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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신학·목회 (2024년 1월호)

 

  신앙 성찰과 성숙을 도모하는 종교 간 만남이 되기 위하여-‘종교 간 관계’ 논의에서 ‘인간의 중층적 다종교성’ 분석으로
  

본문

 

“‘종교 간 관계’에서 ‘인간의 종교성’으로-다종교적 가종에 근거한 신앙성찰을 위하여”
연세대학교, 2020


21세기 현대인에게 기존의 여러 종교 전통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특히 종교를 혐오하는 반(反)종교적 흐름이 있고, 종교가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非)종교적 흐름, 아예 종교가 필요 없다는 무(無)종교적 흐름도 있는 상황에서 종교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탈(脫)종교를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에게 종교는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가? 이미 전 세계는 하나의 마을이 되었고, 다양한 종교 전통과 문화가 서로 만나면서 지역에 한정되어 있던 사상과 이념의 벽들이 무너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종교 간 만남과 대화가 지니는 의미는 무엇이며, 또 어떠해야 하는가? 오늘날 전 세계의 종교인들은 세속화의 물결과 타종교인과의 만남 속에서 자기 종교의 절대적 신념체계를 다시 성찰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종교의 평화 없이는 세계의 평화도 없다.”라는 한스 큉의 말처럼 인생과 우주의 의미에 대하여 서로 다른 궁극적 대답을 내어놓는 여러 종교의 만남은 상황에 따라 매우 건설적인 방향으로 흐를 때도 있지만, 매우 파괴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전 세계 80억 인구 중에 약 24억가량 되는 그리스도인들은 타종교인들을 만났을 때, 그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며, 또 어떻게 선교해야 하는가? 필자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기독교가 지난 2,000년의 역사 속에서 타종교와 만나면서 어떤 태도와 자세를 취했는지를 분석하고, 그것이 지니는 한계를 비판하며 새로운 시대, 특히 세속화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오늘날에는 종교 간 대화와 만남에서 반드시 인간의 중층적 다종교성과 혼종성에 대해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종교가 지닌 본래의 가치와 존재 의미를 회복하는 한국 종교신학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했다.

기독교와 타종교의 만남의 역사와 갈래

먼저 필자의 논문 3장을 중심으로 서구 기독교에서 진행되어 온 종교 간 관계에 대한 기존 논의의 갈래를 간략하게 살펴보려 한다. 종교 간 대화 모델은 크게 ‘배타주의’와 ‘포괄주의’, ‘일원적 다원주의’와 ‘다원적 다원주의’로 구분 짓곤 하는데, 필자는 ‘배타주의와 포괄주의’를 자기중심적 개종모델로, ‘일원적/다원적 다원주의’를 상호 성숙을 향한 대화모델로 구분한다. 서구 기독교가 세계로 뻗어가면서 개종모델은 점점 대화모델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을 한번 살펴보자.
유대교의 토양에서 발생한 기독교는 그리스-로마의 다종교 세계와 만나면서 자신의 자리를 잡아간다. 초기에는 소수 종교로서 자신의 종교를 변호하고 선전하는 데 집중하다가, 그리스-로마 철학과 교류하면서 종교적 체험을 철학적 언어로 정교하게 만드는 신학 작업에 착수한다. 기독교가 지닌 인간 존엄의 사상과 급격한 평등주의는 로마제국으로 급속하게 퍼져나갔고, 4세기 초에 로마는 결국 자신의 국가종교로서 기독교를 택한다. 이때부터 약 1,000년에 이르는 동안(5-15세기) 서유럽 사회에서 기독교는 유일한 종교로 군림한다.
유럽에서 성장한 기독교는 16세기에 이르러 항해술의 발달과 신대륙의 발견으로 각 대륙의 다양한 종교 전통과 만난다. 지난 1,000년 동안 지배종교로 군림하던 기독교는 다른 종교 전통을 미신으로 치부하거나 진리를 담보하지 못하는 거짓으로 생각하는데, 나중에 종교신학은 이런 태도를 ‘배타주의’라고 명명한다. 배타주의에서는 자기와 다른 종교를 ‘틀린’ 종교라고 판단하고 ‘옳은’ 종교인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것만이 종교 간 만남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배타적인 태도는 오래갈 수 없었다. 타종교 전통은 함부로 틀렸다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가치와 의미, 도덕과 윤리, 전통과 문화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타자를 배제하는 기독교의 태도는 갈등을 심화시키고 분열을 조장하며 전쟁을 일으켰다. 따라서 기독교는 타종교 전통과 어떻게든 공존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지배종교의 시선을 극복할 수는 없었기에, 이제 다른 종교 전통에도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과 계시인 진리가 있음을 인정하게 되지만, 그 수준과 완성도는 다소 부족하다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
따라서 이제 종교 간 만남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다른 종교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로 완성된 기독교의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게 된다. 타종교를 내치지 않고 자기 안으로 끌어들이는 이런 태도를 ‘포괄주의’라고 부르는데, 18-19세기에 기독교가 지녔던 태도이다. 관계라는 측면에서 포괄주의는 배타주의에서 한 걸음 진전한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여전히 등급을 나누고 우열을 가린다는 측면에서 진정한 종교 간 만남과 대화는 아니었다. 진정한 대화는 서로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가능하며, 대화를 통해 상호 배울 수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대, 중세, 근대를 넘어 자연과학이 발달하고 계몽주의가 전 대중에게로 파급된 현대는 과거와 전혀 다른 삶의 가치관이 형성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인들은 저마다의 삶의 지침을 가지고 있으며, 주체적 개인이 모든 것을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한다. 과거에는 집단을 지배하는 가치가 진리의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선포되었고, 대중은 그것을 따랐지만, 현대는 가치의 다양성이 인정되고, 저마다 가진 생각이 일리가 있음을 강조한다. 자기만이 진리를 소유한다는 생각은 편견일 뿐이다. 각 학문에는 저마다의 특징이 존재하기에 모든 것을 포괄하면서 그것을 뛰어넘는 단 하나의 보편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성과 다원성이야말로 실재의 구성요소이며, 서로 다른 차이가 관계를 맺으며 기능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다원성에 대한 긍정적인 개방의 자세가 필요하고, 공존과 상생을 위한 참된 대화가 요청된다.
이런 시대적 조류에서 타종교 전통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기독교의 자리매김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유일하게 참된 종교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종교로 갔다가, 이제는 세계의 여러 종교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기독교는 현대에 와서야 종교 간 만남과 대화가 지니는 실제적 의미를 깨닫고, 개종을 목적으로 하는 만남을 넘어서 진정한 대화에 집중하는 방식을 지향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다원주의’이다.
다원주의는 ‘일원적 다원주의’와 ‘다원적 다원주의’로 나눌 수 있다. ‘일원적 다원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한 대화에서는 종교 상호 간의 신뢰와 협력 및 이해가 불가능함을 알고, 역사적 존재인 나사렛 예수를 넘어서 그의 유일성의 근원인 신에게로 관점을 옮긴 것이다. 기독교가 예수를 강조하고, 불교가 붓다만을 고집하면, 대화가 불가능하기에 이것을 넘어서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흔히 ‘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거나 ‘하나의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여러 색깔로 나뉜다.’는 등의 비유를 통해서 일원적 다원주의의 핵심을 설명한다. 일원적 다원주의에서는 각 종교가 말하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표현, 즉 알라나 야훼, 도(道)나 천(天)과 같은 것은, 규정할 수 없는 궁극적 실재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고 한다. 다른 길을 통해서 하나의 정상에 도달할 수 있듯이, 일원적 다원주의는 이러한 공통 기반을 상정함으로써 더 깊은 종교 간 대화를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일원적 다원주의 또한 실재-중심적 사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고정된 실재를 거부하는 불교적 사유에서 볼 때 이 이론은 기독교가 중심이 된 서구-문화적 사유 안에서의 대화라는 한계를 지닌다.
이에 따라 중심이 하나가 아니며 서로 다른 다양한 중심이 가능하다는 것에 착안하여 ‘다원적 다원주의’ 논의로 진전하게 된다. 서로 다른 종교는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 속에서 나름의 핵심이 되는 진리를 가지기에, 서로 차이 나는 것이 당연하며, 그 차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일원적 다원주의가 같은 산의 다른 길을 말했다면, 다원적 다원주의는 산 자체가 여러 개이며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연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중심을 포기했다는 것에서 큰 진전이었고, 서로의 만남과 차이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얻고 상호 배움과 성숙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종교 간 만남에 가장 적합한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다(多)중심을 표방하고 있기에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각각은 여전히 중심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 자체의 동일성을 각각 고수한다는 점에서 실제로 다종교적 사회에서 살아가는 종교인의 복잡하고도 중층적인 삶을 올바르게 직시하지는 못한다.
이상을 종합하면, 지난 기독교 역사에서 종교 간 만남과 대화의 방식은 크게 개종모델과 대화모델로 구분할 수 있는데, ‘배타주의’와 ‘포괄주의’는 큰 틀에서 개종모델로, ‘일원적 다원주의’와 ‘다원적 다원주의’는 대화모델로 볼 수 있다. 세계화와 다원화의 시대 조류 속에서 개종모델은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고, 건전한 시민사회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실정이며, 선교에서도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는 등 많은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

기존 종교 간 만남의 한계와 그 비판: 인간의 종교적 중층성 인식

개종모델에서 대화모델로 이어지는 기존의 서구 기독교 중심의 종교 간 관계 논의는 기독교 문화를 배경으로 하지 않는 동아시아나 다른 문화에서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필자는 논문 4장 “종교다원주의에서 다종교성으로: 개종의 허상과 명목적 대화를 넘어서”, 그리고 5장 “다종교성에 근거한 ‘가종(加宗)’의 실상과 과제”에서 종교 간 대화는 종교인의 대화여야 하며, 따라서 종교 간 대화를 논하기 전 ‘인간과 종교의 관계’에 주목하면서 종교인이 가지고 있는 ‘다종교적 중층성’에 주목하고 ‘개종’이 아니라 ‘가종’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에 대해 더 세부적으로 탐색해보자.
개종모델이 아닌 대화모델에서는 다원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대화를 중심으로 상호 이해와 배움, 변화와 성숙을 도모했다. 그러나 일원적 다원주의는 여전히 자기동일성을 보존하면서, 공통 근거와 과제를 찾기에 급급했다. 따라서 상대의 진리 주장에 대해 충분히 경청하고 이해하기도 전에 타자가 보이는 다름을 소홀하게 취급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했고, 진지한 의미에서의 대화라 할 수 없는 자기 독백에 머물렀다. 소통적 언어가 아닌 고백적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한편 타자와의 차이에 중점을 두고 대화한 다원적 다원주의는 차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려는 마음이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차이가 드러내는 독특성에 대한 평가와 배움에 오히려 소홀해졌다. 이뿐만 아니라 하나의 우월한 중심에서 벗어나는 데는 탁월한 견해를 제시했으나, 각각의 종교 전통이 서로 다른 중심을 갖는다고 설정하면서 여전히 실체 중심적 사유를 벗어나지 못했다. 대화모델인 다원주의 모델도 종교인의 중층적 다종교성과 종교의 상호 영향에서 비롯된 혼종성을 깊게 살피지 못한다는 한계를 여전히 지니고 있는 것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개인과 공동체는 유구한 역사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되어 왔다. 인류가 이 땅에서 발을 딛고 삶을 영위한 순간부터 인간의 모든 삶의 양식은 타자와의 만남과 교류, 협력을 통해 이루어졌다. 종교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각각의 종교 전통은 다른 종교 전통과의 교류 속에서 자신을 만들어왔으며, 각각의 종교인들 또한 자신 안에 다양한 종교 전통의 가치를 함께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종교는 결국 인간의 행위이므로 종교 간 만남과 대화 이전에 종교를 만들고 종교를 영위하며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했지만, 기존의 종교 간 만남과 대화는 이런 사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한 인간은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존재이기에 한 인간 안에 다종교적 체험이 녹아들어 있고, 다종교성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늘 변화의 가능성에 열려 있어 유동적이다. 종교 또한 하나의 유기체로서 시대와 환경에 따라 계속 의례와 집단의 규율과 분위기, 형식과 내용이 변화되며 경전과 교리의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한다.
기존의 종교 간 관계 분석 유형들은 이러한 점을 간파하지 못하고, 마치 하나의 종교가 완성된 고정적 실체인 것처럼 전제하였기에 종교인이나 여러 종교 사이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는 상호 영향에 대해 바르게 성찰할 수 없었다. 개종모델이든 대화모델이든 기존의 종교 간 관계 유형과 대화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가종’(加宗)의 현실을 깊게 살피지 못한 것이다. 여기서 ‘가종’이란 사회문화적 존재인 인간의 삶은 그 자체가 선험적으로 불변하는 실체나 완성된 정신으로 존재하는 초월적 주체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다른 존재와의 만남과 관계를 통해 획득되는 일종의 해석학적 과정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일종의 신념체계로서의 신앙이나 종교는 지평융합의 방식으로 선(先)이해와 선(先)파악과 같은 해석학적 작업을 통해 계속 기존의 신념 위에 덧붙여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가종’이야말로 불가피한 현실이며 종교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종교가 지니는 중요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가종의 과정에서 종교인이나 종교는 기존의 방식을 고수할 수도 있고, 내용의 변화 없이 외피만 바꿀 수도 있으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 무교(巫敎), 불교, 유교와 같은 한국의 전통 종교나 오늘날의 종교인들의 경우도 이미 지녀온 어떤 종교적 신념이나 가치관 위에 새롭게 만나게 된 외래종교의 내용이나 형식을 덧붙이게 되는데, 이런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종성은 불가피한 결과이다.
가종과 혼종성이 불가피한 사실이라면, 종교 간 대화에 앞서 모든 종교인은 자신 안에 들어 있는 타자를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인정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종교나 신념이 절대적일 수 없다는 깨달음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고,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 절대화․고정화될 때 곧 그것이 우상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종교인들은 종교 간 대화를 하기 전에 자신이 지닌 신념체계에 대해 먼저 성찰해야 한다. 종교인 개인이 믿고 있는 내용은 무엇인지, 믿음이란 무엇이며, 왜 믿고 있는지, 언제 어디에서 그런 믿음을 지니게 되었는지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찰 없는 믿음은 무주의맹시(無主義盲視)나 확증 편향에 의한 착각을 믿음으로 오해하게 하고, 왜곡된 감정에 몰입된 광신(狂信)을 신실한 믿음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여기서 독단적이고 독선적인 행동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종교적 인간이 지닌 신앙 분석 없이 종교 간 대화는 무의미하며 결실을 내기도 어렵다.
또한 가종과 혼종성을 간과한 개종(改宗)은 단지 종교적 ‘개명’(改名)에 불과할 수도 있다. 타종교로 개종하더라도 종교의 예배형식이나 소속되는 집단만 바뀔 뿐, 실제 개인이 지닌 믿음의 내용이나 실천에서는 개종 이전의 종교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종교 간 만남이 개종을 지향하든지, 상호 배움과 성숙을 지향하든지 간에 가장 먼저 자기를 성찰해야 한다. 매번 새로운 존재로 구성되어가는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가종이 긍정적인 모습을 갖기 위해서는 우상 파괴 작업과 한 개인의 중층적 다종교성에 대한 성찰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불가피한 가종모델과 비교신학 방법

불가피하게 벌어지는 가종의 상황은 기존의 종교신학의 논의를 뛰어넘어야 한다. 이에 필자는 논문 6장에서 “다종교성에 주목하는 비교신학과 신앙성찰: 김재준의 신학과 실천을 통하여”에서 먼저 가종모델에 적합한 비교신학 방법론을 다루었다.
비교신학 방법이란 철저하게 ‘비교적’이며 이해를 구하는 신앙의 행위라는 특징을 지닌다. 비교신학은 각 종교인이 자신의 신앙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그 기반 위에서 다른 신앙 전통으로부터 배우기를 과감히 시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원적 다원주의가 상대주의로 흐를 수 있는 약점을 보완한다. 배움의 목적은 자신의 종교 전통을 성찰하고, 새롭게 만나는 종교 전통에서 신선한 통찰을 얻기 위함이다. 비교신학 방법은 종교신학보다 배움과 비교, 비교를 통한 자기 신학의 재구성에 중점을 둔다. ‘가종’모델 논의에서 비교신학 방법론이 유의미한 것은 두 종교 이상을 깊이 있게 체험하면서 비교를 통해 타종교뿐만 아니라 자신의 종교를 깊이 분석하고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구의 비교신학은 대체로 기독교 전통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온 연구자가 목적의식을 가지고 다른 종교를 적극적으로 배우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앙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비교신학적 작업이 이루어진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이기 전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전통문화 속에 녹아 있는 종교적 유산과 그 토양에서 자라났다. 풍류도, 무교, 유교, 불교, 노장사상, 동학과 같은 정신적․종교적 유산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의 신앙을 받아들이는 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전이해로 작용한다.
서구의 비교신학자들은 이미 오랜 기간 축적된 자기 종교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 속에서 더 나은 통찰을 위해 타종교 전통에 투신하는 모험을 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더 성숙된 신앙을 확보한다. 종교 제도와 규범을 넘어서 신앙의 진정성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종교문화 전통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비교신학적 작업이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신앙 양식과 삶을 주조해왔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가종과 신앙의 혼종성이라는 불가피한 과정에서 신앙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때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방향을 찾고 거기로 나아가야 하는 과제가 있는 것이다.
종교인들 중 일부는 종교적 인간의 초월지향성으로 인해 현실 세계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초월적 상상의 세계를 현실로 착각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왔다. 예수 시대의 묵시종말론적 사유나, 영지주의와 플라톤 전통의 형이상학적 실재인 이데아의 추구, 일반 민중의 극락세계에 대한 갈망이 모두 같은 부류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초월적 지향을 놓치고 현실과 타협한 종교는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집단이기주의적 모습을 보이거나, 세상보다 더 물질적이고 탐욕스런 모습을 보이게 된다. 공공의 질서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고, 자기 폐쇄적 울타리를 치고 온갖 규범과 조직과 제도를 통해 인간들을 체제 안으로 가두어둔다. 진정한 종교 간 대화와 만남은 종교가 지닌 초월과 내재의 긴장을 역설로 품으면서 참된 인간의 삶과 자유를 추구하고 구현해내는 종교인에게서 가능하다. 따라서 필자는 논문에서 종교 간 만남과 대화, 지평 융합을 통해 성숙한 신앙을 구현하는 탁월한 사례로 김재준과 함석헌을 제시했다.

한국적 종교신학의 모델로서 김재준과 함석헌

필자는 논문 6장에서 먼저 장공 김재준의 삶과 신학을 하나의 대안적 사례로 제시했다. 장공은 자신의 삶에서 유교와 기독교의 두 종교문화 전통을 녹여내어 고결한 신앙인으로 일상을 보내면서도 사회와 역사 변혁의 주체로서 살아냈다. 그의 신앙과 신학은 ‘역사참여신학’과 ‘생활신앙’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21세 이전의 장공이 지녔던 유교의 현실 참여적 자세와 천명(天命)의 일상적 구현이라는 특징이 21세 이후 기독교 신학에서 얻은 예언자적 통찰과 성육신적 사유와 실천과 만나 이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논문 7장 “다종교성에 의한 열린 종교 구현”에서는 함석헌의 종교사상을 통해 새 시대의 새 종교를 담지하는 인간 유형을 제안했다. 함석헌은 동서양의 다양한 종교문화 전통을 한 몸에 흡수하여 새 시대에 새 인류를 위한 새 종교를 모색한 사람이었다. 그는 매우 다양한 종교적 사상을 자신의 사유와 실천 속에서 녹여내어 인류 전체가 더 큰 틀에서, 그리고 근원으로부터 종교를 새롭게 사유하고 생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기존의 모든 종교 전통이 지니는 자기중심을 뛰어넘어 혼돈이 가득한 세상 전체를 끌어안을 수 있는 주체로서 ‘씨ᄋᆞᆯ’을 생각했다. 사변에 머물고 마는 이성이나 도구적 이성을 넘어서 깊은 종교적 체험, 초월 체험에서 비롯된 초연한 마음을 유지하면서, 맑은 정신을 깨우는 종교철학적 모험 속에서 종교와 과학, 종교와 세상 모두를 아우르는 뜻을 제시했다. 또 그것의 담지자로서의 씨ᄋᆞᆯ을 양성하는 구체적 실천을 했다. 그의 삶과 신앙에서는 기존의 종교가 지녔던 이분법적 구조가 하나로 통전된다. 영혼과 육체, 계시와 이성, 초월과 심연, 내부와 외부, 의식과 무의식, 자율과 타율, 인간의 행위와 하나님의 은총, 이 땅과 하늘나라가 어느 특정한 사제계급이나 지식인이 아닌 씨ᄋᆞᆯ들의 삶에서 조화를 이룬다고 보았다. 바로 자신이 한 씨ᄋᆞᆯ의 삶을 살아냄으로써 영원한 하늘의 ‘뜻’을 ‘지금-여기’ 구체적인 이 땅에서 체현(體現)하면서 기존 종교 전통이 지니고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다.
인간과 종교의 관계를 살펴볼 때 종교는 자기보존 본능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문화체계로 등장했다. 또한 종교는 반인간적 억압과 비인간적 고통의 원천이면서 동시에 욕망을 비워서 인간의 참된 해방과 자유를 추구하려는 이중적 모습을 보여왔다. 종교(宗敎)의 한자어는 ‘가장 높은 가르침’이라는 뜻을 지닌다. 가장 높은 가르침으로서의 종교가 지향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류와 세계에 올바른 가르침을 베풀어 인간이 이 세계 안에서 참되고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의 효과를 내는 종교는 계속 변혁되어야 하고, 인간을 억압하고 고통을 주는 종교는 소멸되어야 마땅하다.
종교 간 만남과 대화가 추구하는 목표가 상호 변혁과 상호 성숙이라면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종교와 종교인 또는 신앙인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지니게 될 것인가? 상호 변혁과 상호 성숙이라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불가능한 허상적 가치를 모호하게 추구하기보다 오히려 다종교적 체험을 정직하게 곱씹고 되새기면서 살아온 이들의 삶과 사유의 궤적을 살펴야 한다. 중층적 다종교성을 통해 귀결된 가종이 어떻게 종교인을 신앙의 성숙으로 이끌고 갔는지, 그래서 인간의 참된 자유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적 효과를 가져왔는지를 드러내는 것이 공허한 이론의 반복보다도 현실적으로 더욱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재준, 함석헌의 삶과 사상과 신학은 현대의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하나의 모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토대 위에서 한국적 상황에 맞갖은 종교신학을 구성한다면, 기존 제도와 조직으로서의 종교의 교리체계, 의례, 규율, 경전의 비교, 종교인들과의 만남과 대화 등 동일한 정체성이라는 허상 위에서 전개하는 방법을 넘어서 성숙한 신앙인들이 씨름해온 삶과 믿음의 다양함과 풍부함이 오히려 종교의 존재 이유인 인간 해방에 더욱 기여한다는 소중한 통찰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한문덕|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사랑교회 목사이다. 한학 연수 기관인 태동고전연구소를 수료했으며, 연세대학교 신학과에서 종교철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는 『신, 우주와 인류의 궁극적 의미』, 『교회-왜 교회에 가야 하는가?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스탠리 하우어워스-시민, 국가 종교, 자기만의 신을 넘어서』 등이 있다.

 
 
 

2024년 1월호(통권 7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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