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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나의 박사 논문을 말한다]
문화·신학·목회 (2021년 4월호)

 

  흩어져 있던 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길
  

본문

 

“내한 개신교 선교사 편지(1884-1942)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기반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2019


해방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활동한 개신교 선교사들은 1,500명이 넘는다. 필자의 연구는 그들이 작성한 편지에 관한 것이다. 이 연구를 하게 된 배경에는 세 가지의 의미 있는 ‘만남’이 있었다. 첫째는 우연한 기회에 만난 한 권의 책인데, 미국에 있는 도서관과 보존 기록관에 소장된 중국 기독교 역사와 관련된 1차 자료를 자세하게 소개한 Christianity in China: A Scholar’s Guide to Resources in the Libraries and Archives of the United States라는 책이다. 총 797쪽 분량의 이 도서를 통해 중국 기독교 역사를 담은 방대한 사료의 목록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필자는 그간 문헌정보학 분야에서 일해 왔기 때문에 미국이 역사 기록물 관리의 독보적인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중국 선교 관련 기록물이 이런 수준으로 보존되어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 책을 접하며 한국 기독교 역사와 관련된 1차 자료도 많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만남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내한 선교사를 연구하는 한 연구자가 필자에게 어떤 선교사에 대한 자료를 찾아달라는 도움을 요청했다. 그 연구자는 그 선교사에 대한 자료가 매우 적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으나,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필자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의 한 기관에 예상보다 많은 자료가 보존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셋째 만남은 어떤 선교사님의 ‘조언’이었다. 그분은 현지에서 활동하다가 안식년을 보내던 중이었는데, 당시 필자가 선교사 자료에 관심을 두고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이 분야의 전공자가 되면 어떻겠느냐고 조언하였다. 쉽게 지나쳐 버릴 수도 있었던 한 선교사의 바람이 섞인 조언은 시간이 지나면서 필자의 관심을 붙잡았고 필자의 열정에 불을 지펴주었다.
해방 전에 우리나라에서 활동한 외국인 선교사들이 남긴 편지는 한국 교회사는 물론 한국 근대사 및 세계 선교학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당시 편지는 모든 외국인들이 한국에 합법적으로 체류할 때 사용했던 가장 중요한 소통 수단이었다. 선교사들은 업무상 혹은 개인적으로 수많은 편지를 작성하였다. 이들은 자신을 파송한 소속 교단의 해외선교부나 자신을 후원하는 본국의 교회들에 한국의 선교 상황을 알리기 위해 편지를 썼으며, 고향에 두고 온 부모와 형제, 친구들에게 새로이 정착한 나라에서 겪은 낯선 경험을 알리기 위해서 편지를 썼다. 또한 한국에 설치된 자국 공사관에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서 편지를 썼고, 타 지역에서 근무하는 동료 선교사들에게 팀 사역을 위한 업무적인 편지도 보냈다. 이렇게 다양한 장소에 다양한 이유로 발송된 편지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다수의 편지는 1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소멸되었지만, 그중 상당수는 여전히 개인이나 기관에 의해 보존되어 있다.

| 북미 기록관에 소장된 내한 선교사 편지 현황

필자의 연구는 북미 지역 기관에 보존된 선교사 편지의 전체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 추정하고 이를 보관하고 있는 기관과 보관 형태를 상세하게 조사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 과정은 논문을 쓰기 전에 대부분 이루어졌고, 논문을 쓰기 위해서 면밀하게 재검토하는 시간을 통해 더욱 구체화되었다.
연구의 첫 단계에서는 미국 1차 자료의 종합 목록 데이터베이스인 ‘아카이브그리드’(Archivegrid)를 활용하여 연구 범위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는 ‘컬렉션’을 모두 추려 예비 리스트를 작성했다.[컬렉션은 ‘동일 출처를 갖는 생산자의 업무 활동을 반영한 질서를 갖춘 집합체’를 의미한다. 레코드그룹(record group), 퐁(fonds), 메뉴스크립트 컬렉션, 민간 문서(personal papers) 등으로도 불린다.] 이후 그 컬렉션들을 소장한 미국과 캐나다의 각 기관 들이 온라인을 통해 제공하는 서지 목록을 검토하여, 해방 전 한국에서 활동한 선교사가 작성한 편지의 소장 여부를 일일이 조사했다. 많은 경우 기관의 서지 목록과 검색 도구에서 제공하는 내용이 충분하지 않았고, 정확한 확인을 위해 해당 기관의 정보서비스 담당자(아키비스트, 사서)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이를 확인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또한 미국과 캐나다 동부에 위치한 12개의 기관과 미국 중부와 서부에 각각 1곳 등 총 14개 기관을 직접 방문하여 선교사 편지 원본을 열람하고 사본을 만드는 과정을 거쳤다. 이후 다양한 방법을 추가로 동원하여 논문의 중추인 내한 선교사 편지 컬렉션 목록을 완성하였다. 그 결과, 한국에서 활동한 선교사들의 편지는 총 53개의 기관, 125개의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 분량은 총 2만 통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2019년에 완성된 논문을 책으로 출판하기 위해 2020년에 추가 조사를 실시한 결과, 62개 기관 136개의 컬렉션으로 늘어났다.)

| 내한 선교사 편지의 유형 분석

연구의 다음 단계는 125개에 달하는 편지 컬렉션을 유형별로 분류하는 것이었다. 다량의 편지를 연구 대상으로 삼을 때는 먼저 이를 일정한 유형으로 분류해야 한다. 하지만 2만 통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내한 선교사 편지들을 대충이라도 읽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분석의 한계가 보였다. 그런데 연구 대상은 편지 전체가 아니라 125개의 컬렉션이었기 때문에, 컬렉션의 유형을 분류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무리가 없었고, 학문적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기록학의 관점에서 각 컬렉션은 그 안에 포함된 편지들을 하나로 묶는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특히 컬렉션을 중심으로 편지를 분류하면 편지의 발신인보다는 수취인이 부각되는데, 수취인을 중심으로 편지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은 기록학에서 기록물이 이관 혹은 기증되기 전 에 기록의 동일한 출처의 원칙을 따라 정리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컬렉션은 편지의 출처가 되는 수취인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본 연구의 대상이 되는 편지들은 수취인을 기준으로 크게 두 개의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는 내한 선교사들이 ‘단체’에 보낸 것과 ‘개인’ 에게 보낸 것이다. 전자는 단체의 업무와 활동 과정에서 접수된 기록물
로 그 내용이 공식적이다. 단체는 수취한 기록물들을 그들이 정한 기록 관리 규정에 따라 일정 기간 사무실에 보관하다가, 더 이상 행정적으로 사용하지 않게 되면 폐기 절차를 밟거나 보존 가치가 있는 보존기록물로 선별하여 부속 기록관으로 이관시킨다. 다시 말해 선교사가 단체에 보낸 편지 중 오늘날 현존하는 것들은 단체의 일상적 업무 과정에서 축적된 기록물 묶음 중에서 보존하도록 선택된 것이다. 반면, 후자는 사적인 내용의 편지들이다. 개인에게 보낸 편지가 기록관에 수집되는 가장 보편적인 경로는 수취인 개인에 의해 보존되다가 사망 후 유가족에 의하여 다른 유품과 같이 기록관에 기증되는 것이다. 이후 기증된 여러 물품들은 개인 혹은 가족 이름의 컬렉션으로 보존된다.
필자는 단체가 수취하여 컬렉션으로 보존한 내한 선교사들의 편지를 다시 두 가지 유형으로 세분했다. ‘단체-A’ 유형에는 선교사를 파송한 교단이 수취하여 형성한 컬렉션만 포함시켰고, ‘단체-B’ 유형에는 교단 이외의 단체가 수취하여 형성한 선교사 편지 컬렉션으로 구성하였다. 단체-A 유형은 선교사 편지 컬렉션의 전형이라 할 수 있으며 가장 많은 분량의 편지와 컬렉션이 포함되어 있다.(전체 편지의 절반 이상이다.) 우리나라 개신교 선교는 초창기부터 교단 중심으로 수행되었는데, 그중에 서 북미 지역 5개 주요 개신교 교단(미국북장로교, 미국남장로교, 미국북감리교, 미국남감리교, 캐나다장로교)은 해방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이들 교단의 해외선교부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파송한 선교사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각 교단에는 이런 과정을 통하여 축적된 편지들이 보존되어 컬렉션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 분량은 그야말로 방대하다. 예를 들어 미국장로교단의 기록관 (Presbyterian Historical Society)에는 “United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 Commission on Ecumenical Mission and Relations Secretaries’ Files: Korea Mission(RG140)”이라는 컬렉션이 있는데, 이 한 컬렉션에만 해방 전 내한 선교사들이 작성한 편지가 5,000통이 넘는다.
단체-B 유형의 컬렉션들은 선교사와 관련된 재단, 학교 등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수취된 편지들이며, 현재까지 열 개의 컬렉션이 확인되었다. 단체-A 유형에 비교하면 그 수는 많지 않지만, 이 유형에 속한 편지 중에는 특정한 연구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자료들이 있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 미국자연사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에서는 조선의 민속품과 생활품을 수집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그 당시 제중원에서 근무하던 빈튼(Cadwallader C. Vinton)의 도움을 받았고 그가 박물관 앞으로 보낸 편지 12통이 보존되어 있다. 또한 내한 선교사들이 주한 미국 영사관에 보낸 편지들도 이 유형에 포함된다. 출생, 결혼, 사망 신고, 토지 권리, 출입국 등과 관련된 민원 편지가 많지만, 만세운동이나 105인 사건, 해서교안 등 선교사들이 겪은 다양한 사회적 사건들에 대하여 공사(혹은 영사)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이 포함되어 눈길을 끈다.
단체가 아닌 개인이 수취하여 보관하다가 훗날 기록관에 기증하여 형성된 내한 선교사의 편지 컬렉션은 수취인의 성향에 따라 ‘개인-A’ 유 형, ‘개인-B’ 유형, ‘개인-C’ 유형의 세 가지로 세분했다.
먼저 개인-A 유형은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편지로 선교사들이 가족, 친지에게 쓴 사적인 편지이다. 예를 들어, 콜로라도대학교에 소장된 ‘아처 헐버트 문서’에는 감리교 선교사이며 항일운동가이기도 했던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의 편지 178통이 보존되어 있다. 이 편지들은 호머의 동생인 아처가 수취하여 보관하던 것인데, 아처도 한때 내한해 「독립신문」 영문판 편집자로 1897년부터 1898년까지 활동하였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편지에는 상당히 소상한 내용의 한국 소식이 담겨 있다.
그다음 개인-B 유형은 편지의 원 수취인이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인 경우다. 개인-A 유형에서도 다소 이러한 경향을 보이지만, 개 인-B 유형의 수취인은 주로 사회적 지위가 높고 두드러진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었고, 그런 이유로 그들이 소장한 기록물이 보존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의 다양한 공동체에 관한 기록이 지닌 가치가 주장되기 시작한 20세기 후반 이전에는 미국 기록관의 개인 컬렉션의 기록이 사회의 엘리트 혹은 부유층 쪽으로 편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선교사 들은 편지를 통해 이들에게 당시 한국 사회가 당면한 상황이나 전문적 문제에 대해 자문을 구하거나 선교 상황들을 알리며 조언 혹은 후원을 요청했다. 예를 들어, 평양연합기독병원의 웰스(James H. Wells)가 1896년에 미국에 있던 콜레라의 권위자에게 한국의 콜레라에 관해 질문한 편지가 하버포드대학교에 보존되어 있다. 또한 평양신학교에 큰 기부금을 보낸 것으로 알려진 네티 맥코믹(Netti McCormick)과 그의 딸에게 여러 내한 선교사들이 후원 요청 혹은 감사 편지를 보냈는데, 이 편지들은 위스콘신역사학회에 소장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개인-C 유형은 특이한 과정으로 형성된 컬렉션으로, 선교사의 자녀가 부모의 업적을 남기기 위해 관련된 자료를 폭넓게 수집한 후 그 결과물을 기관에 기증하여 형성된 사례이다. 3개의 컬렉션이 이 유형에 속한다. (1) 평양신학교 교장을 지낸 마펫(Samuel A. Moffett)의 아들이 수집한 것으로, 아버지와 여러 내한 선교사들의 편지 및 기록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컬렉션이 프린스턴신학교에 있다. (2) 숭실대학교 교장 을 지낸 매큔(George S. McCune)의 며느리이자 연희전문학교 부교장을 역임한 아더 베커(Arthur L. Becker)의 딸이 자신의 부모와 시부모의 문서를 소장하고 있다가 하와이대학교에 기증했다. (3) 함흥에서 활동한 선교사 던컨 맥레(Duncan MacRae)의 딸이 그의 부모와 부모의 동료인 캐나다장로교 선교사들의 편지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기록물을 모아서 이를 노바스코샤기록관에 기증했다. 이들 3명의 선교사 자녀들은 모두 한국에서 태어나 성장해서 한국 문화를 잘 안다는 공통점이 있다.

| 내한 선교사 편지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필자의 연구에서 중점을 둔 세 번째 영역은 모든 선교사 편지의 컬렉션을 모아 놓은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기 위한 방법을 제안하는 일이 었다. 선교사 자료를 연구해온 다수의 학자들은 이 자료들이 디지털 아카이브로 구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양의 자료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어 일일이 찾아다니며 연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이들을 한곳에 모아놓은 온라인 디지털 아카이브의 방향과 틀을 제시함으로써 향후 내한 선교사 편지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실제적인 기반을 마련해보고자 하였다. 디지털 인문학 분야가 세계적인 각광을 받게 된 이유는, 이 기법을 통하여 그동안 거의 불가능 해 보이던 계몽주의 시대 유럽 지성인들의 편지에 대한 연구가 큰 진보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21세기 들어서 유럽과 미국에는 같은 시대적 기류를 다루고 있는 ‘방대한 편지’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2009년부터 2018년 사이에 미국과 유럽에서 수행된 6개의 디지털 아카이브 사례를 분석한 후, 앞으로 우리가 구축할 선교사 편지 디지털 아카이브의 모습을 짚어 보았다. 이렇게 찾아낸 원리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효율적인 메타데이터의 구축 및 표준화가 필요하다. 우리가 앞으로 수행할 내한 선교사 편지 전체에 대한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은 오랜 시간 다양한 참여자들에게 의해서 지속적으로 진행될 프로젝트이므로, 명확한 표준화를 통하여 결과물이 호환되게 하는 것이 관건이다. 특히 표준화는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의 초기 단계에서 분명하게 정립되어야 할 원칙이며, 이러한 표준화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의 디지털 아카이브와 자료를 공유할 수 있도록 국제 표준화 규정을 따라야 한다. 특히 내한 선교사 편지는 국내 연구자들뿐 아니라 해외 연구자들도 관심 있게 사용할 자료이기 때문이다.
둘째,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은 한 기관이 담당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러 기관이 자신의 정한 목적에 따라 비슷한 과정을 수행할 것이기 때문에 각 기관이 완성한 결과물은 비슷한 과정을 수행하는 기관들과 공유되어야 하며, 기관 사이의 소통과 교류를 통하여 더 큰 차원을 위한 협조 체제 및 협력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셋째, 디지털 아카이브는 이 분야의 전문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인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전문가와 비전문가 모두 가 자료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여 디지털 아카이브의 장점을 극대화해야 한다.
결론으로, 본 연구는 북미 125개 컬렉션에 보관된 약 2만 통의 내한 개신교 선교사 편지를 한데 묶을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려는 큰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이미 국내의 연구 기관들이 선교사 자료에 대한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일에 참여해왔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현존하는 선교사 편지에 연구자들이 쉽게 접근하여 더욱 많은 연구가 촉진되며, 동시에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어 이 소중한 자료들이 한국교회에 널리 알려질 때가 오기를 소망한다.

한미경 | 미국 UCLA에서 학사(East Asian Studies)와 석사(Library&Information Studies) 학 위를, 숙명여자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LA카운티 공공도서관 과 UCLA 도서관의 사서로 일했으며, 현재 숙명여대와 연세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2021년 4월호(통권 7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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