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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문화와 신학] 문익환 목사 헌정음반 <뜨거운 마음>을 기록하다 11
문화·신학·목회 (2020년 6월호)

 

  골디락스(goldilocks) -<평행선>
  

본문

 

| 골디락스
본래 영국의 전래동화 <곰 세 마리>에 등장하는 금발머리 소녀의 이름이었던 ‘골디락스’(goldilocks).1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적당한 간격 혹은 거리, 이런 의미를 담은 일반명사로 널리 쓰이고 있다. 가령 모닥불을 쬘 때, 너무 가까이 있으면 뜨겁고 너무 떨어져 있으면 춥다. 춥지도 뜨겁지도 않은 적당한 간격이 있기 마련인데, 그 간격을 몸소 체득한 사람들로 모닥불 주변은 늘 동그랗다.
태양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행성은 ‘수성’이다. 자전 속도가 매우 느려서 지구의 176일 정도가 수성의 하루이다. 무척 지루한 하루가 아닐 수 없다. 그 긴 하루의 절반은 태양으로부터 너무 가까이 있는 탓에 온통 그을려져 있는데, 표면 온도가 무려 476도까지 올라간다. 반대로 176일의 긴 하루 동안 태양의 수혜를 전혀 받지 못하는 나머지 절반은 영하 180도를 넘나드는 혹독한 추위를 견딜 수 있어야 하루가 겨우 살아진다. 절반은 그을려 있고 절반은 꽁꽁 언 상태를 무수히 되풀이하면서 고통스럽게 생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행성이 수성이다. 태양으로부터 적당한 거리, 즉 골디락스를 유지하고 있지 않은 대가가 수성에게는 이리 혹독하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가 지금 이 모습 이대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적당한 간격을 태양으로부터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골디락스가 조금 좁혀지거나 살짝 멀어지면 지구의 생명체는 현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질서로 재편되는 것을 피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코로나19’가 우리 삶을 헝클어놓지 못하도록 설정한 ‘물리적 거리두기’의 골디락스는 2m이다. 자신의 평온과 타인의 안녕을 위한 그 골디락스가 이 지상을 미증유의 패러다임으로 이끌 것이라는 예견이 난무하는 요즘, 내가 몸담고 있는 전남도립국악단도 온라인으로 공연했고, 지난주에 겨우 재택근무를 끝냈다. 굳이 물리적 거리두기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아름다워 보이는 적당한 거리를 나는 늘 존중하며 살았다. 너무 가까우면 긴장이 무너져 이내 싫증이 났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추억이 쌓이지 않아 관계의 건조함을 이겨볼 도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이 있어도 늘 보고 싶고 멀리 있어도 항상 함께 있는 것 같은, 닿을 듯 말 듯하여 더없이 아름다운, 그런 적당한 관계의 거리가 있기 마련인데, 이를 사람과 사람의 골디락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시(詩) <평행선>과 노랫말 <평행선>

가도 가도 끝내 만날 수 없는
어찌보면 눈을 부라리며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바보 같은 대결
우리의 숙명과도 같은
또 어찌 보면
아직은 좀 거리를 두고 나란히 걸으며
더듬더듬 말을 주고받는
젖비린내 나는 연인들의 두근거리는 가슴
떨어지면 금방 숨이라도 멎을 것 같은

만경벌 평야를 만나면
끝이라도 닿을 듯 일직선으로 뻗고
검불랑 깊은 계곡에 걸려 있는 철교를 건널 때에는
우릉우릉 온 산골을 울리고
길고 짧은 굴을 빠져 나갈 때는
온 가슴을 어둠을 짓이기며 돌진하고
동해 푸른 바다를 굽어보며 달릴 적에는
굽이굽이 힘찬 기적을 울리기도 하고
야 그만둬라
그 줄이 어떤 줄인데
영영 못 만날 것 같아도
썩으면 갈아 끼우고 썩으면 또 갈아 끼우는
버팀목의 사랑으로 이어진
겨레의 핏줄 역사의 힘줄인데
시구나 읊조려
어서 그 줄 끊어진 데나 이어라

압록강 두만강 옛 고구려의 바람을 싣고
단숨에 서울로 달려와 광주로 부산으로 보내고
부산에서 시금털털한 경상도 사투리를 싣고
목포 광주에서 호남평야 기름진 쌀을 싣고
거칠 것이 없어라
원산으로 새서 종성 회령으로 달리고
평양으로 해서 신의주 자성 강계까지 달리게

아버지 알겠습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이산가족들부터
고향으로 고향으로 실어 날라야지요
산골짝 골짝 간이역들에서까지
40년 응어리진 가슴들 피눈물로 터져 나오며
긴 긴 한 푸는 소리
온 산천 울리게
끊어진 겨레의 혈맥
버팀목들의 사랑으로 이어야지요
그리고 미치게 달려야지요


삶으로 이미 다 써진 시를 토해내듯 쓴 늦봄의 격정을 존중하면서 음악을 만든다면 작곡 작업이 몇 달이 걸릴 것 같은 막막함으로 시(詩) <평행선>을 마주했다. 이런 시는 그냥 내버려두는 게 도리라고, 이런 구성의 시로 노래를 만들 발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고, 나만큼 늦봄 마니아로 살아온 작곡가 몇몇의 우려를 익히 들은 터였다.
오기 비슷한 심정으로 기타를 들고, 정처 없는 기타 코드를 계속 튕겨가면서 시를 읽었다. 기타를 거머쥔 손가락이 시가 허락한 음악의 미로를 찾아낼 것만 같은, 작곡가들이 사용하는 흔한 시 읽기 방법 중 하나이다.
그러다 <평행선>이 내 음악의 협곡으로 들어와 노랫말이 되기 위해서는 첫 번째 연 하나만으로 충분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그조차 음악과 ‘한 몸 같은 노랫말’이기 위해 아래와 같이 음악이 설정한 라임(rhyme)으로 시의 자수(字數)를 재구성해야 했다. 혹여 시를 쓰는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자신의 시가 노래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질서를 승인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적절한 범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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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처롭기 그지없이, 두 줄의 레일은 끝내 만날 수 없다. 닿을 수 없는 그 간격이 유지되어 있어야 비로소 철길일 수 있으니, 늦봄의 시 <평행선>은 두 레일의 골디락스에 대한 연민의 감수성으로 처연하다.
내 음악의 결은 더없이 센티멘털하게 빚어졌다. 흥얼흥얼 웅얼웅얼, 기타 코드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시를 붙잡고 씨름한 지 하루를 꼬박 지내고 나니, 가락은 눈코입이 제자리에 박힌 완성체로 말끔했다.
어김없이 늦봄의 시가 내 음악의 이미지를 만들어주었고, 내 음악의 틀로 시를 다시 재구성하면서 불가피하게 시의 4분의 3이 생략됐지만, 시의 알맹이와 노랫말이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은 빠짐없이 담겼다.
이 정도의 변형이라면 ‘늦봄 작시’라기보다는 ‘늦봄의 시를 빌려 류형선 작사’여야 맞다. 생전에 이 노랠 들으셨다면 늦봄도 틀림없이 내 의견에 동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2000년도에 문익환 목사 헌정앨범 <뜨거운 마음>을 제작할 때는 그냥 ‘늦봄 작시’로 명기했다. 내 것은 한 웅큼도 보이지 않고 다 늦봄의 것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끝내 좁혀지지 않는 운명의 ‘평행선’에게서 늦봄이 애틋하게 솎아낸 언어의 결을 연인 같은 심정으로 느껴보시길 바란다. 바짝 마른 논에 못물 스미듯, 늦봄의 여린 감수성이 배꼽 아래에서부터 차오를 것이다. 아직은 거리를 두고 나란히 걸으며, 닿을 듯 말 듯, 더듬더듬 하고픈 말 너무 많은, 젖비린내 나는 연인들의 두근거리는 가슴, 떨어지면 금세 숨이 멎을 것 같은…. 아! 설레임의 역설(逆說)이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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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 부른 이, 이정열
꼭 한 번은 이정열이 부른 <조율>(한돌 작사・작곡)을 들어보길 바란다. 왜 그런지는 들어보면 안다. 한영애와 JK김동욱이 부른 <조율>이 아니라 작곡가 흔돌의 군더더기 없는 원곡의 감수성이 오롯하게 느껴질 것이다.
90년대 언제쯤인가, 학전 소극장에서 열린 한돌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와서 이정열이 부른 <갈증>(한돌 작사・작곡)을 들었을 때, 저렇게 노래를 잘 부른 이를 후배로 두고 있는 것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었다. 음원이 없어 두 번 들어볼 기회가 없는 그의 <갈증>을 ‘술 익는 마을에 타는 저녁놀’을 마주하는 날이 혹여 온다면 꼭 다시 청해 들을 것이다.
요즘은 뮤지컬 가수로 날개를 달고 사는 그이다. 몸이 아파 무척 고단했던 한 시절을 겪고 난 그의 눅눅한 표정을, 2019년 3・1절 100주년 기념노래 뮤직비디오 작업을 함께하면서 애처로이 마주한 일이 있다. 아! 그도 벌써 쉰을 넘겼다.
소리가 꽉 채워진 것보다 느낌이 소리를 끌고 가는 게 좋다. 소리는 주파수의 형태일 뿐이지만, 느낌은 그 소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정열이 그 이치를 가감 없이 증명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수라 생각한다. 고즈넉하고 애틋하고 막막하되 설렘 넘치는 늦봄의 시 <평행선>, 그 복합적인 느낌의 세계는 어김없이 이정열의 몫이라 판단하여 그에게 노래를 맡겼다.


1 본래는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중국이 2004년 9.5%의 고도성장을 이루면서도 물가상승이 없는 상황을 “중국 경제가 골디락스에 진입했다.”라고 기사화하여 알려진 용어인데,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경제의 호황을 ‘골디락스’라 일컫기도 한다.


류형선 | 한양대학교 작곡과 및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예술전문사과정을 졸업했다. 국립국악원 예술감독을 역임했으며, KBS 국악대상을 수상하였다. 작곡가로 살면서 400여 작품을 발표하였고, 음반프로듀서로서 살면서 50종의 음반을 제작하였다. 저서로 북시디 『전래자장가 <자미잠이>』, 음악에세이 『음악에게 차 한 잔을』 등이 있다. 현재 전라남도립국악단 예술감독으로 재직 중이며, 경기예술창작소 수석마스터 및 정동극장 이사로 활동 중이다.

 
 
 

2020년 6월호(통권 7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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