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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문화와 신학] 교회 내 성차별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 03
문화·신학·목회 (2020년 4월호)

 

  여성의 성서 읽기와 페미니즘의 만남–성경적 페미니즘의 필요성
  

본문

 

* 이 글은 필자의 책, 『성경적 페미니즘과 여성 리더십: 복음주의와 페미니즘의 만남』(새물결플러스, 2020)을 참조하였음을 밝힌다.


지난 두 편의 글에서 성차별적 설교, 교회의 가부장적 관행과 성문화를 통해 교회 내 성차별 문제를 살펴보았다면, 이번 글에서는 교회 내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식적 차원에서 성경적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다루어보려 한다. 교회 역사에서 여성의 성서 읽기는 부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인식의 주체자로서 성서를 읽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제사장이 될 수 있도록 성서를 번역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던 종교개혁 시대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남성의 성서 읽기’만을 ‘성서적’이라고 보는 ‘가부장적 성서 해석’은 교회 내 성차별 문제를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다. 남성 교부들과 남성 신학자들에 의한 가부장적 성서 해석은 ‘산 자의 어미’인 하와(창 3:20)를 ‘유혹자’ 또는 ‘악마의 출입구’로 보았으며, ‘열국의 어미’인 사라(창 17:16)를 족장 아브라함에게 복종한 아내로 여겼다. 또한 주체적이며 독립적인 한나(삼상 1장)를 ‘현모양처’로, 아하수에로 왕 체제에 불복종한 에스더(에스더서)를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여성으로, 그리고 예수 부활의 첫 목격자요 증인인 막달라 마리아(요 20장)를 ‘죄 많은 여인’ 혹은 ‘창녀’ 정도로 가볍게 해석해온 경향도 존재한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애굽 왕에게 내어준 사건(창 12장), 롯이 소돔 사람에게 정혼한 딸을 내어준 사건(창 19장), 레위인 첩 윤간 사건(삿 19장), 암논의 다말 강간 사건(삼하 13장) 등 성(性)에 기반한 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이스라엘과 유대 사회의 가부장적 문화와 악습은 간과하고, 남성의 죄악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태도를 보이는 등 성감수성이 결여된 성서 해석의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이러한 해석이 지배하는 환경에서 교회 여성은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경험이 부정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보수 기독교는 ‘성평등’이라는 용어가 성소수자(LGBTQ)를 옹호한다는 이유로, ‘양성평등’으로 바꿔야 한다면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있으며, 혼전순결과 결혼, ‘마더와이즈’ 교육 등의 이면에 있는 가부장적 관점을 성서적이라고 호도하고 있다. 아울러 페미니즘을 “성평등을 조장하는 헤게모니”, “거짓 인권”, “거짓 평등”, “거짓 사상”이라 하여, “신학계와 교회를 무너뜨리는 불온하고 위험한 이념”으로 치부하고 있다.1 하지만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페미니즘은 남녀 모두 평등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능력과 희망에 따라 살아가도록 지향하는 사상이요 운동이다. 교회의 가부장적 성서 읽기로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보편적 인권과 성평등 의제를 따라가지 못하며, 여성의 자존감을 회복하거나 복음적 위로를 찾기 어렵다.
이에 필자는 성서와 페미니즘의 만남으로서 ‘성경적 페미니즘’(biblical feminism)을 소개하려 한다. 성경적 페미니즘은 가부장적으로 치우친 교회가 남녀 평등에 기반한 성서 해석으로 나아가게 하는 인식론적 전환의 지평이요, 남녀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즉 인간성 실현을 이뤄내는 ‘새 부대’가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성경적 페미니즘이란 무엇인지를 논하고, 그리스도의 복음과 페미니즘의 관계는 어떠한지를 ‘사마리아 여인’(요 4:3-27) 본문에 대한 여성의 성서 읽기를 통해 살펴본 후, 성경적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 성경적 페미니즘: 성서와 페미니즘의 만남
페미니즘은 “여성됨에 대한 여성 스스로의 근원적 물음으로 시작하는 이념”이다. ‘여성됨이 곧 인간됨’이라는 인식에 바탕을 둔 페미니즘은 근대 계몽주의의 천부인권 사상과 깊은 연관 속에서 출발하였다. 근대 페미니즘 사상을 체계화한 영국의 계몽사상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는 1792년에 출간한 책 『여성 인권의 옹호』에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2 그리고 1890년대 페미니즘의 선구적 인물인 엘리자베스 스탠턴(Elizabeth Cady Stanton)은 The Women’s Bible(여성의 성서)을 출간하면서, 성서에 의해 여성의 참정권이 박탈당하는 현실에 분노를 느껴, 성서가 절대로 가치 중립적인 책이 될 수 없으며 성서 안에는 여성 억압적 본문들이 정치적으로 잘못 이용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여성이 읽는 성서의 필요성을 알렸다.3
또한 1980년대 초반 페미니즘 성서 해석 분야에서 ‘제2의 물결’의 실질적 창시자로 알려진 여성신학자 쉬슬러 피오렌자(Elisabeth Schüssler Fiorenza)는 “기독교의 페미니스트 신학과 성서 해석은 기독교의 복음이 여성 제자들과 그들이 행한 것이 회상되지 않는다면 선포될 수 없기에, 그것을 재발굴하는 과정에 있다.”라고 하면서, 성서 해석 논의의 핵심을 기존의 가부장적 성서 해석에 대한 의심의 해석학에 두었다.4 백소영 교수는 성경적 페미니즘이 가능한 이유에 대해 성서가 줄곧 수직적 위계질서를 90도로 꺾는 하나님의 정의로운 손길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며, 관계성, 상호애, 공존이 우리 시대의 성경적 페미니즘이 부여잡고 씨름해야 할 키워드라고 말하였다.5

| 성경적 페미니즘
: 인식론적 측면에서 주체성과 대표성을 가진 여성의 성서 읽기

필자가 기존의 ‘기독교 페미니즘’ 대신 ‘성경적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말하고자 하는 이유는 존 호프만(John P. Hoffmann)과 웨인 그루뎀(Wayne Grudem)을 포함한 보수 신학자들이 여성 안수를 주장하는 사람을 성서적 권위를 폐기하는 자로 치부하여, 성서와 페미니즘이 대치된다는 오해가 있기 때문이다.6
‘성경적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는 복음주의 학자 존 스토트(John Stott)가 엘레인 스토키(Elaine Storkey)의 『페미니즘의 옳은 점』이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사용한 용어로, “페미니즘은 창조와 구속, 사랑과 정의, 인류애와 사역에 대한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7 따라서 성경적 페미니즘은 성서무오를 인정하는 성서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남녀의 동등성, 그리고 남녀 모두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인격적 주체라는 전제하에 페미니즘의 기본 이념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종합하여 성경적 페미니즘을 정의하자면, 페미니즘에 담겨 있는 ‘여성됨’에 대한 여성 스스로의 질문이 곧 ‘인간됨’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기독 여성 스스로 성서를 통해 여성의 정체성과 여성의 역할을 찾으려는 이념”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성경적 페미니즘은 성서를 통해 진정한 여성됨을 여성 스스로 찾는 길이요,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피조 세계, 그리고 남녀로 이루어진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읽어내는 ‘또 다른’ 관점인 것이다. 성경적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복음을 해석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하신 뜻에 맞는 여성됨과 역할을 찾는 일은 창조된 때의 본모습을 살려내는 일이요, 진리를 추구하는 길이며, 더 나아가 남녀가 평등하게 하나로 연합할 수 있는 모멘텀이 될 것이다.

| 그리스도의 복음과 페미니즘의 관계
사회적으로 열등한 위치에서 남편에게 종속되어 수동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여성을 대하는 예수의 태도는 당시 유대 남성들과 전혀 달랐다. 그분은 타락으로 잃어버린 여성의 존엄성을 회복시켰고, 여성을 주체적이고 인격적인 존재로 대우하셨다.(눅 10:42) 레너드 스위들러(Leonard Swidler)는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라는 책에서 “페미니스트라 함은 남녀평등을 지지하며 이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할 뿐 아니라, 여성이 남성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인간으로 취급되도록 노력하며 행동으로 사회적 통습에 저항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만일 복음서를 남성 우월주의나 영원한 여성성(eternal feminine)의 시각으로 보지 않는다면,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라고 하였다.8 예수가 만난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고 고립된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예수께서 선포한 말씀과 여성을 등장시킨 마지막 날과 천국에 대한 비유, 그리고 여성과의 만남을 통해 보여준 그리스도의 복음은 종교적, 사회적으로 남성에게 눌려 있던 여성을 자유롭게 만든 복음이요, 여성을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가는 의로운 주체자로 세운 복음이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는 참된 예수의 제자로 세우는 복음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여성 가운데서도 가장 천한 막달라 마리아를 부활의 첫 증인이자 전달자로 세운 사건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페미니즘의 상관관계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교회가 선포하는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이며, 이 부활의 기쁜 소식은 교회의 설립을 촉진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쉬슬러 피오렌자는 부활한 예수의 첫 증인이자 증거자가 되는 이중적 의미로 막달라 마리아의 사도성을 주장한다. 그녀는 “내 아버지가 곧 너희 아버지요… 너희 하나님”이라는 표현(요 20:17)을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그의 자녀들로 완성되는 ‘예수의 새로운 가족’ 곧 메시아 공동체가 되는 것이라고 보았다.9
또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다루는 본문을 해석할 때는 최초 증인이 ‘여성’이라는 사실,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 현장에서 일어난 희롱과 모욕, 침 뱉음과 채찍질, 십자가 처형을 목격한 막달라 마리아의 “내가 주를 보았다”(요 20:18)라는 독보적인 부활 증언에 우선권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회의 설립을 촉진한 부활의 첫 증인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부활로 새롭게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 복음의 전파자로서 성(性)의 구분이 없음을 확정한 사건이요, 남성과 여성 모두 평등한 증인과 제자였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 여성의 눈으로 성서 읽기: 사마리아 여인이 들려주는 복음의 의미(요 4:3-27)
예수께서 왜 페미니스트였는지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는 대목에서 잘 나타난다.(요 4장) 주석가 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 “유대 랍비가 공적으로 여자와 말하는 게 금지되어 있음에도, 결혼생활에 하자가 있던 여성과 대화를 했다는 것은 예수가 국적과 유대관습의 교리장벽까지 깬 놀라운 이야기다. …본문은 복음의 보편성의 시작을 보여준다.”라고 하였다.10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기 위해 당시 유대 사회가 중시하던 세 가지 사회적 통습과 질서, 즉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던 유대 민족의 질서,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던 가부장 질서, 여자집 밖에서의 대화를 금기시하던 랍비 전통의 질서를 과감히 깨뜨린 것이다.
이와 동시에 요한복음 4장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이혼권이 남편에게만 주어졌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칼뱅(J. Calvin)은 “‘네 남편을 불러오라’는 말씀은 여자의 죄를 지적하여 깨닫게 함으로써 양심에 충격을 가하신 것이다. …이 여자는 남편에게 여러 번 이혼당한 음탕한 여자로 낙인찍히자, 결국 창기로 전락하고 말았다.”라고 해석하였다.11 유대 사회에서 이혼에 대한 권리는 전적으로 남편에게 있었기에 여성의 결혼과 이혼은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칼뱅은 사마리아 여인의 결혼사가 복잡한 이유를 무조건 ‘사마리아 여인의 탓’으로 돌리는 해석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왜곡된 해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통용된다.
신약학자 차정식 교수에 따르면,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대부분의 경우 이혼은 경제력을 주도한 가부장이 여성을 버리는 방편으로 오용되었고, 그 과정에서 희생당하는 대상은 연약한 아내들이었다.12 따라서 사마리아 여인이 여러 차례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던 이유는 사마리아 여인의 개인적인 일탈 때문이 아니라, 유대 사회의 가부장 구조에 의한 ‘생존권’ 문제였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는 가부장 유대 사회에서 결혼과 이혼의 악순환을 경험한 사마리아 여인의 어려운 처지에 공감하며 인격적으로 대했던 것이다. 이는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이른바 전복적인 복음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본문 말씀은 제자들이 곁에 있지 않은 상태에서 사마리아 여인의 증언에 의해 전달된 것이기에(요 4:27), 이런 본문을 해석할 때에는 최초 전달자인 사마리아 여인의 입장과 관점에서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먼저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를 목격했을 때의 반응에 주목해본다. 우리말 성서에서 ‘놀랐다’(4:27)라고 표현된 단어 ‘타우마조’(θαυμάζω)는 ‘기이하게 여기다’ 혹은 ‘깜짝 놀라다’라는 뜻인데, 복음서에서 이 단어는 대부분 예수의 이적과 기사를 통해 하나님의 현현을 감지한 제자들이 보여준 반응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13 사마리아 여인이 전해준 그리스도의 복음은–당시 남성들과 종교인들이 여성의 성(性)을 착취하거나 정죄와 율법의 잣대를 들이댄 것과는 반대로–예수께서 동정과 연민을 통해 인간의 부르짖음과 신음에 응답함으로써,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치유와 회복의 선물을 보여준 인격적이고 혁신적인 복음으로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 아울러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보여준 구원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종교 지도자와 천민, 남자와 여자 모두 평등하게 하나 되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보여주는데, 이는 곧 인종이나 신분 또는 남녀 간의 차별(갈 3:28)을 타파한 그리스도 복음의 정신을 잘 드러내고 있다.

| 성경적 페미니즘의 필요성
남성과 여성은 성적 존재이자 인격적 주체들이다. 성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주체적인 입장에서 성적 활동과 사회 활동, 그리고 일상의 모든 삶에서 거룩하고 정의로우며, 책임 있는 기독교인으로서 서로 협력하며 살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적 페미니즘을 통해 성서의 권위를 남녀 모두에게 되돌려주고, 여성의 입장과 관점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하고 아름답게 펼쳐지도록 남녀의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에 성경적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는 남녀평등과 젠더 정의에 관한 문제이며, 21세기 교회가 풀어가야 할 젠더 이슈 해결을 위한 긴급한 과제이며, 아울러 복음의 인격성을 실현하기 위한 사명이기 때문이다.
성경적 페미니즘의 지향점은 여성의 주체적인 성서 읽기를 통해 하나님 인식에 대한 남녀의 같음과 다름이 무엇인지 서로의 견해를 존중하는 열린 대화의 자세로서 연합과 평화를 추구하며, 기독 신앙의 균형성과 다양성, 조화와 풍성함을 드러내려는 데에 있다. 성경적 페미니즘을 통해 여성 리더십의 활성화와 더불어 결혼과 이혼, 성차별과 성폭력, 강간과 성매매, 낙태와 인공수정, 성소수자와 저출산 문제와 관련한 젠더신학 연구가 활발히 이뤄져야 하며, 기후와 환경, 생명윤리와 평화통일 등 사회적 책임을 위한 미래 지향적이고 포용력 있는 남녀 파트너십 모델구축에까지 나아가야 할 과제가 있다. 한국교회가 성경적 페미니즘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본래의 존엄을 되찾아주고, 남녀의 독특성과 상보성을 인식하여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실현해나가는 일에 힘을 모아가기를 바란다.


1 “한기총, ‘동성애 반대 1천만 서명운동 전개’”, 「아이굿뉴스」 2014년 12월 9일 기사; “교회 해체 노리는 젠더 이데올로기 엄습… 연합해 대처해야”, 「국민일보」 2018년 3월 2일 특별좌담 기사.
2 이남희, “여성주의 역사와 젠더 개념의 등장”, 한국여성연구소 엮음, 『젠더와 사회』(동녘, 2019), 22-30.
3 최만자, “페미니즘과 성서해석의 문제”, 「한국여성신학」 47(2001): 35-53.
4 Elisabeth Schüssler Fiorenza, In Memory of Her: A Feminist Theological Recon-struction of Christian Origins(New York: Crossroad Publishing Company, 1994), 26-36을 참고하라.
5 백소영,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뉴스앤조이, 2018), 287.
6 John P. Hoffmann・John P. Barthowski, “Gender, Religious Tradition and Biblical Literalism”, Social Forces 86(2008): 1245-1272.
7 존 스토트, 정옥배 옮김, 『현대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Ivp, 2005) 13장 “여자, 남자, 하나님”을 참조하라.
8 레너드 스위들러, 이성청 옮김,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신앙과지성사, 2007), 31-39.
9 Elisabeth Schüssler Fiorenza, 위의 책, 130-153.
10 William Barclay, The Gospel of John: Volume 1(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75), 1146-1151.
11 매튜 핸리, 박문재 옮김, 『매튜헨리주석 18: 요한복음』(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6), 143-152.
12 차정식, 『성서의 에로티시즘』(꽃자리, 2013), 27.
13 복음서에서 이 단어(θαυμάζω)가 사용된 본문은 다음과 같다. 마 8:10, 27, 9:8, 33, 21:20, 27:14, 막 1:27, 5:20, 6:51, 10:32, 14:33, 15:5, 16:6, 눅 1:21, 63, 7:9, 8:25, 11:14, 20:26, 24:12, 41, 요 5:20, 28, 7:15.



강호숙 | 총신대학교에서 실천신학(교회 여성 리더십)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여성이 만난 하나님』, 논문으로 “교회리더의 성(聖)과 성(性)에 관한 연구” 등이 있다. 현재 기독인문학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20년 5월호(통권 7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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