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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수도원, 그 현장을 가다 03]
문화·신학·목회 (2021년 1월호)

 

  메테오라 수도원, 공중에 매달린 집
  

본문

 

| 메테오라, 경이로움이 자기 성찰로 이어지는 곳

그리스 중북부 지역의 거대한 바위산 아찔한 꼭대기에는 정교회 수도원 군락지가 있다. 핀도스와 안티카시아 산맥 사이 테살리아 평야 북서쪽에 있는 이곳의 이름은 메테오라이다. ‘공중에 매달린’이라는 뜻의 ‘메테오라’(Μετέωρα)라는 말대로, 수도원들은 마치 공중에 매달려 있는 집처럼 보인다. 어떻게 저 험준한 바위 정상에 수도원을 만들 수 있었는지, 바라보는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낸다. 하나님이 빚은 바위산을 보며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한 번 놀라고, 그 바위산 가장 높은 꼭대기에 기어코 자신만의 거처를 마련한 인간의 끈질긴 노력과 성취에 다시 한 번 놀란다. 왜 메테오라의 수도사들은 저 높은 꼭대기에 올라가 기도하며 수도생활을 했을까? 하늘에 계시다고 믿는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고 싶었던 것일까? 세속에서 철저히 떠나 내면의 욕망을 찌꺼기까지 모두 비워내고 싶어서였을까? 놀라움이 깊은 생각으로 이어지는 곳, 그곳이 바로 메테오라이다.
메테오라에 수도사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9세기부터라고 전해진다. 홀로 수도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은수자들이 자신들에게 적합한 외진 곳을 찾다가 험한 바위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메테오라의 은수자들은 최고 550m의 고지 바위틈에 머물면서, 철저하게 세속과 단절된 고독한 수도생활에 몰두하였다. 초대교회 시기 시리아에서 ‘기둥 위의 성자’라 불리운 시메온(Symeon)은 직경 90cm에 불과한 기둥 위에서 36년을, 소시메온(Symeon the younger)은 68년을 살았다는 교회사의 전승에서 암시를 받아 더 높은 바위산으로 올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들은 하늘을 나는 새 외에는 근접할 수 없는 바위틈에 자신만의 거처를 만들고 극한의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내면의 유혹과 시험과 싸워야만 했다. 나무 사다리와 도르래만이 이들과 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과연 이러한 고행과 고독을 통해 이들이 영혼의 평안과 구원을 얻었을지 내심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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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들어서 은수자들이 머물던 바위산에 수도원이 세워지기 시작했는데, 첫 번째 수도원은 아타나시우스가 세운 대(大)메테오로 수도원이다. 이후 투르크족의 침공을 피해 수도생활에 전념하기 위해 메테오라의 높은 절벽 위로 오르는 수도사들이 늘어나면서, 16세기에는 스물네 개의 수도원이 세워졌고,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은 수도원 군락을 형성하게 되었다. 수도원들이 들어선 바위산의 평균 높이가 300m이고 가장 높은 곳은 550m에 이른다니, 그 꼭대기에 건물을 세운 인간의 의지와 집념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20세기 들어와서 계단이 놓이기 전까지는 초기 은수자들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밧줄과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려야 했다. 이런 불편과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은 이 수도사들에게 신앙이란 어떤 의미였을지 묻지 않을 수 없고, 동시에 우리의 믿음 생활이 넓은 길로 다니며 안락하고 편안한 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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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이 선정한 세계 10대 불가사의 건축물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1988)된 메테오라의 수도원에는 귀중한 필사본과 성화들이 많이 보관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메테오라는 수도생활의 성지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6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부침을 겪어왔지만, 지금도 메테오라의 여섯 개 수도원에서는 수도생활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현재 스테판 수도원과 루사노 수도원은 수녀원으로 운영되고 있고, 나머지 네 군데 수도원에서는 남성 수도사들이 수도생활을 하고 있다. 2015년 통계에 따르면, 메테오라 전체 수도사가 56명이고 그 가운데 남자가 15명, 여자가 41명이다. 오랫동안 금녀의 땅이었던 메테오라에 지금은 남성보다 더 많은 여성이 수도생활에 전념하고 있는 것이다. 1921년 대메테오로 수도원에 들어간 루마니아의 메리 여왕이 메테오라에 발을 디딘 최초의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 메테오라의 수도원들

1) 대메테오로(Great Meteoron) 수도원

대메테오로 수도원은 메테오라의 수도원들 가운데 최초이자 가장 큰 규모의 수도원이다. 기록에 따르면 1340년경 수도사 아타나시우스가 아토스산에서 같이 수도생활을 하던 사람들과 메테오라로 와서, 가장 크고 높고 넓은 바위 위에 이 수도원을 건설하였다. 아타나시우스가 직접 붙였다는 ‘메테오로’(별똥별, μετέωρο)라는 이름으로 인해, 지금 이 지역에 있는 수도원 전체를 그 복수형인 메테오라(μετέωρα) 수도원이라 부르게 되었다.
아타나시우스를 비롯한 14명의 수도사는 먼저 동정녀 마리아를 기념하는 예배당을 세운 다음, 예수 그리스도가 ‘변화산’ 위에서 변모한 사건을 기념하는 교회를 건축하기 시작했다. 수도원 벽에 남아 있는 비문을 보면, 본래의 예수 변모 기념 교회당은 1387-88년 완공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544-45년에 새롭게 건축한 것이다. 예수 변모 기념 교회당이 수도원의 중심이 되는 건물(katholikon)이기에 메테오로 수도원을 ‘예수 변모 수도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1380년 아타나시우스가 죽고 비잔틴제국의 왕족 출신인 요사프(Ioasaph)가 계승자가 되면서 메테오로 수도원의 위상은 더욱 견고해졌다. 요사프는 메테오로 수도원 제2의 건립자로 인정받고 있다. 1540년 10월 정교회의 총대주교인 예레미아스 1세가 메테오로 수도원을 방문함으로써 이곳은 그리스의 아토스 수도원에 버금가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1512년 발라치아의 영주 니고 바사랍(Neagoe Basarab)은 메테오로 수도원의 탑을 건설하고 수도원으로 오르내릴 수 있는 나무 사다리를 기부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수도원으로 오르내릴 때 이용하는 계단은 1922년에야 만들어진 것이다. 1577년에는 수도원 식당이 건축되는데, 둥근 천장에 다섯 개의 기둥과 두 개의 통로를 가진 이 식당은 이후 수도사들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당시 수도원 장상(長上)이었던 시메온(Epirote Superior Symeon)은 수도원 제3의 건립자로 간주된다.
이 외에도 메테오로 수도원에 큰 영향을 남긴 장상으로 두 사람을 꼽을 수 있다. 먼저 파르테니우스 오르피데스(Parthenios Orphides)는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수도원의 음악과 미술과 영성에 큰 영향을 미친 장상으로, 1789년 메테오로 수도원의 콘스탄티누스와 헬레나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폴리카르포스 라미데스(Polykarpos Rammides) 장상은 1882년 메테오라 수도원들의 역사를 처음으로 기술한 학자였다.
600년 이상의 세월을 버텨내며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메테오로 수도원은 1609년 투르크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고, 1633년에는 큰 화재가 발생하는 일도 있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정교회 수도원운동의 요새, 기독교 영성운동의 성채, 수많은 고대 필사본과 소중한 벽화를 지닌 문화와 전통의 요람으로서 그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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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 발라암(St. Varlaam) 수도원

발라암 수도원은 아타나시우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은수자 발라암에 의해 14세기에 시작되었다가 1541-42년 테오파니스와 넥타리우스 형제(Theophanis and Nektarios Apsaras)에 의해 재건된 수도원으로 현재까지 수도사가 머물며 생활하고 있다. 테오파니스와 넥타리우스 형제의 수도원 재건 이야기는 수도원의 문서와 비문에 새겨져 전해진다. 두 형제는 요아니나섬(Ioannina Island) 출신으로 아토스산의 디오니시우스 수도원에서 수도생활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가 1506-07년 ‘세례자 요한 수도원’을 설립하지만 교회와 세속 권력자들의 잇따른 간섭 때문에 어려움을 겪다가 1510-11년 메테오라로 옮겨 정착하였다.
특별히 발라암 수도원은 16세기 말과 17세기 초에 걸쳐 필경사(筆耕士, 글자를 옮겨 적는 사람)와 사본 채식사(彩飾士, 글에 삽화를 넣거나 테두리를 금장이나 은장 등으로 꾸미는 사람)들이 체계적으로 일하던 장소였기에, 이곳에는 아름다운 디자인과 장식을 갖춘 290여 개의 진귀한 필사본이 보관되어 있다. 현재 수도원의 옛 식당 건물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발라암 수도원에 사도 요한의 손가락과 사도 안드레의 어깨 뼈가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3) 거룩한 삼위일체(Holy Trinity) 수도원

우뚝 선 바위 위에 자리 잡은 거룩한 삼위일체 수도원은 그 자체로 바라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절경이다. 과거에는 오직 밧줄로 된 사다리와 옛날 방식으로 만들어진 그물을 통해 수도원에 올라갈 수 있었지만, 1925년 계단이 만들어지면서 방문객들은 훨씬 수월하게 수도원에 다다를 수 있다. 수도원이 언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메테오로 수도원의 기록보관소에 있는 1362년 문서에 거룩한 삼위일체 수도원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거의 동시대에 수도생활이 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주초석(柱礎石)에 새겨진 비문 기록에 따르면, 수도원의 중심 교회당이 세워진 것은 1475-76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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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도원에서 1979년 도난 사건이 발생해 1662년 제작된 그리스도 성화, 1718년 리조스(Rizos)가 그린 동정녀 마리아 성화가 분실되었다. 또 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이콘 장식 조각품도 사라져 지금은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 있다. 삼위일체 수도원은 놀라운 풍광으로 인해 종종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007영화 시리즈 중 로저 무어가 주연한 〈007 For Your Eyes Only〉(1981), 그리스를 배경으로 소피아 로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Boy on a Dolphin〉(1957)에 그 모습이 담겼다. 2012년 제62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소개된 스피로스 스타툴로풀로스(Spiros Stathoulopoulos) 감독의 영화 〈Meteora〉도 삼위일체 수도원을 배경으로 그리스 수도사와 러시아 수녀 사이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4) 성 니콜라스 아나파프사스(St. Nicholas Anapafsas) 수도원

성 니콜라스 수도원은 14세기 중반 좁은 바위 위에서 시작되었다. 수도원의 계단을 오르면 가장 먼저 만나는 건물은 조그마한 안토니우스 채플, 사본과 유물 보관소로 사용되었던 지하실이다. 이 작은 채플이 중요한 이유는 14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들이 벽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음 층으로 올라가면 수도원의 중심인 성 니콜라스 교회당이 나타난다. 그리고 마지막 층에는 다양한 그림(예수를 안고 있는 동정녀 마리아, 부자와 가난한 나사로 비유 등)으로 장식된 식당, 1971년 새롭게 수리한 세례자 요한 채플, 그리고 유골을 보관하는 봉안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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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의 이름에 ‘아나파프사스’(anapafsas)가 붙은 유래는 분명하지 않지만, 14세기에 은자 수도생활을 시작한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어떤 이들은 ‘쉬다’, ‘휴식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아나파보메’(anapavome)와 연결하여, ‘아나파프사스’를 쉼과 재충전을 위한 장소로 해석하기도 한다. 안토니우스 채플에 남겨진 그림의 추정 연대와 메테오로 수도원을 설립한 아타나시우스의 언급을 보면, 니콜라스 수도원도 메테오로 수도원과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수도원은 16세기 초에 대대적으로 수리했고, 현재의 니콜라스 교회당도 이때 재건된 것이다. 교회당의 현관에 해당하는 배랑(拜廊, narthex)에서 본당인 신랑(身廊, nave)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적힌 비문을 보면, 라리사의 주교 디오니시우스(Dionisios)와 스타고이[오늘날 메테오라에 있는 마을 칼라바카(Kalabaka)]의 주교 니카노르(Nikanor)가 이 교회당을 건립했고, 흔히 바타스(Bathas)라고 불리는 크레타 출신의 화가요 수도사인 테오파니스 스트렐리차스(Theophanis Strelitzas)가 1527년 벽화를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니콜라스 교회당이 정사각형 모양이긴 하지만 바닥이 평평하지 못한 것은 수도원이 자리 잡은 바위가 좁고 표면이 고르지 못한 까닭이다.

5) 성 루사노(St. Roussano) 수도원

루사노 수도원은 가파른 바위산 중턱 평평한 곳에 있어서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거대한 바위산의 일부처럼 보인다. 루사노 수도원에서 바라보면 동쪽으로 삼위일체 수도원과 스테판 수도원이, 서쪽으로 발라암 수도원과 메테오로 수도원이 펼쳐진다. 과거에는 범접하기 어려운 곳이었겠지만, 지금은 1930년에 만들어진 계단과 작은 다리를 이용하여 비교적 수월하게 다다를 수 있다. 수도원은 1980년대에 대대적인 개축을 거쳤으며, 지금은 여성들의 수도생활을 위한 수녀원으로 바뀌었다. 루사노라는 이름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630년대의 공식 문헌에 이 이름이 등장한 것으로 보아 바위산에 거주한 최초의 수도사이거나 14-15세기에 최초로 교회당을 설립한 사람의 이름일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남아 있는 여러 문헌의 증언과 증거를 종합해볼 때, 현재 모습의 수도원은 1545년 수도사 요샤프(Ioasaph)와 막시모스(Maximos) 형제가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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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의 중심 교회당은 가운데 돔 지붕을 지닌 십자가 형태로 지어졌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변모 사건을 기념하여 봉헌된 것이다. 동시에 이 교회당은 이 지역에서 특별히 존경받는 4세기의 여성 순교자 성 바르바라(St. Barbara)를 기념하는 건물이기도 해서 ‘성 바르바라 수도원’이라 불리기도 한다. 교회당 벽화를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재림을 준비하는 세례자 요한과 동정녀 마리아〉, 〈낙원에서의 범죄〉 등 독특하고 인상적인 그림들이 보존되어 있다.

6) 성 스테판(St. Stephen) 수도원

스테판 수도원은 메테오라의 수도원 중에 유일하게 계단을 오르지 않고 작은 다리만 건너면 방문할 수 있는 곳이다. 스테판 수도원은 1961년 이후 여성들의 수도 공동체가 되었으며, 현재 메테오라에서 가장 많은 수도자가 영적 활동과 자선 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생동감 넘치는 수도원이다.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한 최초의 인물은 은자 예레미아스(Ieremias)로 여겨진다. 그런데 우리가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분명한 수도원 설립자는 15세기 전반 수도원장 안토니우스(Antonios), 그리고 특별히 16세기 중반 트리칼라 지역의 리조마(Rizoma) 출신 수도사 필로테우스(Filotheo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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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테우스는 1545년 이전에 중심 교회당, 스테판 교회, 수도사들을 위한 방을 만들었다. 수도원의 중심이 되는 교회당의 현관에는 수도원의 설립자인 안토니우스와 필로테우스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현재의 중심 교회당은 암브로시우스(Amvrosios)가 수도원 장상으로 있던 1789년 성 카라람포스(Charalampos) 기념 교회당으로 새롭게 건축된 것이다. 지금도 수도원에는 루마니아 황실 인물인 발라치아의 블라디슬라프(Vladislav)가 기증한 카라람포스의 유해가 보관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메테오라의 다른 수도원들과 비슷하게 스테판 수도원의 중심 교회당도 아토스산에 있는 수도원의 건축 구조와 유사하다. 수도원 이름의 유래가 된 스테판 교회는 본당과 현관이 구별되어 있고 나무 지붕을 갖춘 장방형의 바실리카 양식이다. 현재 옛 수도원 식당을 개조해 박물관을 만들어 진귀한 필사본과 보물과 유물을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 마음에 남은 생각

메테오라를 돌아보면서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였다. 많은 수도사로 하여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산꼭대기에서 또는 바위틈에서 수도생활을 하게 만든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영적인 갈망이었을 것이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하듯이 그들의 영혼은 하나님을 갈망했던 것이다.(시 42:1) 누군가 말했듯이 인간의 영혼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은 세상의 칭찬, 명예, 권력, 돈으로는 결코 채워질 수 없다. 그렇기에 그 오랜 시간 수많은 수도사가 끊임없이 메테오라를 올랐을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에서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해서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 쉴 때까지는 편안하지 못하나이다.”라고 말했듯이, 우리는 하나님과 잇대어질 때에라야 비로소 내면의 평안과 영혼의 안녕을 느끼는 존재이리라!
그런데 산 위의 수도원을 돌아보면서 필자는 오히려 산 아래 동네에서의 영성의 가치와 중요성을 더욱 절감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땅 한복판으로 내려오셨다. ‘변화산’에 함께 머물며 살자는 제자들의 요청을 거절하고 오히려 고통에 허덕이며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오셨다. 하나님과 함께 평안을 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꺼이 다른 사람들에게 평안을 전하는 통로가 되고자 하셨기 때문이리라. 메테오라의 수도사들은 참으로 존경할 만한 믿음의 선배들이지만, 나를 넘어 타인을 살리는 영성, 자신을 넘어 세상을 품고 살리는 영성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개인적 경건을 넘어 사회적 경건을 추구하는 것이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길을 올곧게 따르는 제자의 도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제는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할 때이다.
그럼에도 메테오라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 속도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과 감명을 준다. 누군가가 어떤 일을 참으로 아득한 세월을 인내하며 이어나가면, 그것은 그의 삶이 되고, 전통이 되고, 역사가 된다. 메테오라 수도원은 600년의 인내와 절제와 비움과 순명이 빚어낸 아름다운 역사의 현장이다.


박경수 | 종교개혁사를 전공하였다.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인물로 보는 종교개혁사』, 『스코틀랜드 교회치리서』, 『교회사클래스』, 『종교개혁 핵심톡톡』 외 다수가 있고, 역서로 『츠빙글리의 생애와 사상』, 『스위스 종교개혁』 등이 있다.

 
 
 

2021년 2월호(통권 7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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