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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기독교와 한국 전통문화의 화해를 위하여 11]
문화·신학·목회 (2020년 9월호)

 

  당금애기와 제석(帝釋)의 알고리즘
  

본문

 

| <심청가> 중타령에 나타난 암시와 복선(伏線)
중 올라간다. 중 하나 올라간다. 다른 중은 내려오는디 이 중은 올라간다. 저 중이 어디 중인고, 몽은사 화주승이라. 절의 중창 하랴하고, 시주집 내려왔다. 날이 차츰 저물어져 서산이 침침하여 급급히 올라간다. 저중의 차림 보소. 저 중의 거동 보소. 굴갓 쓰고 장삼 입고 백팔염주 목에 걸고 단주 팔에 걸고 용두 새긴 육환장 쇠고리 많이 달아 처절철 툭딱 짚고 흔들흔들 흔들거리고 올라갈제, 중이라 하는 것은 절에서도 염불, 속가에서도 염불, 염불을 많이 하면 극락세계 간다더라. 나무아미타불 아~~ 상래소수공덕혜요 해회향삼처 실원만 원왕생 원왕생 세불충천 제갈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염불하고 올라갈제 한 곳을 살펴보니 어떠한 울음소리 귀에 어른 들린다. 이 중이 깜짝 놀래 저 울음이 웬 울음, 이 울음이 어쩐 울음, 마외역 저문 날의 하소대로 울고 가는 양태진의 울음이냐. 이 울음이 웬 울음, 여호가 변하여 날 흘리랸 울음일거나, 이 울음이 웬 울음, 죽장을 들어 메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기웃거리고 올라갈제한 곳을 살펴보니 어떤 사람이 개천물에 풍덩 빠져 거의 죽게 되었구나.

익히 알려진 판소리 <심청가>의 ‘중 올라가는 대목’이다. 판본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강의 서사는 비슷하다. 가사 중에 등장하는, 개천물에 빠져 죽게 된 사람은 심청의 아버지 심학규이다. 심청을 기다리던 중 더듬더듬 문밖으로 나갔다가 개천물에 빠져버린 상황이다. <심청전>이라는 거대 서사는 곽씨 부인의 죽음과 심청의 출생으로부터 시작하지만 심 봉사가 물에 빠지는 장면, 중이 올라와 구하는 장면 등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수상한 복선(伏線)은 반복된다.
판소리라는 노래로 변환된 이후에도 리듬이나 선율의 변별을 통해 암시는 확장된다. 신격이나 기이한 인물이 등장할 때 곧잘 사용한다는 엇모리장단이 그중 하나이다. <흥보가>에도 중이 나와 집터를 잡아주는 광경이 묘사되는데, 역시 엇모리장단을 사용한다. 다른 점은 <흥보가>의 중은 내려오고 <심청가>의 중은 올라간다는 것뿐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흥보가>의 흥보는 지상의 어떤 존재를, <심청가>의 심청은 천상의 어떤 존재를 암시한다고나 할까. 판소리의 중요한 패트런(후원자)이었던 조선 후기 양반들의 기호 때문이기도 하지만, 난해한 한문 투의 사설, 중국 고사의 원용 등 서민들은 이해하기 힘든 용어들이 즐비하다. 그나마 장단과 선율에 얹어 이면을 그려주니 다행이랄까.
몇 가지만 짚어본다. ‘몽은사’(夢恩寺)라는 사찰 이름부터가 심상찮다. 문자 그대로 풀면, 꿈속의 은혜, 꿈속의 사찰이다. 통상 ‘은혜를 입은 절’이라고 풀이한다. 화주승(化主僧)이야 걸식을 토대 삼은 비구(比丘, 남자 승려) 탁발승의 일원이니 특별한 해석이 필요치 않겠지만, 사찰의 중창(重創)이라는 코드 또한 재건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암시이다. 어떤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새롭게 짓는 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마외역(馬嵬驛)은 중국 섬서성의 지명이다. 당나라 현종이 안녹산의 난을 맞아 피난을 가면서 어쩔 수 없이 양귀비, 곧 양태진(楊太眞)을 죽인 곳이다. 고사를 인용한 심학규의 상황 설정 또한 암시로 읽어야 한다.
주목할 것은 화주승의 행색이다. 벼슬한 중이 쓰는 굴갓을 썼다거나 도가 높은 스님이 짚고 다니는 육환장(六環杖)을 들었기 때문이다. 비범한 도사 혹은 천계의 인물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심청의 인당수 희생과 연꽃 환생에 이르기까지 암시와 복선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심청가>에서 화주승으로 묘사된 이 인물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 <흥보가>의 도승(道僧)에서 무속의례 제석(帝釋)까지
중의 뒤를 따라간다. 이 모롱 지내고 저 고개를 넘어서서 고봉정상 두루봉에 저 중이 가다가 접붓 서며 이 명당을 알으시오. 천하지제일강산 악양루 같은 명당이니 이 명당에다 님좌병향오문으로 대강 성주를 하였으면 명년 팔월 십오일에는 억십만금 장자가 되고 삼대 진사 오대 급제 병감사가 날 명당이니 그리 알고 명심하오.

박봉술 바디 <흥보가> 중 ‘집터잡이’ 대목이다. 신재효가 정리한 사설로 재구성된 예들은 더 풍부하다. “감계룡 간좌곤향 탐낭득 거문파 반월형 일자안에 문필봉 창고산이 좌우에 높았으니~.” 풍수적으로 재물과 벼슬을 잉태하는 명당 터를 한자어 투성이로 장황하게 읊어나간다. <심청가>의 화주승이 심 봉사를 물에서 살려내고 종국에는 눈을 뜨는 대목의 복선으로 기능하는 캐릭터임에 반해, <흥보가>의 중은 도승으로 출현하여 명당을 점지해주는 캐릭터로 기능한다. 훨씬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이라고 할까. 하지만 무속의례에 나타나는 중은 명당터를 비롯하여 대궐 같은 집을 지어주고 벼슬도 하게 해주며 온갖 이승의 복락을 만들어주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 중이 제석천(帝釋天)이고, 이 신격이 등장하는 거리가 제석굿이다.
한편 제석(帝釋)은 무당이 모시는 신의 하나로 집안 사람들의 수명이나 곡물, 의류 및 화복에 관한 일을 도맡아 하는 신격으로 나타난다. 가신(家神)신앙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신격이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의 ‘제석오가리’ 항목을 기술하면서 필자는 조상신, 농신 등을 지칭한다고 해석해두었다. 흔히 제석오가리, 제석단지, 성주오가리, 성줏단지, 조상단지, 신줏단지, 시준단지 등으로 부른다. 불교의 우주관으로 보면, 사천왕과 삼십이천을 통솔하면서 불법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보호한다. 아수라의 군대를 징벌하기도 한다. 수미산의 정상인 도솔천에 거주하는 천주(天主), 수미산 꼭대기 도리천의 임금, 호국안민(護國安民)하고 인간의 선악을 주재하는 신으로 신앙된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하나님’이다.
전북 익산 제석사지의 사례가 흥미롭다. 사원에서 제석정화(帝釋幀畫)를 봉안하고 그에 대한 신앙 행위를 해왔다. 이때의 제석은 호법선신중(護法善神衆)으로서의 신중(神衆) 기능을 한다.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神將), 곧 불법을 지키는 문지기 신이다. 삼국시대부터 언급되기는 하지만 제석신앙은 고려 왕실에서 확장된다. 고려 전기의 제석신앙은 왕실 위주였다. 신라의 제석신앙을 계승함으로써 불교신앙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위상이 매우 높았다. 이때의 제석은 왕을 넘어 황제격의 제왕이다. 정치적 통솔, 이질적인 세력 장악을 위해 적극 활용했을 것이다. 이후 무속화되어 민간신앙, 즉 가신신앙으로 자연스럽게 변화되었다. 고려 의종 때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제석신앙과 관음신앙이 전국적으로 성행하였다. 제석신앙이 지니고 있는 장수 기원의 현세기복적인 성격은 도솔 왕생 사상과 관련하여 불교 교리의 실천적 맥락이 강하다. 이런 점에서 고려 후기에 무속화된 제석신앙과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들을 종합해보면 제석신앙이 불교적인 신으로 출발하여 민속신앙으로 수용되고 가신신앙과 접맥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흥보가>의 도승이나 <심청가>의 화주승을 제석에 비유하는 이유는 이런 확장된 제석의 서사 때문이다. 그렇다고 제석이 도도하고 고고한 위치에 좌정한 것만은 아니다. 저잣거리에 나오게 되면 구겨지고 비틀어져 희화화된다. 불교가 배척되었던 시대 탓도 있겠지만 판소리와 무속의례, 가신신앙까지 두루 포획하고 있는 불교적 제석이 내동댕이쳐진다. 민요 중타령을 통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 민요의 중타령과 당금애기
동냥왔네 동냥왔네 산골의 중놈이 동냥왔네 / 동냥이사 안내리마는 줄 이가 없어서 몬 주겄네 / (중략) / 왜 우리가 이러다가 애기를 배며는 어쩔것네 / 애기배면 어려운가 뒷동산천 올라가서 / 벅누눈을 긁어다가 정술에다가 타묵으며는 / 속절없이도 떨어지네

임동권이 수집한 남해 지방 중타령의 한 대목이다. 비슷한 버전들이 여럿 있다.

동냥왔네 동냥왔네 산골 중이 동냥왔네 / 동냥은 있네만은 줄 이 없어 몬주겄네 / 울어매는 장에 가고 울아부지 들에 가고 / 우리올캐 친정 가고 우리오빠 처가 가고 / (중략) / 청우에라 섰던 중이 달라든다 달라든다 / 못방으로 달라듬서 / 우리 둘이 이러다가 아가 배면 우쩌겄네 / 딸
이라도 놓거덜랑 물이라꼬 이름짓고 / 아들이라 놓거덜랑 산이라꼬 이름짓게 / 산에 가서 저 부르니 물이 와서 대답하고 / 물이라꼬 저 부르니 산이 와서 대답하네


이 무슨 상황인가? ‘스님’이나 ‘중’이란 호명은 어디로 날아가고 ‘중놈’이라는 상스러운 호칭이 난무한다. 시주를 나온 땡중이 혼자 집을 지키는 소녀를 농락하는 장면을 그리기 때문이다. 민요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퍼져 있는 맏딸애기(당금애기를 부르는 호칭 중 하나) 노래 중 일부이다. 류경자는 그의 글 “무가 <당금애기>와 민요 ‘중노래, 맏딸애기류’의 교섭양상과 변이”(「한국민요학」 제23집)에서 민요 중타령을 인용하며 이렇게 분석한다. “현실에 기반을 둔 민요는 신화와는 다른 세계이다. 신화적 기반이 없거나 약화된 상황과 마주쳤을 때, 민요는 신화의 서사구조를 그대로 수용할 수 없게 되며, 자신들이 당면한 현실에 이끌림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외양상 신화와는 서사구조가 전혀 다른 파격적인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파격 치고는 상당히 난해하다. 중의 농락 혹은 소녀와의 음탕한 정사를 노래한 것일까? 하지만 중타령이 제석의 계보를 잇는 신화에서 파생되었음을 주목하면 겉으로 드러나는 노랫말만으로 이면을 톺아보기 어렵다. 불교의 쇠락과 중에 대한 비하가 기표라면 그 안에 숨은 보다 근원적인 기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충북 음성 지역의 중타령을 보고한 임동권의 『한국민요집』 제4집을 참고해보자.

중상 하나이 내래온다 중상 하나이 내려온다 / 얽고도 검은 중상 검고도 푸른 중상 푸르고도 검은 중상 / 송낙을 써서 중일느냐 장삼을 입어서 중일느냐 / 씨대 쌋갓을 눌라쓰고 백포장삼을 떨쳐입고 / 백발염주를 목에다 걸고 흐늘흐늘 나려온다 / 어떤 중상이 나려오나 검구도 푸르고
도 / 푸르고도 얽은 중상 허늘허늘이 내려온다 / 바라를 사오 허바라를 사오 이 바라를 사시면은 / 없던 애기두 점지허고 있는 아기도 수면장수[수명장수]를 하올거요.


이번에는 땡중 캐릭터가 아니라 수명장수와 삼신할미의 기능까지 겸비한 신격으로 바뀌었다. 아기를 점지해주고 수명을 늘려주는 전래적 신격은 칠성신이다. 불교가 토착화되면서 수용한 한민족 유구의 토착 신격 중 하나라고나 할까. 부처님과 더불어 좌정한 각 사찰의 칠성각 혹은 칠성당이 이 위상을 말해준다. 의문이 든다. 판소리에서처럼 물에 빠진 봉사를 구해주거나 마음씨 착한 흥부에게 명당터를 잡아주거나 혹은 전국의 가신신앙으로 좌정하여 조상신을 오버랩시킨 기능, 하지만 저잣거리에 불려나와 소녀를 농락하는 불한당으로 그려지는 땡중 캐릭터들의 본질적인 이미지는 무엇일까?
전국에 분포하는 제석굿을 통해 이들 신화세계를 엿볼 수 있다. 제석굿은 무당의 열두 거리 중 하나로 제석신이 하강하여 산자들에게 재화와 복락을 내려준다는 굿거리이다. 색채로만 보면 불교 신격의 차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래와 놀이를 반복하면서 진행하는 변화무쌍한 천상(天上) 여행기이다. 남도 지역의 제석굿에서는 당금애기 서사가 약화되지만 전국 대부분의 제석굿에서는 당금애기와 아들 삼형제의 스토리가 핵심을 이룬다. 마치 삼장법사와 손오공의 구도 여행을 보는 듯하다. 그렇다면 중타령에 나오는 중이 하늘에서 내려온 제석이고 집을 혼자 지키던 소녀가 당금애기라는 사실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나.

| 당금애기와 제석(帝釋)의 이미저리(imagery)
옛날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아들 아홉 형제를 두었으나 딸이 없었던 어느 가정이 있었다. 고래로의 기억을 더듬자면 아들 낳기를 바라는 기자(祈子)신앙이 중심일 듯한데, 이 가정은 무언가 달랐던 모양이다. 딸을 점지해달라고 치성을 드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낳은 딸 이름이 ‘당금애기’이다. 왜 이름을 당금애기라고 지었을까? 이에 대해선 연구된 바가 없다. 아들 아홉이 있는 상황을 설정했으니 막내딸이어야 하는데 첫딸 혹은 큰딸이라는 의미의 ‘맏딸애기’로 불린다. 국어사전에는 ‘아주 귀중하게 여기면서 키우는 아기’라고만 풀이해두었다. 남도 지역에서 김치, 술, 젓갈 따위를 발효시키는 것을 ‘당근다’(당금)고 하는데 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향후 숙제로 남겨둔다.
당금애기가 자라 이윽고 소녀가 되었을 때 마침 부모와 오라비 등이 출타하게 되어 집에 혼자 남게 되었다. 그때 서역에서 불도를 닦은 스님이 당금애기를 찾아와 시주를 청하였는데, 이러저러한 에피소드를 거쳐 소녀가 잉태를 하게 된다. 서역에서 오신 스님이라니, 혹시 달마가 동쪽으로 오신 까닭과 관계된 것일까? 영화로도 만들어져 유명해진 조주스님의 문답 중 하나가 연상된다.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동쪽 당나라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뜰 앞의 잣나무’라고 대답한다. 선문선답이니 이해하기 힘들다. 어쨌든 집에 돌아온 가족들은 당금애기가 스님의 씨를 잉태한 사실을 알고 지함(地陷, 큰 구덩이) 속에 가두거나 쫓아낸다.
열 달 후 당금애기는 세 쌍둥이를 출산한다. 이후 아비 없는 자식으로 놀림 받던 삼형제는 일곱 살이 되자 당금애기와 함께 서천국으로 아버지를 찾아나선다. 서천국은 표면상으로는 인도라는 나라를 말하지만 서쪽 하늘이라는 불교적 혹은 토착신앙적 세계관으로 풀이해야 한다. 어떤 절에 다다르니 한 스님이 친자 확인 시험을 한다. 종이옷을 입고 청수에서 헤엄치기, 모래성을 쌓고 넘나들기, 짚북과 짚닭 울리기 등이 그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고 스님과 세 아들의 피가 합쳐지는 것을 통해 친자임을 확인하게 된다. 이후 아들들에게 신(神)의 직분을 부여하여 제석신이 되었고 스님과 당금애기는 승천하였다. 오늘날 전국에 분포하는 무속의례 제석굿의 전거가 여기에 있다.
당금애기 이야기는 60여 편의 각편이 있다. 그만큼 다양하다는 뜻이다. 지역에 따라 시주 스님이 하룻밤 자고 가면서 딸아이가 구슬 세 개를 품에 받는 꿈을 꾸고 잉태하는 버전, 시주를 받은 후 나가면서 딸아이에게 쌀 세 톨을 먹게 하거나 손목을 잡고 혹은 머리를 만져 잉태하는 버전 등으로 각양각색이다. 지역에 따라 맏딸아기가 토굴에 감금되어 그 안에서 잉태하는 사례도 있다. 제주도의 경우는 삼형제가 과거를 봤다가 중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낙방하고 여차여차하여 무제(巫祭)를 받는 신이 되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 처한 환경에 따라, 혹은 종속된 신앙체계나 종교에 따라 스토리를 취사한다. 이들을 종합해보면 단군신화나 주몽신화와 아주 유사하다는 점을 눈치챌 수 있다. 천상과 지상, 즉 양(陽)과 음(陰)의 교합, 지함 혹은 토굴 등 동굴이나 알을 통한 출
산과 성장 스토리가 키워드이다.
여기서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지극한 비유와 상징을 통한 잉태와 출산, 혹은 탄생에 이르는 구도 여행이다. 이어서 소개하겠지만 우리나라 무속의 양대 신화인 오구굿의 바리데기, 세경본풀이의 자청비까지 유사한 이야기 구성을 취하고 있다. <심청가>에서 물에 빠진 심 봉사를 구출하는 장면, <흥보가>에서 명당 터를 잡아주는 도승, 심지어 저잣거리에서 맏딸애기를 유혹하여 잉태시킴으로 민중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는 땡중의 이미지까지 그 안의 알고리즘은 사실 다르지 않다. 이 이야기는 초상날 상가 마당에서 벌어지는 다시래기굿과 판소리의 <심청전>, 전국에서 연행되는 무속의례의 제석굿을 횡단하며 다시 태어남과 거듭남이라는 거대 이미지를 재구성해낸다.

| 환인(桓因)과 대웅(大雄)을 횡단하는 제석 알고리즘
민요와 판소리의 중타령으로부터 무속의례의 삼중 제석, 가신신앙 중 조상신으로 좌정한 제석오가리(전라도) 혹은 시준단지(경상도), 불교의 제석천에 이르기까지 전천후 횡단의 맥락이 흥미롭다. 제석신앙이 불교의 세계관과 합치된 것은 고대 우리 민족의 하늘 관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제석천(帝釋天)이 거주하는 도리천(忉利天)이 ‘하늘+님’과 동격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도리천은 무엇이고 제석천은 무엇인가. 도리천은 33천 가운데 수미산 꼭대기에 위치해 제석천이 머물고 있다는 불교의 이상세계이다. 제석천은 불교의 이상인 수미산 꼭대기에 있으며 사방 32성의 신들을 지배한다. 도리천의 왕이며 사천왕과 32천을 통솔하면서 불법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아수라의 군대를 정벌한다. 본래 인도 힌두교의 인드라(Indra) 신이었는데 불교에 수용되면서 변한 캐릭터이다. 선덕여왕이 자기가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소를 알지 못하는 신하들이 유언에 대해 다시 묻자 ‘낭산(狼山)의 남쪽 봉우리’라 했다. 낭산을 수미산 삼으면 서라벌이 세계의 중심이니 신라의 왕이 제석천이라는 메시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일까. 『삼국유사』(1281, 충렬왕 7년)에는 “옛날에는 환인을 일컬어 제석이라”고 했다. 국조단군신앙과 불교의 제석을 동일시하는 일연(一然) 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 그것은 아니다. 도처에 단군과 제석을 혼용하는 사례들이 보고된다. 이승휴가 쓴 『제왕운기』(1287, 충렬왕 13년)에서도 환인을 제석천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또 단군신화에서 단군의 할아버지를 묘사할 때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제석과 환인을 같은 맥락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이다.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던 ‘하늘’에 대한 외경심이 불교 전래 이후 제석에 투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찰 대웅전(大雄殿)의 대웅(大雄)이 산스크리트어 ‘마하비라’(자이나교의 창시자, ‘위대한 영웅’이라는 뜻)를 번역한 말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환인(桓因), 곧 단군과 연관시켜 해석하려는 시도가 여기서 나오게 된다. 대웅전을 옹위하고 있는 산신각과 칠성각 등 토착종교의 아우라가 그것을 대변한다는 주장이다. 불교가 칠성이나 산신 등의 토착종교를 수용한 것이 아니라 토착종교가 불교라는 외피를 빌려 입었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다만 불교는 유일신 창조주를 인정하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민간신앙의 무속의례나 가신신앙 쪽으로 강화되었을 뿐이다.
제석과 단군에 대한 해석은 초기 기독교의 삼위일체 해석과 긴밀한 관계를 맺기도 한다. 옥성득의 『한국 기독교 형성사』(2020) 연구에 의하면, 선교사 헐버트는 애니미즘, 귀신숭배, 마술, 신인동형론 등의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보이지 않는 한 분인 환인(桓因)이 바로 ‘하 님’이며 그에 대한 우상은 만들어진 적이 없고 그 ‘하 님’은 기독교의 하나님과 동일하게 초월해 계시며 삼위일체의 신이라고 이해했다. 무엇보다 환웅을 성령으로, 단군을 환웅과 동정녀 웅녀 사이에 무흠수태로 성육신한 신인(神人)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그의 연구는 존스의 해석으로 이어진다. 존스는 환인제석을 최고의 무당으로, 단군을 그의 후손으로 해석했다. 존스는 환인제석을 부처보다 열등한 불교 도솔천의 천신 중 하나인 제석천으로 이해한 『삼국유사』의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단군과 샤머니즘의 연관성을 강조했다. 게일은 ‘한-크신-분’(유일성-초월성-위대성)으로 초기 하 님을 이해했으며 단군신화의 삼위일체적 구조를 인정하게 된다. 이후 여러 논쟁들을 거쳐 1906년 첫 한글 공인본 신약인 『신약젼셔』에 하 님이 최종적으로 채택되었다. ‘하늘’(초월)과 ‘하나’(유일)의 맥락이 통합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필자가 주목한 것은 한국 초기 기독교의 폭발적인 부흥이 유일신이자 초월자로서의 ‘하 ’에 대한 우리 민족 고유의 관념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체적인 해석이었다. 다른 식민지에서는 불가능했던 기독교 민족주의가 한국에서 가능했던 이유를 설명하면서, ‘하 님’은 한국 기독교 민족주의의 산물이었고 한국교회의 영성에서 나온 상상의 결정체였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마치 알에서 애벌레로 성장하고 애벌레가 번데기로 변태하고 번데기에서 나비로 우화하는 과정으로 비유할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지난 글들에서 내가 강조한 것들인데, 글자 하나 공유하지 않았던 터인데도 공감할 수 있었으니 이심전심이었다고나 할까. 물론 다양한 매커니즘과 알고리즘을 기독교의 유일 논리로 수렴해버리는 성취론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차후 기회가 되면 이에
관해 해명해보도록 하겠다.
열한 번의 긴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전환점을 맞이했다. 곰과 뱀, 쥐와 잉어 등 다루어야 할 콘텐츠가 쌓여 있으나, 일단은 무속신화 바리데기를 다음 차에 다루는 것으로 연재의 일단락을 맺고자 한다. 제석을 환인으로 이해한 한해륙(한반도)의 고대인들이 당금애기의 서사를 어떻게 수용하고 재구성했는지 돌아봤다. 삼칠일 동안의 동굴과 곰을 맏딸애기의 토굴, 곧 당금애기에게 투사했다. 제석이라는 하 님적 성격보다는 마리아에 비견할 수 있는 당금애기의 서사를 더욱 주목할 이유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결국 심청으로 환원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당금애기도 심청이다. 환웅에게 정기를 받아 단군을 낳은 곰과 같다. 창밖의 햇살을 배에 쬐여 주몽을 잉태한 유화부인과 같다. 5년에서 17년을 기다려 우화등선하고 지상에서의 짧은 삶을 살다 가는 매미와도 같다. 이들이 잉태하거나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전의 자신을 죽여야만 한다. 줄 자르기 탯줄 코드를 통해 내가 말하고자 했던 핵심이다. 필자의 생각이 좀 더 숙성되면 예수의 탄생과 십자가 달림을 당금애기와 심청의 인당수에 견주게 될 것이다. 줄곧 묵상한다. 코로나19로 더욱 가속화된 불확실성의 시대, 눈먼 시대를 위해 인당수로 가는 선지자들의 발걸음을.


이윤선 | 민속예술을 전공하였다. 『남도민속음악의 세계』 등의 저서가 있다. 남도민속학회 회장,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9월호(통권 7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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