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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문화와 신학] 박충구의 죽음의 윤리 이야기 07
문화·신학·목회 (2018년 12월호)

 

  근사체험과 그 의미
  

본문

 

내 몸은 나 없이 살 수 없다.
그러나 나의 의식은 몸 없이도 살 수 있다.
- 핌 반 롬멜(Pim van Lommel)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들은 대부분 자연스럽게 죽음 이후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다. 고대로부터 사후에 관한 인간의 관심은 인간의 모든 문제에 대해 답을 주려 했던 종교적 가르침 속에 담겨 있다. 다양한 종교는 삶뿐만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서도 제각기 특정한 가르침을 가지고 있기에 종교가 있는 사람은 그가 믿어온 종교적 전통을 따라 죽음 이후에 관해 특정한 문화적 이해를 하게 된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 갖게 되는 사후에 대한 관심 때문에 평소 종교를 믿지 않던 이들도 죽음에 임박하여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종교적 내세관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그 가르침을 신뢰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대의 탈종교화 현상에 대하여 연구해온 종교사회학자 주커먼(Pill Zuckerman)에 따르면, 미국에서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지난 25년 동안 약 5%에서 30%로 늘었다고 한다.1 이런 변화는 과거에는 죽음 이후에 대한 인간의 관심을 종교가 상당 부분 해소해 주었으나 근래에는 종교적 가르침의 영향이 감소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탈종교화되어 무종교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은 종교적 해석보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라는 자연주의적 죽음 이해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 고전적 이해
죽음 이후에 대하여 가장 명료한 체계를 가르치는 종교는 아마도 기독교일 것이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영혼 불멸을 믿으며, 죄를 짓고 용서를 받지 못한 사람은 사후에 지옥으로 가게 되어 거기서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그의 죄가 씻김을 받아 사후에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천국에 갈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믿음의 소산으로 요즈음엔 장례식을 ‘천국입성식’이라고 부르는 이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사후 세계에 대한 종교적 상상을 회화화(繪畫化)한 단테(Durante degli Alighieri)는 그의 책 『신곡』(The Divine Comedy)에서 사후 세계를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으로 나누고 지옥문에는 “이곳에 들어오는 이여 모든 희망을 버리라.”라고 써 놓았다. 반면 연옥은 진정한 참회의 과정을 거쳐 천국에 이를 기회가 있는 곳이다. 단테는 천국을 신비한 빛에 둘러싸여 넘치는 기쁨을 누리는 희열의 세계로 그렸다. 비록 중세 신학의 조명을 받고 있지만, 우리는 13세기 말 단테에게서 기독교 세계가 제시해온 사후 세계가 지옥-연옥-천국이라는 삼층 구조 속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것을 보게 된다. 연옥을 받아들이지 않는 점만 다를 뿐 개신교 신앙도 이와 유사하다.
기독교 전통과는 달리 힌두교, 불교적 전통에서는 윤회설을 주장하는데, 그 요지는 업과 그에 따른 인과응보의 논리라 볼 수 있다. 사람의 행위는 반드시 인과응보의 순환적 과정으로 이어진다는 윤리적 믿음이 윤회설의 기초를 이룬다. 이 과정에서 생명은 기독교에서 말하듯 일회적이거나 궁극적 구원을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에 따른 업보를 바탕으로 다수의 생을 거치면서 끝없이 이어지며 구원을 향한다. 불교적 구원은 보다 나은 생을 향하여, 참된 깨달음의 세계까지 나아가 윤회의 순환 고리에서조차 벗어나는 해탈의 길이라고 여긴다. 불교나 힌두교에서 주장하는 윤회설은 해탈을 향한 상향 지향적인 승화의 과정 속에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이해를 담고 있는 셈이다. 해탈에 이르는 길을 궁극적 구원이라 보는 이해는 일면 삶에 대하여 언젠가는 벗어나야 할, 번거롭고도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판단이 전제되어 있다.
기독교와 불교 이외에도 사후 세계에 관한 논리를 갖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도 사후 세계에 대한 주장이 있었고, 티벳의 『사자(死者)의 서(書)』는 죽은 자가 가야 하는 사후의 길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이해를 제시하며, 불교적 색채가 짙은 티벳적 사후 세계 이해를 담고 있다.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르기를 구하는 이들은 언젠가는 죽게 된다. 죽음을 맞는 순간부터 죽은 자는 윤회의 고리로 환생하거나 해탈에 이르는 길로 나간다. 티벳의 『사자의 서』는 죽은 자에게 환생의 길이 아니라 해탈에 이르는 길로 인도하는 제문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티벳 불교의 사후 세계관에서는 죽은 자의 몸은 부패할지라도 그 의식은 사후에도 이어진다고 여긴다. 죽은 후 사흘째가 되면 아미타불 지혜의 빛이 밝게 나타나는데 그 빛을 두려움 없이 따라감으로써 아귀들의 연노랑 빛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죽는 자는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 사후에도 해탈의 길을 찾아가는 구도자인 셈이다. 죽은 자가 머무는 중음계를 벗어나 다시 몸을 받아 환생할 때까지 49일이 걸리는데, 이 기간에 승려들이 『사자의 서』를 독경함으로써 죽은 자가 환생의 사슬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이르도록 인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듯 오래전부터 인간은 동서를 불문하고 죽어야 하는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고 있었고, 동시에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사후 세계에 대한 대부분의 이해에는 죽음 이후의 세계는 현생과 맞물려 있고, 현생에 대한 평가와 보상, 그리고 책임을 요구받게 된다는 권선징악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착하고 바르게 살아 사후에 영원한 형벌을 겪어야 하는 지옥이 아니라 밝고도 평화로운 천국에 이르기를 바라고, 온갖 번뇌와 고통이 가득한 생명 세계로의 환생을 거쳐 생 자체로부터 벗어나 해탈을 소망해온 셈이다.
죽음 이후를 알 수 없는 인간에게 이런 사후 세계에 대한 가르침은 분명하고 단호한 부정보다는 귀의(歸依)적인 긍정적 태도를 유발해 왔다. 파스칼(Blaisw Pascal) 역시 『팡세』에서 신의 섭리를 믿는 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파스칼의 사유대로 사후에 대한 주장의 진실성은 과학적으로 혹은 객관적으로 그 어느 누구도 입증할 수 없다. 다만 인간의 죽음 이후에 관한 종교적 해명은 특정한 이들의 종교 체험에 근거하여 그 전통이 형성되어 이어 내려온 것이다.

| 근사(近死)체험 이론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이전에 비해 과학적 사고와 실증적인 체험을 중시하는 합리적인 인간으로 변모하였다. 종교적 신비 체험이나 신화적 세계관에 매여 있던 사람 중에서 많은 이들이 종교적 해석으로부터 벗어나고 다소 비종교적이거나 무종교적인 태도를 갖기 때문이다. 여기서 과거의 종교적 해석과는 다르게 인간의 죽음 이후에 관하여 다소 개인적이거나 실증적인 체험을 연구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거의 죽음을 겪었던 이들, 다시 말해 죽음과 거의 동일한 상태에 처했다가 다시 살아 돌아온 이들의 경험을 연구・조사하여 그들의 개별 체험이 드러내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죽음 후에도 사람의 의식이 실재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주장은 오늘날 ‘근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이라는 연구 분야로 자리 잡고 있다. 근사체험론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자연주의적 주장과는 달리 현재의 생명이 사후에도 어떤 양태로든지 존재한다는 추정에 이르고 있다.
육체적으로 죽었다가 되살아난 이들의 체험을 분석한 무디(Raymond Moody)2는 근사체험 연구가로서 선구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가 1975년에 펴낸 Life after Life(死後生)는 전 세계에서 무려 1,300만 부나 팔렸으니, 비종교적 세계에서도 죽음 이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여전히 적지 않다는 사실을 충분히 입증하고도 남았다. 큐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가 1965년에 On Death and Dying(죽음과 죽어감에 대하여)을 펴냈을 때에도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중차대한 주제가 왜 지금까지 학문적 연구 주제로 여겨지지 않았는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의 연구는 죽어감의 과정에 들어선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죽음 이후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들의 방법은 종교의 교리나 권위에 의한 일방적 해석이 아니라 비교적 임상 과학적인 연구를 통하여 사후 세계에 대한 경험적 데이터를 분석했다는 데 그 특징이 있었다. 무디가 정리한 근사체험은 제1세대 근사체험 연구가, 예컨대 링(Ken Ring)이나 정신의학자인 그레이슨(Bruce Greyson)이나 펜윅(Peter Penwick)이 도달한 결론과 일치한다. 그 후 어린이들의 근사체험에 대한 연구 분석에서도 유사한 결론이 나왔다.3
근사체험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그저 단순히 죽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죽음을 의식하며 죽지만, 더 넓은 현실을 깨닫는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근사체험에서 죽음이란 의식의 무화(無化)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나 마음, 혹은 의식이 색다른 차원으로 이주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견해는 과거 종교의 가르침을 그대로 대변하지는 않지만, 부분적으로 죽음 이후에 대한 종교적 가르침의 속성과 겹친다.

| 근사체험 내용
무디는 임상적으로 죽음이 선고되었음에도 다시 소생한 사람, 심각한 부상이나 병으로 죽음에 이르렀던 약 150명을 인터뷰하여 그들의 증언에서 공통분모를 찾는 방법을 사용하여 얻은 결과를 아래 약술한 바와 같이 주장했다.

죽는 사람은 죽어가는 순간 자신에게 죽음이 선언되는 것을 듣는다. 죽음의 순간 그는 자신의 육체에서 벗어난다. 자신은 죽었으나 그 죽은 자신이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의식은 여전히 자신의 육체 밖에서 제3자적 관점을 견지하며 자신의 죽음의 현장을 목격한다. 그는 자신의 죽은 신체를 바라본다. 의사들이 소생술을 시도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죽어가는 자신을 보고 슬퍼하기도 한다. 이런 특이한 정황에 익숙해지면서 그는 이전에 지니고 있었던 몸과는 전혀 다른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다가와 그에게 인사를 건네거나 도움을 주려고 한다는 것을 안다. 이들은 이전에 죽은 친지나 친구들이다. 이들로부터 예전에는 경험해보지 않았던 사랑스럽고 편안하며 따스한 느낌을 받는다. 일종의 빛의 존재가 그의 앞에 나타나고, 짧은 순간 그는 자신의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그에게 펼쳐 보여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는 지상의 삶과 그 이후의 삶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무엇인가를 보게 된다. 동시에 그는 아직 죽음에 이를 때에 이르지 못하여 지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는 진심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주 강렬한 기쁨, 사랑, 그리고 평화의 느낌에 압도되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육체와 다시 연합하여 되살아난다. 생으로 되돌아온 후에 그는 자신이 경험한 바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우선 이런 천상의 경험을 담아낼 적절한 단어가 없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 대하여 다른 이들이 비웃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말하고 싶은 마음을 거둔다. 하지만 그 경험은 여전히 그의 삶에, 특히 그의 죽음과 죽음이 자신의 삶에서 가지는 관계에 대하여 심원하게 영향을 받고 있다.4

이 요약문은 하나의 정형화한 근사체험 이론이다.5 이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1980년에 근사체험연구소를 세우고 이에 관해 연구해온 칼 베커(Karl Becker) 교수는 인간이 죽은 이후에도 의식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육체의 죽음 이후에도 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덴마크의 심장의학자인 핌 반 롬멜(Pim van Lommel)도 죽음의 경험이 있는 344명을 연구하여 그들의 체험을 분석했다. 그는 2001년에 『사후 의식』(Consciousness after life), 2007년에는 『무한한 의식』(Infinite Awareness)을 출판하여 의식의 장소를 뇌로 이해한 의학계의 정설과는 달리 비장소적 의식(non-local awareness) 이론을 제기했다.6 이 주장은 사후에 우리 몸의 뇌 활동이 정지된다 하더라도 인간의 의식 활동은 뇌와 상관없이 지속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주장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인간의 의식은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며 영혼불멸설과 같이 무한한 인식의 지평을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롬멜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근사체험을 한 이들 중 약 82%는 아무런 기억이 없었지만, 18%(62명)는 자신의 근사체험 기억을 진술했다. 이 연구의 결론에 따르면 근사체험을 한 이들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식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으며, 매우 긍정적인 감정을 느꼈다. 또한 신체로부터 이탈하는 경험과 터널을 지나는 경험을 했고, ‘빛’과의 교감을 나누었으며, 빛의 색깔을 느꼈고, 이미 사망한 친지들을 만났으며,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는 경험을 했고, 기쁨으로 충만한 희망을 경험했다고 공통적으로 고백했다.
이 내용은 앞서 무디가 근사체험자들을 연구하여 내린 결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근사체험을 한 이들은 삶으로 되돌아온 이후의 태도가 매우 긍정적으로 바뀌고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은 생에 대하여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동정심, 사랑과 수용의 태도 및 직관적인 감수성이 증진되었으며, 생에 대하여 감사하는 태도가 더 깊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일부 사람에게서는 강렬한 환희를 경험했던 근사체험이 오히려 현생에서 소외감이나 억압 감정을 유발하거나 사후 세계를 그리워하는 등 고독이라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근사체험의 내용에는 성(gender)이나 종교, 혹은 교육에 관한 의미 있는 진술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 근사체험에 관한 논쟁
근사체험에 대하여 비판적인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은 근사체험이 심리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감정의 반향, 약학적으로는 마약에 취한 것과 같은 상태, 생체기능학적인 측면에서는 산소의 결핍으로 뇌에서 일어나는 환각 현상, 혹은 의식의 변화나 지속 현상으로 보아 총체적으로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비록 죽었다는 선언이 내려졌을지라도 이들의 뇌에서는 어떠한 활동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러한 경험과 기억을 가진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롬멜 박사는 이러한 평가에 대하여, 지금까지 인간의 의식의 자리가 뇌라고 여겨온 입장 때문에 근사체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인간의 의식은 뇌와 상관없이, 심지어 몸과도 상관없이 무한 지속된다고 주장했다.
근사체험을 주장하는 이들은 근사체험을 면밀히 살펴보면 뇌의 활동이라고 보기 어려운 신비한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근사체험자들은 뇌 활동이 정지된 상태임에도 의식이 명료하게 있고, 자기 정체성과 감정을 가지며, 인식과 사고를 하고, 신체 밖으로 이탈하는 느낌을 가지며, 타인의 의식과 연결된 느낌과 모든 기억을 가지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차원에서 의식을 갖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의식이 몸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의식한다. 이런 모든 체험은 ‘뇌 기능조차 정지된 상태’에서 일어난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멈춤 없는 의식은 장소를 뇌로 특정할 수 없는 공간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우리의 모든 의식, 혹은 죽음으로도 멈추지 않는 의식은 우리의 물리적 세계에서 모두 관찰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우리의 뇌는 지금까지 우리가 이해한 것과는 달리 단지 접속자(interface) 혹은 송수신기처럼 비특정 위치(non-local)에 있는 의식으로부터 정보를 수신하고 몸의 감각적 정보를 비특정 위치에 있는 의식으로 보내는 기능을 한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롬멜 박사는 우리의 깨어 있는 의식은 비특정 위치에 있는, 더 높은 차원의, 신적인 혹은 보편적, 우주적 의식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바로 이런 의식과의 접속이 근사체험을 통해 일어난다고 결론짓는다. 따라서 몸의 죽음은 한 개인 전체의 죽음이 아니라 그저 신체의 종말일 뿐이며, 그 사람의 의식은 그 너머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근사체험에 관한 주장에 대하여 대부분의 과학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비과학적 주장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롬멜 박사는 근사체험이 뇌의 활동 없이도 우리의 의식이 독립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의 의식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의식에 관한 재래의 논의 안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난해한 주장이다.

| 맺는말
롬멜은 “내 몸은 나 없이 살 수 없다. 그러나 나의 의식은 몸 없이도 살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몸 없는 나의 의식은 과연 ‘나’일까? 20세기 근사체험 이론은 사후 세계에 대해 다소 비종교적으로, 과학적이면서 동시에 경험적인 해명이라는 성격을 가진다. 근사체험 경험자들의 진술에서는 육체를 가진 인간의 성, 행위와 도덕적 평가, 그리고 인지 능력에 대한 가치 판단이나 관심은 보이지 않지만, 죽음은 두렵고 무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 너머에는 매우 따스하고 밝고 긍정적인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정보가 제공된다.
이런 정보는 재래의 뇌과학에 근거하여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죽음이란 뇌 활동의 전적인 정지라고 이해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롬멜 박사는 의식의 자리를 특정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리의 죽음이란 단지 몸의 죽음이며, 우리의 의식은 육체의 죽음을 거치면서 새로운 차원의 의식으로 접속된다고 보는 것이다.
과연 몸의 죽음을 넘어 영원한 환희의 생명 세계가 있는가? 그것은 기독교가 영생이라고 부르고 불교가 열반의 세계라고 본 것과 같은가? 아니면 비록 근사체험이라 할지라도 ‘죽었던 자’가 아니라 ‘죽음 가까이 다가갔던 자’라는 의미에서 죽음 너머를 다녀온 사람의 경험이 아니라고 보아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명료하게 평가할 수 있는 신학적이거나 정신 의학적인 답변은 아직 주어지지 않았다. 신학적으로 본다면 경험의 주체가 죽음 이전의 육체를 가진 자신과 육체에서 벗어난 자신이라는 ’이중적 자기의식’을 가진다는 주장은 매우 낯설다. 뇌과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의식의 자리를 탈육체적 혹은 뇌에서 벗어난 특정할 수 없는 지점으로 상정하는 것 또한 난해한 문제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근사체험은 ‘죽음체험’이 아니라는 점이다. 죽음에서 다시 건너온 사람은 없다. 근사체험 이론의 한계는 그 경험이 죽음 가까이 갔다가 돌아온 경험일 뿐이라는 데 있다. 따라서 이 경험으로 죽음 이후를 확실하게 설명하려는 시도는 충분한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한스 큉(Hans Küng)은 근사체험 이론으로 죽음 이후를 설명하려는 시도에 대해 체험에 대한 현대인의 과도한 믿음의 결과라고 평가했다.7 이와 같은 견해를 종합해보면 사후에 관한 우리의 관심은 종교 안에서나 밖에서도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 같다. 죽음 이후에 관해서는 자기 신앙의 전통 속에서, 혹은 청동 거울을 보듯 단지 희미하게 우리가 보고 들을 뿐이다.


1 필 주커먼, 박윤정 역, 『종교 없는 삶』(Living the Secular Life)(판미동, 2018), 21.
2 Raymond Moody, Life after Life: The Investigation of a Phenomenon–Survival of Bodily Death(1975, New York: Harper Collins, 2015).
3 Atwater, P. M. H., L. H. D., The New Children and Near-Death Experiences
(Rochester, Vermont: Bear&Company, 2003).
4 Raymond Moody, 위의 책, 11쪽 이하.
5 근사체험에 관한 이해를 위하여 최준식, 『죽음학 개론』(모시는사람들, 2013) 참조.
6 Pim van Lommel의 2018년 10월 25일 비디오강의 “Non-local Awareness and Near-Death Experiences”(https://goo.gl/aDthA2)
7 Hans Küng and Walter Jens, Dying with Dignity: A Plea for Personal Responsibility (New York: Continuum, 1995).



박충구 | 감리교신학대학교 및 동 대학원을 마치고 독일 본대학 및 미국 드루대학에서 공부했다. 감신대 기독교윤리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현재 생명과평화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8년 12월호(통권 7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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