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사진이 신학을 만났을 때 04]
문화·신학·목회 (2021년 1월호)

 

  사진의 영성: 토머스 머튼
  

본문

 

오래전 동료 교수에게서 토머스 머튼(Thomas Merton)이 생애 말년에 사진에 심취해 있었고, 그가 찍은 사진이 책으로까지 출판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놀라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미국 켄터키주에 있는 겟세마니 수도원에서 침묵과 명상과 기도 수행을 하면서 50권이 넘는 책을 썼고, 아직도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영성가로 남아 있는 머튼이 40대 후반에 카메라를 들고 찾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수도원 생활 20년, 끝없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영성의 삶을 추구하던 그에게 사진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영성이라는 말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고 사진의 영성이란 표현은 더 생소하던 시절 ‘머튼의 사진’이라는 화두와 같은 말을 들으면서 떠오른 질문들이다.
사진으로 내면의 돌봄과 영성의 실천이 가능하다면, 그 예를 머튼에게서 찾을 수 있다. 머튼이 사진을 통해 찾은 것은 그가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해서 추구하던 것과 다를 수 없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는 것이었고 이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증언하는 것이었다. 최근 사진과 영성을 함께 추구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 곳엔 머튼의 사진이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사진이 특별히 뛰어나서가 아니라, 20세기 역사에서 영성을 설명할 때 토마스 머튼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마음의 눈으로 본 세상을 우리에게 남겼기 때문이다.

| 관조(contemplation)의 의미

토머스 머튼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단어는 콘템플레이션(contemplation)이란 영어 단어이다. 서양의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근대에 와서는 잊혀버린 개념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이를 번역하는 통일된 단어는 없다. 때에 따라 묵상, 심사숙고, 명상, 응시, 관조라는 말로 번역이 되었고, 최근에는 관상이란 번역도 쓰인다. 번역에는 통상적인 합의만 있을 뿐 일치된 의미를 찾을 수는 없다. 이 글에서는 ‘contemplation’을 ‘관조’로 표현하고자 한다.
관조라는 개념이 20세기 후반 서양에 다시 등장하게 된 과정을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아도(Pierre Hadot)는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근대 이전 서양의 사상이 철학적인 삶의 방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그런 삶을 추구하는 방식은 영적인 훈련(spiritual exercise)이었다는 견해를 전개했다. 그 훈련은 걷고 숨 쉬고 명상하고 대화하는 방식을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 진리를 관조하는 상태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철학을 관념과 담론의 논리를 전개하는 것으로 발전시켜온 근대 정신에 대한 비판이었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에게도 영향을 미친 그의 사상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서양철학의 고전적인 의미가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에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도가 관조의 철학적 의미를 기억하게 했다면, 잊혀진 관조의 신학적이고도 신앙적인 의미를 현대인들의 기억 속에 되살린 사람은 토머스 머튼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발전한 관조의 전통은 기독교에서 수도원 전통으로 계승되어 유지되었다. 머튼은 기도와 명상이라는 수련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추구해온 수도원의 관조 전통을 일상의 삶 속에서도 실천이 가능한 현대적인 영성으로 제시했다. 따라서 그에게 신비적인 것은 일상의 한가운데에 있었고, 영적인 삶은 자신에게 맡겨진 삶을 살아야만 추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도와 머튼 이외에도 ‘관조’란 개념이 최근 넓게 알려지도록 공헌한 사람들이 있겠지만, 필자에게는 그 두 사람의 역할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근대라는 시대가 외면하고 잊어버리게 만든 것을 대중에게 기억시켰다는 그 자체로 큰 업적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관조’란 무슨 말이었을까? 콘템플레이션(contemplation)이란 단어는 라틴어에서 나왔지만, 그리스의 원어는 테오리아(theoria)였다. ‘이론’이라 번역되는 단어 테오리(theory)가 거기에서 나왔다. 테오리아의 의미는 ‘본다’는 것이었다. 궁극적으로 하늘과 신을 바라보며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했고, 세상을 알고 지식을 얻는 행위의 근본이 신적인 본질을 바라보고 묵상하는 데 있다는 뜻이었다.
테오리아를 실천한다는 것은 영혼의 눈으로 신적이고 영원한 것들을 묵상하면서 진리를 추구하는 행위였다. 따라서 테오리아는 세상을 이해관계가 아니라 경이로운 것으로 바라보기를 요구했다. 현실적인 쓸모가 없는,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행위였다. 하늘을 쳐다보다 우물에 빠지는 철학자의 실수를 범할 수 있지만, 자신의 이익보다 더 높은 자리에 다가가야만 세상을 알 수 있고 진리를 찾을 수 있다는 믿음에 바탕을 둔 행위였다. 진리를 찾는다는 것은 그와 하나가 된다는 의미였다. 그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영적인 훈련이 필요했다. 침묵과 묵상과 절제를 요구하는 훈련의 필요를 깨닫는 것이 지혜로움이었다.
이런 관조의 이해는 근대의 사상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진리를 관조하고 자기 자신의 참된 모습을 찾는 영적인 훈련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로 대체된 것이다.

| 머튼과 사진1

머튼이 사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63년 존 그리핀(John Howard Griffin)이라는 작가와의 만남 때문이었다. 수도원 생활을 하는 머튼의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해 남기고 싶다는 그의 제안을 수도원에서 받아들여 시작된 인연이다. 자신의 사진을 찍던 그리핀의 카메라에 관심을 보인 머튼은 사진에 대해 잘 모르지만 관심이 크다는 말을 건네면서 두 사람의 오랜 관계가 시작되었다.
수도사의 신분으로 무소유를 실천하며 살던 머튼은 그리핀이 빌려준 캐논 카메라와 렌즈 두 개를 이용해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었다. 머튼은 사진을 찍은 후 필름을 그리핀에게 보냈고, 그리핀은 아들과 함께 자신의 암실에서 현상과 인화를 맡았다. 그리핀은 현상된 필름을 작은 사이즈로 밀착인화2하여 확대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진을 표시해 머튼에게 보내주었다. 사진에 대해 모른다던 머튼은 그리핀이 추천한 것과는 전혀 다른 사진을 표시해 확대를 요청하면서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사진’이라고 써서 보내주곤 했다고 한다.

gisang2101_02.jpg

1968년 아시아 여행 중 태국의 한 호텔에서 전기 사고로 사망한 머튼의 유품 중에는 그리핀이 빌려준 카메라가 있었다. 그 여행은 머튼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여행이었다. 동양의 영성을 배우고자 떠난 여행에서 히말라야도 보았고 달라이 라마도 만났다. 하지만 머튼은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아시아 여행을 끝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다. 뒤늦게 자신의 카메라를 우편으로 돌려받은 그리핀은 그 안에 머튼이 미처 다 찍지 못한 필름이 남아 있음을 발견했다. 머튼이 찍은 마지막 사진이 담겨 있다는 생각에 손이 떨려 필름을 카메라에서 뺄 수 없었던 그는 부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고 전해진다. 그 마지막 필름에는 머튼이 사망하기 직전 방콕의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창밖을 내다보며 찍은 사진도 있다. 그리핀은 자신이 찍은 머튼의 사진과 머튼이 남긴 사진들을 모아 1970년에 책으로 출간했다.3
머튼은 천 몇백 장의 사진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머튼의 사진을 담은 사진집은 그리핀의 책 이후에도 몇 권 더 나왔고, 지난 2020년 11월에도 머튼의 새로운 사진집이 출간됐다. 머튼은 어떤 사진을 찍었을까? 필자가 본 머튼의 사진이 많지는 않지만 단편적인 느낌이나마 적어보고자 한다.
먼저 머튼이 남긴 사진에서 그의 영성을 찾는 건 당연해 보인다. 머튼이 사진으로 보여준 세상은 자신의 눈으로 본 세상이다. 창조된 세상을 은혜의 세상으로 보고자 했고, 그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안에 머물기를 바랐던 머튼의 마음의 눈(엡 1:18)으로 본 세상이다. 여기서 그의 사진은 영성과 관조의 이미지가 된다. 그렇다면 그의 사진은 해석과 분석의 대상이 아니다. 단지 깊은 바라봄 혹은 묵상의 대상이 된다. 그의 사진은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한 것이 아니라, 순간들이 모여 지향하는 영원함을 침묵 속에서 드러내려 한 것이다.
머튼은 석기시대 동굴벽화의 그림을 좋아했다. 머튼은 벽화의 들소를 예술적인 포장이 아니라 현실에서 마주친 생명의 경이로움을 그려내 그 감동을 보게 만든 것이라고 파악했다. 머튼의 사진은 세상을 분석해서 찍은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그가 발견한 것들의 신성함을 경이로운 눈으로 보고 또 본 것이다. 따라서 그의 사진에선 화려한 빛이나 각도로 대상을 보려 하지 않는다. 특별한 것을 찾으려 하지도 않았다. 세상에 특별하고 신성하지 않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그에게 세상을 그렇게 보게 만드는 신기한 도구였다. 그래서 머튼은 카메라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머튼은 사진을 따로 배운 적이 없다. 기대했던 사진이 나오지 않을 때면 그리핀에게 자신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 묻곤 했다. 반면에 마음에 드는 사진이 보면서 ‘자신이 찍은 게 맞는지’ 감탄을 하기도 했다. 주로 흑백사진을 찍었고, 그 대상은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의 사진은 언제나 단순했다. 그 주인공은 사진가 자신이 아니라 사진이 담아낸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머튼의 사진관은 오히려 자신이 대상이 된 사진을 통해서 잘 드러난다. 그리핀의 경우 오랜 기간 머튼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핀은 머튼에게 카메라가 없는 것처럼 평소대로 행동하라고 요구했다. 쉽지 않은 요구였다. 카메라 앞에서 카메라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연기를 하는 상황이 아니면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머튼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 요구에 응했다. 머튼은 자신이 있는 그대로 사진에 찍히길 원했고, 자신의 카메라를 통해서 세상을 그렇게 기록하길 원했다. 머튼은 자신에게 주어지고 보여진 세상의 모습에 감탄하고 또 감사했다.
칼뱅(J. Calvin)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창조된 세상을 직시하고 그곳에 거울처럼 비친 하나님을 관조(contemplate)하라고 권했다. 머튼은 이를 카메라의 거울로 실천한 것일 수도 있다. 만약 관조의 의미가 세상을 바르게 보기 위한 훈련이고, 침묵이나 명상이 이를 위한 방법이라면 그 도구를 사진에서도 찾는 것을 무리라 할 수 없다. 카메라는 결국 세상을 사진 한 장으로 보게 만든다. 멈춘 시간 속에서 침묵하는 사진의 세상은 명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사진이 머튼의 눈을 통해 전해진 것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최근 관조적인 사진(contemplative photography)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 표현은 머튼의 사진을 대상으로 처음 쓰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핀이 1970년 머튼 사진집에서 머튼에겐 카메라가 관조의 도구였다고 쓴 이후 머튼의 사진을 다루는 많은 글에서 그의 사진을 관조적인 사진으로 논하고 있다. 머튼이 세상에 감춰진 신성함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묵상하면서 만든 사진이라는 뜻일 것이다.
머튼이 사진에 대한 전문적인 기술이 없었다는 사실은 그의 예술성과는 다른 문제였다. 예술적인 감수성을 수반하지 않는 영성이 있을 수 없고, 머튼의 영성 저변엔 예술적인 감각이 있었다. 가톨릭으로 개종하기 이전부터 그는 시인이었고 미술에 심취해 있었다. 영국의 19세기 신비적 예술가 윌리엄 블레이크를 주제로 학위 논문까지 썼고, 20세기 미술의 경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수도원에서도 끝없이 다양한 장르의 그림을 그렸고, 사진에 입문하던 시기에는 불교 미술의 영향을 받아 수묵화를 주로 그리고 있었다. 1964년에는 미국의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수묵화 전시회까지 열었다.
머튼은 자신의 사진에 대해 많은 말을 남기지 않았다. 자신의 그림에 대해서도 그랬는데,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예외 상황이 생겼다. 관람객들을 위해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글을 써야 했던 것이다.4
전시된 작품 중에는 마치 선불교의 화두를 담아내듯이 붓을 놀려 그린 추상화 같은 것들이 많았다. 소개문에서 머튼은 자신의 작품을 추상적인 서예라 부르기도 했고, 아예 서예에 미치지 못하는 추상적인 낙서일 뿐이라고도 했다. 자신의 작품을 예술로 보지 말라고 당부했다. 예술이 무엇인가를 되묻는 논쟁적인 작품도 아니라 했다. 개념적인 의미도 찾지 말라고 했다. 단지 경험에 근거하지 않은 흔적이자 표식이고, 자신의 사인(signature)에 불과하다고 썼다. 추상화 작가가 했을 만한 말이긴 하지만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말이다.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반은 머튼에게 변화의 시기였다. 세상을 등진 수도사에서 세상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관심 갖기 시작했다. 그가 문제시한 것은 핵무기나 인종차별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핵무기로 상징되는 냉전과 자본의 상업주의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머튼의 관조적 영성은 그에 대한 대안적인 삶을 제시하고 있었고, 그가 발견한 동양의 예술과 영성은 자신의 생각을 돕는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가 선불교의 수묵화와 같은 그림에 빠진 것은 당시 예술조차도 자본과 생산과 소비와 파괴의 순환 속에서 그 의미를 규명하도록 요구받고 있다는 비판적 인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이유로 머튼은 자신의 그림이 그 체제에 순응하지 않은 낙서로 보이길 바랐다. 그리고 그런 낙서가 자유로움과 새로운 가능성을 예견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머튼은 예술의 문제를 다룬 글도 썼고, 책으로 낼 준비도 했다.5 그는 어떤 예술이 영적인 가치가 있는지, 어떤 예술이 진실되지 못한 것인지에 대해 분명한 판단 기준을 갖고 있었다. 예술적인 취향은 하나님의 선물로 꾸준히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는 위장된 경건함과 위선적인 영성을 내세우는 예술을 경계했다. 예술의 유행을 따르는 행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신성함을 추구하는 예술이 있는 그대로를 재현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분명히 밝혔다. 머튼이 사진에까지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자신의 예술적 취향을 계속 발전시킨 결과로 보아야 한다. 카메라는 그에게 일상 속에 감춰진 신성함을 찾게 만든 도구였다.
머튼은 사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진을 남겼다. 그의 사진에서 영성과 예술에 대한 머튼의 이해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가 추구한 예술과 영성 그 자체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두 사진의 명상

gisang2101_03.jpg

양철벽의 낡고 방치된 창고, 창문 사이로 나뭇가지들이 뻗쳐 나오고 있다. 주인에게도 더 이상 쓸모가 없을 창고로 보인다. 그 내부는 바깥의 모습보다 더 어지럽혀 있을 것이다. 나뭇가지는 누구의 보살핌 없이 그저 햇볕만 좇아 밖으로 나왔다. 양철벽만큼이나 거칠고 정돈되지 않은 나뭇가지다. 하지만 신성한 생명이고, 그 신성함을 다하기 위해 살아 있는 창조물이다.
우리의 시선은 창에 집중된다. 나무에게는 빛과 생명의 통로이지만, 결코 아름답지 않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천사가 반기는 화려한 문이 아님을 기억하게 만든다. 머튼의 사진엔 창과 문이 많이 보인다. 더 성숙한 영성의 자리로 가는 과정을 상징할 수도 있고, 안과 밖을 보이게 연결하는 공간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양철과 창이 만든 수직선도 보인다. 양철을 이은 자리에 가지런하지 못한 못자리가 보인다. 수직으로 뻗어 하늘로 향할 것 같은 선이 한 목수의 망치질로 이어져 있다.

gisang2101_04.jpg

머튼이 지내던 수도원의 은수처 벽에 기댄 탁자 위에 물통이 있다. 수도가 연결되지 않았던 곳이라 머튼이 물을 떠 나르던 통이었을 것이다. 자연만이 창조된 세상의 일부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물건도 그 세상의 일부를 이룬다. 이 물통은 세상에 있게 된 의도대로 묵묵히 거칠고 낡은 형태를 안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둥근 물통의 위엄을 드러내는 것은 물통을 감싸고 있는 선들이다. 나무 탁자의 선, 벽이 만든 선, 일부만 보이는 창문이 만들어낸 선이다. 선들이 드러내는 물통의 위엄은 신성함이다. 머튼은 여기서 성만찬의 제단을 보았을까? 탁자는 성만찬 제단의 심플함을 보인다. 성전의 제단에 놓은 작은 성만찬 컵이 상징적인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면, 머튼의 집 밖 제단에 놓인 것은 컵도 아니고 상징도 아니다. 큰 은혜를 담은 큰 물통이다. 빛을 받아 자신보다 더 큰 그늘을 세상에 드리우고 있는 물통이다.



주(註)

1 이 글에 실린 머튼의 사진은 벨라민대학교(Bellarmine University)의 Merton Legacy Trust and the Thomas Merton Center의 허락을 받았음을 밝힌다.
2 밀착인화는 사진이 어떻게 나올지를 미리 판단하기 위해 한 통의 필름을 한 장으로 모아서 인화하는 것을 말한다.
3 John Howard Griffin, A Hidden Wholeness: The Visual World of Thomas Merton (Boston, Houghton Mifflin, 1970).
4 그 글은 머튼의 책 Raids on the Unspeakable (New York: New Directions, 1966)에 수록되어 있다.
5 종교적 예술에 대한 그의 생각은 1960년에 출간된 저작 Disputed Questions: The Wisdom of the Desert에 수록된 글 “Sacred Art and the Spirituality”에서 찾을 수 있다.


| 서보명 시카고신학대학원(Chicago Theological Seminary)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신학과 철학, 문화이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대학의 몰락』, 『미국의 묵시록』 등이 있다.

 
 
 

2021년 2월호(통권 746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