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북한이탈주민의 이해와 한국교회 04]
문화·신학·목회 (2021년 10월호)

 

  서로를 향해 한 걸음씩: 북한이탈주민은 언제 정착하는가
  

본문

 

지난 글에서 북한이탈주민(이하 탈북민)의 한국 정착이 절대 만만치 않은 과정임을 나누었다. 그들이 마주한 한국에서의 삶은 기대와 다른 낯선 문화, 무한경쟁의 압박, 건강 문제, 남겨진 가족에 대한 걱정, 깊은 외로움이 뒤섞인 현실이다. 그러나 모든 탈북민이 동일한 강도로 이 과정을 경험하지는 않는다. 탈북 시기나 과정, 나이와 성별, 가족 동반 여부 등에 따라 저마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양상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번 글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은 언제 정착하는가?’라는 질문을 놓고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이 질문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먼저 이 질문은 탈북민이 정착하는 시점을 가늠하고자 하는 물음이다. 또한 이 질문은 탈북민의 정착을 위해 필요한 내적 혹은 외적 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떤 환경이 조성되어야 탈북민이 비로소 정착하는지에 관한 질문인 것이다.
이 글에서는 먼저 탈북민의 세대와 성별에 따라 정착 과정에서 나타나는 시간차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어서 탈북민의 정착은 탈북민 당사자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들의 이웃이자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 이 한반도 땅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한국 사회와 교회 공동체가 다 같이 담아내야 하는 부분이라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통계상의 지표로 본 탈북민의 정착 수준

한 사람이 새로운 환경에 정착하는 일은 굉장히 주관적인 사건이다. 소위 ‘성공적인 정착’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탈북민은 한국 사회에 도착한 것만으로도 정착했다고 느끼지만, 어떤 이는 남한 생활 10년이 지나도록 자신이 겉돌고 있다고 느낀다. 따라서 탈북민의 정착 시기에 대한 답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다만, 객관적인 지표상 탈북민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 위한 환경이 이전보다 나아지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 정부의 탈북민 정착지원 정책은 이들의 자립과 자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탈북민을 단순히 취약계층으로 보고 지원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요즘은 그들 스스로 한국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능력과 토대를 마련하게 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2011년부터 탈북민의 생활실태 및 정착에 대한 전수조사를 매년 해오고 있는 남북하나재단(전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탈북민의 76.4%가 남한 생활에 만족한다고 응답하였고, 21.6%가 보통이며, 1.9%가 만족하지 못한다고 응답하였다.1 이는 2011년의 조사 결과(만족 69.3%, 보통 25.7%, 만족하지 못함 4.8%)보다 전반적으로 향상된 수치이다. 그리고 탈북민의 경제 활동 참가율은 2011년 56.5%(일반 국민 61.0%)에서 2020년 60.1%(일반 국민 62.4%)로 소폭 상승했으며, 실업률은 2011년 12.1%(일반 국민 3.7%)에서 2020년 9.4%(일반 국민 3.1%)로 감소하였다. 또한 탈북민 임금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2011년 121.3만 원에서 2015년에 154.6만 원이 되었고, 2020년에는 216.1만 원으로 증가하였다. 현재 일반 국민의 월평균 임금인 268.1만 원보다 여전히 52만 원가량 낮지만, 2015년에 그 차이가 75.1만 원이었던 것에 비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2
이처럼 탈북민의 정착과 관련된 지표는 지속해서 향상되고 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자기 삶을 규모 있게 영위해가는 것은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서 꼭 필요하지만, 온전한 정착은 경제적인 요인으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새로운 곳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도 꼭 필요하다. 첫째는 건강이다. 이전과 비교해서 훨씬 좋은 집에 살고 배부르게 먹어도 몸이 건강하지 못하면 다 소용없는 법이다. 둘째는 소속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다른 이들과 정서적으로 교류하며 소속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행복감을 누린다. 셋째는 삶의 의미에 대한 확인이다. 자신이 무엇을 위하여 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내적인 대답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탈북민의 정착은 통계 수치에는 다 담길 수 없는 훨씬 다양하고 섬세한 면을 고려해야 한다.

장마당세대와 기성세대

최근 한국 사회에서 세대 담론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그만큼 각 세대가 놓인 삶의 처지와 문화가 다르다. 일반적으로 ‘세대’(generation)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공통의 역사적․문화적 경험을 통해 유사한 의식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을 의미하는데,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Karl Mannheim)은 이 중에서 역사적․문화적 경험의 공유가 세대를 형성하는 핵심적 요소라고 보았다.3 한 세대가 처한 공통의 상황은 그 세대 사람들 간의 실질적인 유대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동력으로 작동한다.
탈북민도 세대에 따라 두드러지게 구분되는데, 이는 북한에서 청소년기를 어떻게 보냈는지와 관련되어 있다. 북한에는 ‘장마당세대’로 불리는 젊은 세대가 있다. 이들은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태어난 세대로 1995년부터 시작된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기를 어린 시절 및 청소년 시절에 경험한 세대를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유소년기와 청소년기에 형성된 가치관과 생애 경험은 비가역적인 특성을 가진다. 어려서 겪은 경험은 한 개인의 자아 형성기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장마당세대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한 곳곳에 생겨난 장마당을 통해 북한의 시장화를 경험하면서 자라난 세대이다.4 이들은 어려서 식량난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배고픔과 영양 부족 등 힘든 시기를 겪었다. 흔히 북한에는 두 당이 있다고 하는데, 하나는 노동당이고 다른 하나는 장마당이다. 그만큼 장마당의 존재감이 북한 사회에서 커졌는데, 장마당세대는 이렇듯 노동당이 아닌 장마당이 먹여 살린 이들을 의미한다. 현시점에서 장마당세대는 대략 북한의 20대 후반부터 30대를 형성하고 있는 인구 집단이다.
반면 북한에서 40대 이상에 해당하는 기성세대는 무상배급, 무상교육, 무상의료로 대표되는 북한의 사회주의 복지 시스템이 어느 정도 작동되는 시절을 경험했다. 그래서 그 시절에 대한 나름의 향수가 남아 있다. 적어도 1970년대까지는 남북한 간의 경제력 차이가 별로 없었고, 그 당시 북한은 사회주의적 가치와 신념을 향한 결집된 힘이 존재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기성세대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김일성에 대한 기억이 대체로 긍정적으로 각인되어 있다. 북한이 최악의 식량난을 보내던 1990년대 중후반에도 나이 든 주민들은 김정일이나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중간 간부를 욕하면 욕했지, 김일성을 비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반면에 장마당세대는 북한식 사회주의가 작동하지 않고 마비된 최악의 상황을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시절에 온몸으로 경험했다. 이들은 국가의 배급을 제대로 경험한 적이 없으며, 어려서부터 노동당이 아닌 장마당의 역할을 보며 자랐다. 이들은 국가의 한계와 시장의 힘을 체험했기에 이전 세대처럼 마냥 체제순응적 인간이 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장마당은 생존의 방편인 동시에 외부 세상을 향한 창문이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장마당에는 남한 드라마나 노래와 같은 수많은 한류 콘텐츠가 흘러 들어왔는데, 젊은 세대는 이러한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며 또래 집단을 중심으로 이 같은 문화를 폭넓게 공유하였다. 덕분에 이들은 어려서부터 북한 당국의 단속과 통제를 벗어나 문화적 취향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며, 집단행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종의 ‘저항문화’를 내면에 간직하며 자라난 집단이 되었다.5
필자가 만난 많은 탈북민 청년들은 북한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한국 드라마들을 어린 시절에 섭렵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2000년대 초부터 〈가을동화〉, 〈천국의 계단〉, 〈올인〉, 〈꽃보다 남자〉와 같은 유명한 한국 드라마들을 북한에서 빠짐없이 시청해서 알고 있었다.6 비록 영상 시청이라는 제한적인 형태였지만, 그러한 경험은 남한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호기심을 일으켰다. 이와 같이 남한 드라마를 어려서부터 소화한 북한 젊은이들이 탈북 이후 기성세대보다 훨씬 빠르고 거부감 없이 남한 문화를 받아들이는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이처럼 장마당세대 중 탈북한 이들은 남한에 와서 적응하는 모든 측면에서 자신의 부모님 세대보다 빠르고 앞선다.
요즘의 10대나 20대 초반의 젊은 탈북민은 장마당세대보다 더 어린 세대이다. 이들은 유아기에 고난의 행군을 경험하거나 그 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억이 없다. 이 세대의 인적 구성은 더 분화되어 있다. 이들 중에서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와서 일반적인 초등·중등·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한국 사람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이들이 있다. 반면에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도 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인신매매를 당한 북한 여성이 많았는데, 이때 북한 어머니와 한족 혹은 조선족 아버지 사이에서 출생한 이들이다.7 최근 몇 년간 한국에 들어온 아이들의 경우 절반 이상이 중국어만 사용할 줄 아는 중국 태생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생애 경험은 앞선 탈북민 세대는 물론이고 한국에서 자라난 탈북민 또래와도 또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탈북민 여성과 탈북민 남성

탈북민 여성과 남성이 경험하는 한국 사회의 정착은 얼마나 다를까?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한국 사회 적응이 더 빠르고 수월하다. 한국 정착 후 시간이 지날수록 남성의 삶의 질은 낮아지고 여성은 좋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남성들의 가부장적 사회적 권위의 상실과도 연관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북한 사회는 매우 유교적인 가부장제적 특성이 강하게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의 가정에서 남성은 매우 권위적이며, 여성들은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장마당 활동 등으로 가정의 생계를 실질적으로 책임지면서도 온갖 집안 살림까지 도맡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러한 남녀 관계의 비대칭성은 이들이 북한을 떠나 남한에 오는 순간 역전되기 시작한다. 상대적으로 가부장적인 문화가 덜한 한국 사회의 분위기와 빠른 적응력 덕분에 여성이 경제력을 갖게 되면서 오히려 가정에서 목소리가 커진다. 반면에 탈북 남성은 북한에서 누리던 가부장적 권위를 잃고, 아내나 자녀에 비하여 한국 사회 적응도 늦어지면서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이에 따라 음주와 흡연 같은 중독 증상이 심해지는 경우도 나타난다.
필자가 만난 한 청년은 먼저 탈북한 아버지가 초청해서 한국에 온 사례이다. 그 청년과의 인터뷰에서는 자식을 위해서 남한에서의 힘든 삶을 감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난다.

아버지는 2006년에 [북한을] 떠나서 07년도에 오신 것 같아요. 아버지가 저에게 오라고 많이 얘기를 했죠. 안 간다고 하다가, 저쪽도 생활이 많이 어렵잖아요. … 집안이 많이 힘들어서 장사를 하려고 학교를 못 간 케이스거든요. 공부하고 싶은 열의는 높았는데, 공부를 못 했어가지고 한국에 와서 아빠가 얘기하기를 공부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고, 앞날도 여기 와서 하는 게 훨씬 자유롭고. … 아예 저처럼 어릴 때 오면은 학교 다니면서 그나마 괜찮은데, 아버지는 하실 게 없어요. 먹고는 살아야 되잖아요. 일반 막노동 같은 걸 시작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힘들고. 아버지는 저쪽이 더 편했다고 말을 많이 하세요. 거기서는 군관이었거든요. 와서 더 많이 힘들다고 그런 얘기 많이 하세요. 그나마 자식 보면서 견디시는 것 같아요.

자녀를 향한 사랑과 애착, 그리고 자녀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부모의 모습은 북한이나 남한이나 다르지 않다. 다만 문화적 유연성이 낮은 남성들에게 남한 생활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게 다가온다. 탈북민의 정착을 위해 한국 사회에서 동반되어 나타나야 할 요인들은 무엇이 있을까?

탈북민은 언제, 즉 어떤 요인이 동반되어야 정착할까

탈북민이 내딛는 남한 땅은 아무도 없는 빈 공간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일궈온 남한만의 독특한 문화와 습속이 가득 차 있는 곳이다. 이들의 정착 과정과 삶의 질은 필연적으로 한국 사회의 ‘어떠함’과 연동되어 있다. 탈북민은 한국 사회에서 매우 소수이다. 한국에 많은 탈북민이 왔다고 하지만, 그 수는 5,100만 명이 넘는 인구 중 0.06%인 3만 3,000여 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들의 정착 의지와 성실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다수자인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의 변화와 노력이 동반될 때 탈북민의 정착도 수월해질 수 있다. 다수자가 바뀔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기본적으로 타자에 대해 경계하는 시선이 강한 편이다. 한국과 같이 오랫동안 단일문화를 이뤄왔던 사회는 타 문화 수용력이 약하고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태도가 있다. 한국 사회의 강한 집단주의 문화는 타자와 다른 문화에 대한 편견을 갖기 마련이고, 이는 한국 사회에 손님으로 와 있는 수많은 이주자들을 배제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심지어 과거 같은 한민족의 구성원이었던 탈북민조차도 그 영향에 노출되어 있다. 또한 한국 사회는 한 사람을 그 자체로 바라보기보다는 그 사람이 속한 집단에 따라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탈북민을 바라볼 때도 북한 사회의 이미지를 덧씌워 그 사람을 범주화하는 경향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남북 주민의 경계 만들기와 적대감의 근원에 남북 분단이라는 현실이 있다. 분단의 정치적 현상은 남북 주민에 대한 폭력적 시각을 낳았다. 북한이탈주민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북한을 바라보는 폭력적인 시선을 고스란히 받는다는 것이었다. 북한이 싫어서 나왔지만 북한을 향한 시선을 온전히 받아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폭력으로 다가왔다. 문화적 차이로 충돌할 때면 ‘다르다’고 보기보다는 ‘틀리다’로 간주되었다.8

이러한 현상은 2000년대 들어 한국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의 많은 영역에서 탈북민을 비롯한 이방인들은 여전히 편견과 고정관념의 피해자가 되곤 한다. 결과적으로 탈북민은 그들의 정착을 위해서 필수적인 공동체적 소속감이나 삶의 이유를 발견하며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환경에 놓인다.
중요한 점은 탈북민과 한국 사회가 함께 노력하며 변화해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서로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야 한다. 그들을 한국 사회에 빨리 동화되고 적응해야 할 변화의 대상으로만 규정할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도 탈북민과 이주자들을 환대하며 따뜻하게 품는 좀 더 포용적인 문화를 향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에 주는 함의

지금까지 ‘탈북민은 언제 정착하는가?’라는 질문을 놓고 탈북민의 세대와 성별에 따른 차이, 그리고 한국 사회가 발맞춰 변화해가야 하는 지점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를 토대로 한국교회가 초점을 맞춰야 할 부분을 몇 가지 나눠보고자 한다.
첫째, 한국교회가 가장 넓은 마음과 이해심으로 품어야 하는 탈북민은 소위 기성세대에 해당하는 40대 이상의 탈북민이다. 이들은 북한 사회와 문화에서 살아온 시간이 적지 않기에 정착 과정이 훨씬 힘들며 시행착오도 많이 거친다. 이들을 섣불리 우리 식으로 변화시키기보다는 이들의 다름을 받아주며, 무엇보다도 사랑으로 충분히 인내하며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
둘째, 한국교회가 사역적인 면에서 초점을 맞춰야 할 탈북민은 장마당세대, 그리고 이들보다 더 어린 청소년 세대이다. 실제 탈북민 사역 현장에서 20-30대의 젊은 탈북민은 40대 이상의 탈북민보다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에도 더 수월하게 정착하며 기독교 신앙에도 수용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젊어서일까? 물론 젊음이 가진 에너지와 새로움에 대해 개방성, 빠른 적응력이 중요한 원동력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여기에 더해 이들의 사회문화적인 경험도 함께 봐야 한다. 북한에서 어린 시절 고난의 행군 시기를 보낸 젊은 탈북민의 경우 북한의 주체사상과 가치관 교육의 영향으로부터 훨씬 더 자유로운 상태로 자라났다. 1990년대 중반에 심각한 기근과 함께 북한의 공교육 시스템도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장마당을 통해 한류 문화의 영향을 받고 외부 세계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따라서 복음 수용을 방해하는 무신론적 주체사상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운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에 대한 접근은 또 다른 도전과 어려움을 안고 있다. 북한을 떠나 한국에 온 젊은 세대가 북한의 강력한 국가 권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던 점은 다행스럽지만, “국가 규율과 가부장적 규율의 규정력이 약화되는 대신, 또래 관계, 외부 문화, 돈의 위력 등이 이들 세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힘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9 기존의 지배적인 권력과 가치 체계가 무너져서 이들의 내면에 큰 공백이 생긴 상황에서 돈의 위력에 기반한 물질만능주의 가치관이 탈북 청년들의 마음을 급속도로 차지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이 점을 깊이 고려하면서 탈북민 다음 세대를 향해 복음을 나누고 소통하는 일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교회의 탈북민 선교는 결코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기성세대 탈북민의 경우, 그들 안에 잔존해 있는 유물론과 주체사상을 극복해야 하는 문제가 있고, 젊은 탈북민은 오늘날 남한의 젊은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포스트모던적 상황에서 물질 중심적 가치관을 장착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복음에 대한 치열한 진정성이나 큰 노력 없이, 탈북민이기 때문에 적당히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교회에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한 영혼 한 영혼을 품는 일은 예수께서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5)라고 했던 것처럼 온 힘과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장차 이 부분은 탈북민 사역뿐만 아니라 언젠가 북한이 열려서 북한 내의 수많은 새로운 세대와 조우하게 될 때 한국교회가 필연적으로 감당해야 할 과제가 될 것이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탈북민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그들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들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변화와 노력도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탈북민만의 일방적 변화는 한계가 있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이기에 다수자인 한국 사회와 한국교회 구성원들이 함께 변화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이다. 서로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는 새로운 변화의 여정에 우리 모두가 함께 동참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주(註)

1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2011 북한이탈주민 생활실태조사 기초분석 보고서』(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2012); 남북하나재단, 『2020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조사』(남북하나재단, 2021).
2 남북하나재단, 『2015 북한이탈주민 경제활동 실태조사』(남북하나재단, 2016), 187.
3 카를 만하임, 이남석 옮김, 『세대 문제』(책세상, 2020).
4 장마당은 북한의 시장을 의미한다. 북한은 원래 사회주의 국가로서 자본주의적 거래가 행해지는 시장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북한 사회에는 상당히 오래 전인 1958년부터 ‘농민시장’이라는 이름의 재래식 시장이 이미 존재했다. 이곳은 계획경제의 틀 밖에서 북한 주민들이 농축산물과 상품을 거래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 북한의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농민시장에서 취급하는 상품이 대폭 확대되며 장마당으로 변모했으며 실패한 계획경제를 보완하고 대체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장마당은 북한 정부에 의해 불법화되는 시간을 잠시 거친 후 2003년에는 ‘종합시장’이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으며 북한의 국가 사회주의 경제의 일부로 편입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북한 전역에 400여 개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 강동완, “북한의 신세대 문화, 어디까지 왔나”, 「월간 북한」(2013. 7): 96-97.
6 북한 내의 한류 콘텐츠는 조선족이나 화교 상인들이 CD나 DVD, USB, Micro-SD 등을 통하여 북한 내로 유입시켰고, 이를 재생할 수 있는 ‘노트텔’이라 불리는 중국산 EVD(Enhanced Versatile Disc) 플레이어나 ‘엠피오’로 불리는 MP5 미디어 재생기기도 대량으로 유통되었다. 강동완, “북한으로의 외래문화 유입 현황과 실태: 제3국에서의 북한주민 면접조사를 중심으로”, 「통일인문학」 60(2014): 172-179 참조.
7 어떤 단체는 이와 같은 처지에 있는 중국 내 여성 사역을 ‘평강공주’ 사역으로 칭하고 있다. 이들 여성의 자녀들은 이미 20대에 접어들고 있는데, 장차 이들이 북한 내 선교와 관련해서 가지게 될 역할에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8 전영선, “북한이탈주민과 한국인의 집단적 경계 만들기 또는 은밀한 적대감”, 「통일인문학」 58(2014): 120.
9 조정아, “북한 청소년의 세대경험과 특성”, 「KDI 북한경제리뷰」 17/6(2015): 78.


김의혁|풀러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교학(Intercultural Studies)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강원도 화천에 있는 통일부 북한이탈주민 정착교육기관인 제2하나원의 하나교회 담당목사로 일했다. 현재 숭실대학교 일반대학원 기독교통일지도자학과 전임 교수이다.

 
 
 

2021년 11월호(통권 755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