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사진이 신학을 만났을 때 03]
문화·신학·목회 (2020년 12월호)

 

  사진과 죽음
  

본문

 

사진이 죽음과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은 사진에 관한 이론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상징적인 죽음도, 실제 죽음도 이론의 일부가 된다. 죽음은 기독교 신학과 신앙의 근거다. 사진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를 죽음을 매개로 추구할 근거가 여기서 생긴다. 지난 호에서 언급한 심령 사진과 연결해 말하자면, 사진은 그 역사 초기부터 기억, 추억, 그리고 추모의 도구였다. 사진은 죽음을 생각하고, 위로하고, 또 준비하게도 만든다. 만약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철학이 죽음을 준비하는 연습이라면, 이 시대에는 그 연습을 사진을 통해서 할 수도 있다. 그 연습의 의미가 신앙의 차원에서 조명된다면 사진으로 드러낼 수 있는 영성은 더 구체적이게 된다.
여기서 잠시 우회하여 죽음에 관한 신학을 대하는 필자의 느낌을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죽음을 깊이 이해하려 추구하려는 학문적 작업은 20세기 중반 이후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철학에서는 하이데거의 ‘죽음으로 이르는 존재에 대한 분석’이 큰 영향을 미쳤고, 그에 대한 비판적 입장이 레비나스의 ‘타인의 죽음에 대한 분석’으로 이어졌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죽음에 대한 병리학적인 이해가 만연해지고, 죽음이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취급되는 현상에 대한 이반 일리치와 같은 사람의 신랄한 비판이 큰 공감을 일으켰다. 그리고 현대의 죽음 이해가 이전 시대에 비해 천박한 것이라는 필립 아리에스의 역사적인 고찰은 많은 후속 연구를 유발했다.1 죽음에 대한 서구 사회의 이해를 심화시킨 이런 연구들은 주로 신학 밖에서 이뤄졌다.
죽음의 현상에 대한 임상 연구로 잘 알려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의사였다. 1960년대 중반 필자가 재직하는 신학대학의 학생 4명이 그녀를 찾아가 임종을 앞둔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싶다는 목회 차원의 제안을 했고, 그것이 동기가 되어 퀴블러 로스는 본격적인 임상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죽음의 5단계’라는, 한때 유명했던 이론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2
최근에 죽음을 신학의 중심 주제로 다루는 저술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기존에 진행된 타 학문의 연구에 의존하거나 죽음에 대한 교리적 입장을 재확인하는 정도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신학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시작된 학문이었고, 죽음은 언제나 그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죽음의 문제가 그리스도의 부활로 이미 해결되었다고 인식한 결과, 죽음을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아야 할 삶의 문제’가 아닌 신앙의 문제 혹은 죄와 사망과 부활에 대한 교리의 문제로만 파악하는 경향이 생겼다. 죽음은 극복해야 할 대상만이 아니라 삶의 본질적인 문제라고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 죽음을 보게 만드는 사진

사진은 왜 죽음을 연상시킬까? 먼저 시간을 생각해보자. 사진은 시간이 한순간 멈춘 모습을 평면에 담는다. 그 시간은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현재의 시간이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과거의 시간이다. 지나간 시간이 남기는 것은 결국 죽음이다. 그래서 시간의 흐름을 멈추게 만들어 사진 속의 인물을 화석과 같이 평면에 고착시켜 버린 사진에서 우리는 죽음을 읽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진이 죽은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에 카메라 앞에서 웃음을 강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1970년대 사진 이론을 대중화시킨 수잔 손택(Susan Sontag, 1933-2004)은 누군가의 사진을 찍는 것을 그 사람의 죽음에 참여하는 행위라 말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500년 전에 그린 모나리자를 보면서 그 주인공이 죽었을 것이란 생각을 먼저 떠올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빛바랜 인물 사진 한 장을 바라보면, 그 사람이 아직 생존해 있을까를 필연적으로 묻게 된다.
또 사진 앞에서는 누군가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지나간 과거의 시간이 죽은 시간이라면 사진의 시간은 언제나 죽은 시간이 된다. 그렇다면 그 사진을 마주하고 있는 나 자신은 살아남은 자가 된다. 수잔 손택은 사진을 ‘모멘토 모리’(Memento Mori)라 부르기도 했다. 사진이 ‘나의 죽음’을 상기시킨다는 말이다. 프랑스의 이론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80)는 사진의 본질이 죽음에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 이유는 매우 평범했다. 모든 사진은 단지 ‘지나간’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미 지나간 것의 미래는 결국 죽음이고, 그 사진에서 내가 목격하는 것은 “죽음의 귀환”(the return of the dead)이다. 만약 그의 이런 주장이 너무 형이상학적이라면, 미국의 유명한 사진가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의 다소 완화된 표현을 들을 수 있다. “모든 사진은 나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진 속의 타인이 결코 나일 수는 없지만, 다만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게 되고. 내 존재를 묻는 질문을 듣게 된다는 의미다.

gisang202012_p1.jpg
공원묘지는 19세기 중반에 사람들이 죽음을 묵상하며 평화롭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이 사진은 오랜 역사를 지닌, 시카고 교외의 한 묘지에서 필자가 찍은 것이다.

| 이청준의 소설과 사진

손택과 바르트와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 사진의 본질을 죽음의 문제로 탐구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소설가 이청준이다. 그는 1980년대 초반의 작품인 <시간의 문>과 <여름의 추상> 등에서 죽음과 사진의 문제를 다뤘다.3 이청준은 이 작품들을 ‘죽음의 그림자’를 쫓아다니며 쓴 글이라 했다. <시간의 문>의 주인공은 현재의 시간에 갇혀 있지 않은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정지된 시간밖에 찍지 못하는 카메라의 한계에 좌절한다. 그러다 사진이 현재의 시간을 화석으로 만들지 않고 미래로 움직이는 살아 있는 시간을 찍어 다큐멘터리적인 사진 이해를 극복할 방법을 찾았다. 그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촬영한 순서가 아니라 필름을 현상한 순서대로 기록하고 정리하면서 시간의 순서를 바꾸려는 시도도 한다. 소설은 주인공의 실종과 죽음에 대한 소문으로 시작해서, 그의 마지막 뒷모습이 찍힌 사진 한 장에 대한 추론으로 끝난다.
카메라가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는 <여름의 추상>에서 더 잘 드러난다. <여름의 추상>의 주인공인 소설가는 카메라를 피해 도피 중이다. 고향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전보가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들었지만 곧바로 고향으로 향하지 못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사진을 찍어 잡지에 싣겠다는 사람의 카메라 앞에 서기가 죽기만큼이나 싫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너를 기어코 찍고 말겠다. 너를 언제든 카메라의 렌즈 앞에 세우고 말겠다. 그 일방적인 강압, 누구누구의 표정, 아무개 아무개의 하루 일과… 그 작위적인 독선과 독단. 카메라의 조작은 언제나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관찰할 뿐이다. 우리의 얼굴 위의 작은 것들을 세상에 드러내 폭로하고 싶어 한다. 발가벗겨서 네거리 한가운데다 내세우고 싶어 한다. 그것은 결국 우리를 지배하고 조작하고 변형시키고 싶어 한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 앞에 마음에도 없는 웃음을 강요당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얼마나 뻣뻣하게 긴장시키곤 하는가. 웃으세요. 웃으세요- 김치이. 여기 보고 웃으세요. 치이즈으.4
이 관찰은 카메라를 피할 수 없는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에게는 카메라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지 않은 이유였다. 도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경비원에게서 자신의 사망을 알리는 전보가 왔었다는 얘기를 듣는다. 카메라의 그림자를 피해 다니던 그는 이제 자신이 유령이 아닌지 의심한다. 그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를 받고 사진 촬영에 응하면 사진에 찍힌 모습을 통해 자신의 생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망설인다. ‘아직 그럴 수 없는 일’이라며, 카메라를 인정해 자신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을 거부한다.
이청준의 두 소설이 사진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고찰로 주목받지는 않지만, 사진을 다룬 세상의 그 어떤 소설보다 깊은 관찰력을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위에서 인용한 <여름의 추상>의 내용은 롤랑 바르트의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카메라 렌즈 앞에서 포즈를 취해야 하는 괴로운 상황을 ‘내가 나를 모방해야’ 하는 상황으로 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 카메라에 보여주고 싶은 나의 모습, 사진사가 원하는 나의 모습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결국 주체도 아니고 객체도 아닌 유령의 이미지로 사진에 남게 된다는 뜻이다. 이청준과 바르트는 카메라 렌즈 앞에서 겪는 그런 경험을 죽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 포스트모템(postmortem) 사진

19세기 중반 서양에서는 죽은 사람의 사진을 찍어 남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혼령 사진과 같은 시기에 등장한 이런 사진은 사후(postmortem) 사진이라 불리기도 한다. 고인의 영혼을 사진으로 찍어 남겨진 가족을 위로할 수 있다는 믿음이 혼령 사진을 만들어냈다면, 사후 사진은 죽은 가족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은 욕구가 만들어냈다. 엄마가 죽은 자식을 안고 있는 사진, 죽은 아이를 옆에 두고 가족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보이고, 남겨진 동생이 죽은 형의 손을 붙잡고 있는 애잔한 사진도 보인다.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찍은 가족사진이었을 것이다. 마치 살아서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분장을 하고 찍은 사진에서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신념을 읽게 된다. 부활에 대한 소망을 확인하고 기억하자는 의지로도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에는 그런 사진이 혐오스럽고 잔인하고 또 위생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서구 사회가 세속화되면서 부활을 믿는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에서 멀어진 결과로 볼 수도 있다. 서구 사회의 세속화는 가치중립적인 입장이 아니라 복잡한 이데올로기가 작용해 만들어진 것이다. 산업자본주의가 만든 세속화는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만들었다. 편리와 여유를 즐기는 삶을 행복한 삶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죽음은 외면하고 회피해야 할 불행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죽음은 의학과 기술, 그리고 전문가의 영역으로 취급되었고, 죽음은 의학적인 문제이고 그 한계 때문이라는 인식도 퍼지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일리치나 아리에스의 비판은 이런 상황에서 나왔고, 그 결과 죽음이 삶에서 소외되어 일상의 모습에서 사라지게 되는 과정에 주목했다.

gisang202012_p2.jpg
19세기 중반 서양에서 유행한 포스트모템 사진들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때로는 죽은 사람을 곧추세우는 기구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사진이 죽음을 직시하고 위로하게 한다면, 그 절정은 영정사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사진의 본질을 죽음에서 찾을 수 있다면, 영정사진은 그 어떤 사진보다 분명히 그 본질에 충실한 사진이 된다. 영정사진은 죽음을 알리는 사진이다. 그 의미는 해석의 대상이 아니다. 특히 장례식에 쓰일 사진을 미리 준비하면서 찍은 사진이라면, 카메라로 그 사진을 찍는 사람, 그 사진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 그리고 추모하는 심정으로 그 사진을 바라볼 사람의 의도는 하나가 되어 죽음이라는 사진의 본질을 완성시킨다. 그렇다면 고인이 남긴 모든 사진은 그 사진 한 장을 남기기 위한 습작에 불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사진의 추억

“사진밖에 남는 것이 없다.”라는 말은 사진이 기억과 추억을 담당하는 도구로 자리 잡은 후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사진이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은 사진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기억을 하고 또 추억을 남긴다는 것의 의미나 개념은 사진이 발명된 이후 생겨난 것일 수도 있다. 사진을 보면서 과거를 기억하기도 하지만, 그 기억 자체가 사진에 의존한 것인 경우도 많다. 사진이 오히려 기억을 막거나 왜곡시키기도 하지만, 사진을 통한 기억은 이미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사진이 남기는 것은 언제나 지금은 있지 않은 순간이다. 없는 것의 궁극적인 상태는 죽음이다. 사진을 통한 기억과 추억은 추모의 성격을 지닌다. 기억과 추억에서 추모로 가는 길은 멀지 않다.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 만드는 추억은 결국 추모로밖에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진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한다.
사진의 역사에서 사후 사진은 한때나마 죽음의 상처를 기억하고 위로하는 역할을 했다. 죽었지만 다시 살아나 한 가족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기독교 세계관이 만든 사진이었다. 고인이 마치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사진을 찍었지만, 죽음의 상태라는 걸 부인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사진은 죽음을 볼 수 있게 했고, 또 기억하게 만들었다. 그건 사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사진이 남기는 기억과 추억을 대변하는 건 가족사진이다. 가족이 모여 사진을 찍는 일은 19세기 후반 이후 가족의 의례로 자리 잡았다. 가족의 의미가 함께 모여 앉아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공동체라면 그것은 가족사진이 유행하면서 만들어낸 인식일 수도 있다. 비슷한 시기 서구 사회에서는 개인에게 소속감과 정체성을 주는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의미가 약화되고 가족의 역할이 커지고 있었다. ‘가족 중심’이란 표현도 역사에서 오래된 표현이 아니다. 의미가 모호한 ‘공동체’(community)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게 된 것도 같은 시기였다. 가족사진에 통상적으로 누가 포함되고, 또 누가 빠져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면 현대 가족의 범위가 매우 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사진이 전제하는 가족은 기억의 공동체이다. 발터 벤야민은 ‘기억의 컬트’라는 표현으로 사진을 통해 유지되는 가족 중심의 기억과 추억의 행태가 강도를 더해 컬트와 같은 종교적 감성으로 드러나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그 컬트의 중심에는 성서가 아니라 사진앨범이 있다. 서구 사회에서 사진앨범은 집안의 소중한 유물이 되어 한 가족을 기억과 추억의 공동체로 탄생시키는 역할을 했다. 사후 사진을 찍는 것은 죽은 가족까지 그 공동체의 일원으로 기억하자는 행위였다. 사진앨범에서 그 사진을 꺼내 보면서 죽음도 우리 가족을 서로에게서 멀어지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의미였다. 그 사진에서 나의 죽음까지 보게 된다는 것은 전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 사진과 아이콘(icon)

철학이 죽음을 준비하는 연습이라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은 기독교가 이어받았다. 기독교에서 그 연습은 철학이 아니라 신앙의 실천으로 바뀌었다. 그리스도가 죽음으로 죽음의 세력을 이긴 것이 나를 위한 것이었다는 고백이 그런 실천의 예였다. 그 죽음을 은혜로 기억하고 고백하는 행위가 없는 기독교는 상상할 수 없다. 성만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을 잊지 않도록 반복적으로 고백하고 기억하고자 했고, 초기 기독교에서는 순교자들의 죽음을 기억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의 삶을 실천하고자 했다. 이런 기억과 추모는 신앙의 실천이었고 마지막 날을 위한 연습이었다.
과거 기독교에서는 아이콘(icon)이라 불리는 종교적 이미지를 만들어 이런 기억과 고백을 돕는 도구로 사용했다. 동방정교회에서는 지금도 아이콘 이미지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데 필수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아이콘의 이미지는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사도들과 교회사의 성인들의 형상을 포함한다. 그들이 살아서 받은 은혜가 그들의 형상을 담은 이미지에도 남아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담겨 있다. 그 신학의 논리가 단순하지는 않지만 창조된 세상과 물질에 대해 열린 신학을 지향해온 것만은 분명하다.
중세 가톨릭교회의 관심은 성인들의 형상을 담은 아이콘보다 성인들의 유물(relic)에 있었다. 성인들의 이미지보다 성인들의 몸의 일부나 그들이 사용했던 유품에 더 큰 은혜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성인의 몸에서 나왔다는 뼛조각 하나는 소중한 은혜의 매개체로 인정받았고, 그 유물을 담아두는 유물함은 그 시대 최고 예술가들의 작품이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찾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는 그리스도의 제자 야고보의 유물이 있는 대성당이다. 그런 순례의 길에서 고행을 통한 자기 훈련이나 내면이 정제되는 과정을 무시할 수 없지만, 사실 그 순례길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몸의 뼈라도 만져 은혜를 구하고자 하는 신앙의 갈급함이 만든 것이다. 아이콘과 유물에 대한 이해 없이는 정교회 신학을 이해할 수 없고 중세 가톨릭교회의 영성도 이해할 수 없다.
죽음을 위한 연습은 삶을 위한 연습과 다르지 않다. 그 사실을 드러내는 게 영성의 목표일 수도 있다. 사진은 그 삶을 의도 있게 살 수 있도록 돕는다. 앞서 사진이 죽음을 위한 연습의 도구가 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사진의 영성을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한 설명으로 사진을 죽음과 함께 생각하는 근거를 일부 살펴보았다. 사진이 남기는 죽음의 기억이 신학적인 의미가 있으려면 사진이라는 이미지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한다. 사진에서 기독교의 아이콘과 유물의 의미를 찾는 것은 현대의 신학적인 감수성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 이를 위해 창조된 세상을 성례전 차원에서 이해하고, 아이콘과 성인의 유물에 대한 정의를 폭넓게 해야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다음 호에서는 먼저 사진으로 실천할 수 있는 영성을 다루기로 하겠다.



주(註)

1 필립 아리에스와 이반 일리치가 현대 죽음의 문화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책은 각각 『죽음의 역사』(The Hour of Our Death)와 『병원이 병을 만든다』(Limits to Medicine)로 번역되어 한국에 소개되었다.
2 ‘죽음의 5단계’는 죽음을 선고받은 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퀴블러 로스는 이 단계를 ‘거부-분노-협상-우울-수용’의 과정으로 이해했다. 이후 이 5단계는 가족의 죽음을 애도하는 과정으로도 인정받게 되면서 대중적인 이론이 되었다.
3 <시간의 문>은 1982년 「문학사상」 1월호, <여름의 추상>은 같은 해 「한국문학」 4월호에 실렸다. 이를 기록하는 이유는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가 1980년에 출간되었고, 사진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수잔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가 1977년에 세상에 나온 사실을 상기하기 위해서이다.
4 이청준, 『(이청준 전집 18) 비화밀교』(문학과지성사, 2013), 96.



서보명 | 시카고신학대학원(Chicago Theological Seminary)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신학과 철학, 문화이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대학의 몰락』, 『미국의 묵시록』 등이 있다.

 
 
 

2020년 12월호(통권 744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