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기독교와 한국 전통문화의 화해를 위하여 12 (마지막회)]
문화·신학·목회 (2020년 10월호)

 

  바리데기
  

본문

 

| 화해를 위한 변명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연재의 끝자락에 왔다. 당초 내가 고안한 연재명은 “기독교와 한국 전통문화의 화해를 위한 변명”이었다. 민속예술을 전공한 기독교인으로서 나 자신을 성찰하자는 취지였다고나 할까. 하지만 ‘변명’이라는 단어가 부정적 뉘앙스를 지닌다는 의견이 편집부에서 제시되었고, 종내는 ‘화해를 위하여’라는 연재 제목을 수용하고 말았다. 자잘한 소재거리를 담아내기에는, 포섭되어버린 거대담론의 무게가 너무 컸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시작된 개신교의 수용과 그 직후부터 이어진 전통문화 관련 논쟁, 이에 관하여 조상들과 선교사들이 재구성한 맥락 등을 어찌 내가 담아낼 수 있겠나 하는 자괴감이 앞섰다. 진솔하게 고백한다. 앞서 계셨던 분들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럽다.
먼저는 수많은 박해를 견뎌내며 하ㄴㆍ님1의 천국세계를 준비했던 서학 관련자들과 선지자들에게 옷깃 여며 머리를 숙인다. 그들이 깔아둔 밑자락이 없었다면 어찌 한국 개신교의 도전적이고 획기적인 확장이 있었으랴. 서학(西學)2에 경도되어 변법자강(變法自疆)을 외치던 중국의 급진개화파나 동도서기(東道西器)를 외치던 온건개혁파들은 물론이고, 개신교를 수용이 아닌 전파적 관점으로 보는 모든 이들도 이 부채(負債)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전파론의 핵심이랄 수 있는 선교사 중심의 하늘나라 개혁 또한 온전한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우리 전통문화의 지극한 융숭 깊음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기독교 중심의 성취론(成就論, fulfillment theory)3을 거부하는 이유이고, 기독교의 성찰을 우선 삼아 우리 전통문화와의 화해를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독교인이 된 무당을 소재삼아 연재를 시작하면서 몇 가지 화두를 던진 바 있다. 이를 통해 한국 무속을 사탄 보듯 대하는 기독교의 이면을 지적하고자 했다. 배타와 격리 혹은 변별이나 차별을 통해 기독교의 존재를 주장하고 강화해왔던 속내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수준 낮거나 촌스러운 것에 지나지 않을뿐더러 정당하지도 않음을 두고두고 지적해왔다. 신화를 신화로 해석하지 못하고, 상징을 상징으로 풀어내지 못하면서 어떻게 융숭 깊은 한국 문화의 상징과 은유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인가. 동정녀에게서 사람이 탄생했다는 기록을 사실(fact)로 믿으라면서 부여와 고구려, 백제와 신라 건국 신화들의 상징과 은유는 왜 거들떠보지 않는가. 노아의 방주와 요나의 물고기를 사실로 믿으라면서 세계 도처에 퍼져 있는 홍수설화며 고래와 두꺼비와 뱀에 투사된 은유는 왜 기피하는가. 그렇게 자신이 없는 것일까? 혹은 위태롭게 세워둔 논리들이 무너져내릴까 봐 불안한 것일까?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초기 선교사들의 각종 논쟁과 ‘하ㄴㆍ님’ 수용의 맥락을 통해 환인, 환웅, 단군의 신화야말로 초기 기독교의 폭발적인 성장세의 바탕이었다는 술회 정도로는 그간 한국 문화를 무시하고 멸시해온 배제와 격리의 과오들을 덮을 수 없다. 기독교의 독선과 아집을 지적하고 수정을 요구한다고 해서 초기 선교사들의 희생과 업적마저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문화에 대한 비판은 따로 한다. 나는 다만 이 지면에 주어진 역할에 충실할 따름
이다.
기독교인이 된 무당, 무업을 통해 아들을 개신교 목회자로 만든 첫 연재글의 시마 어머니는 한편으로는 불교 신자였던 내 어머니의 상징이자 은유이기도 했다. 마흔에 낳은 나를 위해 매 절기마다 절에 가서 촛불을 켜시던 어머니를 두고두고 묵상한다. 내가 전공하고 있기도 하지만 울리는 꽹과리와 징소리, 고깔을 쓰고 이쪽저쪽으로 돌아가는 북춤과 장구가락은 내게는 기독교의 예배의식보다 더 익숙한 풍경이다. 오래전 처음으로 제사를 기독교 방식으로 전환하던 날, 크게 놀라고 당황했던 적이 있다. 망자들과 더불어 평생을 살아왔을 친지와 이웃들은 이방인이었고, 낯선 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이 제사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서둘러 융합적인 제사 방식을 고안하기는 하였지만, 서학을 수용한 시기부터 논쟁의 중심이 된 제사 논란이 말끔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제사는 무엇으로 완성되는가를 한 편의 주제삼아 풀어냈던 이유이기도 하다. 서학의 수용 이래 세기마다, 시절마다 갈급했던 질문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기독교로 개종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나의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인 채로 돌아가셨다. 나의 어머니는 극락에 가 계실 것이다. 그곳은 내가 이를 천국과는 어떤 시공의 차이와 변별이 있는 것인가? 매 연재마다 문화적 보편성을 언급한 이유이자 마지막 연재를 ‘바리데기’로 정한 까닭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결론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는 개종할 필요가 없으셨던 것이다. 비로소 나는 무당이었던 시마 어머니로부터 천박데기이자 바리데기셨던 나의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다.

|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로부터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다, 배 한 척이 격랑 속의 나뭇잎처럼 거칠게 흔들리며 파도와 파도를 간신히 타넘어 간다. 키 잡는 방이 배 위에 작은 집처럼 솟아오른 어선이다. 그 배의 밑바닥은 잡은 고기를 가두어놓는 곳이다. 사람이 허리를 펴고 앉아 있을 수조차 없는 낮은 천장 아래 바닥에는 물이 찰박거리며 차올랐다. 거기 꾸물꾸물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인다. 열 스물 서른 남짓의 남녀와 아이들이 보인다. 뱃전을 울컥이며 넘어간 물결이 갑판을 휩쓸고 어물칸에 쏟아져 들어간다. 아이들과 여자가 허우적거리며 기어 나온다.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2007)에서 탈북소녀 ‘바리’가 밀항하는 장면이다. 군더더기 미장센(Mise-en-Scène, 연출)이 배치될 틈도 없이 긴박하다. 하지만 망망대해에 놓인 개별 존재로서 고독들이 마주하는 리얼리즘으로서의 씨줄은 꿈과 환상이 뒤섞인 날줄과 촘촘히 얽혀 있다. 현실이 환상이 되고 환상이 현실이 되는 서사의 교직과 변주라고나 할까.
그런데 왜 내게는 이 잔혹한 풍경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 것일까. 마치 요나의 물고기처럼 어디선가 보거나 들었던 풍경, 아니면 당금애기의 여정이었을까. 이 소설에 대한 내 이미저리(imagery)들이다. 바다에 던져지는 시신들, 강간당하는 처절한 장면들을 구원에 대비한 복선(伏線)들로 읽게 된 까닭이기도 하다. 나는 이를 그간의 <손님>(2001), <심청, 연꽃의 길>(2003) 등 우리 신화 풀어내기 방식들이 비로소 안착되는 구성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의 제목이 표방하듯, 무조(巫祖)신화 <바리데
기>의 서사에 <손님>에서의 남북과 종교적 갈등, <심청>에서의 여성을 탈북소녀를 통해 얹어낸 방식 말이다. 물론 전개의 기술은 다르다. 황석영은 이 소설에서 밀항선의 물고기 저장고를 통해 참혹하고도 긴박한 존재의 투쟁을 그려내면서 재생의 복선들을 깔아두었지만, 정작 원래의 신화 <바리데기>는 수많은 은유와 상징을 어쩌면 무덤덤하고 담백하게 그려낼 뿐이다. 하지만 배후의 아우라는 깊고 넓다. 문자 그대로 정중동(靜中動)이다.

| 무조신화(巫祖神話) <바리데기>
홍태한이 주도하고 이경엽 등이 부가한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민속원, 1997-2001)에는 무려 90편가량의 바리데기 무가가 정리되어 있다. 지금도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므로 언젠가는 100편이 넘는 무가가 정리되어 나올 것이다. 홍태한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 바리데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의 망자천도굿인 서울지역 진오기굿의 말미거리, 호남지역 씻김굿의 오구풀이거리, 동해안지역 오구굿 발원에서 구연되는 장편서사무가다.” 바리공주는 서울 지역에서 부르는 말이고 호남이나 동해안 지역에서는 바리데기라 부르기 때문에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는 은연중 호남이나 동해안의 무속서사를 차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속서사 <바리데기>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뼈대를 이루는 줄거리는 같다. 이를 중핵 혹은 핵심 줄거리라 한다. 대강은 이러하다. 바리데기 부모가 혼인을 한 후 연이어 딸을 낳는다. 딸 여섯을 낳은 후 여러 가지 공을 드렸는데도 일곱 번째 자식으로 또 딸을 낳는다. 바리데기를 버린다. 이후 세월이 흘러 바리데기 부모가 병에 걸린다. 목숨을 구할 약이 서천서역국의 환생초 약수임을 알게 된다. 바리데기가 부모를 만난다. 여섯 딸들에게 약을 구해오라고 요청하지만 딸들은 모두 핑계를 대고 거절한다. 버림받았지만 효성이 지극한 막내딸이 약수를 구하러 길을 떠난다. 바리데기가 약수를 지키는 이를 만난다. 약수를 얻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막내딸은 그 사람과 혼인하여 산값, 길값, 물값으로 삼 년씩을 살아주고 아들을 낳았다. 그렇게 약물을 구해 와서 부모를 살려낸다. 아버지가 죽어서 상여가 나가는데 약물을 마시고 살아나는 등 갖가지 버전이 있다. 이윽고 바리데기는 부모를 살린 공을 인정받아 오구신으로 좌정하거나 아들들과 함께 시왕(十王)으로 봉해진다. 바리데기 이름은 바리덕이, 바리공주, 벼리데기, 비리데기, 버르댁이, 보르데기 등으로 나타난다. 부모의 이름이나 신분은 덕주아와 수차량, 업비대왕마마, 오귀대왕과 길대부인, 천별산 대장군과 검탈에 병오 등으로 나타난다. 바리데기는 연구자들에 따라 남성중심주의의 극복, 죽음의 극복 등을 주도하는 캐릭터로 분석된다.

| 주인공 바리데기와 오구굿
속내우 걷어 입고 / 은동우 옆에 끼고 / 은또가리 팔에 걸고 / 앵도쪽박 손에 들고 / 수양산을 물으실제 / 양월공산 깊은 밤에 / 승냥이 슬피 울고 / 호포는 왕래하니 / 보리데기 놀라 / 산신님께 축수하니 / 명명하신 황천후토 / 사해용왕 신령님네 / 일개 여자 / 정성을 살펴서 / 시왕산 가는 길을 / 어서 급히 득달하야 / 소원성취 하오리다.

목포대학교 이경엽 교수가 중심이 되어 채록, 집필한 『해남씻김굿』(민속원, 2018)의 오구굿 중 한 대목이다. 버림받은 바리데기가 어머니의 요청을 받아들여 서천서역국으로 떠나는 장면을 동서고금의 고사들을 차용해 노래하고 있다. 서천서역국은 저승이다. 하지만 백이숙제가 절의를 지키다 죽은 수양산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진시황 때 난리를 피해 숨어서 바둑을 두던 상산사호(商山四晧)의 상산(商山)으로 소환되기도 한다. 바리데기 신화는 진도 지역을 제외한 우리나라 전 지역 무속의례에서 연행된다. 이를 오구굿이라 한다. 왜 진도 지역이 제외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지면을 달리해 소개하겠지만, 바리데기를 주인공 삼은 오구굿의 깊이와 넓이를 쉽게 재단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무속의례의 중핵이자 융숭 깊은 이면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오구굿은 죽은 이의 넋을 위무하는 사령제(死靈祭)의 하나이다. 남도 지역의 씻김굿, 서울 지역의 지노귀굿, 함경도 지역의 망묵굿 등이 한 통속이다. 사람이 죽어서 행하는 것을 ‘진오구굿’이라 하고, 죽은 후 일정한 기간이 지나 행하는 것을 ‘마른오구’라 한다. 남도씻김굿에서 초상에 치르는 굿을 ‘곽머리씻김’이라 하고, 일정한 기간 이후에 행하는 것을 ‘날받이굿’ 혹은 ‘마른씻김’이라 하는 것과 같다. 해남의 무속의례를 참고해보면 부정, 안당, 선부리, 오구굿, 제석굿, 손님굿, 넋올리기, 고풀이, 씻김, 길닦음, 퇴송 등의 순서로 연행한다. 남도 지역에서는 오구굿을 오구물림이라고도 한다. 의문이 든다. 망자를 천도하는 의례 중에서 왜 바리데기라는 주인공이 등장할까? 여러 연구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바리데기는 아들을 희구하는 세상에서의 버림받은 존재이며 남성으로서의 아버지를 위해 희생하는 여성 캐릭터일까? 황석영이 탈북녀 바리를 처참한 어선 물고기칸에서 건져내듯, 바리데기 신화의 이면, 그 배후에는 어떤 상징과 뜻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 바리데기의 복선(伏線), 오구굿의 이미저리
남도 지역의 오구의례를 위한 장치들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무속의례 자체가 매우 소박하게 나타나는 지역적 특색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리듬과 선율, 곧 장단과 노래를 중심에 두는 심미안의 발로 아니겠는가. 당골은 작은 시루에서 넋당석4을 거쳐 긴 실을 뽑아내며 바리데기의 내력을 읊는다. 실은 생명줄이기도 하고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다리이기도 하다.
당골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본다. 정월이라 초하룻날 납채(納采, 신랑이 신부에게 혼인을 구하는 의례)를 들이고 이월이라 열이렛날 사성(四星, 사주단자의 봉투에 쓰는 말)을 들인다. 삼월이라 삼짇날 부부인연을 맺었더니 태기가 생긴다. 한 달 두 달 이슬 모아 삼석달에 입덧 나더니 밥에서는 생쌀내가 나고, 국에서는 날장내가 나며, 물에서는 해금내가 난다. 이마에 피도 안 말랐다는 언설처럼 태아가 점점 자라고 있으니 냄새라고 온전할 리가 있겠는가. 다섯 달에는 반짐 싣고, 여섯 달에 육새 받고, 일곱 달에 칠새 받고, 여덟 달에 팔새 받아, 아홉 열 달 되어 기(氣)가 들어찬다. 아버님전 뼈를 받고 어머님전 살을 빌려 첫째 딸을 낳고, 둘째 딸 셋째 딸 주르르 종국에는 일곱째 딸 바리데기를 낳는다.
출생의 서사이며 일생의 서사이고 절기의 서사이며 우주순환의 서사이다. 긴 출생의 여정에서 일곱이라는 7수와 막내딸의 버림, 아버지의 병듦과 바리데기의 서천서역 여행이 융숭 깊게 노래된다. 부모를 구하기 위한 약수는 아홉 해 동안의 혼인생활과 아홉 아들을 낳은 조건으로 완성된다. 이후 아홉 아들과 더불어 좌정하니 오구 시왕(十王)이다.5 내가 주목하는 이 드라마의 미장센들은 실과 시루와 넋당삭과 알곡들의 배후에 직조된 씨줄과 날줄의 은유들이다. 예컨대 바리데기가 구하는 약수는 환생초이자 불로초이고 거듭남의 핏물이자 재생의 떡 덩어리이다. 이승과 저승,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 시공을 넘나드는 무가의 사설들이 촘촘하게 배열되어 노래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교 수용 이후 많은 변화를 거쳤거나 재구성되었겠지만, 바리데기 이야기가 죽은 자의 넋을 위무하는 절차로 연행되는 이유를 나는 여기서 찾는다. 오구굿 사설의 말미가 이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되아 오소 되아를 오소사 / 맘과 같이만 되아를 오소사 / 불쌍허신 모씨 망자 / 가련하신 무명씨 망자 / 사람 되아서 오실라믄 / 생인(성인)군자로나 되아를 오소사 / 말이 되야 오실라거든 용천말이나 되아를 오소사~

여기서의 ‘되아 오소’는 ‘되어 오세요’의 전라도 방언이다. 바리데기의 저승 여행이 ‘되아 오소’의 결말을 위한 암시가 아니라면 대하드라마 같은 이 서사를 어떻게 이해하며 그 희생의 이미저리를 어떻게 그려낼 수 있을 것인가. 무가에서 노래하는 대로 죽은 자는 어떻게 ‘되아’ 올 수 있는 것일까. 이른바 다시 살아 ‘되아 오는’ ‘되기’가 바리데기의 ‘데기’ 아닐까?
그래서다. 당골이 손에 들고 풀어내는 실(命줄)은, 민속의례 만가(輓歌)의 다리천근소리6에 닿아 있고, 찬송가의 요단강 건너에 닿아 있다. 바리데기가 이 강을 건너 생명수를 가져온 것은 마치 동굴에서 예수가 부활하듯 망자를 살려내거나 환생시키는 극적 장치임을 알 수 있다. 강을 통한 이 장치는 거의 모든 문화권에 분포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지상과 저승의 경계를 이루는 그리스 신화의 스틱스강(River Styx)과도 같다. 레테의 강이며 죽은 자를 인도하는 플레기아스이자 카론(Charon)이다. 그리스-로마신화에 의하면 저승에는 다섯 개의 강이 흐른다. 비통의 강 아케론(Acheron)에는 저승의 뱃사공 카론이 있다. 씻김굿 무가에서는 뱃사공(지금의 선장)으로 나타난다. 카론은 망자를 배에 태워 시름의 강 코퀴토스와 불길의 강 플레게톤을 지나 망각의 강 레테(Lethe)에 이르고, 명계(冥界)를 일곱 번 휘감고 있는 증오의 강 스틱스(Styx)를 건넌다. 이 강을 건너야만 낙원의 들판 엘리시온과 무한지옥 타르타로스에 이르게 된다. 누런 빛의 샘 황천(黃泉)이 바로 이곳이고, 불교에서 말하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삼도천(三途川)7이 바로 이곳이다. 상여소리 중 다리천근으로 연행되는 이곳과 저곳의 경계가 바로 이 강들이다. 바리데기는 이 죽음의 강을 건너 부활의 생명수, 예컨대 포도주를 찾아 돌아온 캐릭터인 것이다.

| 안병무의 『선천댁』에 기대어
1년여 전 나는 이 지면을 통해 ‘어머니란 무엇인가’를 말한 적이 있다. 아들 없던 예순여섯 내 아버지에게 씨받이로 오셔서 나를 낳으셨지만 족보에도, 그림에도, 그 어떤 글에도 기록되지 않은 어머니 얘기였다. 더불어 이름도 빛도 없이 살다 가신 이 땅 민중들에 대한 행간을 읽어내려 했던 노정이기도 했다. 내 생모의 호명은 ‘개골네’였다. 고길(개골) 마을의 여편네라는 뜻이다. 갯가의 골짜기 마을이었으니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아들딸 넷을 낳았으나 본남편이 병사하였다. 병수발로 작은 재산마저 거덜난 어머니는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웠다. 두 딸은 식모살이를 보내고 작은아들은 고아원으로 보냈다. 큰아이 하나 부둥켜안고 살았다. 아들을 낳아주면 밭뙈기를 떼어주겠다는 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굶어죽는 일은 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자미원의 궁문을 열어 나를 이 땅에 내려놓으신 순간, 치욕적인 호명 씨받이가 덧붙여졌다.
재작년에 졸저 『산자와 죽은자를 위한 축제』(민속원, 2018)를 내며 서문에 그렇게 써두었다. 음력 5월 24일 유시(酉時), 내 생일날이자 내가 태어난 바로 그 시간에 운명하신 뜻이 무엇일까라고. 참으로 기묘한 일시에 운명하신 어머니를 재삼 묵상한다. 바리데기가 막내딸로 태어나 버림받고 구사일생으로 살아온 내력을 닮아서일까. 탈북녀 바리가 천변만화의 역경을 넘어 구사일생하는 내력과 같아서일까. 자식 없던 노인에게 몸이 팔려 아들자식 낳아준 또 하나의 당금애기여서일까. 한 몸 희생하여 자식들과 눈먼 세상을 구원한 또 하나의 심청이어서일까. 내 묵상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민중신학자 안병무가 남긴 유작 『선천댁』에 가 닿는다. 안병무의 이 에세이 또한 그의 어머니 이야기가 소
재이다.
구미정 교수는 “데기-되기: 『선천댁』에 나타난 안병무의 ‘민중 구원론’ 다시 읽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안병무의 어머니 선천댁은 비문자 계층의 여성으로, 당대 거의 모든 여성들이 그러했듯이 가부장적 가족제도 안에서 차별과 희생을 겪었다. 식자인 남편의 모진 학대와 냉대 속에서 부엌데기로, 소박데기로, 바리데기로 살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를 버린 남편과 그 남편을 빼앗아간 첩에 대해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품기는커녕 연민과 자비로 보듬었다.” 안병무가 주창한 민중신학이 선천댁에 대한 ‘연민의 윤리’에서 발견한 민중의 자기초월적 단초라는 얘기이다. 14세기 독일 신비주의 사상의 대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하느님-아기를 낳음’에 견주어서도 설명한다. 에크하르트는 하느님의 본질을 ‘낳음’이라고 말한다. 오구굿 바리데기를 빌려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하느님의 본질은 ‘또 낳음’이고 ‘되기’이며 다시 살아오는 그 무엇 아닐까?
그래서일 것이다. 오구굿의 말미는 “되아 오소 되아를 오소서”라고 반복해 노래한다. 노래를 넘어서는 일종의 주문이다. 죽은 자가 살아서 그 어떤 무엇으로 살아오는 과정이라는 함의이다. ‘데기’는 ‘더기’의 방언이다. ‘더기’는 ‘덕’, 즉 여성의 택호(宅號) ‘댁’8을 얕잡아 부르거나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푼수데기, 천박데기, 첩더기, 심지어는 갈보라는 뜻도 있다. 따라서 바리데기는 ‘내다 버린 여자’ 혹은 ‘버림받은 여자’라는 뜻이다. 남성가부장적 권위 아래서 아들에 대한 희망을 앗아간 일곱째 딸이라는 설정은 가장 천하고 가장 낮은 자리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아버지 혹은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바리데기는 아버지를 죽음에서 구해내는 구원자로 등장한다. 역설일까? 그렇지 않다. ‘버림–구함’ 혹은 ‘던짐–건짐’의 문학적 장치는 성서의 모세로부터 각종 영웅 신화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내가 말했던 보편은 대개 이러한 것들이다. 나는 내 어머니를 묵상할 때마다 늘 이 지점을 서성인다. 내 운문적 정조(情調)가 머물러 있거나 어쩌면 방황하는 경계일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버림받았지만 재생과 환생의 화신이 된 바리데기가 있고, 삼중제석을 낳은 당금애기와 연꽃으로 환생하여 만좌(滿座)맹인의 눈을 뜨게 한 심청이 있으며, 가장 낮은 자리에 임해 부활하신 구원자 그리스도가 있다.

* 이윤선 박사님의 연재 “기독교와 한국 전통문화의 화해를 위하여”를 마칩니다. 그동안 좋은 글 보내주신 박사님께 감사드립니다.– 편집부


1 1906년 첫 한글 공인본 『신약젼셔』에 최종적으로 선택된 용어이자 유일성, 초월성, 위대성의 삼위일체적 개념.
2 조선시대 천주교를 이르던 말, 천주학.
3 옥성득(UCLA 석좌교수)은 마틴 선교사의 사례를 들어 성취론(成就論, fulfillment theory)을 설명한다. ‘만일 내가 예수교를 따르면 유교를 버려야 하는가?’라고 질문하는 중국 지식인들에게, 보유론(補儒論, accommodation theory)을 수용하되, 예수교 안에 유교가 들어 있으므로 참 예수교인이 되면 참 유교인이 된다는 초유론(超儒論)으로 설득한다. 가장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독교를 중심에 두고 다른 종교나 이념을 포섭한다는 점에서 호혜평등한 이론이라고 보기 어렵다. 종교든, 문화든 호혜평등의 원칙에 서 있지 않으면, 설령 그것이 전략적인 방안이라 할지라도 온전한 상생은 아니다.
4 넋반 혹은 반야용선이라고 한다. ‘넋(혼과 백)을 담는 바구니’라는 뜻으로 넋을 저승으로 싣고 가는 역할을 한다.
5 저승에서 죽은 사람을 재판하는 열 명의 불교 대왕을 말한다. 진광왕, 초강대왕, 송제대왕, 오관대왕, 염라대왕, 변성대왕, 태산대왕, 평등왕, 도시대왕, 오도 전륜대왕이다. 죽은 날부터 49일까지 매 7일마다 심판을 하고 이후로는 백일, 소상, 대상 때에 차례로 심판을 한다.
6 상여가 다리를 건널 때 하는 소리.
7 장두하(葬頭河)라고도 한다. 불교의 삼악도(三惡道)를 부르는 말로 지옥도, 축생도, 아귀도를 뜻한다.
8 남편의 벼슬 이름이나 처가, 본인의 고향 이름 따위를 붙여서 부르는 ‘집’의 호명이다. 남의 아내를 대접하여 이르는 말로도 쓰였다. 예컨대 영월댁이라고 하면 영월 지방에서 시집온 아내라는 뜻이다.



이윤선 | 민속예술을 전공하였다. 『남도민속음악의 세계』 등의 저서가 있다. 남도민속학회 회장,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10월호(통권 742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