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나그함마디 문서의 이해 04]
문화·신학·목회 (2022년 10월호)

 

  『이집트인들의 복음』에 나타난 셋의 성육신과 침례
  

본문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1:1, 1:17)으로 나오고,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은 신약성서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온다.(마 1:20, 9:27, 12:23, 15:22, 20:30-31, 21:9, 21:15, 22:42, 22:45, 막 10:47, 10:48, 12:35, 12:37, 눅 1:27, 18:38-39, 20:41, 20:44, 계 22:16)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예수 당시의 일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구원자(메시아)가 바로 다윗의 후손 가운데 태어날 것으로 생각했다. 그 메시아는 다윗처럼 군사적으로 힘이 있고, 왕과 같은 위엄을 가지고 있어서 로마제국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해방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 복음서에서 예수를 따랐던 제자들과 군중들이 결정적으로 예수를 버리고 도망간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예수가 다윗과 같은 왕권을 가진 메시아의 모습이 아니라 고난을 겪고 죽임을 당해야 하는 메시아의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예수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수의 초기 사역(귀신 축출과 치유와 권위 있는 말씀 등)을 통해서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생각했다가, 나중에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고난을 겪고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서 속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그함마디 문서에서 다윗은 딱 3번 언급되고, 그 내용도 매우 부정적이다.1 예를 들면, “다윗은 웃음거리였다. 왜냐하면 그의 아들은 사람의 아들로 불렸고 나와 나의 동족들보다 강했음에도 그는 일곱째 영역의 지배자에 의해서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위대한 셋의 둘째 논고』 63) 다윗은 우상숭배에 빠졌고, 그 안에는 악마가 거주하고 있으며, 그가 간통으로 낳은 솔로몬도 악마를 통해서 예루살렘 성을 만들었다는 서술도 나온다.(『진리의 증언』 69,32-70,30)
반면에 신약성서에서 한 번 언급된 셋(Seth, 눅 3:38)은 나그함마디 문서에서 부지기수로 등장하며(최소 100번 이상) 매우 긍정적인 인물로 묘사된다.2 신약성서와 주류 그리스도교에서 예수가 다윗의 후손이라면, 영지주의자들(특히 셋파 영지주의)은 예수가 셋의 후손 그 이상이라고 말한다. 즉, 셋이 성육신하여 구원자의 모습으로 예수에게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이집트인들의 복음』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결론적인 이야기에서는 이 문서의 목적과 셋의 역할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책은 위대한 셋이 작성하여 그 위에 태양이 떠오른 적이 없고, 떠오를 수도 없는 높은 산들 속에 둔 것이다. 예언자들과 사도들과 설교자들의 시대 이후로 그 이름은 그들의 마음에 떠오른 적도 없고, 떠오를 수도 없고, 그들의 귀로도 들을 수 없었다. 위대한 셋은 이 책을 130년 동안 철자 하나하나씩 기록해서 차락키오라고 하는 산에 두었다. 그래서 시간과 시대의 마지막에 거룩하신 아우토게네스와 온 플레로마의 뜻을 따라, 찾을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는 아버지의 의지를 통해서, 이 책은 위대하신 구세주의 불멸의 거룩한 종족과 그들과 함께 사랑 속에 거하는 자들과 위대하시고 보이지 않으시고 영원하신 영과, 그분의 독생자와 영원한 빛과 그분의 위대하시고 불멸이신 배우자와 불멸의 소피아와 바르벨로와 영원 속 의 온 플레로마를 드러낸다. 아멘.(68,1-69,5, 이하 인용문에서의 강조 표시는 필자의 것임)3

『이집트인들의 복음』의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침례’이다. 지난 호에서 다룬 『빌립복음』이 영지주의자들이 행한 성례에 관한 일반적인 설명이었다면, 『이집트인들의 복음』은 침례를 구원과 관련지어 특별히 강조한다. 영지주의자들의 신앙생활을 위한 결정적인 단계에 침례가 있어서, 때로는 영지주의 침례를 받는 것이 영지(그노시스)를 받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된다.4

『이집트인들의 복음』의 서론적인 문제와 주요 내용

이 문서의 또 다른 제목은 ‘위대한 보이지 않는 영의 거룩한 책’이지만, 관례로 『이집트인들의 복음』으로 불린다. 유사한 제목으로 알려지고 교부들이 종종 언급한 외경의 『이집트인들에 따른 복음』과는 전혀 다른 문서이다.5 비록 제목에서는 이집트가 언급되었지만 그 내용에서 이집트와의 연관성은 희미하다.6
이 책의 저자와 저작 장소와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다. 원래 그리스어로 기록된 이 문서는 나중에 콥트어로 번역되었고, 현재의 콥트어 본문은 350년 이전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서는 나그함마디 코덱스 3권(III,2)과 4권(IV,2)에 조금 다른 형태로 들어 있다. 사본학적으로 다른 두 개의 그리스어 본문이 다른 번역자에 의해 각각 번역되어 문체와 용어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상당히 드러난다.(그러나 몇몇 학자들은 같은 본문을 두 명의 번역자가 달리 번역했다고 주장한다.) 벤틀리 레이튼은 4권에 실린 사본이 3권보다 내용이 우월하다고 판단하여 4권을 기준으로 영어 번역본을 만들었다.7 반면 마빈 메어나 제임스 로빈슨은 오히려 보존 상태가 좋은 3권을 기준으로 번역하였다. 필자 또한 3권을 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이집트인들의 복음』은 내용상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분(40,12-55,16)은 『요한 비밀서』보다 복잡하면서도 약간 다른 형태와 내용으로 천상 세계와 신들의 기원을 설명한다. 먼저 보이지 않는 위대한 영으로서의 초월적인 하느님이 존재하고, 이것으로부터 ‘아버지’, ‘어머니’, ‘아들’이 방출되어 나오고, 이들로부터 각각 8개(Ogdoad) 영역(힘)이 방출되어 나온다. 이 외에도 ‘영광의 주’라는 의미가 있는 독소메돈(Doksomedon), 남성인 처녀 요우엘(Youel), ‘자녀의 자녀로’ 불리는 에세페크(Esephech), 스스로 발생한 로고스(Self-Generated Logos), 미로토에(Mirothoe), 프로파니아(Prophania), 셋과 네 개의 빛(아르모젤, 오리아엘, 다우에이타이, 엘레레트), 타락하지 않는 최초의 인간인 아다마스(Adamas)와 아다마스의 아들인 위대한 셋, 타락하지 않는 부동의 셋의 후손, 물질적 지혜(Sophia), 셋의 후손의 탄생과 함께하는 천사적 존재인 호모스(Hormos)와 에도클라(Edokla), 셋의 후손을 지키는 보호자(guardian) 등이 방출된다.8 보이지 않는 위대한 영은 모나드와 똑같은 존재로서 모든 것의 기원이 되는데, 이것으로부터의 방출은 일직선으로 이뤄지기보다는 마치 태양이 빛과 열과 화염을 360도로 방출하듯이 모나드를 정점으로 일어난다.
둘째 부분(55,16-66,8)은 셋 후손의 기원과 보존과 구원에 관해서 설명한다. 교만한 하데스(Hades)와 혼돈의 지배자인 사클라(Sakla)와 그의 부하 악마들이 가하는 셋의 후손에 대한 적대적 행위를 막기 위해서 셋은 천상의 플레로마에서 내려온다. 이때 셋은 예수의 몸을 입고서 이 땅에 와서 그의 후손들을 구원한다.
셋째 부분(66,8-67,26)은 침례 기도문을 담고 있고, 넷째 부분(68,1-69,20)은 위대한 셋이 이 문서를 130년 동안 작성하여 태양 빛이 닿지 못하는 차락키오(Charaxio) 산에 두어 마지막 때에 드러낸다는 결론적인 이야기를 포함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그노스토스(Eugnostos)라는 필사자의 후기가 나온다.9

『이집트인들의 복음』에 나타난 셋의 성육신과 침례

『이집트인들의 복음』에서 물질적인 세계의 지배자 사클라는 물질의 소피아와 연관되어 나온다. 『요한 비밀서』처럼 소피아의 타락으로 물질의 신 얄다바오트가 태어났다는 구체적인 내용은 없고 다만 암시되어 있다. 그래서 얄다바오트처럼 “사클라는 세상을 만든 후에 자신의 천사들에게, ‘나는 질투하는 신이다. 나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못했느니라’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본질에 관해 어떤 부분을 느꼈기 때문이다.”(58,23-59,2)
최초의 인간 아다마스와 그의 아들인 위대한 셋은 이미 영적인 플레로마 안에 있다.(51,1-22) 실상 셋은 이미 다른 영지주의 문서에서 영지주의자들의 아버지로 나타난다.(『아담 묵시록』 65,6-9; 『셋의 삼석비』 118,12-13)10 셋의 후손은 거룩한 몸 안에서 성령을 통해서 말씀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60,2-61,1) 이런 진술은 거룩한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하여 낳는다는 마태와 누가복음의 기록과 유사하다.(마 1:18, 눅 1:30-35) 그래서 예수도 셋의 후손처럼 이 땅에 인간의 몸을 통해서 태어난 것이 된다.
마지막 시대에 홍수가 오고, 이 세대로 인해 큰 화염이 이 땅에 임하고, 거짓 선지자들의 속임수와 시험이 있었다. 그때 위대한 셋은 사클라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장하여 음모로 타락하지 않는 부동의 세대(셋의 후손)에 대항하는 것을 보았다.(61,1-62,11) 셋은 그의 후손을 위해서 보호자 천사들을 요청했고, 천상에 있던 400명의 천사가 위대한 에로시엘(Aereosiel)과 위대한 셀메첼(Selmechel)과 함께 그의 후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내려왔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위대한 영과 그의 플레로마의 의지를 따라서 천상의 네 빛은 셋을 이 세상으로 보냈다.(62,12-63,5)
선견지명을 통해서 셋은 거룩한 침례의식을 말씀으로 태어난 생명의 예수를 통해서 제정했다. 셋은 예수로 옷을 입었다. 즉, 위대한 셋이 성육신하여 예수가 되었다. 예수는 13 에온의 지배자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십자가를 통해서 침례를 확립했다. 그는 타락하지 않는 무적의 힘, 즉 진리의 지식으로 무장하도록 침례에 참여하는 자들을 준비시켰다.(63,23-64,4) 권세자(아르콘)와 통치자를 제압하는 예수의 십자가의 능력이 침례(밥티스마)와 관련되어 있다는 내용은 골로새서 2장 10-15절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10 여러분도 그분 안에서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통치와 권세의 머리이십니다. 11 그분 안에서 여러분도 손으로 행하지 않은 할례, 곧 육신의 몸을 벗어버리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12 여러분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또한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습니다. 13 또 여러분은 죄를 지은 것과 육신이 할례를 받지 않은 것 때문에 죽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14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리한 조문들이 들어 있는 빚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으셔서, 우리 가운데서 제거해버리셨습니다. 15 그리고 모든 통치자들과 권력자들의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포로로 내세우셔서, 뭇 사람의 구경거리로 삼으셨습니다.(골 2:10-15, 새번역)

예수는 모든 통치와 권세의 머리가 되기 때문에 통치자들과 권력자들의 지배(빚문서)를 십자가에 못 박아서 그들을 제압할 수 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할례는 전후 문맥을 고려하면 침례를 의미한다. 침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사는 것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강력한 하느님의 능력이 된다.
『이집트인들의 복음』은 침례를 제정한 예수가 바로 위대한 셋의 후손이며, 동시에 셋이 성육신한 존재로 규정한다. 그래서 생명의 침례를 통해서 셋의 후손은 금욕과 기도의 가치를 배우게 되고, 죽음을 절대로 맛보지 않게 된다.(66,1-7) 이후로 이어지는 침례 기도문(Baptismal Hymn)에서 ‘예세우스’(Yesseus)는 생명의 물이며, ‘자녀의 자녀’이며, 영원한 존재로 묘사된다. 그리고 ‘예세우스 마자레우스 예세데케우스’라는 호칭을 통해서 ‘예세우스’가 예수를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66,8-67,1) 이 기도문의 기도자는 예수를 스스로 태어난 자이며 “침묵의 하느님”이자 “안식처”이며, 영원히 존재하는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찬양한다.

나가는 말

필자가 잘 아는 한 평신도가 최근에 발행된 한글판 『나그함마디 문서』를 사서 앞부분을 읽다가 어려워서 읽기를 포기했다. 그분은 자기가 처음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성서를 읽을 때 너무 어려워서 무슨 뜻인지 몰랐던 느낌을 나그함마디 문서를 읽을 때 똑같이 느꼈다고 고백했다. 여기에 나오는 내용과 용어(플레로마, 에온, 바르벨로, 얄다바오트 등)가 너무 낯설어서 마치 넘을 수 없는 산에 올라가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필자 또한 『이집트인들의 복음』에 묘사된 복잡한 신들의 기원(theogony)을 정리하여 쉬운 문장으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이집트인들의 복음』은 『요한 비밀서』의 기본구조를 매우 복잡하게 변형하여 모나드의 방출로 만들어진 신적 플레로마를 제시하므로, 일직선적인 방출 형태가 아니라 마치 밤송이의 가시처럼 360도로 방출이 일어나고, 모나드와의 거리(관계)도 밤송이의 가시의 길이처럼 들쑥날쑥하여 하나의 방출 구조로 설명하기 어렵다.
신약성서에서 신적인 로고스(말씀)가 인간이 되는 것을 가장 명확하게 표현한 구절은 요한복음 1장 14절이다. 즉, “말씀(λόγος)이 육신(σάρξ)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개정개역)라는 선언은 분명하게 신적인 로고스가 예수가 되었고, 이러한 과정에 아버지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게 참여했음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이집트인들의 복음』은 요한복음의 예수 성육신을 따른다. 다만 여기에서 예수는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태어날 뿐만 아니라 천상의 플레로마에 거하는 신적인 위대한 셋의 화신(化神)이 된다. 즉, 『이집트인들의 복음』은 말씀(하느님)이 예수를 통해 성육신하였음을 부정하지 않지만, 강조점은 신적인 위대한 셋이 예수를 통해 성육신되었고, 이 정점에 침례가 자리 잡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주류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 그리스도교는 공통으로 침례(세례)를 악의 세력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와 더불어 죽고 다시 사는 것을 보여 주는 구원에 매우 유효한 의식으로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물론 신약성서와 나그함마디 문서에는 침례를 경시하거나 침례보다 믿음이나 지식을 더 강조하는 구절들도 있다.) 이는 “현대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은 구원을 이신칭의를 통한 오직 믿음에 근거해서 받는 것이지, 세례나 다른 성례를 통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과 대조된다.11 신약성서와 나그함마디 문서는 공통으로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위한 성례를 거의 놓친 적이 없으며, 특히 『이집트인들의 복음』은 침례가 구원을 위한 중요한 의식임을 보여준다.
다음 호에서는 비 그리스도교 영지주의 문서로 간주하고 구원자 모습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셈의 풀이』(Ⅶ,1)에 관해서 살펴보겠다.

주(註)
1 Marvin Meyer ed., The Nag Hammadi Scriptures (New York: HarperCollins, 2007), 483, 626-627.
2 Meyer, 위의 책, 841-842에 나오는 셋에 관한 색인을 참조하라.
3 Meyer, 위의 책, 269. 여기에서 사용한 본문은 마빈 메어가 콥트어를 번역한 영어본을 필자가 국문으로 번역해서 사용한다.
4 Bentley Layton ed., The Gnostic Scriptures: Ancient Wisdom for the New Age (New York: Doubleday, 1987), 19.
5 외경 『이집트인들의 복음』에 관해서는 송혜경의 책을 참조하라. 송혜경, 『신약 외경 상권: 복음서』(한님성서연구소, 2009), 168-173, 354-358.
6 Layton, 앞의 책, 101
7 Layton, 위의 책, 103.
8 Layton, 위의 책, 102-103; James M. Robinson ed., The Nag Hammadi Library (New York: HarperCollins, 1990), 208.
9 Robinson, 위의 책, 208.
10 Birger A. Pearson, Ancient Gnosticism: Traditions and Literature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7), 126.
11 조재형, “사도행전의 침례: 사도행전 2장 38절을 중심으로,” 「생명과말씀」 32권 1호(2022): 165.


조재형|클레어몬트 대학원대학교(CGU) 종교학과에서 신약성서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This Is My Flesh, 『그리스-로마종교와 신약성서』 등이 있다. 현재 강서(그리스도)대학교, 서울기독대학교에서 신약성서를 가르치고 있으며, 영지주의와 나그함마디 서고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스톤-캠벨 운동을 연구하는 환연연구회 회장과 요한문헌학회 총무로 활동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운영하고 있다.

 
 
 

2022년 11월호(통권 767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