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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수도원, 그 현장을 가다 10]
문화·신학·목회 (2021년 8월호)

 

  이냐시오 순례길, '길'을 찾기 위한 영적 순례
  

본문

 

수도원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아마도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에 익숙할 것이다. 순례 여정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작은 도시로, 사도 야고보의 유해를 보관하고 있다고 알려진 9세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예루살렘과 로마와 더불어 순례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지금도 해마다 수십만 명의 순례자들이 수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최근 스페인에 걷기 열풍을 불러일으킨 또 다른 순례길이 있다. 다름 아닌 ‘이냐시오 순례길’(Camino Ignaciano)이다. 예수회의 설립자인 이냐시오가 1522년 전쟁에서 입은 부상을 떨쳐내고 로욜라에서 몬세라트 수도원과 만레사 동굴까지 걸었던 약 700km의 길인데, 사람들은 이 길을 따라 걸으면서 그의 삶과 신앙과 영성을 기억하고 자신을 성찰하고 있다. 이냐시오가 태어난 로욜라가 속한 바스크 지역에서 시작하는 이 순례길은 라리오하, 나바라, 아라곤, 카탈루냐까지 다섯 지역에 걸쳐 있으며, 전부 27개의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종착점인 만레사 동굴은 이냐시오가 강력한 영적 각성을 경험한 장소이다. 이곳에서의 영적 경험은 후일 그의 『영신수련』이라는 책의 근간이 되었다. 필자는 2018년 여름 이냐시오 순례길을 따라가면서 그가 머물렀던 장소들을 둘러보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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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욜라의 이냐시오와 예수회

로욜라의 이냐시오(Ignatius Loyola, 1491-1556)는 스페인 북부 로욜라 성에서 벨트랑 로욜라와 마리아 발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교회의 관습에 따라 세례를 받고 이니고(Inigo)라는 세례명을 얻었다. 이냐시오는 아버지와 친분이 두터웠던 궁정의 유력인사 후안 벨라스케스에게 보내져서 대부분의 청소년 시절을 보낸다. 그러다가 1518년 벨라스케스가 죽자 나바라의 총독이자 나헤라의 공작인 안토니오 만리케의 기사로 투신했다가 1521년 5월 20일 프랑스와의 전쟁 중에 팜플로나에서 중상을 입고 만다. 그는 부상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 속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기면서 『그리스도 전기』와 『성인열전』과 같은 책을 읽고 회심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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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을 회복하자마자 이냐시오는 로욜라를 떠나 중세부터 영적인 중심지로 여겨졌던 몬세라트 수도원으로 향했다. 긴 여정 끝에 몬세라트 수도원에 도착한 그는 성모상 앞에 엎드려 무력을 상징하는 검을 버리고 자신의 죄를 자백하며 신앙의 사람으로 거듭난다. 이제까지는 세속의 기사였지만 이후로는 영적인 기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그는 그때까지 입고 있던 기사 복장을 벗어버리고 올이 거친 베옷으로 갈아입었다. 그 후 이냐시오는 다시 길을 떠나 만레사 동굴에 이르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의 고행과 이후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통해 다시 한 번 깊은 영적 경험을 하게 된다. 성지에서 돌아온 후 이냐시오는 그의 표현대로 “영혼들을 돕기 위해” 체계적인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1524년부터 1534년 석사학위를 받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바르셀로나, 알칼라, 살라망카, 파리에서 인문학과 신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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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4년 8월 15일 이냐시오는 여섯 명의 친구들(피에르 파브르, 프란체스코 하비에르, 디에고 라이네스, 알폰소 살메론, 니콜라스 보바디야, 시몬 로드리게스)과 함께 파리 몽마르트 성당에서 청빈과 정결에 힘을 쓰고 영혼구제를 위해 일생을 바치기로 서약하였다. 이것이 예수회의 기원이 되었다. 1537년 6월 24일 사제로 서품을 받은 이냐시오와 동료들은 스스로를 ‘예수의 친구’로 자청하였고, 이것이 후에 그대로 예수회의 명칭이 된다. 마침내 1539년 예수회라는 새로운 수도회의 회헌 초안을 작성해 교황에게 승인을 요청하여, 1540년 교황 바오로 3세로부터 공식 인가를 받게 되고, 이냐시오는 1541년 예수회 총장으로 선출되어 1556년 죽기까지 그 직책을 수행하였다. 이냐시오는 1522년부터 틈틈이 쓰기 시작한 『영신수련』을 기초로 많은 사람들의 영적 훈련을 지도하였는데, 그의 영성 수련법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예수회의 활동은 매우 다양했지만 기본적으로 선교와 교육에 집중되었다. 강력한 선교 노력을 통해 여러 대륙에서 많은 결실을 얻었으며 브라질ㆍ인도ㆍ일본 등에까지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또한 대학을 비롯한 여러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 1551년에서 1650년 사이에 예수회가 신성로마제국 내에 설립한 학교가 무려 150개가 넘을 정도였다. 이냐시오는 이렇게 교육과 선교에 집중해 내실을 다져 로마가톨릭교회를 든든히 세움으로써 16세기 종교개혁의 거센 바람에 맞서고자 하였다. 종교개혁에 대한 대책회의 성격이 짙은 로마가톨릭교회의 트렌트공의회에도 대표를 파견하여 쇄신책 마련에 힘을 보태었다. 덧붙여 그는 교황권에 대한 맹종에 가까운 절대적인 순명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당시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으로 인해 약화되고 있던 로마 교황의 권위를 지키고자 함이었다. 예수회는 16세기 종교개혁에 맞서 로마가톨릭교회를 옹호하는 전위부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예수회의 모토처럼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살기 원했던 이냐시오는 1609년 교황 바오로 5세에 의해 복자로 선포되었으며, 1622년에는 그레고리우스 15세에 의해 동료인 프란체스코 하비에르와 더불어 로마교회의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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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욜라 성소, 이냐시오가 태어난 곳

이냐시오는 1491년 10월 23일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소도시 아즈페이티아(Azpeitia)의 로욜라 성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집은 1521년 팜플로나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돌아와 회심한 장소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로욜라 성은 그의 육적인 출생지인 동시에 영적인 출생지이다. 바로 이 터에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소가 세워졌다. 이냐시오가 죽기 전부터 최초의 예수회원들은 그가 태어나고 회심한 이 장소에 큰 의미를 부여해왔는데, 1551년 프란체스코 보르자(Francisco de Borja)에 의해 이냐시오의 고향집 예배당에서 첫 번째 미사가 봉헌되었다. 이냐시오는 1556년 7월 31일 숨을 거두었고, 1622년 3월 12일 그가 성인으로 축성된 이후 예수회는 창설자의 출생지를 보존하는 일에 적극 나섰다.
첫 교회당 건립은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의 제자인 이탈리아 건축가 카를로 마리아 폰타나(Carlo Maria Fontana)가 책임을 맡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보는 교회 건물은 지역 건축가들(Antonio Larraza, Martin de Zaldua, Sebastian de Lecuona, Ignacio de Ibero)이 완성한 것이다. 높이가 65m에 달하는 교회당은 길이 150m의 전면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1689년 3월 28일 주춧돌을 놓았고, 50여 년이 지난 1738년 7월 31일 이냐시오의 축일에 축성되었다. 이자레이츠(Izarraitz) 산에서 채석한 석회암으로 600여 명의 석공이 만든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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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당의 돔은 직경 20m, 높이 50m로, 돔의 바닥에는 믿음, 소망, 헌신, 사랑, 지혜, 정의, 용기, 절제의 덕이 표현되어 있고, 돔의 위쪽에는 건축비를 부담한 합스부르크가와 부르봉가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중앙 제단은 이냐시오 데 이베로(Ignacio de Ibero)가 상감 대리석으로 장식한 바로크 양식으로 설계되었다. 제단의 위쪽에 있는 은으로 만든 이냐시오의 동상은 1758년 카라카스 왕립 기푸즈코안 사(社)가 만든 것이다. 교회당의 측면에는 프란시스 보르자, 프란체스코 하비에르, 예수의 거룩한 심장, 우리의 보호자 동정녀 마리아, 페드로 클라베르, 알폰소 로드리게스에게 헌정된 제단들이 있다. 오르간은 1889년 프랑스 오르간 건축가 카바이에 콜(Cavaille-Coll)이 설치한 것으로 3개의 건반과 2,172개의 파이프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금도 각종 예전과 콘서트에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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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욜라 성소의 핵심은 이냐시오가 태어난 집이다. 출입문 옆에는 팜플로나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이냐시오가 들것에 실려 고향에 도착하는 모습을 표현한 청동 조각품이 있다. 집은 아래는 돌로, 위는 벽돌로 이루어진 4층 건물이다. 1층은 창고와 지하 저장고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2층은 일상의 생활공간으로 여러 개의 방과 부엌이 있고, 3층은 침실, 기도실, 식당, 거실이 있다. 이곳 침실에서 1491년 13남매의 막내아들 이냐시오가 태어났다. 기도실 옆의 식당과 거실은 가족의 중심 생활공간이었으며, 손님을 맞이하는 장소였다. 그가 부상을 당한 후 요양하면서 『그리스도 전기』와 『성인열전』을 읽고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 예루살렘에 가고 싶다는 강력한 열망을 가진 것도 여기에서였다. 4층은 이냐시오의 회심 기념 예배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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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이냐시오 탄생 500주년, 2006년 이냐시오 서거 450주년 등 중요한 시기마다 로욜라 교회에서 이냐시오를 기억하는 예전이 진행되었다. 로욜라에는 1972년 설립되어 이냐시오 영성 형성에 중심 역할을 하는 피정의 집이 있으며, 방문객을 위한 유스호스텔도 1990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도서관에는 16세기 이후 출판된 도서와 희귀본 등 15만여 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다. 이곳은 이냐시오 순례길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몬세라트 수도원, 이냐시오가 영적 기사로 거듭난 현장

필자는 2018년 6월 21일 바르셀로나에서 당일로 몬세라트 수도원과 만레사 동굴을 다녀왔다. 몬세라트 수도원을 가려면 가급적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다. 바르셀로나에서 기차를 타고 몬세라트역(Montserrat-Monistrol)에 도착하여 다시 산악열차로 수도원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다시 강철 케이블로 만든 푸니쿨라(Funicular)를 타고 수도원 위쪽에 있는 산으로 올라갔다. 새벽같이 출발했기에 산 위에서 아침 산책 겸 트래킹을 즐길 수 있었다. 몬세라트는 수도원으로도 유명하지만, 산 자체로도 명산이라 트래킹을 위해서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여유롭게 몬세라트산을 누린 후 12시에 있는 ‘몬세라트 수도원 어린이합창단’(Escolania de Montserrat)의 찬양을 듣기 위해 수도원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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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세라트’라는 말은 카탈루냐어로 ‘톱니 모양의 산’(Mons + serrtus)이란 뜻이며, 전승에 따르면 880년경 이 산의 동굴에서 동정녀 마리아의 상(像)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해발 600m 고지에 있는 ‘거룩한 동굴’(Santa Cova) 예배당은 지금도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몬세라트 수도원의 원천이다. 몬세라트 수도원은 1025년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 리폴의 수도원장이자 비크의 주교인 올리바(Oliba)가 건립하였다. 그리고 천 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13세기부터 기적을 일으키는 마리아상으로 인해 순례자가 줄을 이었고, 오늘날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몬세라트 어린이합창단이 14세기부터 있었다는 문헌 자료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유럽 최초의 어린이합창단일 것이다. 소년으로만 구성된 몬세라트 어린이합창단은 지금도 전 세계를 무대로 공연을 하고 있다. 1476년 수도원은 고딕 양식으로 재건되었고, 1490년에는 인쇄 설비들을 갖추고 출판을 시작했다. 현재의 수도원 교회당은 1592년에 축성된 건물이다. 흥미로운 것은 몬세라트의 은수자였던 베르나트 보일(Bernat Boil)이 콜럼버스의 항해에 참여했고, 그래서 오늘날 서인도제도의 섬 중 하나가 몬세라트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1811-12년 나폴레옹의 군대에 의해 몬세라트 수도원이 파괴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1835년에는 법령에 따라 수도원의 모든 재산을 압류당하고 수도원에는 단 한 명의 수도사만 남게 되는 일도 있었다. 1858년에 이르러서야 문타데스(Muntades) 수도원장의 지도하에 몬세라트 수도원 재건이 시작되었다. 1880년에는 몬세라트 성지 밀레니엄 기념식을 거행하였고, 1881년에는 마리아상의 대관식 행사를 열어 성모 마리아를 카탈루냐 지역의 수호성녀로 선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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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은 20세기 스페인 역사의 비극을 함께 겪어야만 했다. 1936-39년 스페인 내전 때에는 23명의 수도사들이 살해당했고 나머지 수도사들은 모두 수도원을 떠나야만 했다. 수도원 교회 지하 묘실에는 이때 순교한 수도원장 안토니 마르세트와 수도사들의 무덤이 있다. 다행히 스페인 카탈루냐 주 자치정부가 몬세라트를 지켜 파괴와 약탈은 면할 수 있었다. 내전이 끝나면서 수도사들은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1970년 프랑코 정권 때에는 수도원이 이틀 동안 경찰에게 점령당하는 일도 겪었으며 1986년 산불로, 2000년 홍수로 큰 피해를 당하기도 하였다. 1995-96년에 새롭게 개조된 몬세라트 수도원 복합단지 안에는 레스토랑, 미술관, 도서관, 수도원 기록실, 출판사, 미디어 방송국, 순례자를 위한 숙소 등 다양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베네딕투스회에 속하는 몬세라트 수도원에는 지금도 하나님과 교통하며 세상을 섬기려는 80여 명의 수도사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

몬세라트 수도원 교회당

몬세라트 수도원 교회당은 하나의 신랑으로 이루어진 구조인데, 길이 58m, 너비 15m, 높이 23m의 규모이다. 내부 버팀벽 사이에 경당들이 위치하고 있고, 2층에는 측면 스탠드와 채광창이 있으며, 천장은 고딕 양식의 특징인 갈빗살 형태를 하고 있다. 20세기 후반(1991-96)의 개축 덕분에 외부의 빛이 자연스레 안으로 들어온다. 교회당 안에는 요셉 리모나(Josep Llimona)가 나무로 만들어 1896년 설치한 에스겔, 예레미야, 이사야, 다니엘 선지자의 조각상이 있다.
제단 중앙 2층에는 ‘모레네타’(Moreneta, 카탈루냐어로 ‘작은 검은색 마돈나’)로 불리는 마리아상이 있다. 12세기 말 나무로 제작된 것으로, 오랜 세월 사람들의 얼굴과 손이 닿으면서 색이 검게 변하였다. 마리아는 오른손에 온 우주와 피조 세계를 상징하는 둥근 구(球)를 들고 있고, 왼손으로는 무릎 위에 앉은 아기 예수의 어깨를 감싸려는 몸짓을 하고 있다. 아기 예수는 오른손으로 사람들을 축복하며, 왼손에는 풍요와 영생을 상징하는 파인애플을 들고 있다. 몬세라트 수도원에는 일찍이 이 기적의 검은 마리아상으로 인해 수많은 순례자의 발길이 이어졌다.(그래서 수도원의 정확한 이름은 ‘몬세라트의 성모 마리아 수도원’이다.) 카탈루냐 사람들은 수호성녀인 몬세라트의 검은 마리아를 매년 4월 27일 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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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2년 이냐시오는 영적인 질문을 잔뜩 품은 순례자로 높은 산 위의 몬세라트 수도원을 방문하였다. 그 당시에는 산악열차도, 푸니쿨라도 없었으니 고행의 순례길이었다. 이냐시오는 이곳 마리아상 앞에서 지금까지 세상의 기사로 살려고 했던 모든 헛된 욕망을 내려놓고, 거룩한 마리아의 기사로 살 것을 서약하였다.

만레사의 동굴, 이냐시오 영성의 깊이가 더해진 곳

새벽같이 서둘렀지만 몬세라트 산행과 수도원 탐방을 마치고 나니 점심도 먹지 못하고 다음 목적지인 만레사로 향했다. 여름에 스페인을 여행한다면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시에스타’(la siesta)라는 독특한 낮잠 문화이다. 라틴어 ‘여섯 번째 시간’(hora sexta)에서 유래한 말인데, 동틀 때부터 6시간이 지나고 맞이하는 시간이라는 의미이다. 스페인의 시에스타는 13-16시이다. 점심시간까지 포함하면 12시부터 긴 시간 동안 문을 닫는 관광지가 태반이다. 특히 작은 마을이나 시골일수록 더 그렇다. 따라서 여름 스페인 여행은 자신이 방문할 장소의 개관시간과 식당의 영업시간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물론 여행을 하다 보면 항상 그러기가 어렵기 때문에 여러 일화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날 필자도 오후 3시가 넘어서야 만레사역에 도착하여 목적지인 만레사 동굴로 걸어가다가 다행히 일찍 문을 연 카페테리아를 발견해서 샌드위치로 늦은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시에스타 시간에 문을 여는 식당이 거의 없다 보니 그 시간에도 카페 안은 많은 현지인들로 북적거렸다. 얼마간 휴식을 취한 후 만레사 동굴의 개관시간인 오후 4시에 맞춰 다시 걸음을 옮겼다.
만레사 동굴은 이냐시오가 1522년 3월부터 1523년 2월까지 11개월 동안 머문 장소이다. 이냐시오는 여기에서 기도하면서 영적 체험을 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영신수련』을 저술하기 시작했다. 이냐시오는 자서전에서 만레사 동굴 앞을 흐르는 카르도네르강에서 강한 성령의 조명을 경험했다고 말하고 있다. 소위 ‘카르도네르의 조명’이라는 경험이었다. 이곳에서 머문 11개월의 은거는 이후 예수회 창설을 통해 하나님과 이웃과 세상을 섬기는 원동력이 되었다. 따라서 예수회원들에게 “만레사로 가라!”는 표현은 그들의 역사, 신앙적 소명, 영성의 근원으로 순례하라는 의미로 통한다. 이냐시오 자신도 만레사 시절을 자신의 초대교회라고 여러 차례 언급하였다. 이런 점에서 만레사는 예수회의 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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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레사의 동굴을 방문하면 먼저 동굴 옆에 세워진 교회를 만나게 된다. 핵심은 동굴이고, 교회는 마치 동굴의 현관과 같은 역할을 한다. 교회 정면 고린도 양식의 기둥 사이의 중앙 벽감에 이냐시오가 펜과 『영신수련』 책을 들고 서 있는 조각상이 보인다. 이냐시오 위쪽의 달걀 모양의 창에서 사방으로 비치는 햇살 무늬는 하나님의 조명을 상징한다. 18세기 중반에 건축된 교회 내부의 구조는 하나의 신랑에 측면 경당들, 격자 모양의 중앙 제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 제단은 1864년에 조성된 것으로, 제일 위에는 삼위일체, 즉 우주를 상징하는 둥근 물체를 들고 있는 하나님, 십자가를 잡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비둘기로 상징된 성령이 자리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성령의 상징인 비둘기가 검은색이라는 점이다. 삼위일체 밑에 한가운데 성모 마리아상이 서 있고, 아래쪽 좌우에는 이냐시오와 히메네스가 서 있다. 예배당 측면의 기둥들에는 예수회의 중요 지도자들의 조각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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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자연스럽게 이냐시오의 동굴로 이어진다. 교회에서 동굴로 이어지는 통로는 1906-19년 예수회의 마르티 코로나스(Marti Coronas)가 예술적으로 장식하였다. 통로의 바닥에는 로욜라 가문의 문장, 이냐시오가 팜플로나 전투에서 부상당한 사실을 상기시키는 대포, 이냐시오가 예수바라기였음을 상징하는 해바라기 장식이 있다. 통로를 거치면 드디어 이냐시오가 머물렀던 작은 자연 석굴이 나온다. 동굴 안의 설화석고 제단에는 이냐시오가 손에 펜과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의 참회자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는 17세기 후반 조안 그라우(Joan Grau)가 만든 것이다. 이냐시오가 이곳 만레사 동굴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신수련』을 저술하기 시작했음을 나타낸다. 이냐시오가 기도했던 동굴의 오른쪽 벽 위에는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십자가 앞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에 어떻게 응답할지 묻고 있는 이냐시오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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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인 1894-96년에는 교회 뒤편으로 예수회 수도원과 영성센터도 건립되었다. 바로크 양식의 측면은 3단 구조로 되어 있는데 상단과 하단은 단순한 반면, 중앙 부분에는 찬양하는 26명의 천사, 24명의 역사적 인물, 타원형 창들로 장식되어 있다. 만레사 국제이냐시오영성센터(International Center for Ignatian Spirituality)는 온 세계에서 찾아온 순례자들이 자신의 소명과 영성을 돌아보고 훈련을 통해 다시금 회복되어 떠나는 영성 재형성의 산실이다. 만레사는 이냐시오가 이곳 동굴에 도착한 지 500주년이 되는 2022년을 앞두고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박경수 | 종교개혁사를 전공하였다.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인물로 보는 종교개혁사』, 『스코틀랜드 교회치리서』, 『교회사클래스』, 『종교개혁 핵심톡톡』 외 다수가 있고, 역서로 『츠빙글리의 생애와 사상』, 『스위스 종교개혁』등이 있다.

 
 
 

2021년 8월호(통권 7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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