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문화와 신학]
문화·신학·목회 (2019년 1월호)

 

  중세의 기막힌 ‘참회 책자들’
  

본문

 

중세교회가 신자들에게 내린 교리 혹은 규정을 들으면 웃음이 픽 나오는 부분이 상당하다. 그중 하나가 ‘참회 책자들’인데, 말 그대로 신자들이 죄를 지었을 때 받게 될 벌의 강도를 기록한 책이다. 이런 참회 책자들은 아일랜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전해 내려오는데, 지방이나 시대에 따라 내려진 벌은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발간된 책자의 숫자만 봐도 놀라울 정도이다. 오래된 책자들은 6세경에 만들어진 핀니안(Finnian), 쿰미안(Cummian), 테오도르(Theodor von Canterbury), 에그베르트(Egbert von York) 등이 기록한 책자인데, 이런 참회 책자들을 아일랜드의 수도승인 콜룸반(Columban)이 유럽 본토의 교회에 전파했다.
이 글에서는 여성신학자 우타 랑케-하이네만(Uta Ranke-Heinemann) 교수의 저서를 통해 이에 관한 규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여러 규정 중에서도 주로 여성의 낙태와 피임에 관한 것에 집중하고, 낙태와 피임에 관한 죄목이 다른 죄목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보고자 한다.

| 케자리우스 주교가 보는 피임과 낙태

중세의 케자리우스(Caesarius) 주교는 교황 짐마쿠스(Symmachus)로부터 종교적인 과제에 대해 명을 받자, 당시 갈리엔과 스페인 지방의 모든 주교와 사제들에게 이 명을 편지로 보냈다. 그 내용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범절에 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기독교인이 지켜야 할 관습을 제발 잘 지키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여인들이 낙태하는 것을 일종의 살인으로 간주했고, 또 여인들에게는 피임에 도움이 되는 약초물을 마시지 말라고 경고했다. 만약 이를 어긴 여인들이 그에 상응하는 죗값을 치르지 않는다면, 죽어서 지옥불에서 영원히 타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내렸다. 506년 케자리우스가 이끄는 종교회의에서는 이런 여인들에게 죽은 후에 지옥을 가든지, 아니면 이 생에서 속죄를 하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교령을 내렸다.
당시 교회가 내리는 속죄의 벌은 오늘날과는 상당히 달랐다. 스페인의 주교였던 마르틴 역시 피임을 하는 여인들에게 10년의 벌을 내렸는데, 그 역시 피임을 영아살해와 동일시하였다. 하지만 관용이 따르는 경우도 있었는데, 만약 한 여인이 간음하여 임신을 하게 된 경우에 영아는 죽여도 될 뿐만 아니라 본인이 원한다면 낙태도 가능했다. 그러나 이런 결과로 생긴 태아이든, 저런 결과로 생긴 태아이든 생명은 다 고귀할진대 같은 생명을 행위 자체에 따라 전혀 다르게 취급한다는 것은 너무나 속보이는 종교적인 판단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가장 오래된 참회 책자는 아일랜드의 수도원에서 만들어졌다. 왜 하필 아일랜드일까? 사실 로마를 중심으로 가톨릭이 번성하였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아일랜드 수도자들이 유럽 본토의 선교에 많은 힘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참회 책 중에서 가장 널리 퍼진 경우는 레기노(Regino von Pruem)의 책과 1010년에 출간된 부르카르트(Burchard von Worums) 주교의 책이다. 당시 독일의 보름스는 764년부터 1122년까지 17번의 종교회의가 열릴 정도로 교회의 중심지 역할을 한 도시이다. 나중에 부르카르트는 레기노의 참회 책자를 인용하기도 했는데, 수태피임에 관한 레기노의 책자는 그리스도교 교회의 전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13세기의 교회법에서도 수용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미쳤다.
이 텍스트에서는 자신의 쾌락을 만족시키기 위한 성교나 의도적으로 상대방에게 증오의 마음을 품고 하는 성교 시에는 아이들을 낳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만약 누군가가 이들에게 약물을 주어서 그 결과로 남자가 생식력을 잃게 되거나, 여자가 수태를 하지 못하게 될 경우에도 살인으로 간주했다. 앞의 다른 책자에서도 유사한 경고를 볼 수 있는데, 당시에는 그만큼 피임을 나쁜 죄로 여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랑케–하이네만 교수에 의하면 1917년까지 가톨릭교회에서 이 교의를 따랐다고 한다.

| 구강성교, 항문성교, 자위행위, 낙태와 참회의 기간

이 책자들에는 피임 약물에 관한 것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 대한 벌도 있는데, 그것은 해서는 안 될 행위로 규정된 구강성교, 항문성교, 자위행위 등이다. 물론 책자마다 벌의 강도는 다르나 교회의 참회 책을 보면 구강성교, 항문성교와 자위행위에 대해서는 낙태보다도 더 강한 벌이 주어졌고 살인보다도 더 엄격한 벌이 내려졌다. 참회의 책 저자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을 죽인 행위보다도 성적인 문제를 더 사악한 벌로 간주했다고 랑케-하이네만 교수는 언급했다.
그렇다면 각 책자에서 참회기간은 어느 정도로 정했을까? 사실은 거의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다른 종류의 죄목에 따른 벌과 대비해보는 일이 더 의미가 있다.
690-710년에 영국의 테오도르 참회 책에서는 구강성교는 7-15년, 어떤 경우에는 평생 참회하면서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고의적인 살인자는 7년을 속죄해야만 했다. 800년경에 생긴 위(僞)-에그베르트의 참회 책자에 따르면, 구강성교는 7년 또는 평생을 참회하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 항문성교는 10년, 낙태는 7-10년, 그리고 살인자에게는 7년의 벌이 주어졌다. 카노네스(Canones Gregorii)의 참회 책에서는 항문성교는 15년, 이에 반해 고의적인 살인자에게는 7년의 벌을 내렸다. 욕의 대주교 에그베르트(Egbert von York)가 만든 책자에서는 항문성교는 7년, 고의적인 살인에 대해서는 4-5년의 벌을 내렸다. 680-780년 사이에 만들어진 후베르트텐제(Hubertense)의 책을 보면 자위행위를 통한 성교는 10년을, 약초물을 마시고 피임한 경우에도 10년을, 고의로 사람을 죽인 자에게도 같은 10년을 벌로 내렸다.
오늘날에는 살인죄가 훨씬 큰 죄이지만 당시에는 피임과 낙태를 거의 살인죄와 같은 죄목으로 다루었고, 비정상적인 성교에 대한 벌도 만만치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아일랜드에서 출발한 이런 속죄의 형태가 이후에는 대리속죄까지 확대되었다. 기초신학자인 임바흐 교수는 이것이 점차적으로 발전해 로마의 교황청이 떼돈을 버는 계기가 된 면죄부 판매와 연관성이 있다고 발언하였는데, 이 부분은 넘칠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있기에 지면의 제한으로 다음 기회로 넘긴다.

| 부부생활의 체위까지 감시하다

이들 책자에는 아주 약한 벌도 있었다. 만약에 부부가 성교를 할 때 교회에서 제시한 규정을 벗어나거나 혹은 남자가 아래에 있고 여자가 위에서 부부생활을 한다면, 며칠 혹은 한 주 정도 걸리는 벌을 내렸다. 은밀한 부부생활에 관하여 벌을 내린다는 자체가 오늘의 시각에선 마냥 의아할 뿐이다. 왜 그랬을까? 당시에는 이런 행위를 임신을 위한 성행위가 아니라 단지 쾌락을 위한 행위로 해석한 데다가, 이런 체위는 임신하기 어려운 행위라고 보았던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러나 부부생활 중에 피임을 했을 때에는 엄한 벌이 내려졌다. 책자마다 다른 벌을 내렸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에그베르트의 책자에서는 3년을, 위(僞)-테오도르의 책자에서는 최고 3년의 벌을 내렸다. 하지만 의문이 생긴다. 교회가 어떻게 개인의 부부생활까지 간섭을 했단 말인가? 그리고 어떻게 개인의 침실까지 엿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교회가 내린 책자를 교과서처럼 의존했다. 교회에서 이탈된다는 것은 공동체에서 낙오자가 된다는 것이요, 죽어서는 천국으로 가는 길이 막히고, 지옥불에서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후로는 이렇게 양심에 맡기던 죄벌의 일부가 고해신부들에게로도 넘어갔다.

| 고해신부에게 조종당하는 중세인들의 모습

랑케-하이네만 교수가 언급한 다음 예들을 통해서 8세기 이래로 중세 사람들이 고해신부들에게 조종당하는(?) 모습을 보자. 고해신부들은 피임에 대한 질문을 했다. 부르카르트의 교령에 나오는 이 질문서는 많은 영역으로 퍼져나가며 다른 고해신부들에게도 교시 형태로 전해졌다. 많은 질문 중에서도 특히 부부생활 그리고 여인과 관계되는 질문이 많았다. 질문의 핵심은 피임과 낙태에 관한 것이고, 주로 결혼한 남자들에게 질문이 주어졌다.
“당신은 부인이나 다른 이들과 함께 동물처럼 뒤에서[항문] 하는 성관계를 하였는가?”라는 질문에 “예, 그랬습니다.” 하고 대답할 경우에는 “보속으로 빵과 물을 10일 동안 먹어라.”라는 벌이 주어졌다. “당신은 부인이 생리 중인데 부부생활을 하였는가?” 그렇다고 하면 “10일간 물과 빵만 먹으면서 보속을 하거라.”라고 하였다. “당신의 아내가 아기를 낳고 정화과정[아마도 40일]을 끝내기도 전에 교회에 갔는가?” 이에 대해 “예”라고 대답하면, “오랜 기간 보속을 하거라.”라고 하였다. 유감스럽게도 그 보속 기간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이 없다. 우리 생각에 ‘적당히 속이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당시에는 모든 이들이 종교교리에 얽매여 살았고, 거기서 벗어나면 죽은 후에 평생 지옥불에서 훨훨 타게 된다고 믿었기에 이런 영향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계속되는 언급을 보면, 만약에 한 남자가 부인의 정화과정 기간에도 성교를 하였다면 그 남자는 20일 동안 속죄의 대가로 빵과 물만 먹어야 했다. 만약에 뱃속에 든 태아가 움직이고 있거나 아이를 낳기 40일 전에 부인과 성교를 하였다면, 역시 20일간 물과 빵을 먹으면서 속죄를 해야 했다. 부인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남편이 확실히 알고 있음에도 부부생활을 한 경우, 주일날 성관계를 한 경우에 남편은 4일간 물과 빵만 먹으면서 속죄해야 했다. 또한 남자가 금욕 기간 중에 부부생활을 하였다면 40일간 물과 빵만을 먹으면서 속죄를 해야 했다. 남자가 거나하게 취한 상태에서 부부생활을 하였다면 20일간 빵과 물만을 먹어야 했다. 성탄절 전 20일간, 모든 주일, 교회가 지정한 금욕기간, 그리고 사도들의 축제일과 교회력에 따른 모든 축제일에는 정결을 지켜야만 하는데, 이 기간에 부부생활을 하였다면 정결을 지키지 못한 대가로 40일간 물과 빵을 먹으면서 보속을 해야 했다.
또한 참회 책자에서는 임신한 여인이나 불임부부나 나이 든 부부들의 부부생활을 금지시켰다. 다음은 참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옮겨보는데, 남자가 불임일 경우에는 임신한 여성과 성관계를 해도 벌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랑케-하이네만 교수는, 성교는 임신을 전제로 한다고 본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유명한 신학자의 말이라서 다 추종해야만 하는 건지, 강한 의문이 든다.(토마스 아퀴나스가 귀족층이나 중산층 여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사창가는 존재해야만 한다고 주장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11세기의 에첼레시아룸(Ecclesiarum Germaniae)의 책자를 보면 이렇다. “너희들이 임신이란 사실을 알고 나서 부부생활을 하였다면, 10일간 빵과 물로 살면서 보속을 하라.” “태아의 배에서 첫 움직임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성교를 하였을 경우는 20일의 벌을 내린다.” 책자의 많은 곳에서 성교를 제한시켰는데, 바로 출산 전 마지막 석 달 동안은 임산부와 성교하지 말라고 금지시켰다. 이런 결정은 임신 기간 동안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관하여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의사인 조라누스(Soranus von Ephesus, 2세기)가 이미 성교의 금지를 이야기한 바 있다. 그가 말하길, 만약 위가 뒤흔들리면 음식물이 올라오듯이 자궁도 태아를 그렇게 밀어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의사였던 갈레노스(Galenos von Pergamon, 2세기)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적당한 부부생활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조라누스와는 대조적인 발언을 한 것이다.
아무튼 교부학자들은 임산부들의 성관계를 대부분 금지시켰는데, 그것은 더 이상 임신이 불가능하며 태아의 건강을 염려한다는 의미에서였다. 신학자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는 쾌락을 위한 성교는 위험이 따르는데, 그 이유는 자궁이 열리고 태아가 빠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는 임신 첫 넉 달을 가장 위험한 시기로 보았다. 그 유명한 토마스 아퀴나스(Tomas Aquinas)도 빠질 수 없다. 만약에 임산부와 성교를 하여 낙태가 될 경우에는 영혼이 구제받지 못할 악이라고 규정했다. 여성의 생리 때도 마찬가지로 부부생활을 금지시켰는데, 이런 경우 영국의 베다(Beda)와 카노네스(Canones)의 책자에는 40일간의 벌칙을 내렸고, 위-테오도르는 30일을, 780년경에 출간된 옛 아일랜드 책자에서는 20일을, 이시도르(Isidor von Sevilla)의 책자에서는 장애자가 태어난다고 보았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설을 현대의 눈으로 평하면, 모두가 소경이 코끼리를 만지고 난 뒤의 표현처럼 보인다. 최고로 발달한 현대의학과는 상당히 먼 견해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유사한 견해는 또 있다. 다음을 보자.

| 참회 책자 외의 이야기와 슈미츠의 ‘참회 책자들’에 관한 연구

참회 책자에는 나오진 않지만 예외적인 경우를 언급해보면, 서유럽에서는 오랫동안 수태가 생리 기간에도 가능하다고 믿었다고 사학자인 겔리스 교수는 언급했고, 만약 모반이나 사마귀나 주근깨를 가진 아이가 태어났다면 이는 아이의 엄마가 생리 중에 부부생활을 해서 임신한 증거라고 간주했다. 특히 빨간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들은 늘 부정적인 대우를 받았다. 그 이유는 이들 부모가 부부생활 금지 날을 염두에 두지 않고 부부생활을 해 빨간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가 태어났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겔리스 교수는 언급했다. 중세시대는 교회에서 주일, 축일 등 부부생활을 금지하는 날을 교회에서 하달하던 시대이다 보니, 이런 규정을 어겼기 때문에 빨간 머리카락을 가지게 되었다고 아예 못을 박아버린 것이다. 이런 연유로 빨간 머리카락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늘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여기에 대해도 참 많은 설이 있지만, 지면 관계로 이쯤에서 접는다.
지금까지 다소 지겨울 정도로 비슷비슷한 내용의 참회 책자들을 들여다보았다. 사실 랑케-하이네만 교수가 언급한 부분도 상당한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1883년에 슈미츠(H. J. Schmitz)의 ‘참회 책자들’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보았더니, 자그마치 227쪽부터 832쪽까지 여러 종류의 벌 내지는 속죄의 방편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만큼 당시에는 이런 책자들이 수두룩했다는 뜻이다. 이 논문에는 중간중간에 약간씩 독일어로 주석을 달았을 뿐, 유감스럽게도 거의 다 라틴어이다 보니 해독이 되지 않아 랑케-하이네만 교수가 풀어놓은 해석으로 제한한다.

| 몇 가지 의문과 비판

글의 마무리 단계에서 몇 가지 의문을 던져본다. 어찌 교회에서 개인적인 부부생활까지 간섭을 했단 말인가? 누차 언급했지만, 당시의 사회구조에서는 모든 이가 그물의 한 올처럼 기독교라는 울타리에 묶여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고, 교회가 던진 교리를 지키며 살지 못한다는 것은, 오늘날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소위 ‘왕따’가 되어 순전히 외톨이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죽으면 일단 천당에 가지 못하고, 지옥 불구덩이에서 영원히 살아야만 한다는 사실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 보니 철저하게 지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주 익숙한 예로, 한 무당으로부터 ‘지금 당장 굿을 하지 않으면, 당신 집안에 누군가가 곧 죽는다.’라거나 ‘곧 사업이 쫄딱 망할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의 반응은 어떠하겠는가? 이런 상황을 대비시키면 당시 사람들이 조금은 이해되지 않을까? 당시에는 부부의 침실까지도 종교의 교리로 지배를 했으니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오늘날도 매스컴의 보도를 보면, 위에서 던진 종교교리를 철저하게 믿고서 이 땅에 살아가면서 주어진 자신의 고유한 권리를 포기한 채 맹목적으로 교주를 추종하는 이들이 더러 있는데, 그리스도 종교라는 그물의 한 올로 엉켜 있던 중세인들은 오죽했겠는가.
또 다른 물음을 던져보자. 만약에 이런 책자들이 신이 부여한 진짜 진리였다면, 시대가 변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런 교리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제도는 기독교 문화사의 한 켠에 자취만을 남기고 일찍이 사라졌고, 후세인들에게는 문화사의 연구거리로만 존재하는 것을 보면 절대화되고 관념화된 교리의 독단으로 중세인들의 목을 조른 어리석은 짓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당시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을 언어의 틀에 넣고 사람들을 옭아맨 한 시대의 종교현상으로 여겨질 뿐이다. 결국 인간은 주어진 문화와 종교 속에서 살고 있고,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도 모두 문화나 종교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마지막으로 비판을 하나 하고 끝내고자 한다. 이런 참회 책자들까지 발행하면서 인간의 행위를 옭아매고 타인의 부부생활까지 조종했던 중세 이래의 기독교를 오늘날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일부 가톨릭 사제들이나 주교들의 성추행(개신교 역시)과 대비시켜 보면 참으로 씁쓸해진다. 이런 경우 독일은 참 독일답다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들면서 부럽기까지 하는데, 그 이유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Schpiegel)은 이런 문제를 한두 번이 아닌, 일어나는 사건마다 수없이 적나라하게 파헤쳤다. 이런 일에 연루된 어떤 사제가 자살까지 한 사례를 상세하게 보도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런 음지의 기사를 파헤쳐 바깥으로 알리는 자체는, 한 종교가 정화의 과정을 거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바로 중세의 그리스도교가 그러하지 않았던가. 현재 유럽의 텅텅 비어가는 교회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종교는 보호를 받으면 받을수록 죽어갈 것이다. 반드시 자기성찰이 동반되어야 하고, 더러는 외부에서 늘 신선한 수혈도 받아야 한다. 위에서 내린 참회의 벌을 움켜쥐고 마치 진리인 양 실행하면서 살아간 중세인들의 삶이 너무나 불쌍하게 보였기에, 비교하는 차원에서 오늘날 같은 종교에서 일어나는 성문제들도 한번 언급해보았다.

양태자 | 독일 마르부르크 필립스대학교에서 비교문화학과 비교종교학 석사학위를, 예나 프리드리히 쉴러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중세의 뒷골목 풍경』, 『중세의 뒷골목 사랑』, 『중세의 길거리의 문화사』, 『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 등을 집필하였고, 영성 번역서로 『파도가 바다다』가 있다.

 
 
 

2019년 3월호(통권 723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