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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문화와 신학] 나의 박사논문을 말한다
문화·신학·목회 (2020년 6월호)

 

  평화를 위한 공공신학: 광주항쟁과 사진 연구를 중심으로
  

본문

 

“A Public Theology for Peace Photography: A Critical Analysis of the Roles of Photojournalism in Peacebuilding,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Gwangju Uprising in South Korea”(평화사진을 위한 공공신학: 광주항쟁 속 언론사진의 평화세우기 역할에 대한 비판적 분석)
에든버러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7



필자의 논문을 소개하려면 ‘평화학’, ‘공공신학’, ‘미디어 연구’라는 세 가지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이 세 가지 학문적 배경은 필자의 연구 궤적과도 일치한다. 먼저 필자가 평화학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보스턴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스턴대학교는 피터 버거(Peter Burger), 낸시 애머만(Nancy Ammerman) 등으로 이어지는 종교사회학적 전통과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목사와 그의 스승 하워드 서먼(Howard Thurman) 등으로 이어지는 인권운동의 요람지가 아니던가. 필자는 보스턴신학교(Boston Theological Institute)와의 컨소시엄을 통해 종교와 평화, 갈등, 용서와 화해, 회복적 정의 등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시 보스턴 지역의 신학교들은 종교 혹은 신학이 복잡한 사회 갈등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었다. 필자가 유학을 시작하던 무렵, 미국에는 9・11 테러의 충격이 여전히 남아 있었으며, 피터 버거는 자신의 세속화 이론을 철회하고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필자는 평화에 대한 신학적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 이론적 배경: 평화 구축, 그리고 갈등 전환
근대 평화학은 대략 1950년을 전후로 등장하였다. 그 배경에는 두 차례 발생한 세계대전과 이에 대한 반성이 있다. 즉 냉전체제 속에서 ‘어떻게 하면 전쟁에서 이길 것인가?’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전쟁을 멈추고 인류가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에 관하여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시기에 유엔이 설립되고 국가와 경계를 초월하여 세계 시민으로서의 가치와 비전을 수립하자는 흐름과 그 맥을 같이한다. 특별히 이 시기에 평화에 관한 이해가 달라졌는데, 국가 간 전쟁의 억지, 종결, 그리고 평화조약 등의 이른바 ‘톱-다운’(top-down) 방식의 접근에서 벗어나 사회 갈등의 다양한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평화의 문화를 세워가기 위한 다차원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과거에는 정치, 외교, 국제관계 등의 연구가 주를 이루었다면, 최근에는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교육학 등 그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1
최근 평화학 분야의 방향도 비슷하다. 갈등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연구들이 부쩍 늘어나 종교나 문화, 예술 등이 새로운 연구 주제로 떠오르며, 평화 감수성이나 폭력에 대한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접근이 중요한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갈등과 관련해서도 문제가 아니라 관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아래에서 위로’(bottom-up) 변화하는 풀뿌리 민주주의 방식의 접근과 문화적 접근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필자는 평화의 개념을 ‘폭력을 줄이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이해에는 두 가지 이론적 바탕이 존재한다. 하나는 장기적 관점에서 평화의 문화를 세워가야 한다는 ‘평화 구축’(peacebuilding) 이론이며, 다른 하나는 해결해야 할 골칫거리로 갈등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로 변화를 유도하는 촉매로 인식하는 ‘갈등 전환’(conflict transformation) 이론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문화 연구는 사회 갈등의 근원을 이해하는 중요한 접점을 제공한다. 그리고 필자의 다른 두 관심 영역인 종교와 미디어는 한 사회의 집단의식과 삶의 방식 등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평화의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텍스트로 자리한다.

| 공공신학적 배경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은 전통적인 신학의 범주로 보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존재한다. 필자의 학위명은 “기독교윤리와 실천신학”이지만, 실제로는 신학과 평화학, 그리고 미디어 연구 간의 다학제적 연구에 가깝다. 다학제적 연구 방법론은 영미권 신학자들에게는 거의 필수적인 것처럼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필자가 수학한 에든버러대학교의 공공신학적 학풍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에든버러대학교의 던컨 포레스터(Duncan B. Forrester)와 윌리엄 스토라(William Storrar)는 영국 공공신학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이다.2
던컨 포레스터는 신학의 목적과 효용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 적절하게 관여하는(engage) 데 있다고 보았다. 그의 관심은 하나의 신학적 체계나 전통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당면한 공공문제(public issue)를 해결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그는 신학이 거대담론을 지양하고 보다 겸손하고 실천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신학이 모든 사항에 대해 정답을 말하려고 하기보다는 부분적으로나마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통찰을 제공하거나 어떤 사안에 비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것을 ‘신학적 파편’(theological fragments) 혹은 ‘파편의 신학’(a theology of fragments)이라고 하였다.3
논문의 밑바탕에는 바로 이러한 공공신학적 배경이 자리를 잡고 있다. 공공신학(public theology)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으며 이에 대한 공통된 정의나 개념도 불분명하다. 더크 스미트(Dirk Smit)와 같은 학자들은, 공공신학이란 하나의 정형화된 학문이 아니며 다양한 역사적 상황과 문제에 따라 그 접근 방식이 다르다고 주장한다.4 「국제공공신학저널」(IJPT)의 초대 편집장을 역임한 김창환(Sebastian Kim)도 비슷한 맥락에서 공공신학의 특징을 설명하는데, 공공신학이란 매우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다학제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5
또 김창환은 공공신학을 설명할 때 종종 ‘대화(소통)를 위한 테이블’을 떠올리곤 하는데 필자도 적극 동의하는 부분이다. 신학이 오늘날 사회 문제와 진지하게 토론하기 위해서는 단지 신학적 주장을 잘하는 것보다는 공통된 주제에 대한 문제의식과 어느 정도의 전문 지식이 요구된다. 따라서 많은 경우 공공신학자들은 신학적 지식과 함께 공공 문제에 관한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필자의 논문을 이미지로 설명하자면, 평화라는 주제를 놓고 신학자와 평화학자, 언론학자, 사진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 토론하는 것과 같다.

| 평화학에서 사진(미디어) 연구의 중요성
필자가 사진이라는 매체에 관심을 갖는 이유를 짧게라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존재하는데, 첫째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 때문이고, 둘째는 학문적 관심 때문이다. 필자는 사진이 가진 표현의 강렬함과 함축성, 순간의 미학, 그리고 기록사진으로서의 사회적 역할 등을 좋아한다. 박사 과정을 지원할 무렵,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사진에 관하여』, 『타인의 고통』 등의 저서를 읽은 것도 평화와 사진의 관계를 공부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다른 이유로는 미디어 연구에서 영화나 연극, 음악 등의 다른 매체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사진에 대한 연구가 적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진은 누구나 쉽게 촬영하고 언제 어디서나 사진 이미지를 보고 있을 만큼 일상에서 빈번하게 활용된다. 평화학과 평화운동 영역에서도 평화교육 및 활동가들이 예술을 활용하여 어떻게 갈등을 줄이고 평화를 실천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늘어나는 추세이다.6 하지만 이러한 연구는 주로 활동가들이 갈등의 상황에서 예술(사진을 포함)을 어떻게(how) 사용할 것인가에 집중된 편이다. 반면 예술(사진)이 가진 담론과 이론적 배경, 그리고 역사적 맥락에서 수용자의 인식을 분석하는 방식의 비판적 사진 연구는 부족하다. 필자가 사진을 접근하는 방식은 후자에 해당하는데, 크게 사진이 담고 있는 이미지를 분석(contents analysis)하는 것과 그 사진을 관객(audience)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분석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다시 말해 사진이 관객에게 어떤 인지적・사회적 영향력을 가지는지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이다.
사진과 평화의 관계에 대한 막연한 관심은 필자의 지도교수인 졸리온 미첼(Jolyon Mitchell)의 지도하에 비로소 학문적인 몸의 형태를 입게 되었다. 미첼은 현재 에든버러대학교 공공신학연구소 소장으로 일하면서 공공신학 연구과제의 일환으로 지난 10년간 ‘Media and Theology’(미디어와 신학), ‘Peacebuilding through Media Arts’(미디어아트를 통한 평화세우기), ‘Religion and Ethics in Making of War and Peace’(전쟁과 평화를 만들어내는 종교와 윤리학) 등의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다.7 미첼은 신학을 공부하기 전 영국 BBC 방송국에서 PD로 일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당시 그는 주로 국제분쟁에 관한 보도를 담당했는데 그것이 현재의 연구 주제인 전쟁과 평화, 언론과 미디어, 그리고 예술 등의 영역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의 책 Promoting Peace or Inciting Violence: The Role of Re-ligion and Media(2012)는 사진과 평화에 대한 필자의 막연한 관심을 구체적으로 발전시키도록 도와주었다. 특별히 논문의 주제와 방향을 결정하는 초기 단계에서 사진이나 종교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어떻게 갈등을 유발하는지에 대하여 논문을 쓰려고 했던 필자에게 한 단계 더 나아가 그러면 어떻게 평화에 기여할 수 있겠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논문의 지향점이 바뀌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것은 신학의 목적이 비판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은 창조적인 결과를 고민해야 함을 알려주는 계기였다.

| 논문의 구조 및 요약
논문의 주요 논지는 (언론)사진이 갈등의 상황에서 평화를 위해 어떤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는가를 비평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여느 미디어와 마찬가지로, 사진이라는 매체는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데, 논문에서는 주로 “어떤 측면에서 사진이 갈등이 아닌 평화를 증진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가”를 묻고 비평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이었다. 논문 전체를 통해 밝히고자 하는 중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언론)사진은 다양한 갈등의 상황 속에서 평화를 세우기 위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1) 진실을 드러내고, (2) 피해자의 고통을 재현하며, (3) 비폭력적 저항을 독려하고, (4) 고통스러운 과거를 바르게 기억하고, (5) 정의를 회복하고 화해하도록 돕는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우리나라 갈등의 역사 가운데 매우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5・18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당시의 사진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서 역사학부터 사진 연구, 미디어 및 커뮤니케이션 이론, 평화학 이론 등을 살피고 그것이 가진 신학적 의미와 통찰을 논하였다.
논문의 구조는 크게 6장으로 나뉜다. 먼저 1장에서 사진과 평화의 관계를 다루면서 이론적인 배경과 적용 가능성을 다룬다. 2장부터 6장까지는 각 장마다 평화의 중요한 세부 주제들(진실, 고통과 공감, 비폭력 저항, 기억과 트라우마, 그리고 정의와 화해)을 중심으로 (언론)사진이 평화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살피고 있다.
먼저 1장은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의 전쟁사진(war photography)의 역사를 평화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이다. 이 시기의 사진들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을 보이는데, 현실주의(realism)와 초현실주의(surrealism)가 그것이다.
현실주의적 전쟁사진은 전쟁과 폭력의 피해자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전쟁의 참상을 드러내려고 한다. 전쟁의 폭력성을 더 ‘실감나게’(폭력적으로 그리고 끔찍하게!) 재현할수록 그 사진을 보는 관객들에게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선택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진들은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나, 수잔 손택이 지적하듯이,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선택하는 도덕심을 길러주는 것으로 이어지진 않는다.8 예를 들어, 에른스트 프리드리히(Ernst Friedrich, 1894-1967)는 1923년에 나치군에 의해 참혹하게 죽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은 군인들의 사진들을 모아 베를린에 반전박물관(Anti-War Museum)을 개관하였다.9 당시 사진전의 제목은 <전쟁에 반대하는 전쟁>(War Against War)이었으며, 전시회 사진들을 모아 같은 제목으로 사진집을 출판하였다. 이 책은 빠르게 독일 전역과 근방 국가들로 번역되어 퍼져갔다. 그러나 프리드리히가 이끄는 운동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폭력적 전쟁사진이 전해주는 충격은 반복적으로 노출될수록 익숙해지고 심지어 평범해지기 때문이다. 현실주의 전쟁사진은 폭력 자체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두어 다른 것들을 보지 못하게 하는 한계가 있다.
사진이 전쟁을 다루는 두 번째 시각은 초현실주의적 접근이다. 1924년 파리에서는 앙드레 브레통(André Breton)이 “초현실주의 선언”(Surrealist Manifesto)을 발표함으로써 공식적인 초현실주의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초현실주의란 비합리성 우선성과 현실 너머의 진실을 추구하기 위하여 이성과 논리를 초월하고 꿈, 우연, 중독, 판타지 등 인간의 무의식 영역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예술운동이다. 초현실주의는 일정한 형식을 가진 장르라기보다는 다양한 매체가 각자의 표현 방식으로 초현실성을 드러내곤 했는데 사진도 중요한 매체 중 하나였다. 그들은 사진기를 이용하여 현실을 왜곡하고 과장하는 등의 형식으로 작업을 하곤 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당시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기계 문명에 대한 반감이 크게 작용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계를 이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상징으로 보았으며, 기계산업의 발전은 무기로 이어졌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현실주의자들이 전쟁에 반대하며 더 나은 인간의 삶을 위해 초현실적 방법을 추구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 예술작품들을 보고 느끼는 관객들의 반응은 작가들의 기대와는 항상 같을 수는 없었다.
평화를 위한 사진의 역할을 재고하기 위해서는 통전적 관점이 필요한데, 필자의 주장은 평화학적 관점이 유용한 해석의 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전쟁사진 속 현실주의와 초현실주의의 흐름은 사진가의 의도가 지나치게 강조된 나머지, 관객이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적정한 거리’(appropriate proximity)를 제공하는 데 실패하였다. 존 폴 레더락(John Paul Lederach)과 같은 평화학자들은 복잡한 사회갈등을 이해하고 평화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관점이 아닌 다층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초점 렌즈의 예를 들면서, 갈등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처하려면 (1) 즉각적인 갈등의 상황에 대한 인지, (2) 그 갈등이 발생한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이해, (3) 이런 현상들을 꿰뚫는 이론적 체계가 모두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사진이 갈등을 줄이고 평화를 증진할 수 있을까? 레더락의 세 가지 관점은 평화를 위한 사진의 역할을 분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장부터는 논지의 구체적 근거로서 광주항쟁 당시 사진의 역할을 세부적으로 다루고 있다. 먼저 2장의 질문은 “사진은 어떻게 진실을 드러내는가”이다. (언론)사진이 진실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언론인의 역할, 즉 기자정신이 중요하다. 그저 사실을 보았다는 것이 아니라 사건 현장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모든 과정이 기자의 증언인 셈이다. 이를 가리켜 단순한 ‘목격’(eye-witnessing)과 구분하여 ‘목격자 역할’(bearing witness)이라고 한다. 사진은 광주항쟁의 시간들을 모두 담아낼 수 없으며, 사건의 진실을 파편적으로 담아낼 뿐이다. 그런데 이 사진들 가운데 진실을 드러내는 사진이란 무엇일까? 바로 언론인으로서 위협을 무릅쓰고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증언하는 사진이어야 수많은 진실들 중에서 진실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3장의 주제는 고통과 공감이다. 피해자의 고통을 재현하는 것은 사진의 중요한 역할이지만, 동시에 사진의 폭력적이고 끔찍한 고통의 재현 방식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폭력적 사진에 반복적으로 노출됨에 따라 관객들은 점차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은 피해자의 고통을 재현하고 공감을 일으키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폭력을 재현하는 방식은 크게 직접적이고 육체적인 폭력을 재현하는 것과 간접적이고 관계적인 폭력을 재현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서 몰트만이 주장했듯, 예수의 고통은 육체적인 것이라기보다 하나님과의 단절, 즉 관계적 측면에서의 고통인 것처럼, 고통과 공감에 대한 사진의 역할이란 관객으로 하여금 관계와 감정적 고통의 이해를 높이는 것이다.
2-3장에서 다룬 주제(진실과 고통)가 5・18 당시에 자행된 학살이라는 맥락에 초점을 둔 것이라면, 4-5장은 광주에서의 학살이 광주항쟁 및 민주화운동으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사진의 역할에 초점을 두었다. 즉 사진은 폭력에 순응하기보다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저항하도록 도우며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재구성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4장에서는 비폭력과 시민저항운동을 다루었으며, 광주항쟁 사진 대신 1987년 6월항쟁 당시 부산 문현로터리에서 경찰의 최루탄 살포에 맨몸으로 맞선 한 청년의 사진을 다루었다. 이 사진은 비폭력저항의 가치, 용기와 희생의 상징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폭력적 억압에 대응하는 비폭력적 저항운동이 더 효과적임을 증명하는 한 사례이기도 하다. 이는 신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이른바 예수 그리스도의 비폭력 저항에 대한 가르침과 폭력의 사슬을 끊는 상징으로서의 십자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5장에서는 기억과 역사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사진이 하는 역할을 살펴보았다. 사진은 집합기억(collective memory)의 매개체로서 한 사회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기억하고 재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기억의 당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기억하느냐이다. 특별히 필자의 관심은 사진이 고통스러운 기억(트라우마)을 어떻게 더 나은 기억(치유와 회복)으로 전환하도록 돕는가에 있다. 광주항쟁을 다룬 다수의 문학작품이 그러하듯, 광주항쟁에 대한 초기의 집합기억은 피해자의 기억이며 무력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정치적 상황이 변함에 따라 광주항쟁에 대한 법률적・정치적・사회적 인식은 달라졌으며, 이 과정에서 그날의 기억은 재형성되었다. 이날의 사건은 ‘광주폭동’이나 ‘광주학살’이 아니라 ‘광주항쟁’,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재정의된다. 이 과정에서 사진은 ‘학살의 피해자’에서 ‘민주주의의 상징에 참여한 민주시민’으로 기억되도록 돕는다.
마지막 6장은 5장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 사회의 갈등과 갈등의 역사가 온전하게 회복되기 위해서는 용서와 화해가 필요하다. 광주항쟁은 사법제도 안에서 볼 때 이미 법의 심판을 받은 사건이다. 이 세기의 재판 장면은 소위 ‘민주주의 승리’와 ‘정의의 구현’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피해자에게 진실하게 사과하지 않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정의란 무엇인지, 그리고 정의와 평화의 관계는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전통적인 정의관은 종종 사법적 정의의 틀 안에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재의 사법적 정의체계는 법이 피해자들을 대신하고 심판과 처벌을 통해 정의를 세우고자 한다. 그러나 그곳에 피해자를 위한 공간은 없으며, 이들을 위한 진정성 있는 사죄 또한 없다. 사죄와 용서는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정의를 실현하고 평화와 화해로 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기독교의 역할 또한 여기 있다고 본다.

| 나가며
사진은 순간을 포착하지만 파편적이다. 순간을 부각시키지만 맥락이 배제되거나 그 수용이 왜곡될 수 있다. 따라서 사진만큼 독해력(literacy)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각매체도 없다. 또한 사진은 일어나지 않은 일을 담을 수도, 재현할 수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사진이 담아내지 못한 현실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현실이 되도록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광주항쟁을 담은 기록사진들은 무엇을 담아내고 무엇을 재현하지 못했는가? 어떤 사진은 광주항쟁의 진실을 보게 하였고, 고통을 공감하게 하였으며, 비폭력 저항의 가치를 높였고, 고통스러운 과거의 기억을 재형성하게 돕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당시의 사진들 속에는 피해자도 있고 고통도 있고 저항도 있었지만, 사죄가 없었고 용서가 없었다. 치유와 화해의 길은 아직도 요원해 보이기까지 하다. 광주항쟁을 보며 평화를 상상하는 것은 이제 관객들의 몫이 되었다.
부족한 연구이지만 이 연구의 의미 혹은 바람에 대하여 짧게 언급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먼저 이 연구가 공공신학의 분야 중 떠오르는 주제 중 하나인 미디어에 관한 연구로서 신학과 미디어 연구 간의 작은 시도가 되기를 바란다. 둘째, 평화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가 거대담론에 머물지 않고, 평화의 세부적인 주제들을 중심으로 좀 더 구체화되고 실천될 수 있는 사례 연구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역사 속 폭력과 갈등의 역사를 (언론)사진을 통해서 해석할 수 있는 독해력(media literacy)을 기르는 일에 이 논문이 작은 보탬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1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외교 채널의 전환에서도 엿볼 수 있다. 과거에는 ‘정부’와 ‘민간’이라는 두 영역(Two-Track Diplomacy)으로 외교 문제를 접근했다면, 오늘날에는 다양한 영역(Multi-Track Diplomacy)을 통해 접근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2 던컨 포레스터(Duncan B. Forrester, 1933-2016)는 스코틀랜드의 대표적인 신학자이다. 그는 1984년 에든버러대학교 내에 세계 최초의 공공신학 연구소인 ‘신학과공공문제연구소’(Center for Theology and Public Issues)를 설립하고 2000년까지 소장으로 활동하면서 영국 공공신학을 이끄는 대표적인 신학자로 자리매김했다.
윌리엄 스토라(William Storrar)는 포레스터의 뒤를 이어 두 번째 소장으로 일했으며, 공공신학 국제 조직인 ‘Global Network for Public Theology’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현재는 프린스턴대학교에 위치한 공공신학 연구기관인 ‘신학적의문연구소’(Center of Theological Inquiry) 소장을 맡고 있다.
3 Duncan B. Forrester, Theological Fragments: Explorations in Unsystematic Theology(London: T&T Clark, 2005), ix.
4 Dirk Smit, “Notions of the Public and Doing Theology”, International Journal of Public Theology 1, no. 3(2007) 참조.
5 Sebastian C. H. Kim and Katie Day, A Companion to Public Theology(Leiden; Boston: Brill, 2017), 14.
6 대표적인 학자는 미국 브랜다이즈대학교(Brandeis University)의 신시아 코헨(Cynthia Cohen)이다. 그녀는 예술과 평화적 실천의 창의적 관계에 관하여 다양한 연구를 이어가며 평화단체들과 연대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코헨이 발행하는 소식지 「예술과 평화건설」(Art and Peacebuilding)도 참조할 만하다.
7 에든버러대학교 공공신학연구소 홈페이지.(https://ctpi.div.ed.ac.uk/)
8 손탁은 자신의 저서에서 이 대목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즉 사진은 관객(수용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감정적 반응을 유발하지만, 실제적이고 도덕적인 행동을 하도록 이끄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따라서 사진 연구에서 사진가의 의도 및 이미지 분석은 관객의 해석 및 반응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
9 프리드리히가 세운 반전박물관은 최초의 근대 평화박물관으로 여겨진다.



김상덕 | 보스턴대학교와 에모리대학교에서 각각 석사 과정을 마치고 에든버러대학교에서 언론사진과 평화에 관한 공공신학을 주제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저서로는 The Role of Religion in Peacebuilding, 『평화의 신학: 한반도에서 신학으로 평화만들기』(이상 공저)가 있다. 현재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연구실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명지대학교 객원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2020년 6월호(통권 7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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