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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모더니즘 시대의 미술 산책 02]
문화·신학·목회 (2022년 8월호)

 

  인상주의(impressionism)와 빛의 미술: 일상의 재발견
  

본문

 

인상주의 미술은 19세기 프랑스에서 생겨난 미술 양식이다. 지난 호에서 살펴보았던 사실주의(realism) 미술이 계몽주의에서 강화된 이성 주체를 배경으로 하여 현실을 사회비판적 시각에서 표현했다면, 이어 등장한 인상주의 미술은 사실주의 미술이 열어놓은 일상 현실의 지평을 심미적 차원으로 발전시킨다. 사실주의가 ‘무엇’을 그리는가의 내용에 치중했다면, 인상주의는 내용보다는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미적 시각을 중시했다. 그 결과 전자는 신사실주의, 신즉물주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등 사회비판적 내용을 주제로 하는 현대미술의 흐름을 낳았고, 후자는 신인상주의, 야수파, 추상미술 등 순수 형식을 중시하는 현대미술의 흐름을 낳는다.
19세기 보수적인 아카데미에서 여전히 성서, 신화, 역사 등의 객관적 주제들을 고전적으로 재현하는 미술이 주류를 이루던 때에, 그림 소재에서부터 일상으로의 전환을 이루고 나아가 화가 개인의 주관적 시각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사실주의와 인상주의는 모두 ‘모더니즘’ 미술의 포문을 열며 20세기 현대미술을 예비한 새로운 양식이었다.

모네와 인상주의의 시작

인상주의 미술의 화두는 ‘빛’이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이 사물에 닿으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색과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려 했다. 그들에게는 사물이 지닌 고유의 색과 형태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빛에 의해 언제든 부서지고 변화할 수 있는 비본질적 요소들이었다. 중요한 것은 빛이 어떻게 대기에 스며들어 사물 표면을 변화시키는지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상주의 화가들은 모두 야외에서 직접 이젤을 펴놓고 그림을 그렸다. ‘인상’이라는 용어가 처음 생겨난 것은 모네의 〈해돋이〉라는 작품에서였다.
아직 인상주의라는 말조차 존재하지 않을 무렵 새로운 미술을 추구하던 일련의 화가들이 있었고, 이들은 전통적인 아카데미 미술을 대변하는 ‘살롱전’에서 매번 낙선하는 비운을 겪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낙선전’이라는 전시를 따로 기획하는 등의 모임을 통해 뜻을 같이했고 그룹을 형성하였다. 1874년 모네를 비롯해 피사로, 시슬레, 드가, 르누아르 등 30여 명의 화가들이 개최한 전시도 그러한 것이었다. 전시 평은 예측한 대로 혹평 일색이었고, 모네의 〈해돋이〉도 피상적인 “인상”을 그린 미완성의 작품이며 “초벌의 벽지도 이보다는 잘 그렸을 것이다.”라는 조롱 섞인 평을 듣게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화가들은 ‘인상’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자신들이 추구하는 미술을 대변한다고 느꼈고, 이때부터 자신들을 지칭할 때 ‘인상파’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모네의 〈해돋이〉는 해가 떠오르는 아침 항구의 풍경을 그리고 있는데, 한눈에 봐도 대상을 사실적으로 모방하거나 잘 그리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알 수 있다. 정박 중인 범선과 굴뚝에서 연기를 내뿜는 산업시설의 고유한 색과 형태는 다 뭉개져 있고 전체적인 인상만 재빨리 스케치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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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에게는 그리는 대상도, 대상을 잘 그리는 것도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물감을 칠하거나 바르지 않고 마치 특정 톤(tone)으로 음악을 연주하듯 붓으로 화폭을 짧게 터치하는 기법을 구사했다. 이 그림에서도 일출의 빛이 항구의 대기를 어떻게 물들이고 이내 찰랑거리는 물살에 반사되는지의 순간적 인상을 가볍게 터치하고 있을 뿐이다. 모네가 그리고자 한 것은 결국 눈에 보이는 항구의 풍경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빛과 빛의 작용이었다. “초벌의 벽지”보다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조롱 섞인 평을 들었지만, 모네에게 〈해돋이〉는 더 이상의 가감이 필요 없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 초기부터 보이는 대상을 모방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던 그는 계속해서 빛의 작용을 탐구하는 데 천착했고 이로부터 똑같은 대상을 여러 장 반복해서 그리는 실험적 작품들을 산출했다. 〈건초더미〉도 그러한 연작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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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 화가 밀레도 〈이삭 줍는 여인들〉에서 건초더미를 그렸는데, 여기서 건초더미는 부유한 지주를 상징하는 비유이자 이삭 줍는 노동자와 대비되는 사회비판적 관점에서 등장한 소재였다. 반면 모네가 그린 건초더미는 아무런 내용이 없다. 단지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강도와 색을 표현하기 위한 무의미한 대상일 뿐이다. 모네에게는 대상이 건초더미이든 대성당이든 아무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감상하는 관전 포인트는 ‘무엇’을 그렸는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다. 그림 앞에서 일어나는 미적 경험은 거창한 구호나 메시지로 다가오지는 않지만, 내면에서부터 조용히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한다.
한 예로 바실리 칸딘스키와 연관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화가가 되기 전 칸딘스키는 모스크바대학의 법대 교수였는데 어느 날 우연히 전시장에서 모네의 〈건초더미〉를 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림 앞에서 미적 경험이 일어난 것일까? 법보다 미술을 통해 더 많은 것을 표현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무튼 그의 예감은 적중했고 그는 표현이 무한한 추상미술의 세계를 연 선구자적 화가가 된다.
칸딘스키의 일화가 말해주듯 인상주의 미술은 빛을 통해 세상을 다르게 보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빛에 의해 부서져 새롭게 채색된 세상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려준다. 그리하여 고통스러운 현실에서도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며 위로와 희망으로 다가오는 미술이다.

한국의 인상주의와 아름다운 조선

한국의 미술계에서 인상주의 화풍이 처음 나타난 것은 일제강점기 때였다. 당시 가장 큰 미술전이었던 조선미술전람회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운영되었는데, 심사 기준은 “황토색”의 “애조 띤 한국의 미(美)”였다. 얼핏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 담긴 속내는 식민지 조선을 가난하고 헐벗은 모습으로 그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일제의 간교한 요구에 맞서 조선미술전람회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한 화가가 있었으니 바로 인상주의 화가 오지호였다. 당시 대부분의 화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지호도 인상주의라는 신(新) 미술을 일본 유학을 통해 접했다. 전남의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난 오지호의 아버지 오재영은 보성군수까지 지냈지만, 식민 현실에 대한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하였다. 아버지의 결기를 이어받은 듯 오지호도 창씨개명을 거부해 일경의 감시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감시 속에서도 그는 일제가 말살하려고 한 조선의 문화적 긍지를 보여주고자 일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고급 화집을 출판하였고 일제의 취향에 맞서 밝고 명랑한 조선을 그리고자 했다. 〈남향집〉은 그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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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도 느껴지듯 이 그림은 따스한 남향의 햇살을 머금은 시골의 초가를 그리고 있다. 뜨락에는 삽살개가 늘어져 낮잠을 자고 있고 개에게 밥을 주기 위해 소녀가 문턱을 넘는 일상의 모습이 평화롭다. 그림 전면에는 나무 한 그루가 높이 솟아있는데 나무의 긴 그림자가 담벼락과 초가지붕을 대범하게 가로지르는 것이 인상적이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에 나무의 그림자가 닿아 있는 것은 마치 나무의 생(生)의 의지가 하늘과 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굳건히 땅에 발을 딛고 하늘에 닿고자 한 한민족의 정기를 비유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를 강조하듯 화가는 나무의 그림자와 하늘의 색을 밝은 청보라색으로 통일시키고 있다.
밝은 청보라색은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이 전형적으로 쓰던 그림자 빛깔이다. 인상파 화가들은 그림자에도 검은색을 좀처럼 쓰지 않았는데, 빛이 프리즘을 통과할 때 나타나는 색에 검정이 없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검정은 빛의 색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오지호도 밝은 청보라색으로 그림자를 채색하였고 이는 담장의 밝은 노란색과 보색 대비를 이루며 화면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처럼 오지호는 서구의 신(新) 미술사조인 인상주의 화풍을 통해 당시 일제가 요구했던 “애조 띤 한국의 미(美)”와는 정반대의 밝고 명랑한 조선의 아름다움을 그리고자 했다.
오지호의 이러한 저항적 미술 행위는 같은 시기에 활동한 이인성의 작품과 비교할 때 더욱 돋보인다. 조선미전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이인성의 〈경주의 산곡에서〉를 한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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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두 사람은 마치 고갱의 그림에 등장하는 타히티섬의 원주민을 연상시키지만 건강미가 넘치기보다는 오히려 헐벗은 느낌이다. 그리고 이 헐벗은 느낌은 적황토색으로 물들여진 땅을 통해 심지어 처절해지기까지 한다. 마치 생명이 자라지 않는 피폐한 땅을 보는 것만 같다. 과거 신라 도읍지의 화려한 유산은 빛바랜 듯 땅 위에 깨진 기왓장으로 상징되며 널브러져 있다. 이인성의 작품을 두고 친일 논란이 있는 것은 그의 그림이 당시 일본 심사위원들이 요구한 취향에 너무도 부합하기 때문이었다. 이와 비교해 오지호의 그림은 빛을 주제로 밝고 명랑한 조선의 일상을 당당히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인상주의는 거창한 내용을 그리는 미술 양식은 아니지만, 빛을 주제화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어두운 억압의 시기에 민족적 저항의 미술이 될 수 있었다.

미술사에 나타난 빛의 미술들

미술사에서 ‘빛’이 양식(style)을 결정한 예는 이미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 1573- 1610)에서 나타난 바 있다. 그가 새롭게 창조한 ‘명암법’은 바로크 미술의 시작을 알렸으며 130년간 카라바조 양식이라는 이름으로 미술계를 지배하게 된다. ‘밝음’과 ‘어둠’의 합성어인 이탈리아어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혹은 테네브리즘(tenebrism)이라고 불리는 명암법은 카라바조의 작품 〈마태의 소명〉에서 처음 세상에 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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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9장 9절을 보면 마태가 부르심을 받는 이야기가 짧게 언급된다.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그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갔다.” 이 짧은 구절을 카라바조는 한 편의 드라마로 상상해 무대 위의 한 장면처럼 화면에 재현하고 있다. 세리들의 세계를 상징하는 죄의 어두운 공간 속으로 세상의 빛을 상징하는 그리스도가 들어서자 명과 암은 극명하게 갈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환하게 드러나고 있다. 화들짝 놀란 세리들을 향해 그리스도는 오른손을 뻗어 마태를 부르시고, 그리스도의 손이 가리키는 곳에 한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동전을 세고 있다. 이 남자가 마태이다. 고리대금으로 착취한 돈을 세고 있는 마태의 이 모습은 부르심을 받기 전 죄인의 모습이다. 이 모습에 그리스도의 빛이 비치며 마태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거듭나게 된다. 화가는 이 회심의 순간을 강렬한 명암의 대비로 표현하고 있다.
명암법이 지닌 미술사적 의미는 르네상스로 소급된다. ‘다시 태어나다’(re-nascere)라는 라틴어 어원을 지닌 르네상스의 미술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주체로 다시 태어난 인간이 중심이 된 미술이었다. 중세 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신 중심의 미술이 인간 중심의 미술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화가들은 신이 거하는 초월계로부터 인간이 거하는 세상으로 눈을 돌려 자연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인간적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원근법도 이 문맥에서 발견된 기술이었다. 즉 인간이 바라보는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평면에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기술이 원근법이었다. 바로크의 명암법도 이 연장에서 이해된다. 중세 미술이 신이 거하는 초월계를 상상하며 배경을 온통 금색으로 처리했다면, 르네상스 미술은 자연의 색을 쓰기 시작했고, 이제 바로크 미술에 오면 자연의 운행에서 생겨나는 명암을 표현하며 인간이 바라보는 3차원의 공간을 더욱 세밀하게 묘사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바로크 미술의 명암법은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미술 이념을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빛을 주제화한 인상주의 미술이 등장하기까지 수백 년간 미술사를 지배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같은 ‘빛의 미술’인데 카라바조가 발견한 빛과 인상주의의 빛은 어떻게 다른가? 전자의 빛은 3차원의 입체감과 중력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반면, 후자의 빛은 반대로 그들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전자의 빛이 명과 암을 이분법적으로 가르며 자연 사물을 드러낸다면, 후자의 빛은 명과 암을 색으로 해체시켜 자연 사물을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그래서 인상주의 미술에는 어두운 부분도 밝다. 모네의 〈파라솔을 든 여인〉을 보면 역광을 받으며 서 있는 여인의 모습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눈이 부실 만큼 화사하다. 인상주의의 빛은 일상을 비추고 있지만 피안의 세계를 열고 있는 것 같고 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꿈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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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화가들이 추구한 빛의 미술은 신인상주의에서 더욱 진화한다. 조르주 쇠라, 폴 시냑 등으로 대표되는 신인상주의 화가들은 빛이 프리즘을 통과할 때 나타나는 색들이 모두 섞이면 하얗게 된다는 빛의 속성을 그림에 적용해 둔탁하고 혼탁한 색을 모두 지양한다.
폴 시냑의 〈아비뇽의 교황궁〉이라는 작품을 보면 마치 원색으로 이루어진 빛의 향연과도 같다. 신인상주의 화가들은 또한 점묘법을 사용했는데, 빛의 입자 하나하나가 색으로 육화한다고 보고 그 육화된 색을 일일이 점으로 찍은 것이다. 그리하여 신인상주의에 이르면 사실상 사물의 고유한 색이라는 것은 완전히 사라진다. 빛과 함께 사물의 고유한 색은 사라지고 빛에 의해 새롭게 육화된 색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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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리에서 생겨난 미술이 야수파(Fauvism)이다. 야수파의 거장 앙리 마티스의 초기작 〈향락, 고요, 쾌〉는 해수욕하는 여인들과 주변의 자연경관이 하나로 어우러진 장면을 그리고 있는데 사물의 고유한 색과는 전혀 관계없는 원색의 점들이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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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는 빛에 의해 사물의 고유한 색이 해체되고 변화한다는 원리를 이용해 원색을 더욱 과감하게 쓰기 시작했고 〈빨간 스튜디오〉와 같은 반추상의 작품을 그리게 된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마크 로스코 같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는 〈No. 9〉 같은 멀티폼(multi form) 추상화를 산출한다. 이처럼 인상주의 미술은 내용보다는 순수 형식을 추구하는 미술로 발전하여 신인상주의와 야수파를 거쳐 색면 추상화로 이어지는 20세기 서구 현대미술의 흐름을 낳게 된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빛’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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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미술의 평가와 신학적 해석

19세기 프랑스에서 시작한 인상주의 미술은 사실주의 미술과 함께 모더니즘의 포문을 열었으나, 사실주의와 달리 사회비판적 관점이 부재한다는 점에서 부르주아 미술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고 중산계층의 한가한 일상만 평화롭게 그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오지호 같은 화가가 인상주의 화법 하나만으로 일제에 저항한 예는 예술의 본질이 ‘무엇’에 있지 않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는 ‘무엇’을 그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예술적 소명은 모든 보이는 대상을 초월하는 ‘빛’이었다. 그들은 빛이 사물에 닿으며 부서지는 형태와 시시각각 변하는 순간의 인상에 매료되었고 거기서부터 출몰하는 새로운 색을 그리고자 했다. 그리하여 인상주의 미술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에서 우리의 지각 영역을 보이지 않는 차원으로 넓혀주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한다.
기독교의 독특한 점은 초월성이다. 미술에서 초월성은 항상 빛으로 표현되어 왔다. 중세 미술의 빛은 금색으로 일괄 처리되었고, 바로크 미술의 빛은 명과 암을 가르며 세상을 심판하는 빛으로 그려졌다. 반면 인상주의의 빛은 세상 한가운데로 스며들어 세상과 어우러지며 일상을 새롭게 물들이는 빛이다. 그러한 점에서 인상주의 미술은 기독교 미술이다. 동시에 일상에 내재하는 빛, 색으로 육화한 빛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일상 속의 하나님을 강조한 프로테스탄트 정신에 부합하는 미술이기도 하다. 인상주의 미술은 성화도 아니고 사회비판적 도상도 아니지만, 하나님의 초월성을 일상의 빛 가운데에서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하나님 계시의 또 다른 상징인 것이다.

신사빈|독일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미술사의 신학』, 역서로 『예술의 힘』이 있다.

 
 
 

2022년 8월호(통권 7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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