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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도(道)의 신학이란 06]
문화·신학·목회 (2021년 10월호)

 

  생명·생태계의 위기와 도의 신학(1)
  

본문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여러 종류의 기상이변은 지구의 생태계가 점차 악화되어 위험 수위를 넘어가고 있음을 절감하게 한다. 인간의 탐욕에 의해 생태계가 무자비하게 파괴되자 지구는 크게 진노하는 듯하다. 계속되는 기상이변으로 인해 “이와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우리는 없어질 것이다.”라는 전망과 “인간이란 절명 위기에 처한 행성에서 생존할 수 있는 종인가?”라는 의문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1 최근에는 자연이 바이러스를 동원해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질병으로 인류의 생명마저 위협하며 경고하는 듯하다.
20세기 후반부에 이르러 신학에 던져진 최대의 화두는 단연 생태계의 위기일 것이다. 과학역사가 린 화이트는 지구촌에 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한 “역사적 근원”이 자연보다는 신의 초월성을 강조하고 인간에게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자연의 가치를 비하하고 인간의 이익을 위하여 자연을 함부로 파괴할 수 있도록 사상적 기조를 제공한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에 있다고 맹렬하게 비판하였다.2 물론 기독교에 대한 그의 이해에는 한계가 있지만, 생태관이 종교의 세계관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과학자의 주장은 신학자들과 종교인들을 각성하게 했고, 그 대안을 세계의 종교전통에서 찾게 만들었다.
20세기가 기독교 신학에 던진 큰 주제들은 사회정의 구현을 위한 해방, 이웃종교들과의 대화, 그리고 생태계의 위기로 요약할 수 있다. 남미의 해방신학, 정치신학, 여성신학, 흑인신학, 제3세계 신학, 민중신학 등이 치열하게 주장한 해방 모티브와 프락시스의 강조는 그동안 서구 신학이 지녔던 교리적 공론과 계급적․성적․인종적 사유화에 대한 올바른 교정이었다. 또한 세계 종교에 대한 종교학적 문맹을 겨우 극복하고 다른 종교전통들의 탁월한 가치를 인식하게 된 서구 신학자들은 이들 종교들이 제시하는 심오한 지혜와 도전들을 종교 간 대화, 종교 내적 대화, 종교다원주의, 종교신학, 비교신학 등을 통해 극복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20세기 신학은 로고스(이론)와 프락시스(실천)라는 서구 신학이 전승한 희랍적 이원론을 극복하지 못하고, 종교신학 계열과 해방신학 계열로 이원화된 채 서로 분리되어 맴돌고 있었다.
생태계의 위기는 이렇게 분열된 20세기 신학자들과 종교학자들에게 공동의 화두를 제공한 셈이다. 학자들은 앞장서서 종교(특히 기독교)들이 그동안 자연에 대해 취해왔던 자폐성을 극복하는 대안을 마련하고자 했다. 인간은 자연과학이라는 좁은 지혜를 가지고 지구촌 생태계 전체에 미치는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으므로 종교전통들로부터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보다 큰 지혜를 구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종교는 지금까지 신-인간 또는 인간-인간의 관계에 대하여 집중해 왔는데, 이제 생태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각 종교는 이러한 제한된 세계관을 넘어 적절한 인간-지구의 관계론을 탐구해야 한다. 특히 이들은 인간에게 윤리적 초점을 맞춰왔던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전통들(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이 지닌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극복해야 하고, 오히려 자연 친화적인 동양종교들(특히 유교와 도교)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7년 하버드대학교 세계종교연구소에서 개최한 ‘그리스도교와 생태학’ 컨퍼런스는 이러한 변화를 잘 드러낸 중요한 학술 모임이었다. 필자 또한 이 모임에서 발표를 맡았는데, 그 자리에 참석한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적합한 생태신학의 구성을 위해서 세 가지 신학적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했다.3 첫째는 인간 중심주의의 해체와 우주(지구) 중심주의로의 전환이다.(비전의 전환) 둘째는 전통적 근본 은유(상징)의 해체와 재구성이다.(메타포의 전환) 셋째, 정론(orthodoxy)과 그리스도론 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와 정행(orthopraxis)과 성령론의 강조이다.(초점의 전환) 그러나 이 세 신학적 수정들은 구성신학적으로 당연한 것이나, 도의 신학 입장에서 보면 서구 생태신학들은 아직도 그 희랍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을 의인화하여 인간의 모습으로 그렸던 희랍인들의 사상을 기조로 하는 서구 신학에서 인간 중심주의 또는 신인동형론의 탈피는 그 정체성을 위협하는 매우 어려운 것이리라.
그러므로 이제 새천년대의 지구촌을 위한 생명생태신학의 몫은 인간의 얼굴과 몸 등 외부의 모습보다는 산, 물, 나무 등 자연세계와의 조화에 더욱 관심을 가졌던 자연친화적 생명사상을 근본으로 하는 우리 동양인들에게 돌아온 것이다. 한국 사상은 그 뿌리부터 우주 중심적이고 생명 중심적이었다. 한국 생태사상은 “인(人)과 물(物)의 조화와 공생, 즉 ‘인물균’(人物均)을 추구하는 생태적 합리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4 21세기에 필요한 생명생태신학은 이러한 동양적 비전과 시각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구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기독교 신학은 일종의 동양적 각(覺)을 해야 할 것이다. 희랍 문화를 기반으로 2,000년 동안 번영을 누리던 양(陽)의 기독교는 한계에 봉착했고, 생태계의 위기와 더불어 기독교는 이제 음(陰)의 패러다임으로 혁명적 모형전환[靜極動], 말하자면 성령의 태극운동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생명과 생태를 신학의 주제로 삼은 연구 자료들이 세계적으로 쏟아져 나왔고, 그 내용은 우리 신학계에도 비교적 잘 소개가 되어 있는 편이다. 여기서는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신학적 수정 작업에 대비하여 우리에게 보다 적절한 세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곧 ‘신-인간-우주적 비전’, ‘도의 신학’(theodao), 그리고 ‘억눌린 생명의 기(氣)-사회-우주적 전기’이다.
요약하면, 첫째, ‘신-인간-우주적 비전’이란 동양적 세계관인 하늘땅사람[天地人]의 삼재 사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신학의 근본 비전으로 채택하자는 것이다. 둘째, ‘도의 신학’은 이원화의 문제를 지니고 있는 전통적 로고스나 근대적 프락시스가 아니라, 자연친화적인 동양적 은유 ‘도’(道)를 신학의 근본 은유로 사용해서 새로운 도 패러다임의 신학을 구성하자는 것이다. 셋째, ‘억눌린 생명의 기-사회-우주적 전기’란 ‘민중의 사회전기’를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해서 절명 위기에 처한 생태계의 모든 억눌린 생명들을 포함하고, 우주생명력의 원기인 신기(神氣), 곧 성령의 기운을 타고 생명을 살리는 살림살이에 신학의 초점을 맞춰보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두 부분으로 나누어 게재하고자 한다. 이번 호에서는 신-인간-우주적 비전을, 그리고 다음 호에서는 도의 신학과 기-사회-우주적 전기를 설명하고자 한다.5

하늘땅사람: 신-인간-우주적 비전(Theoanthropocosmic Vision)

첫째, 21세기에 적절한 생명생태신학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근본 비전을 신-인간-우주적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근대 신학은 구속사관의 영향으로 지나치게 신-인간 또는 신-역사 중심적이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그동안 신학은 신과 인간(구원)을 강조하였고 땅(자연, 우주)을 잃어버렸다. 생태계가 종말에 직면한 지금에 와서야 서구 신학자들은 크게 반성하고 땅을 되찾자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그들이 좋아하는 둘로 나누는 습성 때문에 또 문제가 생기고 있다. ‘하늘이 아니면 땅, 인간이 아니면 자연’이라며 그들은 습관적으로 둘 중 하나만 골라내려고 한다. 그러나 하늘, 땅, 사람은 나누어질 수 없는 실재의 존재론적 구성 요소이고, 하늘과 땅과 연계되어 있는 사람이 참사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것을 ‘천지인’(天地人), 곧 삼재(三才)라고 하였다. 나는 이 말에서 ‘천’(天)을 ‘신’(神)으로 바꾸어 ‘신-인간-우주적 비전’을 신학의 근본 비전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여성생태신학자 엘리자베스 존슨이 밝힌 것처럼 기독교 전통에서 창조세계의 상실과 땅과 우주에 대한 기억상실증은 불과 최근 500년 동안 일어난 현상이며, 그 이전 1500년 동안에는 없었던 일이다.6 구약성서는 땅이 하나님의 완전한 소유이며(시 24:1) 그 영광으로 충만하다고(사 6:3) 진술하고 있어, 상당히 자연친화적이다. 신약성서에도 성육신, 몸의 부활, 성만찬적 분배, 우주적 구속과 소망 등 자연친화적 주제들이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성서는 땅의 종교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으므로 올바른 생태적 자연관을 추출하기 위한 성서의 재해석이 요청된다.
사실 초대 및 중세 신학들은 신-인간-우주적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신과 인간과 더불어 자연을 형이상학적 삼재의 하나로 받아들였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하나님은 성서라는 책과 자연이라는 책을 인간에게 주었다. 12-13세기에 우주론, 인간론, 신론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신-우주-인간적 신학사상은 정점에 이르렀다.8 힐데가르트(Hildegard von Bingen)는 흙으로부터 만들어진 인간은 다른 창조세계와 근원적으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어 결코 그들과 분리될 수 없다고 역설하였다. 보나벤투라(Bonaventure)는 “피조된 만물의 장려함에 의하여 깨달음을 얻지 못한 이는 소경이요, 그들이 [신을 향해]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는 귀머거리요, 이러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 이는 벙어리요, 이러한 수없이 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제1원인(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이는 바보다.”라고 하였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모든 자연세계가 영롱한 신형상(imago Dei)이라고 믿었다.
존슨이 지적한 대로 물론 초대 및 중세의 신학사상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으로 ‘계층적 이원론’이 침투되어 있었다. 정신과 물질, 남성과 여성, 인간과 자연을 계층적으로 확연히 구별하는 이 존재의 계층적 사유는 엘리트 남자를 정점으로 창조세계 안에 지배와 종속의 억압적 체계를 허용했고, 결과적으로 반여성적이고 반생태적 태도를 초래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사상들에서 인간과 더불어 자연은 적어도 신 앞에 질서와 조화를 이루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일부분이었다. 이러한 1500년간의 자연친화적인 유산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 이후 로마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은 자연에 대한 관심을 상실하고 신과 인간에게만 집중하여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종교개혁 강령이 된 ‘오직’(그리스도로만, 신앙으로만, 은총으로만, 성서로만)은 프로테스탄트 신학사상에 강렬한 인간 중심적 전환을 가져오게 했고, 하나님 앞에서 죄 지은 인간이 신학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초기 개신교 신학은 비교적 자연친화적이었다. 칼뱅은 자연세계 모든 곳에 신의 영광을 반사하는 불꽃이 있다고 말했다.8 그러나 그 후 가톨릭의 자연신학과 행위 중심적 칭의론에 대항하기 위해 개신교 신학은 자연을 신이 부재한 타락한 피조세계로서 오직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의 대상에 불과한 것으로 비하시키고 인간 중심주의를 더욱 심화시켰다.
더욱이 개신교 신학은 과학과 철학, 역사 등 계몽주의의 반자연적인 인문학의 영향을 받게 된다. 베이컨은 “자연은 그녀의 모든 자녀들과 함께 너희들[인간]에게 봉사하고 너희들의 노예가 되도록 정해져 있다.”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데카르트와 칸트 철학에 의한 ‘주체로의 전환’은 자연을 외부적이고 수동적인 객체로 규정하고 인식하는 인간 주체로부터 분리시켰다. 더구나 근대 역사주의는 이 분리를 더욱 강화시켰다. 자연은 직선적 구속사와 전혀 관련이 없는 순환적 이교도의 신이 군림하는 영역으로, 그리고 인간에 의해 구출돼야 할 하나의 상징으로 전락하였다. 키르케고르부터 불트만에 이르는 실존주의, 신정통주의, 정치-해방신학 등 20세기 신학조차도 자연을 열등하게 보는 근본주의적 입장을 취했다. 선택하고 결정하는 자유는 인간만이 가졌기에 우월한 존재이고, 그렇지 못한 자연은 결정론적이고 기계적인 열등한 것으로 폄하했다. 과정신학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신학에서 창조세계는 신학의 동반자와 주체의 자리에서 실종됐다.
지구 멸망의 위기에 직면한 오늘날, 기독교 신학은 시대의 징조에 따라 이러한 반자연적 장애물들을 과감하게 제거하고 자연세계를 중심으로 재통합하여야 한다고 존슨은 주장한다. 지구 중심적, 정체적, 계층적 질서에 의한 중세 우주관은 이미 붕괴되었으며, 자연을 결정론적이고 기계론적으로 보는 근대 계몽주의적 편견도 지양되어야 한다. 현대과학이 발견한 역동적, 유기적, 자기조직적, 비결정적, 개방적 우주관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오히려 고대와 중세의 우주 중심적 신학들을 재조명하여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지구를 살릴 수 있는 생태신학으로 구성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생태 문제는 남성 중심주의에 의해 착취를 당해온 여성의 입장과 깊은 유사성이 있으며, 그러므로 신학이 ‘땅으로의 회심’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여성생태신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존슨은 역설한다.9
이러한 존슨의 기획은 생태신학의 구성을 위하여 매우 유익한 기조를 제공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서구 신학자로서 넘을 수 없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그녀의 여성생태적 기획도 아직 희랍적 사고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주장의 핵심은 한마디로 신학이 인간 중심주의를 탈피하여 자연 중심주의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주장하는 전환에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변증법적 이원론의 배경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중심’이라는 환원주의적 본질론이 전제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이원론적 일원론(either-or)을 탈피하지 못한다. 이 이원론과 실체론이 바로 여성신학이나 생태신학이 극복하고자 하는 사상적 올무였지만, 여성생태신학자 존슨마저도 그 올무에서 완전히 탈출하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그 안에 머물러 있는 상태이다. 이원론과 일원론은 결과적으로 같은 것이다. 인간과 자연을 분리해서 어느 한쪽이 중심이 되는 식의 이원론적 일원론은 분석적 본질론 또는 실체론에 연관되며, 이런 방법으로는 생명생태신학이 갈망하는 진정한 호혜적 관계에 도달하기 어렵다.
이것보다는 천지인 삼재로 이루어진 통전적 관계론이 적절한 것이고, 그것의 재해석을 통한 적극적 수용은 우리 신학의 토착화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현대 신학 전체를 위해서도 유용하다. 파니카가 통찰한 대로, 세계 종교사에서 고대의 우주 중심주의, 중세의 신 중심주의, 그리고 근대의 인간/역사 중심주의는 모두 환원주의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10 이것들도 실재에 대한 허구적 진술이며, 마찬가지로 일원론과 이원론에 매인 사고가 낳은 논리적 오류이다. 신과 인간과 우주는 불가분의 세 축으로 통합적 실재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 세 구성 요소들을 함께 아우르는 신-인간-우주적 비전이 진실에 훨씬 근접한 것이다. 중세 신학도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더욱이 삼위일체론의 탁월성은 기독교 신앙이 희랍 사상의 일원론과 이원론이 가진 모순을 극복하고 다원적이고 동중심적(concentric) 실재를 파악할 수 있는 사유의 틀을 제공했다는 데 있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하늘땅사람(天地人)의 삼재(三才) 또는 삼극(三極)으로 구성된 다원적이고 동중심적인 실재를 믿어왔다. 훈민정음의 홀소리 구성에서 뚜렷이 돌출되었듯이 “한국 전통 문화의 구성원리”는 “삼재론 중심의 음양 오행론”이라고 볼 수 있다.11 동양사상의 근간이 되는 『주역』에 삼재 사상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육효(六爻)로 이루어진 주역의 괘는 천도(天道)와 인도(人道)와 지도(地道)의 민감한 변화를 천지인의 종합적 비전에서 패턴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주역괘의 묘사는 인과율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천지인을 한꺼번에 파악하는 통시적(synchronistic)인 통찰이다. 그것은 화살과 같은 직선적 시간관, 즉 아날로그적인 것이라기보다도 동시다발적이고 디지털적인 것에 오히려 근접한다. 이 통시적인 삼극의 움직임(道)을 근원적으로 상징화한 것이 삼태극이요, 그것을 음양의 변화로 단순화한 것이 태극인 것이다.
더욱이 한국에서는 기독교의 신-인간적(구속사) 비전이 전통사상인 유교의 인간-우주적 비전과 부딪쳐 신-인간-우주적 비전으로 해석학적 지평융합이 일어나고 있다.12 그러므로 신-인간-우주적 비전에 의한 신학 구성은 한국 신학의 한 특성이 될 수 있고, 한국 신학이 글로벌 신학적 가치를 자리매김할 수 있다. 기독교와 동양사상뿐만이 아니라 나아가서 생태 문제가 함께 어울려 합류하는 생생한 역사적인 현장에 있는 한국 기독교는 신-인간-우주적 사유 속에서 새 천년에 적절한 생명생태신학의 패러다임을 구성할 수 있는 풍부한 자원들을 가지고 있다. 신학이 성부와 하늘(天)에 대해서는 가장 오래되고 심오한 인류의 사상이라고 한다면, 동양학(유학) 또한 성자와 인간사회(人)에 대해서 그러할 것이다. 또한 생태학(과학)은 성령과 생태계(地)에 대한 가장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신학, 동양사상(유학), 그리고 생태학(과학)의 삼극을 삼태극처럼 어우르면(묘합) 멋들어지고 실천적인 경건과 사랑과 자비의 신-인간-우주적 생명생태신학 패러다임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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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註)

1 Daniel Maguire, The Moral Core of Judaism and Christianity: Reclaiming the Revolution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93), 13.
2 Lynn White, Jr., “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al Crisis,” Science 155 (1967): 1203-1207.
3 Mary Evelyn Tucker and John Grim, “Series Foreword,” Christianity and Ecology: Seeking the Well-Being of Earth and Humans, eds. Dieter T. Hessel and Rosemary R. Ruether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0)을 참조하라.
4 박희병, 『한국의 생태사상』(돌베개, 1999); 이경숙·박재순·차옥숭, 『한국 생명사상의 뿌리』(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01)를 참조하라.
5 이 주제에 대한 보다 상세한 학술적 서술은 『도의 신학 Ⅱ』(동연, 2012), 221-253을 참조하라.
6 Elizabeth A, Johnson, “Losing and Finding Creation in the Christian Tradition,” Christianity and Ecology (2000), 3-21을 참조하라.
7 이하 인용들은 같은 책, 7에서 재인용.
8 John Calvin, Institutes of Christian Religion, 1.5.64. 또한 김흡영, “존 칼빈과 이퇴계의 인간론에 관한 비교연구”, 『도의 신학』(다산글방, 2000), 231-291을 참조하라.
9 Johnson, “Losing and Finding Creation,” 10, 17.
10 Raimond Panikkar, The Cosmotheandric Experience: Emerging Religion Consciousness (Maryknoll: Orbis, 1993)를 참조하라.
11 이정호, 『해설역주 훈민정음』(보진제, 1972); 우실하, 『전통문화의 구성원리』(소나무, 1998)를 참조하라.
12 인간-우주적 비전은 유학의 천인합일 사상, 신-역사적 비전은 개신교 신학의 구속사를 말한다. 두 지평의 합류에 대해서는 김흡영, 『왕양명과 칼 바르트: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예문서원, 2020), 특히 315-324를 참조하라.
13 더 자세한 것은 김흡영, “신․인간․우주(天人地): 신학, 유학, 그리고 생태학”, 『도의 신학』, 292-335을 참조하라.


김흡영|조직신학을 전공하였다. 강남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아시아신학자협의회 공동대표, 한국조직신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도의 신학, 종교 간 대화, 종교와 과학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과학생명포럼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도의 신학』(Ⅰ,Ⅱ), 『왕양명과 칼 바르트』 등이 있다.

 
 
 

2021년 11월호(통권 7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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