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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사진이 신학을 만났을 때 06](마지막회)
문화·신학·목회 (2021년 3월호)

 

  신학의 형상
  

본문

 

몇 년 전 캐나다의 한 대학에서 ‘세계 철학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철학적인 사진’ 공모전을 열었다. 50달러라는 약소한 상금까지 걸린 공모전에서 1등으로 선정된 사진은 나비 두 마리가 붙어 있는, 〈정체성〉이라는 제목의 사진이었다.1
만약 신학적인 사진을 찾는 공모전이 열린다면 어떤 작품들이 출품될까? 신학적인 사진을 찾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아예 신학의 형상을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그러나 신학이란 단어가 말씀을 주로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에 형상으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말씀을 형상화한 예는 많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그림으로 그린 예도 적지 않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화폭에 담으려는 사람은 지금도 많다. 하지만 사진의 특성상 이런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는 없다. 다만 사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찾는 역할을 할 수는 있다.
여기서 좀 더 구체적인 신학의 형상 하나를 찾는다면, 필자는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린다. 신학을 형상으로 생각하기도 어렵지만 이를 기도로 생각하기도 쉽지 않다. 신학이 신을 찾는 행위라면 기도로 잘 표현되지만, 근대 이후에 지적인 행위로만 인식되어 온 신학은 기도를 연상시키지 않는다.
만약 신앙의 형상을 찾는다면 ‘기도하는 모습’은 훨씬 더 쉽게 떠올릴 수 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이 바로 기도하는 모습이다. 자신의 신앙을 말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신앙고백은 늘 외워서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또 잘못된 고백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하는 것이기에 교리에 의존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교리적인 고백의 언어는 신앙의 감성과 맞지 않는다. 교리는 기도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역설과 신비에 있다. 논리적인 설명보다 감수성을 승화시킨 예술적인 표현으로 그 역설과 신비에 더 다가갈 수 있다. 그 긴장감이 묵상과 침묵과 기도를 요구한다. 사진은 그런 감성의 신앙을 매개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자신이 발견해 기록한 세상의 한 조각을 공유하는 것으로 자신의 신앙을 표현할 수 있다. 사진을 만드는 과정이 바로 기도일 수도 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발걸음을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빛을 잠시라도 생각해야 한다. 마음을 움직인 세상의 한 조각을 뷰파인더를 통해 다시 보아야 한다. 그 순간은 고요함과 집중을 요구하는 특별한 시간이다. 그 순간을 선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은 때에 따라 기도하는 마음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만들어진 한 장의 사진에 담겨 멈추어진 창조의 한 순간은 묵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물론 모든 사진이 묵상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거나 그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사람들의 삶 속에서 무심한 일상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 같은 사진이 이미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신앙의 공동체는 이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 사진으로 신앙을 실천하는 연습을 권장할 수 있다. 사진으로 은혜를 찾아 찍는다면 은혜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생각하고 상상할 기회가 될 것이다. 만약 카메라로 하나님의 빛을 찾는 연습을 한다면 빛에 대해 감사할 새로운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카메라를 통해 카메라 없이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운다.”는 도로시아 랭의 말은 맞는 말이다.

| 한 미국 신학대학의 사진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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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몸담고 있는 신학대학원은 1960년대 후반에 사진을 신학 커리큘럼에 처음 도입했다. 처음에는 석사 과정의 한 필수과목에서 부분적으로 사진을 다뤘으나, 이후 ‘현상학적 사진’이라는 과목으로 발전했다. 당시 이런 신학적인 실험에 대한 불만도 없지 않았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사진이 신학교육과 무슨 연관이 있느냐 물었고, 찬성하는 쪽에서는 사진을 통해 인간 존재의 삶과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1960년대 미국의 많은 백인 교회들은 대중문화의 전반적인 흐름을 거부하고 젊은이들이 주도하던 반전 민권운동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사진을 옹호한 학생들은 사진을 통해 변화하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같은 시기 시카고에서 자동차로 5시간 거리에 있는 켄터키의 겟세마네 수도원에서는 토마스 머튼이 사진에 심취해 자신이 발견한 세상을 카메라에 담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사진을 통한 묵상이나 영성과 같은 개념이 등장하기 전이었다. 사진비평을 대중화시킨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글이 세상에 나오려면 1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신학대학에서의 사진 수업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고심하다 만든 이름은 ‘현상학적 사진’이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실존주의 신학이 유행하고 있었고, 교계에서는 세속화의 문제가 활발하게 논의되던 때였다. 사진의 해석은 실존주의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얻은 감동에 의존했다. 사진을 통해 타인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고, 특히 그들의 고민과 고통을 나눌 방법을 모색했다. 담당 교수와 학생들은 사진이 타인의 존재와 고통에 주목하게 하고 이를 나의 존재와 책임으로 연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런 인식을 목회에 도입해 이미 사진을 통한 자본주의 소비문화에 익숙해 있는 교인들과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카메라를 들고 세상에 나가 흑백사진을 찍어 와야 했다. 신학의 모든 주제가 막연한 대상이었다. 필름은 학교 암실에서 현상과 인화를 했고, 수업 시간에는 그에 대한 신학적인 비평과 대화가 이루어졌다. 사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당시 시카고에서 활동하던 한 사진작가의 도움을 받았다.
이미 오래되어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이야기를 여기서 꺼내는 이유는 신학교육의 현장에서 사진을 이용해 실험한 예가 있었음을 언급하고 싶고, 이 시대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실험이 교회와 신학교육의 현장에서 가능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실존보다는 영성, 그리고 의미의 소통보다는 신앙의 표현과 같은 개념이 더 부각될 것이다. 그리고 디지털카메라로 인해 그런 실험도 매우 쉬워졌다. 이런 실험이 가능하고 또 필요한 이유는 카메라가 새로운 매체여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도 흔하고 일상적인 기능을 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상 속에서 작용하는 신앙을 표면으로 끌어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게 목회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 사진으로 추구하는 세상의 변화

사진을 통한 묵상과 영적인 성찰이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운동과 연결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있다. 바로 ‘회복적 정의’라는 개념을 발전시켜 한국에서도 익히 알려진 하워드 제어(Howard Zehr) 교수이다. 그는 카메라를 이용해 다양한 묵상과 성찰을 연습하게 만드는 Contemplative Photography(관조적 사진)라는 제목의 작은 책을 썼다.2
사진과 정의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사진이 진실을 말한다고 믿었던 이전 시대에는 그 진실 자체가 정의로운 것으로 보았다. 그 후 다큐멘터리 사진의 전통이 정착하면서 고통과 억압 속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을사진으로 대변하려는 사진가들이 늘어났다. 사진 속 타인의 얼굴에서 자기 자신을 타인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분명히 생긴다. 하워드 제어 자신도 그동안 사진작가와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사진을 통해 약자를 위한 정의를 추구하는 데 관심을 보여왔다. 그러나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발견한, 사진을 통한 묵상과 영성을 추구하는 방식을 전한다. 그리고 사진을 통해 세상이 물질로 이루어진 분석의 대상만이 아니라 직관적이고 영적인 눈으로 보아야 하는 대상임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세상의 평화와 정의를 추구하는 것과 내면의 평화와 영혼의 돌봄이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진을 통해 정의를 추구한 사람은 그 이전에도 있었다. 바로 19세기 미국에서 가장 많은 초상화 사진을 남긴 것으로 알려진 프레드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 1818-95)이다. 그는 노예로 태어났지만 20살 때 자유를 찾아 탈출했으며, 고난의 세월 끝에 유명한 연설가, 작가, 노예제도 철폐를 외치는 운동가가 되었다. 더글러스가 자유인이 된 지 몇 달 후 프랑스에서는 사진의 발명과 함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선포가 있었다.
더글러스는 당시 어느 누구도 보지 못했던 사진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바로 사진이 흑인의 해방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사진에 관한 공개강연을 미국에서 처음 한 사람이 더글러스였을 것이다. 그에게 사진은 진실이었고 또 진보한 세상의 상징이었다. 그에게 인간은 형상을 만드는 존재였다. 과학의 진보로 이제 가난한 노예도 사진을 통해 자신의 형상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큰 역사적 의미가 있었지만 더글러스는 더 혁명적 의미를 찾았다. 바로 사진이 보여주는 흑인의 진정한 모습이 백인들의 차별의식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19세기 중반 미국에서는 노예제도에 대한 찬반논쟁이 거셌다. 모든 매체에서 볼 수 있는 흑인의 모습은 백인들이 만들어낸 것이었는데, 흑인을 비굴하게 풍자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또 흑인이 열등하다는 사실을 사진을 통해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백인도 있었다. 이에 맞서 더글러스는 흑인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자 160회 이상 직접 카메라 앞에 앉았다. 당시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존엄하고 근엄한 인간의 모습을 사진으로 연출하고자 했고, 이를 통해 백인들의 삐뚤어진 시선을 바로잡고자 했다.
그는 인종차별이 미신적인 편견에 의존하고 있으며 산업혁명이 불러온 과학의 시대에는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사진은 그 시대의 상징이었다. 과학의 힘으로 인식의 변화를 불러일으킬 도구였다. 더글러스는 흑인들에게 사진기술을 배워 사진사가 되기를 권했다. 그것이 과학과 해방의 시대에 참여하는 하나의 길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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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은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앞서 신학의 형상에 대한 화두로 이 글을 시작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신학이 예술이 될 수 있는지를 물어보자. 흔히 사람들이 묻는 질문은 사진이 신학적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예술이 신학의 일부가 될 수 있는지, 또는 예술신학이 가능한지 등이다. 하지만 역으로 신학이 예술의 차원에 이를 수 있는지 또는 신학을 예술로 이해할 수 있는지는 묻지 않는다. 신학의 역사에서 그런 질문을 불가능하게 만든 충분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전통적인 이해에 의하면, 예술은 손과 물질을 이용하지만 신학은 그보다 차원이 높은 머리로 이성을 구사하는 행위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신학은 학문 중에서 신학을 최고로 여기던 서양 중세 대학의 산물이라기보다 19세기 근대 대학으로 형성된 제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 잠시 살펴보자.
근대 대학은 자연과학을 학문의 모델로 삼아 생겨난 것이다. 이런 대학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학은 과학적인 근거를 찾아야 했고 또 자체로 과학이 되어야 했다. 신학은 여러 분야로 나뉘었고 엄밀한 연구를 표방하는 학문이 되었다. 신학을 하는 과정을 연구(research)라는 어색한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직신학이란 개념을 등장시켜 신학이 체계적인 학문임을 강조했다. 과학적인 학문은 나름의 독특한 방법론이 있어야 했기에, 방법론도 신학의 용어가 됐다. 찰스 하지(Charles Hodge, 1797-1878)는 19세기 중반 보수 장로교의 정통을 잇는 중요한 신학자였다. 그가 1870년대 출간한 3권의 『조직신학』은 19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조직신학 작품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1권을 시작하면서 신학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과학이라 선언했고, 그 출발은 신학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명확한 방법론을 밝히는 것이라 했다.
이렇게 출발하는 조직신학의 저술은 물론 최근에도 볼 수 있다. 20세기에는 조직신학이 신학 내에서 규범적인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 컸다. 신학과 예술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지만 근대 대학에서는 이런 역사를 거치며 점차 멀어졌다. 이런 인식이 깨지고 개신교 신학에서 예술이 신학의 주제로 등장하게 된 건 20세기 후반의 일이었다. 포스트모던이란 개념이 인문학의 경향으로 등장한 것과도 연관이 있었다.
여기서 신학이 예술이 될 수 있을지를 물은 것은 필자의 정리된 답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는 차원이다. 근대 서구 대학의 유산에 대한 인식과 이를 극복할 의도적인 노력이 신학에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의 신학계는 이에 대한 독자적인 입장과 선택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한때 ‘근대’라는 개념에 대한 비판을 너무 흔하게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가장 근대적인 제도이고 근대성의 표상이었던 대학은 그 비판을 제대로 받지 않고 있다. 그런 비판 가운데 비로소 신학의 예술성에 대한 질문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신학이 어떤 예술을 지향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예술 지상주의(aestheticism)를 지양하고 윤리적인 가치를 지켜낼지도 같이 논의되어야 할 영역으로 보인다.
예술을 지향하는 신학은 어떤 신학일까? 그것은 아마도 모든 종교의 첫 번째 행위가 오늘날 예술적이라 부르는 행위였음을 인정하는 신학일 것이다. 신학의 언어 이전에 상징이 있었고, 상징의 이미지로 종교의 진리가 소통되었다. 초기 기독교에서 그것은 물고기 그림이었고, 십자가 형상이었다. 네 권의 복음서에는 모두 형상이 주어졌다.3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고 신성한 것을 지키는 행위는 먼저 형상을 통해서 이뤄졌다. 그림과 형상이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그나마 형상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종교개혁 시대까지 이어져 왔지만, 이제 예술과 신학의 관계는 새롭게 이해되어야 한다.
신학은 이성적인 작업이고, 예술은 감성적인 것이라는 인식은 지금도 유효한 면이 있지만, 그 차이가 예술의 신학적인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인식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형상의 예술에 대한 고려가 빠진 신학은 온전할 수 없다.”는 독일 신학자 칼 라너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인식의 전환과 더불어 예술을 지향하는 신학은 예술을 다룰 신학적인 언어가 발전되지 못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다행히 폴 틸리히 이후 개신교 신학에서도 이런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다양한 시도 가운데 신학적인 언어로 구성된 교리와 교리의 역사를 예술의 언어로 다시 읽는 작업도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그런 신학이 예술에 대한 신학적인 해석과 평론에 치우치는 경향도 있다. 인간의 감성이 중요하다면 그 감성의 종교적인 표현이 신 앞으로 다가가려는 경건의 심성이고, 그 심성의 대표적인 표현이 기도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근대에 들어 무릎을 꿇고 하는 신학을 잃었다는 독일의 신학자 폰 발타자의 말은 틀린 것이 아니다. 예술을 지향하는 신학은 결국 예술의 과정에서 신학을 하는 방법을 배우는 신학일 것이다. 현실에 대한 끝없는 고뇌, 상상력으로 얻는 창의성, 직관적인 이해 등으로 구성된 신학은 결국 하나님을 지향하는 신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6회로 기획된 연재의 마지막인 이번 글에 “신학의 형상”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개념을 형상으로 생각하는 것이 특히 개신교 신학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지만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형상을 기도로 상상해보았고, 사진으로 찍을 수 있는 가능성도 생각해보았다. 그 밖에도 신학과 신앙을 담을 창의적인 형상은 많을 것이다. 상상력 풍부한 가능성을 다른 매체에 비해 편리하게 실천에 옮길 수 있다는 게 사진의 특별함이다. 연재된 글에서, 일상의 삶 속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이미 그런 실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견지했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첫 행위가 형상으로 그들의 믿음을 표현하는 것이었다면 이를 특별한 발견이라고 할 수 없다.

* 서보명 교수님의 “사진이 신학을 만났을 때”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좋은 글 보내주신 교수 님께 감사드립니다.-편집부

주(註)

1 이 사진과 다른 입선작품은 그 대학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www.rotman.uwo.ca/announcing-photo-contest-winner) 당선작에 대한 필자의 감상은 “누에의 철학과 철학의 형상”이란 제목의 글(「씨알의 소리」, 2018년 3/4월호)에서 밝힌 바 있다.
2 2005년도에 출간된 이 책은 필자가 가끔 가르치는 수업의 교재이기도 하다. 참고로 한국어로 번역된 하워드 제어의 책은 『우리 시대의 회복적 정의』(대장간, 2019),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KAP, 2010) 등이 있다.
3 2세기 이레네우스는 요한복음을 사자로, 누가복음은 소로, 마가복음은 독수리로, 마태복음은 사람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형상화는 이미 기독교 공동체에서 받아들여진 것이고, 이레네우스는 그에 대해서 해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최근까지도 신학자들은 형상과 복음서의 조합을 달리하면서 해석의 작업을 이어왔다.


서보명 | 시카고신학대학원(Chicago Theological Seminary)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신학과 철학, 문화이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대학의 몰락』, 『미국의 묵시록』 등이 있다.

 
 
 

2021년 3월호(통권 7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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