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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나의 박사 논문을 말한다]
문화·신학·목회 (2020년 10월호)

 

  신학과 미술의 대화와 수용
  

본문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의 ‘미학적 자기 됨’ 연구–미적 가능성과 미메시스론을 중심으로”
신사빈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20



“나의 박사 논문을 말한다”라는 주제로 글을 쓰려니 나의 생각은 상념에 젖어 어느덧 과거로 돌아가고 있었다. 학창시절에 음전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란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마음을 옥죄던 현실로부터 해방되는 느낌을 가졌다. 그림은 나를 나일 수 있게 하였고, 자유를 꿈꾸게 하였다. 그래서 고등학생 시절에는 학교보다 미술학원을 더 열심히 다니며 밤낮으로 그림을 그렸고, 미술대학에 다니면서는 패기, 열정, 순수를 꿈꾸며 세계 최고의 화가가 되겠다는 제법 큰 포부도 지녔다. 그러다가 대학교 3학년 말에 신비로운 종교적 체험을 한 후, 모든 것이 시시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졌고, 대학교 4학년 때는 <무아를 위한 체험>이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입선도 했다.
그렇게 나는 그림을 그리며 종교적인 영역에 눈을 떴으며, 참나를 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모든 현실의 속박을 떠나 홀연히 독일로 떠났다. 낯선 땅에서 내가 종교적인 영역에 접근할 수 있는 끈은 미술이었다. 그래서 나는 미술사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이미지를 통해 종교적인 것을 사유하는 일이 좋았고,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신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동경을 키워갈 수 있었다. 내가 공부하던 인문대 마기스터 과정에는 두 개의 전공을 해야 했는데, 나는 주저 없이 미술사 외에 신학을 선택했고, 그 후 나의 신학 오디세이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신학 석사와 박사 과정을 공부하면서 느낀 점은 신학 안에서 미술을 말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학점을 이수하는 동안 나의 지난날 경험은 고스란히 마음 한편에 묻어두어야 했다. 그러한 나의 고민이 하늘에 닿았던 것일까. 어느 날 지도교수님이 나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하셨다. 인간은 지(知), 정(情), 의(意) 세 가지가 모두 있어야 하는데, 신학에는 정이 부재하다고 하시며 인간의 감정 영역을 대변하는 예술을 신학에 살려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나는 용기를 내어 본격적으로 신학에서 미와 예술을 회복하는 연구를 시작하였다.
가톨릭의 신학적 미학자 한스 우어스 폰 발타자(Hans Urs von Balthasar)에 따르면, 미는 본래 진과 선과 함께 동등한 위상을 지닌 형이상학적・초월적 요소였다. 이러한 특성은 이미 아우구스티누스로 소급되는 생각으로 기독교 미학의 근간을 이룬다. 즉 사람이 아름다움을 지각할 수 있는 것은 경험 이전에 이미 아름다움이 선재(先在)한다는 생각이며, 이러한 생각은 진선미의 근원자가 하나님이라는 믿음에 기원을 둔다.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어떤 것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가 그것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아름답고 선하기 때문에 우리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기독교 미학의 미 선재론(先在論)을 전승하고 있고, 그 선험적 아름다움의 기원을 하나님에게 둔다.1
이처럼 기독교는 초기부터 형이상학적이고 선험적인 아름다움의 존재를 말했으며, 그 기원을 신에게 두었다. 그 결과 중세 천년은 미와 예술을 통해 신을 찬양하고 신앙을 증명하려는 노력으로 점철되었으며, 자연스럽게 교회 권력과 세속 권력의 작품 주문을 통해 화려한 예술품들이 제작되는 시스템이 형성되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러니하게도 인문주의의 부활을 알린 르네상스 미술 역시 가톨릭교회를 선전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고, 서민들의 삶을 착취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로마가톨릭교회의 대대적인 성전 개축공사(1505- )였다. 이 공사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면죄부가 판매되었고, 서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이러한 가톨릭교회의 모순과 부패에 대항하여 일어난 것이 루터의 종교개혁이었다.
따라서 프로테스탄트 신학에서 가톨릭교회의 성례전을 대폭 축소시키고 미와 예술을 성전으로부터 추방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루터의 경우에는 신앙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 예술을 수용한 반면, 칼뱅은 성상 파괴 운동을 주도하며 성전을 장식하던 모든 성상과 예술품, 공예품을 철거하고 파괴했다. 나아가 성상을 제작하던 모든 예술가를 박해함으로써 신교 국가의 화가들은 두려움에 떨며 새로운 그림 소재를 찾아 고민해야 하는 공포의 시기를 맞았다.
종교개혁의 결과로 프로테스탄트 신학은 진과 선의 반쪽 신학, 건조한 신학이 되었고, 현대 신학에서는 이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미와 예술을 회복하려는 일련의 노력이 이어졌다. 그러나 미와 예술을 한 번 크게 배척한 프로테스탄트 신학에서 이들을 다시 수용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가톨릭과 차별을 두기 위해서도 프로테스탄트 신학은 종교개혁 때의 입장을 고수해야 했고, 게다가 구약성서로부터 내려오는 성상 금지와 우상숭배 금지의 정신도 미와 예술의 회복을 더디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구약의 성상 금지 및 우상숭배 금지는 사실상 유대교를 넘어 기독교에서도 중세를 거쳐 오랜 기간 이코노클라즘(iconoclasm)의 갈등으로 암암리에 계속 이어져 왔다. 가톨릭의 경우는 제2차 니케아공의회(787년)를 통해 성상 수용을 인정했기 때문에 이미지를 통해 신을 찬양하는 데에 공식적으로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그러나 가톨릭에 대항하여 생겨난 프로테스탄트는 가톨릭 이전의 성서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매우 강했기 때문에 성상 금지와 우상숭배 금지의 정신을 더욱 강조했다. 이처럼 종교개혁 정신과 성서 회귀의 정신에서 오는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해 현대 프로테스탄트 신학에서 미와 예술을 다시 회복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가 아무리 미와 예술을 금지한다 하여도 예술을 사랑하고 아름다움을 통해 신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신자들의 미적 욕구마저 금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프로테스탄트가 우상파괴 정신을 바탕으로 말씀 중심의 예배를 중요시했지만, 종교적 진리가 말로 다할 수 없는 차원을 지녔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예술은 언어 이상의 언어로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삶의 진리와 종교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고, 이제 프로테스탄트 교회도 그림이나 음악, 조각과 같은 비문자적 예술이 인간의 자유와 사랑에 주는 효과를 충분히 신학화할 필요가 있다.
나의 박사 논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작성되었으며, 기왕 미와 예술을 회복하는 것이 현대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당면한 과제라면, 가톨릭과 차별된 방식, 즉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주관적인 미적 경험을 통해 미와 예술을 회복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두 명의 프로테스탄트 사상가인 쇠얀 키에르케고어(Søren Kierkegaard)와 폴 리쾨르(Paul Ricoeur)를 끌어들였다. 두 사상가는 서로 다른 시대에 살았지만 프로테스탄트 신앙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으며, 또한 인간의 미적 욕구를 부정하지 않고 각자 독특한 방식으로 신학적・철학적 사유에 통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논문의 목적에 적합한 사상가들이었다.
나는 가톨릭의 신학적 미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존재의 유비’(ana-logia entis)에 근거해서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살리면서 미와 예술을 회복하는 것이 힘들다고 보았다. 그래서 ‘신앙의 유비’(analogia fidei)에 근거한 회복 방식을 찾고자 했는데,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는 이 점에서 커다란 통찰을 제공한다.2 키에르케고어는 철학의 역사에서 ‘실존’이라는 화두를 처음으로 전면에 내세운 사상가이다. 그에게 실존은 신 앞에 단독자(das Einzelne)로 홀로 서는 것이고, 여기서 신과 관계하는 유일한 길이 ‘믿음’이다. 그는 인간을 실존 형태에 따라 미적 실존, 윤리적 실존, 종교적 실존(종교A), 기독교인의 실존(종교B)으로 구분하는데, 나는 미적 실존이 신 앞에서 믿음을 통해 자기(self)가 되는 길에 주목하였다.3
키에르케고어에게 ‘자기’가 되는 것은 곧 구원을 의미한다. ‘자기’는 데카르트에서와 같이 코기토(Cogito,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사유 원리)를 통해 정립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키에르케고어는 오히려 “나는 믿는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하며 데카르트를 비껴갔고, 믿음을 사상의 중심에 둔다. 신과 인간 사이에는 죄로 인해 건널 수 없는 심연(abyss)이 자리하는데, 이 심연은 이성이나 오성의 논리로는 절대 건널 수 없으며 오직 믿음으로만 뛰어넘을 수 있다. 그래서 믿음은 비약(leap)이다. 논리의 비약이다. 이 비약 개념으로 키에르케고어는 이성에 근거한 형이상학적 시스템을 통째로 전복시킨다. 그에게 ‘자기’는 ‘믿음의 자기’이다. 그런데 믿음은 절망과 실존적 변증법적 관계를 지닌다. ‘죄가 많은 곳에 은총이 넘친다.’(롬 5:20)고 말한 사도 바울처럼 키에르케고어는 절망을 통해서만 은총과 믿음에 이른다는 역설을 말한다. 절망은 곧 죄이자, 동시에 자기가 되는 근거가 된다.
그래서 미적 실존의 절망은 ‘가능성’의 절망이다. 미적 실존의 죄는 가능성에서 고립되어 절망하는 것이고, 미적 실존의 구원은 가능성으로부터 현실성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키에르케고어에게 가능성은 비존재(Nicht-sein)이고, 현실성은 존재(Sein)이다. 비존재에 머물면 절망하지만, 존재로 나아가면 자기가 되고 구원에 이른다. 그런데 이것이 키에르케고어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믿음의 초월성 때문이다. 믿음의 벽에 부딪혀 미적 실존은 가능성의 죄에 고립된다. 나는 이것이 키에르케고어의 실존 미학의 한계라고 보았고, 이 한계를 해결하는 차원에서 리쾨르의 “자기 이해의 해석학”을 연결시켰다.
우리는 보통 리쾨르를 해석학자로 알고 있지만, 그의 해석학의 배후에는 실존 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실존’과 ‘자기’는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연결시키는 공통된 키워드이다. 두 사람 모두에게 인간은 신과 존재 앞에서 실존하며 점차 자기로 되어가는(becoming) 존재이다. 미학적 방식으로 자기가 되는 것이 미학적 자기됨(aesthetic self-becoming)이며, 가능성이 현실성으로 이행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 이행이 리쾨르에서 성공하는 것은 ‘해석학적 믿음’ 때문이다. 미학적 언어 안에 내재하는 상징의 깊이가 독자(미적 실존)의 사유를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자기 이해로 이끈다. 상징 안에는 ‘존재의 힘’이 내재하는데, 이 힘을 독자는 믿고 따른다. 그리하여 독자와 미학적 언어 사이에는 ‘믿음’의 관계가 성립한다. 이 믿음이 바로 ‘해석학적 믿음’이다.4 해석학적 믿음으로 독자(미적 실존)는 가능성에서 작품을 창작하고, 해석을 통해 새로운 자기 이해에 이르고, 변화된 자기 정체성으로 삶을 재구축한다. 그렇게 변화된 현실은 해석학적 순환의 한 축이 되고, 미적 실존은 가능성과 현실성의 순환을 이룬다. 이것이 리쾨르의 삼중 미메시스(triple mimesis) 개념이다.
리쾨르의 미메시스 개념을 통해 키에르케고어의 미적 실존은 가능성으로부터 현실성으로 이행할 수 있다. 가능성(미메시스1)에서 절망하는 대신, 작품의 창작(미메시스2)과 작품의 해석(미메시스3)을 통해 ‘자기’가 되고 삶의 현실을 변화시킨다. 현실을 변화시키며 미적 가능성은 윤리적 현실로 나아가고,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미학과 윤리는 상호보완의 관계를 맺는다. 해석학적 믿음은 해석의 우회로를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키에르케고어의 초월적 믿음보다 진행이 더디다. 그러나 ‘점차’와 ‘단번’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도달하는 목적지는 같다. 신과 존재이다. 해석학적 믿음은 초월적 믿음에 대한 준(準)믿음으로서 이 논문을 풀어갈 수 있는 열쇠였다. 해석학적 믿음으로 미적 실존에게는 가능성에서 현실성으로 이행하는 길이 열렸고, 자기가 되는 길이 열린 것이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통해서 마련한 ‘미학적 자기 됨’의 길은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미적 욕구를 부정하지 않고도 신과 존재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길을 통해 나는 가톨릭의 ‘존재의 유비’와 다른 ‘신앙의 유비’에 근거한 미와 예술의 회복 방식을 마련했다고 본다. 존재의 유비에서는 신학으로 수용하는 미의 기준이 높다. 앞서 언급한 가톨릭의 신학적 미학자 발타자는 하나님의 영광(Herrlichkeit)을 미의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처음부터 ‘신학적 미학’과 ‘미학적 신학’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였고,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미적 경험으로부터 신의 계시를 유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불가피하게 차단한다. 그는 ‘미학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세속적(weltlich), 제한적(einschränkend), 경멸적인(pejorativ)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미학의 영역에서 신학으로 이르는 길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5
그러나 신앙의 유비에 근거한 ‘미학적 자기 됨’에서는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독특하고 주관적인 미적 경험을 ‘새로운 실존의 가능성’으로 수용하고 ‘자기’가 되는 계기로 삼는다. 그 결과 신학이 수용할 수 있는 예술작품의 폭도 넓어지고, 소위 말하는 성(聖) 예술뿐만 아니라, 세속적(secular) 예술이나 비신성화(de-sacralized)된 예술도 신학으로 수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된다. 가톨릭의 발타자와 같이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부터 세상의 아름다움을 규정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일상에서 개인이 경험하는 다양한 미적 경험으로부터 출발해서 종교성에 도달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그래야 신학이 종교예술이 아닌 일반 예술작품도 품을 수 있고, 우리가 신을 경험하는 삶의 자리도 풍부해질 것이다. 그것이 또한 일상의 삶을 계시의 자리로 본 종교개혁의 정신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나의 박사 논문에서 산출한 ‘미학적 자기 됨’의 길을 통해 다음의 몇 가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미와 예술의 독립 범주인 ‘가능성’을 확보한 점에서 신학 내 미와 예술의 연구가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가능성은 필연성, 현실성과 함께 철학과 신학의 중요한 양태 범주였고, 인간과 사물을 설명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가능성을 미와 예술의 독립 범주로 확보했다는 것은 미와 예술이 신학과 철학의 동등한 대화 파트너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신학 내 미와 예술의 연구도 일시적인 이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의 토대에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프로테스탄트 신학에서 다양한 예술작품의 수용을 기대할 수있게 되었다. 가톨릭 신학에서 미를 수용하는 방식은 하나님의 영광을 미의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예술작품을 수용하는 데에도 제약이 따른다. 하지만 ‘미학적 자기 됨’의 길은 실존 가능성의 비존재로부터 존재로 이르는 길이기 때문에, 세속적인 것을 오히려 실존의 새로운 존재론을 위한 계기로 삼는다. 폴 틸리히에 의하면, 프로테스탄티즘은 세속성을 추구하는 정열(Pathos für das Profane)로 다른 종교가 어려워하는 것을 오히려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정신이다.6 이러한 의미에서도 ‘미학적 자기 됨’은 프로테스탄티즘의 정신을 살려 세속적 예술을 실존의 가능성 차원에서 신학으로 다양하게 수용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셋째, 미학의 영역에서 기대되는 간학문적 대화의 기대이다. 종교개혁 이후 신학이 미학을 배제해왔듯이, 미학도 신학을 배제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왔다. 그 결과 현대 미학은 미를 위한 미의 이론 혹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이론을 남발하는 학문으로 엘리트화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학적 자기 됨’은 대화의 고리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예술작품을 매개로 신 앞에서 자기가 되고 구원에 이르는 길을 제시함으로써 현대 미학은 다시 신학, 인간학, 해석학과 소통하며 입지를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미와 예술은 가능성에만 고립되면 현실에서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미와 예술을 배제한 현실은 새로운 현실을 위한 가능성을 망각한다. 미와 예술의 가능성과 윤리적・종교적 현실은 서로 관계하고 상생해야 하는 상호보완의 관계를 맺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점에서 나의 박사 논문은 미학과 신학이 처한 각각의 한계지점에서 상생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실존적 인간학과 해석학적 지평에서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1 “non enim ideo aliquid est pulchrum quia nos illud amamus, sed quia est pulchrum et bonum ideo amatur a nobis”, De div. nomin. IV. lect.10. n.439.
2 가톨릭의 ‘존재의 유비’는 실체(substancia)의 존재를 가정하고, 이로부터 세상 만물을 설명하는 사유방식이며, 형이상학적 철학의 실체적 존재론(substantial ontology)에 상응한다. 이 때문에 칼 바르트는 존재의 유비를 두고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를 이미 인간의 철학적 전이해 속으로 가져다놓은 반(反)그리스도적 발명이자 죄라고까지 강하게 비판하였다. 반면 ‘신앙의 유비’는 오직 믿음(sola fidei)을 강조한 루터, ‘믿음’을 철학적 사유의 중심으로 끌어들인 키에르케고어,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믿음의 관계를 강조한 바르트로 이어지는 프로테스탄트적 유비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실체’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고, 인간 내면에 잠재하는 존재 가능성이 현실성으로 운동, 변화, 생성하는 것으로 신과 존재를 사유한다. 따라서 프로테스탄트 신학에서 미와 예술을 회복하는 방식으로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살린 신앙의 유비가 적합하다고 보았다.
3 종교A(일반종교)와 종교B(기독교)를 구분하는 기준은 ‘죄의식’이다. 키에르케고어는 죄책감(Schuldbewusstsein)과 죄의식(Sündenbewusstsein)을 구분하는데, 전자는 스스로의 힘으로 얻을 수 있지만, 후자는 오직 신 앞에서만 일어나며 인간을 총체적으로 변화시킨다. 그래서 키에르케고어는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최고의 자의식이 죄의식이라고 말한다. 죄의식을 통해서만 인간은 참나가 되고 ‘자기’가 된다.
4 리쾨르에게 ‘해석’이란 존재의 힘과 교통하는 방식이다.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존재의 힘이고, 존재의 힘과 교통하면서 나는 존재하게 된다. 그리하여 해석 가운데 이루어지는 인간의 자기 이해는 나의 의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식보다 더 깊은 존재의 힘에 이끌려 이루어진다. 이 존재의 힘과 관계하는 방식이 해석학적 믿음이다. 양명수는 해석학적 믿음을 가리켜 비판 이성 이후에 등장한 “근대적 믿음”이라고 말한다. 양명수, 『폴 리쾨르의 「해석의 갈등」 읽기』(세창미디어, 2018), 6-10, 27, 39.
5 Hans Urs v. Balthasar, Herrlichkeit. Eine Theologische Ästhetik Bd. 1: Schau der Gestalt(Einsiedlen: Johannes Verlag, 1961), 74.
6 Paul Tillich, “Zur Theologie der bildenden Kunst und der Architektur”, in Aus-gewählte Texte. hrsg. Christian Danz, Werner Schuler, Erdmann Sturm(Frankfurt a. M.: Walter de Gruyter, 1961/2008), 413.



신사빈 |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기독교윤리를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역서로 『예술의 힘』이 있다.

 
 
 

2020년 10월호(통권 7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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