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만주 유이민 소설 속의 기독교 03
문화·신학·목회 (2018년 9월호)

 

  기독교 복음의 소설적 형상화
  

본문

 

한국의 기독교 소설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펴낸 『문학비평용어사전』에는 ‘기독교 문학’을 이렇게 정의해놓고 있다. “기독교 문학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문학을 지칭한다. 넓은 의미에서는 기독교 신앙의 문제를 다루어 기독교적인 인간관을 반영한 문학을 말하며, 좁은 의미에서는 기독교의 신을 칭송하고 그 신비를 계시하여 많은 사람에게 기독교 신앙을 전할 목적으로 생겨난 문학을 뜻한다.” 그럴 법한 설명이기는 하지만 어딘가 미진한 듯싶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렇듯 기독교 문학이란 그 정의 자체가 생각처럼 그리 단순한 게 아니다. 각기 다른 개념을 지니고 있으면서 합해져 하나의 용어를 이루고 있는 ‘기독교’와 ‘문학’을 하나의 개념으로 조화시키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은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거니와, 미진한 대로 우리는 다양한 기독교적 모티프(motif)들을 작품 창작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경우를 기독교 문학이라 정의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문학은 신문학운동 초창기부터 적극적으로 기독교를 수용해온 셈이다. 흔히 고대문학에서 근대문학으로 발전해오는 이행기 문학으로 평가되는 애국계몽문학이나 신소설들에서 이미 기독교가 주요 모티프로 수용되고 있으며, 이를 주제화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안국선의 <금수회의록>, 김필수의 <경세종>, 최병헌의 <성산명경> 등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들은 기독교 신앙에 깊이 잠겨 있던 사람들에 의해 전교를 목적으로 쓰인 것들이다. 이 시기 기독교는 유교 윤리를 대신할 문명개화의 상징이자 구국의 한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대한협회, 기호흥학회 등을 중심으로 애국운동에 앞장선 안국선은 새문안교회의 집사였고, 김필수와 최병헌은 정규 신학교육을 받은 초창기 교회 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이 전교의 방편으로 소설 형식에 가탁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지난 호 글에서 언급한바, 소설의 사회적 공능을 높이 평가한 양계초의 영향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교세가 확장되고 사회 각 분야에서 교회의 역할과 기여가 커짐에 따라 기독교는 소설의 주요 제재로 적극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만 해도 기독교를 작품 안에 주제화하고자 한 성과들이 적지 않았으며, 주요한 설정으로 차용되는 경우는 아주 흔한 일이었다. 기독교는 우리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제재군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해방 이전의 소설사에서 이렇다 할 기독교 문학 작품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1931년 당시 대표적인 대중매체이던 「삼천리」는 ‘문단잡화’라는 기사에서 우리에게 일본의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나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 같은 기독교 문인이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아직 선교의 역사나 신문학운동의 역사 모두가 일천했던 까닭에 신앙과 문학이 동시에 삶 속에 제대로 육화되어 있는 작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 우리 기독교 소설은 그 폭과 깊이에서 가히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왔다. 어느 시대, 어느 종교에서나 있게 마련인 호교론적 전교 목적의 기독교 소설이 많은 중에도 성서적・신학적 주제들을 형상화하는 데 일정한 성과를 거둔 작품도 상당수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독교 신앙에 회의적이거나 부정적인 경향을 보이는 소설들까지도 한갓 교인들의 도덕적 일탈이나 허위의식 등을 시비하던 소아적 수준에서 벗어나 한결 성숙한 비판적 안목을 갖추었다. 그만큼 우리 기독교 문학의 토양이 비옥해졌다는 증좌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양에 허다한, 고전적 가치를 지닐 만한 기독교 소설 한 편을 아직 갖지 못한 형편이다. 전영택이 일찍이 문학에 대한 교회의 무지와 몰이해를 주요인으로 지적한 바 있으나 어찌 그뿐이겠는가? 초기의 많은 ‘기독교인’이 기독교를 신앙이 아닌 문명개화의 장식품 정도로 받아들였듯이, ‘신앙’이 세속적 욕망 실현의 수단이 되고 교회가 비즈니스화의 길을 내닫게 한 초라한 사유의 보편적 깊이 때문은 아닐까?

만주 배경의 기독교 소설
국권 상실기, 우리 민족의 유이민 체험은 문학의 공간적 배경을 크게 확장시켰다. 만주와 상해를 중심으로 한 중국을 비롯하여 러시아 연해주와 일본, 미국, 심지어 ‘애니깽’의 나라 멕시코까지 우리 문학의 주요 배경으로 자주 차용되었다. 그리고 기독교는 이들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유이민 소설에서도 주요 제재로 호명되었다.
특히 만주가 서사공간으로 설정된 소설들에서 기독교적 모티프를 찾아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교회나 성서의 일부 내용이 그 배경으로 설정된 경우는 아주 흔하다. 성구를 인용하거나 기독교인을 작중인물로 내세우고 있지만 주제화되어 있지는 않은 경우들이다.
이들 작품군에는 기독교에 대해 다소 냉소적이거나 비판적인 인식을 내비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강경애의 소설들이 대표적이라 할 것이다. 이에 비해 김창걸은 기독교에 대해 노골적으로 배타적 인식을 드러내는 예에 해당된다. 이들이 기독교를 비판한 것은 현실 모순을 개변할 수 있는 힘을 종교보다는 사회주의 쪽에서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기영도 마찬가지지만, 식민지 시절 그는 그래도 기독교에서 현실 모순을 타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해 보였다는 점에서 구별되기도 한다.
신문학운동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기독교 소설의 주류로 분류될 수 있는 유형은 호교론적 전교 소설이라 할 것이다. 만주 유이민 소설들도 마찬가지인데, 기독교 소설의 성과작이라 할 만한 것들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이를테면 주요섭의 <영원히 사는 사람>, 이용록의 <희생>, 김진수의 <이민의 아들>, 박계주의 <인간제물>과 <애로역정> 등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들은 초보적인 기독교 교리를 해설해 들려주고 복음을 전달하려는 의도의 산물이라 할 것이다. 이들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대상은 해방 전 작품들로 한정한다.

자기희생과 사랑의 소설화
<영원히 사는 사람>은 1925년에 발표된 주요섭의 단편소설이다. 대표적인 신경향파 문학으로 꼽힐 만큼, 빈궁 계층의 비극적 삶을 드러내 보여주는 데 주된 관심을 보이던 초창기 작품들과는 내용이 크게 대조적이다. 사실 그의 작품 세계는 퍽 다양한 편이다. 대표작으로 알려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나 <아네모네의 마담>처럼 애정과 윤리 문제에 애착을 보이기도 하고, 혼탁한 사회 문제를 비판하는 데 주력하기도 했으며, 만년에는 삶과 죽음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천착한 작품도 남겼다. 상해와 미국에서 유학하고 북경에서 직장을 얻어 10년 가까이 체류한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한인 사회의 실상을 그려 보인 작품들도 있고,
<북소리 두둥둥>처럼 일제 식민주의에 대한 강고한 저항의식을 내비친 작품들도 있다. 물론 여기서 살펴보고자 하는 <영원히 사는 사람>과 같이 기독교 신앙을 주제화한 것들도 하나의 작품군을 이루고 있다.
아버지가 목사인 기독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기독교 신앙에 젖어 산 그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의 부친은 평양 장로회신학교 3회 졸업생으로 동경 한인연합교회, 연화동교회 등에서 사역한 주공삼(朱孔三) 목사이다. <불놀이>의 시인 주요한(朱耀翰)이 형이었으며, 고리끼의 『밤 주막』을 연출하고 ‘동경학생예술좌’를 조직하기도 한 연극인 주영섭(朱永涉)이 동생이다. 형제가 성서 인물의 이름을 차용한 점이나 처녀작 <불쌍한 처녀>를 「기독신보」(1920)에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만 보아도 그의 의식 형성에 미쳤을 기독교의 영향을 짐작할 만하다. 초기작들에 두드러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에 대한 연민이나 의식 저변의 민족주의 항일의식도 길선주, 주기철, 조만식, 오윤선, 김동원 등이 이끌던 평양의 기독교 민족주의 노선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마적의 습격으로 전복될 위기에 처한 기차 앞에서 자기를 희생하여 수많은 승객의 안전을 지켜낸 정거장 기수의 이야기를 통해 이타적 희생정신의 가치를 강조했다. 이 작품은 1923년 5월 6일 산동성 임성(臨城)에서 마적들이 열차를 점거하여 외국인 39명을 포함한 110명의 승객을 인질로 삼아 정규군으로 편제해줄 것 등을 요구한 임성사건(臨城事件)을 제재로 삼았다. 마적단을 이끄는 손미요(孫美瑤)가 열강들의 압력 속에 진행된 북양정부와의 협상에서 요구조건을 관철하자 북양정부의 허약성을 간파한 다른 마적단의 준동이 사방에서 잇달았다. 북양정부가 뒤늦게 손미요 일파를 제거했으나 그와 똑같은 요구조건을 내건 마적들이 임성사건을 흉내 내 열차를 습격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작품은 이들 사건 중 1923년 11월 연산촌역에서 일어난 진포(津浦)철도 습격사건을 배경으로 삼았다.
10년 경력의 정거장 기수 아쌔는 정거장을 습격해 선로를 끊어놓고 열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도적들의 동정을 모두 살피고 있었다. 그러는 아쌔의 가슴에 심한 갈등의 파문이 인다. 역부로서의 책임과, 앞을 못 보는 늙은 어머니와 처자를 부양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이다. 기차를 정지시키려면 도적들의 총격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고, 직무를 회피해버리면 가족들을 살릴 수는 있으나 승객 수백 명의 희생을 외면하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아쌔는 결국 역부로서의 책임을 결단한다. 그는 기차가 들어오기 시작하자 신호등을 힘껏 내둘러 기관사에게 위급한 상황임을 알렸다. 이와 동시에 도적들의 총탄 세례를 받아야 했다.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가물가물해지는 의식 속에서 아쌔는 기차가 위기를 모면하고 도적들의 공격을 피해 질주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쌔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아버지’를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는 아들에게 “너도 사람 구실을 하여라.” 하고 들려주고 싶었다.
작가의 의도는 명료하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작품 제목에 이미 암시된 대로 성서의 가르침을 따라 영원히 사는 삶의 길을 일깨워주고자 한 것이다. 그것이 곧 ‘사람 구실’임을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용록의 <희생> 역시 이타적 희생정신을 강조한 작품이다. 우리 소설사에는 아직 작가 이용록에 관한 전기적 정보가 없다. 다만 <희생>이 1937년 대중지인 「사해공론」에 발표된 작품이라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본디 대학교수이던 의사 인규는 뜨거운 종교적 열정을 갖고 만주에 들어가 의료선교 활동을 펴고 있었다. 그는 비적이 습격해오는 바람에 절친한 친구 두 명과 함께 한 오두막에 숨어들었다가 그만 토벌대장 왕선인의 외아들을 쏘아 죽이는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왕선인이 자백을 요구하고 나섰다. ‘영길’이라는 친구가 한 짓이었으나 그가 부인하자 인규가 대신 범인임을 자인하고 나섰다. 인규의 잘못이 아님을 알고 있던 왕선인은 인규의 용맹을 치하하고 두 친구가 남아 싸움을 벌이고 있는 오두막을 향해 포격을 가하도록 했다. 그 순간 인규는 칼을 꺼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작품은 개연성이나 필연성이 크게 결여되어 있어 소설로서의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음에서 살필 박계주의 <인간제물>과 아주 흡사하여 상호 관계를 의심해볼 만한 작품이기도 하다. 성서 구절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에서 모티프를 취했으나, 앞선 의도에 비해 이를 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능력이 따르지 못하고 있다. 시든 소설이든 우리 기독교 문학사에서는 이런 현상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신문과 잡지 등 매체가 늘어나면서 작품 수요는 늘어난 반면 이를 충족시킬 만한 역량 있는 작가를 길러내지 못한 우리 교회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이용도 사상의 소설적 변용
박계주(朴啓周)는 만주에서 나고 자라 문학의 길에까지 나아간 문인으로는 거의 유일한 경우다. 말하자면 유이민 2세대라 할 것인데, 만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는 시인 윤동주 등 여럿이 있으나 박계주처럼 출생 이후 사회생활까지 만주에서 지속하며 만주 사람으로 산 경우는 없다. 그는 1913년 용정에서 태어나 구산소학교와 영신중학교를 마친 뒤 교직에 투신하기도 하고 문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가 만주를 떠나 이용도가 이끄는 조선예수교회에 합류한 것이 1933년의 일이니 그의 만주 거주 기간은 20년 가까이 된다. 그가 만주 제재의 작품을 누구보다 많이 발표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이처럼 오랜 기간 만주에 거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의 만주 인식에는 특이한 면이 있다. 선대의 만주 이주와 용정에서의 가난한 삶, 그리고 차별이나 억압 같은, 그의 삶 전체를 한정하는 제반 조건들을 역사적 맥락 안에서 파악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소설 곳곳에 그려진 비극적 삶의 조건들을 계절 따라 변하는 자연 현상을 대하듯 별 문제의식 없이 그냥 일별해 보이고 마는 태도가 그러하다. 온갖 ‘갈등의 도가니’ 속 같은 만주의 현실이 그에게는 다만 흥미 있는 소재일 뿐이었다.
그것은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그가 만주에서 나고 자라 식민주의의 억압 아래 놓인 현실의 모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고, 또 하나는 그가 <애로역정> 1, 2부에서 그려 보인 것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한 폭력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터득한 삶의 한 방식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또 하나의 요인은 이후 그의 삶과 문학을 지배하는 가장 큰 힘으로 작용하는 이용도 목사의 영향이다.
그는 용정 시절 일찍이 기독교 신앙에 귀의했다. 영신중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1931년 봄쯤부터라 했다. 부흥회 인도차 용정에 온 이용도 목사와의 만남이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이 만남은 그의 생애에 무엇보다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그의 문학세계를 형성하는 원형질이 되기도 했다. 그가 이용도, 이호빈, 백남주, 한준명, 황국주 등을 중심으로 한 ‘예수교회’ 창립에 참여한 것은 1933년 6월로 갓 스물을 넘긴 때였다. 잘 알려진 대로 예수교회의 신앙운동 노선은 처음 백남주, 한준명, 황국주 등이 중심이 된 새로운 신비주의 신앙운동 노선에 이용도 사상이 접맥된 것이다. 그 핵심은 바로 역사와 현실에 일정하게 거리를 둔 ‘고난받는 사랑의 신비주의’였다. 신앙의 내면화가 불가피하던 1930년대의 역사적 배경이 암시해주듯 그 특징은 다분히 몰현세적이었다. 이 같은 예수교회의 태도가 박계주로 하여금 현세로부터 눈길을 돌리게 했을 수도 있다.
예수교회의 중심부에 든 박계주는 이용도 사상의 대변자였다. 기관지 「예수」의 편집을 맡아보면서 갖가지 글쓰기 형식을 통해 이용도 사상을 녹여냈다. 이 점에서 그는 도산 안창호와 이광수, 최남선의 관계와 같다. 이광수는 흥사단이나 수양동우회를 통해 안창호 사상을 구현하고자 하는 한편 논설이나 소설까지도 그 방편으로 활용했다. 이는 <무정>이나 <민족개조론>에서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최남선이 발행한 「소년」, 「청춘」 등은 모두 도산의 준비론 사상을 실질적으로 구현해내기 위해 동원된 잡지들이었다. 박계주가 예수교회의 중심인물로 활동하면서 문학을 이용도 사상을 구현하는 수단으로 삼아 <순애보>, <인간제물>, <애로역정>, <진리의 밤>, <구원의 정화> 등의 작품을 통해 일관되게 이용도 사상의 핵심인 ‘조건 없는 사랑’을 강조한 것은 이광수나 최남선의 방식을 닮았다.
<인간제물>(1939)에서 작가는 중국인 선주민들의 억압 위에 동족의 횡포까지 더해진 유이민 생활의 비극성을 바탕에 깔고 원수마저 사랑하여 용서할 것을 강조해서 나타낸다. 5년 전 만주 시루허우에 정착한 철규 부부는 부인 야학원을 열고 소비조합과 의료기관을 세우는 등 이주 동포들을 위한 이상촌 건설에 투신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족인 송통사가 아내 연희를 탐하여 겁탈하려 들었다. 연희는 이에 저항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순결을 지켰다. 뒤늦게 나타난 남편이 복수하려 하자 연희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이를 말리고 용서를 당부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송통사도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조건 없는 사랑과 용서, 이것은 이용도 사상의 진수라 할 만한 것이었다. 그는 정통 신학이나 교리와 대립되는 무조건의 사랑을 표방하는 부흥사였다.(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애로역정>(1941)은 이용도의 사상을 드러내는 데 한결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작중인물의 입을 빌리는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이용도 사상의 교리 해설서 같은 느낌을 줄 정도이다. 전체 3부로 구성된 작품 중 1부와 2부에서는 이주민들의 삶과 수난의 실상이 비교적 박진감 있게 그려져 있다.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화자의 일방적인 언술로 처리한 것과 같은 구성상의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하고 광범위한 소재나 배경들이 자연스럽게 동원됨으로써 핍진성을 더해주는 것은 오랜 만주 경험을 가진 박계주만이 가능한 성과일 것이다.
청도와 독일을 배경으로 한 3부에서는 주인공 철규를 사이에 둔 아그네스, 롯테 사이의 애정관계가 서사의 얼개를 이루고 있으나, 대부분은 지루한 신학적 교리문답 같은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여기에는 신론에서부터 종말론에 이르기까지 신학적 주제들이 거의 망라되어 있으며, 죽음을 앞둔 야곱 신부가 사랑의 특성을 열두 가지로 요약해 들려주는 것 외에는 모두 주인공 철규가 롯테를 상대로 한 언술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에서 문자주의 성서해석 태도를 비판하는 대목, 말세론이나 재림론 혹은 심판론 등의 내용은 기성 교회의 정통 교리들과 충돌할 여지가 다분해 보인다. 참고로 3부의 한 대목,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적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그가 주체적으로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는 때에만 인식 가능한 초자연적 존재임을 역설하는 부분을 소개해 보겠다.

하느님이 롯테 씨의 작은 두뇌의 시험관 속에 넣어져서 흔들려지고 분석(分析)되며 자연자 인간 장중(掌中)에 잡혀지는 자연적인 것이 되어서야 어찌 그를 신이라 부를 수가 있겠어요? 하느님은 하느님이기 때문에 즉 자연자가 아니고 초자연자이기 때문에 인간의 인식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은 자연물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자인 인간의 인식의 대상이 된다면 그는 벌써 신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이거나 그렇잖으면 한 개의 물체에서 다른 것이 될 수 없다고 전 생각해요. 신은 인간이 아니고 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는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그 초자연자가 자연자의 지식에 의해서 알려질 수도 없거니와 설혹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간에 의해서 생각되어지고 알려지는 신이 있다면 그것은 이념의 신이거나 혹은 철학자의 범신론적인 신이 될 수는 있으되 무한자요 초월자인 산 인격신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대상화할 수 있는 것은 ‘물체’이거나 ‘사상’이기는 해도 인간에게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절대자요 초월자요 독립자요 무한자요 완전자인 인격신은 비절대자, 비초월자, 비완전자, 비무한자인 인간의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따라서 인간지식의 산물이거나 사상의 제품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소설이 이용도의 사상을 얼마나 진솔하게 전달하고 있는지를 밝히는 일은 논외의 과제이다. 다만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종교가 문학의 외투를 입을 경우 미학적 질서 위에 육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상기할 수 있을 뿐이다.
박계주는 이 밖에 <지옥에도 꽃은 핀다>, <오리온 성좌> 등에서도 조건 없는 사랑의 메시지를 들려준다. 마적굴을 탈출하면서 적대관계에 있던 인물까지 빼낸다거나, 집을 떠나 있는 사이 남의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아내의 허물을 용서한다는 내용의 작품들이다.

기타
그 밖에도 만주 배경의 소설들 가운데 단편적으로나마 기독교 인식의 면모가 드러나 보이는 작품들로는 반지불의 <호지>(胡地, 1932), 전영택의 <여자도 사람인가>(1938), 김진수의 <이민의 아들>(1940) 등을 들 수 있다. 작가의 실명이 확인되지 않은 <호지>에서는 반기독교주의자들과 맞서 일전을 불사할 자세를 보이는 주인공을 내세워 기독교에 우호적인 작가의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여자도 사람인가>에서는 신앙에서 비롯된 헌신적인 사랑을 통해 여자는 사람도 아니라던 남편의 지독한 편견을 바꾸어놓은 여주인공을 내세워 참된 신앙인의 자세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민의 아들>은 새벽기도를 거르지 않던 독실한 기독교인 교사가 과부와 놀아난다는 오해를 받아 쫓겨 간 뒤 주민들이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그리워한다는 내용이나 미완이어서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살펴본 만주 배경의 기독교 소설들은 일반적으로 호교론적 작가의식의 과잉으로 인해 미학적 가치가 크게 손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종교 소설이나 이데올로기 소설에서 흔히 나타나는 한계인데, 종교이든 사상이든 그것은 언제나 작품 이면에 암시적으로 내포돼 있어야 할 것들이지 곧바로 작품 표면에 드러내놓고 설교하거나 해설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표언복 | 목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다 퇴직했다. “해방 전 중국 유이민 소설 연구”로 학위를 받았으며, 일본, 러시아, 미국 유이민 소설 연구로 관심을 확장해 후속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2018년 9월호(통권 717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