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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북한이탈주민의 이해와 한국교회 03]
문화·신학·목회 (2021년 9월호)

 

  낯설고 험난한 아랫동네 정착기: 북한이탈주민은 어떻게 정착하는가
  

본문

 

필자는 학교에서 ‘북한이탈주민(이하 탈북민) 이해’라는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매 학기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상당히 조심스러우며 ‘과연 탈북민을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혹은 ‘남한 사람이 탈북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온당한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안고 수업에 들어서곤 한다. 탈북민의 관점에서 이 수업을 듣는다고 할 때, 이 주제가 자칫 매우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가령 수많은 청중이 있는 한 미국 대학에서 한국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중에 한국 학생이 한 명 있다고 해보자. 그들이 말하는 내용이 왜곡된 방향으로 흘러갈 때, 그 자리에서 한국 학생이 나서서 열심히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그 분위기 자체로 적잖이 힘든 시간이 될 것이다. 탈북민에 관해 남한 사람 중심으로 논의를 할 때 자칫 가져올 수 있는 위험과 불편함이 그와 같을 수 있다.1
탈북민에 대한 공부를 시작할 때 필자는 늘 세 가지 점을 염두에 두자고 스스로 다짐하며 수업 오리엔테이션 시간에도 이를 나눈다. 첫째, 탈북민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결국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나’ 혹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작업이라는 점이다. 탈북민은 우리 스스로 보지 못했던 남한 사람과 남한 사회의 모습을 더 선명하게 비춰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그들만을 대상화해서는 안 된다. 둘째, 탈북민은 다 다르다는 점이다. 탈북민은 북한에서의 출신 지역과 성분, 탈북 시기와 동기, 탈북 이후의 삶, 남한 입국 시기, 성별과 나이에 따라 편차가 크다. 그러므로 다양한 성품과 삶의 경험을 가진 이들을 하나의 획일적인 틀로 함부로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탈북민을 북한 주민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들은 북한 사회와 주민을 이해하게 해주는 유용한 통로이지만, 탈북민과 북한 주민 사이에는 다른 점도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당장 탈북민은 탈북과 외부 세계 경험을 통하여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존재이며, 이들은 저마다 창의로운 방식으로 여러 갈래로 변화·발전해가는 존재이다. 따라서 손쉽게 누군가를 단정지어 판단하려는 ‘게으른’ 태도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탈북민의 남한 입국과 하나원 생활

북한을 떠나 중국과 제3국을 거쳐 남한에 도착하는 과정은 짧게는 몇 주부터 길게는 몇 년까지 걸린다. 애초부터 남한행을 목적으로 북한에서 출발한 이들은 브로커 등의 도움을 받아 소위 ‘직행’으로 남한에 도달한다. 그러나 남한행을 위한 ‘선’을 찾지 못하거나 처음 의도와 달리 북한에 돌아가지 못하고 중국 혹은 러시아에서 온갖 고초를 겪은 끝에 수년이 걸려 남한에 오는 이도 적지 않다. 직행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탈북에 이어 남한에 이르는 과정은 목숨을 담보로 몇 차례의 사선을 넘나드는 과정이다. 하지만 그런 위기를 넘어 도달한 남한에서의 삶은 어떠할까? 애초의 기대와 실제 남한에서의 삶은 몇 퍼센트나 일치할까? 이에 대한 대답을 찾기 전에 먼저 탈북민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남한 정착 과정을 시간의 흐름대로 따라가보자.
제3국에서 남한행을 선택한 탈북민은 인천공항을 통해 남한 땅에 처음 발을 내딛게 된다.2 바로 이어서 북한을 떠나온 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몇 단계가 놓여 있다. 그중 첫 단계는 국정원과 경찰, 기무사 등의 국가기관이 운영하는 합동심문소에서의 심문 과정이다. 탈북민은 현 냉전적인 분단체제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여전히 잠재적인 간첩이자 의심의 대상이다. 이에 따라 이들은 몇 주에 걸쳐 신분 확인과 대공 용의점, 탈북과 입국 경위 등에 대한 조사를 받는다. 지난 수십 년간 3만 명이 넘는 탈북민이 한국에 들어왔고, 이들을 통해 얻어진 북한 정보가 상당히 축적되었기에 이 과정에서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입국한 이들은 대부분 가려진다고 한다.
합동심문소를 통과한 이들은 두 번째 단계인 통일부 산하의 탈북 정착교육기관인 하나원으로 이송된다. 하나원은 경기도 안성과 강원도 화천 두 곳에 있으며, 성별과 나이에 따라 분류되어 교육받는다. 하나원의 교육 과정은 총 12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진로 지도와 직업 탐색, 정서적·육체적 건강검진과 치료, 한국 사회 이해 및 초기 정착과 관련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원에 들어간 탈북민 교육생들은 종교 활동에 참여할 시간이 주어진다. 이에 따라 매주 일요일 오전이 되면 교육생들은 개신교 예배와 천주교 미사, 불교 법회 중 하나를 선택하여 참여한다. 필자는 약 10년 전에 개신교 목사로서 20-65세 사이의 남성 탈북민들이 교육받는 강원도 화천의 제2하나원 내에 세워진 하나교회를 섬긴 바 있다. 당시 기준으로 보자면 교육생 중 약 50-60%가 매주 개신교 예배에 참여했고, 20-30%는 천주교 미사에 참석했다.(이 비율은 그 이후에도 큰 변화가 없다고 들었다.) 불교 법회는 생각보다 탈북민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편이었다. 전반적으로 탈북민의 개신교 예배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이유는 한국교회가 그들에 대한 관심이 크며 여러 지원을 해준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매주 서울·경기권 교회의 통일선교 부서에 속한 성도들이 돌아가며 하나원을 방문하여 함께 예배드리는데, 탈북민에게는 개신교 예배가 순수 남한 주민들과의 첫 만남과 교제의 기회가 된다는 점도 하나의 긍정적인 요인이 된다. 이외에도 북한에서 그토록 적대시하던 ‘미제’(미국 제국주의)의 종교인 기독교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개신교 예배에 참여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나원 내의 예배 분위기는 상당히 활기차다. 하나원 예배에 참석한 많은 남한 성도들은 탈북민 교육생들의 밝고 적극적인 모습을 접하면서 의외로 놀라곤 한다. 탈북민이면 뭔가 어둡고 고통에 찌들어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오지만, 실제 이들의 모습에서는 상당한 여유와 웃음 가득한 모습이 나타난다. 탈북민에 대한 무의식적인 고정관념 하나가 깨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예배에 참석하는 이들 중에는 북한의 지하교회 출신 성도들도 간혹 있고, 중국에서 선교사의 도움을 받거나 신앙 훈련을 받은 이들도 있는데, 이들에게 하나원에서의 자유로운 예배는 그야말로 감격스러운 현장이 된다.

탈북민에 대한 정착 지원

하나원의 교육을 수료하면, 탈북민들은 임대주택을 배정받아 한국 내 곳곳으로 흩어진다. 일반적으로 탈북민 대부분이 북한에서 평양 생활에 대한 환상을 가졌기 때문에, 이들은 남한에 와서도 서울 혹은 그 근처에서 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 한국 내 탈북민의 64.8%가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3
탈북민의 본격적인 남한살이 첫날은 임대아파트로 향하면서 시작한다. 그런데 적어도 몇 개월간 다른 탈북민과 함께 지내던 시간을 뒤로하고, 아무 가구도 갖추어지지 않은 텅 빈 아파트에서 홀로 보내는 첫날밤이 그렇게 외로웠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 이들에게 그날 밤은 탈북 이후 숨 막힐 듯한 긴장의 시간을 보내다가 정말로 남한에서 살 수 있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이제부터는 낯선 남한 사회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엄중한 현실이 마음을 파고드는 시간이다.
탈북민에 대한 지원과 관련된 몇 가지 주요한 제도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법적 지위가 탈북민에게 부여된다. 둘째, 초기 정착을 위한 기본금이 지원된다.(거주지 전입 후 1년 이내에 1인 세대의 경우 800만 원, 2인 세대 1,400만 원, 3인 세대 1,900만 원, 4인 세대 2,400만 원) 셋째, 탈북민이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이 지원된다. 이외에도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로서 본인 부담금 없이 의료 혜택을 받으며, 대학 진학 희망자의 경우 특례로 대학 입시를 치르며 대학 등록금 전액이 지원된다. 1983년에 미그19 전투기를 이끌고 귀순한 이웅평 대위가 체제 경쟁의 차원에서 주택 2채 등 당시 15억 원 상당의 보상금을 받은 것에 비하면, 오늘날의 탈북민에 대한 지원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액수이다. 하지만 한국에 이주하는 다른 외국인 이주자들과 비교할 때 탈북민에 대한 다양한 제도적 지원이 촘촘히 마련되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탈북민이 마주하는 남한 사회의 현실

탈북민이 마주한 남한 사회는 어떤 곳일까? 이곳에서 태어나 정규교육을 다 받고 자라난 젊은 청년들조차 살기 힘들다며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곳이 바로 남한이다. 하물며 평생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살아온 탈북민이 어느 날 갑자기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일반적으로 이들은 몇 가지 복합적인 어려움을 처음부터 안고 남한 생활을 시작한다.
첫째, 건강상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적지 않다. 북한에서 어려서부터 영양 섭취를 제대로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몸을 돌볼 여력이 없이 살아오느라 전반적인 신체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문제는 남한 사회에서 그들이 취직하여 일하는 공장이나 식당 등 대부분의 일터는 노동 강도가 매우 강하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느슨한 사회주의 체제에 익숙하던 이들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정착 초기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어떤 이는 탈북 과정 및 제3국에서 겪은 정신적인 외상으로 인해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을 겪기도 한다. 가족과 홀로 떨어져 외로움과 고독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탈북민의 자살률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남한 사람보다 3배가 높다는 안타까운 통계까지 있다.4
둘째, 경제적인 면에서의 자립을 이뤄가는 과정이 쉽지 않다. 탈북민 대부분은 자신이 북한에서 가졌던 경력이나 기술을 살리기가 어렵다. 가장 바닥에서부터 다시 하나씩 배워가야 한다. 젊은 탈북민의 경우는 그나마 낫지만, 나이가 있는 이들에게는 매우 힘든 과정이다. 북한에 있는 가족과 친인척들의 생계를 위해 지속적으로 송금을 해야 하는 부담을 가진 이도 상당히 많다. 실제로 30%의 수수료를 떼고 나면 중국 내의 브로커를 거쳐 북한의 가족에게 송금할 수 있는데, 이러한 방식으로 북한 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셋째, 기대와 다른 남한 사회에 실망하며 좌절한다. 젊은 부류의 탈북민 중에는 어려서부터 장마당을 통해 접한 한류 문화와 드라마를 통해 바라본 남한에 대해 환상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사실 드라마에 나오는 등장인물과 그 안의 화려한 삶은 실제 남한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그런데 외부와 격리된 북한 사회에서 자라난 이들에게는 그러한 기대와 현실의 간격을 미리 교정하기란 쉽지 않다. 한편, 북한에서 나름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여유를 누리다가 온 이들에게는 남한에서 받는 10평대 임대아파트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북한 평성에서 온 한 청년은 정착 초기에 크게 실망했다고 필자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북한에서는 방이 다섯 개이고 심지어 당구대까지 갖춘 큰 집에서 살다가 왔는데, 남한에서의 자기 형편이 너무 보잘것없다는 이야기였다. 북한의 한 지방 대학의 부학장까지 지냈던 중년의 탈북민은 자기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미련한 선택이 바로 남한행이었다고 필자와 인터뷰 중에 탄식하며 고백한 적도 있다.

90년대 들어서 고난의 행군 때 숱한 사람들이 굶어 죽으면서 쓰러지는 걸 보고 나니깐, 그걸 보고 사회에 대한 환멸이나 사회에 대한 어떤 인식에서 변화가 생겼죠. … 이 사회가 오래 못 가겠구나. 이 사회가 너무나 병폐가 있어서 이 사회에 대한 어떤 기대나 희망도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그러면서 자식들 장래가 암담해지는 거죠. 그러니깐 결심한 거죠. 가자. … 내 나이 사십이 넘어서 왔는데, 그 어간에 일구어놨던 모든 것을 다 저버리고…. 그래도 여기가 낫겠지. 같은 민족이고. 그래도 없지 않아 사회적 대우나 인간적 대우를 받을 줄 알았죠. … 먼저 오면 대한민국 정부에서 다 해주는 줄 알았죠. 제 먹고살기도 연명하기 힘든 사회인 줄도 모르고. 그러니깐 후회가 더 많죠. 내 삶을 찾아 더 뭔가 낫고 가족을 위해 선택했던 길인데, 이런 험지인 줄 모르고…. 인생을 완전 스스로 망가뜨렸죠.

필자가 그 탈북민을 만났을 당시 그는 한 수산물 공장에서 고기를 가공하는 일을 하며 홀로 살고 있었다. 이렇듯 외부와 단절된 북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던 이들이 실제로 마주한 현실 속의 남한 사회는 그들의 기대와 너무나 달랐다.
넷째, 많은 탈북민이 남한 사람들의 냉대와 차별을 경험하면서 좌절한다. 이들이 떠나온 북한 사회는 민족의식과 통일을 매우 강조한다. 하지만 남한 사회에서 그러한 의식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오히려 탈북민은 남한 사회에 남아 있는 막연한 반공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한다. 더 나아가 자존심 강한 탈북민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이들을 향한 동정과 연민의 시선이다.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지 않은 남한 사람들이 탈북민을 열등한 이로 바라보곤 한다. 심지어 탈북민을 가장 열심히 돕는 교회 안에서조차 이들을 시혜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많은데, 이는 서로 간의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걸림돌이 된다.
때로 부정적인 사례와 실패도 있지만,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하여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개척해가는 탈북민의 사례도 많다. 외로움과 고독을 감내하며 부지런히 노력해서 나름대로 성공적인 자리를 잡아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탈북민을 바라볼 때 ‘시간’이라는 변수를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탈북민의 남한 정착에 영향을 주는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변수는 바로 그가 북한을 ‘언제’ 떠났는지, 중국이나 제3국에서 ‘얼마나’ 살았는지, 남한에 ‘언제’ 입국했는지이다. 누구나 남한에 도착해서 적어도 5년간은 유사한 패턴 가운데 시행착오를 겪게 마련이다. 따라서 탈북민 한 사람의 어떠함을 섣불리 판단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남한에 정착하는 흐름의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를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탈북민, 탈북자, 새터민, 귀순 용사…

이쯤에서 탈북민에 대한 명칭을 잠깐 짚고 넘어가 보자. 북한을 떠나 한국에 온 이들을 가리키는 용어는 매우 다양하다. 그동안 가장 많이 쓰인 표현으로 ‘탈북자’가 있었다. 또한 2005년 통일부에서 제안한 ‘새터민’이라는 용어도 적지 않게 알려져 있다. 하지만 두 용어 모두 탈북민들이 거부감을 느끼고 있어서 요즘 탈북민 사역 현장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탈북자라는 칭호는 ‘-자’라는 표현이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고 거절하는 이들이 많으며, 새터민이라는 용어는 ‘북한’ 출신이라는 이들의 정체성을 제대로 담지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비판받았으며, 또한 이들을 단지 경제적인 풍요를 위하여 옛 터전인 북한을 버리고 남한으로 왔다고 느끼게 한다는 불편한 마음도 제기되었다.
현재 이들에 대한 공식적이며 법적인 용어는 ‘북한이탈주민’이다.5 학술적인 자료나 공적인 자리에서는 이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조금 더 편안하게 부르는 호칭으로 ‘탈북민’이라는 용어가 최근에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이외에 북한에 고향을 둔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북향민’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들도 있다. 어떤 교회에서는 탈북민을 ‘윗동네 사람’으로 부르고 남한 사람을 ‘아랫동네 사람’으로 부르기도 한다. 아예 ‘자유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필자 역시 다양한 탈북민 목회자 및 사역자들과 만나서 이 문제에 관하여 물어보면, 현재로서는 ‘탈북민’이라는 표현이 가장 무난하다는 의견을 자주 접한다.
사실 탈북민을 어떻게 부르느냐의 문제는 단지 이름 자체와 관련된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명칭 안에는 다양한 가치와 의미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정 명칭은 그 명칭을 가진 사람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 섬세하게 접근해야 한다.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지칭하기 위한 정책적인 용어의 사용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명칭이 가지는 위험성은 다음과 같이 지적할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집단의 이름이 나의 전(全) 존재를 규정하게 되는 순간, 나는 그 이름 속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 이름은 분명 나의 일부이긴 하지만 결코 전체가 아닌데 사람들은 그 규정 안에서만 나를 본다. 더욱이 그 이름은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붙여지는 경우가 많기에 타인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 이상 나는 계속 그 이미지에 머무르게 된다.
혹시 우리도 곁에 존재하는 한 사람을 어떤 명칭만으로 손쉽게 제한하고 그에 대하여 단정짓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언젠가 탈북민이라는 별도의 명칭조차 필요 없이 내 곁의 탈북민을 그저 한 사람의 친구나 이웃, 동료로만 볼 수 있을 때가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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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에 주는 함의

한국교회에는 그 어느 곳보다도 탈북민을 만나보고 경험한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탈북민 대부분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면서 일차적으로 기대는 곳이 교회이기 때문이다. 이때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교회를 방문한 탈북민에게 나름의 선한 열심을 품는데, 그 결과가 항상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일단 앞서 언급한 대로 많은 탈북민은 정착 초기, 즉 한국에 입국한 지 5년 이내에 교회를 방문한다. 문제는 이때가 탈북민의 삶과 정서가 상당히 불안정한 시기라는 점이다. 이에 따라 탈북민과 남한 성도와의 관계에서 불가피하게 불편한 갈등과 시행착오가 반복되곤 한다. 그 과정에서 탈북민을 섬기는 교회 가운데 탈북민에 대한 좌절과 실망이 쌓여서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형성되기도 한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때로 한국교회 안에 누적된 탈북민에 대한 경험과 선이해가 탈북민과 평등한 관계를 맺는 데에 어려움을 주는 요인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실제로 필자는 남한 성도들로부터 ‘내가 탈북민들 많이 만나보니까… 저들은 이래.” 혹은 “저들은 저래서 안 돼.”라는 식의 단정적인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탈북민을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 혹은 선입견이다. 탈북민의 어떠함보다는 그들을 대하는 우리 안의 어떠함의 문제가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예컨대, 남한 성도들이 탈북민을 대할 때 시혜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가 적지 않다. 특히 교회 안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서의 남한 성도와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서의 탈북민 성도의 관계가 굳어져서 남한 성도가 일방적으로 베풀고 조언을 주는 위치에 서게 되면 더욱 그렇다. 물론 탈북민의 정착 초기에는 그와 같은 일방적인 도움과 조언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탈북민이 몇 달간의 남한 생활을 하고 나면 교회에서 손쉽게 던지는 사소한 조언들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때는 그들에게 훨씬 전문적이고 전략적인 조언이 필요한 시점인데, 정작 남한 성도들은 어린아이처럼 아무것도 모르던 탈북민에 대한 초기 인상을 갖고 계속 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혜적이고 비대칭적인 관계는 탈북민과 건강하고 수평적인 만남을 이어가는 동력이 될 수 없다.
따라서 탈북민과의 관계에서 한국교회에 요청되는 결정적이고도 중요한 한 가지 태도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경청’이다. 남한 성도들이 이들을 함부로 평가하기 이전에,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아져야 한다. 탈북민이 어떤 생각을 하고, 남한에 정착하면서 어떤 경험과 어떤 고민이 있는지 충분히 들으며, 이들의 상황과 필요에 맞게 응답해야 한다. 상대방의 필요에 정확히 응답하는 도움은 은혜의 통로가 되지만, 상대방의 필요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주는 도움은 자칫 주는 자의 만족을 위한 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탈북민은 북한 사회와 북한 사람의 단면을 내다보도록 돕는 창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한 사회와 남한 사람의 단면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교회가 윗동네인 북한을 떠나 아랫동네인 남한까지 내려와 사는 탈북민이 겪을 수밖에 없는 좌충우돌의 시간을 인내하며 기다려주고 이들에 대한 이해와 수용의 폭을 조금씩 확대해가도록 꾸준히 노력하면 좋겠다.
어느 날 문득 내 앞에 나타나 나의 삶의 문을 두드리는 한 사람의 탈북민은 그 자체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존재를 열린 마음으로 포용하며 서로 배우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동체를 함께 이뤄가도록 노력하자. 바로 이러한 모습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바라보시지 않을까 싶다.

주(註)
1 공교롭게도 필자가 숭실대에 부임한 이후 탈북민에 관한 수업을 두 차례 진행했는데, 두 번 모두 탈북민이 수강생으로 수업에 참여하였다. 그들은 필자의 부족한 부분을 교정해주고 북한 문화와 탈북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줬다는 측면에서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누구보다도 탈북민을 잘 이해해준다는 그들의 이야기에 큰 격려도 받았다.
2 이때 탈북민 중에는 남한행이 아니라 미국행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행을 선택하면 미국에서 정착할 길이 열리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제3국에서의 수용소 생활과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진다. 미국에 도착하는 탈북민에게는 한국처럼 다양한 경제적 지원과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필자가 미국에서 만난 탈북민들은 미국에서의 삶에 나름의 만족감을 표현하였다. 남한과 달리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차별이나 냉대가 덜하고, 미국인들은 자신이 북한 출신이든 남한 출신이든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3 남북하나재단, 『2020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조사』(남북하나재단, 2020).
4 “국내 정착 탈북자 자살률, 일반 국민 3배”, 「데일리엔케이」(Daily NK), 2012년 10월 24일.
5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북한이탈주민법) 제2조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은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이하 “북한”이라 한다)에 주소, 직계가족, 배우자, 직장 등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북한을 벗어난 후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아니한 사람”을 가리킨다.(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 www.law.go.kr 참고)
6 이향규, “[소수자의 눈으로 한국사회를 본다] 탈북자를 넘어서”, 「창작과비평」 44/4(2016): 541.


김의혁|풀러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교학(Intercultural Studies)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강원도 화천에 있는 통일부 북한이탈주민 정착교육기관인 제2하나원의 하나교회 담당목사로 일했다. 현재 숭실대학교 일반대학원 기독교통일지도자학과 전임 교수이다.

 
 
 

2021년 9월호(통권 7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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