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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문화와 신학] 교회 내 성차별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 01
문화·신학·목회 (2020년 2월호)

 

  성차별적 설교와 성희롱 발언, 이대로 괜찮은가
  

본문

 

* 이 글은 2013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은 연구 논문 “개혁교회 내 성차별적 설교에 대한 여성신학적 고찰: 성차별적 설교의 정의와 기준 마련 및 복음적 설교에 대한 여성신학적 접근”,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02호(2016): 301-326을 참고하였음을 밝힌다.


연재를 시작하며
교회 내 성차별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만인제사장설을 외친 종교개혁가들의 후예라 자처하는 한국 개신교는 표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모든 차별이 해소되었다는 복음을 말하면서도 교회 직제와 교회 정치, 설교와 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 남성 중심의 권위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교회 여성은 마치 중세시대로 돌아간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자신의 존엄성과 정체성마저 남성 목회자에게 양도하는 ‘주체성 없는 존재’로 전락하였다.
2012년 11월,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20-40대 교회 여성 1,3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회 내 여성의식조사 발표’를 보면, 젊은 여성들은 교회를 떠나는 이유로 교회 내 불평등한 성 역할과 성차별, 소통 부재를 들었다. 교회 내 성차별 개선의 과제에 대한 응답으로는 여성리더 할당제, 고정된 성 역할 및 여성 차별과 배제 해소, 의사결정 과정의 여성참여 보장 등을 들었다. 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 결과는 페미니즘을 배운 젊은 여성들의 성차별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음을 뜻하고, 또한 동시에 교회 안에서 더 이상 성별을 이유로 차별당하고 싶지 않음을 표명한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단지 젊은 여성들만 교회를 떠나는 데 그치지 않고, 젊은 남성과 다음 세대도 교회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젊은 여성 떠나는 이유, 소통부재”, 「들소리신문」 2012년 11월 7일 기사 참조)
현대사회는 여성의 인권과 남녀평등, 그리고 젠더(gender) 인식이 고조되어 있다. 또한 유엔을 비롯한 국내법 모두 성차별을 인권 침해의 대표적 행위로 규제하는 상황에서, 작금의 교회 내 성차별 문제는 계층 간 갈등과 세대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게다가 인권과 자유, 평등과 정의, 사랑과 연합을 바탕으로 하는 기독교 정신마저 훼손하면서 사회에서조차 지탄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교회 내 성차별 문제는 단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와 평화, 그리고 인간성 회복을 위해 교회가 시급히 다루어야 할 사안이다.
교회 내 성차별 문제로서 우선 성차별적 설교와 성희롱 발언을 꼽고 싶다. 한국교회의 대다수 설교자는 남성 목회자이며 설교를 거의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감안할 때, 성차별적 설교는 여성에게는 마치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가부장적 하나님 이미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을 일방적으로 퍼붓는 언어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설교자의 언사가 아무리 하나님 말씀의 선포라 해도, 설교는 인간의 언어로 이루어지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행위이다. 그리고 인간의 언어와 경험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이미지를 표출하는 도구이다.
필자가 보수적인 교단에서 45년간 설교를 들어오면서 내린 결론은 남성 목회자들이 여성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서 오직 ‘남성만을 위한 설교’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설교가 성차별적이며 성희롱 발언이라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실례로 2019년 총신대학교 학생 자치회는 학교 내 성희롱 발언에 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여 그 실태를 공개했다.(「뉴스앤조이」 2019년 11월 18일, 25일 기사) 현재 총신대에서 핵심 보직을 맡은 ㄱ교수는 여성을 닭에 빗대어 희롱하는 ‘영계’와 ‘노계’라는 말을 쓰기도 했고, 여자 친구의 순결을 ‘풀어보지 않은 선물’에 빗대기도 하였다. 또 반동성애 활동을 하는 o교수는 남녀의 성기 구조를 설명하는 발언까지 하여 언론에 일파만파 알려지게 되었다. o교수를 옹호하는 한국교회언론회는 “성희롱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없이, 과학적 근거를 들어 성 이야기를 꺼낸 것까지 희롱으로 몰아선 안 되며, 공동체 사건을 외부에 공개하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 급진적 페미니즘 대신 성경적 가르침이 필요하다.”라는 시대착오적인 논평을 내기도 하였다. 성희롱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두 남자 교수는 피해 학생들에게 사과하기는커녕, 오히려 학생들이 자신을 음해한다면서 법적 대응까지 염두에 둔다는 발언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남성 목회자들의 설교나 발언 안에는 가부장적 성서 해석과 경험, 가치관과 여성관, 개인의 성적 선호도와 성격, 젠더 인식과 편견 등 다양한 요소가 내포되어 있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또한 을(乙)의 처지에 있는 교회 여성들과 여학생들은 2차, 3차 피해의 고통 속에 힘들어하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필자가 이 주제를 다루는 이유는 여성신학자 입장에서 성차별과 성희롱이 무엇인지 뚜렷한 기준을 제시하는 목소리를 통해 교회 내 성차별적 설교와 발언을 반성하고, 이를 토대로 남녀평등의 설교 문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성차별적 설교와 성희롱 발언의 유형과 원인, 성차별적 설교의 부정적 영향을 언급하고자 한다. 또한 예수정신에 합당한 설교가 무엇인지 다루어볼 것이다.

성차별적 설교와 성희롱 발언의 유형
1) 정의

국가인권위원회는 “성차별이란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을 이유로 발생하는 모든 구별, 배제, 제한, 폭력을 의미하며, 고정된 성 역할 관념에 근거한 차별도 금지의 대상이 된다.”라고 정리하였다. 성희롱은 취약한 지위에 있는 근로자,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성적인 말이나 행동 또는 요구를 하는 형태로 발생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성희롱 진정사건 중 상하 관계에서 발생한 건수가 65.8%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처럼 성희롱 문제는 위계질서에서 발생하는 권력의 문제와 젠더 불평등의 복합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1
성차별과 성희롱, 성폭력과 같은 젠더 문제는 대부분 젠더 권력과 언어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사회언어학적 연구 결과를 보면, 권력을 갖고 있는 남성의 언어 주도는 여성의 생식기관뿐 아니라, 여성을 지칭하는 무수한 단어 속에 여성에 대한 경멸과 욕설의 거대한 언어 그물망을 구축하면서 여성을 얕보고 희롱해왔다.2 따라서 필자는 성차별적 설교란 남성 본위의 성서 해석으로 여성을 차이가 아닌 차별로써 제한, 배제, 비하, 희롱하면서 성적 모멸감이나 수치심, 젠더 불평등을 유발하는 설교라 정의하고자 한다.

2) 유형
여성의 정체성과 역할을 규정할 수 있는 당사자는 ‘여성 자신’이며, 성차별적 설교나 성희롱 발언을 판단하는 자 역시 발화자 남성이 아니라 청자인 여성이다. 기독교 심리학자 메리 스튜어트 반 루우윈(Mary Stewart van Leeuwen)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의식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중요한 측면을 지니기에, 인간 누구에게도 성 정체성과 성 역할을 강요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3 하지만 보수적 교단일수록 ‘마더 와이즈’나 ‘아버지 학교’를 통해 혼전 순결과 낙태, 젠더 정체성과 젠더 역할에 대한 가부장적 관점을 강요하는 경향이 너무도 크다. 심지어는 설교 중에 여성의 목소리로 흉내를 내면서 여성을 비웃으며 희롱하기도 한다. 성차별적 설교의 유형을 다음의 네 가지로 나눠보았다.4
(1) 성 역할 분업적 설교: 우리나라 성차별 관련 판례나 결정례를 보면, 여성 차별로 인정된 법의 판결 사유 중 단연 1위는 성별에 따라 기질, 역할, 능력을 다르게 보는 성 역할 분업관이다. 예를 들어, “여자가 말이 많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는 일들은 옳지 않다”, “여자는 애 잘 낳고 살림 잘하면 된다”, “여자는 교회 주방에서 힘이 세다”, “애 많이 낳는 게 전도이다”, “여자는 혼전 순결을 지켜야 한다”, “여자가 너무 강성이다” 등이 있다.
(2) 여성을 이분법적으로 규정하거나 여성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담은 설교: 성서에 나오는 여성 인물이나 예화를 들 때, ‘순종녀/불순종녀 또는 유혹녀’라는 이분법으로 나눠 집단화시키는 설교가 여기에 속한다. 또한 남성 인물을 설교할 때에는 남녀 모두를 위한 신앙적 모델로 설교하는 게 아니라, 남성 인물의 우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반면, 주체적이며 도전적인 여성 인물을 가부장적 이미지로 바꾸는 설교가 여기에 속한다. 예를 들면 “보디발의 아내처럼 순진한 남자를 유혹하지 말라”, “여자가 머리에 베일을 쓰지 않고 예언하는 것은 창녀와 같다”, “한나는 현모양처의 모델이다”, “여자를 조심하라” 등이다.
(3) 성희롱 설교: 발화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설교를 듣는 여성으로 하여금 성적인 수치심이나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성적 발언과 표현, 또는 음란한 농담이 들어 있는 설교가 있다. 예를 들어, “이 성도가 내 성도인지 알아보려면, …여 집사에게 팬티를 내려라”, “여름만 되면 여자들이 옷을 못 벗어 환장한다. 치마는 짧아져 보일락 말락 하면서도 가슴은 안 보여주더라”, “쭈쭈 빵빵한 몸매는 돼야지”, “여자의 성기는 잘 만들어져서 아무리 과격해도 다 받아낸다” 등이 여기에 속한다.
(4) 여성을 비하하는 설교: 여성을 교활하게 보거나 유혹하는 존재로 보면서 원죄의 책임을 모두 여성의 탓인 양 비난하는 식의 설교라든지, 여성의 생리를 부정하게 보면서 혐오하는 설교가 이에 속한다. 예를 들어, “여자가 남자를 유혹해서 죄를 범한 거야”, “어디서 여자 주제에”, “무식하고 싸가지 없는 여편네”, “여자는 말 많은 존재라서 전도하면서 떠들면 돼”, “거지같은 여자 만나서 망하는 남자 많이 봤어”, “여자가 기저귀 차고 어딜 강단에 올라와?”, “과부는 돈 많은 게 매력이야”, “여자는 커피 자판기야” 등이 있다.

원인 분석
성차별적 설교와 성희롱 발언의 원인으로는 첫째, 남성 교부들과 신학자들의 부정적인 여성관이다. 2,000여 년의 교회사를 보면, 여성의 몸과 성 정체성, 성 역할과 관련된 남성 교부들과 신학자들의 성차별적 발언은 현대 남성 설교자들에게 이어져, 마치 그것이 전통적인 여성관인 양 담보하는 근거가 되었다. 초대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여성 때문에 우리는 죽음의 형벌을 받는 것이며… 당신들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죽어야 했다.”라고 말했다. 기독교의 성자라 불리는 아우구스티누스도 “여성 자체를 놓고 볼 때, 여성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다. 오직 남성만이 하나님의 형상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킹 제임스는 “여성이나 여우를 가르치는 것은 더욱 교활하게 만들 뿐이다.”라고 하였다.5 이외에도 토마스 아퀴나스, 히에로니무스, 그리고 청교도들의 왜곡되고 부정적인 여성관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통적인 여성관으로 답습되고 있다.
둘째, 가부장적 성서 해석과 시대 적용의 오류이다. 가부장적 성서 해석의 특징은 남성을 ‘정의롭고 권위를 갖고 있는 존재’로 해석하는 반면, 여성은 ‘부정하고 세속적인 존재’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즉, 성서에서 하나님을 만난 남성은 ‘특별 계시’로 해석하면서 여성은 ‘현모양처’로 획일화시켜 해석하는 경향이 짙다. 또한 고린도전서 11, 14장, 디모데전서 2장에 나오는 바울의 말을 시대적 배경과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아울러 16세기 루터와 칼뱅의 여성관을 21세기 오늘날의 설교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오류이다. 예를 들어, 디나의 강간 사건(창 34장)과 다말의 강간 사건(삼하 13장)에 대하여 루터나 칼뱅은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의 억울함에는 전혀 관심도 없이 딸들이 아버지(야곱, 다윗)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해석하였다. 오늘날 목사들이 16세기 칼뱅의 성서 해석을 그대로 적용하면서 ‘성폭력’이라는 중요한 의제를 잃어버리게 되었다.6
셋째, 성차별적 제도를 지지하는 가부장적이며 가정 중심의 교회 담론 때문이다. 2,000여 년의 교회사를 보면, 남성은 성직자라는 공적인 직분을 차지하면서 신학과 목회, 설교와 교육을 통해 가부장적 교회 담론을 형성하여 왔다. 반면에 여성은 사적인 공간인 ‘가정’에만 머무르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예를 들어, 바울의 동역자로서 주도적이며 영향력이 컸던 여성 교사 브리스길라(행 18:24-28)를 ‘남편 아굴라를 내조한 아내’로만 해석하는 경우이다.
넷째,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거나 희생양으로 삼기 때문이다. 소비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얼짱’, ‘몸짱’ 등 여성의 몸을 강조하고 외모 관리를 강조하는 풍조가 강화되었으며, 여성은 남성에게 인정받기 위해 외모를 단장해야 하는 존재, 손님을 대접하고 맞이하는 존재로서 인식되었다. 또한 중세의 마녀사냥이나 조선시대의 칠거지악(七去之惡)처럼, 남성들의 과욕과 잘못을 여성에게 전가시켜 가부장제를 확고히 하는 기제들이 있었다. 이는 오늘날 교회에서 성추행을 저지른 남성 목회자가 오히려 피해 여성을 ‘이단’, ‘꽃뱀’으로 둔갑시켜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 죄를 뒤집어씌우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부정적 영향
리자 융은 “교회가 남성의 죄책을 ‘유혹하는 이브’의 원죄로 돌려 이를 정신적, 신앙적으로 소화시켜, 교회 여성의 성적 권리와 자유를 빼앗아 성의 종속화를 가져왔다.”라는 성적 메커니즘 견해를 피력하였다.7 이는 남성 목회자의 성차별적 설교와 성희롱 발언이 학습되면서 여성이 성적으로 무방비 상태에 이르게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다 보니 남성 설교자의 성차별적 성향은 성적 욕망을 채우는 덫으로 작동하여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을 유발하기 쉽게 만들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성차별적 설교는 교회 여성들에게 수치심, 우울, 낮은 자존감 등의 부작용을 낳고, 심한 경우 신앙을 포기하거나 영적 공황에 이르게 하면서 인간성을 방해한다. 동시에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회 조직(당회, 노회, 총회)은 남성 목회자의 성범죄를 은닉해주면서 사회로부터 목회자의 신뢰를 잃게 하는 위험 요소가 되고 있다.
남성 우월적 사고를 기반으로 권위를 갖고 행사하는 성차별적 설교는 여성에게는 복음(福音)이 아니라, 독음(毒音)이며 폭력이다. 따라서 성별 권력에 의한 성희롱과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운동’(Me Too movement)과 마찬가지로, 교회는 권력을 갖고 있는 남성 목회자의 성차별적 여성관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으며, 여성을 존중하고 대화할 수 있는 겸손하고 열린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예수 정신에 합당한 설교를 바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는 성서의 기록은, 남자와 여자가 ‘개별 위격’(personhood)으로서 서로 하나가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 전체가 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를 이룸으로써 율법이 가져온 인간의 차별을 종식하였으며, 이를 근거로 한 ‘서로 사랑’이라는 새 계명은 기독교인의 유일한 삶의 원리이자 영생의 근거가 되었다.
‘주 안에서 하나’라는 의미 안에는 흡수나 종속, 무시와 혐오, 차별과 배제가 들어설 공간이 없다. 교회는 한 분 성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친밀함과 개방, 그리고 거룩한 교제가 있는 공동체로서, 어떠한 강요나 억압이 없는 자유와 상호 존중, 조화와 균형을 통해 인간성을 이루어나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하면서(딤전 6:3), 누추하거나 희롱의 말 대신에 남녀가 서로를 존중하는 감사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엡 5:4).
결론으로, 여성이 바라는 설교는 여성을 제한, 배제, 비하, 희롱하는 성차별적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딸로서 존중하며 믿음의 말과 지식,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깨닫게 하는 설교이다. 아울러 주 안에서 하나 됨을 맛보게 하며 믿음, 사랑, 소망을 주는 설교이다. 이를 위해서는 설교에 대한 여성 청중의 피드백을 받고 여성의 경험과 입장을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여성 신학교수, 여성 목회자, 여성 설교자들을 세워서 여성성과 여성 리더십의 역량이 발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신학교에서 성서적 페미니즘 관련 과목을 개설하여, 여성 이해는 물론 성경과 젠더 이슈를 접목시키는 창의적이고 다학제적(multi-disciplinary)인 신학 연구와 교육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는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뛰노는(사 11:6-9) 공존과 평화의 나라이며,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면서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 공동체가 아니던가! 여성을 존중하신 예수의 정신에 합당한 설교가 강단에 흘러넘치기를 희망해본다.


1 김엘림, “성희롱방지에 관한 사용자의 법적 책임”, 「노동법학」 34호(2010): 185-222.
2 마리나 야겔로, 강주헌 옮김, 『언어와 여성』(여성사, 1994), 58-179.
3 메리 스튜어트, 윤귀남 옮김, 『신앙의 눈으로 본 남성과 여성』(Ivp, 2000), 59-60.
4 아래에서 제시된 성차별적 설교와 성희롱 발언의 예들은 필자가 45년간 보수적 교단에서 들은 설교의 내용과 서울의 S교회 두 곳, 용인의 S교회 홈페이지에 게재된 2011년 3-9월 설교를 토대로 한 것이다.
5 교부들과 신학자들의 성차별적 발언은 다음 책을 참고하라. 진 에드워드, 임정은 옮김, 『하나님의 딸들』(죠이선교회, 2009).
6 Michael Parsons, “Luther and Calvin on Rape: Is the Crime Lost in the Agenda?”, EQ 74호(2002년 2월): 123-142.
7 리자 융, “소녀와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 울리케 아이힐러・일제 뮐너 외, 김상임 옮김, 『깨어진 침묵: 성폭력에 대한 여성신학적 응답』(여성신학사, 2001), 19-25.



강호숙 | 총신대학교에서 실천신학(교회 여성 리더십)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여성이 만난 하나님』, 논문으로 “교회리더의 성(聖)과 성(性)에 관한 연구” 등이 있다. 현재 기독인문학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20년 3월호(통권 7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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