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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한국 근대소설 속의 기독교 조명 07 (마지막회)
문화·신학·목회 (2020년 8월호)

 

  선교사들이 쓴 선교소설들
  

본문

 

| 국민문학이라는 것
해방 직후인 1945년 12월 그믐날, 수유리 봉황각에 좌파 문인 여덟 명이 모였다. 흔히 ‘봉황각 좌담회’라 불리는데, ‘문학가의 자기비판’이라는 명분 아래 일제하에서의 굴신 또는 훼절을 짚고 넘어가자는 취지로 모인 자리였다. 사회는 김남천. 임화와 함께 해방기 좌파 문학 운동을 이끌다 함께 월북한 뒤 남로당계 숙청 이후 이름을 감춘 인물이다. 일제 치하에서 지조를 지켰다고 자부하는 평론가 한효가 “준열한 자기비판”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런 뒤 일제 말기 모호한 행보를 보인 임화와 여러 편의 일본어 소설을 쓴 김사량의 양심선언이 있었다. 언어는 단순한 표현 ‘수단’일 뿐이라고 여긴 김사량의 일본어 소설은 장혁주 같은 친일 문인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달랐지만, 사람들은 그가 일관되이 견지해온 반식민주의의 진정성조차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언어란 이렇듯 작가의 국적과 함께 국민문학의 정체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요체이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한국 사람이 한글로 쓴 문학을 한국문학이라 하고, 일본 사람이 일본어로 쓴 문학을 일본문학이라고 손쉽게 정의한다. 그러나 국가 간 인구 이동이 활발해지고 다중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많아지는 상황을 고려해보면, 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작가의 국적과 언어가 꼭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 작품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역사나 문화적 전통, 또는 제재나 배경도 문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문학을 한국문학이라고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논의는 매체인 언어 때문에 불가피했지만, 김은국의 영어 소설 <빼앗긴 이름>이나 <순교자>, 이미륵의 독일어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둘러싼 논의는 작품에 쓰인 언어와 작가의 국적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김은국이나 이미륵은 본래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이었으나, 뒤에 각각 미국과 독일 국적을 취득한 법률상 ‘외국인’이었다. 이런 문제는 미국 한인 문학, 재일동포 문학, 중국 조선족 문학, 러시아 고려인 문학 등을 보는 인식에도 자주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국가 간, 인종 간 경계가 느슨해지고 더불어 언어의 통합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이런 논의는 더욱 복잡해질 수도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이런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게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이 자리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작품들은 개신교 선교 초기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쓰인 소설들이다. 하나는 제임스 게일(James Scarth Gale, 1863-1937)이 쓴 <선구자>(The Vanguard)이고, 다른 하나는 애니 로리 아담스 베어드(A. L. Adams Baird, 1864-1916) 선교사가 쓴 <고영규전>과 <부부의 모본>이다.(<선구자>는 심현녀 역본을, <고영규전>과 <부부의 모본>은 소재영과 김경완이 엮은 『개화기소설』 수록본을 텍스트로 한다.)
잘 알려진 대로 두 사람은 다 미 북장로교 선교사들로 게일은 캐나다 국적의 선교사이고, 애니 로리는 미국 국적의 선교사였다. 선교 초기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 살면서 한창 선교 활동을 벌이던 중에 지은 작품들이긴 하지만, 이들 작품이 한국문학 범주에 들 수는 없다. 원작이 영문으로 되어 있는 <선구자>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다만 이들 작품이 한국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아 한국인의 역사와 문화적 개별성을 반영하고 있는 ‘한국 서사’라는 점에서 눈여겨 살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외국인들에 의해 쓰인 한국 서사는 이들 작품 외에도 얼마든지 있다. 최근 일본의 세리카와 데쓰요(芹川哲世) 교수는 한국의 3・1독립운동을 주요 제재로 삼은 일본 작가들의 작품들을 번역 출판한 바 있다.(『일본 작가들 눈에 비친 3・1독립운동』) 이들 외국인 작가들에 의해 창작된 작품들은 대표적인 한국 서사들이라 볼 수 있겠거니와, 역사 문화적 관점에서 우리 스스로를 통찰할 수 있는 새로운 스펙트럼이 되기도 한다.

| 소설로 쓴 초기 교회사–게일의 <선구자>
<선구자>의 작가 게일은 1888년 12월 한국에 와서 1928년 은퇴할 때까지 평생을 한국 선교에 헌신했다. 그동안 상당한 논의와 연구가 축적된 만큼 선교 초기 그의 선교 활동이나 업적에 대한 더 이상의 언급은 자칫 뱀의 다리를 그려넣는 일이 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한국 기독교 선교에 이바지한 그의 공적은 실로 크고 위대한 것이다. 그는 ‘선교사’ 말고도 언어학자, 저술가, 번역가, 역사가, 민속학자, 성서 번역가, 목회자 등으로도 불린다. 그가 한국에 머문 40년 가까운 기간에 이뤄낸 성과를 살피면 이런 수식이 결코 지나친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특징적인 면모는 그가 여러 선교사들 중 누구보다도 지적 호기심과 학구적 열정이 뛰어난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40여 권에 달하는 각종 저술과 “엄청난 양”(이상규, “부산에 온 첫 거주 선교사 제임스 게일”)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번역서와 논문이 단적인 예라 할 수 있으나, 다양한 외국어 능력과 선교지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그는 선교사로서는 어울리지 않게 사람을 만나 대화로 상대방을 설득하고 공감시키는 데 취약했던 듯하다.(이상규, 같은 글) 대신 글로 소통하고 자기 생각을 펴는 데 익숙한 지식인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또 하나 그의 특징적인 면모는 한국인의 눈높이에 맞춰 한국을 이해하고 한국 친화적인 자세를 견지한 선교사였다는 점이다. 한국의 대표적 고전소설인 <구운몽>,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과 이규보의 한시 등을 번역하고, 『조선풍속지』, 『금강산지』, 『조선의 결혼』, 『전환기의 한국』, 『한국의 설화』, 『한국인의 역사』 등을 써 서양에 알린 것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 일반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1954년 한국에 온 영국 성공회의 러트(Richard Rutt, 노대영, 1925-2011) 신부가 이런 게일의 면모에 공명하여 ‘게일전기’까지 쓸 정도로, 게일은 지금까지도 이 부문에서 독보적이라 할 만큼 특별하다.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게일의 이해와 관심은 아마도 스코틀랜드계 캐나다인인 아버지와 네덜란드계 미국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출생 배경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어려서부터 체득한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세계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촉매 구실을 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기억해둘 만한 사실은 이 땅에서의 봉건적인 신분의식을 깨는 데 기여한 공로이다. 게일은 연동교회를 담임하던 시절에 갖바치 출신의 고찬익과 이명혁, 광대 출신의 임공진을 장로로 세웠다. 이는 양반 출신 교인들의 강한 반발과 교회 분열을 무릅써야 하는 일이었다. 게일은 이 일을 해냄으로써 오랜 세월 차별과 억압 속에 살아온 천민들을 복음 안으로 불러들이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
<선구자>는 게일이 연동교회를 시무할 때인 1904년에 지은 작품이다. 게일은 서두에서 한국에서의 선교를 “교양과 용기”가 필요한 전쟁에 비유하며, “전쟁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생생하게 묘사할 것이라고 적었다. 이를 위해 인물들을 “약간 변장”하고 “필요한 정도 만큼의 허구적인 요소를 도입”할 것이라고도 했다. 근대소설의 본질적 특성인 사실성과 허구에 대한 언급인데, 이해조의 <화의 혈>을 연상케 한다. 이해조는 <화의 혈> 서문과 후기를 통해 소설의 사실성과 허구가 근대소설의 요체임을 맨 처음 확인시켜 준 작가이다. 이로써 <선구자>는 비슷한 시기에 생산된 우리 신소설들의 성격이나 미학적 완성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될 수도 있겠다.
<선구자>가 인물을 변장시키고 허구적인 요소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살아 있는 당대의 실존 인물들을 모델로 하고 있는 만큼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 신소설에서 생존인물 김정식을 모델로 한 <다정다한>(1907)과 같은 경우라 할 것인데, 이 또한 서양의 노벨로서의 <선구자>와 우리 신소설 사이의 서사 방식의 차이점을 견주어볼 수 있는 좋은 대상일 것이다. 어원으로 따지면 노벨은 우리의 신소설이나 다름없는 개념이다. 신소설이 이전의 고대소설과 다른 새로운 서사 양식이라는 뜻을 담고 있듯이, 노벨 역시 서양의 전통적 서사 양식인 로망스(romance)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 등장한 서사 양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구자>를 읽다 보면 불가피하게 노벨과 신소설 사이에 가로놓인 깊은 간극을 실감하게 된다. 일찍이 신소설을 “양장한 고대소설”이라고 규정한 연구가 있었거니와(신동욱, “신소설의 서구문화 수용의 태도”), <선구자>보다 여러 해 뒤에 성행한 우리의 신소설들이 오히려 미학적 완성도 면에서 <선구자>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에 대한 미의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현상일 것이다. 우리 신소설 작가들과는 달리 대학에서 전문적인 문학교육 과정을 거친 게일의 문학적 소양이 <선구자>의 미학적 완성도를 끌어올린 저력으로 보인다.
작품은 선교 초기 서울과 평양을 중심으로 사역한 선교사들의 활동상이 서사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핵심 인물은 윌리스이다. 작품은 모두 42개의 서사 단락으로 구성돼 있으며, 각각의 단락은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 형식을 취하고 있으니 일종의 피카레스크식(picaresque) 구성의 연작소설이라 할 만하다. 각각의 이야기에는 서로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여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을 이루어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국 초대 교인들의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작품은 1890년에서 1900년대 초에 이르는 10년 남짓한 기간의 시간적 배경 안에서 이 땅의 복음화에 헌신한 선교사들의 활동과 이들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초기 신앙인들의 실상을 적실히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작품은 ‘소설로 쓴 한국 초대교회사’로서의 특징이 선명하다.
그런데 이 모든 서사에는 언제나 윌리스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적어도 윌리스와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하거나, 윌리스의 활동을 제한하는 사회적 조건 같은 것이다. 작품 대부분이 윌리스 중심의 서사들로 구성돼 있고, 윌리스가 다소 미화된 측면도 없지 않아, 게일의 의도 자체가 윌리스 형상화에 있지 않았나 싶을 정도이다. 말하자면 <선구자>는 ‘윌리스 서사’나 다름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선구자’를 곧바로 윌리스로 환원시킬 수는 없으며, 더 정확한 독법은 ‘윌리스와 그 이웃들’ 정도가 될 것이다.
도대체 윌리스가 누구길래 작가 게일이 이토록 애착을 보인 것일까? 러트 주교에 의해 윌리스는 미 북장로교 선교사 마펫(Samuel Austin Moffet, 馬布三悅, 1864-1939)임이 널리 알려져 있다. 러트는 1954년부터 20년 동안 한국 선교에 종사한 영국 성공회 신부이다. 그는 게일의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에 공명하여 스스로 그를 본받고자 했다. <구운몽>과 <춘향전>을 영역하고 『풍류한국』을 내어 게일과 같이 서양 세계에 한국을 알렸다. 특히 그가 보여준 <구운몽>에 대한 깊은 이해는 국내 연구자들까지 인용할 정도이다. 가히 게일의 뒤를 이은 한국 문화 전도사라 할 만하다. 그는 『제임스 게일과 한국인의 역사』(James Scarth Gale and his History of the Korea People, 1972)를 내기도 했다. 게일은 1927년 은퇴 후 한국을 떠나 영국에 정착해 사는 동안 성공회 예배에 참석했다. 아마도 이런 인연으로 인해 게일과 러트의 연결고리가 생겼고, 러트는 게일이라는 인물을 통해 한국 선교의 큰 꿈을 품도록 자극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게일의 한국 사랑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러트에 의해 계속 이어진 셈이다.
<선구자>에 소환된 마펫의 면모는 극히 제한적이다. 마펫이나 게일 모두 한국 선교를 시작한 지 10년 남짓밖에 안 된 시점에 나온 작품이라는 점 때문일 수 있으며, 제재가 다양하고 방대한 만큼 장편이라고는 해도 지면의 제한을 의식했을 수도 있다. 이 점은 다른 작중인물들, 특히 고씨, 용이, 강씨 등과 같이 윌리스를 통해 개종한 초기 기독교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극적인 삶의 전환점을 맞은 그들의 면면을 좀 더 큰 화폭에 그려 담았으면 좋았을 것이나 그러지 못해 주제의 밀도가 느슨해진 느낌이다.
평양은 한국의 복음화를 추동한 심장부와 같은 곳이었다. 마펫의 선교사적 공적은 그가 바로 이 평양 선교의 대부였다는 점 하나만으로 충분히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격동기 평양에서 복음 선교에 투신하고 있는 마펫의 선교 활동을 추적해 보여주고 있는 게일의 입장에서 그의 열정적인 선교와 눈부신 성과는 일종의 경이였다.

윌리스는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다시 평양으로 돌아왔다. 기독교를 믿겠다는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은 장돌뱅이 노인들까지도 그를 보고 반가워했다. 그들에게 윌리스는 행운을 안겨다 주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들은 무사히 돌아온 윌리스를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윌리스가 지나가는 곳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은 그날 하루종일 운이 좋았다. 파란 눈과 금발머리를 한 그는, 조선의 아이를 잡아먹는 서양귀신과는 달리, 조선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행복과 번영을 갖다주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그는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다. 곳곳에서 개종자가 늘어났다. 그는 자신이 모든 왕국 중에서 가장 훌륭한 영혼의 왕국의 왕이 되었음을 느꼈고 그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이것은 위대한 선교사 마펫에게 드리는 게일의 헌사나 다름없다. 게일이 이렇듯 마펫 서사에 공을 들인 것은 그와의 개인적인 친분 관계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는 주요 고비마다 지원을 아끼지 않은 마펫과 특별히 친숙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작품에 보이듯이 헤론과 함께 마펫의 선교여행에 동행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게일은 자기가 가지지 못한 마펫의 특별한 선교 능력에 감화받고 그의 파란만장한 선교 행적을 글로 담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작품에는 자연스럽게 선교 초기의 교회사적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무지, 빈곤, 불신, 적의로 가득 찬 불모의 땅에 바친 선교사들의 헌신과 희생, 그를 통해 생명의 빛을 찾은 사람들의 기쁨과 열정을 어느 역사가 그토록 생동감 있게 재현해낼 수 있을까.
권력의 위세에 맞선 용기, 정치주의와 복음주의 사이에서의 고뇌, 교회 내부의 갈등과 분열, 교파주의의 횡포를 실감나게 보여준다는 점도 이 작품의 특징이다. 특히 정치주의를 둘러싼 당시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의 갈등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게일이나 마펫의 경우 3・1운동 이후 변화를 보인 것으로 알려진 복음의 탈정치화 입장이 이때만 해도 견고했음을 보여준다. 윌리스의 경우 “독립운동은 좋은 일”이며 “정치개혁도 필요한 것”이지만 “교회는 정치적 조직이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교회가 정치적 조직이 된다면 “성서 속의 영혼의 메시지는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이유였다. 게일의 분신인 매키천의 입장에서는 당시 기독교 정치주의의 중심이던 독립협회가 “여태까지 보아온 조직 중에서 가장 무책임하고도 어리석은 집합체”이며 “불쌍한 사람들”일 뿐이다. 광화문에서 열린 독립협회의 “광적이고 무질서한 집회에 역겨움을 느”끼는 윌리스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바로 그가 일하고 있는 북쪽 지방의 교인들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주고 있는 그 단체”라는 것이다. 당시 정치 문제를 둘러싸고 심각한 내홍을 겪어야 했던 교회의 현실이 눈에 잡힐 듯 그려진다. 그 밖에도 뒤에 유감없이 입증되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 일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사랑이 이때 벌써 그 가능성을 열어 보여주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작품 곳곳에서 은연중 내비치고 있는 그의 오리엔탈리즘과 마주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불편하다. ‘조선’ 또는 ‘한국’이라는 고유명사 대신 ‘동양’이라는 일반명사를 즐겨 쓰면서, 한국을 가난하고 무지몽매한 동양의 여러 나라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는 저의를 숨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배위량 부인의 선교소설 두 편–<고영규전>과 <부부의 모본>
‘선교소설’이라는 용어는 용례가 흔치 않아 낯설지만, 간단히 ‘선교사가 선교를 목적으로 쓴 소설’, ‘선교사의 선교사업을 주요 제재로 한 작품’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고영규전>과 <부부의 모본>의 작가는 흔히 ‘부산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선교사 윌리엄 베어드(William Martyn Baird, 裵偉良, 1862-1931)의 부인 애니 로리 아담스 베어드이다. 그녀의 우리말 이름은 안애리(安愛理)이며, 베어드 선교사의 우리말 이름을 따라 ‘배위량 부인’이라고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한국교회는 베어드 선교사 부부에게 아주 큰 빚을 지고 있다. 부부 당대는 물론, 두 가문이 아들과 손자까지 대를 이어 한국 선교를 위해 헌신했기 때문이다. 베어드 부부가 한국에 온 것은 1891년, 부부 모두 한국을 사랑하여 평생을 한국 선교에 헌신하다 한국에서 숨을 거두고 한국 땅에 묻혔다. 장남인 윌리엄 베어드(William M. Baird)와 3남 리처드 베어드(Richard H. Baird)도 베어드 부부의 대를 이어 한국 선교에 헌신하다 양화진에 잠들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애니 베어드의 동생 제임스 아담스(James E. Adams)는 대구 지역 선교에 일생을 바쳤으며, 그의 두 아들도 한국에서 일한 선교사였다. 부산 최초의 초량교회, 대구 최초의 대구제일교회가 이들에 의해 설립되고, 대구의 계성학교,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평양의 숭실대학이 모두 베어드 부부의 가족들에 의해 설립되었으니 이것만으로도 베어드 가족이 한국 선교와 교육 및 의료 발전에 기여한 공적은 실로 대단했음을 알 수 있겠다.
애니 베어드는 여러 방면에 두루 재능이 뛰어나고 매우 열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던 듯하다. 52세의 나이로 생을 마칠 때까지 그녀가 남기고 간 자취가 이를 말해준다. 그녀는 특히 교육 부문에 많은 공적을 남겼다. 여러 학교에서 교직에 종사하는 한편, 각종 한글 교과서를 펴내는 데 힘쓰기도 했다. 찬송가 <나는 갈 길 모르니>, <멀리 멀리 갔더
니> 등의 가사를 짓고 직접 『찬송가』를 펴낸 음악가이자 시인으로서의 업적도 탁월하다.
그녀는 생전에 모두 세 편의 소설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글소설 <고영규전>과 <부부의 모본> 외에 영문소설 『어둠을 헤치고: 빛을 찾은 사람들』(Daybreak in Korea: A Tale of Transformation in the Far East)(뉴욕, 1909)이 더 있다. 『어둠을 헤치고』는 미국교회에 보내는 일종의 선교보고서 성격의 작품으로 보이며, 한글소설 <고영규전>과 <부부의 모본>은 국내 선교 및 교육을 목적으로 한 선교소설로서, 1911년 조선야소교서회(현 대한기독교서회)에서 간행된 단행본 『고영규전』에 함께 수록돼 있다.
<고영규전>은 모두 다섯 개의 서사 단락으로 구성돼 있으며, 주인공 고영규 부부와 그의 할머니, 전도부인 등이 등장한다. 굳이 ‘전’(傳)이라는 제호를 단 것은 아직 <춘향전>, <심청전> 등과 같은 고전소설에 익숙해 있는 한국인 독자들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고영규전>은 한국인 독자들에게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작가의 선교 의도를 반영한 작품인 것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조모 밑에서 성장한 영규는 본래 인간의 본질적인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의문이 깊었으나, 장성하면서 점차 “신령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세속적인 욕망에 잠긴 인물이다. 아들 얻기를 원하던 그는 아내가 셋째 딸까지 낳자 아예 집을 나가 방탕의 길로 들어섰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 이르러서는 투전꾼으로까지 전락하여 옥에 갇히는 처지가 되었으나, 다행히 이것은 그가 이전에 가졌던 신령한 마음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그는 옥중선교를 통해 새사람이 되었으며, 출옥 후에는 이웃의 전도를 받아 기독교인이 된 아내와 새 삶을 시작했다는 것이 대강의 줄거리이다.
작품에는 매서인이나 전도부인의 등장, 문서전도의 실상 등 개신교 초기 선교 현실이 다양하게 반영되어 있어 흥미롭다. <다정다한>에서 이미 살펴본 바 있는 옥중선교 장면도 우리 소설에서는 그리 흔치 않은 화소이다. 말하자면 소설은 초대교회 형성기의 교회사 풍경을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는 한편, 남아선호사상, 미신 숭배, 여성 억압, 도박, 부패 등 당대 사회의 역기능 현상들을 정확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가 스스럼없이 노출되는 바람에 미학적 완성도는 크게 떨어진다.
의도의 과잉 현상은 <부부의 모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고영규전>과 마찬가지로 선교와 교육적 목적으로 소환된 소설이라는 의미이다. 작품은 작중인물과 갈등, 심리적 요소까지 동원되어 일정한 서사 형식을 취하고는 있으나, 소설이라기보다는 설교에 가깝다. 그래서 잦은 성구 인용과 긴 해설이 특징적이다. 그중에서도 ‘부부계명’이라 할 수 있는 에베소서 5장은 거듭 세 차례나 인용되면서 기독교 신앙인의 부부관계를 한정하는 전거로 쓰이고 있다. 핵심은 상호주의와 평등사상에 입각한 사랑이며, 창작 의도는 결국 건강한 부부관계를 통해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길이 기독교 신앙 안에 있음을 깨우치고자 함이다. 작품을 지은 애니 베어드 자신이 여성이었던 만큼 당시 한국 사회의 여성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미루어보건대, 그녀는 차별과 억압 구조 아래에서 맹목적 굴종과 희생을 강요당하는 한국 여성들의 비극적 현실을 바꿔보고자 하는 것을 선교 목표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보기에 한국 여성의 이 같은 비극은 교육으로부터 소외된 여성들의 무지와 전통적 유교 이념의 폐해 때문이었다. 맹목적인 남아선호사상에 얽매여 백일기도에 매달리는 <고영규
전>의 인물들이 상징적이다.
그러나 불교나 유교, 민속신앙과 같은 한국의 전통적 종교는 고통받는 여인들의 피난처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킬 뿐이다. 그래서 <고영규전>에서는 백일기도의 대상인 부처와 칠성님이 조소의 대상이 되고, <부부의 모본>에서는 박명실을 앞세워 전통적인 효 사상과의 충돌까지 불사한다. 여성 해방과 지위 향상은 오직 기독교 문명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인식의 표현인 것이다.
그녀가 특별히 교육 선교에 투신해 교과서 제작에 심혈을 기울인 것이나 소설 창작에 관심을 보인 것은 모두 여성 교육과 여성 해방을 목표로 한 선교사업의 일환이었다. 한글 소설은 교육 수준이 낮은 여성들을 독자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적 글쓰기였던 셈이다. 그녀가 보여준 한국 여성들에 대한 연민은 ‘보배’와 ‘진주’ 같은 명명법에서도 읽을 수 있다. 대부분의 여성이 이름을 갖지 못하고 살던 시대임을 감안하면 이런 단순한 배려조차 파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녀가 지은 찬송가 가사 <나는 갈 길 모르니>, <멀리 멀리 갔더니>는 흔히 두 아이를 잃은 슬픔 속에 한국 복음화에 투신한 선교사로서의 고독과 고뇌를 반영한 것으로 이해되나, 어쩌면 그런 개인적 동기보다는 극한의 절망적 상황에서 신음하는 한국 여성들의 고통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애니 로리 아담스 베어드, 안애리 선교사는 차별과 억압 속에 짓눌린 한국 여성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헌신한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자였다.

| 맺는말
‘한국 근대소설 속의 기독교’를 조명한다는 의도 아래 애국계몽운동기의 작가와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모두 열 명의 작가에 의해 쓰인 열한 편의 작품이 그 대상이었다. 기독교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해 보인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반아의 <몽조>는 기독교에 대해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인식을 보이고 있는 작품인 점이 예외적이다.
글을 쓰면서 문득 무심히 지나쳐온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살피고 있는 작품 대부분이 1907년에서 1908년 사이에 발표된 것들이라는 점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이후에도 기독교는 여러 작품들 속에서 호명되고 있지만, 그리 적극적이지는 못하고 대부분 하나의 세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1907-08년 사이에 기독교를 주제화하고 있는 작품들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개화파 지식인 사회에 기독교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유와 담론의 중심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국권 수호가 절대명제가 된 암울한 상황에서 기독교 문명화가 유력한 대안으로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배후에는 개신 유학자들과 지배층 인사들이 대거 기독교에 귀의하는 계기가 된 옥중선교, 그리고 여러 해를 두고 전국에서 수많은 인파를 불러모으며 뜨겁게 달아올랐던 대부흥운동이 있었다. 옥중선교운동과 대부흥운동은 다만 교회사적 의미에 한정되지 않고 민족사적으로 확장된 의미를 지닌다. 옥중선교운동을 계기로 개종한 개화파 지식인들이 한국교회의 민족의식을 강화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사경회나 부흥회가 열리는 곳마다 수백 또는 수천 명의 군중들을 동원한 한국교회 초유의 경험은 3・1만세운동으로 연결되는 대중적・집단적 민족운동의 초석이 되었다. 계몽운동기 소설들이 호명한 기독교 담론들은 기독교에 대한 당시 민족사회의 신뢰와 기대를 대변하는 것이지만, 회의와 우려가 없지 않았음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글을 쓰는 내내 나라 구하기를 고민하여 밤잠을 이루지 못하던 선조들의 거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기독교 복음화, 기독교 문명화에서 답을 얻은 초대교회의 교인들이 먹고 마시기를 잊고 눈물 뿌려 기도하는 모습이 어른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여 일생을 바쳐 한국 선교에 헌신하다 콜레라에 넘어지고 천연두에 쓰러져 간 수많은 선교사들의 묘비도 눈앞을 스쳐갔다. 작품들을 읽는 동안, 어딘가 모르게 허술하고 미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한계 같은 것은 아예 타낼 수조차 없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 위에 자꾸만, 안타까운 현실 교회의 모습이 겹쳐지기도 했다.

* 표언복 교수님의 연재 “한국 근대소설 속의 기독교 조명”을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좋은 글 보내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 편집부


표언복 | 목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다 퇴직했다. “해방 전 중국 유이민 소설 연구”로 학위를 받았으며 일본, 러시아, 미국 유이민 소설 연구로 관심을 확장해 후속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2020년 8월호(통권 7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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