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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기독교와 한국 전통문화의 화해를 위하여 09]
문화·신학·목회 (2020년 7월호)

 

  칠성의 꿈, 윷판바위에서 윷놀이까지
  

본문

 

<전략>
훌륭민첩 유곡권실 싀외조모 출상잇서
머나먼 산천길을 가마로 나려와서
실셩대곡 고여도 한말삼 아람업네
인 일장 츈몽이라 망극을 뒤로두고
심란을 푸러보세
우리종회 이노름은 조샹님네 음덕으로
쥬션은 유곡권실 장기도 장시고
<중략>
지모실간 최실이는 모친출상 지나고서
망극은 간없고 모야뫼야 부르면서
뛰고절고 는모양 우습기도 그지업네
<하략>


<종진쳑가>의 일부이다. 시외조모 출상에 머나먼 산천길을 가마로 내려와서 실성대곡을 한 후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데, 울음은 어디로 달아나고 왁자지껄 놀이판이 벌어진다. 인생은 일장춘몽이라 망극함을 뒤로하고 심란함을 풀어보려는 놀이는 바로 윷놀이. 그뿐만이 아니다. 최실이는 친정어머니 출상을 하고서도 윷놀이를 했다지 않은가. 망극함은 간데없고 ‘모야! 걸이야!’ 외치면서 뛰고 절고 하는 윷놀이판의 풍경을 두고 상가의 무게감과 중저음의 곡소리들을 연상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이 무슨 변고이며 상례의 망극을 훼절하는 풍경이란 말인가.
이 윷놀이 가사는 권영철이 1971년 7월에 안동군 풍산면 정동 의성 이준영 씨 댁에서 구한 것이다. 필사자는 그 댁의 자부 금계댁이라 한다. 본래 이 노래는 박경노라는 부인이 70세가 넘어서 경술년(1910) 정월 26일에 경북 예천군 용궁면 금당리 친정에 돌아와 윷놀이를 하면서 지은 것이다.1 필자는 이 자료를 졸저 『산자와 죽은자를 위한 축제』(민속원, 2018)에 각주로 인용 소개하고 그 의미를 톺아본 바 있다. 필자가 주목한 대목은 ‘상가의 윷놀이’라는 점이었다. 시외조모나 친정엄마의 상례를 치르는 중에 혹은 치르고 나서 윷놀이를 한 맥락을 가감 없이 엿볼 수 있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안동의 풍경만일까? 필자는 오랫동안 이 윷놀이를 해석하고 재구성하면서 신문 칼럼이나 논문, 단행본 등에 그 의미를 펼쳐왔다. 그 이유를 기왕의 내 논고와 생각들을 끄집어내 소개해본다.

| 상가(喪家)에서 하는 윷놀이
사람이 죽었나 보다. 시월 말이라 날씨가 꽤나 쌀쌀했다. 방 안에서는 부고장을 발송할 준비를 했다.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죽음의 옷이 준비되었다. 바느질 솜씨가 좋은 아낙들은 상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마당 한쪽에서는 돼지를 잡았다. 잡은 돼지의 비계와 내장으로 듬북국을 끓였다. 마당 화덕에는 큰 솥이 걸렸다. 몇 더미의 장작이 타올랐다. 돼지고기와 듬북이 장작불 위에서 흐물흐물해졌다. 진한 육수가 고아지니 하룻밤을 지샐 밤참으로는 이만한 것이 또 없다. 마당에 차일을 쳤다. 이내 당골 무당들이 왔고 씻김굿을 시작했다. 다행히 날이 좋아 별들이 총총했다. 듬북국 화덕은 모닥불 겸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무리의 장정들이 덕석(멍석)을 내다 깐다. 윷놀이판이다. 이 풍경 또한 무례함의 극치일까? 안동의 척사(擲柶, 윷) 놀이가 상례의 뒤끝에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 경우는 상례의 한복판에서 놀이판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른바 멍석에 손톱만한 나뭇조각을 던지며 노는 종지기 윷이다. 당골의 노래가 깊어질수록 윷판의 사람들도 많아졌다. 팀을 나누고 찔림(판돈의 일부를 대는 일)을 했다. 때때로 함성이 온 동네를 울렸다. 어느 팀이 이겼나 보다. 판돈이 나뉠 때면 왁자지껄 웃고 떠들었다. 씻김굿판에 있던 이가 와서 개평(노름이나 내기에서 이긴 사람에게 조금 얻어가지는 공것)을 뜯어갔다. 이해되지 않는 풍경이다. 한편에서는 사람이 죽어 슬피 우는데 윷놀이라니, 그것도 박장대소하며 떠들다니 말이다.
전라남도 진도, 해남, 완도, 신안, 무안 등지의 상례 풍경을 묘사해봤다. 이곳의 윷놀이는 의례와는 별개의 놀이일까? 그렇지 않다. 필자는 이를 상례의 한 범주로 파악해왔다. 관련한 논의는 지난 연재글 “심청의 환생과 <다시래기>”(「기독교사상」, 2020년 3월호)를 참고하길 바란다.
주목할 것은 제청에 모인 사람들이 놀이하는 이들을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같이 즐긴다는 점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웃고 떠들며 즐기는 이 윷판의 정체는 무얼까? 이 상황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어쩌다 한 번 윷놀이를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적어도 서남해 지역에서는 거의 모든 상가에서 필연적으로 연행하던 놀이이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하여 연행되지 않을 뿐이다. 근래에는 화투로 변해버린 양상이 여기저기 보인다. 이것은 마치 어떤 원칙처럼 행해지던 놀이이다. 상례의 윷놀이만일까? 삶과 죽음을 가르는 기점, 시간의 분절에 의미를 부여하는 의례와 놀이와 연행 행위의 폭은 문화권 혹은 문명권마다 다르게 표현될 뿐, 그 세계는 넓고도 깊다.
필자의 유년 시절 풍경을 소환해본다. 우리는 주로 버려진 양철통이나 깡통들을 주어다 걸궁굿을 하든지, 상여놀이, 혼인놀이 등의 소꿉놀이를 하였다. 크고 작은 소리 나는 물건들을 꽹과리와 징과 북장구로 삼고, 털모자에 여러 끈을 묶어 상모 삼아 놀았다. 베개를 몇 개씩 얹어 혼례청을 만들고 연지곤지인 양 물감을 찍어 서로 절을 하며 혼례놀이를 했다. 구체적인 놀이 방식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통상 마을에서 일어나는 큰 사건들(초상이나 혼인)에 대해 소꿉놀이로 학습을 한 셈이다. 뒤늦게 공부를 하고 나서야 이런 유형의 놀이들이 일생의 중요한 기점, 통과의례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풍경은 이어진다. 실제 초상이 나면 매장지까지 꼭 따라가서 나누어주는 떡을 얻어먹고 구경하는 것이 우리 어린이들에게 큰 즐거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람이 죽었는데 즐거움이라니? 그랬다. 혼인이든 죽음이든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잔치에 지나지 않았다. 필자가 근자에 출간한 책 이름을 『산자와 죽은자를 위한 축제』라고 붙인 이유이기도 하다.
필자의 글에서 유년의 경험을 직접 소환하거나 소재로 삼는 것은 에믹(emic)적 관점의 연구 태도라고 말할 수 있겠다. 국민(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우리의 놀이는 이순신놀이나 전쟁놀이로 바뀌었지만, 어렴풋한 기억 속의 소꿉놀이에서 연행한 드라마들은 실제 초상(初喪)에서, 그리고 혼인에서 다시 실제의 사회극으로 재현되었다. 우리는 이 환원 과정을 보면서 통과의례, 인생 속 시간의 분절과 그 의미를 학습해온 것이다. 필자는 이 의례, 특히 상례 안의 드라마들을 한 편의 사회극으로 보고, 갈등 만들기와 해소하기, 그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 ‘꿔다가도 하는 지랄론’ 등의 이론으로 만들었다. 이를 시간의 분절로 리듬화하고 죽임과 살림의 의례로 재구성해낸 각종 의례와 관념과 철학이 지금 이 연재물의 대상인 셈이다.
장성하여서는 어린 날의 소꿉놀이들이 윷놀이로 변화한 것 같다. 상례의 윷놀이를 해석하는 필자 관점의 출처이다. 일종의 일생의례 중 하나라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상가에서 윷놀이가 없으면 허전하다. 뭔가 빠진 느낌이다. 이것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의도된 놀이, 놀이화된 의례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밤샘을 하기 위해 선택한 놀이라고들 한다. 물론 그런 기능도 있다. 하지만 모든 상가에서 윷놀이를 보편적으로 행한 진짜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밤샘을 하기 위해 하는 놀이로만 해석하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보다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현상이 명료한데도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연구자의 직무유기이다. 필자가 이 현상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려는 이유이다.

| 칠성놀이, 상가 윷놀이의 정체
기왕의 윷놀이 해석은 오행이론 중심이었다. 최남선의 설명이다. 고대 부여의 족장들이 맡았던 권역과 관계된다. 각각 말, 소, 돼지, 개를 토템으로 삼는 부족을 말한다. ‘도, 개, 걸, 윷, 모’가 여기서 유래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은 이를 고려의 유속이라 했다. 신채호도 부여국에서 시작된 고유의 놀이라 했다. 일군의 학자들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삼는 삼원[三垣, 동양의 천문학에서 나누는 별자리의 세 구획. 북극 부근의 자미원(紫微垣), 사자자리 부근의 태미원(太微垣), 뱀자리 부근의 천시원(天市垣)을 이름] 이십팔수의 우주관놀이라 했다. 조선 중기의 김문표는 천원지방설까지 이야기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동양 고유의 공간 관념 말이다. 재야 학자들은 천부경까지 끌어들여 우주관을 이야기했다. 과연 그럴까? 놀이나 민속은 시대에 따라 변천하는 것이니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각설하고 이런저런 해석 중에서 칠성놀이라는 데까지는 근접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독 상가에서 이 놀이를 행하는 이유를 명료하게 밝힌 것 같지는 않다.
왜 칠성놀이일까? 사람이 죽어 시신을 뉘는 칠성판을 연상해보라. 망자나 관을 반드시 일곱 매듭으로 묶는 관습을 상기해보라. 쉽게 그림이 그려진다. 망자가 가는 칠성의 별, 바로 북두칠성놀이이다. 당연히 자미원(紫微垣)의 자궁이니 재생의 염원을 담은 놀이이다. 필자는 일찍이 졸고를 통해 윷놀이가 칠성판놀이이며 궁극적으로는 망자의 재생을 염원하는 관념에서 시작된 놀이라고 주장하였다.2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남도 지역에서 성행하던 쪽윷(‘종지기 윷’이라고도 한다.)을 소재로 삼는 것이 적격이다. 그렇다고 정월 초에 하는 왕윷놀이(큰 나뭇조각을 던지는 윷놀이)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또한 새해의 거듭남과 갱생을 도모하는 놀이이기 때문이다.
옛 문헌들이 전하는 윷은 밤윷에 가깝다. 『경도잡지』(京都雜誌)에는 네 짝 나무로 된 윷의 길이가 세 치쯤 되고, 작은 것은 콩 반쪽만 하다고 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네 짝 나무로 된 사(柶)의 길이가 세 치쯤 되고 작은 것은 콩 반쪽만 하다고 하였으며, 척희(柶戱)는 저포(樗蒲) 종류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이는 모두 나무로 만든 가락윷과 좀윷(밤윷)을 말한 것이다. 이후 여러 과정을 거쳐 가락윷으로 대형화되면서 그 멋과 맛이 더하여 국속(國俗)으로 된 것이지만, (대형의 나뭇조각 윷놀이가) 고유의 놀이라고는 할 수 없다.3 이 주장들에 따르면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인 정초의 왕윷놀이보다 쪽윷이 훨씬 역사가 깊고 원형에 가깝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여러 문헌들에 나타난 바 밤윷(혹은 좀윷)은 정초에 신수점을 치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따라서 어느 시기엔가 가락윷으로 변화하고, 점치는 주술행위가 겨루기라는 놀이로 변화된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 한자와 동양철학의 영향을 받아 사목을 네 개에서 다섯 개로 수를 늘려 향면(向面)에 금, 목, 수, 화, 토의 오행으로 표기하여 윷을 던져 길흉의 점복을 치는 산대(算대, 주역의 점치는 대나무 쪼가리)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마치 주사위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사목(柶木)을 콩만 하게 만들어 종지에 넣고 흔드는 방법으로까지 번지게 되었다는 것이다.4 그런데 언제 무슨 이유로 이를 콩만 하게 만들고 이것이 지역으로까지 전파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콩만 하게 만든 윷은 그 크기가 작다는 점에서 진도를 포함한 서남해 지역의 종지기윷과 닮아 보인다.5

필자는 선학들의 지혜를 빌려 이를 재생놀이의 맥락에서 추적해왔다. 정초에 윷점을 볼 때 29밭을 가진 원형도를 사용한 점 등이 주요한 근거가 된다. 윷의 말판은 모두 29개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정가운데가 북극성이다. 이를 제외하면 28개의 말이 나온다. 정중앙을 중심으로 4등분되어 있다. 칠성의 4계절, 북두칠성의 운행을 상징한다. 북두칠성으로 변한 그림을 참고해보라. 칠성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돌아 다시 복귀한다. 일곱 개의 별이 네 번을 돌아오니 총 28개이다. 왜 돌아오는가? 사시사철이 순환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재생이다.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윷놀이를 궁극적으로 망자의 재생을 염원하는 놀이로 해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곱 개의 구멍을 뚫은 칠성판에 시신을 모시는 것도, 씻김굿 등 각종 의례에서 반드시 일곱 번의 고(매듭)를 만들어 행하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다시 졸고를 인용한다.

결국, 정월 윷놀이가 가진 성격들을 전제한다면 초상(初喪)에서의 윷놀이도 이른바 윷점의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주술성이 은닉되어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죽음이 칠성신앙과 연관된다는 점, 망자의 시신을 칠성판에 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친연성은 더욱 높아진다. 망자가 사실상 칠성판을 통해 북망산천으로 회귀(돌아가신다는 언설) 혹은 재생한다는 점에 착안한다면, 상가에서의 윷놀이가 가진 의미를 해명할 단서를 가지게 된다. 놀이화된 윷점을 통해서 사실상 망자는 북두칠성이라고 하는 천상으로의 회귀를 담보받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가에서 행해지는 윷놀이는 칠성판놀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우주 삼라만상의 순환과 회귀를 무의식적으로 욕망하는 놀이방식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현재는 아무런 관념 없이 그저 밤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을 뿐이기에 이 의미들이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특히 진도를 포함한 서남해 지역 사람들은 상가에서 반드시 밤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밤샘을 할 때는 또 반드시 윷놀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윷놀이가 재생코드로 관통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우주질서와 삶의 질서를 놀이로 매개하는 행위라는 점에 토대해 있다. 비가역적인 죽음이라는 손실을 가역적인 우주질서로 편입함으로써 일방적 상실이 아닌, 순환되어 돌아올 재생의 코드로 인식 혹은 소망한다는 것이다.6

필자가 이 논문을 제출했을 때, 세 명의 심사자는 윷놀이를 칠성판놀이로 해석하는 것이 지나친 비약이라고 비판하였다. 하지만 상가에서 일어나는 윷놀이의 의미를 해석하는 방편으로 제기된 필자의 주장을 쉬이 거두어들일 수는 없었다. 차후 세밀한 해명을 시도하겠다고 넘어가 다행히 논문집에 게재되었는데, 그때 했던 해명의 약속을 지금 하나하나 해나가는 셈이다. 이를 좀 더 설명하기 위해서는 청동기 이후의 유물로 발굴되고 있는 ‘윷판바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윷놀이가 칠성놀이라는 점을 더욱 명료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 청동기 암각화와 윷판바위
암각화 관련 연구는 이하우, 김일권, 송화섭 등에 의해서 몇 편의 논문으로 발표된 바 있다. ‘윷판형 암각화’라 부르는 이 유적은 고인돌 위나 야산의 꼭대기 혹은 자연암 등에서 발견되며 그 연대는 구석기까지 올라간다. 농경을 위한 천문 관측의 목적이나 농점(農占, 농사의 풍흉을 예측하는 점)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북두칠성의 순환을 그린 것이므로 일종의 천체 모형도인 셈이다. 이하우의 연구에 의하면 윷판평 암각화는 한반도 남부 지방에 폭넓게 분포한다. 물론 중국 동북 지역에서도 발견된다. 남도 지역에서는 익산, 정읍, 부안, 남원 등 전북에서 주로 발견된다. 전남에서는 광양의 윷판바위가 거론되고 있다.
윷판바위 연구로 널리 이름을 알린 이하우의 논고를 축약 인용해 윷판바위를 간략하게 언급한다.7 근래 발견된 임실 상가리 윷판바위 암각화는 한반도 최대 규모의 유적이다. 고인돌 개석에서 윷판형 암각화가 발견된 곳은 포항시 북구 흥해읍 칠포리 상두들, 포항시 남구 동해면 흥환리 진골마을 뒷산 공개산 윷판재의 고인돌 등이다. 기원전 5-4세기경 한반도 남부 지방에서 확산된 묘역식 고인돌의 한 유형에 윷판이 암각된 것이다.

202007_lys1.jpg

발견된 유적들의 분포를 간략하게 기록해둔다. 포항시 흥해읍 칠포리, 포항시 북구 청하면 신흥리, 남구 동해면 흥환리, 안동시 일직면 송리, 임동면 대곡리, 수곡리, 예안면 태곡리, 일직면 조탑동, 예안면 인계리, 도산면 토계리, 고령읍 지산리, 운수면 월산리, 성산면 무계리, 쌍림면 산당리, 송림리, 경주시 반월성 석빙고, 남산 용바위, 구황동 황룡사지, 영양군 청기면 상청리,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 울산시 동구 오불동산, 창녕읍 말흘리 화왕산, 익산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지, 낭산면 호암리 우금마을, 왕궁면 왕궁리, 일심 신평면 가덕리 상가마을, 정읍시 입석리 두승산 망화대, 진안 상전면 성산리, 남원시 삼동면 목동 풍곡계곡, 서울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 충북 단양군 영춘면 상리,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망탑봉,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 대전 동구 대동 왕자후 묘, 강화도 강화산성 남장대지 전돌, 제주 애월읍 고성리, 개성 송악동 만월대 궁지, 만주 길림성 우산하 등이 그것이다.
이하우는 광양에 윷판바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하지만 정확한 장소는 불명이라 했다. 필자도 이 정보를 가지고 광양의 여러 곳을 수소문해서 찾아보았으나 마을 사람들이 공개를 꺼려한다고 해서 아직 실물을 확인하지 못했다. 이후 필자는 영암 구림과 진도 지역의 윷판바위를 답사하고 확인하였다. 포항, 안동, 경주, 울산, 창녕 등지에 윷판바위가 산재하는 점을 보면 전남뿐만 아니라 북한을 포함한 전국에 분포할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영암, 진도 두 곳의 유적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곳이어서 관련 전문가들의 자문과 좀 더 세밀한 추적이 필요해 보인다. 영암 구림의 윷판바위는 성혈바위일 가능성이 더 커보이고, 진도의 윷판바위는 규모가 작아 생성 연대를 점검해야 할 과제가 있다.

| 계절의 가역성(可逆性), 윷판에 담은 재생의 꿈
사람의 일생은 유한하다. 한번 가면 오지 못한다. 그래서 불가역적이라고 한다. 사계는 어떤가? 올해 왔던 봄이 내년이 되면 어김없이 또 온다. 어제 뜬 해와 달이 오늘 다시 뜨고 진다. 순환이다. 그래서 가역적이다.
고대인들은 상상했을 것이다. 한번 간 봄은 다시 오는데 우리 인생은 왜 다시 오지 못하는가. 종교와 재생의 관념은 이런 고민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죽음 의례가 재생을 염원하는 방향으로 설정되고 구조화된 이유이기도 하다. 의례와 놀이의 기능이 여기서 나왔다. 한번 간 계절이 다시 오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다시 올 수 있게 하자는 취지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죽음 의례에서는 죽은 자들이 살아나거나 거듭나고 재생하는 의식과 놀이들로 구성된다. 관련한 상징물을 만들어 세우고 관련한 연극을 꾸미며 관련한 노래를 지어 부른다. 불가역적인 인생을 가역적인 연극을 통해 재생시키기 위해서이다. 날마다 다시 뜨는 해와 달처럼 혹은 매번 돌아오는 계절처럼 가역적인 인생으로 바꾸어놓기 위해서이다. 상가(喪家)의 윷놀이가 바로 그것이다. 사람은 죽었지만 그 사람이 다시 살아오기를 바라는 염원이 들어 있다. 칠성의 별 북두칠성놀이를 죽음의 의례와 더불어 행하는 것이다. 여기에 다시래기와 씻김굿이라는 드라마 만들기, 즉 사회극의 오래된 서사들이 놀이되고 연행된다.
죽음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연간 풍속에도 혹은 일상에도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적용되는 얘기들이다. 어제 저녁 기울었던 해가 오늘 아침 다시 떠오르는 것처럼 날마다 달마다 거듭나고 재생하는 삶의 지혜가 상가의 윷놀이에 들어 있는 것 아닌가. 필자는 이를 거듭남과 재생, 나아가 부활의 의미로 해석해오고 있다.


1 권영철, “윷놀이 가사에 대하여”, 「여성문제연구」 6권(1976): 35-37.
2 이윤선, “진도지역 상례를 통해서 본 의례와 놀이의 연행 의미”, 「비교민속학」 제38집(2009): 85-125.
3 『북사』(北史)와 『태평어람』(太平御覽)에는 백제에 저포(樗蒲), 악삭(握槊) 등의 잡희가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의 저포는 윷을 말하며 백제와 동시대인 고구려와 신라에도 있었을 것이니, 윷의 기원은 우리나라 삼국시대 이전일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외 『훈몽자회』(訓蒙字會)나 『지봉유설』(芝峯類設)에서도 저포를 윷으로 주해한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주영편』에는 네 가락으로 만든 사의 모양을 설명하기를, 손가락 크기만 한 껍질이 붙은 나무를 반으로 쪼개서, 길이를 두어 치로 하고 등은 둥글 높고 배는 편편하게 만든다 하였다. 가락윷의 형태를 비교적 자세하게 쓴 셈이다. 재물보에는 나무를 잘라서 등을 둥글게 하고 배를 편편하게 하여 밤톨만 하게 만든 것을 한자 음대로 뉼(률, 栗)이라 하고, 사목(四木)을 던져서 노는 것을 사(柶)라고 하고, 훈음은 윳(윷의 옛말)이라 한다 하였다. 윷가락 4개를 쓰는 저포 또는 윷(柶)이라는 것은 중국을 통하여 들어왔고, 다시 일본으로 퍼진 것이라 하였으며, 윷놀이(柶戱)가 현재로는 이웃나라는 모두 없어졌고 우리나라만이 농촌으로까지 침투되어 국민성에 적합한 놀이로 토착화되고 전승하여 온 것으로, 이것이 가락윷으로 대형화되면서 그 멋과 맛이 더하여 국속(國俗)으로 된 것이지만, 고유의 놀이라고는 할 수 없다. - 이일영, “윷(柶戱)의 유래와 명칭 등에 관한 고찰윷놀이 가사에 대하여”, 「한국학보」 2권 12호(1976): 150.
4 이양수, “척사(윷)에 관한 연구-역학과 ‘사’의 의미”, 「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11권 13호(1999): 904.
5 이윤선, 위의 글, 109.
6 이윤선, 위의 글, 112.
7 이하우, “한국 윷판형 바위그림 연구”, 「한국암각화연구」 제5집(2004).



이윤선 | 민속예술을 전공하였다. 『남도민속음악의 세계』 등의 저서가 있다. 남도민속학회 회장,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7월호(통권 7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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