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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나의 박사 논문을 말한다]
문화·신학·목회 (2021년 1월호)

 

  서양 여성 선교사들, 한국 여성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다'
  

본문

 

“Victorian and Confucian Womanhood Viewed by Western Women Missionaries Annie Baird, Ellasue Wagner, Jean Perry, and Lillias Underwood”
(서양 여성 선교사들을 통해 바라본 빅토리아적 여성성과 유교적 여성성: 애니 베어드, 엘라수 와그너, 진 페리, 릴리아스 언더우드를 중심으로)
런던 킹스칼리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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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개신교 선교사들의 한국 사역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서양의 여성 선교사들은 ‘여성을 위한 여성의 사역’(Woman’s Work for Woman)이라는 선교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여성들과 ‘문화적 만남’(cultural encounter)을 갖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특별히 유교적 관습 속에서 실추된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근대적인 여성성을 진작시키기 위해 고안되었다. 주목할 것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서양 여선교사들과 한국 여성들이 모두 여성의 이상적인 역할과 위치는 사적 영역인 가정에 있는 반면, 남성의 역할은 공적인 영역에 있다고 훈육된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소위 ‘빅토리아적 가정적 여성성’(Victorian domestic womanhood)과 ‘유교적 가정적 여성성’(Confucian domestic womanhood)이라 불리는 한계 속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그룹은 모두 이러한 문화적 접촉에 의해 서로 도전을 받았고, 과거보다 더 해방된 삶을 누리며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다. 여선교사들의 경우,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에 와 새로운 문화적 도전에 노출되면서-항상 자의적인 것은 아니었을지라도-어려움을 이겨나가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빅토리아적 여성성에 따른 구속을 벗어나 향상된 여성성을 추구했으며, 자신들의 성(性)에 근거한 경계를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한국 여성들의 경우에도 이러한 문화적 접촉을 통해, 특별히 선교사들과의 만남과 교육을 통해 기존 사회의 구속과 속박으로부터 보다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성을 이뤄가도록 도전을 받았다.
이러한 변화가 있었음에도 그들이 보여준 상당한 변화들은 여선교사들이 기록한 선교적 성격의 ‘문학적 이야기’((literary narrative)1에 잘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관찰된다. 즉 여선교사와 한국 여성들의 문화적 만남을 통해 한국 여성들은 구습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되는 등 매우 괄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지만, 여선교사들의 경우에는 그들 자신의 변화에 관한 서술은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자기성찰의 결여는 여선교사들이 사역하는 과정에서 혹은 그 결과에서 나타난 자신의 변화와 고양된 삶을 반자발적이거나 우연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두 집단의 만남에서 어느 한쪽만의 변화 과정을 강조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만남이라고 보기 어렵다. 문화는 표시적(signifying) 혹은 상징적 활동이기 때문에 모든 형태의 문화는 어떤 의미에서 서로 관계되어 있다. 따라서 한 문화를 객관화하기 위해서는 그 자신과 분리하고 다른 것과 관계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고, 이 과정을 통해야 비로소 새로운 권위구조가 세워질 수 있다.2
여선교사들의 문학적 이야기에서는 이러한 의미 있는 문화적 접촉 과정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왜일까? 아마도 그 이유 중 하나는 두 집단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불균형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균형추 위에서는 한국 여성이라는 집단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주기보다는 영향을 받게 되어, 양측이 진정으로 만나 새로운 권위구조를 세울 가능성이 매우 낮을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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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배경에서 필자의 논문은 문화적 접촉의 결과로서 서양 여선교사들과 한국 여성들의 변화에 기여한 주요 요인을 강조하면서, 그동안 기존 연구에서 자주 가려졌거나 무시된 부분들을 분석함으로써 그 간극을 메우고자 했다. 즉 ‘여성을 위한 여성의 사역’ 프로젝트를 통해 서양 여선교사들이 전통적인 빅토리아적 여성성에 반하는 선교지의 도전적인 환경과 새로운 경험에 직면하여 한국 여성들과의 문화적 접촉을 통해 일어난 그들의 변화에 관심하였다. 서양 여선교사들은 영향을 주는 행위자일 뿐만 아니라, 비록 아주 작을 수 있으나 영향을 받기도 하는 수혜자로서에 대한 연구가 그동안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지적하면서, 서양 여선교사들과 한국 여성들은 선교적 접촉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변화해가는 상호 관계에 있었음을 논증 분석하였다.
필자는 논문에서 서양 여성 선교사로 애니 베어드(1864-1916), 엘라수 와그너(1881-1957), 진 페리(1863-1935), 그리고 릴리아스 언더우드(1851-1921)의 선교사역에 관한 ‘이야기’와 저술을 다루었다. 이들은 모두 한국에서 20년 이상 선교사 혹은 선교사 부인으로 활동하였으며, 선교에 관한 작품을 쓴 저자들이다. 논문에서는 그들의 회고록, 자서전 등 공식 저술뿐만 아니라 공식 저술로 여기지 않아 학계에서 많이 다루어지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와 선교적 성격의 문학작품을 다루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베어드의 Daybreak in Korea: A Tale of Transformation in the Far East(『따라 따라 예수 따라가네』, 1909), 와그너의 Kim Su Bang and Other Stories of Korea(김서방, 그리고 한국의 다른 이야기들, 1909)와 Pokjumie(복점이, 1911), 페리의 The Man in Grey(회색 옷을 입은 남자, 1906)와 Uncle Mac the Missionary(엉클 맥 선교사, 1908), 언더우드의 Fifteen Years among the Topknots or Life in Korea(상투잡이들과 함께 15년, 1904)와 With Tommy Tompkins in Korea(한국에서 토미 톰킨과 함께, 1905) 등을 주자료로 다루었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동시대 한국 여성들의 저술 및 기타 작품들과 함께 연구하는 것이나, 아쉽게도 당시 한국 여성들이 직접 작성한 자료가 매우 드물어 서양 여선교사들의 작품을 주로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동시대의 다른 역사적 자료, 관련 고문헌들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연구가 한쪽으로 치우치는 위험을 줄이고자 노력했다.
연구 방법론적으로 볼 때, ‘문학적 이야기’나 다른 일반 문학작품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공식 자료로 평가받지는 못하더라도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특별히 사회문화적 인류학 연구의 경우, 한 사회의 문화와 사람들에 대한 과학적 연구에서 ‘문학적 이야기’는 아주 중요한 자료로 사용된다.3 물론 사회문화적 인류학 연구는 관습, 가치, 행동에 대해서 관찰하고 과학적 분석을 위해 객관성을 유지하여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에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하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문학적 이야기는 저자의 주관적 세계의 빛 속에서 어떤 것들은 강조되거나, 어떤 것들은 제거되고, 또한 일어나지 않은 사건도 포함할 수 있으므로 상호 완벽한 유추를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즉 문학적 이야기들은 저자의 형이상학적 가치판단에 근거한 주관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으므로, 저자의 관점에 따라 때로는 왜곡될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이 논문의 경우에도, 서양 여선교사들의 문학적 이야기들과 거기에 담긴 경험이 과연 신뢰할 만한 자료인가, 연구 대상으로서 충분히 객관적인가를 결정하기 위한 특정한 기준이 필요하지 않을까를 고민하였다. 그래서 경험에 근거한 서양 여선교사들의 문학적 이야기와 해석이 당대의 한국 역사와 사회적인 상황, 그리고 한국 여성들의 삶에 대한 서술과 모순되는지를 철저하게 살펴보았다. 또한 문학적 이야기와 그 해석이 이러한 검증을 통해 대단히 신빙성 있는 자료로 증명되었다 하더라도, 그 선교사들의 이야기에 드러난 한국 여성들의 삶의 ‘세밀한 데이터’에 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 왜곡될 여지가 없도록 사실성과 객관성을 확인하며 연구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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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제1장에서는 서양 여선교사들과 한국 여성의 문화적 접촉의 배경을 소개하기 위해 논문이 다루는 여성 선교사 저자들의 역사적·신학적 배경과 그들의 생애에 대해서 간략하게 서술하였다. 19세기 후반 영어권 국가(특히 북아메리카와 유럽 등)에서는 프로테스탄트 부흥운동의 일환으로 해외선교가 활발히 일어났는데, 주목할 점은 중산층의 교회 여성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성들의 활동은 ‘빅토리아적 가정적 여성성’의 연속선상에서 여성들의 확대된 역할로 이해되었고, 선교활동의 주요 강조점은 여성의 ‘권리’ 문제라기보다는 ‘봉사, 희생, 헌신’의 문제로 이해되었다.
이것과 연결하여 제2장에서는 여선교사들의 빅토리아적 여성성에 대해, 그리고 조선 시대 여성들의 유교적 여성성에 대해 다루며, 전통적인 유교 사회와 빅토리아 사회에서의 여성의 법적 지위, 재산소유권, 이혼 등 여성의 지위에 대해 살펴보았다. 베어드, 와그너, 페리, 언더우드와 같은 서양 여선교사들은 19세기 근대 사회에서 자란 중류 계층의 여성들이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새로운 부가 창출되는 상황에서 당시 서양 중류 계층은 새로운 이상형과 특성을 추구하게 되었다. 여성들이 가정이라는 분리된 영역에서 전적으로 자신을 헌신하는 ‘가정적 여성성’을 보여준 것은 그 한 예이다. 다시 말해 빅토리아 시대에 여성에게는 가정 내에서 교육과 덕의 중심으로서의 역할이 주어졌으며, 직업을 통해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역할은 가장인 남성에게 주어졌다. 이러한 사회적 기대 속에서 여성의 역할은 가정 내의 사적인 영역으로 제한된 반면, 가정 밖의 공적인 역할은 남성의 몫이었다. 이로 인해 모든 정치적·경제적 권리는 남성에게 주어졌으며, 여성의 법적 지위는 남성과 동등하지 않았다. 여성이 자신의 의견을 가정 밖의 공적인 자리에서 표현하는 것도 일반적으로는 허용되지 않았다.
제3장에서는 ‘여성을 위한 여성의 사역’ 선교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여성들에게 어떠한 삶의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여선교사들의 문학작품 속 주요 여성 인물들을 중심으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그 결과, 여선교사들이 의도한 바에 따라 대부분의 한국 여성들은 괄목할 만하게 변화했고, 선교는 성공적이었다. 개종한 한국 여성 중 일부는 가정적 여성성을 넘어 적극적이고 독립적인 리더십을 보여주는 예도 나타났다. 예를 들어, 페리의 작품에 등장하는 ‘나이 든 한국 여성’(old Korean woman), 와그너의 작품에 등장하는 믿음이(Mittome)의 어머니 ‘마르다’(Martha), 언더우드의 작품에서 시댁 전체를 개종하도록 만든 ‘어린 신부’ 등을 통해 한국 여성들의 강한 리더십과 자율성을 읽을 수 있다.
개종에 따른 한국 여성들의 괄목할 만한 변화는 동시대의 다른 문서에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회보」 1905년 6월 20일 자에서는 ‘리메례’라는 한국 여성에 대해 서술하기를, 그녀는 글을 몰랐고 집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으나, 개종 후 읽고 쓰는 것을 배워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날마다 다른 여성들의 집을 방문하여 그들을 격려하고, 복음 사역을 하는 데 열성을 보였다고 한다.
제4장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원인을 한국 여성 자신들의 역량에서 찾아보려고 하였다. 유교적 전통에서 여성들의 주된 역할은 자신이 속한 가정에서 살림을 잘 꾸려서 가정 경제를 이끌어가는 것이었다. 페리의 작품 The Man in Grey에서 민 씨의 어머니는 가정살림이 어려워져서 먹을 것이 떨어지자 사촌으로부터 돈을 꾸는 등 이 가정의 경제적 상황을 떠안고 있다. 또한 베어드의 〈고영규전〉에서도 고 씨의 부인 보배는 남편이 가정을 떠난 후 아이들을 보살피며 가정 살림을 혼자서 도맡아하다가, 결국 나중에는 감옥에 수감되어 보석금이 필요한 고 씨를 위해 가정의 재산을 처분하는데, 이 모든 일을 다른 남성 친척 등의 도움 없이 혼자서 처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한국 여성들의 경제적 활동과 능력은 기독교로 개종한 후 복음 사역을 하는 데서 리더십으로 연결되었다. 인천의 전도부인으로 행상을 하면서 복음 사역을 함께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백헬렌의 경우도 그러하다. 또한 ‘도르가’라 불리는 한 여인은 예전에 술을 팔던 사람이었으나, 개종 후 행상을 다니면서 각 마을에 복음을 전하는 등 전도부인으로서 성공적인 사역을 하였다.
제5장에서는 여선교사들의 ‘선교적 이야기’와 문학작품에 나타난 서양 여선교사와 한국 여성의 문화적 접촉의 모순을 분석했다. 즉 서양 여선교사들은 옛 유교 관습에 의한 한국 여성의 위상 실추에 맞서 싸운 반면, 모순적이게도 빅토리아적 여성성에 따른 자신들의 위치를 개선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여선교사들은 근대 교육을 통한 한국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애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 사회 안에서, 개종한 한국 여성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즉 여선교사들은 한국의 여성 해방을 위해 애썼지만, 이러한 사역을 한국 여성과 상호 관계 속에서 감당하려고 노력하는 데에서는 좋은 성과를 보여준 것 같지 않다.
이는 아마도 여선교사들이 자신을 수혜자라기보다는 한국의 선교활동을 통해 은혜를 베푸는 사람으로 규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와그너의 작품 Kumokie(금옥이)에 나오는 여성 김 씨(Mrs. Kim)는 양반 계급에 속한 지적이고 세련된 여인이며 교육도 많이 받아 어린 금옥이의 모델이 될 만한 인물이었지만, 와그너는 김 씨를 한국인들의 해방과 변혁을 위한 여성 모델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와그너는 아마도 한국인들 스스로의 노력을 통하여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가능성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거나, 그것을 원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여선교사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평민 계층이며, 양반 가문의 여성이 등장한다고 해도 대부분 부정적 이미지로 나타났음을 주목할 수 있다. 와그너의 작품 〈Mittome〉(믿음이)에 등장하는 양반 여성 ‘나 씨 부인’(Lady Na)의 경우에도 자비가 없는 잔인한 매너로 믿음이를 대하는 인물로 나타나며, Pokjumie(복점이)에 등장하는 양반 가문의 장 씨 부인(Mrs. Chang)은 어린 소녀(‘Ash Girl’)가 부당하게 매를 맞고 거의 죽게 되었는데도 이에 대해 거의 무감각하거나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제6장에서는 한국 여성들과의 문화적 만남을 통한 여선교사들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한국 여성들이 여선교사들을 통해 개종하고 교육을 받아 괄목할 만한 성장과 변혁을 이루었다면, 그들의 변화를 위해 사역한 여선교사들에게도 어떤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또 여선교사들이 예기치 못하게 한국 여성들로부터 배움의 기회를 경험하지는 않았는지 등의 질문을 통해 ‘여성을 위한 여성’ 선교 프로젝트는 여선교사들이 한국 여성들에게 일방적으로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비록 제한적이었지만 그들도 한국 여성들과 문화적 접촉과 교류를 통해 영향을 받았음을 논증·분석하였다.
베어드의 경우, 초기 사역 기간에 구시(Gussie)에게 보낸 1891년 3월 6일 편지에서 한국의 집과 한국 소녀들이 입은 한복, 메주 등의 한국 음식에 대한 거리감 있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1894년 4월 12일 편지에서 그녀는 자신의 집에 고용된 한국인 유모 아마(amah)를 예로 들며 한국 여성들이 낮은 자존감을 나타내며 자기존중이 결여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Annie Baird’s letter to Gussie, April 12, 1894)
그러나 한국 여성들과의 만남과 선교사역을 통해서 베어드는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으며, 자신 역시 같은 여성이자 어머니로서의 공동체적 의식을 나누는 변화를 보였고, 한국 여성들에 대한 이해 또한 넓혀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1900년경 평양에서 시골 여성들을 위한 10일간의 복음사역 훈련이 열렸을 때, 그들을 가르치게 된 베어드는 평양 인근 교회의 여신도들이 비록 가난하지만 시골 여성들을 위해 기꺼이 자기의 것을 나누고 헌신했음을 말하며, 이들을 통해 한국 여성들의 헌신적인 나눔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미국에서 방문한 어떤 여성이 아기에게 즉시 모유를 먹일 수 있도록 한 한국 어머니들의 옷매무새에 대해 모욕적이라고 비난하자, 베어드는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한국 여성의 입장에서 그 상황을 변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Inside Views of Mission Life, 1913, p.49, 19.)
한국에서의 선교사역과 한국 여성들과의 만남은 베어드가 지닌 빅토리아적 여성성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녀의 작품 Daybreak in Korea에 등장하는 선교사의 아내의 모습에서 시사하듯, 그녀는 선교사의 아내로 한국에 왔고, 자신의 모든 능력을 우선적으로 남편의 사역을 돕는 데 사용한다는 점에서 빅토리아적 여성성을 보여주었지만, 한국에서의 사역과 삶은 그러한 모델을 벗어나 적극적인 여성성을 보여준다. 1913년에 The Korea Mission Field에 자신의 생각을 기고하는 당당함을 보인 것도 이러한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당시 이 잡지는 1만 부 이상 발행되어 공적으로 회람되는 권위 있는 잡지였다.)
와그너의 경우, 한국 여성과 관계를 맺는 능력은 그리 두드러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초기 작품 Pokjumie(복점이, 1911)에 묘사된 서양 여선교사의 권위적이면서도 시혜적인 모습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후에는 이러한 면이 많이 개선된 듯하다. 그녀의 후기 작품 Kumokie(금옥이, 1922)에서 등장하는 학교 교사이자 감독자인 여선교사는 전보다는 덜 권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동시에 엄마와 친구로서의 친근한 이미지도 넌지시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녀의 회고록(Korea Calls: Pioneer Days in the Land of Morning Calm, 1948)에서는 무당이었다가 유모로, 나중에 전도부인으로 복음사역을 함께한 한국 여성(Lois Chun)에 대해 “a good speaker”(달변가), “true evangelist”(진정한 전도자)라고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한국에서의 선교사역은 와그너의 빅토리아적 여성성에 대한 이해에 관해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와그너는 결혼을 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기독교 가정의 어머니와 아내가 가진 가정적 여성성을 중시하는 여성관은 그녀의 작품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녀가 교장으로 있었던 호수돈여학교(the Holston Institute)의 교육목표 중 하나인 “성공적인 가정주부”도 바로 그녀의 여성관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독신으로 살며 그러한 표준에 부합된 삶이 아닌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개성의 작은 인삼막사에서 열두 명의 소녀와 함께 학교를 시작하여 호수돈여학교로 발전시킨 일, 고려여자관이나 태화여자관 같은 한국 여성들을 위한 사회적 복음센터(the social evangelical centres for women)를 조직하여 책임자로 일한 것은 분명 빅토리아적 이상적 여성상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선교사역을 하면서 그녀는 서양 사회에서 부과한 성적 구속을 탈피하고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이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자신의 재능을 자유롭게 발전시키고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 결국 와그너는 한국 여성들의 해방을 위해 일했고, 자기 자신도 나름의 방식으로 자기 해방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
페리는 한국 여성들과의 선교사역에 관한 한, 서양인으로서의 자신과 한국 사람들 사이에 동등권이 결여되어 있음을 일찍이 인지했던 것 같다. 실제로 페리는 그의 선교경험에 기반한 작품에서 선교의 수혜자이며 그가 운영하던 고아원에서 일꾼으로 일한 한국인 청년(Chilgoopie)에 대해 다소 우월감 어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우리 선교사들은 우리의 영적 ‘자녀’들의 복지에 웃어른들이 느끼는 것 같은 책임감을 느낀다. 영적으로 우리 모두는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가 속한 나라들 사이에는 큰 심연이 존재하는 듯하다.”(Chilgoopie the Glad, 1906, p.132) 하지만 페리 역시 한국 여성들과 관계하고 만나면서 변화를 겪었는데, 페리의 자서전적 작품에서 제한적이나마 이를 유비적으로 보여준다. 즉 한국인 조력자의 순전한 믿음과 꿋꿋함에 대비해 동료 선교사의 단점을 드러내고(Twenty Years a Korea Missionary, 53-55), 선교사들이 피선교자들에 비해 항상 좋은 행동을 보여준 것은 아니라고 주장함으로써, 페리는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가정을 깨고 선교사도 피선교자들로부터 도전받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또한 페리는 한국 여성들의 헌신과 지속성, 열의 있는 믿음, 무엇보다도 그들의 강한 리더십에 도전을 받은 것 같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페리의 작품들에서 주요인물로 등장하는데, 그들은 여선교사의 사역을 돕는 능력 있고 헌신적인 공동 사역자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The Man in Grey(1906)의 “an old Korean woman”(나이 든 여성), Twenty Years a Korea Missionary(1911)의 “grandmother Shin”(신 할머니), 그리고 Uncle Mac the missionary의 “Grannie” 등이 그렇다.
언더우드의 경우, 한국에 의료선교사로 오기 전, 본국인 미국 시카고여성의과대학에 있을 때 이미 여성, 가난, 교육 등의 문제에 관심을 보였고 이와 관계된 봉사활동에도 참여하였다. 그러던 그가 ‘여성을 위한 여성의 사역’ 선교 프로젝트를 통해 비로소 그러한 문제들의 실제적 현실을 접했고, 결과적으로 그 사역을 통해 개인적인 성장과 변화를 경험
했다.
언더우드와 한국 여성들과의 관계에 대한 견해는 쉽게 도출되지 않을 것 같다. 한편으로 그녀는 특별히 가난하여 교육받을 기회가 없었던 한국 여성들의 비참한 운명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순전하고 진지한 믿음, 지속적인 헌신과 인내, 유능한 사역자가 될 잠재성에 주목하였다.[“Sketches of Some Korean Women”, The Korea Mission Field (April 1906), 105.] 한국 여성과의 만남은 언더우드에게도 도전과 배움의 기회를 주었다. 실제로 그는 성서모임이나 기도모임 같은 사역을 통해 아주 짧은 교육을 받았거나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한 많은 한국 여성들을 만났지만, 열정적이고 능력 있는 기독인 사역자들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았는데, 자신이 그들을 가르치며 돕는 만큼 ‘그들도 나를 가르치며 돕는다.’고 고백하기도 했다.(“Report of Medical and Evangelistic Work by Mrs. H. G. Underwood for 1898”)

나가며

이 논문은 선교사가 선교 대상에게 일방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기존의 시각을 탈피하려 했기 때문에 한국 여성들이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 선교사들이 영향을 받는 상황에 관한 서술은 아주 작은 조각이라도, 때로는 비명시적이라 할지라도 끄집어내려고 시도하였다. 이를 위해 네 명의 서양 여선교사들의 ‘이야기’와 저술을 비롯한 관련 자료에서 그들의 변화에 관한 서술들을 찾고, 다른 한편으로 선교 대상인 한국 여성들의 자율성이나 독립성을 나타내는 서술을 찾아 그 결과들을 기존의 연구에 더해 여선교사들과 한국 여성들의 문화적 만남이 과연 어떠했는가를 더 종합적으로 그려보고자 했다.
앞으로의 연구 과제로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 전통적인 유교 국가로 알려진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서 서양 여선교사들과 그 지역 여성들 간에 이루어진 문화적 접촉이 어떤 모습이었나를 ‘상호 관계’에 바탕을 두고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교회사와 여성사를 비롯한 학계의 여러 분야에 상당한 공헌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주(註)

1 19세기 후반 서양에서 선교 노력의 일환으로 생산된 문학작품을 말한다. 대부분은 여성 선교사들이나 선교사 부인들에 의해 쓰였는데, 주로 선교지에서 직접 경험하거나 관찰한 내용을 근거로 하여 선교지의 사람, 문화, 전통적 종교 등을 다루고 있다. 대부분 기독교 개종에 관한 주제들을 담고 있으며, 주요 독자는 본국의 교회공동체이고, 특별히 후원이나 지지를 요청하기 위해 기록되기도 했다.
2 “The Third Space: Interview with Homi Bhabha,” Identity: Community, Culture, Difference, ed. Jonathan Rutherford (London: Lawrence & Wishart, 1990), 209-210.
3 대표적인 예로 아미타브 고시(Amitav Ghosh)의 In an Antique Land: History in the Guise of a Traveler’s Tale 혹은 티모시 젠킨스(Timothy Jenkins)의 The Life of Property: House, Family and Inheritance in Bearn, South West France를 들 수 있다.



차은희 | 미국 에모리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밴더빌트대학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이수한 후, 영국 킹스칼리지에서 역사신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인천은혜교회 수련목회자 과정 중이다.

 
 
 

2021년 2월호(통권 7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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