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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나그함마디 문서의 이해 02]
문화·신학·목회 (2022년 8월호)

 

  『요한 비밀서』에 나타난 세상과 인간의 창조
  

본문

 

『요한 비밀서』(Apocryphon of John)에는 세베대의 아들 사도 요한이 구원자에게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하면서 제기한 네 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던져진다. 전체 내용을 예시하는 그 네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다. “구원자는 어떻게 지명되었는가? 그리고 그분의 아버지께서는 무엇 때문에 그분을 세상으로 보내셨는가? 그분을 보내신 그분의 아버지는 누구이신가? [우리가 가게 될] 에온은 어떤 곳인가?”(1,21-26)1
이러한 질문은 전통적으로 사도 요한이 썼다고 알려진 요한복음의 내용과 공명한다. 즉,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요 3:16-17, 새번역)라는 구절 안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요한 비밀서』는 세상과 인류의 기원과 종말에 대한 영지주의 신화를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에,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관한 다른 영지주의 문헌에 큰 영향을 주었다.2 이 문서는 또한 셋파 영지주의 안에서 장자와 같은 역할을 하는 책이다. 셋파 영지주의는 아담의 아들 셋과 그의 후손들이 구원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여 창세기를 매우 다른 관점에서 해석한다.3 주지하다시피, 창세기는 우주와 세상의 창조, 인간의 기원에 관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관점을 잘 보여준다. 특히 1장은 우주와 지구에 관한 하느님의 창조 작업에 초점을 맞추고, 2장은 범위를 좁혀서 아담과 하와의 창조를 중심으로 에덴동산의 모습을 보여준다. 최초의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뱀의 꼬임에 빠져 선악과를 따 먹고 하느님에 의해서 그곳에서 쫓겨나는 이야기가 3장에 나온다. 4장은 이 쫓겨난 아담과 하와가 가인과 아벨을 낳지만,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룬다.(창 4:1-24) 즉, 인류 최초의 살인이라는 파국적 결과를 맞이한 후에 아담과 하와는 셋을 낳고, 셋이 다시 에노스를 낳았을 때,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라는 구절로 마친다.(창 4:25-26)
그런데 『요한 비밀서』는 이러한 창세기 1-4장의 내용을 따르면서도 정통 그리스도교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를 해석한다. 즉, “세상과 인류의 창조가 참 하느님이 아닌 창조주에게서 비롯되었다.”4라고 주장함으로써 인간은 육체의 감옥에 갇혀 있고, 모든 피조물이 비참한 현실에 빠져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구약성서의 하느님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는 나그함마디 문서를 비롯한 영지주의 문헌에서 많이 나타난다. 이번 글에서는 제한된 지면을 고려하여 『요한 비밀서』에 나오는 하느님의 본성과 우주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를 짧게 다루고 인간의 창조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풀어갈 것이다. 먼저 『요한 비밀서』의 서론적인 문제들을 살펴본 후 본격적으로 인간의 창조에 관하여 살펴보자.

서론적인 문제

『요한 비밀서』는 1896년에 발견된 베를린 코덱스(BG 8502)를 통해서 근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 본문 자체는 1955년에 출판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이 문서는 1945년에 발견된 나그함마디 문서(코덱스 Ⅱ, Ⅲ, Ⅳ)의 약간 다른 내용을 포함하여 세상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나그함마디 코덱스 Ⅱ와 Ⅳ는 긴 본문이고, 코덱스 Ⅲ과 베를린 코덱스는 짧은 본문이다. 또한 2세기의 반영지주의 감독이었던 리용의 이레네우스가 『이단 반박』(1,29-30)에서 『요한 비밀서』와 매우 유사한 내용을 요약적으로 소개하였다.5 그러나 이레네우스는 『요한 비밀서』를 지금의 형태로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6 현재 『요한 비밀서』는 나그함마디 문서 3개(긴 본문판 2개와 짧은 본문판 1개), 베를린 코덱스 1개를 포함하여 총 네 가지 역본으로 존재한다. 이 역본들 가운데 어느 판이 원문에 더 가까운지는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되고 있다.7 원래 이것은 이레네우스가 『이단 반박』을 쓰던 185년 이전에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가 350년 이전에 콥트어로 번역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8 비록 저자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이자 세베대의 아들 요한(마 4:21, 막 1:19, 눅 5:10)으로 언급되나, 대다수 학자는 사도 요한의 이름을 빌려서 기록한 고대의 보편적인 저술 방식을 따른 것으로 본다. 저자와 저작 장소에 관해서도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다.
문학적 장르를 살펴보자면, 이 문서는 일반적으로 외경 『사도들의 행전』에서 보여주는 전기소설(Romance)의 양식을 따른다. 이런 관점에서 이 문서의 주요 등장인물들로는 신적 플레로마를 구성하는 모나드와 에온들, 얄다바오트와 그 수하의 지배자들, 인간들(아담, 이브, 아벨, 카인, 셋, 셋의 후손들), 인류 안에서 활동하는 영적 존재들(생명의 영, 지배자들의 영)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신적 계시와 소논쟁, 우주와 천체학, 지혜 독백 등의 양식을 보여준다.9

『요한 비밀서』의 개요와 주요 내용

나그함마디 코덱스 Ⅱ를 중심으로 『요한 비밀서』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부분은 네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포함하는 서론적 이야기이다.(1,1-2,25) 요한이 마음속으로 앞에서 언급했던 네 가지 의문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때, 하늘이 열리고 자신을 아버지이자 어머니이자 아들이며 흠이 없고 더럽혀지지 않는 자로 소개하는 구원자가 나타난다.(2,15-16) 구원자는 요한에게 “무엇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존재했는지, 그리고 무엇이 존재하게 될지, 밝히 드러나지 않는 것들과 밝히 드러나 있는 것들을… 또한 완전한 인간의 부동의 세대(종족)에 관해”(2,16-24) 가르칠 것을 밝힌다.
둘째 부분은 우주와 세상의 기원을 완벽한 초월적 존재인 모나드(monas)(2,25-4,21)와 이것으로부터 방출된 에온들과 함께 만들어진 플레로마의 세계(4,21-9,24), 소피아의 타락과 얄다바오트의 출산(9,25-10,19), 얄다바오트에 의한 물질적인 세상의 창조(10,19-13,13)와 소피아의 회개와 용서받음(13,13-14,15)을 다룬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점은 아버지 하느님은 완벽한 ‘단자’(monas)로서 ‘홀로 다스리시며’(monarchia) 모든 것 위에 계시고 심지어는 신 이상의 존재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으로 묘사된다는 것이다.(2,25-3,22)
셋째 부분은 인간의 창조(14,15-20,5)와 인간을 지배하기 위한 어둠과 빛의 다툼(20,5-22,9)을 포함한다. 넷째 부분은 질문과 대답의 형식으로 인간의 미래 상태에 관한 요한과 그리스도의 대화(22,9-30,11)와 어둠의 세상으로 하강하면서 부르는 구원자의 찬송(30,11-31,25. 긴 본문 판에만 있음)을 서술한다. 다섯째 부분은 결론적인 구조의 이야기(31,25-32,9)를 구성한다.

『요한 비밀서』에 묘사된 인간의 창조

신적 플레로마와 대비되는 물질적인 세상은 소피아의 욕망에서부터 시작된다. 에온 중에 제일 아래에 있는 소피아는 모나드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인 아버지를 사모하여 독단적으로 무지 가운데 매우 이상한 방식으로 자손을 출산한다. 즉, 아버지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배우자도 없이 홀로 후손을 낳은 후 ‘얄다바오트’라고 이름 짓는다. 소피아는 사자 머리에 뱀의 형상을 가진 그 혐오스러운 아이를 보고 다른 에온들이 보지 못하도록 플레로마 바깥으로 던져서 유기한다.
이 비유적 이야기는 모나드로부터의 방출이 진행될수록 그 영적인 섬광이 약화되고, 소피아의 무지로 플레로마에 균열이 생겨 얄다바오트가 탄생하고, 플레로마 바깥에 유기된 얄다바오트조차도 소피아로부터 받은 신적 섬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얄다바오트는 자신을 위해 플레로마의 에온들에 비해 열등한 에온(아르콘)들을 만든다. 그들에게 불(능력)을 주지만 소피아로부터 받은 영적 섬광을 주지는 않는다. 아르콘들은 자신들을 섬기는 일곱 능신(부하 아르콘)들을 만들고, 이 능신들은 제각각 부하 능신(아르콘)들인 여섯 천사(데몬)들을 만든다. 그리하여 전체 아르콘은 365개가 된다. 송혜경은 이 삼백예순다섯의 아르콘들이 “공간적 성격보다는 시간적 성격을 띤다.”고 해석한다. 즉, 송혜경은 “이를 테면 일곱 능신은 한 주간을 뜻한다. 한 능신은 월요일을, 다른 능신은 화요일을 다스리는 식으로 일곱 능신이 돌아가며 해당 요일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리고 삼백예순다섯의 천사(데몬)는 각자 자신이 맡은 날을 다스린다.”10라고 주장하여 천상의 플레로마의 에온들도 공간적 개념뿐 아니라 시간적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한다.
얄다바오트는 “사람은 존재한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도 (존재한다.)”라는 천상의 소리를 어머니 소피아의 목소리로 착각하였다.(14,13-15) 그리고 하늘에서 아버지의 모상이 물에 비칠 때 자기 앞에 있던 권세들에게 “자, 신의 모상에 따라 우리와 닮은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하면 그분의 모상이 우리를 비추어 줄 것이다.”(15,1-4)라고 말하면서 다른 권세들과 합작해서 사람(아담)을 만든다. 이들은 먼저 혼적 육체를 만든 다음에 물질적 육체인 각 지체를 만든다. 이것은 창세기 1장 26절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아담)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새번역)를 영지주의적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그리스도교에서 이 구절에 근거해서 구약의 하느님을 삼위일체의 하느님으로 해석하지만, 『요한 비밀서』는 ‘우리’를 얄다바오트와 그 수하 권세들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이들은 ‘첫 인간’의 형태를 모방하여 자기들과 닮은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었지만 이 사람은 전혀 활기가 없고 움직이지 않았다.(19,10-14) 이때 어머니 소피아는 얄다바오트에게 넘겨주었던 영적인 섬광(힘)을 다시 되찾고 싶어서 모나드이신 아버지 하느님께 도움을 청한다. 그러자 아버지는 다섯 개의 빛을 얄다바오트에게 보내어 “그의 얼굴에 대고 당신의 영(숨)을 불어넣으십시오. 그러면 그의 몸이 일어설 것입니다.”라고 조언한다.(19,22-24) 얄다바오트는 그 조언대로 자신의 영(숨)을 아담에게 불어넣는데, 이것은 원래 소피아가 얄다바오트를 출산할 때 방출되었던 영이다. 이 부분도 창세기 2장 7절의 “주 하나님이 땅의 흙(아다마)으로 사람(아담)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새번역)를 변형시킨 것이다.
사람은 얄다바오트와 그의 수하 아르콘들에 의해서 창조되었지만, 얄다바오트에게서 모나드의 섬광(영)을 취함으로써 그의 영혼은 신적 속성(영)을 가지게 되고, 얄다바오트는 자기 안에 있던 신적 섬광(영)을 사람에게 불어넣음으로써 지략과 영성이 사람보다 못하게 된다. 이에 얄다바오트와 아르콘들은 신적 섬광에 의해서 자신들보다 영리해진 사람을 물질계의 맨 아래쪽으로 던져버린다.(20,3-8) 그러나 아버지 하느님은 이 사람을 돕기 위해서 조력자인 빛의 에피노이아를 보내어 아르콘들 모르게 아담 안에 숨긴다. 아담 안에서 이 조력자는 아담의 영이 플레로마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다시 그곳으로 올라가는 길을 가르쳐준다.(20,9-27)
아르콘들은 사람의 지략이 자기들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고 흙과 물을 취하고 네 개의 불바람을 섞어서 인간을 개조하기 시작한다. 이후로 인간은 “죽을 운명의 인간”이 된다. 아르콘들은 이렇게 만든 인간을 낙원이라고 불리는 동산(paradise)에 놓고 ‘생명의 나무’를 심고 그것을 따서 먹으라고 명령한다. 이 생명의 나무는 사실 죽음의 나무로, 이것을 먹으면 죽음과 어둠에 거하게 된다. 반면에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선악과를 따 먹어서 자신의 플레로마를 바라보고 벌거벗음을 깨닫도록 가르친다.(20,28-22,9)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발가벗은 사실을 인식하게 되자, 하느님은 이들을 에덴동산에서 내쫓고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못하도록 불칼로 막아 놓는다.(창 3:1-24)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을 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서 자신들의 벗은 몸을 인식하게 된 것(3:7)과 하느님이 “보아라, 이 사람이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다.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서, 생명나무의 열매까지 따서 먹고, 끝없이 살게 하여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들은 분명 『요한 비밀서』 기자에게 선악과를 좋은 것으로 여기게 했을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창세기의 해석과는 정반대이다. 즉, 생명나무는 죽음의 나무이고, 선악과는 “진정한 생명을 주는 것”으로 앎과 깨달음을 주는 지식의 나무 열매라는 것이다.11
창세기에서는 하느님이 아담을 잠들게 한 후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든 이야기 다음에 에덴동산과 선악과 이야기가 나오지만, 『요한 비밀서』는 선악과 이야기 후에 아르콘들이 아담을 잠들게 하여 아담의 갈비뼈 안에서 에피노니아를 꺼내려고 한다. 왜냐하면 아르콘들은 아담이 자신들보다 뛰어날 뿐만 아니라 생명나무의 열매 대신 선악과를 따먹어서 자신들에게 불순종하는 이유가 바로 자신이 주었던 신적 섬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얄다바오트는 에피노이아를 꺼내지 못하고 자신이 아담에게 주었던 힘의 일부만 꺼내서 새로 빚어 만든 여자(하와)에게 주었다. 이 여자를 본 아담은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라고 외친다.(23,9-11) 그리고 “남자는 제 아버지와 제 어머니를 떠나 자신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라는 구절은 창세기 2장 23-24절의 내용을 따른다. 왜 얄다바오트가 아담에게서 꺼낸 그 일부의 힘(영)을 다시 여자에게 주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나중에 하와를 범하여 두 아들(카인으로 불리게 될 엘로임과 아벨로 불리게 될 야웨)을 낳게 함으로써 여자를 새로운 육신을 만들어 내는 도구로 활용하려고 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얄다바오트는 여자에게 출산의 욕망을 준 후 성교를 통해서 만들어진 육신에 그의 아류 영을 불어넣기 때문이다.12
『요한 비밀서』는 창세기 4장의 카인과 아벨의 비극적인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출생의 비밀 때문이라고 본다. 즉, 이들은 아담과 하와의 자식들이 아니라 얄다바오트와 하와의 자식들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아담의 진정한 후손은 카인과 아벨이 아니라 바로 셋이다. 셋은 얄다바오트가 하와를 범할 때 떠났던 영(생명)이 다시 되돌아온 후에 아담과 하와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은 신적 섬광(영)을 지니게 된다. 사실 셋에 대한 긍정적인 묘사는 창세기 5장에서 카인과 아벨을 언급하지 않고 “아담은 백서른 살에 자기의 형상 곧 자기의 모습을 닮은 아이를 낳고, 이름을 셋이라고 하였다.”(5:3)라는 설명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구원사에서 셋과 셋의 후손이 왜 영지주의 종파들에서 중요하고, 왜 『요한 비밀서』를 셋파 영지주의의 장자라고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나가는 말

『요한 비밀서』는 처음과 끝에 대한 셋파 영지주의 종파의 신화와 사상을 잘 간직하고 있다. 모든 것의 기원이 되고 형언할 수 없는 모나드로부터 시작된 방출은 소피아까지 아우르는 플레로마를 구성한다. 소피아의 욕망에 의한 플레로마의 균열과 얄다바오트의 탄생, 그 후로 일어나는 얄다바오트에 의한 플레로마 바깥 세계에서의 물질적인 세상과 인간의 창조는, 복잡하지만 어떻게 모나드의 영적 섬광이 물질을 만들어내는 데 이바지했는가를 단절과 연속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단절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영적인 모나드는 자신의 신적 섬광(영)을 보내지, 결코 물질을 만들지 않는다. 연속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모나드의 섬광은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만 소피아를 거쳐서 얄다바오트에게로, 다시 얄다바오트에게서 아담과 하와로 이어지고, 얄다바오트와 아르콘들은 그저 아류 영을 소유하고 그것을 통해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단절과 연속이라는 복잡한 설명은 모나드를 정점으로 하는 일원론적 신관의 문제이기도 하다. 영적인 모나드는 악하고 부정한 물질과 육신을 결코 만들 수 없으므로, 물질적인 신 얄다바오트를 통해서 수행한다. 이러한 물질과 육신을 만든 얄다바오트는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나오는 데미우르고스에서 착안하여 질투하고 흠 많은 불완전한 창조주로 묘사된다.
『요한 비밀서』는 창세기 1-4장에 나오는 하느님의 세계 창조, 인간의 창조와 에덴동산에서의 추방,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와 5장의 셋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정통 그리스도교와는 매우 다른 해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잘 설명해 주지 않는 부분들을 영지주의 시각에서 조망한다. 왜 2-4세기 정통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이 문서에 열광하였고, 반대로 정통 그리스도교는 이 문서를 신랄하게 비난하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정통 그리스도교가 창세기 1-4장에 나오는 ‘우리’를 삼위일체의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요한 비밀서』는 얄다바오트와 아르콘들로 해석한다. 또한 생명나무는 죽음의 나무로, 선악과는 지식의 열매로 창세기와 다르게 해석한다. 『요한 비밀서』는 창세기에서 왜 하느님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는지, 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졌는지, 발가벗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5장에서 카인과 아벨이 족보에 들어가지 않았는지 등과 같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에 대한 그럴듯한 해석을 제시하기 때문에 정통 그리스도교도 이 부분에 대하여 더 많은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즉, 창의적인 해석을 기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독일의 여성 신학자 도로테 죌레(Dorothee Soelle)는 창세기의 불순종 이야기를 성장을 위한 아픔과 해방의 이야기로 해석한다.13 그녀는 어린아이가 부모에 대해서 ‘아니오’라는 말을 할 때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아픔은 되지만, 이런 과정이 없으면 어른으로 성장할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해석은 원죄론에 대한 고정관념을 제거하는 참신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자본주의 물질 만능의 사회에서 경작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관점에서만 창세기를 읽으려는 현대인들에게 『요한 비밀서』는 보다 원래적인 그리스도교의 영성을 일깨워 줄 수 있다. 오늘날에도 많은 그리스도교 이단들이 창세기에 대한 알레고리적 해석을 통해서 창세기의 구체적인 내용과 해석에 목말라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현혹하고 있음을 고려해 본다면, 『요한 비밀서』는 이러한 현혹에 대한 예방주사의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호에서는 나그함마디 문서 제2권의 세 번째 문서이면서 동시에 대중적으로 유명한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의 모태가 되었던 『빌립복음』(The Gospel of Philip)에 관해 살펴보겠다.

주(註)
1 이 글에 인용하는 나그함마디 문서 본문은 송혜경의 번역을 사용한다. 송혜경, 『영지주의자들의 성서』(한님성서연구소, 2014), 474-602.
2 송혜경, 위의 책, 439.
3 조재형,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동연, 2020), 99.
4 송혜경, 앞의 책, 468.
5 Marvin Meyer, ed. The Nag Hammadi Scriptures (New York: HaperCollins, 2007), 104; Andrew K. Helmbold, “The Apocryphon of John: A Case Study in Literary Criticism,”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13, no. 3 (1970): 173.
6 James M. Robinson, ed. The Nag Hammadi Library (New York: HarperCollins, 1990), 104.
7 Helmbold, “The Apocryphon of John: A Case Study in Literary Criticism,” 178-179.
8 송혜경, 앞의 책, 439.
9 Bentley Layton, ed. The Gnostic Scriptures:Ancient Wisdom for the New Age (New York: Doubleday, 1987), 24-26.
10 송혜경, 앞의 책, 449.
11 송혜경, 앞의 책, 458.
12 송혜경, 앞의 책, 460.
13 Dorothee Soelle,To Work and to Love: A Theology of Creation (Philadelphia: Fortress, 1989), 74.


조재형|클레어몬트 대학원대학교(CGU) 종교학과에서 신약성서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This Is My Flesh, 『그리스-로마종교와 신약성서』 등이 있다. 현재 강서(그리스도)대학교, 서울기독대학교, 서울장신대학교에서 신약성서를 가르치고 있으며, 영지주의와 나그함마디 서고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스톤-캠벨 운동을 연구하는 환연연구회 회장과 요한문헌학회 총무로 활동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운영하고 있다.

 
 
 

2022년 8월호(통권 7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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