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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신학·목회 (2018년 6월호)

 

  (2) 다석 유영모의 사상
  

본문

 

* 이 대담은 다석 유영모 연구가인 박영호와 박재순이 다석의 일상생활과 사상을 주제로 2004년 12월 12일 성천문화재단에서 한 것이다. 다석은 남강 이승훈이 설립한 오산학교 교사와 교장을 지냈고 서울YMCA 연경반(성서연구반)을 지도한 사상가였다. 대담은 한국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의 연구비 지원을 받은 한신대 프로젝트(“한국개신교가 한국근현대의 사회 문화적 변동에 끼친 영향 연구”)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한신대 학술원 신학연구소의 허락을 받아 박영호와 박재순의 대화를 두 회에 걸쳐 소개한다. - 편집자 주

(지난 호에서 계속)
박재순:: 유영모 선생님은 동양학의 대가로서 기독교 정신과 동양종교, 민족사상을 종합하고, 얼과 정신, 몸을 곧게 세우고 사신 분으로 압니다. 유 선생님의 사상을 한마디로 어떻게 말할 수 있나요?
박영호:: 유 선생님은 대단한 노력형이셨어요. 댁에 보면 고전 책이 많았어요. 다석 선생님은 정적인 분이니까 골똘히 혼자서 연구하셨지요. 다석 선생님은 선생님이 없잖아요. 한문도 아버님한테 배우고 서당에서 김인수 선생이라는 분한테 『맹자』 배운 거밖에 없죠. 그러고는 경신학교 한문 선생님이 김도희 선생님인데 다석 선생님의 한문 실력이 선생님 못지않았다고 해요. 한자를 파자(破字)해서 한시도 쓰고 해서 김도희 선생님이 아주 탄복을 했대요. 나중에 『화엄경』을 어떤 스님한테 배웠다고 하지요. 타고난 천재에다가 대단한 노력형이라서 깊이 파고들 수 있었지요.
박재순:: 안창호, 이승훈, 여준, 신채호가 모두 신민회의 중심인물들이지요. 안창호가 교육을 통해 국민을 일깨우고 나라를 바로 세우자고 주장해서 이승훈 선생님이 오산학교를 세웠지요. 그런데 유 선생님이 책을 읽으실 때 특별한 방법이 있었나요? 이를테면 주자는 글을 읽을 때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으면 밑줄을 그었대요. 두 번째 볼 때도 이해가 안 되면 이해될 때까지 노력하다가 안 되는 건 또 밑줄 긋고, 세 번 읽을 때는 또 그래도 이해 안 되는 건 또 밑줄 긋고 해서 마지막에는 이해 안 되는 게 없을 때까지 읽었다고 해요.
박영호:: 다석 선생님이 1971년에 저한테 성경책을 하나 주셨어요. 1909년도 판 신약성경인데 온통 빨간 방점을 찍어놓고 빨간 줄을 그어놓기도 했어요. 성경책이 거의 빨갛다 할 정도예요. 하루도 성경 안 읽을 때가 없었대요. 한창 젊을 때 30, 40, 50대까지도 거의 날마다 성경을 읽으신 것 같아요. 형이상학이 약한 주희가 하나님에 대한 걸 잘 모르면서, 사서에다가 주석을 붙여놓아서 그 영향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받아서 우리나라 유학자들이 거의 무신론자가 되었어요. 그런데 다석 선생님은 ‘공자, 맹자가 다 하나님만 아는 분들인데 그렇게 되느냐?’ 하시고, 유교가 이렇게 잘못된 거는 하나님을 내버려서 그렇다고 하셨어요.
다석 선생님의 유교 해석은 주희와 달라요. ‘천명지위성’(天命之爲性)에서 천명이란 하나님의 명령이고 생명은 성령인데 그 성령이 내게 온 것이 생(性), 바탈이라는 겁니다. 바탈이라는 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내가 쓰는 것이고. 성령을 내가 모시고 따라가는 걸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 가운데 왔는데, 내게 오신 하나님, 성령의 뜻을 좇아서 가는 게 길입니다. 나만 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보고 같이 가지고 하는 게, 그게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라는 겁니다. 다석의 유교 해석은 기존 유학자들의 해석하고는 전연 달라요. 이것은 굉장한 것입니다.
박재순:: 다석은 자신의 하나님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유교 경전을 해석하신 것이죠?
박영호:: 그렇죠. 공자도 하나님의 천명, 하나님의 생명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대인을 두려워한다고 하셨지요. 공자의 하나님은 상상 이상으로 인격적인 하나님이에요. 그야말로 신격의 하나님이죠. 이 세상 사람은 날 몰라주는데 하나님만 날 알아준다고 공자가 말씀하셨지요. 공자는 그런 신격의 하나님을 믿은 분인데, 지금 유교인들은 효도나 하고 제사 지내는 게 유교인 줄 알아요. 천(天)을 그냥 원리로 생각합니다. 다석 선생님의 공로가 있다면 오리지널 예수를 생각하고 드러내고 오리지널 부처님, 오리지널 공자, 맹자, 장자를 드러내고 맛보여준 것입니다. 함 선생님이 노자를 많이 하신 것도 그게 다 다석 선생님의 영향이죠. 유 선생님이 다른 사람의 주석을 보긴 보셨는데, 의지하지는 않았죠. 당신이 독창적으로 하셨죠.
박재순:: 다석 선생님은 일본에서 물리학을 하셨고, 천문학, 수학을 좋아하셨고, 서양 학문을 접해서 과학이나 화학을 가르치셨다는데, 서양 학문에 대한 공부는 어느 정도 하셨을까요?
박영호:: 영어는 잘 못하셨어요. 영어에 약한 걸 그걸 아쉽게 생각하셨지요. 당신이 미션스쿨에 다니면서 일어를 알았기 때문에 빨리 서양 학문을 받을 수 있었죠. 춘원 선생님이 일본에서 중학교 졸업하고, 오산학교에 톨스토이 전집을 가지고 왔다 그래요. 그때 톨스토이 전집을 읽어보신 거죠. 20대 초에 톨스토이뿐 아니라, 읽을 수 있는 것은 일어를 통해서 거의 다 읽으셨어요. 그때만 해도 간디 책은 많이 번역이 안 됐을 때니까.
서양 철학자 중에서는 에크하르트를 좋아하시고, 김교신 선생하고 가깝게 지내면서 무교회에서 칼라일을 워낙 좋아하니까, 칼라일의 『의상(衣裳)철학』도 읽으셨고. 철학도 뭐 읽으시긴 하셨는데 워낙 당신이 신앙적인 사람이셔서 특정한 철학에 매이지는 않으셨지요. 헤겔의 정반합이라는 거는 인류에게 공헌하는 소리다. 변증법 같은 거는 인정하셨지요. 그러나 그런 것은 당신한테는 한 단계 아래잖아요. 그걸 우리한테 가르쳐 주려고 하지는 않으셨어요. 괴테도 인정하시고 말씀하셨지요. 서양 사상에 대해서 전부 다 한 차례는 독서를 하셨는데, 당신 마음에 드는 거는 톨스토이하고 에크하르트하고 몇몇 영성에 뛰어난 분들이었어요. 교의신학에 갇힌 분들은 그야말로 코드상 안 맞으니까 우리한테 언급을 하지 않았어요.
박재순:: 데카르트 글도 보셨을까요? 소개서가 아니라 직접 그 사람들의 책을 보셨나요?
박영호:: 그렇죠. 일본 책을 통해서 읽어보신 것 같아요. 6・25 때 책을 많이 잃어버렸잖아요. 잃어버렸어도 많이 남아 있었는데, 거기서 대략 뭐를 읽으셨는지 짐작을 할 수 있죠. 거기에 그런 책들이 있어요. 일어를 하셨고, 영어는 좀 약하고, 에스페란토어는 잘 하시고, 중국말을 하셨죠. 김교신 선생님 모임에서 다 원어로 성서를 연구하기 때문에 희랍어도 조금 아시고 히브리어도 조금 아셨어요. 다석의 성경을 보면 희랍어로 된 문구가 나오고, 『다석일지』에도 많이 나와요. 우리말 성경을 많이 보시고 일어 성경도 보시고, 중국어 성경도 보셨어요. 그리고 우리나라에 공동번역 나왔을 때도 선생님이 아주 연로하셨을 때인데 제일 먼저 가셔서 사가지고 오시더라구요. 지금 성경에 잘못된 게 많으니까 옳게 번역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축소판 팔만대장경도 사다 놓으셨어요. 선생님은 될수록 우리말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셨어요. 한글, 우리말을 연구하셨고 『천부경』이나 『삼일신고』를 많이 보셨지요.
박재순:: 일지에 보면 삼일철학에 대해서도 많이 말씀하시는데 혹시 선생님이 대종교와 가까이하시거나 가까운 분이 계셨던가요?
박영호:: 대종교 총책임자였던 윤기복 선생은 만주로 피난 갔다 온 분인데 그분이 구기동에 찾아오기도 하고 다석 선생님이 그분을 찾아가기도 하셨지요. 『천부경』, 『삼일신고』 같은 것도 윤기복 선생 쪽에서 왔다고 생각합니다. 『천부경』은 우리말로 번역해서 『다석일지』에 실려 있어요. 유승국 교수님은 다석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천부경』 풀이를 들었대요.
박재순:: 『천부경』을 풀이하면서 한보다 무에 초점을 두는 이들도 있습니다. 무에서 형이상학적 깊이를 본다는 거지요. 그런데 선생님은 한에서 시작해서 한으로 끝나는데, 그게 맞는 풀이 같아요. 유무 이야기도 나오지만 결국은 한(하나님)으로 귀결된다. 그것이 『천부경』을 직역한 것이면서 한(韓) 사상, 하나님 사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잘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유와 무보다 더 깊은 곳에 하나님이 있다.” “시작과 끝이 한이다.”
박영호:: 쉰두 살 때 유 선생님께 정신적 혁명이 일어나는데 완전히 자기 개체가 깨지고, 하나님, 전체의식으로 의식의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졌어요. 예수님도 “내 속에 하나님이 와서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하시잖아요. 하나님의 판단으로 판단하는 게 다 옳다고 하셨어요. 모든 걸 하나님 자리에서 생각하는 게 전체의 자리에서 생각하는 것이죠. 그렇게 사는 사람이 하나님 아들 아니겠습니까? 그게 이루어진 게 쉰두 살 때였죠. 다석 선생님은 귀일(歸一), 하나로 돌아가자,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노년에 빗자루질을 많이 하셨어요. 빗자루가 닳을 정도로 청소를 하셨대요. 선생님은 깨끗을 말씀하셨지요. “끝까지 다 깨진 게 깨끗한 거다. 더럽다는 것은 덜 없어져서 더러운 거다. 또 깨어서 끝내는 것이 깨끗한 거다.”라고 하셨어요. 우리말을 살려내려고 애쓰셨지요.
박재순:: 말놀이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말은 우리 무의식 깊은 곳에 박혀 있는 것이니까, 우리가 우리말을 수만 년 동안 써왔고 앞으로도 쓸 말인데 이 말을 다듬고 이 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 민족이 새로워지는 거 아닙니까?
박영호:: 그럼요. 가장 친근한 게 말인데, 말에다가 의미를 부여해서 영향을 주는 게 얼마나 큽니까? 한신대 채수일 선생님이 “신학을 독일어로 해야 되느냐? 우리말로 신학도 하고 철학도 하신 이가 다석 선생님이다.”라고 하셨어요.
박재순:: 강의하신 모습이나 강의 방법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지요.
박영호:: 제가 농사짓다가 가면 나 한 사람 앉혀놓고 당신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말씀하셨어요. 당신은 점심을 안 드시지만 우리는 배가 고프잖아요. 그렇게 한 사람 앉혀놓고도 열강을 하시고, 겨울에는 털 스웨터를 입으셨는데, 열강을 하시니까 더워서 벗어놓고 하시고, 어떤 때 신이 나면 당신 글에다가 가락을 붙여서 시조 읊듯이 설명하셨어요. ‘ㅣ’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당신이 서서 “이~이~” 하시며 “이거는 세계적으로 공통어야. 이이 저이 하는 게 좋은 거지. 미스터니 김 상이니 하냐?”라고 하셨어요. 영어 ‘I’만 아니라 희랍어 이요타도, 중국어도 하나가 사람을 가르킨다는 겁니다.
당신은 걸어오시니까 시간 늦으시는 법이 없어요. 낙상해서 하루 못 오실 때가 있었는데 기다려도 안 오셔서 구기동에 찾아가니까 경황이 없어서 못 알렸다고 그러셔요. 다른 책은 아무것도 안 가지고 오시는데 옛날 신구약 성경 하나만 천으로 만든 가방에 들고 다니니까 누가 사주팔자 보냐고 하더래요. 그래서 “하나님 관상 본다.”고 하셨대요. 신구약 성경 하나만은 꼭 들고 오시고 다른 고전들은 노트에 쓴 것만 들고 오시지요.
다석 선생님은 함 선생님처럼 달변은 아니시지만 시적인 표현, 은유적인 표현을 잘하셨어요.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설명하려면 비유를 잘해야 하는데, 유 선생님은 나무에서 똑 따온 과일 같은 싱싱한 비유를 잘 하시죠. 말씀하시다가 한참 신이 나면 손짓 발짓으로 춤을 추셨어요. 보통 음란한 춤은 하체를 많이 움직이잖아요. 선생님은 신이 나서 상체를 움직이시며 춤을 추셨어요. “신앙 생활한다는 것은 기쁜 것이다.” 기쁨은 기를 느끼는 것이지요. 선생님은 기철학을 하시잖아요. 기쁨은 기를 뿜어내는 거지요. 배가 ‘고프다’, ‘슬프다’, ‘바쁘다’에서 ‘쁘다’는 느끼는 거예요. 성령이 뿜어져 나와야 되는 거지요. ‘인생이 만날 우울증에 걸려서 어떻게 사느냐, 기쁨이 넘쳐야 신앙생활이지. 분열증 걸리고 우울증 걸리는 게 신앙인에게 있을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기쁘다’에서 ‘쁘다’는 ‘느끼다’를 뜻하고, ‘기’라는 건 한자의 ‘氣’가 아닌 우리의 ‘기’라는 겁니다. 그걸 성령으로 연결시켜서 기쁨이란 ‘그렇다, 옳다, 맞다’면서 성령을 느끼는 게 기쁨이라는 겁니다. ‘인생이 기뻐야지 울상을 짓고 해서 되느냐 이거야. 신앙인은 당장 내일 죽는다 해도 기쁘다 이거야. 죽는 것처럼 기쁜 게 어디 있느냐.’ 이겁니다.
다석 선생님의 신앙생활에서 52세를 전후로 다른 것이 있어요. 「성서조선」에 다석 선생님이 38년 만에 믿음에 들어가는 이야기를 쓰셨어요. 그전에는 지금 교회에서 말하듯이 육신의 예수를 그대로 그리스도로 믿었는데, 52세 이후에는 예수님의 마음 가운데 온 하나님의 영이 그리스도이지 예수님의 몸뚱이 그 자체, 마리아가 낳은 인간 자체가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마음 가운데 온 영적인 생명인 하나님의 성령이 그리스도라는 겁니다. 다석 선생님은 예수님도 영적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다석 선생님은 2,000년 전 예수나 석가한테 온 영원한 생명이 자신에게도 왔다고 하셔요. 그런 영적 체험을 한 것은 쉰 두살 때인 것 같아요. 그리고 영이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생명이기 때문에 너, 나가 없다는 거예요. 영으로는 예수 따로 있고, 석가 따로 있고, 유영모 따로 있고, 간디 따로 있고 그런 것이 아니고 영적인 생명으로는 너, 나가 없기 때문에 한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기 때문에 회통이 되는데 그러나 교회에서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하니까, 교회하고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지요. 유승국 선생님에 따르면 다석 선생님은 유교에 대해 선생님이시고, 불교에 대해 선생님이시고, 기독교에 대해 선생님이신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수나 석가나 공자, 맹자 중심으로 해서 그런 거지 현재의 기독교, 현재의 유교, 현재의 불교와는 안 맞는 거예요.
다석 선생님의 기조정신은 예수님의 속에 온 영이에요. 그것을 제일 잘 나타내고 실천해 보여준 사람이 예수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은 나에게 신앙을, 하나님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 오직 한 분의 선생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을 믿은 분인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하고 분별이 안 되지 않나요. 석가나 공자, 맹자 이런 분보다 더 분명하게 예수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이야기한 것을 유 선생님은 굉장히 좋아하신 거예요. 결국에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가르쳐주는 것이 종교거든요. 그 관계를, 가장 절대와 상대의 관계를 인간적으로, 인격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버지라는 거예요. 그것이 제일 좋아서 예수님을 좋아하셨지요.
박재순:: 유 선생님이 예수님을 제일 좋아하고 가까이하신 것은 사실이지요.
박영호:: 그렇죠. 한 아버지 하나님을 우리한테 분명하게 가르쳐 준 분은 예수님이지요. 다른 분들도 그것을 가르쳐줬는데 난삽한 데가 있어요. 예수님의 생애조차도 하나님 아버지한테 충성하고 효도하는 것을 가장 잘 드러내셨어요. 그래서 “나는 예수가 제일 좋다.”고 다석 선생님은 공공연하게 말씀하세요.
박재순:: 혹시 유 선생님이 여성과 관련해서 특별히 하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빨래하고 청소하는 여인네들이 한사귀족(閑士貴族)들의 속구주(贖救主)다.”라고 말씀하신 대목이 나옵니다. 여성들이 더러움과 때를 씻어주는 구세주라고 하신 것을 보면 여성들에 대해 친애하는 마음이 있으셨던 것 같은데, 혹시 남성보다 여성에 대한 특별한 시각 같은 것이 있으셨나요?
박영호:: 선생님은 좀 모순된다고 할까 이율배반적인 말씀을 하시는데 ‘기독교는 아버지종교’라고 하셨어요. 말에서 ‘ㅏ’가 기본음이거든요. 영어의 ‘A’도 그렇고. 일본어도 ‘아이우에오’에서처럼 ‘아’가 먼저 되고 애기들이 옹아리할 때 나는 소리도 아래아(ㆍ) 소리거든요. 유 선생님은 아버지를 ‘아바디’라고 해요. 지금도 함경도에서는 아바디라고 하지요. 아바디에서 ‘아’는 모든 음의 시작을 나타내고, ‘바’는 ‘밝아진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디’는 땅을 굳게 딛고 실천한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풀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받아가지고 세상이 밝아지도록 그것을 디디고 실천해나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머니’는 ‘어–머니, 아–머니, 멀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필요 없다는 겁니다. 성숙한 사람은 어머니에게서 독립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성숙한 아들에게는 아버지 하나님만 있으면 된다는 거지요. “우리가 오늘 이야기하고 들을 수 있는 것도 집에서 부인네들이 다 수고하기 때문이 아닌가. 여인네들에 대한 고마움을 알아야 된다.”고 늘 말씀하셨지요. 선생님이 레닌복, 노동복을 입으시기도 했고, 늘 간편한 옷을 입으셨는데 그 까닭은 여자들의 일손을 덜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자기를 이기기 위해서 탈가족해야 된다는 거예요. 가족밖에 모르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셨지요.
또 국가주의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하셨어요. 이런 나라에 쫓아가서는 안 되고 하나님 나라를 쫓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국가 이기주의가 개인 이기주의보다 더 무서운 거거든요. 국가를 벗어나 하나님 나라로 가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러나 국가 민주주의가 잘 되어야 하고, 가정도 유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셨지요. 가정이 다 깨져버리면 애들을 어떻게 키우느냐, 그리고 몸뚱이도 건강해야지 건강을 잃어버리면 이중으로 다치는 거라고 하셨어요. 이런 국가, 우리가 따라갈 필요가 없다, 그런 공무원 하지 말라 이거예요. 그러면서도 ‘이 우주가 얼마나 장엄하냐! 이 우주가 혼불 나는 거다.’ 하셨어요. 우주도 상대 세계를 초월해야 된다는 거예요. 상대적 우주에 갇혀 있으면 감옥이라는 거예요. 다석 선생님 집 앞에 가면 지금은 현대빌라가 들어섰는데 네모난 돌에 사람 인(人) 자를 써 놓았어요. 그것은 죄수 수(囚) 자거든요. 몸, 집, 국가, 우주조차도 내 관이고 수의고 감옥이라는 것입니다. 다석 선생님은 몸, 가족, 국가, 우주를 늘 이중적으로, 모순과 이율배반으로 보셨어요.
박재순:: 벗어나자고 할 때는 이 몸이 죄수복인데, 그러나 또 살자고 할 때는 이 몸이 굉장히 소중한 존재가 되지요.
박영호:: 그렇죠. 선생님의 말을 잘 들어야 해요. 몸이 병이 나버리면 이중으로 갇힌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몸 성해야 한다. 몸 성히, 맘 좋이, 뜻 태우를 말하셨어요.
박재순:: 어머니에게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어머니에 붙어 있는 나는 어린애이니까 독립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지요?
박영호:: 그렇죠. 상대세계를 멀리하고 절대세계로 가야 하는데, 아버지는 독립해서 절대세계로 나가는 것을 뜻하고, 어머니는 상대세계를 뜻하는데, 상대세계는 나를 키워주고, 나를 안고 있는 어머니 탯집 같은 건데 이것을 벗어나야 한다는 겁니다.
박재순:: 금욕을 강조하셨는데 다 금욕해서 애도 안 낳고 가정도 없어지는 것에 대한 말씀은 안 하셨나요?
박영호:: 선생님 말년에 함 선생님 스캔들이 있고 그때 인구폭발 된다는 이야기가 신문에 많이 나올 때여서 금욕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씨앗도 두루 흩어져서 나야 되는데 씨 바가지를 한 군데 쏟아 놓으면 다 죽는다는 거지요. 모든 짐승들도 스스로 수를 조절해서 인구폭발로 자멸하는 일은 없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이 이것을 조절하지 못해서 자멸한다면 이런 창피스러운 일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셨지요. 될수록 결혼하지 말고 자식 낳지 말라고 하셨어요. 옛날 같으면 이런 소리 하면 안 되는데 지금은 인구가 폭발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니 내 감히 이런 소리 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생식하고 자식을 낳은 것은 영원한 생명을 버리는 것이니까 영원한 생명을 붙잡고 생식을 하지 말자고 하셨어요. 마하트마 간디도 정신적인 아들인 제자를 길러야지 하나님의 나라를 번식시키는 거라고 했지요.
박재순:: 다석 선생님의 금욕사상을 젊은이들에게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성적인 자유 속에 살아가니까 금욕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거든요.
박영호:: 다석 선생님도 ‘30대는 암만 가르쳐도 실천하기 어렵다. 40이 넘어야 그게 되더라.’고 하셨어요. 사람이 40-50이 되어야 철나는데, 그것도 30대에 아주 노력하는 사람이라야 40-50대에 철이 나지 안 그러면 40-50대에 더 바람난다는 거요. 탐욕을 다스려 보시를 하고, 노여움을 다스려 자기를 이기고, 생식하고 자식 낳고 싶은 것을 참으라는 이야기요. 탐진치(貪瞋癡)를 다스린 후에 정진하여 반야, 선정에 이르는데 그것은 절대자와 나와의 관계입니다. ‘에고’로서의 자아가 완전히 없어지고 절대 속에 내가 동화되는 것을 선정이라고 하고, 하나 되는 것, 귀일하는 것, 개체의식이 완전히 소멸되고 전체의식에서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영적인 생명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을 이야기하셨어요.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다.’라고 기독교에서 말하는데, 그게 아니고 영적인 생명으로 하나님이 주신 성령으로 내가 아버지와 하나 되는 거지 예수의 몸뚱이가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와 나가 하나 되었다는 말씀이 자신을 신격화시키는 말은 절대 아니라는 겁니다.
박재순:: 마지막으로 다석 선생님과 관련해서 하실 말씀을 해주시죠.
박영호:: 다석 선생님이나 나는 비정통이기 때문에 교의신학자들을 인용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다석 선생님은 오직 예수의 참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하는 분들 가운데 나에게 욕할 사람이 많을 텐데 욕하는 사람이 한 분도 없고 오히려 몇 분은 찾아오기도 하고 이제까지 예수밖에 몰랐는데 당신 책을 읽고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다석 선생님은 교회 밖에서 나온 하나님의 큰 효자이다. 굉장히 고맙게 생각한다.”라고 말하는 분도 계셔요.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는데 목회하는 분들은 교의신학을 따르기 때문에 다석의 책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김경재 교수님이나 정양모 교수님이나 심일섭 교수님 이런 분들은 많이 이해해 주시고 당신네 글에 유영모라는 이름을 나타내셔요.
박재순:: 요새는 유영모 선생님의 말씀을 많이들 하세요.
박영호::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싶고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분들은 다석 사상을 참고하시면 예수님을 바로 아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다석 선생님은 날 보고 찾아오지 말라고 할 정도로 우리는 교단이나 조직을 만드는 데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다만 선생님의 사상을 알고 싶은 사람은 성천 유달영 선생님이 세우신 성천문화재단에 사무실에 ‘다석 사상 연구회’라고 간판을 붙여 놓았어요. 목회하시는 분들이나 스님들이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궤도 수정을 하는 데 다석 사상이 참고가 된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대만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석 사상을 공부해서 예수님의 본모습을 아는 데 참고로 하고, 앞으로 21세기 모든 종교가 회통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종교가 평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데, 앞으로 모든 종교를 회통해서 진일보한 자리에서 다석 사상을 공부한다면 잘 이해될 겁
니다.
예를 들어 불교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오늘날 불교에서 부처님이 신앙의 대상이 되어 있는데 부처님의 신앙은 불상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니르바나를 추구하는 것이지요. 적멸(寂滅)은 니르바나를 의역한 것이고 열반은 음역한 것입니다. 절은 니르바나님을 모신 보배로운 궁전이라서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같이 우상 배격한 사람 없어요. “부처님은 니르바나라는 하나님을 믿은 분이다.”라고 발표를 했어요. 그것을 나타내는 것이 적멸보궁이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불교가 하나님 신앙에 가까워지고, 기독교가 예수님이 믿던 진짜 아버지 하나님을 찾게 된다면, 그리고 톨스토이의 말대로 이슬람교를 기독교의 하나의 종파로 본다면 종교들 사이의 벽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높은 차원에서 종교는 정치인들을 가르쳐야 되는 거예요. 함 선생님이 다석 사상을 똑바로 지켰다면, 함 선생님이 스캔들만 없었다면 함 선생님의 입을 거쳐서 대통령이 나올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질 않았을까 아쉽게 생각합니다. 현 정부의 정치인들이 어정쩡한 사상으로 지금 정치하고 있는 거예요. 노무현 대통령부터 다석 사상을 한 번 읽으면 비전 있는 정치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조선조 들어서면서도 유교를 기조정신으로 정치철학으로 하고, 고려시대에도 불교로 하듯이 민주정부도 기조정신이 있어야 되는데, 지금 386세대들은 젊을 때 민주화 운동할 때 좌경 서적 봤을 텐데 그런 바탕으로 어떻게 정치를 할 수 있겠어요. 다석 사상 전집이라도 한 번 읽고 하면 올바른 정치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안타깝고, 오늘날 교회나 모든 종교의 분쟁도 다석 사상에서 회통할 수 있는 21세기의 정치나 종교의 기조정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국의 소로우가 물질적인 재산을 재산으로 생각하지 말고 정신적 재산의 총화가 진짜 우리의 국부라고 했습니다. 물질적인 GNP만 따지지 말고 정신적인 GNP를 따졌을 때 우리 다석 사상의 무게가 우리의 국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유달영 선생님은 우리는 이제껏 사상을 수입만 했는데 예수님 사상도 수입했고, 부처님 사상도, 노장, 공자, 맹자도 수입만 했는데 이제는 다석 사상을 해외에 수출할 수 있는 사상이 아니냐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런 때가 한 번 왔으면 좋겠어요. 외국과 국내에서 박사학위 받은 분이 여럿입니다. 석사학위 논문은 한 20여 편 나왔을 거예요.
내가 다석 선생님을 호랑이를 고양이로 그리지 않느냐 하는 그런 생각을 할 때도 많은데, 선생님의 생각을 크게 왜곡하거나 변질하지는 않았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습니다. 교단에 계시는 교수님들께서 많이 연구하셔서 종파의식에 갇혀 계시지 마시고 확 열린다면 한국 신학계가 확 달라지고 다른 여러 나라에서 한국에 신학 공부하러 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생각해요. 진짜 University가 된다면 여기서는 불교 가르치고, 여기서는 유교 가르치고, 여기서는 예수님 가르치고. 그런 신학교가 생기지 않겠는가 꿈을 꾸는데 성천문화재단에서 그런 노력을 하고 있어요. 저도 70이 넘어서 바통 터치할 사람을 물색하려고 하는데 젊은 분들이 나타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 지난 호에 실린 첫 번째 대담 제목 “다산 유영모의 생활 모습”에서 ‘다산’을 ‘다석’으로 바로잡습니다. - 편집자 주

 
 
 

2018년 7월호(통권 7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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