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문화와 신학] 중세 사람들의 삶과 죽음 05
문화·신학·목회 (2018년 12월호)

 

  혼합주의적 성격의 중세 기독교
  

본문

 

교회력으로 곧 성탄절이 다가온다. 성탄절의 신학적 의미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 글에서는 성탄절이 그리스도 이전 문화와 융합된 내용을 다루기 때문에 성탄절에 대한 신학적이고 성서적인 언급은 하지 않고, 100년 전에 신학에서 떨어져 나온 종교학적 관점을 집중해서 다룬다. 그런 다음에는 그리스도 이전의 문화와 그리스도의 문화가 융합되어 나타난 중세인의 삶의 형태를 파악하고, 글을 마치면서는 종교의 기능에 대해 짧게 다루고자 한다.

| 다양한 민족의 집합체였던 유럽
로마에 의한 유럽의 기독교화 전후에는 많은 민족이 있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게르만(German), 켈텐(Kelten), 바이킹(Vikinger) 등과 같은 민족 외에도 다소 생소한 갈라터(Galater), 킴버른(Kimbern), 토이토넨(Teutonen), 헬베티어(Helvetier) 등의 민족이 있었다. 켈텐은 공동 언어와 종교를 가진 종족을 의미하고, 기원전 2세기부터 북-중유럽에 살았던 이들은 유사한 문화와 언어를 가진 민족의 집단체로 유퉁겐(Juthungen), 마르코만넨(Markomannen), 고텐(Gotten), 프랑켄(Franken), 반달렌(Vandalen), 알레멘넨(Alemennen), 주에벤(Sueben) 브르구룬더(Burgrunder), 알라넨(Alanen), 게피덴(Gepiden), 루기어(Rugier), 히스파니어(Hispanier) 등이 게르만에 속한다. 우리나라처럼 좁은 땅에서도 전라도와 경상도의 풍습에 다소 차이가 있는데,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은 유럽 대륙에서 여러 종족의 융합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색다른 종교문화가 탄생했으리라는 짐작을 가능하게 한다.
4-6세기 유럽에서는 민족의 대이동이 일어났고, 훗날 기독교를 받아들였던 이들은 일상 속에서는 여전히 이들 고유의 풍습을 고수하였다. 이런 일들이 후에 마녀사냥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기독교 또한 자연스럽게 이들의 관습 중 일부를 받아들이고 융화시켰는데, 이제 이들 요소 중 하나인 성탄절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 그리스도 이전 문화와 융합한 중세의 성탄절
성탄의 신학적인 의미와는 완전히 다르게 성탄절의 기원에 관한 여러 설 중 하나는 전통 축제인 동지에서 찾는 것이다. 기원전 500년부터 로마인들은 12월 25일에 태양의 신 졸(Sol)을 섬겼고, 기원후 3세기에 이르러서는 황제 아우렐리안(Aurelian, 214-275)이 졸의 도움을 받아 전쟁에서 승리한 것으로 간주한 후부터는 태양신 숭배를 더욱 장려하였다. 그러다 콘스탄틴 대제(Konstantin der Große, 272-337)가 이 축제를 기독교 안에 포함시켰으며, 후기 로마 시대인 354년 12월 25일을 첫 성탄절 축제로 지냈다고 전해진다. 381년에 열린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에서 황제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347-395)는 12월 25일을 공식적으로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정했다. 이는 성서적인 해석과는 다른 차원의 성탄절 유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러한 문화와 관련하여 중세 당시에는 11월 25일부터 성탄절까지 금욕을 지키기도 했는데, 이 기간에는 우유와 계란을 포함한 육식을 금지했으며 대신 생선, 빵, 꿀, 과자 등과 같은 허락된 음식만을 먹어야 했다. 특별히 12월 23-24일에는 수프와 딱딱한 빵만 먹었으며, 금욕이 끝나는 12월 25일이 되면 진수성찬을 차려서 즐겼다. 또한 이들은 각 요리마다 의미를 부여했는데, 그중에서 생선은 풍요의 상징으로 당시 많은 수도원에서 즐겨 먹은 음식이었다. 전통적으로 성탄절에 잉어 요리를 많이 먹다 보니 많은 수도원에서 잉어 양식을 하기도 하였다. 특별히 중요하게 여겼던 생선은 청어와 산란기의 물고기로, 이 생선들은 희망과 더불어 행운과 부요를 가져다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부유함을 가져다 주는 상징적인 음식으로는 불콩과 강낭콩도 있었고, 사과는 건강을, 소금과 빵은 장수를 상징하는 음식이었다. 사실 서구에서는 성탄절에 오리를 사용한 요리가 필수로 등장하는데, 이는 17세기 초 영국에서 시작되어 독일로 들어온 전통이라는 설이 있다.
게르만족은 ‘율’(Jul)이라는 신의 탄생일을 축제로 지냈는데, 12월 25일부터 1월 6일까지 12일 동안에는 귀신과 마녀들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을 물리치는 전통적인 방편은 연기를 피우는 것이었다. 기독교 사학자 리하르트 킥헤퍼 교수의 저서를 보면, 연기를 피우는 이야기와 더불어 기독교와 융합한 민간신앙 이야기도 더러 나온다. 그리고 율 축제 기간은 암묵적 평화 협정의 기간으로 간주되어, 서로 적대 관계에 있던 이들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개인적으로 싸웠던 이들도 공개적으로 화해했다.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출발한 녹색의 소나무, 겨우살이, 상록수 가지들로 만들었던 화환 역시 나름의 의미를 지녔다. 푸른 가지는 마법의 힘을 가졌다고 믿었기 때문에 나쁜 기운을 없애는 데 사용되었고, 겨울의 녹색 나뭇가지는 희망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1419년 독일 프라이부르크 문서의 첫 기록을 통해 성탄 트리는 중세 후기에 등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시 트리는 사과와 호두, 꿀이 들어 있는 과자로 장식을 하였다. 지금도 유럽인들은 성탄절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창가나 문에 소나무로 만든 화환을 거는데, 이는 상당히 뿌리깊은 전통 문화의 유산임을 알 수 있다.
가톨릭에서는 현재까지도 11월 1일을 ‘모든 성인 대축일’로, 11월 2일을 ‘위령의 날’로 기념하는데 이는 켈트족의 문화와 연관된다. 11월 1일과 2일의 켈트족의 이교도적인 축제를 가톨릭의 모든 성인 대축일과 위령의 날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 근원을 파헤쳐보면 기독교는 이교도들이 공경하던 옛 신들을 추방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신학자 임바흐 교수는 이 외에도 이교에서 말하는 신들의 자리나 축제의 자리를 가톨릭의 성인으로 채운 사실을 언급하였는데, 이를 통해 켈트족과 게르만족의 많은 관습이 기독교 안으로 흘러 들어온 사실을 알 수 있다.

| 기독교와 융합된 다른 풍속들
유럽이 기독교화되면서 게르만족 등 여러 민족의 민간 풍속들이 기독교 안에 들어와 자연스럽게 융화된 영역은 비단 성탄절뿐만이 아니다. 이런 이교도의 민간 풍속과 기독교의 융합, 특히 성서와의 접목이 어떠한가를 저술한 킥헤퍼 교수의 언급을 살펴보자.
기독교화가 진행되었던 당시에도 점술가들의 활동이 활발했는데, 한 점술가를 찾아간 한 사제의 애인 이야기가 있다. 한 사제와의 영원한 사랑을 꿈꾸던 이 여인은 이미 점술가로부터 받은 방편으로 효력을 보지 못하자 다시 점술가를 찾아갔는데, 그 이유는 사제가 이 여인을 찾아와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그녀가 점술가로부터 받은 방편은, 사제가 자신의 심장으로 여기는 형상을 불 위에 올려 놓고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주문을 외우라는 것이었다.(필자가 보기에 다소 뜬구름 같은 이야기로 느껴져, 원문의 각주를 보니 킥헤퍼 교수가 ‘칸디다 페루찌’라는 사람의 연구를 인용했다고 쓰여 있었다.)
또한 중세의 법정 문서를 보면, 당시 한 수도승의 연인에게 가르쳐준 피임법은 다름 아닌 퍼새(수말과 암나귀의 잡종)의 발굽을 태운 재를 와인에 섞어 마시는 것이었고, 전병을 혀에 넣고 성유를 바른 상태에서 사랑하는 이와 키스를 하면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고 킥헤퍼 교수는 언급했다. 이 외에도 하혈하는 여자의 이야기(막 5:30)와 사도행전 19장 12절을 인용하는 처방도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사랑의 마법과 마술의 축문을 외우는 이도 있었는데, “마리아가 아들 예수를 잉태하고 낳아서 사랑했듯이, 아무개도 나를 그렇게 사랑하게 하소서!”라고 끊임없이 외우며 염원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예수, 베드로, 달, 별, 특별한 약초까지 염원의 대상으로 종종 동원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중세인들의 전통적인 민간 풍습은 여러 방면에서 기독교에 접목되었다. 사실 기독교 측에서는 게르만족이나 켈트족의 고유 문화에 ‘미신’이라는 말을 붙였지만, 이들에게는 그저 자신들의 전통문화일 뿐이었다. 또한 기독교 안에 녹아들었다는 이유로 미신이라는 딱지를 벗어버린 풍습도 있는 반면에 그 안에 흡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전히 미신으로 치부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갈등은 훗날 ‘마녀사냥’의 근원이 되기도 하였다. 엄밀히 보자면, 사실 그들은 미신으로 치부되는 이러한 요소들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글을 잘 모르는 하층민들은 교회의 상층민들이 이야기하는 삼위일체의 신과 교리보다는 대대로 내려오는 민간 풍습의 처방이 더 절절하게 가슴에 와 닿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 교부학자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와 수녀 힐데가르트
교회는 이러한 풍속을 기독교 교리로부터 분리하고자 힘을 다했으나, 역으로 이런 풍속을 부추기는 경우도 있었다. 바로 교부학자인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 1193-1280)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가 내린 사랑의 묘약 처방전을 보면, 그는 “만약 어떤 사람이 특정한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제비 심장을 몸 안에 지녀라.”라고 설명했다. 또한 결혼한 여자가 남편과 깊은 성애를 나누고 싶을 때 필요한 처방전으로, 바싹 건조시킨 비둘기의 심장을 가루로 만들어 남편이 먹는 음식에 넣으라고 말했다. 교부학자까지 나서서 성서에 없는 사랑의 묘약을 계몽한 셈이다.
힐데가르트 폰 빙엔(Hildegard von Bingen, 1098-1179) 수녀도 이에 빠질 수 없다. 그녀는 피에 관한 처방전을 다수 남겼는데, 예컨대 ‘독과 주문 마법 없애는 방편’, ‘남과 여의 성숙한 성에 대해서’, ‘여자의 성 만족도에 대해서’, ‘남자의 성 만족도에 대해서’ 등이 있다.
가톨릭의 유물인 성모상 또한 해당 지방의 자연 종교와 풍속의 영향을 받은 흔적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슴을 열어놓은 성모상이 있는가 하면, 분수가 마리아의 젖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도록 만든 것도 있다. 이유는 그 물을 마시고 치유를 빌기 위해서였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는 왁스로 만든 성녀 아가타(Agatha, 225-250)의 젖가슴을 품고 다니는 풍속이 있었는데, 젖가슴을 도려낸 상태에서 죽은 이 성녀의 젖가슴이 다시 생겼다는 이야기가 번지자 많은 여인이 이 성녀에게 복을 빌었다고 한다.
의사인 아놀드(Arnold von Villanova, 1235-1312)가 남긴 글에서도 성애에 관한 풍속이 기독교 안에서 얼마만큼 범람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병과 고통”이라는 소논문에서 병이 생기는 이유를 마귀와 마법과 저주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성 불능은 (기독교의) 신이 돕기만 한다면 일반적인 자연 요법으로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기독교의) 신이 돕기만 한다면”이라는 전제 조건도, 그 전에는 그들의 신이 도왔지만 이제는 기독교화된 이후이니 그리스도도 함께한다고 생각한 조건절이 아닐까?
저주로 인해 병이 생겼을 경우에 대해 그가 내린 처방은 저주를 일으키는 물건이 집 어딘가에 있을 터이니 그것을 찾아서 무조건 치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추측대로라면 누군가가 이 부부의 침대 밑에 ‘닭의 고환’을 넣어두었거나, 박쥐의 피로 주술을 쓴 종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하며 해결 방법도 제시하는데, 생선 쓸개를 가지고 침실에서 연기를 피우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이 예식의 근원을 가톨릭에서 정경으로 인정하는 토비트서 6장에 둔다. 한 청년이 천사에게 물고기의 염통과 간, 쓸개는 어디에 쓰는 것인지 묻자, 천사가 “마귀나 악령에 시달리는 남자나 여자 앞에서 물고기의 염통과 간을 태워 연기를 피우면, 그 시달림이 깨끗이 사라져서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쓸개는 하얀 막이 생긴 사람의 눈에 바르고 그 눈 위로, 하얀 막 위로 입김을 불면 눈이 좋아집니다.” 하는 구절에서 출발한 것이다.
또한 악한 기운을 물리치려면, 검정색 개의 피를 벽에다 바르면 된다고 한다. 상태가 악화되었을 경우에는 기이한 제식을 권유하였다. 이때 잊지 말아야 할 일은 요한복음의 첫 구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를 을 종이에 써서 제식에 이용하는 것이었다. 제식 후에는 이 종이를 버리지 말고 물에 타서 부부가 함께 마시라고 했다. 더 빠른 효과를 원하는 이에게는 나뭇잎과 과실들을 시뻘건 석탄에 태우면 악마를 물리치는 데에 더욱 좋다고 권고했다.

| 오늘날의 기독교, 오늘날의 성탄절
당시에는 어느 것이 진정 교회의 것이고, 어느 것이 미신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기독교와 민간 풍속의 혼합이 도처에서 일어났음을 살펴보았다. 성탄절조차도 게르만족의 다양한 민간 신앙과 풍속이 기독교 내부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사실이 지금까지도 전승된 사실을 보았기에, 기독교라는 나무에는 게르만족, 켈트족 등 다양한 민족의 풍속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더 나아가 옛 신들의 숭배사상 자리를 가톨릭 성인들로 대치했다는 임바흐 교수의 언급만으로도 기독교와 이교도가 얼마나 혼합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기독교 안에서도 이미 여러 민속 종교가 스며든 현상을 보았는데, 종교학을 전공한 필자로서 깊이 공감하는 학자들의 글을 언급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먼저 프랑스의 문학평론가이자 사회인류학자인 리네 지라르(Rene Girard)는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에서 기독교가 이미 고대 신앙과 연관되었음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현대의 종교시장에서 기독교는 고된 시련을 겪고 있다. 호기심도 많아지고, 그만큼 의심도 많아진 독자들은… 탐험가들과 인류학자들로부터 고대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전해 들었다.” 이런 것들이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는데, 그 이유는 “고대 신앙이 낯설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신앙과 너무나 유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라르의 주장은 위에서 언급한 성탄절 이야기에 빗대어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또한 그가 말하기를 “지구 전체에 걸쳐서 종교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 속도는 느리지만 이런 경향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 같다. …힘이 약한 종교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강한 종교라 해도 사정이 나은 것은 아니다. 불굴의 의지를 자랑하는 이슬람교나 힌두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 말은 곧 종교가 종교답지 않을 때 죽어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기독교 또한 예외가 아닐 것이다. 사실 우리 주위를 보면, 종교의 역기능이 만연하고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닌가? 그러한 면에서 이 말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주 의미심장한 메시지을 던져주는 듯하다.
영문학을 전공한 김명주 교수의 저서 『여성의 성(性)이 성(聖)스러웠을 때』에서 그녀가 신학자 하비콕스(Harvey Cox)의 말을 인용한 부분을 옮겨본다. “…종교의 형이상학적인 도그마만 사라지는 것이고, 종교적 경험으로서의 ‘영성’을 오히려 강조하고 포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세속화 과정에서 종교의 오랜 기능들, 의례, 진리, 윤리로서의 기능은 심리학, 과학, 법으로 대체되고, 경험으로서의 종교만이 남게 된 것이다. …이런 견해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가 크다고 본다.” 또한 그녀는 종교 기능의 전문화 과정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분리하였다. “종교가 담당하던 장례 의례는 전문 장례사가 대신하고, 질병의 치유는 의학이, 죄의식은 심리 상담사가, 진리는 과학과 철학이, 윤리는 법이 대체하게 되었다.”
종교학자인 오강남 교수는 『예수는 없다: 기독교 뒤집어 읽기』에서 동일한 내용을 강조한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 경우 “믿음이 없어진다, 교회가 무너진다, 신자들에게 혼란이 온다, 교인을 잃게 된다 등등 이런저런 정치적, 심리적, 사회적, 교회적 이유로 이를 무조건 거부한다.”라고 언급한 것 역시 위의 맥락과도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종교시장에서 기독교는 고된 시련을 겪고 있다.”라고 말한 리네 지라르의 말을 다시금 상기해보면, 높은 건물, 교인의 수, 헌금 액수에 집요한 관심을 갖기보다는, 또 교회나 성당에서 경쟁하듯 밝히는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에 감탄하기보다는, 사랑과 자비를 베풀라고 하신 예수의 정신이 가미된 성탄절을 맞이하자는 의미로도 다가온다. 이를 실천한다면 아마도 예수는 하늘나라에서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우리를 향해 웃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예수가 교회의 휘황찬란함과 웅장함을 자랑하는 우리의 모습을 본다면, 그분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혼자서 슬픔을 삼킬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양태자 | 독일 마르부르크 필립스대학교에서 비교문화학과 비교종교학 석사학위를, 예나 프리드리히 쉴러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중세의 뒷골목 풍경』, 『중세의 뒷골목 사랑』, 『중세의 길거리의 문화사』, 『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 등을 집필하였고, 영성 번역서로 『파도가 바다다』가 있다.

 
 
 

2018년 12월호(통권 720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