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가르침에 “원인이 있고 난 후에 반드시 결과가 있다”고 하였으니, 원인[因]은 결과[果]의 바탕[本]이라는 말입니다.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기에, 오늘날에는 이를 “죽음으로 인하여 삶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혹시 세상에 태어나지 않고[不生] 죽은 사람[死者]이 있다는 것입니까?
생(生)은 죽음의 뿌리가 되는 것이며, 생(生)으로 인해서 죽음이 있다는 것은 원래의 이치가 그러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목을 ‘죽으면 살게 된다’고 했으니, 이는 당연한 이치[常理]에 반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간혹 견백동이(堅白同異)1와 같은 궤변이 있으니, 이제 이 주제를 몇 가지로 나누어 논하고자 합니다.
○ 첫째, 비록 살아있지만 이미 죽은 삶[雖生已死]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漢)나라의 양기(梁冀)2와 당(唐)나라의 이임보(李林甫)3, 송(宋)나라의 왕개보(王介甫)4와 진회(秦檜)5, 그리고 가사도(賈似道)6 등과 같은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늘을 뒤흔들[掀天] 부귀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으며, 세상을 뒤덮을 만한 사치와 화려함으로 그 악명을 오래도록 후세에 남겼습니다.7
여기에는 ‘입으로는 달콤함을 말하지만 배 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다’는 구밀복인(口蜜腹釼)8한 자도 있었고, ‘재앙이 닭과 돼지에게까지 미친다’고 하는 화급계돈(禍及雞豚)한 자도 있었습니다. 또한 ‘동창(東窓)에서 귤을 희롱하였다’는 동창농귤(東窓弄橘)한 자가 있었으며, ‘한당(閒堂)에서 귀뚜라미 싸움을 했다’는 한당투실(閒堂鬪蟋)9한 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로 인하여 천하의 모든 백성[元元]이 도탄에 빠져들었다고[陷⏢塗炭] 했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하나같이 말하기를, “죽어 마땅한 자는 비록 그들이 요직[要樞]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행동은 시체와 같이 썩은 냄새가 나니, 살았다고는 하나 만인의 입에서 그들은 이미 죽은 자이며, 죽어서는 사관(史官)의 붓끝에서 또 죽게 된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런 자들을 일컬어 나라를 팔아먹은 도적[賣國賊]이라고 하며, 혹은 나라를 패망하게 하는 벼슬아치[亡國大夫]가 바로 이런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 둘째, 비록 죽었어도 실제로는 살아 있는 삶[雖死實生]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용봉(龍逢)10과 비간(比干)11 같은 이는 군주의 그릇된 마음을 바로잡으려고 간언[諫]하다가 죽음을 당했지만 이를 통해 충절을 세웠으며, 장순(張巡)12과 허원(許遠)13은 눈을 부릅뜬 채 얼굴은 피범벅이 되어 죽어가면서도 여귀(厲鬼)14가 되어 나라의 도적을 섬멸할 것을 맹세하였습니다. 그리고 송(宋)나라의 육수부(陸秀夫)15는 애산(崖山)16 전투에서 패하자 먼저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물에 던져 죽인 후 황제를 안고 바다를 건너려고 했으며, 문천상(文天祥)17은 충성스러운 마음[忠肝]이 철석(鐵石)과 같아 죽은 후에도 시신의 얼굴이 마치 산 사람과 같았다고 합니다.
또한 신라(新羅)의 김후직(金后稷)18은 왕이 사냥을 즐기는 것에 대하여 간언하였는데, 그가 죽은 뒤에 그 충언(忠言)이 왕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어질고 유능하여 왕을 잘 보필하는 신하[賢相良佐]에 이른 자들을 일일이 다 열거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 왕으로 하여금 ‘요·순(堯·舜)’과 같이 되기를 기대하며,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를 갓난아이[赤子]를 보호하는 것처럼 했던 이들입니다. 따라서 비록 참소되어 재앙을 당해 죽었다 해도 그 향기로운 자취는 백세까지 이어지며, 그 이름은 오랜 세월[千秋] 동안 전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라지지 않을 빛나는 영광이 그 당시의 세상에서는 ‘죽음으로 생명을 결실한다’고 하였으며, 역사[靑史] 속에서 살고 또 살게 될 것이니, 우리 대한의 충정공(忠正公) 민영환(閔泳煥)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 셋째, 죽음이 아니면 살아날 수 없는 삶[非死無生]이 있습니다.
옛사람[古人]이 말하기를 “호랑이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어찌 호랑이 새끼를 얻을 수 있겠는가?”19라고 했는데, 이는 참된 격언입니다.
옛날에 전단(田單)20이 북방의 외적[北狄]을 공격할 때의 일입니다. 전단이 석 달이 되도록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자 두려움으로 노중련(魯仲連)에게 물었습니다. 이에 중련(仲連)이 말하기를 “장군이 즉묵(卽墨)21에 거주할 때는 죽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반면, 살고자 하는 기운은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하루아침에 제(齊)나라의 70여 성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야읍(夜邑)의 봉토[封]22가 있어서 살아가는 즐거움은 있고 죽으려는 마음은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전단이 몸소 판삽(版鍤)23을 잡고, 화살과 돌이 쏟아지는 곳에 서서 북채를 당겨 북을 쳤더니 외적들[狄人]이 마침내 항복했다고 합니다.24 이는 곧 ‘죽고자 하면 오히려 살게 되는 것’의 사례입니다.
한편 한신(韓信)이 조(趙)나라를 공격할 때, 물을 등지고 진을 쳐서[陣背水]25 승리를 하고, “사지(死地)에 빠진 후에 산다”26고 말했는데, 이 또한 ‘죽고자 하면 사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신라(新羅) 선덕여왕(善德女王) 시대에 백제(百濟)의 장수 의진(義眞)이 침공하여 세 곳의 성(城)을 함락시키려고 했습니다. 이에 맞서 신라 장수 김유신(金庾信)이 죽을힘을 다해 싸웠으나 힘이 점점 고갈되었습니다. 이때 부하 장수 비령자(丕寧子)27는 떨쳐 일어나 공격하다가 전사했고, 그의 아들 거진(擧眞)과 하인[奴] 합절(合節) 역시 힘껏 싸우다가 함께 전사했습니다. 그러자 삼군(三軍)이 감격해서 일제히 진격하고 승승장구하여 삶을 얻었으니,28 이 어찌 죽음으로써 삶을 얻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죽음을 무릅쓰고 삶을 얻은 것’에는 이탈리아[意大利]의 마치니[瑪志尼]29 만한 이가 없습니다. 마치니는 혁명의 위대한 호걸이며, 민당(民黨)의 영수(領袖)였습니다. 그는 조국 이탈리아[意大利]를 부모로 삼고 생명[性命]으로 삼아서, 사람들을 설득하고 힘써 일하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피 흘리고 글을 쓰기도 하며, 때로는 무력을 사용하고 기회를 엿보기도 하면서 정부를 개혁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奧]의 굴레와 속박[覉絆]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爲矢鵠] ‘청년이탈리아당[少年意大利會]’30을 창립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인재들[群雄]을 힘써 규합하며 위력을 합하여 단결했지만, 실패하고 체포되어 투옥되었습니다. 그 후 6개월 만에 사형에서 감형되어 풀려나 이탈리아 국경 밖으로 추방되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法國]에서 재기를 도모하다가, 또 다시 실패하여 영국(英國)으로 도피했다가 다시 스위스[瑞士]로 숨어들었습니다. 이렇게 십여 년 동안 마치 포로[虜囚]처럼 위태롭게 지냈지만 굳센 기운은 소멸되지 않아서 다시 ‘청년유럽당[少年歐羅巴會]’31을 조직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비록 피비린내 진동하는[腥風血]32 세월을 보냈지만, 백 번 꺾일지언정 돌아서지 아니하며[百折不回], 한 번 실패하더라도 굽히지 아니하였습니다[一敗不屈]. 그는 매번 독립과 자유를 목적으로 삼고, “큰일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우선 성공과 실패, 유익하거나 우둔한[利鈍] 데 마음을 두지 않고, 오늘 이루지 못하면 내일을 기약하고, 올해 이루지 못하면 내년을 기약하고 십 년 동안 이루지 못하면 백 년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기약하며, 자신이 이루지 못하면 아들과 손자에게서 그것을 기약한다”고 했습니다. 마침내 이탈리아[意國]가 혁명(革命)하고 독립하여 오스트리아[奧]의 속박[絆]에서 벗어나, 3천만 동포로 하여금 자유의 세계로 나아가게 했으니, 마치니와 같은 인물이야말로 ‘죽으면 살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이들은 모두 ‘죽음으로 본을 삼아서 그 삶을 얻은 사람들’이라 하겠습니다.
○ 넷째, 먼저 죽고 나중에 살아나는 삶[先死後生]이 있습니다.
넓고 아득한 세상[五洲]에 도도(滔滔)한 만민(萬民)이 죄악이 가득 차서 반드시 불구덩이[火坑, 지옥]에 빠져서 죽을 것인데, 구세주[救主] 예수[聖子]께서 인간 세상에 내려오셔서 십자가 위에 못[釘] 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받게 하시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생명을 얻게 하셨으니, 이것이 어찌 ‘죽음으로 인하여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 우리 동포는 구세주의 죽음으로 인하여 영생(永生)의 복락(福樂)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는 사도(使徒) 바울[保羅]이 말한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여러 번 죽을 지경을 겪고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했으며, 돌에 맞고 사자와 싸우기도 했는데, 그가 당한 모든 고난의 싸움을 낱낱이 들어 말하기 어렵습니다[難可枚擧].33
우리가 만일 죄악이 있으면, 비록 생명이 있는 인간이지만, 그 열매는 죽음이니, 먼저 그 정욕(情欲)을 죽이면 그 후에 반드시 영생의 즐거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동포들이여, 만일 죽지 않는다면 어찌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얼핏 듣자니, 일본(日本)의 시즈오카현[靜崗縣]에 기생집[靑樓]이 있는데, 허다한 양갓집[良家] 여인이 죄악 가운데 잘못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이에 청년 신도(信徒) 십자군병(十字軍兵)이 다투어 나아가 전도(傳道)하다가 얻어맞아서 부러지고 상하며 피 흘리는 사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히 나아가 물러서지 않고 성령의 힘으로 전도하여 육신으로 죽음을 대신하여 본분을 다했습니다. 그러자 기녀(妓女)들이 분분(紛紛)히 죽음에서 빠져나와 생명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 또한 죽음으로 인하여 생명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엎드려 바라기는, 저의 말씀을 듣고 있는 동포들은 도덕심(道德心)으로 우리 주님을 믿고 받들어서[信奉] 정욕을 못[釘] 박아 죽이고 죽기를 각오하는 불굴의 마음으로 문명의 세계로 용감하게 나아가십시오. 그리하여 사도 바울과 혁신당(革新黨)의 마치니처럼 죽음으로 인하여 생명을 얻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註)
1 견백동이(堅白同異): ‘단단한 것과 흰 것은 서로 엇갈린다.’ 중국의 명가(名家) 공손룡이 “나는 동(同)과 이(異)를 합쳤고 굳음과 백을 분리시켰다”라고 한 말에서 생긴 성어. 백마비마(白馬非馬)와 함께 궤변(詭辯)을 나타내는 대명사. 공손룡은 궤변론자로 통함. 자기가 아는 것만을 옳다고 주장한다. “견백동이(堅白同異)”, 조기형·이상억 편, 《한자성어ㆍ고사명언구 사전》(서울: 이담북스, 2011).
2 양기(梁冀, 미상-159): 후한(後漢)의 권신. 여동생인 양태후(梁太后)와 함께 황제를 마음대로 없애고 세웠다. 권력을 쥔 20여 년 동안 호화로운 생활을 했고, 평민 수천 명을 핍박해 노비로 만들었다. “양기(梁冀)”, 임종욱, 《중국역대인명사전》(서울: 이회문화사, 2010).
3 이임보(李林甫, 미상-752): 당나라 종실(宗室). 현종 때의 재상. 갖은 음모와 중상모략을 일삼아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 불렸다. 교활하고 권모술수에 능하여 조정에 있는 19년 동안 권력을 장악해 멋대로 정책을 시행했다. “이임보(李林甫)”, 임종욱, 《중국역대인명사전》.
4 왕안석(王安石, 1021-1086): 중국 송대의 정치가ㆍ학자. 자는 개보(介甫). 신종(神宗)의 시참지정사(時參知政事)가 되어 당시의 재정적 위기(財政的危機)를 헤쳐 보려고 신법(新法)을 만들어 부국강병(富國强兵)책을 썼다. 시문에도 능하여 당송(唐宋) 팔대가(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왕안석(王安石)”, 인명사전편찬위원회 편, 《인명사전》(서울: 민중서관. 2002).
5 진회(秦檜, 1090-1155): 남송(南宋)의 관료. 소흥(紹興) 원년(1131) 재상이 되어 19년을 집정하면서 악비(岳飛)를 살해하는 등 사사롭게 당을 만들어 여러 차례 대옥(大獄)을 일으켰다. “진회(秦檜)”, 임종욱, 《중국역대인명사전》.
6 가사도(賈似道): 남송(南宋) 말기의 권신(權臣). 송나라 이종(理宗) 가귀비(賈貴妃)의 동생. 권세를 믿고 갖은 비행을 저지르고 황음무도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으며, 말년에 정호신(鄭虎臣)에게 살해되었다. “가사도(賈似道)”, 한국고전용어사전 편찬위원회, 《한국고전용어사전(1권)》(서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1).
7 유취만년(遺臭萬年): 악명을 오래도록 후세에 남김. “유취만재(遺臭萬載)”와 같은 말.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편, 《漢韓大辭典(13)》(용인: 단국대학교 출판부, 2007), 1207.
8 구밀복인(口蜜腹釼): ‘구밀복검(口蜜腹劍)’과 같은 말. 겉으로는 친절하나 마음속은 음흉한 것을 말한다.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편, 《漢韓大辭典(2)》, 1100.
9 ‘투실(鬪蟋)’은 ‘투실솔(鬪蟋蟀)’, 곧 ‘귀뚜라미를 싸우게 하여 승부를 겨루는 놀이’를 말한다. 이는 송나라의 간신(姦臣) ‘가사도(賈似道)’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편, 《漢韓大辭典(15)》, 730 참조.
10 관용봉(關龍逢): 하(夏)나라 말기 사람. 걸(桀)임금이 주지(酒池)와 조구(糟丘)를 만들어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이에 충간을 하며 물러나지 않다가 투옥당한 뒤 살해되었다. “관용봉(關龍逢)”, 임종욱, 《중국역대인명사전》.
11 비간(比干): 은(殷)나라 때 사람. 주왕(紂王)의 숙부. 소사(少師)라는 직책에 있으면서 악정(惡政)을 간했는데, 주왕이 “성인의 가슴에는 구멍이 7개 있다 하니 열어보자”며 죽였다. “비간(比干)”, 임종욱, 《중국역대인명사전》.
12 장순(張巡, 709-757): 당나라 등주(鄧州) 남양(南陽) 사람. 안록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자 병사를 일으켜 끝까지 싸움을 독려했지만 결국은 패하자 자살했다. “장순(張巡)”, 임종욱, 《중국역대인명사전》.
13 허원(許遠): 당나라 항주(杭州) 사람. 안록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자 장순(張巡)과 함께 군대를 조직해 싸웠으나 포로로 잡혔고 끝내 굴하지 않다가 피살당했다. “허원(許遠)”, 임종욱, 《중국역대인명사전》.
14 여귀(厲鬼): 불행하고 억울한 죽음을 당했거나 제사를 지낼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어 전염병과 같은 해를 일으킨다고 여겨지는 귀신. “여귀(厲鬼)”, 한국고전용어사전 편찬위원회, 《한국고전용어사전(3권)》.
15 육수부(陸秀夫, 1238-1279): 중국 남송이 멸망할 때 재상을 지냈던 인물. 몽골군에게 송나라가 패한 후 끝까지 왕실을 지키려 했으며, 배로 도망하다가 위왕(衛王)을 업고 바다로 투신하여 목숨을 버렸다. “육수부(陸秀夫)”, 한국고전용어사전 편찬위원회, 《한국고전용어사전(4권)》.
16 애산(崖山): 광동성(廣東省) 신회현(新會縣) 남쪽 바다 가운데 있는 산. 송(宋)나라 말기에 장세걸(張世傑)이 이곳에서 원나라의 장수 장홍범(張弘範)에게 패하자 육수부(陸秀夫)가 임금을 업고 바다에 빠져 죽음으로써 송나라가 멸망하였다. “애산(崖山)”, 한국고전용어사전 편찬위원회, 《한국고전용어사전(3권)》.
17 문천상(文天祥): 13세기 중국 남송의 정치가, 시인. 송나라(남송)가 원나라에 항복하자 저항하다 잡혔고, 몽고에 전향을 권유받았지만 거절하고 죽음을 택했다. “문천상(文天祥)”, 임종욱, 《중국역대인명사전》.
18 김후직(金后稷): 신라 진평왕 때의 충신. 왕이 사냥을 즐겨 정사를 소홀히 하므로 죽어서 왕이 사냥을 다니는 길목에 묻혀 왕이 잘못을 깨닫게 하였다고 한다. “김후직(金后稷)”, 두산동아백과사전연구소, 《두산세계대백과사전(5권)》.
19 《후한서(後漢書)》 〈반초(班超)전〉에 나오는 말이다. “不入虎穴, 不得虎子.” 진기환 역주, 《後漢書(六)》(서울: 명문당, 2018), 307 참조.
20 전단(田單): 중국의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군사가이자 종실(宗室)의 친척이다. 제나라가 위급할 때 즉묵(墨)을 사수했다. 이때 소꼬리에 불을 붙여 연군(燕軍)을 격파하고 70여 성을 수복하여 그 공으로 상국(相國)이 되었고, 안평군(安平君)으로 봉해졌다. 《사기(史記)》 〈卷八十二, 田單列傳〉 참조. 사마천 지음, 장세후 옮김, 《사기열전(1)》(서울: 연암서가, 2017), 746-755 참조.
21 즉묵(卽墨):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의 고을 이름. 전단(田單)이 연(燕)나라와의 전쟁 중에 거(莒)와 즉묵(卽墨) 두 성을 근거로 하여 잃어버린 70여 성을 모두 회복하여, 이후 나라를 회복시키는 근거지를 의미함.
22 읍(夜邑)은 제(齊)나라 전단(田單)의 영토이다. 성백효 역주, 《通鑑節要(1)》, 172-173 참조.
23 판삽(版鍤): 도량을 파거나 담장이나 성 등을 쌓는 데 사용하던 틀이나 가래 등 의 도구. “판삽(版鍤)”, 한국고전용어사전 편찬위원회, 《한국고전용어사전(5권)》.
24 《通鑑節要(1)》 〈卷之一, 周紀〉에 나오는 내용이다. 성백효 역주, 《通鑑節要(1)》(서울: 전통문화연구회, 2013), 172-173 참조.
25 《史記(사기)》 〈淮陰侯列傳(회음후열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마천 지음, 장세후 옮김, 《사기열전(2)》, 256 참조.
26 함지사지연후생(陷之死地然後生). 의미는 “사지에 빠뜨린 후에 살게 함”이다. 《史記(사기)》 〈淮陰侯列傳(회음후열전)〉에 나오는 인물 한신(韓信)이 인용한 병법(兵法)에 있는 말이다. 사마천 지음, 장세후 옮김, 《사기열전(2)》, 259 참조.
27 비령자(丕寧子): 신라의 무관(武官). 632년(선덕여왕 1) 백제의 대군이 무산(茂山)·감물(甘勿)·동잠(同岑) 등의 성을 공격하자, 불리한 상황에서 김유신으로부터 전국(戰局)을 호전시킬 임무를 받고 아들 거진(擧眞), 노복 합절(合節)과 함께 적진에 돌입하여 모두 전사, 신라군의 사기를 높여 백제군을 대패시켰다. “비령자(丕寧子)”, 인명사전편찬위원회 편, 《인명사전》.
29 《三國史記》 〈卷第四十一, 列傳 第一, “金庾信 上”〉에 나온다. 김부식 저, 김호열 역해, 《삼국사기》(서울: 동서문화사, 2010), 735, 740 참조.
29 주세페 마치니(Giuseppe Mazzini, 1805-1872): 이탈리아의 정치지도자. 불굴의 공화주의자로 이탈리아의 통일공화국을 추구하였다. 청년이탈리아당 및 청년유럽당을 결성하고 밀라노 독립운동에도 참가했으며 빈곤한 망명생활을 하면서 여러 차례 군사행동을 일으켰으나 전부 실패하였다. “주세페 마치니(Giuseppe Mazzini)”, 두산동아백과사전연구소, 《두산세계대백과사전(23권)》.
30 소년의대리회(少年意大利會): 주세페 마치니가 1831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창설한 정치단체 ‘청년이탈리아당(Giovine Italia)’을 말한다.
31 소년구라파회(少年歐羅巴會): 주세페 마치니가 스위스로 피신할 당시인 1834년에 스위스에서 창설한 정치단체인 ‘청년유럽당’을 말한다.
32 성풍(腥風): 비린내가 나는 바람. 또는 흉악하고 잔인한 기운을 비유하는 말.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편, 《漢韓大辭典(11)》, 502 참조.
33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 참조.
이동원|감리교신학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2001년부터 성실서당에서 한문을 익혔으며, 지난해 탁사 최병헌의 『만종일련』을 역주하여 펴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인자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으며, 기독교고전번역원 번역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