)은 처음에는 유대인들이 승리하는 듯 보였으나 결국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짐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이때 라반 요하난 벤-자카이(Rabban Yohanan ben Zakkai)가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를 만나 담판을 지음으로써 야브네에서 벧 미드라쉬(일종의 랍비학교)를 시작하도록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야브네에서 새롭게 시작된 벧 미드라쉬를 랍비 유대교(Rabbinic Judaism)의 탄생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더불어 유대 대반란으로 얻은 소중한 교훈은 전쟁이 일어나면 소수의 학자들만 살아남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후 기원후 132-135년, 로마에 대항하는 두 번째 반란이 일어나는데 이 전쟁의 이름은 지도자의 이름을 따서 ‘바르코크바 반란’(The Bar-Kokhba Revolt)이라 부른다. 이 전쟁의 여파는 상당히 커서 유대 지방의 모든 유대인이 쫓겨나기에 이르렀다. 전승에 따르면 벧 미드라쉬와 산헤드린도 바르코크바 반란 이후 북쪽으로 올라와 우샤(Usha)에 자리잡게 되었다.
두 번의 전쟁을 통하여 얻게 된 큰 교훈은 전쟁으로 인하여 구전 율법을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경각심이었다. 실제로 바르코크바 반란 이후 20-30명의 랍비만 살아남았다고 전해진다. 랍비 예후다 하-나씨는 자신의 고향인 벧 샤아림으로 산헤드린을 옮기고 그곳에서 떠돌아 다니던 구전 율법을 한곳에 모으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구전 율법이 모아지게 된 또 다른 이유는 구전 율법이 많아짐에 따라 정리하고 공부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을 정확하게 다 기억하는 일도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에 예후다 하-나씨는 6개의 큰 주제(쎄다림)로 나누어 구전 율법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고 이렇게 미쉬나는 기원후 200년경에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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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3-미쉬나가 구전율법이라면 왜 글로 쓰였나?
팩트체크 3-미쉬나 집대성은 기원후 1-2세기에 일어난 두 번의 전쟁을 경험한 후 구전 율법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오해 4–미쉬나는 신과 제사와 성전에 관한 가르침이다(미쉬나의 내용)

미쉬나는 모세오경의 법을 전반적으로 다룬다. 성전과 관련된 제의적인 부분도 다루지만, 일상적인 삶에 대한 작은 정결법도 중요하게 다룬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선택받은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면서 매일 지켜야 할 거룩한 삶의 세부사항을 하나씩 하나씩 밝히는 것이다. 크게 여섯 개의 쎄데르(Seder)로 구성되어 있는 미쉬나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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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미쉬나가 모여서(미쉬나욧) 한 장(페렉)이 되고, 여러 장이 모여서 하나의 마쎄켓이 되고 여러 마쎄켓(마쎄크톳)이 모여서 하나의 쎄데르가 된다. 여섯 개의 쎄데르가 모여서 한 권의 책으로서 미쉬나가 된다. 눈치가 빠른 독자는 이미 알아챘겠지만 미쉬나는 3세기 초에 집대성된 책을 지칭하는 동시에 책의 가장 작은 단위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구전 율법의 가장 작은 단위가 바로 미쉬나이다. 현대에는 미쉬나의 특정 구절을 지칭할 때 ‘책 이름+마쎄켓 이름+장 번호+미쉬나 번호’(예를 들어, 미쉬나 베라콧 1:1)로 한다.



오해 4-미쉬나는 신과 제사와 성전에 관한 가르침이다.
팩트체크 4-미쉬나는 오경의 법에서 다루고 있는 거룩한 삶의 전반적인 부분을 다룬다.



오해 5–미쉬나와 탈무드는 관계 없는 책이다(미쉬나와 탈무드의 관계)

아마 한국의 탈무드 독자 중 상당수는 미쉬나가 탈무드의 모체라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사실 탈무드는 미쉬나의 뜻을 밝히기 위해 출발했다. 미쉬나의 문체는 상당히 간략하기에 정확한 뜻을 알기가 쉽지 않을 때가 종종 있고, 법 해석도 다양한 상황을 다루기에는 부족한 경우가 있다. 3세기초 랍비 예후다 하-나씨가 미쉬나를 집대성한 후 300년가량 랍비들이 계속해서 미쉬나의 법을 논의하고 삶에 적용함에 따라 바빌로니아 탈무드가 탄생하게 된 것은 어떻게 보면 필요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미쉬나와 탈무드의 관계는 탈무드의 구조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탈무드의 한 페이지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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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기원후 200년경 예후다 하-나씨가 집대성한 미쉬나 본문이다. 일단 탈무드는 미쉬나 본문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미쉬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개념을 설명하고 상황에 따라 확장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B)게마라이다. 미쉬나의 법에 대한 토론이 모여진 것을 ‘쑤기야’라고 하고 쑤기야들이 모인 것이 바로 게마라이다. 게마라는 때때로 미쉬나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분량을 가지기도 하며 미쉬나에서 다루지 않는 여러 주제도 마음껏 질문하고 확장한다. 미쉬나는 히브리어로 되어 있고, 게마라는 아람어로 쓰여 있다. 바빌로니아 탈무드 기준으로 게마라는 500년경에 집대성된 것으로 본다. 미쉬나와 게마라를 합하여 탈무드라고 부른다.
(C)는 11세기의 프랑스 랍비 라쉬의 탈무드에 대한 주석이다. 이 주석은 탈무드를 문법적으로 정확하게 해석하도록 도와주고, 논리적인 정황을 명확하게 하여 여러 랍비의 다양한 의견이 왜 중요한지 설명하려고 노력한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라쉬의 주석은 미쉬나를 이해하고 탈무드를 읽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라쉬의 주석은 책을 펼쳤을 때 책 안쪽에 위치하는데, 이는 책이 불에 타다 건져졌을 때 라쉬의 주석은 남을 수 있게 한 배려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만큼 라쉬의 주석이 미쉬나/탈무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는 뜻이다.
라쉬의 주석 반대편에 있는 (D)의 이름은 토싸폿이다. 라쉬 후대인 12-13세기의 프랑스 랍비들이 기록한 주석 모음이다. 토싸폿은 주로 프샷(문자적 해석)을 하는 라쉬의 주석과는 달리 비판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고, 탈무드 전체를 주석한 라쉬와는 달리 필요한 이슈만을 다룬다. 토싸폿을 쓴 사람들을 ‘토싸피스트’라고 하는데 라쉬의 손자와 손자의 조카 등 라쉬 집안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 어려운 이슈를 모두가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매우 간단하게 다루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탈무드를 읽는 초보자에게는 쉽지 않은 텍스트이다.
마지막으로 (E)와 (F)는 라쉬의 주석과 토싸폿이 아닌 여러 주석의 모음이다. 시대가 다양하며 탈무드의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있다.[참고로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탈무드 버전은 주석 (E)와 (F)까지 포함하는 빌나 에디션(Vilna Edition Shas)이다.]



오해 5-미쉬나와 탈무드는 관계 없는 책이다.
팩트체크 5-탈무드는 미쉬나를 바탕으로 한 주석 모음이므로, 미쉬나는 탈무드의 기본 뼈대이다.



결론적으로 미쉬나는 탈무드에 있는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자 이후 붙은 여러 주석이 밝히고자 하는 핵심 내용을 담고 있다. 미쉬나는 책의 민족이라 하는 유대인들이 자랑하는 많은 문헌 중 단연 가장 중요하고 기초가 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2017년부터 건국대학교 중동연구소에서 미쉬나를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 번역하는 ‘미쉬나 주해총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은–우리나라의 유대학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최중화 | 영국 옥스포드대학교에서 유대역사(Jewish History)를 전공하였다. 저서로는 Jewish Leadership in Roman Palestine from 70 CE to 135 CE 등이 있다. 현재 부산장신대학교 교수로 구약학과 유대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2019년 3월호(통권 7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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