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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북한이탈주민의 이해와 한국교회 02]
문화·신학·목회 (2021년 8월호)

 

  트라우마에 갇힌 북한: 북한이탈주민은 어디서 왔는가
  

본문

 

오랫동안 북한 어린이들을 돕는 사역을 해온 한 지인의 이야기이다. 그가 한국에 방문하여 한 교회에서 강의 도중 북한 아이들에게 겨울용 신발을 지원하자고 제안했다. 영하 30도를 밑도는 혹독한 추위에 동상에 걸려 고생하는 어린아이들을 돕기 위함이었다. 강의가 끝난 뒤 교인 한 사람이 다가와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차라리 겨울에 동상 걸려서 발목이 잘리는 게 낫지, 뭣 하러 나중에 자라나서 북한 군인이 될 아이들에게 신발을 지원합니까?” 이처럼 북한과 북한 주민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극단적일 때가 있다. 어린아이에게 신발을 보내는 인도주의적 행위조차도 어떤 이들에게는 잠재적인 위협의 행위로 인식될 만큼 북한과 북한 사람에 대해 날이 선 관점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남남갈등’,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이념 대립이 격화된 지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다. 해방 후 70여 년이 지나도록 북한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갈등 속에 몰아넣는 뜨거운 감자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북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안타까운 사실은 북한에 대한 자극적인 가십성 뉴스는 넘쳐나지만, 정작 북한 사회를 진지하게 알아가고 이해하려는 우리 사회의 노력은 상대적으로 훨씬 적다는 점이다. 이번 연재글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이하 ‘탈북민’)은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들이 떠나온 나라, 북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미친 행위자인가, 나쁜 행위자인가

영국의 북한 전문가인 헤이즐 스미스(Hazel Smith) 교수는 일찍이 “북한은 미친 행위자인가? 나쁜 행위자인가?”라는 질문을 통하여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1 얼핏 생각해보면 미치든, 나쁘든 둘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북한을 미친 행위자로 바라보는 관점은 북한을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광기에 사로잡힌 집단으로 간주한다. 이에 따라 북한을 최소한의 합리성조차 없는 집단으로 보기에 북한과 정상적으로 상대하는 것은 의미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반면에 북한을 나쁜 행위자로 이해하는 관점은 지향하는 목표나 방법이 나쁘고 잘못되었을지언정 북한을 나름의 내적인 논리를 가지고 움직이는 집단으로 간주한다.
사실 북한을 미친 행위자로만 보기 시작하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스스로 붕괴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을 나쁜 행위자로 보는 관점은 적어도 북한이 외부 세계와 협상하고 소통할 수 있는 나름의 합리성을 가진 존재로 보기에, 북한과 더 진지하게 전략적인 관점에서 상대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전자보다는 후자의 관점을 고려하면서 북한 사회의 단면을 두 가지 키워드를 통해 살펴보자. 하나는 ‘전쟁’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기근’이다.

가해자이자 피해자(?)로서의 북한

한국전쟁은 남북한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끔찍한 상처를 안겨준 비극적인 사건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약 3년의 시간 동안 온 국토를 망가뜨렸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황폐화하고 서로를 용서할 수 없는 대상으로 만들었다. 낙동강 방어선 이남을 제외한 한반도 전역이 전쟁터가 되었기에 크고 작은 도시와 마을마다 잔인한 학살과 보복의 악순환이 일어났다.
전면적인 전쟁의 발발 책임이 북한에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로 증명된 지 오래다.2 다만 한국전쟁과 관련하여 오랫동안 간과되었던 하나의 주제는 북한의 전쟁 피해와 그로 인한 여파이다. 그동안 가해자인 북한이 받은 피해를 가늠하려는 노력은 불온한 시도로 이해되곤 하였다. 그러나 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70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서, 한국 사회는 이제 한국전쟁과 북한 사회를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평가할 수 있는 여유와 여지가 생겼다. 이는 우리가 극적인 경제 발전과 사회문화적인 성취를 이뤄냄으로써 전쟁의 상흔을 상당 부분 극복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북한도 전쟁의 큰 피해를 겪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하여 매우 왜곡되고 파행적인 체제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정확히 간파할 때가 되었다.
북한은 한마디로 하면 ‘트라우마’(trauma)에 갇혀 있는 나라’이다. 일반적으로 트라우마는 어떤 사고나 자연재해를 통해 발생한 정신적인 외상을 지칭하며, 트라우마가 개인을 넘어서 한 사회 구성원들의 공통적인 경험이 되면 ‘사회적 트라우마’가 된다.3 북한이 경험한 사회적 트라우마의 중심에는 한국전쟁이 있다.
한국전쟁의 피해자는 한국인데, 왜 북한의 전쟁 트라우마에도 주목해야 할까? 이는 결코 북한의 잘못을 정당화하는 시도는 아니다. 다만, 북한이 결과적으로 한국전쟁의 트라우마를 벗어나고 극복하는 데 실패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비정상적인 경로를 걷게 된 이유를 분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은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의 경험이 북한 사회에 깊이 각인된 계기를 설명해준다.
첫째, 북한은 전쟁을 통하여 매우 심각한 인명 피해를 입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전쟁 기간에 국군 사망자는 약 13만 8,000명이고, 부상자는 약 45만 명에 달했다.4 그런데 북한군의 경우 부상자를 제외한 사망자만 해도 국군의 4배인 52만 명으로 추정될 정도로 인명 피해가 상당히 컸다. 게다가 한국전쟁에서 민간인이 겪은 피해는 군인보다 몇 배 이상이었다. 그 당시 남한 인구가 2,000만 명, 북한 인구가 960만 명가량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은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 규모에 비하여 전쟁에 의한 인명 피해는 훨씬 컸던 셈이다.
둘째, 북한 주민들은 전쟁의 두려움과 공포에 훨씬 강한 강도로 더 오랜 시간 노출되어 있었다. 전쟁 초기부터 압도적인 공군력으로 제공권을 장악한 미군은 한반도 전역에서 북한군과 북한의 주요 시설에 융단폭격을 가하면서 북한군의 전력을 약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한국 주민 입장에서 1951년 이후 2년간의 전쟁은 38선을 중심으로 최전선에서 주로 일어났지만, 북한 주민의 처지에서는 전후방 구분 없이 매일 하늘에서 폭격을 맞으며 3년 내내 전쟁의 공포와 피해를 경험한 셈이다. 한성훈은 한국전쟁기에 쓰인 북한 사람들의 개인 편지를 분석하면서 “인민들이 가장 크게 갖는 공포는 밤낮없이 상공에 떠돌고 있는 비행기와 공중폭격”이었고, 수많은 편지에 그러한 흔적이 나타난다고 말한다.5 그 결과 북한에서 가장 심한 욕 중 하나가 ‘미제 승냥이놈’일 정도로 모든 북한 주민에게 미국에 대한 적개심은 깊이 내면화되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김병로 교수는 이와 같은 전쟁 트라우마의 경험 때문에 북한이 ‘자폐적 적대성’(autistic hostility)을 지닌 국가가 되었다고 평가한다.6 북한이 71년 전에 발발한 전쟁 트라우마의 후유증에서 탈피하지 못한 채 외부적인 두려움과 공포에 대응하여 지금까지 비정상적인 전시체제를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지하갱도와 땅굴을 통하여 대다수 군수시설과 대피소 등을 필사적으로 지하화했는데, 이는 미군의 강력한 폭격이 그들의 기억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은 유사시를 대비한 경제 및 국방의 지역자립체제를 구축하고, 전쟁의 피해에 따라 성분을 나눈 계급 구조를 형성함으로써 전쟁에 대한 상처를 사회적으로 구조화했으며,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한 조직생활을 통하여 사회적 결속력과 통제력을 확보하여 외부의 적들에 대응하고자 했는데, 이 모든 것이 전쟁 트라우마의 결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북한은 전쟁의 가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모습으로 사회의 각 영역을 재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폐쇄적이고 비상식적인 북한 사회의 모습은 사회주의 사상에 내재한 근본적인 한계와 결합하여 국가 발전의 심각한 비효율성을 가져오게 된다. 이미 1980년대에 북한 사회의 발전 동력은 급격히 상실되었고,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위한 무리한 투자, 1990년대 들어 나타난 소련 및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잇따른 붕괴로 인해 북한은 고립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결정타를 안긴 것이 바로 1995년부터 들이닥친 자연재해였다. 북한 주민의 생계를 책임지던 배급체계까지 무너지면서 대기근을 맞이하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체제가 결국에는 붕괴하는 수순으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대기근 같은 위기가 북한 체제를 무너뜨리는 요소로 작동해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북한의 기근

1990년대 중반 북한의 대기근 소식을 접하면서, 이 기근이 북한 체제가 변화하는 촉매제가 되거나 더 나아가 북한 체제가 붕괴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측했던 사람들이 한국에 적지 않았다. 실제로 적어도 20-30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고난의 행군 시기에 생존을 위하여 강을 건너 대량 탈북하는 전례 없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는 오랫동안 견고하게 작동하던 북한의 사회통제 시스템이 위기에 처해 있음을 의미했다.
이렇듯 기근이 북한 사회의 내구력에 심각한 손상을 입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기근 자체는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체제 붕괴의 직접적인 요인이 되지 못했다. 기근에 관한 인류학적 연구를 수행한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정병호 교수의 관찰과 분석은 기근과 체제의 관계에 대한 고정관념을 교정해준다. 그는 역사적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했던 기근에 관한 연구들이 공통으로 밝히는 바에 근거하여 “아무리 혹독한 기근이라도 기근 자체는 체제 붕괴를 가져오지 않는다.”라고 지적하는데, 그 이유는 “배고픈 사람들은 권력에 저항할 힘도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7 즉 사람들이 탈진하면 각자 자기 생존에 매달리기 때문에 폭동이나 혁명 가능성이 더 낮아진다는 것이다. 사회적 갈등과 혼란의 시기에는 오히려 기존의 권위에 더 의지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따라서 그는 북한에서 기근이 심화되고 아사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체제가 불안정해지고 폭동이 일어나서 통일이 앞당겨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기근에 대한 철저한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된 판단이라고 비판한다.
로버츠 더크스(Robert Dirks)는 기근에 대한 사회적 반응을 경계, 저항, 탈진의 3단계로 나눈다.8 그에 따르면, 기근의 초기 단계인 ‘경계’(alarm) 단계에서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은 오히려 강화된다. 배고픔으로부터 오는 불안이 오히려 사람들을 더 응집시키면서, 기근 초기에 각자 식량을 아껴먹으며 서로 음식을 나누는 이타적인 행동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기근의 두 번째 단계인 ‘저항’(resistance) 단계가 되면, 사람들 사이에서 에너지 결핍이 점점 심해지면서 활동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기존의 사회적 관계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서 가족을 제외한 다른 인간관계가 급격히 축소된다. 살아남기 위한 각자도생의 상황이 이어지면서, 이웃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고 서로 깊은 정서적인 상처를 입는다. 그러다가 세 번째 단계인 ‘탈진’(exhaustion) 단계에 이르면, 함께 살기 위해 발버둥쳐 온 가족과 같은 최소한의 인간관계마저 붕괴하기 시작한다. 노인들이 먼저 희생되고, 아이들은 부모를 잃고 소위 ‘꽃제비’가 된다.
정병호는 1995-96년에 평양을 제외한 대부분의 북한 지역이 기근의 두 번째 단계인 저항 단계에 들어섰고, 1997-98년에 탈진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보았다.9 세 번째 단계에 들어서면, 마을에 사람은 있지만 거의 아무런 소리와 움직임이 없는 ‘기괴한 고요함’만이 감돌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이 실제로 바로 우리의 곁에서 일어나 수십만 명의 사람이 굶어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끔찍하고 안타까운가?
기근을 피해 그나마 탈북을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국경지대의 사람들이었고, 함경남도나 황해도와 같은 남쪽 지역 사람들은 꼼짝없이 정부의 배급 재개를 기다리다가 죽어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필자는 북한에서 소위 ‘착하고 말 잘 듣던 사람들’이 이때 거의 다 죽어나갔다는 이야기를 탈북민들로부터 종종 들을 수 있었다. 1990년대 말 최악의 시기를 어떻게든 버텨낸 북한이지만, 그 이후 20년이 지나도록 농업 생산의 한계, 핵 개발에 따른 대북제재의 여파 등으로 인해 북한의 식량 상황은 여전히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한국교회에 주는 함의

우리가 북한 사회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철한 이해를 공유한다면, 한국 사회가 나타내는 ‘남남갈등’의 깊은 골이 조금이나마 완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측면에서 앞서 소개했던 전쟁 트라우마에 갇혀 극도로 자폐적인 북한의 모습, 기근이 체제에 미치는 영향 분석, 미친 혹은 나쁜 행위자 관점은 북한 사회의 형성과 현재 모습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유효한 관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교회는 표면적으로 북한과 통일에 대한 관심을 가장 적극적으로 표현하지만, 상대적으로 북한 사회에 대한 이해는 매우 협소할 때가 많다. 북한 사회에 대한 보다 객관적이고 치밀한 이해는 한반도의 오랜 분단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북한 사회를 제대로 알아가자는 제안은 북한 체제의 잘못을 눈감아주자는 단순 논리가 아니다. 북한을 이해하자는 제안은 한반도에 대한 한국교회의 책임을 더욱 적극적이고 신실하게 감당하자는 의미이다. 어쩌면 북한을 그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미친 행위자로 손쉽게 단정지어 버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한반도의 평화와 궁극적 통일을 위해서 한국교회에 맡기신 책임적 역할을 방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이 외부 세계에 대한 적대적 자폐성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북한의 체제 모순, 지도층의 왜곡된 욕심, 한국전쟁의 경험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또한 수령 중심제의 경직성으로 인하여 왜곡된 의사결정 구조가 돌발적인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이를 정확히 간파하면서 남한과 북한이 평화와 화해의 자리에 나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성숙한 중재자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본다.
또한 우리 곁의 탈북민을 이해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온전히 포용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이 떠나온 북한 사회를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마 10:16)한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은 지속적으로 동반되어야 한다. 화해와 평화를 중재하려는 한국교회의 모습 속에서 탈북민들도 한국교회의 일원으로서 더 온전한 자기 정체성을 갖고 함께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이어지는 연재글들을 통하여 계속 담을 예정이다.)

주(註)
1 Hazel Smith, “Bad, mad, sad or rational actor? Why the ‘securitization’ paradigm makes for poor policy analysis of north Korea,” International Affairs 76/3(2000): 593-617.
2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나남, 2003).
3 2014년 4월 16일에 세월호가 침몰하던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봐야 했던 전 국민이 받은 충격이 사회적 트라우마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4 “숫자로 본 6·25전쟁… 국군 사망자 13만7천899명”, 「연합뉴스」, 2015년 6월 24일.
5 한성훈, “개인 편지에 나타난 북한 인민의 전쟁 서사”, 「경제와사회」 94호(2012년 여름호): 352.
6 김병로, 『북한, 조선으로 다시 읽다』(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6), 6-13.
7 정병호, “북한 기근의 인류학적 연구”, 「통일문제연구」 16/1(2004): 112.
8 Robert Dirks, “Social Responses During Severe Food Shortages and Famine,” Current Anthropology Vol.21, No.1 (1980): 26-31.
9 정병호, 앞의 글, 131-132.
풀러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교학(Intercultural Studies)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강원도 화천에 있는 통일부 북한이탈주민 정착교육기관인 제2하나원의 하나교회 담당목사로 일했다. 현재 숭실대학교 일반대학원 기독교통일지도자학과 전임 교수이다.


김의혁 | 풀러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교학(Intercultural Studies)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강원도 화천에 있는 통일부 북한이탈주민 정착교육기관인 제2하나원의 하나교회 담당목사로 일했다. 현재 숭실대학교 일반대학원 기독교통일지도자학과 전임 교수이다.

 
 
 

2021년 8월호(통권 7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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