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도(道)의 신학이란 08]
문화·신학·목회 (2021년 12월호)

 

  인공지능-코로나 시대를 위한 K-영성과 도의 신학
  

본문

 

1. 몸과 숨의 영성: 도의 신학(Theo-dao)은 설명해온 것처럼 로고스라는 본래 이원론적인 서구 신학의 근본 은유가 아직도 세계 기독교를 주도함으로써, 로고스 신학(Theo-logos)과 프락시스 신학(Theo-praxis)의 분리 등 딜레마에 처한 글로벌 신학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하는 신학 패러다임이다. 서구의 로고스적 사유와 로고스 신학의 지능(intelligence) 중심적 사유는 오늘날 결국 인공지능과 같은 초지능(super-intelligence), 그리고 그것을 탑재한 사이보그 같은 기계적 포스트휴먼(post-human)에 대한 열망을 가져올 근거를 제공해주었다. 그런데 서구인들조차 그 결과는 인간성과 세계가 붕괴되는 디스토피아일 수 있다고 예견한다. 그들은 오히려 그 해답을 동양에서 찾아야 한다며, 특히 기(氣)의 세계를 무척 궁금해 한다. 뒤에서 상술하겠지만, 그들의 이러한 관심은 영화 〈스타워즈〉에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들이 갈구하는 기의 세계는 로고스적 사유와 로고스 신학으로는 도달하기 어렵다. 그것은 로고스와는 다른 도(道)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도 나는 신학의 근본 은유를 로고스에서 도로 대체하여 글로벌 신학이 로고스 신학에서 도의 신학으로 시급히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도와 기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도의 신학의 영성적 핵심과 근간은 ‘몸과 숨의 영성’이라 할 수 있다. 근대 서구인들과 로고스 신학이 망각했던 주요한 부분이 바로 ‘몸과 숨의 영성’이다. 이것을 알아야 오늘날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 생태계의 위기,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이 주는 영성적 함의를 파악할 수 있다. 생태계의 위기와 인공지능과 사이보그 포스트휴먼의 도전은 지구와 인간의 몸, 곧 ‘몸의 영성’에 대해 묻는다. 이는 ‘몸신학’의 문제로 귀결된다. 더욱이 지금의 코로나 팬데믹은 숨 쉬는 입과 코를 마스크로 막는 절제 행위를 통해 숨의 중요성, 곧 ‘숨의 영성’과 ‘숨신학’을 우리에게 각성하게 하고 있다.1 그러므로 생태계의 위기와 인공지능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요청되는 영성은 다름 아닌 ‘몸과 숨의 영성’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인공지능과 메타버스와 같은 디지털 세계의 아바타 같은 인간 분신에게는 몸과 숨이 없다. 몸과 숨이 없는 인간은 참 사람이 아니다.

2. 몸과 숨의 영성은 우리의 몸과 우주가 소통하는 것을 추구하는 우주적 영성이다. 동양적 세계관에서 우주적 영성이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서구적 근대화의 지능적이고 테크노크래틱(technocratic)한 사유에 의하여 무시되고 있을 뿐이다. 유교의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 또는 인간-우주적 시각(anthropo-cosmic vision)에서 나타나듯이 사람과 하늘은 하나 또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동양적 사유의 기본 전제이며, 동양의 수행 전통들은 교파와 무관하게 인간의 몸을 소우주(microcosm)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러한 전통들은 대우주(macrocosm)와 내 몸인 소우주가 연결되고 소통되어야 수행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믿어왔다. 내 몸과 우주가 서로 소통하는 것을 느끼고 어울리게 되는 시점부터 바른 수행이 시작된다고 본 것이다.
실질적으로 내 몸과 우주가 소통하고 어울리는 것은 숨을 통해서다. 성서에서도 흙에서 만들어진 사람의 몸에 하나님이 숨(생기)을 불어넣음으로써 생명체가 되었다고 한다.(창 2:7) 개역개정에서는 ‘숨’을 ‘생기’로 표현했다. 숨을 통하여 기(氣)가 몸에 유입되며, 숨을 통하여 내 몸은 우주와 소통하고 기를 통하여 우주와 어울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수행이 숨을 의식하며 기의 움직임을 살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특히 몸의 중심이요, 모태에서부터 숨밭이고 기가 모이는 밭으로 여기는 단전(丹田)에 집중하여 호흡한다.
실제로 단전호흡은 그동안 뇌에 의해 통제되는 의식에 의해 모든 것을 운영하려고 기가 위로 올라간(上氣) 상황을 강한 집중력으로 아래에 있는 단전으로 끌어내리고(下心), 단전으로 숨 쉬는 수행이다. 그런 동작을 계속 반복함으로써 뇌가 통제하는 의식에 의한 몸의 지배구조에서 이탈하여, 기를 느끼고 체득하며(內觀) 대자연과 소통하는 단계로 전진하게 하는 수행인 것이다. 그러므로 동양의 여러 전통에서 수행의 관건이자 핵심은 ‘기’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도 다름 아닌 하나님의 숨이요, 생기요, 하나님과 소통을 이루고 기운을 실어 나르는 주체를 말한다. 수행에서 기 체험이 중요하듯이, 성령 체험이 중요한 것은 그래야 하나님과 소통하고 하나님의 생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래야 제대로 응답받는 기도를 할 수 있고 신자로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활력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해(지능)를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um)이라는 고전적 표현이 대변하듯이, 이성에 고착되어 뇌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서구 신학, 곧 로고스 신학은 이러한 기(氣)의 실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형이상학인 지적 놀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뚜렷한 성령론과 영성신학을 보여주지 못한다.

3. 기(氣)의 실체를 완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서구인들이 있다. 이런 관심은 대표적으로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전한 미래 세계를 상상하는 〈스타워즈〉(Star Wars)와 〈매트릭스〉(Matrix)와 같은 유명한 할리우드의 공상과학(SF) 영상물에서 나타난다. 이들 영화에서 그려지듯, 인공지능(AI)과 같은 기술문명이 완숙한 단계에 이른 테크노 우주 시대에 인류를 살릴 수 있는 해법을 갖춘 주체들은 초지능과 초능력을 비롯한 과학기술로 만든 외적인 것이 아니고, 동양적 수행과 같은 고도의 수련에 의해 내적으로 완성해가는 ‘수행자’들이다. 〈스타워즈〉에서는 사무라이 같은 훈련을 받은 ‘제다이’(Jedi) 기사들이며, 〈매트릭스〉에서는 디지털 해커에서 변신하여 본연의 내면적 능력을 되찾아 가상의 매트릭스를 붕괴하고 새로운 본래 세상으로 이끌어낸 ‘네오’(Neo)이다. 특히 〈스타워즈〉에서 핵심 슬로건은 “May the FORCE Be with You!”이다. 물론 제작자는 여기서 ‘FORCE’라는 영어 단어로 기(氣)를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들이 제시한 수행자들은 우리식으로 말하면, 다름 아닌 기의 수련을 통해 도를 닦는 도인(道人)들이다.
이것은 아이러니다. 알파고 등 인공지능의 가공할 능력이 확인되기도 전에 서구인들이 영화를 통해 그린 세계, 곧 테크놀로지에 의해 고도화된 기술문명이 가져온 세계는 인간의 탐욕과 폭력이 극대화된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그런데 〈스타워즈〉의 제작자는 그 해답을 동양에서, 특히 그들에게는 신비하게 보이는 기(氣)의 세계에서 찾았던 것이다.
우리에게 기의 세계는 환상이나 신비의 세계가 아니다. 우리는 기의 세계에서 수천 년 동안 살아 왔고 지금도 살고 있다. 우리는 독특한 기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한글처럼 ‘기’가 막힐 정도로 ‘기’라는 말을 많이 쓰는 언어는 이 세상에 없다. 우리말에는 그야말로 기가 통으로 차 있다.(‘기똥차다’) 일상의 거의 모든 것을 기로 설명한다. 이제는 오히려 기의 문화를 모르던 서양인들이 극도로 고도화된 기술문명 테크놀로지 시대에 인류를 살릴 소망을 줄 수 있는 우주적 영성은 ‘기’를 통한 몸과 숨의 수행에 있다고 예언하고 있다.

4. 몸과 숨의 우주적 영성은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구 신학에서 배운 이성과 교리 중심적 로고스 신학에 눌려 그러한 영성 전통이 짓밟혀 왔다. 생태계의 위기, 인공지능과 트랜스휴머니즘의 도전, 그리고 코로나 사태는 이성과 말, 지능 중심의 로고스적 사유와 신학의 한계 및 오류를 자명하게 노출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서구 신학에 의해 해체된 우리의 ‘몸과 숨의 영성’을 시급히 복구해야 한다. 더 이상 서구 신학의 잣대에 의해 우리 몸(신앙)을 억지로 짜 맞춰서는 안 되고, 우리가 받은 그대로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껏 제대로 숨(신앙고백) 쉴 수 있게 해야 한다. 한마디로 참 우리 신앙의 기를 살려야 한다. 한국 기독교와 신학은 서구 신학에 의해 기가 질려 있다. 이제는 우리의 기를 되찾아야 한다. 격렬한 기 싸움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
몸과 숨의 영성의 배경인 도(道)의 세계는 곧 선(仙)의 세계와 연결된다. 그것을 풍류(風流)라고도 한다. 성서 속의 선과 풍류의 세계, 바로 그것이 서구 신학과 성서해석학이 모르고 놓치고 있는 부분이다. 또한 몸과 숨의 영성에는 한마디로 ‘신명’이 있다. 우리의 한, 흥, 멋이 넘치는 도와 선과 풍류의 세계에서 성서를 다시 신명나게 읽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교회가 살고 세계 교회가 살고 우리 민족이 살고 지구촌의 인류와 생태계가 산다. 오늘날 글로벌 음악세계를 뚫고 나와 배달민족의 ‘불타오르는’ 신명(BTS)과 흥(강남스타일) 등을 통해 폭발하는 K-Pop이 그 예증이다. 이와 같이 흥과 멋이 넘치고 신명나는 K-영성과 K-신학(K-Theology)이 나와야 한다. 도의 신학은 그러한 하나의 K-신학이다.

5. 우주산보 기도: 다석 유영모가 기독교 영성의 정점을 표출했다고 할 수 있는 ‘산보’라는 기도문에는 이러한 K-영성, 곧 우주적 ‘몸과 숨의 영성’이 구체적으로 예시된다.2 다석은 기도를, 궁극적으로는 기독교인의 삶(살림)을 “빈탕한데 맞혀 놀이”라고 표현한다. ‘빈탕한데’란 간단하게 말하면 텅 빈(빈탕) 허공의 대우주를 순한글로 풀어본 것이다. 물론 여기서 다석은 ‘빈탕한데’의 정점을 삼위일체 하나님(아버지, 한나신 아들, 참거룩한 얼)의 보좌에 찍는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다름 아닌 그 우주의 움직임과 리듬에 맞춰 강강술래를 추듯, 하나님(성령)에 ‘맞혀’ 살림살이 놀이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주의 움직임과 리듬을 ‘율려’(律呂)라고도 하고 또는 다른 말로 ‘도’(道)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의 전통적 수행으로 말하면, 대우주의 기 순환에 맞춰 우리 몸의 기를 돌리는 대주천(大周天)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석에게 최상의 기도란 삼위 하나님의 보좌를 정점으로 기를 주고받는 대주천 행공(行公)인 것이다. 물론 그 행공의 초점은 얼김, 곧 기(성령)이다.

빈탕한데 맞혀 놀이(空與配享): 다석이 내린 “인생의 결론”을 한마디로 하자면, 이와 같이 “빈탕 한데에 맞추어서 놀이하자!”는 것이다.3 그것은 곧 바울에 의하면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영적 예배”를 드리자는 것과 공명한다.(롬 12:1) 다석의 ‘빈탕한데 맞혀 놀이’, 곧 거룩한 산 제물로서의 영적 예배는 “산보” 또는 “정신 하이킹”이라고 제목을 붙인 그의 기도문에서 정점에 이른다. 그 기도문을 살펴보자.4

산보
높고 높고 높고 산보다 높고 산들보다도 높고 흰 눈보다도 높고 삼만 오천육백만 리 해보다도 높고 백억 천조 해들이 돌고 도는 우리 하늘보다 높고 하늘을 휩싼 빈탕(虛空)보다도 높고 허공을 새겨낸 마음보다 높고 마음이 난 바탈(個性)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아버지 한나신 아들 참거룩하신 얼이 끝없이 밑없이 그득 차이시고 고루 잠기시며 두루 옮기시사 얼얼이 절절이 사무쳐 움직이시는 얼김 맞아 마음 오래 열려 예여오른 김 큰김 굴려 코뚤리니 안으로 그득 산김이 사백조 살알을 꿰뚫고 모여 나린 뱃심 잘몬의 바탕 힘 바다보다 깊이 땅 아래로 깊이 은하계 아래로 깊이 한 알 알을 꿰어 뚫다. 이 긴김 깊이 코김 뱃심으로 잇대는 동안 얕은 낯에 불똥이 튀고 좁은 속에 마음종 울리다 마니 싶으지 않은가, 고프지 않는가, 울고프지 않는가. 우는 이는 좋음이 있나니 저희가 마음 싹임(消息)을 받을 것임이라. 우리 마음에 한 목숨은 목숨키기 깊이 느껴 높이 살음 잘몬의 피어 울리는 피도 이 때문 한 알 알의 부셔져 내리는 빛도 이 때문 우리 안에 밝은 속알이 밝아 굴러 커지는 대로 우리 속은 넓어지며 우리 꺼풀은 얇아지니 바탈 타고난 마음 그대로 왼통 속알 굴려 깨쳐 솟아나와 오르리로다.


다석은 이 기도문을 노래처럼 외우면서 깊게 기도했다고 한다. 그 내용은 “정신 하이킹”이라고 명명한 것처럼, 우주를 관통하고 “높이 높이 올라 하나님의 보좌까지 올라갔다가 거기서 얼김[성령]을 받아가지고 다시 이 세상에 내려왔다가 다시 내 목숨을 키워 올려 결국은 마음의 꽃을 피우라는 것”이다. 다석은 이 기도를 통해 그야말로 하늘을 무대로 우주 산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빈탕한데 맞혀 놀이’에 하늘과 몸을 덧붙여 ‘빈탕한데 맞혀 하늘몸놀이’라고 명하고, 이것이 ‘몸성히, 맘놓이, 바탈퇴히’와 더불어 다석 영성신학의 요약이라고 주장한다. 이 기도문에 대한 다석의 해설을 직접 들어보자.

맨 처음에 산에서부터 시작하여 해를 거쳐서 은하계 저편 우주를 싸고 있는 빈탕 한데 저편에 거기가 마음인데 그 마음 한복판에 하나님의 보좌를 생각하고 그 보좌에서 생명의 강처럼 흘러 내려오는 얼김을 생각해 본다. 그래서 이슬이 내리듯 내 마음에 내려 그 얼김으로 입이 뚫리고 코가 뚫리고 눈이 뚫리고 귀가 뚫리고 마음이 뚫리고 지혜가 뚫려서 사백조 살알 세포를 다 뚫고 그 기운이 배 밑에 모여 자연을 움직이는 힘이 되어 은하계를 뚫고 태양계를 뚫고 내리어 우리 얼굴에 불똥이 튀게 하고 우리 마음에 종을 울리게 하여 깊이 느끼고 깊이 생각하여 마음을 비게 하고 마음을 밝게 하면 우리 마음속에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우리의 목숨 키우고 우리의 생명을 키워가는 것이다. 그래서 깊이 느끼고 높이 살게 하는 것, 깊이 생각하고 고귀하게 실천하는 것 그것이 생명의 핵심임을 알게 된다.

다석의 기도, 하늘 산보는 빈탕한데 우주(大宇宙)와 맞혀 노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몸 속의 우주(小宇宙)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나타난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대우주와 소우주가 내 안팎에서 성령(얼김)을 통해 소통하고, 나는 그것에 맞혀 놀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대주천(大周天)과 소주천(小周天) 행공을 지칭한다고 하겠다. 1943년 그가 삼각산 마루에서 천지인 합일의 체험을 한 후 남긴 다음 시구를 보면 이 기도문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유불선을 회통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기독교의 영성을 보여주고 있다.

gisang2112_10.jpg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 기도문은 다음과 같은 영성의 단계와 구조를 제시하고 있다.

gisang2112_11.jpg

6. 유영모의 기도문 ‘산보’에서 한국적인 우주적 K-영성의 다섯 가지 특징을 추출해낼 수 있다. 이들은 앞으로 우리의 K-영성신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며 K-영성이 요체인 도의 신학과 여러모로 공명한다.
첫째, 지구의 좁은 범위를 넘어 광활한 우주를 무대로 하는 영적 우주인으로서의 우주적 영성이다.(빈탕한데 맞혀 하늘놀이)
둘째, 동양의 모든 영성 전통을 관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통전하여 더 높이 승화된 기독교 영성의 새로운 동양적 지평을 열고 있다. 여기서 빈탕한데(虛空)는 노자와 도가 사상의 단계, 마음(心)은 부처와 불교의 차원, 바탈(性)은 공자와 유교의 경지를 함의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 영성은 그 단계의 하늘들을 넘어 다른 차원의 하늘(하나님의 보좌)과 소통하는 길로 묘사되고 있다.(도의 신학)
셋째, 삼위일체적 영성이다. 다석에게 영적 에너지의 근원은 아버지 하나님(성부), 한나신 아들(성자), 참거룩하신 얼(성령), 곧 삼위일체 하나님이다.
넷째, 성령 중심적 숨의 영성이다. 그 얼김은 숨과 김(氣)를 통하여 역사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氣)는 숨을 통한 성령의 강림에 의해 우리 몸에서 구체적으로 육화한다.(숨신학)
다섯째, 몸의 영성이다. 정신 하이킹은 정신적 유희삼매로 끝나지 않고, 그 성화의 과정은 우리 몸의 변화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체화된다. 그야말로 ‘몸성히, 맘놓이, 바탈퇴히’가 몸의 실질적인 변화와 징조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순한 영적 ‘하늘놀이’가 아니라, 성령과 기를 통해 소통과 연합에 이르는 ‘빈탕한데 맞혀 하늘몸놀이’인 것이다.(몸신학)
끝으로, 이들은 첨단과학과 디지털 문명에 의해 인간이 사이보그로 기계화되어 가는 트랜스휴먼(trans-human), 포스트휴먼(post-human) 시대에 대처하기 위해 시급히 필요한 ‘몸과 숨의 영성’의 지평을 선보이고 있다.6 바로 이들은 인공지능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주적 K-영성이 갖추어야 할 면모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은 입과 코를 막는 불편한 동작을 하게 함으로써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만해진 현대인에게 절제와 수행의 필요성을 더욱 일깨워주고 있다. 앞으로 세계를 살리는 우주적 영성은 신학, 철학, 인문학, 사회과학 등 머리와 뇌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실제 대우주와 소통할 수 있는 몸과 숨의 수행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마치 〈스타워즈〉의 제다이들이 그 수행을 예시하듯이….
“May the Force Be with You!”7

주(註)
1 몸신학, 숨신학, 그리고 몸과 숨의 영성에 대해서는, 김흡영, 『가온찍기: 다석 유영모의 글로벌 한국신학 서설』(동연, 2013), 제4부(197-256)를 참조하라.
2 이하는 김흡영, 『가온찍기』, 제4부(197-256), 특히 199-211쪽을 참조하라.
3 유영모, 다석학회 편, 『다석강의』(현암사, 2006), 467.
4 「산보」, 『다석일지』 4권, 487-488.
5 박재순, 『다석 유영모: 동서사상을 아우른 창조적 생명 철학자』(현암사, 2008), 54. ‘첨철천 잠투지’는 선도의 대주천(大周天) 행공과 현빈일규(玄牝一竅)의 체험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6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여주듯이 매트릭스 속의 분신과 기계 인간에게는 몸과 숨이 없다. 그리고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한 신학적 평가에 대해서는, 김흡영, “신학자가 보는 삶과 죽음”, 『삶과 죽음의 인문학』(석탄출판, 2013), 147-189를 참조하라.
7 잠시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기 바란다.(https://bit.ly/3GThpEr)


김흡영|조직신학을 전공하였다. 강남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아시아신학자협의회 공동대표, 한국조직신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도의 신학, 종교 간 대화, 종교와 과학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과학생명포럼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도의 신학』(Ⅰ,Ⅱ), 『왕양명과 칼 바르트』 등이 있다.

 
 
 

2021년 12월호(통권 756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