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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나의 박사 논문을 말한다]
문화·신학·목회 (2020년 12월호)

 

  십계명을 중심으로 중국어 성서와 한국어 성서를 비교하다
  “중(中)·한(韓) 성서 번역의 역사와 십계명(출 20:1–17) 번역의 비교 연구”

본문

 

| 연구 동기와 범위

필자는 중국의 한족(漢族) 출신이며, 쓰촨성(四川省)에 있는 가정교회에서 성장하고 신앙교육을 받았다. 한국에 유학을 온 후 항상 중국어 성서와 한국어 성서를 비교하면서 읽고 있다. 두 나라의 성서 본문을 비교하며 연구하고 설교를 준비하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다. 그런데 간혹 같은 본문의 말씀이 전혀 다른 의미로 번역되어 있음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자세히 살펴볼 때가 있다.
이러한 경험은 필자가 박사 논문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일조하였다. 박사 논문은 십계명을 중심으로 중국어 성서와 한국어 성서를 비교 분석하는 작업이었다. 논문 2장에서는 중국의 기독교 역사와 중국어 성서 번역의 역사를 고찰하였고, 3장에서는 한국어 성서 번역의 역사를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리고 4장에서는 십계명(출 20:1-17)을 중심으로 중국어 성서와 한국어 성서의 번역을 비교하였다. 십계명을 한 계명씩 차례로 주석하는 방법이 아니라, 중국어 성서와 한국어 성서의 번역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연구하였다. 십계명 본문에 대한 중국어와 한국어의 여러 번역본의 서로 다른 단어 사용과 다른 이해를 비교하고자 하였다.
십계명은 중국어 성서와 한국어 성서가 번역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문서선교가 활발하지 않았던 선교 초기에 십계명은 기독교인의 기본 생활규범 내지는 신앙의 총아(寵兒)로서 많은 기독교인의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필자는 중국과 한국의 성서 번역의 역사에서 십계명이 얼마나 유사하게 혹은 다르게 번역되었는지를 다섯 개의 번역본을 선택하여 비교・연구하고자 하였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리고 번역본의 성격이나 번역 원칙에 따라 십계명의 각 계명에서 사용된 단어는 유동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 중국과 조선의 문헌 속에 등장하는 십계명

중국과 한국의 지리적・언어적・문화적 긴밀성은 19세기의 중국어 번역본들이 나중에 진행된 한국어 성서 번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되었다. 즉 한국어 번역본은 중국어 번역본에 상당 부분 의존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어나 한국어로 성서가 완역되기 전에 십계명만을 별도로 번역하여 해설하거나 곡을 붙인 문서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십계명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다.
중국의 기독교와 관련해서 십계명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당나라 시대인 635-638년 경교1 선교사 알로펜(Alopen, 阿羅本)이 저술한 『서청미시소경』(序聽迷詩所經)이다. 이 문서는 크게 ‘신론적 부분–윤리적 부분–예수의 생애’로 나누어져 있는데, 십계명은 여기서 ‘십원’(十願)이라는 형태로 윤리적 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물론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서청미시소경』의 ‘십원’과 구약성서의 십계명은 차이가 많다. 전자는 후자의 계명들을 당시 중국의 유교적이고 불교적인 배경에서 소화하려는 흔적을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전자는 우상숭배 금지 명령과 안식일 계명을 의도적으로 배제시켰는데, 경교가 선교 정책상 문화 수용정책을 취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서청미시소경』의 저자는 구약성서의 십계명의 형식을 빌려 십계명이 강조하는 사회 윤리적인 계명들을 문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선별・발췌하여 편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원나라 시대에 프랑스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사로 파송된 기욤 드 루브룩(Guillaume de Rubrouck, 1220-93)은 기독교를 소개할 때 특히 십계명의 윤리적 계명들을 강조하였는데, 이를 통해 기독교와 불교의 가르침이 유사하다는 점을 드러내려고 하였다. 기욤은 신학적으로 예민한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을 처음부터 요구함으로써 충돌할 가능성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놀랍게도 조선 땅에서도 십계명은 중요한 선교적 도구로 활용되었다. 십계명에 관한 해설서가 한문으로 출판되자, 그 책은 조선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조선 땅에 전래된 『조전천주십계』(祖傳天主十誡)는 십계명의 형식을 따르고 핵심적인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문자적인 직역을 피하고 현지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비교적 쉽게 설명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제2계명이 삭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는 신상들을 섬기는 것이 오랫동안 일상화되었기 때문에 문화적인 충돌을 피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제2계명의 삭제는 선교 현지 문화와의 불가피한 타협이자 현실적인 대안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학적으로 매우 위험한 창조적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의 실학자들은 중국을 통해 서양 학문을 받아들이고자 하였는데, 허균이 중국에서 가져온 『게12장』(偈十二章)에는 ‘천주십계’라는 제목의 십계명이 들어 있었다. 이를 통해 중국과 조선에 기독교가 전래되는 과정에서 십계명이 기독교인들의 윤리 규범을 담고 있는 필수적인 계명으로 제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642년에 출판된 가톨릭의 교리서 『천주성교십계직전』(天主聖敎十誡直詮)은 십계명에 대한 본격적인 해설서이다. 책의 저자인 예수회 소속의 중국 선교사 엠마누엘 디아즈(Emmanuel Diaz, 陽瑪諾, 1574-1659)는 십계명의 각 계명을 신학적인 측면과 유교 문화적 측면에서 상세히 해설하였는데, 간결하고 우아한 문체로 인해 지식인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중국에서 활동한 예수회 선교사 샬 폰 벨(Johann Adam Schall von Bell, 湯若望, 1592-1666) 신부가 저술한 『주교연기』(主敎緣起)는 유교의 오륜(五倫)을 십계명과 동일시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가톨릭이 유교를 보완하는 종교임을 주창하였다.
정약전(丁若銓)·권상학(權相學)·이총억(李寵億) 등 3인이 합작한 천주가사(天主歌辭) <십계명가>(十誡命歌)는 4·4조의 운율로 되어 있어, 처음부터 한글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십계명가>는 구약성서의 십계명을 당시 조선의 사회 현실에 비추어 노래한다. 천주가사의 효시(嚆矢)이며 종교적인 포교가사(布敎歌辭)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쉽고 대중적인 표현을 사용한 서민적인 노래이며, 언문일치(言文一致)의 선구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1801년의 신유사옥(辛酉邪獄) 때 압수된 가톨릭 서적 가운데 『텬쥬십계』(天主十誡)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이름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중국에서 예수회 선교사들이 간행한 가톨릭 서적들 중에는 ‘천주십계’ 혹은 ‘십계’로 된 책 제목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801년 당시 조선의 가톨릭 교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텬쥬십계』는 중국에서 한문으로 간행된 신앙서적의 번역본이라기보다는 조선의 어느 가톨릭 교인에 의해 처음부터 한글로 저술된 독자적인 신앙서적일 가능성이 높다.
이 책은 각 계명에 대한 신학적인 설명을 배제한 채 일상생활에서 계명들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살피고 죄의 유형을 열거한다. 『텬쥬십계』는 먼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논하는 계명들에 속하는 1-3계명을 순서대로 소개한다. 이것을 ‘상삼계’(上三誡)라고 부른다. 다음으로 인간 상호 간의 관계로서 인간의 생명과 부부 간의 신의, 재산과 증언의 중요성을 밝혀주는 계명들인 4-10계명을 해설한다. 이것을 ‘하칠계’(下七誡)라고 부른다. 그리고 각 계명의 내용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기독교의 윤리관을 천명함과 동시에 윤리덕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위반할 경우에 가져야 할 죄의식을 일깨워준다.
박해를 받던 조선시대에 십계명은 신자들의 실천적 신앙생활의 중심으로, 윤리 도덕의 절대 기준을 제시하는 계명이었다. 박해의 시대에 신자들이 십계명을 고백하고 지키면서 순교를 당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처럼 십계명은 신앙의 축약된 고백이었고, 십계명의 실천은 생명과도 바꿀 수 있었던 신앙의 거룩한 족적을 상징하였다.

| 중국어 성서와 한국어 성서의 십계명 본문 비교

필자는 십계명 본문의 비교 연구를 위해 총 다섯 가지 번역본을 선택하였다. 중국어 역본으로는 「화합본」(和合本), 「사고역본」(思高譯本), 「현대중문역본」(現代中文譯本)을, 한국어 역본으로는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을 선택하였다.2 다섯 개의 역본으로 한정한 이유가 있다. 「화합본」은 일반 대중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문리체로 되어 있으며, 중국교회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었기에 권위가 있는 역본이다. 「사고역본」은 가톨릭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역본인데, 성서 원문을 좀 더 충실히 따르면서 성서학의 연구 결과도 반영하고 있다. 「현대중문역본」은 ‘내용의 동등성’ 이론에 근거한 번역본으로 가장 최근(1995)에 나온 역본이며, 「화합본」의 오역을 수정하고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참고하면서 원문의 뜻을 충실하게 전달하고자 노력하였다. 「개역개정」은 형식적 일치 번역(formal correspondence translation)에 근거한 역본으로 오늘날 한국교회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표준새번역」은 내용동등성 번역(functional equivalence translation)에 근거한 「공동번역」 성서의 문제점을 해소함과 동시에 「개역한글」을 개선하고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되 쉬운 현대어로 번역한 성서라고 볼 수 있다.
십계명(출 20:1-17) 번역과 관련하여 가장 논쟁적인 주제는 ‘하나님의 칭호’ 문제이다. 중국어 성서 번역의 역사는 당나라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하나님’은 ‘원존’(元尊), ‘진주’(真主), ‘아라가’(阿罗诃) 등으로 매우 다양하게 번역되었으며, 나중에는 ‘두사’(陡斯), ‘천주’(天主), ‘천제’(上帝), ‘천’(天), ‘주’(主), ‘신’(神)으로도 번역되었다. 중국 가톨릭은 1707년에 하나님을 ‘천주’로 부르기로 최종 결정하였고, 중국 개신교는 1919년에 ‘신’ 혹은 ‘상제’로 부르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십계명의 서언(출 20:2)에서 「현대중문역본」은 하나님을 ‘상제’(上帝)로 번역한 것이다. 「사고역본」은 「현대중문역본」의 ‘상제’(上帝)를 ‘천주’(天主)로 바꿔서 번역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개역개정」과 「화합본」 둘 다 하나님을 ‘여호와’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개정개역」이 「화합본」의 ‘여호와’(耶和华)를 그대로 참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각 역본이 사용한 하나님 칭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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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번역본을 비교한 결과, 하나님과 관련된 1-4계명에서는 미묘한 차이점이 많이 보이는 반면, 인간과 관련된 5-10계명에서는 두드러진 차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1-4계명은 비교적 긴 문장인 데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중요한 신학적 개념들에 대한 이해와 각 번역본이 가지는 신학적 경향이 다르기에, 십계명의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었다.
제1계명을 히브리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너는 내 앞에 다른 신들을 있게 하지 말라.” 이 요구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요구인데, 배타적으로 오직 야웨만을 섬기라는 절대명령에 해당된다. 히브리어 ‘알-파나야’(y:n"P'-l[;)를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표준새번역」이 번역한 것처럼 ‘내 앞에서’라는 뜻이다. 여러 한국어 번역본 중에서 원문의 의미를 가장 잘 살려냈다고 볼 수 있다. 나머지 번역본들은 모두 ‘나 외에는’(我以外)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이는 그 본래적 의미를 크게 왜곡시키는 것이다. ‘내 앞에서’라는 번역은 문자적으로 보면 ‘내 얼굴 앞에서’ 혹은 ‘나와 마주서서’가 된다. 이러한 표현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곳, 즉 이스라엘이 드리는 모든 종류의 제의에서 다른 신들이 존재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 「개역개정」은 다른 중국어 역본들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제1계명에서 한국어 역본들은 중국어 역본들보다 훨씬 더 강한 어조로 일체의 어떤 다른 신도 섬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다. 세 개의 중국어 역본은 ‘다른 신’(혹은 ‘다른 신명’)이라고 단수형을 사용한 반면, 두 개의 한국어 역본은 ‘다른 신들’이라는 복수형을 사용하였다.(복수형을 사용한 한국어 역본들이 히브리어 원문의 뜻에 훨씬 더 가깝다.) 「화합본」과 「사고역본」은 ‘신들’(神们)이라는 표현 대신에 ‘신’(神)이라고만 번역했는데, 특이한 것은 「현대중문역본」이 ‘신’(神) 대신에 ‘신명’(神明)으로 번역했다는 점이다. ‘신명’(神明)은 하늘과 땅의 모든 신령을 말하는 단어인데, 그렇다면 샤머니즘 세계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잡신을 총칭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차이점은 중국과 한국의 문화 내지는 양국의 민족성과도 깊이 관련된다고 말할 수 있다. 거대한 대륙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이질적인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이라는 나라의 특성과 오랫동안 단일민족으로 살아온 한국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배경이 제1계명 문장에서 나타난 유연성과 단호함의 차이를 결정하게 되었을 것이다.
제4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는 긍정 명령으로 시작한다. 본문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두 가지 행동강령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안식일을 소극적으로 지키는 것이다.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방법이다.(출 20:10) 안식일에 아무런 노동을 하지 않고 노동으로부터 완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둘째는 안식일을 적극적으로 지키는 것이다. 안식일이 오기 전 6일 동안 힘써 모든 일을 행하는 방법이다.(출 20:9) 6일 동안의 노동과 업무에 충실한다면, 안식일은 6일 동안의 일의 완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8절의 히브리어 ‘자코르’(rAkz")를 중국어 역본들이 서로 다르게 번역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단어는 강조 명령형으로 사용되는데, 언약에 대한 의무를 말하는 문맥에서는 항상 ‘착오 없이 지키다,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우선적으로 지키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화합본」은 이 단어를 ‘기념(记念)하다’로, 「사고역본」은 ‘기억하다’로, 그리고 「현대중문역본」은 ‘엄수(谨守)하다’로 각각 번역하였으며,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은 「사고역본」과 같이 ‘기억하다’를 쓴다. 히브리어 동사 ‘자카르’(rk;z")는 원래 ‘기억하다’의 의미를 강하게 내포한다. ‘기억하다’는 사전적 의미로 볼 때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내다.’라는 뜻이다. 물론 ‘자카르’에는 ‘기념하다’의 의미도 있다. ‘기념하다’는 ‘어떤 뜻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하다.’라는 의미이다. ‘기억하다’와 ‘기념하다’는 공통적으로 안식일을 잊지 않기 위해 마음속 깊은 곳에 그날을 간직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현대중문역본」은 이를 ‘엄수(谨守)하다’로 번역했는데, 이 단어는 ‘명령이나 약속 따위를 어김없이 지킨다.’라는 뜻이다. 그렇게 볼 때 「현대중문역본」에서는 안식일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이상을 요구한 것인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나가면서

성서 번역은 모험이며, 일종의 반역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선교지의 언어로 성서를 번역할 때,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의미의 굴절 내지는 변화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 의미의 굴절과 변화는 번역된 성서를 읽는 독자에게 경전에 대한 권위와 신뢰의 문제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번역 과정에서 완벽한 대응어를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 문화와 시대에 적합한 최선의 대응어를 찾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된 성서가 중국어나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원래의 언어와 번역될 언어 사이의 차이는 올바른 의미 전달을 방해하기에 때로는 약간의 첨가나 삭제, 변경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십계명 번역에서 다섯 개의 중국어와 한국어 번역본이 보여준 일치점과 차이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더 나아가 중국어 역본들과 한국어 역본들이 가진 신학적 견해의 차이는 서로 다른 대응어를 사용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각 시대적 상황에서 적합한 대응어를 찾기 위한 노력은 필자가 비교한 다섯 번역본의 번역자들이나 성서번역위원회에서 끊임없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불가능의 가능성을 찾기 위한 이러한 노력은 앞으로도 성서가 번역될 때마다 지속되어야 한다.


주(註)

1 기독교를 ‘경교’(景敎)라고 부른 것은 다른 종교들과의 타협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로 인하여 기독교의 본질은 크게 훼손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경’(景)은 ‘광명’(光明)을 뜻하는데, 이 단어는 천요교(天仸敎)의 태양숭배, 유교의 천(天), 불교의 광명(光明), 무당교의 천체 숭배와 관련된다. 기독교를 ‘경교’라고 부르면 당시 당나라 황실에서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성직자를 경사(景師), 교회를 경사(景寺), 성도를 경도(景徒)라고 칭했다.
2 출애굽기 34장 28절의 ‘열 마디 말씀’을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은 ‘십계명’으로 번역한 반면, 중국의 「화합본」은 ‘十条诫’(십조계)로, 「현대중문역본」은 ‘十条诫命’(십조계명)으로, 「사고역본」은 ‘十句话’(십구화, 열 마디 말씀)로 각각 다르게 명명하고 있다.



이효림 | 목원대학교 대학원에서 중(中)·한(韓) 성서 번역의 역사와 십계명(출 20:1-17) 번역의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Ph.D.)를 취득하였다. 연구 논문으로 “20세기 이전 중국어 성서번역의 역사와 의의” 등이 있다. 현재 목원대학교 대학원에서 SIG(Stokes International Graduate School) 프로그램 상담교수로 일하고 있다.

 
 
 

2020년 12월호(통권 7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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