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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모더니즘 시대의 미술 산책 06]
문화·신학·목회 (2022년 12월호)

 

  초현실주의(Surrealism) 미술과 사상
  

본문

 

20세기 서구 현대미술이 폴 세잔(Paul Cézanne)과 입체파에서 시작하여 추상으로 전개된 형식주의 미술에서 큰 흐름을 이루어왔다면, 초현실주의 미술은 내용적인 면에서 20세기 현대미술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하며 현대미술의 질적인 깊이를 더해왔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나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화가들도 있지만, 네오 라우흐(Neo Rauch)같이 생소한 신세대 화가에 이르기까지 초현실주의 미술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화가들이 존재한다.
이에 이번 호에서는 초현실주의 미술의 기원과 탄생 배경, 그리고 대표작들을 소개하며 초현실주의 미술이 지닌 ‘질적인 깊이’가 무엇인지 사상적인 문맥에서 통찰하고, 나아가 그 영향력이 미술사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아울러 한국에는 왜 초현실주의 미술이 한번도 주류를 이룬 적이 없었는지에 대한 원인을 진단해볼 것이다.

초현실주의 미술의 시작

1924년 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의 “초현실주의 선언”과 함께 미술사에는 초현실주의 미술이 공식적으로 출현한다. 신경학 연구소에서 근무했던 브르통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야말로 인간의 정신을 일상의 고정관념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고 보았고 이에 1919년 젊은 시인들과 함께 이성의 통제와 미학적·윤리적 선입관을 일체 배제한 상태에서 제작한 시(詩)를 담아 「문학」이라는 잡지를 창간한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경험한 젊은 예술가들은 기존의 현실을 부정하고 인간의 내면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고, 이때 프로이트가 분석한 꿈과 무의식의 세계는 그들에게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었다.
브르통과 함께 초현실주의 미술운동을 주도한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앙드레 마송(André Masson) 등의 화가들은 의식에 지배되지 않는 우연의 기법들을 다양하게 실험하며 초현실주의 미술에 포문을 열었다. 마송의 〈자동기술〉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자동기술, 즉 오토마티즘 기법이란 의식 이전의 무의식을 끄집어내는 소묘법인데, 마송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참호에서 근무하며 매일 전우들이 죽어가는 현장을 지켜보아야 했던 무의식의 트라우마를 무심히 긋는 선을 따라 표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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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송의 다른 작품 〈앙드레 브르통의 초상〉에는 그 무의식이 테마화되어 있다. 브르통의 얼굴이 양쪽으로 나뉘어 있는데, 왼쪽은 눈을 뜨고 앞을 직시하는 의식의 얼굴이고, 오른쪽은 눈을 감고 꿈을 꾸는 듯한 무의식의 얼굴이다. 왼쪽에는 이성을 상징하는 태양이 비추고 있고, 오른쪽에는 마치 꿈속에서나 볼 듯한 비현실적인 이미지들이 주변을 맴돌고 있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후자에 경도되어 있었다. 이제껏 사람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의식의 자아(ego)만 강조했고 그것이 세상을 지배해왔지만 결과는 질서가 아닌 무질서, 평화가 아닌 전쟁임을 목격한 그들은 또 다른 ‘나’, 심연처럼 깊이 자리한 무의식의 나(id)를 밝히는 것만이 인간을 치유하고 온전히 이해하여 다가올 미래에 균형을 잡는 길이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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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가 그린 〈나이팅게일에게 놀란 두 아이〉를 한번 보자. 마치 꿈속에서나 볼 듯한 환상적 이미지가 그려져 있는데 논리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나이팅게일 새가 우는 소리에 놀란 것일까? 두 남녀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급히 달아나고 있고 바닥에는 한 소녀가 죽어 있다. 지붕 위의 남자는 벨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데 무언가 급박한 상황이 벌어졌음을 직감하게 한다. 앞을 향해 열린 울타리는 관람자를 꿈의 세계로 초대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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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으로는 추론이 불가한 이 그림은 에른스트의 무의식에 각인된 어릴 적 트라우마와 연결될 때 비로소 의미에 접근할 수 있다. 유년 시절 에른스트는 자신이 매우 사랑하던 앵무새의 죽음과 여동생의 탄생을 동시에 경험했다고 한다. 당시 어린 에른스트가 겪었을 사랑과 죽음과 탄생에 대한 극심한 혼란이 무의식에 각인되어 그것이 두서없는 꿈처럼 그림에 나타난 것이다.
이 작품 외에도 새는 에른스트 자신의 페르조나1로 평생 작품 속에 등장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런 점을 미루어볼 때 어릴 적 트라우마가 그의 예술 인생 전체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는지를 알 수 있다. 대학에서 정신의학을 공부하며 화가가 될 결심을 했다는 에른스트는 정신병동에서 환자들이 그린 그림을 보고 무의식의 세계에 눈을 떴고 그 경험을 작품에 지속적으로 반영하여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는 것이다. 에른스트는 특히 프로타주, 그라타주, 데칼코마니2 같은 우연의 기법들을 산출하여 초현실주의 미술의 표현 영역을 넓혔는데, 이 기법들은 모두 의도치 않은 뜻밖의 효과를 자아내며 의식 이전의 무의식을 끄집어내는 특수한 기법들이었다. 이처럼 에른스트가 창조한 다양한 우연의 기법들과 마송의 오토마티즘 기법들을 시작으로 초현실주의 미술은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세상에 드러냈으며, 달리, 마그리트, 호안 미로(Joan Miró) 같은 거장들에 의해 표현의 영역을 더욱 넓혀가게 된다.

데 키리코와 니체

1924년 초현실주의 미술이 공식 출현하기 전에도 초현실주의 미술은 이미 존재했다.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소위 ‘데페이즈망’ 회화가 그것이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그리스에서 성장한 키리코는 고대 그리스 로마와 르네상스 미술의 전통을 체화하고 있었고, 그 토대 위에 낯설고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들을 산출하며 ‘형이상학적 회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화가였다.
그의 대표작 〈사랑의 노래〉를 살펴보자. 아폴로 두상3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그 외의 사물들은 매우 낯설다. 빨간 고무장갑이 생뚱맞게 걸려 있고 바닥에는 초록색 공이 뜬금없이 놓여 있다. 오른쪽의 건축물은 각도가 비현실적이고, 배경에 묘사된 증기를 내뿜는 기관차는 고대 조각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사물 간에 그 어떤 연관성도 찾을 수 없어 생소하고 당혹스러운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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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낯설음의 느낌을 의도한 기법을 가리켜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이라고 부른다. 전치(轉致), 즉 사물을 본래의 익숙한 장소에서 떼어내어 뜻하지 않은 곳에 배치하는 표현기법으로, 초현실주의 시인 로트레아몽(Comte de Lautréamont)의 『말도로르의 노래』(1869)에 나오는 “수술대 위의 재봉틀과 우산의 만남처럼 아름다운”이라는 시구가 데페이즈망의 전형적인 예시이다. 수술대 위에 재봉틀과 우산이 왜 있는지 이해할 수 없듯이, 키리코의 그림에서도 아폴로 상과 빨간 고무장갑, 초록 공과 증기 기관차가 왜 함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우리는 말을 잇지 못한다.
데페이즈망의 의도는 형이상학적 사유의 유도이다. 사물의 부조리하고 모순된 배치를 통해 심리적 충격과 낯선 느낌을 주어 사물과 거리를 두고 사물을 다시 보게 하는 사유를 유도한다. “하늘이 파랗다.”라는 문장에서 우리는 그 어떤 사유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하늘이 운다.”라는 문장에서는 멈칫해지며 문장과 거리를 두고 곰곰이 사유하게 된다. 충격과 낯섦은 사물과의 해석학적 거리를 산출하고 사물의 표면(surface) 뒤에 감추어진 진의를 사유케 한다.
키리코의 형이상학적 회화는 사실 니체가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비극의 탄생』, 『이 사람을 보라』, 『바그너의 경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 은유적인 표현으로 가득한 니체의 저서들을 탐독하며 키리코는 정오의 광선, 긴 그림자, 오후의 대기, 건축물과 탑, 조각상들, 바다, 배 등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들을 그렸고 〈수수께끼〉, 〈신탁〉, 〈형이상학적 위안〉, 〈운명〉, 〈항해〉 같은 비유적 제목의 작품들을 산출했다.4 니체가 철학적 개념 대신에 시(詩) 언어를 사용한 것은 이성에 대한 저항이라고 볼 수 있다. 데카르트로 소급되는 이성 철학의 체계가 인간의 실존 문제와는 아무 관계 없는 공중누각일 뿐이라는 자각과 함께 니체는 생의 의지와 힘이라는 새로운 사상을 주장했고 이것을 논리적 언어가 아닌 시 언어로 설파했다. 그리고 키리코는 이를 자신의 회화에 수용했다.
니체의 새로운 사상은 로고스에 의해 억압되어 온 파토스(pathos)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전자가 이성을 나타내는 태양의 신 아폴로로 상징된다면, 후자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로 상징된다. 키리코의 그림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아폴로와 디오니소스의 아내 아리아드네는 바로 이 관계를 상징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으로 키리코의 〈아폴로와 아리아드네가 있는 광장〉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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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는 건물 안에 갇혀 결박되어 있고, 아리아드네는 생뚱맞게 광장 한가운데 누워 있다. 아리아드네는 미술사에서 항상 잠자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여기에는 신화적 설명이 필요하다. 크레타의 미노스 왕의 딸인 아리아드네에게는 배다른 오빠 미노타우로스가 있었다. 그는 포세이돈 신의 저주로 태어난 반인반수의 황소 괴물이었는데 미노스 왕은 그가 성장하며 점차 난폭해지고 통제할 수 없게 되자 미궁(Labyrinth)을 만들어 그를 가두어버린다. 그러고는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매번 희생제물로 바쳐 미노타우로스를 달랬다. 이에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는 그 만행을 끝내고자 아폴로 신에게 기도를 드린 후 자진해서 미궁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때려잡는다. 그러나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하는 곳이 미궁인데, 테세우스는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아리아드네 공주가 그에게 실타래를 주었기 때문이다. 실타래를 풀면서 미궁 안으로 들어간 덕분에 테세우스는 일을 마치고 그 실을 따라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 인연으로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와 사랑에 빠졌고 그와 함께 크레타를 탈출한다. 그러나 아테네로 가는 도중에 들른 낙소스 섬에서 아리아드네가 잠든 사이 테세우스는 그녀를 버리고 떠나버린다. 섬에 홀로 남겨진 아리아드네는 디오니소스의 눈에 들어왔고 그의 아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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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폼페이 벽화에 묘사된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와 디오니소스〉를 보면 이 상황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잠든 아리아드네의 머리맡에는 잠의 신인 히프노스(Hypnos)가 앉아 있고, 사랑의 신인 큐피드는 아리아드네의 옷자락을 당겨 디오니소스에게 인도하고 있다. 이러한 도상학적 전통을 배경으로 키리코의 그림에도 아리아드네가 잠든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다.
아리아드네의 ‘잠’은 메타포이다. 테세우스로부터 디오니소스로의 이행(transition)을 상징하는 은유적 표현이다. 테세우스는 이성의 신인 아폴로 과에 속하는 영웅으로 아폴로 신의 도움으로 거사까지 치렀다. 따라서 아리아드네의 잠은 아폴로적인 것으로부터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의 이행, 로고스로부터 파토스로의 이행을 암시한다. 아리아드네는 말하자면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로고스와 파토스를 모두 지닌 인간의 영혼, 그러나 전자에 의해 억눌린 후자를 꿈속에서 기다리는 영혼을 대변한다. 그녀의 잠은 말하자면 인간 정신의 균형을 상징한다. 꿈을 통해 파토스가 해방될 때 무의식도 모습을 드러내며 자아를 형성하는 한 축이 되고 그러할 때 인간은 무의식(id)의 영역을 통합한 온전한 자아(ego)로 형성되는 것이다. 그림에서 아폴로가 갇혀 있는 건축물은 이성의 사유체계로서 공중누각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안에 아폴로가 결박되어 있기 때문에 아리아드네는 광장에서 자유롭게 무의식을 꿈꾸며 디오니소스를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의 해석에 근거하여 우리는 이제 키리코의 〈사랑의 노래〉에 접근할 수 있다. 이성을 상징하는 아폴로는 벽에 결박되어 있고 그 아래에 놓인 초록색 공은 곧 다가올 아리아드네와 디오니소스의 사랑을 예견하는 사물로 해석된다. 빨간 고무장갑의 의미를 해석하기가 쉽지 않은데, 키리코의 다른 작품 〈형이상학적 트라이앵글〉을 보면 텅빈 건축물들을 배경으로 체스판 위에 빨간 장갑이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장면으로 미루어볼 때 아마도 빨간 장갑은 체스판으로 상징되는 운명을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닐까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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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손이 아폴로와 함께 결박된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실존’은 이성의 논리도 운명론도 아닌 인간 주체의 생에 대한 의지와 신념에 의해 실현된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폴로(이성)와 빨간 장갑(운명)이 결박되었기 때문에 아리아드네와 디오니소스의 만남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사랑’을 마음껏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생뚱맞던 증기 기관차도 사랑의 도래를 암시하는 모티브로 읽힌다.
아리아드네의 잠은 근대에서 현대로 이행하는 시대정신의 상징으로 읽을 수 있다. 이성적이라고 자부하던 사상과 법과 이념이 세상에 전쟁을 일으키고 재난을 야기하며 불안의 시대를 초래하였고, 그 결과 사람들은 이성을 불신하고 오히려 이성이 억압해온 파토스와 무의식의 세계에서 새로운 정신을 찾고자 했다. 니체는 이러한 시대정신의 전환을 예고한 철학자였고, 키리코는 니체의 새로운 사상이 새로운 미술의 보고(寶庫)임을 알아챈 화가였다. 니체가 현란하게 구사한 은유적 언어들을 키리코는 데페이즈망 회화로 재현하였고 이것이 후대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감성을 자극하며 키리코는 명실상부한 초현실주의 미술의 아버지로 평가받게 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니체의 사상적 전환을 배경으로 탄생한 초현실주의 미술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미술이었고, 파토스와 무의식의 해방을 꿈꾸는 차세대 화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며, 20세기 현대미술의 중심에서 한 획을 긋는 미술 사조로 전개된다.

초현실주의 미술의 영향과 전개

에른스트와 마송을 위시한 유럽의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나치 정권의 등장으로 ‘퇴폐 미술가’로 낙인찍히는 불운을 겪는다.5 억압과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유럽의 화가들은 대부분 미국으로 망명을 떠났고 이 행렬로 미국은 유럽에 이어 새로운 미술의 중심지로 부상하는 호기를 맞는다. 다다(Dada)의 거장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신조형주의의 창립자 피터르 코르넬리스 몬드리안(Pieter Cornelis Mondriaan), 바우하우스 교수 라슬로 모호이너지(László Moholy-Nagy), 요제프 알베르스(Josef Albers) 등 다양한 영역의 거장들이 대거 미국으로 망명했지만, 미국 신세대 화가들의 마음을 가장 사로잡은 것은 초현실주의 미술이었다. 1945년 ‘뉴아트 운동’을 일으키며 뉴욕화파를 주도한 빌럼 데 쿠닝(Willem de Kooning),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아실 고키(Arshile Gorky), 마크 로스코(Mark Rothko) 등 모두가 초현실주의 미술의 강령인 꿈과 무의식의 세계, 억압된 파토스의 해방에 매료되어 각자의 방식으로 미국적 감각의 독창적 양식을 산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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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 시리즈’로 유명한 데 쿠닝의 경우는 유년기 트라우마로 무의식에 자리한 엄마에 대한 증오와 이에 반비례하는 모성에 대한 강한 그리움의 이율배반적 감정을 작품 〈여인〉6에 쏟아내며 단번에 추상표현주의의 핵심 인물로 등극한다. 폴록의 경우는 마송의 오토마티즘 추상화에 영향을 받아 ‘액션 페인팅’7이라는 새로운 양식을 창조한다. 마송은 뉴욕에 도착하여 초기의 오토마티즘 소묘법을 추상화로 발전시켰고 그 대표적인 작품이 〈더 킬〉이다. 선과 색은 유려하지만 전쟁의 트라우마를 표출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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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마송의 오토마티즘 추상화에 영향을 받으며 폴록은 한 단계 더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그리는 행위에는 이미 의식이 작용한다고 보고 물감을 뿌리는 행위에서 우연의 효과를 극대화시켜 무의식에 몸을 맡기는 액션페인팅을 산출한 것이다. 작품 〈One: Number 31〉에서 우리는 원숙기에 다다른 폴록의 액션 페인팅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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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쿠닝과 폴록 외에도 미국의 많은 젊은 화가들이 초현실주의 미술에 영감을 받으며 뉴욕화파의 주역이 되었는데, 이러한 현상은 미국뿐만 아니라 통일 후 독일의 화단에서도 나타난다. 1989년 분단의 장벽이 무너진 후 독일에는 ‘신(新) 라이프치히화파’라는 신세대 그룹이 출현한다. 구동독의 라이프치히 미대 출신의 젊은 화가들로 구성된 이 화파는 통일 후 밀어닥친 자본주의의 소비문화와 사회주의의 충돌, 체제와 개인의 문제 등을 주로 테마화했다. 이 화파를 대표하는 화가 라우흐의 〈야만을 기다리며〉라는 작품을 보자. 구동독체제의 망령을 상징하는 텅 빈 건물, 사회주의 유니폼을 입은 여성들이 무기를 든 모습, 미노타우로스의 화형식과 카니발 축제, 아리아드네를 연상케 하는 듯 잔디에 누워 있는 여인, 이상한 형상의 괴물 등 과거와 현재, 신화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미지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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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흐는 선과 악의 경계가 분명치 않은 그림들을 시대, 문화, 이념, 체제를 초월해 그리며 보는 사람들을 많이 당황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일체 설명하지 않는다. 각자가 그림 속에서 자기 이야기를 찾아가길 바란다. 그러면서 “나의 그림은 가치를 상실하고 표류하는 시대에 안정감을 주고 우리 자신의 중심으로 이끄는 표지판”8이라고 말한다.
초현실주의 미술은 20세기 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니체의 새로운 사상에 영향을 받아 태동하였고, 전후 미국과 통일 후 독일의 신세대 화가들에 의해 팔색조의 모습으로 부활하여 때로는 트라우마를 분출하는 치유의 미술로, 때로는 현대인의 공허한 마음에 다시 신화를 품는 꿈의 미술로 전개되며 명실상부한 현대미술의 클래식으로 위상을 굳히게 된다.

초현실주의 미술과 한국 화단

서구와 달리 한국 화단에서 초현실주의 미술은 주류를 이룬 적이 이상하게 한번도 없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며, 초현실주의 미술이 한국에 토착화되기에는 사상의 내적 필연성이 약할 수 있다는 생각에 미쳤다. 서구의 경우는 플라톤이 로고스 이념을 주창한 이래 수천 년 동안 이분법적인 사유체계가 사상을 지배해왔고, 이 패러다임에 전환이 일어난 것은 불과 20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전쟁과 재난, 불안의 시대를 경험하며 서구의 지성인들과 예술인들은 이성의 사유체계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꿈의 세계를 연구하고 무의식의 해방을 주장하는 학문과 예술이 마치 시대적 소명이라도 받은 듯 우후죽순으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사상에는 서구처럼 뚜렷한 이분법적 사유체계가 사실상 부재했다. 성리학처럼 형이상학적 사유를 추구한 사상도 큰 틀에서는 자연주의를 벗어나지 않았다.9 그래서 로고스에 대한 저항으로 출현한 초현실주의 미술이 이 땅에 정착하기에는 사상의 내적 필연성이 턱없이 약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의 마음에는 서구인들이 모르는 ‘한’(恨)이라는 것이 있다.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는 한의 정서가 깊이 내재해 있다. 서구의 종교인 기독교가 한국에 급속도로 퍼질 수 있었던 것도 한으로부터의 구원을 열망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필자는 이 한이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에 내재한다고 본다. 그 한의 역사가 이미지로 흘러나와 한국의 독특한 초현실주의 미술로 토착화되는 것을 꿈꾸어본다.

주(註)
1 페르조나(persona)는 원래 고대 그리스의 연극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일컫는 말로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자기 자신’의 원형에 이르기까지 가면을 적절히 사용하며 관계를 이루어간다는 문맥에서 차용하였다. 즉 복잡한 심리구조를 지닌 개인이 공통의 사회적 요구에 적응하는 과정의 ‘매개’로 페르조나를 사용하였다.
2 프로타주(frottage)와 그라타주(grattage)는 거친 표면을 지닌 사물에 종이나 천을 대고 연필과 물감으로 문지르는 기법이고, 데칼코마니(decalcomanie)는 접어서 생기는 우연의 형상에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가는 기법이다.
3 이는 15세기 로마 근교에서 발견된 벨베데레의 아폴로(Apollo Belvedere) 조각상의 일부로 기원전 4세기 그리스 고전주의 조각의 로마 카피(copy)라는 것이 일반적 생각이다. 바티칸 미술관의 벨베데레 건물에 소장되어 있어 그렇게 부른다.
4 김은진, “은유적 기호체계를 통한 지오르지오 데 키리코의 니체 읽기,” 「현대미술사연구」 20권(2006): 8, 12.
5 1937년 나치 정권은 전위적 성향의 모든 현대미술 작품을 압류해 ‘퇴폐 미술전’(Entartete Kunst)이라는 명목으로 대대적인 순회전을 벌인다. 이때 팔린 작품으로 모인 수입금은 전쟁 자금으로 사용했고, 팔리지 않은 작품은 대부분 소각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6 데 쿠닝의 〈여인〉은 여성을 무자비하고 폭력적으로 표현한 점에서 페미니즘의 공분을 산 작품이기도 하다. 이 논란에 대한 답은 없지만, 초현실주의 미술이 윤리 이전에 한 개인의 트라우마와 무의식을 분출하는 미술이라는 점에서 예술적 자유의 입장과 페미니즘의 비판이 서로 대립하는 작품이다.
7 액션페인팅(action painting)은 뉴욕화파의 잭슨 폴록에 의해 미술사에 처음 정립된 회화 양식이다. 물감으로 그리는 기존의 페인팅 방식 대신에 캔버스를 바닥에 깔고 물감을 떨어뜨리거나(드리핑) 흩뿌리는 ‘행위’에 중점을 둔 미술 기법으로 용어 자체는 1952년 해롤드 로젠버그(Harold Rosenberg)의 저서 『미국의 액션화가들』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8 2021년 12월 서울의 스페이스-K 초대전에서 진행된 인터뷰.
9 양명수, “성리학의 자연 내재주의,” 『성명에서 생명으로: 서구의 그리스도교적 인문주의와 동아시아의 자연주의적 인문주의』(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12), 386 이하.


신사빈|독일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미술사의 신학』, 역서로 『예술의 힘』이 있다.

 
 
 

2023년 1월호(통권 7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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