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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기독교와 한국 전통문화의 화해를 위하여 10]
문화·신학·목회 (2020년 8월호)

 

  오쟁이쌈 풍장(風葬), 매미에 대한 명상
  

본문

 

| 오쟁이쌈, 아이들의 장례 방식
전라남도 진도 지역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죽으면 ‘오쟁이쌈’을 했다. 졸저 『산자와 죽은자를 위한 축제』(2018)에 소개한 풍장(風葬)의 한 내용이다. 필자는 이를 초분[草墳, 시신을 바로 매장하지 않고 이엉 등으로 덮어두는 매장법. 단장(單葬)이 아닌 복장제(復葬制)의 하나]과 관련지어 해석하고자 했다. 이보다 앞선 2017년에 「전남일보」 칼럼을 통해 다루긴 했지만, 필자의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왜 초분을 하는지, 왜 어린아이들의 주검을 ‘오쟁이쌈’이라는 형식으로 처리하는지에 대해 속 시원한 답변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일단을 다시 소환한다.
오쟁이는 짚으로 엮어 만든 작은 ‘섬’을 말한다. 아이의 주검을 오쟁이 안에 담아 해안의 장송가지에 매달아 두는 장례법이다. 일종의 풍장이다. 이를 진도 지역에서는 ‘오쟁이쌈’이라고 했다. 왜 오쟁이에 담아서 육중한 해송가지에 걸어둔 것일까?
이것은 왜 초분을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이어진다. 여태껏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왔다. 대답은 다양하다. 정초에는 땅속에 매장할 수 없다느니, 역병 등의 전염병 때문이라느니 따위가 그것이다. 하지만 속 시원하게 답변을 해주는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는 망자가 초분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는 답변을 들었을 뿐이다. 그것뿐일까? 그렇다면 망자는 왜 초분을 원했을까?
필자는 오랫동안 주검을 처리하는 여러 예법과 방식, 특히 아이들의 주검을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 주목해왔다. 아이들의 경우 항아리 등에 넣어 돌로 묻어두는 형태가 보편적이다. 남도 표현으로는 ‘독장’ 혹은 ‘독담’이라 한다. 이 논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 마한 지역의 옹관(甕棺)으로도 이어진다. 옹관은 한자문화권을 포함하여 동아시아에서 널리 연행되었던 방식으로 큰 항아리에 시신을 안장하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장례법이다.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 장례법들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도대체 무엇인가?
초분은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달랐다. 최빈, 외빈, 초구, 출분이, 초상이, 초우, 초빈, 고름장, 출변, 초장, 고천, 소골장제, 둑집, 채빈, 두지, 빈소 등이 그것이다. 사람이 죽었을 때 바로 매장하지 않고 일정한 기간 동안 볏짚이나 가옥, 나무 위, 성벽, 돌무더기 등에 안치했다가 육탈되면 매장하는 방식이다. 보편적으로는 3년 후 본장(本葬)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두 시신을 일정한 공간에 존치했다가 다시 처리하는 형식인데, 중국 남부나 일본 남부 섬 지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등지에 남아 있는 동굴장과 같은 성격이다. 아마 우리에게 남아시아 같은 지질 환경이 조성되었더라면 주검 안치의 장소를 동굴로 정했을지도 모른다. 유대인들이 동굴에 장사 지내듯 말이다. 물론 동굴이 아니더라도 실제 신화를 포함한 다양한 설화들 속에서 유사한 맥락을 유추할 수 있다. 지난 칼럼을 통해 동굴의 의미를 자세히 톺아봤으므로 이 부분은 넘어가기로 한다.
육탈이 되면 남아 있는 초분을 헐고 뼈를 추려 매장하는 것을 ‘원장’ 혹은 ‘본장’이라 한다. 이를 3년상 등으로 상례의 의미를 부여하지만 생태적으로 완전하게 육탈되는, 즉 살이 썩어 없어지고 뼈만 남는 기간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이 죽었을 때는 항아리에 시신을 담아 돌무더기로 덮어두거나 오쟁이에 넣어 바닷가 해송숲에 걸어둔다. 왜 그랬을까?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필자가 주목한 것은 오쟁이쌈의 풍경을 바라봤을 사람들의 무의식 혹은 전래적 관념에 관한 것이다. 부모는 어떤 마음으로 오쟁이에 자신이 사랑하던 아이의 시신을 넣었을까? 어쩌면 이것은 은유라기보다 직유일지 모른다. 이 장례의 풍경을 두고 나무의 둥지에서 날아가는 새나 애벌레에서 부화하여 날아오르는 나비가 직접적으로 그려지지 않는가? 상상해보라. 오쟁이쌈을 한 해안의 풍경 말이다. 나무에 걸린 번데기, 매미가 나뭇가지 위에 벗어놓은 껍데기처럼 너무도 선명하지 않은가. 선의(蟬衣), 마치 선녀의 옷 같은 해송가지의 오쟁이를 설명하기 위해 필자는 매미의 이야기로 돌아가야만 한다.

| 카프카의 <변신>에서 최수철의 <매미의 일생>까지
먼지와 먼지가 서로 의지하여 응결되면 흙이 되고, 먼지가 거칠게 응결되면 모래가 되고, 견고하게 응결되면 돌이 되고, 먼지가 진액으로 응결되면 물이 되며, 먼지가 따뜻하게 응결되면 불이 된다. 먼지가 맺히면 금속이 되고, 먼지가 번영하면 나무가 되고, 먼지가 움직이면 바람이 되고, 먼지가 쪄지고 기운이 꽉 차면 여러 가지 벌레로 바뀐다. 지금 우리 사람이라는 것도 바로 그 벌레의 한 종족일 뿐이다.

창세기의 천지창조를 모방한 언설일까?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쓴 『열하일기』의 한 대목이다. 여기에서 연암은 인간을 벌레에 비유하고 있다. 생명의 근원이 먼지이니, 사람 또한 물성(物性)의 하나일 뿐이라는 주장은 아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인간의 우월의식에 대한 비판이 주류임을 알 수 있다. 『장자』의 “제물편”에서 하찮은 벌레들을 대붕과 비교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허세와 허영을 질타하고 만물과의 교감을 주문한다는 점에서는 장자나 연암이 상통한다. 자연친화적 세계관이라고나 할까.
연암이 죽은 지 한 세기가 훨씬 지난 시간, 놀랍게도 지구의 반대편에서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변신>(1915)이라는 소설을 내놨다. 설마 연암의 글을 읽은 것은 아니겠지? 훗날 카뮈나 사르트르에게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추켜세워진 카프카의 대표작은 <변신>이다. 의류회사의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던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거대한 벌레로 변해 있더라는 얘기가 여러 에피소드와 곁들여 진행된다.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굳이 소개할 필요는 없지만, 아버지와 여동생 그레테에게서마저 버림받는 주인공이 가족들의 애정을 회상하며 사망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대개의 평자들은 이 소설을 현대문명이 낳은 인간성의 상실, 현대인들이 느끼는 불안과 소외감, 가족의 생계를 위해 기계부품 같은 생활로 전락한 자본주의하 인간의 실존 등으로 풀이한다. 인간이 인간다워야 하는 실존적 위기감, 벌레로 변할지도 모를 근원적 불안감과 고독 따위가 온 책갈피를 장악하고 있다. 카프카의 실제 삶과도 연결되는 이 불안감들이 우리에게 주는 영감이란 다름 아닌 생존에 대한 두려움, 절대적 고독 따위에 포획되어 있는 실존적 고뇌이다. 장자나 연암의 인문학적 세례를 흠뻑 받고 자란 동양인인 우리마저도 말이다.
다행이랄까. 카프카에게 적잖은 영향을 받은 듯한 최수철이 소설
<매미의 일생>으로 일종의 만회를 시도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으로부터 소외되고 자신의 무의미성을 깨닫게 됨으로써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모티프는 <변신>의 패러디이다. 하지만 주인공 ‘나’를 매미로 변신하게 함으로써 활동성을 부여하며 공간의 확대를 보여준다. 그 변신이 환상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카프카의 변신이 지닌 허황함을 감소시키는 듯하다.1 매미로 변신함으로써 카프카의 죽음을 넘어선다는 뜻이다. <변신>에 드러나는 비극성을 감소시키고, 허물과 기억상실이라는 장치를 통해 존재를 이원화시키며 과거에 대한 욕망을 벗어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연구한 성현자(충북대 명예교수)는 소설에서의 허물이 허물벗기라는 탈피의 개념으로 발전되어 주체뿐만 아니라 사회도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고 독해한다. 매미를 등장시킴으로써 벌레가 되어버린 그레고르 잠자와 자본주의 폐해에 대한 반전을 꾀하고 있다고나 할까. 이것이야말로 필자가 큰 주제로 삼고 있는 ‘거듭남과 재생의 키워드’에 맞닿아 있는 해석이 아닌가. 다시 주목한다. 매미의 허물이 무엇이기에 재생의 코드로 생각된다는 것일까?

| 왕의 모자 익선관(翼善冠)과 매미의 오덕(五德)
나는 매미가 큰 나무에 앉은 듯한 느낌이었다. 또 공중으로 내던져진 고무공 같은 느낌이기도 했었지. 하루에는 몸집이 클 뿐 아니라, 마음도 시원시원한 여자였다. “징용이라는 거야. 집이 경상남도로 밭에 있었어. 그런데 징용이라면서, 데리고 간 거야. 기차를 타고, 배를 탔어. 나, 위안부가 되는 줄 몰랐어.” 태연자약하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하루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없었다. 유쾌한 듯이 웃으면서 그녀는 계속했다. “운이야. 위안부가 되는 것도 운이야. 군인아저씨, 탄환을 맞는 것도 운이야. 모두 운이야.”

후루야마 고마오의 <매미의 추억>(セミの追憶) 중 “프레오8의 새벽”의 한 대목이다.2 소설의 화자가 하루코라는 위안부와 하룻밤을 지내며 안았을 때의 감정을 묘사했다. 큰 나무에 앉은 매미 혹은 공중으로 내던져진 고무공 등의 묘사를 포함해 제목 ‘매미의 추억’이 함의하는 바는 무엇일까? 연구자들이 채 읽어내지 못하는 행간의 여러 의미 속에 혹시 매미의 거듭남 같은 은유가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위안부 하루코의 잃어버린 조국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환경 속에서 마치 카프카의 벌레처럼 도륙당하고 버림받은 실존의 문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올 수도 없는 절대적인 고독 따위의 전복이나 갱생 말이다. 하루코라는 캐릭터로 대신하고 있는 위안부들의 삶을 카프카의 벌레 혹은 이미 죽어 나무에 매달린 오쟁이 같은 주검에 비유할 수 있다면 왜 이 이야기의 제목을 ‘매미’로 삼았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뿐일까? 매미는 이런 우화(羽化) 후의 탈피와 껍질에 대한 지극한 은유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예로부터 매미의 오덕(五德)을 칭송해온 이유 말이다. 중국 진나라 육운이 늦가을 매미를 주제로 쓴 <한선부>(寒蟬賦)에 나오는 내용이다. 일덕(一德)은 매미의 머리가 관(冠)의 끈이 늘어진 형상이니 배움의 문(文)이 있다 한다. 이덕(二德)은 매미가 오로지 맑은 이슬만 먹고 살기에 깨끗함의 청(淸)이 있다 한다. 삼덕(三德)은 매미가 사람이 먹는 곡식을 먹지 않기에 청렴함의 렴(廉)이 있다 한다. 사덕(四德)은 다른 벌레들처럼 굳이 집을 짓지 않고 나무에서 사니 검소함의 검(儉)이 있다 한다. 오덕(五德)은 철에 맞추어 허물을 벗고 틀림없이 울며 절도를 지키니 믿음의 신(信)이 있다 한다.
우리나라 또한 ‘문, 청, 렴, 검, 신’의 오덕을 군자의 도리로 삼고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의 덕목으로 삼았다. 벼슬아치들이나 조정의 신하들, 심지어 임금까지도 곤룡포를 입어 격식을 갖출 때에는 매미관, 즉 익선관(翼善冠)을 썼다. 만 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세종대왕의 모자 또한 익선관이다. 동방의 소공이라 호명되는 방촌 황희가 받은 시호 ‘익성’(翼成)도 단순한 새의 날개가 아니라 매미의 오덕과 연결된 일종의 매미의 날개로 해석해야 맞다. 매미가 무엇이기에, 나아가 그 날개가 어쨌기에 오덕을 가진 곤충으로 추앙되거나 임금이 쓰는 모자로 상징된 것일까? 진나라 육운은 여러 가지 특성을 들어 다섯 가지의 덕이 있다 하였지만, 그 기저에는 재생이라는 모티프가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역사 이래 하고많은 생물들 중에서 육신을 온전히 벗어내고 다시 태어나는 곤충에 주목해온 이유가 여기 있지 않겠는가. 재생과 영생에 대한 상징들은 권좌의 욕망과 불사(不死)의 염원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 선의(蟬衣), 아프락사스의 새인가, 선녀의 옷인가
매미의 일생에 대해서는 수많은 정보가 넘친다.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간추리기 힘들 만큼 다양한 정보를 갖고 있기도 하다. 대개 3년에서 17년을 땅속에서 준비했다가 땅 위로 올라와 고작 보름에서 한 달을 살고 죽는다는 설명이 주류를 이룬다. 정보의 출처에 따라 달리 나타나지만, 지구에는 대략 3,000여 종에서 4만여 종이 넘는 매미가 산다. 우리나라에는 940여 종의 매미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매미와 유자매미는 약 5년을 주기로 땅에서 나온다. 미국의 남부 매미는 7년에서 13년, 미국 중서부의 매미는 17년을 주기로 땅에서 나온다. 땅으로 나온 수컷 매미는 암컷과 짝짓기를 하고 나서 죽고, 암컷은 알을 낳고 죽는다. 그 기간이 열흘 혹은 보름에서 한 달이다. 우리나라 말매미의 경우 6년여를 땅속에서 기다리다 지상에 오르면 고작 10여 일을 살다가 죽는다는 보고가 있다. 적게는 3년, 많게는 17년을 캄캄한 땅속에서, 이른바 다시 태어날 날을 기다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과학자들은 종족 보존을 위한 전술이 이들의 진화를 결정한 것으로 설명한다. 천적으로부터 생명을 보존하는 패턴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3대에 걸쳐 대륙과 바다를 여행하는 나비나 7년여를 인내하고 준비했다가 비로소 지상에 오르는 죽순과도 다를 바 없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리 울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울었다고 하는 문학적 수사가 달리 회자되었겠나.
어미 매미가 나뭇가지 구멍에 낳은 알들은 몇 주 후 애벌레로 부화하여 먹이를 찾아 땅으로 내려간다. 땅속 40cm 정도에 구멍을 파고 자리를 잡으면 나무 뿌리의 액을 빨아먹으며 길고 긴 기다림의 잠을 잔다. 매미들은 인고의 시간 동안 지상의 날들에 대해 어떤 꿈을 꾸는 것일까? 어미와 아비 매미들이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인고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흙 속에서 애벌레가 되어 지상의 나무로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지상의 시간이 길지 않음을 수억 년의 기억 속에 상속해왔을 것이니 한순간이라도 허투루 보내지 않을 것이다. 말매미의 경우 나무로 기어올라 가면 세 시간 만에 탈바꿈을 한다. 먼저 머리와 가슴이 빠져나오고 다리를 빼낸다. 이어 굳은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날개가 커지고 몸에서 검은 빛이 나타난다. 벗어놓은 허물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알맹이 벌레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옛 사람들이 매미의 탈바꿈한 허물을 보고 무엇을 상상하였을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거의 온전하고 완벽하게 자신을 벗어던지는 형국이랄까. 그래서일 것이다. 항용 필자는 매미의 탈바꿈을 비로소 죽어 다시 태어나는 의례라고 풀이해왔다. 온전히 자신을 죽이지 않고서야 어찌 저리 완벽하게 자신의 형상을 벗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매미 허물을 뜻하는 다양한 이름이 있다. 선태, 조갑, 선각, 고선, 조료퇴피, 선퇴각, 금우아, 즐즐피, 최미충각, 즐즐후피, 즐즐피, 지료피, 열피, 마아조피 등이 그것이다. 모두 중요한 한약재로 사용된다. 성질이 차서 두드러기, 경풍 따위에 쓴다. 일반적으로는 매미 허물, 매미 껍질 등으로 부른다. 이 중 선퇴(蟬退)나 선의(蟬衣)라는 이름이 더욱 흥미롭다. 모두 우화(羽化)한 껍질을 설명하는 방식인데, 매미가 탈바꿈할 때 벗은 허물, 매미가 벗어놓은 옷이라는 뜻이니 우화(寓話)이고 은유이다.

| 우화등선(羽化登仙)의 오쟁이를 넘어
통일신라 왕릉의 석인상(石人像, 능묘를 수호하는 의미로 세운 사람 모양의 석상)을 보면 흥미로운 문양들을 발견할 수 있다. 흥덕왕릉 좌측 석인상의 관모에는 오각형 장식이 관모 앞뿐만 아니라 양옆, 그리고 뒤까지 총 네 개가 보인다. 이들 오각형 장식에는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석상의 마모로 명확하지는 않으나 성덕왕릉, 원성왕릉 석인상의 장식은 매미 문양으로 보인다.3 물론 우측 석인상 정면 문양의 형태는 여의두문(如意頭文)4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필자의 관심은 전자의 매미 문양이다. 변하기는 했지만 세종대왕이 쓰고 있는 매미 모자의 출처를 통일신라 석인상의 관모로까지 추적해볼 수 있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매미의 오덕을 군자의 근간으로 삼은 이유를 중국의 자료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부담이긴 하지만, 매미 문양이 처음 발견된 곳은 4세기 중반으로 편년되는 동진의 남경대북원묘(南京大北園墓)이다. 물론 그 이전 산형(山形) 금제장식판에 매미 모양의 선문(蟬紋)이 장식된 금선문당은 한나라의 채옹(蔡邕)이 지은 『독단』(獨斷) 등의 문헌에서 무관(武官)이 쓰는 모자로 확인된다. 이송란(덕성여대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중국의 황제도 금선문당을 착용하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매미와 산이라는 모티프로 구성된 금선문당은 중국 고유의 도교사상인 승선(昇仙, 죽은 이의 영혼을 지옥에서 구출하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5 특히 필자가 관심을 갖는 부분은 매미의 문양과 산의 문양을 합한 금선문당의 사용이 북방 이민족들이 남조의 관제를 수용하면서 생긴 양상이며 북조에서는 여성이나 어린아이의 무덤에서도 금선문당이 확인된다는 내용이다. 관료들의 복식으로 수용되어 더 이상의 전개나 중간 단계의 연결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아이들의 죽음과 매미를 연결시킬 단서를 찾아볼 수 있어 고무적이다.
매미의 우화(羽化)는 우화등선(羽化登仙)이다. 번데기가 날개 있는 성충이 되는 것을 우화라 한다. 사람의 몸에 날개가 돋아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되는 일을 우화등선이라 한다. 『진서』(晉書)의 “허매전”(許邁傳)에 나오는 말이다. “벌레에 날개가 돋으니 날개돋이요, 껍질을 온전히 벗어놓으니 탈바꿈이다.” 다음 호에서 다룰 뱀과 허물의 상징도 이 논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허물을 벗고 나오는 것은 갱생이고 거듭남이며 재생이고 부활이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비유해 말하면 번데기의 성충은 물론이요, 하늘로 올라가는 신선이 다르지 않다. 본디 먼지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니 말이다. 날개를 가졌으니 창공을 나는 새요, 하늘로 날아오르니 솟대 위의 인신가교(人神架橋), 곧 신조(神鳥)이다. 매미가 껍질을 벗고 날개를 달기 위해 길게는 17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온전히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자신을 죽여야 한다. 매미가 벗어던진 옷, 매미의 허물이 온전한 그의 형상 그대로임을 주목하는 이유이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전해준 쪽지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 한다. 그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 곁으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통해 익숙해진 신의 이름, 아프락사스의 새를 진도 관매도 해송숲의 오쟁이에 덧입혀 소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껍데기, 그 병을 깨고 날아오르는 선의(蟬衣), 선녀의 날개옷을 주목했을 사람들을 묵상한다.
죽은 아이들에게 지상의 시간은 너무도 짧다. 매미가 탈바꿈을 하고 죽는 찰나의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다시 부화한 알들은 애벌레가 되어 지하로 들고, 어떤 이들은 천사의 날개옷을 빌려 하늘로 오른다. 어쩌면 백 년일지도, 아니 천 년일지도 모를 길고 긴 잠을 청한다. 하지만 영원히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병을 깨고 오르는 아프락사스의 새처럼 한 생애의 풍경을 깨트리기만 하면 된다. 이전의 자신을 온전하게 벗어버리는 매미처럼 말이다. 지상의 날들이 닷새면 어떻고 하루면 어떤가. 가장 사랑하는 자신의 아이를 오쟁이에 매단 부모의 심정을 생각해본다. 단 하루가 아니라 단 한 순간만이라도 죽은 아이가 다시 태어나거나 거듭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 애틋한 마음이 해송숲의 오쟁이 장례 풍경을 만들어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종교와 문화와 문명, 아니 시공을 넘고 상상을 넘어 그 어떤 수식으로 설명한다 해도 상통할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인류의 소망이지 않겠는가. 여름이 가기 전에 얼마나 많은 지하의 매미들이 지상으로 올라올지, 그래서 우리의 귀청을 뜯으며 울어댈지 이제 그 많은 탈바꿈과 거듭남과 재생과 부활의 사건들을 묵상할 시간이다. 비로소 여름 깊으니 매미들이 지상으로 오르겠다.


1 성현자, “최수철 소설에 미친 카프카의 영향”, 「비교문학」 48집(2009).
2 노영희, “후루야마 고마오의 「매미의 추억」(セミの追憶) 연구”, 「일어일문학연구」 제80집(2012).
3 권준희, “통일신라 왕릉의 석인상(石人像) 복식 연구(1): 양당개(裲襠鎧) 착용 석인상을 중심으로”, 「한복문화」 제20권 1호(2017).
4 여의(如意)의 머리 부분을 떼어 도안화한 무늬를 말함. 사전에서는 여의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불교 법회나 설법 때, 법사가 손에 드는 물건. 대, 나무, 뿔, 쇠 따위로 ‘심’(心) 자를 나타내는 고사리 모양의 머리가 있고, 한 자쯤의 자루가 달려 있다. 본래는 등 따위를 긁는 도구였으나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법구(法具)의 하나로서 썼다.”
5 이송란,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김선문(金蟬紋)과 금보요관(金步搖冠)의 시원과 전개”, 「고문화」 제78집(2011).



이윤선 | 민속예술을 전공하였다. 『남도민속음악의 세계』 등의 저서가 있다. 남도민속학회 회장,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8월호(통권 7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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