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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도(道)의 신학이란 04]
문화·신학·목회 (2021년 8월호)

 

  예수 그리스도와 도의 신학 (1)
  

본문

 

현대 그리스도론의 딜레마

도의 신학이 우리 및 동아시아 신학만이 아니라 글로벌 신학의 가장 강력한 대안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탁월한 이해와 지구촌 생명생태계의 위기에 대처하는 예언자적 적절성에 있다. 이에는 다음과 같은 근거가 있다. 첫째, 지난 호에 실린 세 번째 연재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도(호도스)가 로고스보다 성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더 적절한 근본 은유라 할 수 있다.(요 14:6) 둘째, 도를 근본 은유로 사용하면, ‘예수와 그리스도’, ‘로고스(logos)와 프락시스(praxis)’를 구분하는 현대 그리스도론의 곤혹스러운 이원론적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다. 셋째, 도의 심오한 해석학적 지평이 산상수훈을 비롯한 예수의 가르침과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를 더욱 심화시켜 준다. 넷째, 도의 신학은 생태계의 위기에 처한 지구촌을 살릴 수 있는 신-인간-우주의 묘합의 원형이자 완성이며 우주생성적인 그리스도를 제시한다.
실제로 2000년에 도의 신학적 입장에서 본 그리스도론, 즉 ‘도-그리스도론’(Christo-dao)에 대한 첫 논문은 네덜란드의 학술지를 통해 소개된 이후 세계적으로 알려졌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중국적 이해’라는 주제로 4권의 책을 출간한 독일 중국학연구소의 시리즈 등에도 한국적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포함되었다.1 그 후 나는 세계에서 ‘도-그리스도론’보다 더욱 발전된 그리스도론은 아직 찾지 못했다. 이 글에서는 먼저 현대 그리스도론이 처한 딜레마와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도의 신학의 역할을 살펴보고, 도라는 근본 은유가 넓혀줄 수 있는 우주적인 해석학적 지평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그리고 다음 글에서는 인간 역사와 단순한 우주를 넘어 신·인간·우주적(theo-anthropo-cosmic) 및 우주생성적(Cosmogonic)으로 확장된 지평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 다시 말해서 도-그리스도론의 구조적 내용을 제안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수’와 ‘그리스도’가 호칭에서부터 분리되어 갈라져 있는 여러 교단들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현대 그리스도론이 처한 딜레마의 주요 원인은 서구 신학이 지닌 근대적 ‘역사 중심주의’, 그리고 ‘로고스’와 ‘프락시스’를 분리하는 이원론이었다.
첫째, 역사 중심주의는 19세기에 시작된 ‘역사적 예수 탐구’라는 성서신학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와 관련된 학자들은 꾸준히 예수에 대한 역사적 증거들을 찾아다니며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 지상의 예수와 승천한 그리스도, 혹은 부활 이전의 예수와 부활 이후의 그리스도 사이에 이분법을 만들어냈다. 여기에는 ‘역사’라는 근대적 신화를 신봉하는 역사 실증주의 또는 역사 절대주의가 배경이 되고 있다. 또한 20세기 후반부의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를 둘러싸고 벌어진 북미의 열띤 논쟁이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처럼, 역사에 대한 근대 서구인의 맹목적인 추종은 그리스도론에 더욱 심각한 딜레마를 가져왔다. 사실 예수 세미나는 역사비평에 의해 그들이 굳게 믿었던 백인 예수의 이미지가 해체되는 데 충격을 받고, 신앙을 과학적 역사 연구로 대체하려 했던 것일 수 있다.
둘째, 두 번째 연재글에서 살펴보았듯, 현대신학은 해방신학의 강력한 출몰과 함께 ‘로고스 신학’(theo-logy)과 ‘프락시스 신학’(theo-praxis)의 두 모형으로 갈라졌다. 이러한 분리는 그리스도론에서 더욱 심화되었다. 즉 성육하신 말씀(로고스)인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로고스 그리스도론’(Christo-logy)과 하나님의 통치를 따른 실천(프락시스) 운동으로서 ‘프락시스 그리스도론’(Christo-praxis)으로 극렬하게 나뉜 것이다.
아시아 신학들 역시 아시아 해방신학과 아시아 종교신학의 두 진영으로 양분되었다. 전자가 아시아의 사회경제적 정의를 위한 투쟁을 주축으로 한다면, 후자는 토착화운동에 초점을 맞춘 신학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분리는 제1세대 아시아 신학자인 인도의 토마스(1916-96)와 파니카(1918-2010)의 그리스도론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2 토마스는 아시아의 역사와 아시아 종교들이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나타나는 내적 변혁 속에서 기능적으로 역사하는 그리스도, 즉 ‘후험적 그리스도’를 발굴했다. 반면에 파니카는 아시아의 종교들 속에서 기독교 전래 이전에 이미 내재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초역사적인 현존, 곧 ‘선험적 그리스도’를 찾고자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그리스도를 억압된 민중으로 이해하는 민중신학과 그리스도를 ‘현자’와 ‘보살’로 간주하는 종교신학 간의 이원화가 이루어졌다.3 이처럼 이원화는 현대 그리스도론에 내재된 딜레마이다. 이론과 실천, 형식과 내용, 또한 이성과 감정 사이를 쉽게 분리하는 취약성을 가진 로고스를 근본 은유로 계속 사용하는 한, 이러한 이분법은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도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론이 로고스/프락시스의 이원화와 ‘역사’라는 근대적 신화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우리의 맥락에서 말하자면, 어떻게 서구적 이원론과 역사 중심주의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역사적 정황에 적합한 한국 및 동아시아적 그리스도론을 구성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그리스도론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새 술을 담기 위한 새 가죽부대로서 새로운 근본 은유와 새로운 해석학적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나는 여기서 ‘도’(道)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대안적 근본 은유라고 주장한다. 동아시아에서 도는 도교와 같은 특정 종교에 속한 개념이 아니고, 유교, 도교, 불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에서 널리 사용되는 근본 은유이자 다양한 의미를 지닌 매우 포괄적인 용어이다. 예를 들어보자.

도는 하나의 길, 보도, 도로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은유적 확장에 의해서 그것은 고대 중국[동아시아]에서 삶의 바른 방식, 통치의 기술, 인간 존재의 이상적인 방향, 우주의 길, 존재 자체의 발생적이고 규범적인 방식(양식, 길, 과정)이 된다.

따라서 나는 ‘로고스 그리스도론’(Christo-logy)과 ‘프락시스 그리스도론’(Christo-praxis)의 분리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도 그리스도론’(Christo-dao)을 제안한다. 이 세 가지 그리스도론 패러다임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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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예수 그리스도의 근본 은유로 선택하는 ‘도 그리스도론’의 구성은 여러 가지 정당한 이유들이 있다. 첫째, 우리 또는 동아시아인의 신앙고백적 그리스도론을 수립하기 위해 우리 전통사상의 중심 개념인 도를 근본 은유로 선택한 것은 서구의 로고스 신학이 그랬던 것처럼 맥락적 당위성을 가진다.
둘째, 성서적 전거이다. 예수는 자신을 로고스라고 하기보다는 ‘길’이라 주장했고(요 14:6), 사도행전에 나오는 기독교에 대한 최초의 호칭은 ‘호도스’이고 한글 성서에서는 이를 ‘도’라고 번역했다.(행 16:17, 18:25, 18:26) 심지어 도마복음에는 ‘로고스’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셋째, 현대 성서학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근본 은유로서 도의 타당성을 더욱 확증해주고 있다. 흥미롭게도 ‘제3의 역사적 예수 탐구’는 도의 신학과 유사한 결론에 도달했다. 예수는 정통적 종교(로고스)의 창시자이거나 종말론적 혁명가(프락시스)라기보다는 삶의 길(道)에 관한 지혜로운 스승이요, 현자에 가깝다는 것이다.5
넷째, 서구 신학자들조차 로고스 그리스도론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한다. 독일 신학자 몰트만은 고전적 로고스 그리스도론을 거부하고, 그리스도론의 핵심 상징으로 오히려 ‘길’(way)을 채택했다. “나는 더 이상 두 본성들 안에 있는 한 인격이라든지, 역사적 인격성과 같은 그리스도에 관한 정적인 사고를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세계와 함께하는 하나님의 역사의 전진운동 속에서 그분을 역동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몰트만은 ‘길’이라는 상징을 채택하게 된 이유를 도의 신학과 유사하게 다음 세 가지로 제시했다. (1) 과정의 측면을 구현한다. (2)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그리스도론이 역사적으로 조건 지워지고, 제한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3) 로고스 그리스도론과 프락시스 그리스도론의 통합을 “초대한다.”6
또한 스리랑카 신학자 피에리스도 아시아 신학 속에 존재하는 해방신학과 토착화신학 사이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도의 신학과 유사한 제안을 했다. 그는 아시아의 토착 종교들과 진솔한 종교 내적(intra-religious) 대화(로고스)와 동시에 아시아적 해방(다바르)을 통전하는 호도스(도) 신학을 형성하고자 했다. 즉, “현실을 해석하는 ‘말씀’, 역사를 변혁시키는 ‘매개체’, 그리고 모든 담론을 종결시키는 ‘길’”로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세 가지 측면을 한데 엮을 수 있는 통전적인 모형을 찾고자 했다.7

도(道)의 인간-우주적, 우주생성적 지평

이와 같이 도의 신학적 그리스도 이해, 즉 ‘도-그리스도론’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징후들이 20세기 후반부터 세계 도처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종합적이지만 초언어적이고 미묘한 도의 세계는 근대화된 아시아인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분석적인 현대인들에게는 낯설고 이질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근대의 역사적이고 선형적이고 과학적인 세계관으로부터 도의 해석학적 전망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큰 깨달음이 필요하다. 심지어 카프라 같은 과학자들조차도 현대 물리학이 발견하는 세계는 분석적이고 기계적인 서양적 사고방식(로고스)보다는 종합적이고 통전적인 동양적 도의 사상에 가깝다고 논증하며, 『도의 물리학』을 주창했다.8
더욱이 현대인이 음양의 우주발생적 태극(太極) 운동으로 이루어진 도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선적인 시간관을 가진 역사적 지평에서 인간-우주적(anthropo-cosmic)이고 우주생성적(cosmogonic)인 지평으로의 해석학적 도약이 필요하다. 또한 그것은 ‘이것이냐 저것이냐’(either-or) 하는 근대화 이후 습관화된 서구적 양자택일의 사고방식에서 ‘이것과 저것 모두’(both-and)를 껴안는 동양적 상보성의 사상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해석학적 차원은 우리 전통의 대표적 상징인 태극을 통하여 표출된다. 중국 북송 시대의 유학자 주돈이(周敦, 1017-73)는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음양의 상호관계적 운동을 통한 우주생성적 도의 원리인 태극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다. 태극이 동(動)하여 양(陽)을 낳고, 동의 상태가 지극하면 정(靜)하여지고, 정하여지면 음(陰)을 낳는다. 정의 상태가 지극하면 다시 동하게 된다. 한 번 동하고 한 번 정하는 것이 서로 그 뿌리가 되어, 음으로 나뉘고 양으로 나뉘어, 양의(兩儀)가 맞선다.9

4세기의 초기 교회가 예수를 우주적 그리스도로 인식한 것은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오늘날에 와서야 단순한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를 재조명하고 있지만, 4세기의 교회에서는 그것을 뛰어넘는 우주생성적 그리스도(cosmogonic Christ)를 이미 고백했다. 니케아 신조는 이 점을 분명하게 선언했다. “우리는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을 믿습니다. … 그를 통해 만물이 지어졌습니다.” 이러한 우주생성적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실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요한과 바울에 의해서도 분명히 표현되었다.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6-17; 요 1:3 참조)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후 서구 신학은 이 중요한 우주생성적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를 상실하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인간·이성·역사 중심의 로고스 그리스도론으로 축소되었다.
그리스도의 단순한 우주를 넘는 우주생성적 차원을 언표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그 의미를 상실한 로고스보다는 도가 훨씬 더 합당한 근본 은유이다. “도는 만물 가운데 가장 크니 만물 가운데 완전하고, 만물 가운데 어디에나 있으며, 만물 가운데 모든 것이다. 이 세 가지 측면은 따로 떨어져 있으나 그 실재는 하나이다.”(『장자』, 22권) 동양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노장사상에서 도는 어떤 문화-언어적 은유, 상징, 모형으로 이름 붙이고 개념화할 수 없는 세계, 곧 궁극적인 실재를 지시한다. “말해질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무엇이 하늘과 땅의 시원(始原)이며, 이름 붙일 수 있는 그 무엇이 만물의 어머니다.”(『도덕경』, 1장) 따라서 도에 이름을 붙이고 설명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발견적인 노력일 뿐이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나, 더 나은 말을 찾을 수 없기에 도라고 부른다.”(『도덕경』, 25장)
또한 『도덕경』은 도를 근본적으로 여성적 은유를 통해 기술하고 있다. “만물의 어머니”, 존재의 “근본”, “근원” 혹은 “다듬지 않은 판목” 등이 그것이다. 더욱이 도는 “신비로운 여성”으로 불린다. “계곡의 신은 결코 죽지 않는다. 이를 일러 신비한 여인이라 하고, 그 신비한 여인의 문은 하늘과 땅의 근원이다.”(6장) “하늘 문을 열고 닫음에 있어 여인과 같을 수 있겠는가?”(10장) 이러한 여성적 시각은 노자가 말한 ‘반전’(reversal)의 혁명적 원리와 관련되어 있다. 이에 대해 그래함은 다음 표에 있는 상호 대립의 연쇄 안에서 노자는 항상 양(陽)보다는 음(陰)의 패러다임에 우선적 선택권을 준다고 주장했다.10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등 이와 유사한 반전의 논리는 산상수훈을 비롯하여 여성과 민중과 소외받은 이들을 특별히 돌보신 예수의 복음에 가득 차 있다. 물론 남미 해방신학은 서구사상적인 사회경제적 맥락에서 이것을 ‘가난한 자의 우선권’(preferential option for the poor)이라고 하였지만, 노자는 그것을 훨씬 오래전에 보다 근본적인 ‘음(약함)의 반전 원리’로 천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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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반전의 원리는 또한 복귀(復歸)의 원리와 매우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 “허(虛)의 극치에 도달하고 돈독히 정(靜)을 간직하라. 만물이 다 함께 번성하는데, 나는 그것을 통해 돌아감(復)을 본다. 만물이 번성하나, 결국에는 제각각 뿌리(根)로 돌아간다. 뿌리로 돌아가는 것을 일러 정(靜)이라 하는데, 명을 회복한다(復命)는 말이다. 명을 회복한다는 것은 영원한(常) 것이라 하고, 영원한 것을 아는 것을 명(明)이라 한다.”(16장) 이와 같은 약함과 비움(空虛)의 역설적인 힘은 나아가 무위(無爲)의 원리로 발전된다. 인도 아쉬람에서 여생을 보낸 가톨릭의 베네딕트 수도사 그리피스(1907-93)는 서구인임에도 불구하고 『도덕경』이 서구 종교(특히 기독교)에 주는 중요한 함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도덕경에서 가장 전형적인 개념은 무위, 다시 말해서 “활동 없는 활동”이라는 개념이다. 그것은 수동의 상태, 수용성의 관점에서는 “행위 없음”의 상태이지만, 동시에 전적으로 능동적인 수동이다. 이것이 여성성의 본질이다. 여성은 자신을 수태케 할 씨를 받아들이기 위해 남성과의 관계에서 수동적이 된다. 그러나 이 수동성은 그로부터 모든 생명과 생성적 풍성함이, 모든 삶과 공동체를 양육케 하는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수동성이다. 오늘날 세계는 바로 이러한 여성적 힘의 차원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남성성과 보완적인 관계인데, 그것이 없다면 남성은 지배적이고, 황량해지며, 파괴적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서구 종교가 신의 여성적 측면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는 데까지 이르러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비움의 가치의 역설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지만, 텅 빈 공간 때문에 그릇이 쓸모 있게 된다. 많은 바큇살로 바퀴를 만들지만, 바퀴를 구르게 만드는 것은 그 한가운데 텅 빈 공간이다. 벽돌과 나무로 집을 만들지만, 집에 거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문과 창문들 안에 있는 텅 빈 공간들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이 바로 무위의 가치인 것이다. 간디는 이것을 비폭력(ahimsa)이라고 칭했다.11

도의 이러한 반전(음과 약함)의 논리, 그리고 복귀(비움, 없음)와 무위 사상은 논리적으로는 아리송한 산상수훈을 비롯하여 예수의 생애(수난과 부활을 포함하여), 복음의 교훈들과 본질을 심오하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래서 『도덕경』이 신약성서 복음에 가장 가까운 글이라 한다. 도가 가진 근본 은유로서의 타당성과 핵심적인 사상을 고찰했으니, 다음 글에서는 ‘도-그리스도론’을 보다 구체적으로 구상해보고자 한다.

주(註)
1 해외에서는 Heup Young Kim, “Toward a Christotao: Christ as the Thean-thropocosmic Tao,” Studies in Interreligious Dialogue 10/1 (2000): 5-29; Roman Malek, ed., The Chinese Face of Jesus Christ, Vol.Ⅲ-b (Institut Monumenta Serica and China-Zentrum Sankt Augustin, 2007), 1457-1479; Christ and the Tao (Hong Kong: Christian Conference of Asia, 2003), 155-182; A Theology of Dao (Orbis, 2017), 34-56 등에 수록되었다. 한글로는 김흡영, 「종교연구」 54(2009): 103-130; 『도의 신학 Ⅱ』(동연, 2012), 175-195 등에 게재되었다.
2 M. M Thomas, The Acknowledge Christ for the Indian Renaissance (London: SCM, 1969); R. Panikkar, The Unknown Christ of Hinduism, rev. ed. (Maryknoll: Orbis, 1964).
3 현자 그리스도론에 대해서는 김흡영, 『왕양명과 칼 바르트: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예문서원, 2020)를, 보살 그리스도론에 대해서는 길희성, 『보살예수: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창조적 만남』(현암사, 2004)을 참조하라.
4 Herbert Fingarette, Confucius-The Secular as Sacred (New York: Harper&Row, 1972), 19.
5 Ben Witherington Ⅲ, Jesus the Sage: The Pilgrimage of Wisdom (Minneapolis: Fortress, 1994)을 참조하라.
6 J. Moltmann, The Way of Jesus Christ: Christology in Messianic Dimensions. trans. Margaret Kohl (San Francisco: HarperSanFrancisco, 1990), xv; xⅳ.
7 A. Pieris, Fire and Water: Basic Issues in Asian Buddhism and Christianity (Maryknoll: Orbis, 1996), 특히 138-146을 참조하라.
8 Fritjof Capra, The Tao of Physics:An Exploration of the Parallels Between Modern Physics and Eastern Mysticism, 3rd ed. (Boston: Shambhala, 1991), 11; 또는 프리초프 카프라, 이성범 옮김,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범양사, 2002)을 참조하라.
9 번역 참조. 윤사순, 『퇴계선집』(현암사, 1982), 310.
10 A. C. Graham, Disputers of the Tao: Philosophical Argument in Ancient China (La Salle, IL: Open Court, 1989), 223.
11 Bede Griffiths, selected and introduced, Universal Wisdom: A Journey Through the Sacred Wisdom of the World (San Francisco: HarperSanFrancisco, 1994), 27.


김흡영 | 조직신학을 전공하였다. 강남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아시아신학자협의회 공동대표, 한국조직신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도의 신학, 종교 간 대화, 종교와 과학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과학생명포럼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도의 신학』(Ⅰ,Ⅱ), 『왕양명과 칼 바르트』 등이 있다.

 
 
 

2021년 8월호(통권 7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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